대한민국 교사,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모두가 행복한 학교 참여하는 수업 만들기
윤성관 지음 / 살림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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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에 대한 책이 워낙 많이 나와 있어서, 제목만 보고는 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강의법부터 시작하여 혁신학교에 관한 책까지, 여기에 대안교육에 관한 책과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배움의 공동체 책까지 하면 교육에 관한 책의 전성기라 할 만하다.

 

게다가 자율학교부터 혁신학교까지 얼마나 다양한 학교가 있는가? 또 학교에서는 얼마나 다양하게 실험을 하고 있는가? 교육의 백가쟁명 시대라고 하면, 이런 시대를 만들어준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에 관해서는 저마다 전문가라고 자처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그 얘기가 그 얘기가 되고만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그건 이론에 불과해 하고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으며, 학생들은 그런 논의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잘 알지 못하고 넘어가고 있으며, 부모들 중에서도 소수의 부모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에 관해서는 저마다 자신의 이론을 내비치고 있지만, 이 이론들이 현실로 들어오는데 오래 걸리며, 또한 들어와서도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가 있듯이 그저 그런 또 하나의 이론으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니 거의 다라고 해야 한다.

 

그 결과 학교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 모습 그 대로 주욱 버티고 있다. 곳곳에 작은 균열이 났음에도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난 건물과 같이 학교는 그 균열들을 껴안고 그냥 그렇게 안녕하다. 우리의 학교는 늘 안녕하다. 전혀 안녕하지 않는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을 보태 학교의 변화, 수업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 책이 나왔다. 제목을 보면 얼핏 일본 사토 마나부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를 연상시키는 이 책은, 그러나 사토 교수의 글이 일본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책이라면, 이 책은 철저하게 우리나라 공교육 현장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또 실천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기도 한다. 책의 부분 부분이 수업행복으로 되어 있다. 수업행복1에서 수업행복7까지 글쓴이는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일곱 개의 장에서 잘 담아내고 있다. 물론 자기와 똑같이 하라는 소리는 당연히 하지 않는다.

 

학교는 다 다르고, 같은 학교라 해도 교실은 다 다르며, 같은 교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수업 각각은 다 다르고, 아이들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교사들도 다 다르다. 이 다름을 인정한다면 수업행복에 다가가는 첫걸음을 떼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학교가 이 다 다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우리,우리 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불거졌다는 생각을 하면 다름의 인식은 곧 수업행복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업의 행복을 찾는 길, 어떤 수업을 하고 있는가로 시작하여 왜 수업이 힘들까,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들은 왜 수업에 어울리지 못할까, 이런 아이들을 어울리게 하는 방법은, 수업을 힘들에 하는 이들은, 그리고 나는 나와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가라는 내용의 제목들을 각자 달고 있다.

 

교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들 모두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초중학교는 거쳤기 때문에, 자신들이 경험한 학교와 자신들의 자손들이 경험하고 있는 학교를 비교하고, 지금도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다름을 인식한 데서 출발한 이 책은 이게 정답이다라고 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는데 교육이 전부인 줄 알고 지내온 우리들에게는 좀 황당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교육에 정답은 없다. 정답은 주어진 무엇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무엇이다.

 

그러므로, 교육에서 수업의 행복을 찾은 길은 그 때 그 장소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러한 나, 우리의 방법을 찾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 노력에 행복한 수업으로 가는 길이 열리기 시작할테다.

 

뒤로 갈수록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전문(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사1993년 20쇄 65쪽)

 

행복한 수업을 이 시의 섬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은 학교를 통해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강조하는 '사이'이리라. 이 사이를 섬이라고 하고, 수업이라고 하면 아이들과 교사들은 이 수업을 가운데 두고 서로가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과정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누군가 커다란 다리를 놓아줄 수도 있지만, 그 다리가 놓인 섬은 교사와 학생이 가고 싶은 섬이 아니다. 그 섬은 그냥 지나쳐가는 섬에 불과하다. 그런 섬을 교사와 학생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그들이 고려하는 '사이'로 놓지 않는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은 수업이라는 섬에 하나 하나 자신의 힘으로 징검다리를 놓는 일을 해야 한다. 그 징검다리가 결코 편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하나하나 제 발 길이에 맞게 놓는다면 수업이라는 섬에서 즐겁게 서로 만날 수 있으리라. 그러한 징검다리를 놓는 역할을 이 책이 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아니,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 아니라, 징검다리를 놓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해야 하겠다.

