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현장을 위한 회복적 학생생활교육 - 어떻게 학생들에게 책임감과 상호 존중을 가르칠 수 있을까? KAP 정의와 평화 실천 시리즈 1
로레인 수투츠만 암스투츠 & 쥬디 H. 뮬렛 지음, 이재영.정용진 옮김 / KAP(Korea Anabaptist Press)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또 한 명이 학생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공간을 찾지 못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아니 자신과 함께 할 단 한 사람을 찾지 못해 다른 세상으로 가 버렸다. 그를 그렇게 만든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닫지도 못했는데...

 

해마다 반복되는 학교폭력, 부적응 등등이 언론에 오르내리는데, 대책은 늘 그대로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해야 하나?

 

한 번은 강하게 폭력에 관한 일들은 생활기록부에 남겨 가해자를 사회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회복적 학생생활지도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방법이다. 이런 낙인찍고 배제하는 징계, 처벌의 방법은 사람을 근원에서부터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이러한 문제가 관계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는데, 그에 대해서 성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서 오히려 관계를 더욱 해치는 경우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일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주변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렇게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방식을 추구하고 있는 생활지도가 바로 '회복적 학생생활지도"이다.

 

그러므로 학교폭력으로 대변되는 학생들의 비행을 단순히 징계하고, 기록한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학생생활지도의 첫단계에서 멈춘 결과, 해마다 세상을 등지는 학생이, 학교를 뛰쳐나가는 학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문,예,체 활성화 방안이다. 특히 체육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강조를 넘어서 일주일에 4시간 이상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체육활동의 강화로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면 이들의 마음에 쌓여 있던 응어리들이 어느 정도 풀려 서로의 관계를 좋은 쪽으로 맺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추진하고 있다.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학습 시간을 줄이지 않은 상태에서 체육활동 시간이 더해졌으니, 아이들에게 이런 체육활동은 오히려 피곤을 가중시키는 일이 되기도 한다. 북유럽처럼 오전에는 주로 학과 공부를, 그리고 오후에는 지역과 연계하여 문,예,체 활동을 할 수 없는 지금의 여건에서, 그런 여건을 마련하려 하지 않고 학교에서 모두 다 하라고 하니, 좁아터진 운동장에서 한 학년의 학생들이 바글바글거리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또 체육활동이 싫은 아이는? 그런 아이에게는 이런 체육활동은 또 하나의 부담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활동이라 하여도 내가 싫으면 좋지 않은데, 개인의 성향,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실시하는 체육활동은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어렵다.

 

체육활동 강화가 원인을 없애는 처방이라면, 징계는 결과에 대한 처방으로서 존재하지만, 아직 효과를 보기는 힘들다. 

 

하여 체육활동에는 다른 학습시간을 줄임으로써 학생들의 공부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과 함께 해야 하고, 또한 학교 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지역과 연계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학교가 함께 하는 방향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것을 토대로 징계 위주의 생활지도는 폐기되어야 하며,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조정자'를 두어 서로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생활지도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효과적인 생활지도이다. '관계'가 회복된다면 그런 관계를 기반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은 사람,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남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에 성공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런 학생생활지도가 전반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지금 우리 학생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그리고 부모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당장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나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어떻게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즉, 큰틀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큰틀에 합의가 된다면 구체적인 생활지도는 각 학교 현실에 맞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회복적 학생생활지도'에 동의하다면, 합의가 된다면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위협한다는 그런 소리는 나오지도 않게 될 것이다.

 

'관계'를 지향하는 학생지도는 이미 '인권적'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깨동무 - 만화가 10인의 마침표 없는 인권 여행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정훈이 외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 창비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인권에 관한 만화로 세 번째이다.  "십시일반", "사이시옷"에 이어 나온.

그만큼 인권에 대한 분위기가 정착이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인권을 어렵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를 만화라는 매체로 표현을 하면 인권에 대해서 좀더 쉽게 접근을 할 수 있다.

 

사실 인권도 어려운 것이 아닌데... 우리 조상들이 했듯이, 아니면 늘 접하는 성인들의 말씀처럼,네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면 되는 일인데... 여기에 어려운 사상이니 철학이니 도덕이니 당위니 할 필요는 없는데...

 

그냥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남은 또다른 나라고 생각하며, 다르다고 무시하지 않고, 없다고 외면하지 않는, 강한 사람보다는 약한 사람에게 더 마음을 주는 인간이 지닌 본연의 '측은지심'을 지닌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인권적 삶(?-이런 말이 있다면)이다.

