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그림을 품다
여지선 지음 / 푸른사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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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심이 간다.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는 못한다. 어쩌면 그림에 대한 감상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밀레와 바르비종 전을 보러 갔었는데, 그림을 보기보다는 그 많은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다 온 기억도 있고, 또 얼마 전에 간송미술전에 갔을 때도 그림을 본다기보다는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다렸던 그 긴 줄과, 들어가서도 그림을 볼 수 있는 시간보다는 뒷사람을 위해서 빨리 빨리 움직여줘야 하는 움직임만이 기억에 남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림에 관심이 간다. 그림을 통해 어떤 여유를 얻을 수 있고, 또한 그림을 통해 우리네 삶에 대해서,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은 정적인데, 그 정적인 모습 속에서 동적인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가령 고흐의 구두란 그림을 보면 닳아빠진 구두 한 켤레의 움직이지 않는 그 그림에서 우리는 구두 주인이 겼어왔던 신산한 삶을 읽어낼 수 있다. 이처럼 그림에는 한 폭의 화면 속에 삶의 총체적인 움직임이 들어있다.

 

그래서 시와 비슷하다고 하기도 하나 보다. 시도 짧은 표현 속에서 우리 삶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시인들이 그림을 보고 시로 다시 표현하는 일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많은 시인들이 그림을 시로 다시 만들어내었다.

 

이 책에 나오는 화가들은 고흐, 뭉크, 렘브란트, 샤갈, 모딜리아니, 피카소, 마네, 콜비츠, 이중섭, 김정희다.

 

특히 우리나라 시인들이 사랑했던 화가로는 고흐와, 뭉크 그리고 샤갈이 있고, 우리나라 화가로는 이중섭과 김정희가 독보적이다. 이들의 그림과 그림에 대한 시에 대한 이야기가 읽기 편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책을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가 있는데, 우선은 좋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고, 다음은 그런 그림에 대한 시를 생략하지 않고 전문을 볼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화가들과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학술적인 책과 비평적인 책 사이에 놓일 수 있는 이 책은 일반독자들로 하여금 그림과 시의 대화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 대화는 결코 어렵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그림과 시를 통해서 표현된 삶을 읽어내는 일은 우리의 삶을 파악하는 일과 통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순히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거나 시를 감상하는데서 그치도록 하지 않는다. 친절한 지은이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이 그림과 시들을 통해 우리의 삶과 마주치게 된다.

 

그 마주침을 통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고, 이 책은 그 역할을 그림과 시가 나누어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덧글

 

조금 아쉬운 부분은 늘 오탈자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적어도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오탈자는 치명적이다. 그런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

 

26쪽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바라기>는 1988년에 그려진 ->이를 1889년에 그려진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50쪽 오태환의 시 빈센트 반 고흐 1988은 -> 빈센트 반 고흐 1888로 바꾸어야 하고,

62쪽 휘몰아치는 밀발은 -> 밀밭이어야 하고,

111쪽, 153쪽, 250쪽의 국회위원은 -> 국회의원이어야 하며,

142쪽의 이상(李霜)은 -> 이상(李箱)이어야 한다.

그밖의 것이야 소소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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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는데... 얼마나 부정적인가.

그냥 시간을 보내면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일본에서 은연중에 원자력을 다시 가동한다는 소리가 들리고, 중국에서는 원자력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고 오히려 더 확장한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오래되었다는 고리원전 1호기를 다시 재가동한다고 하니...

세상에 이것을 안전신화에 갇힌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안전 불감증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시중에 나와 있는 책도 많은데.. 그 중에 읽었던 책, 몇 가지.

