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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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것은 당연히 나와는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타인의 속내와 그 삶을 읽는 것-45쪽

시인은 단독적인 삶을 통해서 인간적 삶의 보편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제대로 된 시를 완성했을 때, 시인은 보편적인 시를 완성한 것이다.-117-118쪽

시인은 자신이 인문정신의 수행자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것은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167쪽

김수영이 김수영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상승에의 관성을 거부하고 하강에의 의지를 끈덕지게 관철시키는 것, 지배에의 욕구를 부정하고 공존에의 소망을 긍정하는 것-171쪽

개개인의 단독성이 인간의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면, 예술적 창조는 자유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의 자유가 없다면 인간의 자유를 실현할 곳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188쪽

예술은 자기 이해에 도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고, 동시에 자기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191쪽

시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려는 삶의 방식에서 나와야만 한다.-193쪽

(카프카의 말 재인용)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 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같은 것이어야 한다.-229쪽

우리의 삶과 언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시`다. 아니 정확히 말해 김수영이 꿈꾼 `진정한 시`다.-231쪽

시인은 자신만의 제스처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려고 한다. 이것이 시인이 자유롭게 자유에 대해 노래할 수 있는 이유다. 시는 이렇게 탄생한다.
... 섬세하지만 나약한 시인은 아무래도 순수시를 쓰기 쉽고, 반대로 강하지만 투박한 사람은 참여시를 쓰기 쉽다. 그러니 시를 쓰면서 전자의 경우는 점점 강인함을, 후자는 점점 섬세함을 얻어가고자 하면 된다. 이것이 김수영의 근본 입장이다.-337쪽

진정한 시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성, 그러니까 단독성을 가져야만 한다. 오직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는데 성공한 사람의 자기 표현이니까 말이다.
... 결국 시를 쓰기에 앞서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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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육군 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의 사열을 받은 사람.

 

출신 고등학교에서 자랑스런 동문이라는 칭호를 받는 사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 사람.

 

명성이라기보다는 악명이 더 높은 사람.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

 

그런 그에게 우리는 대응을 잘하고 있을까?

 

아주 오래 전에 나온 시인데... 이 시에서 처럼, 우리는 그냥 주저앉고 있지 않은가.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이런 상태일 뿐이지 않은지...

 

황지우의 또다른 시가 생각나는 날이다.

 

침묵하지 않고, 언론에 계속 노출되는 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묵념, 5분 2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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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오에 겐자부로 지음, 윤상인.박이진 옮김, 오자키 마리코 진행.정리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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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하면 일본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두 번째 사람이다. 그의 문학이 일본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다는 얘기다. 그의 일생에 걸친 작품 이야기를 한 책이 이 책이다. 대담 형식으로 그의 삶과 작품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프랑스 어법에 관한 공부와 일본어 어법에 대한 공부를 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러한 문체 덕분에 유럽을 비롯한 서구 여러나라에서도 그의 작품이 읽힐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을 탔을 때 그의 반응이 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도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이 말. 천상 그는 소설가이다.

 

그럼에도 부끄럽지만 나는 그의 소설을 한 편도 읽어보지 않았다. 어린 시절은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또다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음에도 도저히 감동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는 분명 경향이 다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많이 번역이 되어 있는데...

 

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그에 대해서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그의 수필집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나무 아래서"를 아주 좋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 책으로 인해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 후쿠시마 사태에서도 그는 앞장서서 원전에 대한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이렇게 그가 사회 문제에 참여하게 된 것도 그의 치열한 작가 정신 때문이라고 본다. 그가 진실한 친구로 사귀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말이다. 그는 일본의 평화 헌법을 지지하는 운동을 하고, 오키나와의 진실을 규명하는 운동도 하며, 요즘에는 원전 반대 운동도 하고 있으니, 그의 이러한 운동은 그가 중심부를 지향하는 인물이 아니라, 주변인을 자처하는 그러한 경향을 지닌 인물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주변인이기에 세상의 중심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그럼으로 인해 그의 객관적인 시선이 작품 속에 담길 수 있다는 사실...

 

오에 겐자부로는 그의 소설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아들 히카리 때문에도 유명하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 그러나 그 아들은 음악으로 자신의 세계를 이어가고, 무려 40년이나 아들의 잠자리에 담요를 덮어주는 것으로 자신의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이 작가의 생활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이 아들을 중심으로 그의 소설이 영감을 얻어 펼쳐지기도 했다는 사실도 빼먹을 수 없는 일이고.

 

무엇에나 신중한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오에 겐자부로. 그의 문학 활동 50년을 맞이하여 총결산 격으로, 아니 한 시대를 정리하고 다른 시대를 준비하는 격으로 마련된 이 대담에서 우리는 한 작가의 전생애와 전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신비에 휩싸이지도 않고, 또 세상과 절연하지도 않고, 오만에 빠지지도 않고, 자신이 할 일은 작품을 쓰는 일이라는 사실을 굳게 지켜가고 있는 작가. 그의 60주년 작품 정리도 나오길 바란다. 그는 그럴 일은 없겠지요 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문학의 죽음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 시대. 문학은 결코 죽지 않음을 오에 겐자부로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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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이 이루어진 지 12주년이 되었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이런 비유는 맞지 않겠지만, 마치 7.4남북공동성명이 있은 다음 암흑기로 접어든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전쟁의 위협이 아직도 있으니 말이다. 그 많은 일들로 하여금, 6.15선언에 이어 10.4남북공동선언까지 이루어졌지만, 그 다음으로는 나아가지 않고 있다. 나아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뒤로 가고 있단 인상을 주고 있다.