 

그것이 바로 함께 가는 일, 어깨동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어깨동무"다. 함께 어울려 가야한다는...어깨동무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서로의 어깨가 잘 맞지 않으면 어깨동무는 고통이 되고 만다.

 

어깨동무를 한다는 얘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맞춘다는 얘기다. 그래서 제목 자체에도 이미 인권이 작동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사회에서 겪게되는 노동과 관련된 일들과 학생들이 겪게 되는 일, 그리고 인권의 역사에 대해서 만화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재벌로 대표되는 회사들이 얼마나 비인권적이고 반인권적인 노동환경을 제공했는가를 저승체험을 통해 보여주는 만화부터(이 만화를 보면 옛날에 전해져 내려온 당태종이 저승에 갔다온 이야기가 생각난다. 당태종도 저승에 갔다온 다음부터 더 훌륭한 왕이 되었다는... 우리나라 최고경영자들도 이런 체험을 하면 좋겠다. 비록 꿈 속에서라도), 노동자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샌드백 취급을 받는 만화, 이런 일에는 우리들의 무관심도 한몫 하고 있다는 자각, 세대간, 즉 할머니 세대와 손자 세대가 겪는 노동 현실, 그리고 어렸을 때 피해를 당한 사람을 대하는 우리들이 태도, 또 홀로 남겨진 독거노인에 대한 문제들이 만화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고, 무심하게 넘기곤 하던 일들이 뼈아프게 표현되어 있다. 반성하게 한다.

 

여기에 교육현실은 그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니.. 말 할 것도 없고. 마음이 아픈데.. 분명 출구는 있는데, 우리가 애써 그 출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인권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만화로 인권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인권은 정말 이기적일 때, 진정으로 이기적일 때 작동할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이롭기 위해서는 남에게도 이로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기적인 인간이 곧 이타적인 인간일 때 그 때 인권은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하게 되리라.

 

만화. 요즘은 무시당하고 외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적인 장르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장르를 이용해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도록 하는 일,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만엔 비즈니스,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 - 철학하는 발명가 후지무라 박사가 제안하는 신개념 비즈니스 액션플랜
후지무라 야스유키 지음, 김유익 옮김 / 북센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일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감에 차이가 난다.

 

일개미라고 불리던 일본 사람들, 지금 그들은 지쳐나가떨어져 있다. 더이상 그러한 일개미들아 필요한 세상이 아니다. 그런 피로감을 지닌 일본 사람들에게 3만엔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그런 일을 하면서 나도 즐겁고, 상대도 즐겁고, 세상도 좋아지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리고 또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한 달에 이틀 일하고 3만엔... 물론 3만엔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아무리 자급자족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한에서는 적정한 수준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3만엔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3만엔만으로 살아가라고 하지 않는다. 3만엔짜리 일을 몇 개 더 하면 된다고 한다. 9만엔 정도만 나름대로 일본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3만엔짜리 일을 세 개 하면 된다. 그러면 한 달에 6일 일을 하는 셈이다. 한 달에 6일 일하고 나머지 날들은 자급자족하는 일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면 행복감은 더욱 높아지리라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는 않고, 돈이 없다고 불행하지만은 않으니... 행복을 어떻게 찾을까를 고민한다면 이 책은 유용하리라 싶다.

 

물론 일본에서 적용한 방법들이라서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 일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랴. 이 책의 주장은 이 책대로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방법론을 그 나라, 그 마을, 또 개인에 맞게 변용시켜 하라는 얘기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의도하는 바다.

 

물론 착한 일이다. 조건은 단 하나. 그것.

 

그 일이 내 행복도 늘리고, 다른 사람도 더불어 행복해지고, 또한 자연도 좋은 그런 일이어야 한다는. 그것이 착한 일이라는.

 

남을 배제하는 경쟁이 일이 아니라, 남과 함께 하는 협력의 일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3만엔은 3만엔으로 그치지 않고 더욱 많이 분화가 될 수 있다. 아니, 분화가 되지 않으면 3만엔 비즈니스가 아니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얻으려고 하지 말자.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삶을 살아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법론, 삶의 철학을 지녀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삶의 철학이 선 다음에 우리나라에서 내가 사는 마을에서 내가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며, 자연도 행복해지는 일이 무엇일까, 또 지나치게 힘들이지 않고, 지나치게 시간을 쓰지 않고, 지나치게 어렵지도 않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사실. 돈의 노예가 아니라, 내 삶의 주인으로 내가 당당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이 책은 하게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녹색평론 통권 129호 - 2013년 3월-4월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녹색평론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우리가 타이타닉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

 

가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앞을 보여주고 내 자신의 생각이 짧음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 늘 한곳에 머무르지 않게 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 그래서 썩지 않기 위해서도 이 책을 읽는다. 두 달에 한 번 무언가 내 사고에 정체되어 있는 점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도.