 

이 시를 바꾸어 생각하면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섬이 있다. 교사와 학생은 그 섬에 가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섬에 가는 길은 누가 놓아주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이 스스로 자신들의 발길이에 맞게 하나하나 징검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래서 한 발 한 발 건너 섬에서 만나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즐거운 수업을 해야 한다.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이루어진다면, 교사는 조향미 시인의 '고향 같은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내게 고향 같은 선생님 한 분 계셨으면

객지 어느 쓸쓸한 길모퉁이 돌다가

생업에 낯선 사람들에 시달리다가

문득 가슴 넘치는 안온함으로

떠올릴 수 있는 선생님

시외 버스로 두어 시간이면

달려갈 수 있는 동네

사립문 활짝 열려 있고

늦도록 남포불 내걸려 있는 집

그리운 흙냄새와 낯익은 풀꽃들

서리서리 벌레 울음도

가슴 가득 품고 계신 분

내게 그런 선생님 한 분 계셨으면

 

또한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선생님 되었으면

조향미, 고향 같은 선생님 전문(나는 선생이 아니다, 우리교육, 2002년 13쪽)

 

이런 선생님, 바로 우리가 섬에서 만난 선생님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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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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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MBC와  KBS가 파업을 시작한 지가 오래되었는데도. 더 신기한 사실은 방송 노조가 파업을 하는데, 그것도 공정방송을 위해서, 자신들의 방송을 지키기 위해서 파업을 하는데, 방송은 별 차질없이 되고 있다. 도대체 불편하지 않다.

 

파업을 하면 불편해야 하는데, 불편해야 저 사람들이 왜 파업을 하지 하고 생각을 하게 되고, 파업의 이유를 파악하려하고, 파업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할텐데 말이다.

 

마찬가지로 9시로 대변되는 뉴스 시간에도 이 파업들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나 하고 넘어갈 뿐이다. 파업하는 사람들은 이미 언론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는 존재도 같은 방송인들이다.

 

공정한 방송을 하자는데, 제대로 된 방송을 하자는데, 방송인이 방송인을 소외시킨다. 그러면 지금 방송하고 있는 사람들은... 진실 보도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일까. 의문은 이런 데서 생긴다.

 

이 때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이 책, 잘 홍보가 안 되었나 보다. 어쩌면 시사IN이라는 매체에서는 많이 다루었을지 모르지만, 시사IN이란 매체가 우리나라 언론에서 보면 진보 쪽에 있는 언론이니, 다른 언론에서 이 책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밖에.

 

게다가 이 책의 내용이 우리나라 신문이나, 방송을 비판하고 있으니 방송이나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루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부 비판에 상당히 엄격한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 아니던가.

 

제목이 9시의 거짓말이다. 9시하면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민영방송이라는 SBS가 생겨 8시로 메인 뉴스 시간을 당겨서 9시가 메인 뉴스 시간이라는 일반성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메인 뉴스 시간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9시의 거짓말이란 우리나라 뉴스들이(이를 통칭하면 언론, 방송이라고 하면 된다) 얼마나 거짓 보도를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래서 1장에서는 그동안 언론에 나타났던 진실을 가장한 거짓 보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비교 대상으로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렌 버핏을 끌어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하고, 그 반대로 워렌 버핏이야기를 하고 하는 식으로 짝을 이룬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다.

 

워렌 버핏이란 자본주의의 총아이고, 사실 그리 도덕적이지 않을(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잘 적응하고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본주의의 총아인 그가 하는 행동이나 생각보다도 진실을, 공정을 생명으로 한다는 언론이 훨씬 더 정보를 왜곡하고, 돈과 권력에 매여 있으며, 자신들의 편견에 빠져 있다는 점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으니, 글쓴이가 워렌 버핏을 예로 든 것은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39쪽에서 그동안 진행되어 온 논의를 우리나라의 언론들과 워렌 버핏의 사고방식을 표로 대조해 놓은 것은 정말로 알기 쉽게 비교할 수 있어 이 책의 핵심 내용을 너무도 잘 전달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나라 언론인들은 삼인성호(三人成虎)란 말을 명심해야 하는데,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고, 있지도 않은 일을 마치 있는 일인양 충분히 사람들을 호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하는데, 그를 너무도 쉽게 잊지 않았나 한다.