 

강은주,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 아카이브

녹색당 기획, 녹색당 선언, 이매진

이이다 데쓰나리, 원전없는 미래로-출구는 자연에너지다, 도요새

프란시스코 산체스, 체르노빌:금지구역,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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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봄
엠마뉘엘 르파주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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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학교- 밥상의 안전부터 에너지 대안까지 방사능 시대에 알아야 할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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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탈핵-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 2014 올해의 환경책 / 『한겨레』가 뽑은 '2013 올해의 책' / 『시사IN』선정 '2013 올해의 책'
김익중 지음 / 한티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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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
강은주 지음 / 아카이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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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노래로 쓰다
정경량 지음 / 태학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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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노래는 본래 하나였다. 둘이 아니었던 존재들이 문자언어가 발전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시와 그림도 하나였다. 이 역시 문자언어의 발달로 인해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시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고, 또한 시에서 그림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학교에서 배우는 시에 대한 용어로 풀이하면 노래는 운율이라고 할 수 있고, 그림은 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와 그림, 시와 노래가 따로 떨어져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시 속에는 아직도 노래와 그림이 남아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나를 찾아달라고 외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노래도 아직 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랫말은 한 편의 시다. 아름다운 시. 여기에 반대로 시가 노랫말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처럼 시와 노래는 하나로 다시 어울어지고 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쓰는 경우도 있고, 시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가던 존재들이 어느 순간 다시 하나로 합쳐지고, 다시 헤어지고, 합쳐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하나만을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존재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대. 일명 멀티시대라고 하는 이 때. 이 시대를 잘 살아가는 사람은 여러 존재들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각 분야의 통섭을 이룬, 융합을 이룬 사람이 되리라고 한다.

 

이 책은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기보다는 시와 노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시와 노래의 상관성을 여러 노래들의 갈래를 들어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처음에 나오는 이론적인 면은 넘어가도 좋다. 물론 이런 기본적인 이론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시를 이해하는데, 시와 노래의 융합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받겠지만, 이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건너뛰어도 좋다. 사실 우리는 이미 몸으로 시와 노래가 함께 할 수 있음을 알고 있고, 이론으로 정리를 하지 못해서 시가 무엇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 부분을 건너뛰면 여러 노래들의 갈래가 나온다. 단지 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노래들을 통해 시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왜 시가 노래와 친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다양한 갈래의 노래들을 설명하고 있다.

 

자장가, 동요, 민요, 대중가요, 사회참여 노래, 가곡, 기독교 노래를 통해 시에 한발짝 다가가게 해주고 있다.

 

아니, 시에 다가가지 않아도 된다. 이 노래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어느새 이 책에 실린 악보를 보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노랫말의 아름다움을, 그 아름다운 노랫말들이 우리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느끼게 된다. 이게 이 책의 장점이다.

 

자연스레 시와 노래가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님을, 시와 노래는 늘 가까이 있는 존재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책.

 

덧글

 

오탈자의 문제인데... 역사적인 사실에서는 오탈자는 치명적이다. 215쪽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설명 중에서 '이 노래는 1980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서 2월을 12월로 고쳐야 한다. 윤상원은 분명 5월 이후에 저세상으로 갔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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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인생 3라운드에서 詩에게 길을 묻다
최복현 지음 / 양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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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의 시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어렸을 때 멋도 모르고 읊어댔던 그 유명한 시 구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과연 삶이 우리를 속일 수 있을까.

삶이 우리를 속인다기보다는 우리가 삶을 속인다고 보아야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중년, 인생의 3라운드다.

인생을 죽음까지 이르는 4단계로 나눈다면 3단계는 이미 정상에 오른 단계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몰입한 인생.

눈은 오로지 앞만 보고, 발은 쉴틈도 없이 달리기만 했던 인생.

그런 인생에서 갑자기 정점에 이르렀다.

더 이상 발을 내디딜 곳이 없다.

백척간두에 선 느낌.

이제 눈은 하늘을 보지 않는다.

눈은 자신의 발밑을 본다.

무엇을 딛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과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

당혹스럽다.

이제껏 살아온 인생이 이것이었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과거를 생각한다.

자꾸 자꾸 자기를 과거의 자기로 되돌리려 한다.

더이상 새로움을 추구하지 못할 때 주저앉고 만다.

그게 중년이다.

인생 3라운드다.

중년이란 말보다 3라운드란 말을 쓰겠다고 한다.

왜?

3라운드 하면 다음 라운드가 시작되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3라운드에 무엇으로 힘을 얻을까.

시다.

나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해주는 대상.

시.

시는 거리에서 나온다.

나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을 때 시가 나온다.

시를 읽는다.

나를 떨어뜨려 두고, 나를 보기 위해서.

이재무의 '신발'이란 시가 생각난다.