 

이번에는 "힐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한 해 동안 엄청나게 "힐링" 열풍 속에 살았다. 어디를 보아도 힐링, 힐링이었다. 치유다. 치유라는 얘기는 병들어 있다는 얘기다.

 

유마거사는 세상이 병들어서 자신도 병들었다고 했는데, 이 힐링에서는 소위 "멘토"들은 병들지 않고 치료법을 알고 있는데, 다수의 사람들이 병들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함께 앓지 않는다. 아니 앓을 필요가 없다고 얘기한다.

 

그런 힐링 열풍이 휩쓸고 지나갔고, 또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다. 그런데, 그 때 힐링이 되었을지라도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졌는가 하고 되묻는다면 답은 아니다다. 그 때는 치유됐다고 생각했는데, 치유된 것이 아니라 잠시 진정이 된 것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진정한 치유는 뿌리부터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작 바뀔 것은 바뀌지 않았는데, 내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서 해결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힐링에서 내 생각을 바꾸면, 내 태도를 바꾸면 된다는 처방을 받지 않았던가. 그렇게 문제제기를 한다.

 

뿌리부터 바꾸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위안이 아니라, 내 자신의 변화,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함께 하는 모습을 지니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즉, 내 탓이요, 내 탓이요도 좋지만, 내 마음을 힐링하는 것도 좋지만, 뿌리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늘 힐링이 필요하리라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다. 이번 호에서.

 

이와 더불어 이번 호에서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도시 농업"이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도시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런 도시농업은 자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다는, 즉 성장과는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경제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앞으로 도시 농업이 어쩌면 우리의 살 길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폭발적으로 도시 농업, 간단하게 말해서 텃밭 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그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도시농업협동조합도 생기고 있다고 하니, 삭막한 우리나라 도시가 농업과 함께 하는 도시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환경, 생태에 대해서는 글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생태적인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고, 최근 몇 년 동안은 꾸준히 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여기에 원자력 발전으로 인해 우리나라 한 마을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고 있는지도 보여주고 있으니, 원자력은 단지 환경만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이웃을 앗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깨닫게 해주고 있다.

 

결국 "녹색평론"은 언제나 정체되어 있던 사고를 새롭게 자극하고 있다. 어떤 방식의 삶이 바람직한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잘(그야말로 돈을 떠나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해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이던가? 아니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라면 그 사회성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회 속에서 제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웃을 좀더 확장하면 다른 마을 사람들, 다른 나라 사람들, 다른 대륙 사람들이 된다. 그들을 사랑하라. 그것이 인류가 살아남을 길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에는 그래서 인류의 생존이 달려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이 말이 당연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증오의 세기"라고도 하고 "극단의 세기"라고도 하는 그런 세기를 우리는 거쳐오지 않았던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증오와 공포와 탄압과 전쟁이 있었던가?

 

그런 파국을 맞지 말자고 유엔이라는 국제기구까지 설립했지만, 인류의 평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여기에 한 나라로 지내다 각 민족들로 분열되어 온갖 갈등을 겪는 나라가 있다. 옛날 유고슬라비아.

 

한 때 이웃으로서 얼굴을 맞대고 미소를 짓던 그들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던 나날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에는 온갖 학살들이, 온갖 증오들이 나온다. 바로 이웃들에게서.

 

어쩌면 이런 증오는 이웃이기에 더 잘 드러나는지도 모르지만, 이웃이기에 사랑으로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이 책의 도처에서 나온다. 그리고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도 그렇게 살래?"

 

아니,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건 과거에 그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회적인 일일 뿐이라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심상치 않다. 언론에서는 연일 전쟁 위험을 언급하고 있다. 전면전이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북한에서는 매일 전쟁을 언급하고 있다고...

 

이게 무언가? 남북 정상이 만나 합의를 하기도 했고, 그 무엇보다도 우린 엄청난 비극을 겪었는데, 그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다른 민족도 아니고 같은 민족인데, 같은 언어를 쓰고, 갈라져 있는 기간보다는 함께 했던 기간이 더 많았던 민족인데, 왜 서로를 돕지 못하고 서로 잡아먹으려 으르렁거리는지...

 

그걸 현명하게 해결할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니, 지도자가 나서지 않으면 국민이 지도자로 하여금 움직이게 해야 한다.

 

우린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우린 이런 극한으로 치닫는 갈등상황을 원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라고. 평화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그러한 평화를 바탕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