 

이는 '3'의 효과라고도 할 수 있는데, 셋이 모이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언론사들이 셋 이상이 하나같이 왜곡된, 편파적인 보도를 한다면 대중들은 그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언론인들은 명심해야 하는데... 이를 거꾸로 엣 이상의 언론사들이 공정한 보도, 진실 보도를 한다면 세상의 왜곡된 권력이 횡행할 수 없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여기에 공자의 말을 덧붙일 수도 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하는.

 

우리 언론인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도 제대로 모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보도를 해서 사람들을 호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이제부터라도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히 이야기를 한다면 진실 보도에 한층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렌 버핏을 대조적인 상대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 책에는 주식에 관한 이야기가 예로 많이 나온다. 주식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지만, 자본주의의 총아가 바로 금융자본주의, 특히 주식 아니겠는가. 이러한 주식에서도 워렌 버핏이 그 때 그 때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보다 더한 우리의 삶에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가 유추할 수 있다. 어쩌면 글쓴이도 이 점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주식에 대해서 몰라도 이 책은 어렵지 않다. 주식 투자 기법을 알려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진실이 어떻게 가려지는지, 우리가 진실을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려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 주식투자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는 부수적인 이득도 얻을 수 있다.

 

아직도 파업중인 방송인들. 그들의 목적이 바로 진실된 보도, 공정한 보도를 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파업 중인 방송인들 또한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방송인들, 이 책을 읽었으려나? 읽었다면 서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텐데...

 

이 책은 방송에 관심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방송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이 책과 같은 방송에 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그동안 방송은 어떻게 되어 왔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이 바로 언론의 자유는 대중의 자유다라고 되어 있다. 언론의 자유는 대중의 자유다. 맞다. 여기에 다시 반대도 성립한다. 대중이 진정 자유롭다면 언론의 자유는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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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 문학과지성 시인선 342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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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낯설다. 두두라니. 이게 무슨 뜻?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표준 국어대사전에는 이런 감탄사라고, 돼지 등을 쫓을 때 내는 소리라고 되어 있다. 이건 아니겠지. 시집을 펼쳐 본다. 시집 속에 뜻이 나와 있겠지.

 

그런데 시집 어디에서 '두두'는 없다. 제목인데, 제목에 관한 내용이고, 제목이고 없다. 이런 2부는 '물물'이다. 뭐야 이거...

 

오규원 하면 날이미지시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데...제목에서 막히다니.

 

아니다. 답은 오히려 간단한데 있다. 늘 그렇듯이.

 

책의 뒷표지에 뜻이 나와 있다. 이런 이런...

 

두두시도(頭頭是道) 물물전진(物物全眞):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다. 이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1부는 두두, 2부는 물물이다.

 

결국 이 시에 나오는 모든 사물들, 이미지들은 도이고, 진리이다. 아니 우리 삶에서 도이고, 진리 아닌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시인은.

 

그런데, 우리는 굳이 이런 글자에 매일 필요가 없다. 시는 우리가 읽기 나름 아니던가. 시는 이렇게만 읽어야 한다고 누가 그러겠는가. 그러니 그냥 읽으면 된다.

 

처음 시집을 펼치니 시인의 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아니 마음에 확 꽃힌다. 시인이 수목장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러한가. 아니면 이 구절이 그냥 마음에 다가오는가. 시들을 읽기 전에 시인의 말을 시처럼 받아들이다니...

 

시인의 말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시인은 지금 나무 속에서 자고 있다. 그 점이 이 시인의 말을 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시집의 시들은 거의 다 짧다. 짧아서 이게 진짜 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마음 깊은 곳을 울리기보다는 한 번 읽었을 때 장면이 눈에 그려지면서 그냥 따스해진다. 마치 봄날의 햇살처럼, 그리고 봄날의 바람처럼.

 

1부 '두두'에 실린 시들의 제목 대다수가 '~와/과~'로 되어 있다. 하나가 단독으로 나오지 않고, 무엇인가를 대동하고 나온다. 마치 혼자서는 세상을 살 수 없다는 듯이. 세상은 이렇게 여럿이 함께 묶여 구성되어 있다는 듯이.

 

그리고 시 내용은 해설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동사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은 명사, 내용은 동사. 제목을 내용을 통해 드러내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고, 그런 보여줌을 통해 우리는 작은 소품들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마치 이철수의 판화그림을 시로 만나는 느낌이랄까. 이 두두에 실린 시편들이 참 따스하다. 그냥 한 편 한 편 넘기면서 마음이 봄햇살을 받는 것처럼 따스해진다. 그냥 읽으면 된다. 오규원 자신이 말했듯이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시를 시로 읽어가면 우리는 존재와 마주하게 된다.