 

신발의 문수 바꾸지 않아도 되던 날부터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친구여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꿈이여

                                                                         - 이재무, '신발'  전문

 

이게 중년이다.

다시 이재무의 시다.

'마흔'이다.

 

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겪는 아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유혹은 많고 녹스는 몸 무겁구나

                                                                            -이재무, '마흔' 전문

 

이제는 몸이 무겁다.

새로움보다는 있는 것을 지키기도 버겁다.

자꾸 잃어간다.

더 많은 꿈을 잃어간다.

열정을 잃어간다.

하나하나 다 잃어가면서 하고자 하는 의지도 잃어간다.

잊어간다.

할 수 있음을.

해야 함을.

천상을 꿈꾸던 젊은시절을 거쳐 이제는 지상의 안녕을 지나 다른 피안을 세계를 꿈꾼다.

단지, 그것만이어서는 안되는데...

 

글쓴이는 이러한 중년을 인생 3라운드라고 하여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를 시에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시들이 책 속에 나온다.

우리나라 시인부터 외국의 시인까지.

역시 인간이란 국적을 불문하고 보편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여 인생 3라운드.

정신없음에서 정신있음으로,

자신을 잊음에서 자신을 찾음으로,

달리기에서 걷기로

인생의 행보를 바꾼다.

이를 시가 알려준다.

인생이란 이렇다고.

하여 생의 종착역에서야 깨달을 진리를 우리는 시를 통해 미리 깨닫게 된다.

삶이 더욱 풍요로와진다.

의미가 있어진다.

의미는 주어지지 않는다.

바로 찾아야만 한다.

그 찾음을 시가 도와준다.

인생 3라운드, 시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때,

시를 통해서 더욱 의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이다.

 

덧글

좀 아쉽다.

많은 시들이 인용되었는데, 전문이 아닌 경우가 꽤 있다. 책의 부록으로 전문을 수록해주었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는 특정한 시구로 감동을 주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그 시구로 감동받은 시의 전체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찾기가 힘든 경우가 많으니.

물론 인터넷으로 찾으면 쉬울 수 있으나, 시를 통해 삶의 여유를 찾는 사람이 기계문명의 속도에 의존하는 역설을 범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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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했다. 일명 일제고사. 전국의 학생들을 똑같은 문제로 똑같은 시간에 풀도록한다고 하여 일제고사라고 하고, 이 시험이 과연 교육적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많은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교과부는 요지부동, 또다시 강행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 시험의 결과를 가지고 학교를 평가하기도 한다니... 이런 몰상식한 행위를 교과부에서 하니, 이 나라 교육이 파행으로 흐르는 일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 농어촌에 있는 작은 학교들을 또 통폐합한다고 하니... 슈마허의 말을 빌리지 않더러도 '작은 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교육은 대규모로 대량생산하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교육을 책임진다는 교과부의 관료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체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정책들로 학생들의 심신을 피곤하게 하더니, 자살이 많이 이루어진다고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또 일제히 정서행동발달검사란 것을 해서, 위험군, 주의군, 관심군 등등으로 학생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정서행동이 이런 교육현실에서 정상적일 수 있다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이미 교육에 대해서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청소년은 외계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질풍노도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게 해야 하나?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안되고,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들어갈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나?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으려면, 우선 청소년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이 더 잘 이루어지게 하는데 뇌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뇌에 대한 지식을 교육과 접목시켰을 때, 우리는 좀더 효율적인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효율적이란 말은 성적을 올린다거나, 학생들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학생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그에 따라 학생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함께 어울림은 배려와 공생의 토대가 될테니... 이러한 일들이 바로 교육의 목표 아니던가.

 

아직도 뇌에 대해서는 완전히 밝혀진 것이 없지만,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만 놓고 보아도 학생들, 또는 청소년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히려 교육학에서 이러한 뇌과학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아할 정도로, 뇌에 대한 이해는 교육에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런 단초를 이번 민들레 81호가 해주고 있다.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완전히 밝혀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그 때까지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문제의식에서 이번 호는 뇌와 교육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본다. 아마도 교육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을 읽는다면 일제고사와 같은 짓은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폭력이나 왕따에 대한 문제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을 잡을 수 있을텐데... 공부는 학생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에 관계된 어른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른인 우리들이 잊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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