 

80년대던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했다가 엄청난 고난을 겪기도 했었는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여전히 반공 시대에 살고 있다.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보라.

 

퍼주기 논쟁.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굶주리는 사람에게 생활이 있을리가 없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보수들은 그러한 자유민주주의가 먹고 살만한 상태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삶에 여유가 있어서 더 많은 일들을 생각할 수 있다. 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면 다른 일들은 뒤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퍼주기 논쟁은 논쟁이 될 수 없다. 줄 수 있으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신뢰가 쌓인다. 신뢰가 쌓이면 교류가 더 많아지고, 외부의 영향을 덜 받게 된다. 이 때 우리는 자연스레 통일로 가는 길을 만들게 된다.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위한다면 우리는 통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통일이 되지 않고, 지금의 상태로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면 우리는 늘 불안을 지니고 살 수밖에 없다. 불안감을 안고 사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나라를 위한다면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을 떠나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라를 위하다는, 국민을 위한다는 진정한 보수라면 통일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현실적인 통일로 가는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해왔다. 이들의 노력이 하나하나 통일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토요일에는 통일을 이야기합시다"는 책이 있다.

 

통일은 어떤 특정한 사람만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6.15남북공동선언에 나오는 합의다. 이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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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찾는가 -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대안 노벨상 수상자들 이야기
게세코 폰 뤼프케 & 페터 에를렌바인 엮음, 김시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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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루쉰이 생각났다. 그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품고 살았던 사람.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 묵묵히 밀고 나갔던 사람. 그의 말이라고 하는 이 말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에 길이 처음부터 길이 아니듯이, 희망도 처음부터 희망이 아니다. 희망은 절망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때 나타나게 된다. 그것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쉬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제목이 "희망을 찾는가"다. 물음표가 찍혀 있지 않다. 그래서 "너 희망을 찾고 있니? 그렇다면 우릴를 봐."라고 하는 듯하다. 너는 지금 이 시대에 절망하여 좌절에 빠져 있지 않고, 이 시대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그것은 희망을 찾는 것이다. 희망을 찾는다면, 이미 그 희망을 찾아 떠난 사람들의 길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 길로 함께 가라. 그렇다면 그 길은 이제 갓 난 작은 길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갈 수 있는 큰길이 될 것이라고 하는 듯하다.

 

대안 노벨상, 바른생활상이라고 한다. 처음, 이 책에서 바른생활상이 본래는 노벨상으로 주어지길 바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윅스퀼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희망을 주는 사람에게 노벨상 중에서 생태학상이라는 하나의 상을 더 만들어 주면, 자신이 그 비용을 대겠다고 했다. 그러나 노벨상 위원회는 이 제안을 거부했고, 더이상 망설이면 안된다고 생각한 윅스퀼은 대안 노벨상인 바른생활상을 만들어 수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벌써 몇 십년이 지난 얘기다. 이 상 덕택에 바른생활상을 탄 사람들의 활동이 알려지기 시작해 희망의 길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는 노벨상을 탄 사람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만큼 주류 세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들의 활동이 그냥 묻혀지지는 않았다. 이것이 윅스퀼이 상을 만들어 수여한 이유이기도 하다. 상을 받은 사람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그의 활동은 사람들의 관심을 자연스레 끌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나하나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 이들이 만든 길들이 서로 연결이 되면 우리는 더 많은 희망의 길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희망의 길들을 연결하려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해주고 있어서 위안이 되기도 하고.

 

세상을 한 번에 바꿀 수 없다면 천천히 바꾸면 된다. 우공이산이라는 어려운 말을 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 속담 중에서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 여리고 여린 물방울들이 한 방울 한 방울, 한 방울, 한 방울... 계속 바위에 떨어진다면 결코 뚫리지 않을 것 같았던 바위에도 어느 순간 구멍이 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희망의 역할이다.

 

루쉰이 말한 길도 이와 같다. 처음 시작이 어렵지 시작을 하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희망이 현실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안된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할 수 있다는, 아니 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사례들을 많이 접해야 한다. 긍정적인 사례들을 자꾸 접하다보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사상가인 그람시는 전면전인 기동전보다는 국지전인 진지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들의 참호를 파고, 그 참호를 중심으로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는 진지전. 진지전은 빠른 시간 내에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인내심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길게 바라보아야 한다. 이 진지들이 서로 연결이 될 때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고,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는 순간, 희망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지금 세상에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말자. 희망은 있다. 그것을 우리가 찾아야 한다. 그래서 제목이 "희망을 찾는가"다. 희망을 찾는다면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시작을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희망을 찾는다면, 희망을 찾아 이미 길을 내기 시작한 사람들의 뒤를 따르면 된다. 이들의 뒤를 무작정 따르기만 하란 얘기가 아니다. 이들처럼 길을 낼 수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들의 뒤를 좇기만 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자신에 맞게 길을 내는 일, 그것이 바로 뒤를 좇는 일이다. 그것이 희망을 찾는 일이다.

 

희망을 찾는가. 보라. 이미 희망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을 보면 희망은 늘 우리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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