 

그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의미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를 그 존재들 사이에 갖다 놓는다. 그러면 된다.

 

시를 읽으며 나를 세상의 존재들과 병치시키는 행위, 그 병치를 통해, 도에 이르는, 참에 이르는 그런 경지를 꿈꾸게 된다.

 

아니, 시를 읽는 순간만큼은 그런 경지에 도달한다. 그것이 이 시집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의미다.

 

4월이 가고 있는 지금. 오규원의 이 시를 본다.

 

나무에서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잠시 서로 어리둥절해하네

4월 하고도 맑은 햇빛 쏟아지는 아침

- 4월과 아침 전문

 

밖을 보니 이 시처럼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있다. 바람에 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햇빛에도 그리고 달빛에도 서로 서로 빛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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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역사를 만나다 -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
안광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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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은 무슨 시대일까?

 

이 세상이 과연 철학의 시대였던 적이 있었던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제자백가 시대가 있지 않았냐, 서양에서도 칸트, 헤겔 등이 살았던 시대를 철학의 시대라고, 아니 그리스 시대를 철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철학의 시대가 있었음은 그 시대가 격변의 시대였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격변의 시대에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추구하는 학문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이런 학문이 사람들에게 길을 인도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학문을 우리는 철학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처럼 철학과 역사의 만남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역사와 만나지 않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라 공허한 상상, 환상에 불과하리라.

 

그래서 철학은 현실에 대한 응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응전이 시대성을 획득하면 역사성까지도 획득해서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다.

 

그러면 과연 지금은 무슨 시대일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은 무엇일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묻지 않는다면 철학에 대한 공부, 또는 철학 공부는 필요없게 된다.

 

오로지 자본이 판치는 사회, 그 자본으로 인해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시대, 승자독식의 시대, 실명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철학을 지녀야 할까. 아니 우리에게 앞길을 제시해 주는 철학이 무엇일까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을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도 있듯이,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은 현재를 파악하는 일이고 미래를 인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과거에는 역사만이 아니다. 바로 그 시대의 철학도 담겨 있다. 철학이 시대 정신이라면, 철학에는 그 시대의 모습과 그 시대를 헤쳐나가려는 노력이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철학은 역사와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부제도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이니 말이다.

 

총 16개의 철학 장면이 나온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던 아테네부터.

 

사실, 이 책은 이런 아테네를 다루지 않고 스파르타를 다룬다. 지금의 개발독재와 비슷하다고, 그리고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이렇게 이 책은 과거 철학을 이야기하지만 끊임없이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격동의 세계사 장면 장면에서 철학이 한 역할을, 그리고 그 철학의 의미를 쉽게 정리해서 전달해 주고 있다. 아마도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들어보았음직한 철학자들,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공자, 노자, 헤겔, 마르크스, 니체, 비트겐슈타인 등에 대해, 그들의 철학 세계에 대한 자세한 주석보다는, 그 시대의 모습, 그 시대에서 요구하였던 사상, 철학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철학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그 장점이 철학자와 역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을 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철학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처음 철학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테니 철학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나, 청소년들에게 유익할 수 있다.

 

덧글

 

147쪽 로크를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에서 '빈 서판' 이론을 이야기할 때, 사소하지만 중요한 용어 실수(사실은 조판 실수겠지만), 빈 서판(tabla rosa)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빈 서판(tabla rasa)라고 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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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여는 이라는 앞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

 

두 달에 한 번 나오지만, 그 두 달 동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 호의 기획은 산촌유학이다.

 

도시에서 살던 아이가 일명 시골이라는 산촌에 가서 생활하는 동안 배우게 되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아이들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산촌유학이 도시 아이들에게만이 아니라, 산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풍부하게 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다만, 지금 현재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는 지자체와 교육당국이 산촌유학의 교육적 장점에 대해 인식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지원에 나선다면 비용문제도 어느 정도는 해결되지 않을까 한다.

 

이런 관점을 지니기 위해서는 이번 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교육기본권에 대한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국민의 의무라기보다는 국민의 권리라는 사실, 그 권리를 우리는 보장 받을 필요가 있고, 그런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가지 교육 방법이 있다는 생각을 지닌다면, 산촌 유학도 교육의 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교육을 학교에 국한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생각을 해보게 한 산촌 유학 기획과, 교육기본권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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