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혁신의 패러독스 : 교민에서 회인으로
서근원 지음 / 강현출판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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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혁신학교가 있고, 혁신 학교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와있고, 또한 더불어서 교육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많은 문제점들이 있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 방법이 있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들지만, 수많은 문제들이 계속 쌓여가고만 있는 현실도 무시할 수는 없다.

 

문제를 제기한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해결 의지를 동반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도, 무슨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우리 교육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깊은 문제의 수렁 속으로 들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알렉산더와 같은 사람이 나와 단칼에 끊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학교 개혁, 교육 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시도도 많았으며, 최근에는 혁신학교라고 해서 많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과연 우리는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오히려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지 않은가. 이런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 속에서 나름대로 해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두 단어로 문제와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문제는 교민(敎民)이고, 해결점은 회인(誨人)이다.

 

교민은 철저하게 정답은 이미 존재한다는 관점에 서 있다. 있는 정답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그렇기에 수량화할 수밖에 없고, 개체화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교사는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들보다는 우월한 입장에서 무언가를 전달해줘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러한 교민의 자세로 교민의 문화에서는 어떠한 혁신 교육도 성공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교민의 교육방법이나 제도, 문화는 위로부터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자율하고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타율에 불과하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교민의 혁신은 외국의 사례나 다른 학교의 사례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도 한다. 자기가 있는 학교의 현실을 분석하고, 그 현실 속에서 혁신을 이루려는 모습보다는 성공한 외국사례라든가, 아니면 이웃학교의 사례를 자기가 속한 학교에 적용하려고 하니, 이것이 학교 혁신을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 학교 혁신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한다.

 

반대로 회인의 방법은 아래로부터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좀더 생각해보면 이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방법이 아니라, 수단 역시 목적을 정당화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결과만을 추구한다기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교육 방법이 회인의 방법이다.

 

여기다 회인은 학생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다른 선진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기가 속한 학교의 학생을 중심에 둔다는 얘기는 자신이 속한 학교의 현실을 파악하고, 학생들의 실태를 파악하며, 어떻게 하면 학생들과 함께 할까를 고민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회인의 방법에서는 교육은 이미 존재하는 무엇을 가르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정답을 만들어가는 교육이라는 방법이다. 즉 학생의 깨달음을 중심에 놓고 있는 교육방법이 회인의 방법이고, 이러한 방법으로 교육을 했을 때 혁신학교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회인은 획일적이고 수량화, 개체화된 모습을 떠나 다양하고 자율적이고 자기 깨달음을 토대로, 또한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함께 변해가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물론 이 과정은 어렵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교사가 지금까지 자신을 형성해왔던 관점들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입견, 관점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학생을 보기, 그리고 자신을 지금까지 옭죄고 있었던 교민의 방법을 회인의 방법으로 바꿔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렵다고 포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에서 말하듯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우선 시작해야 한다. 시작하고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회인, 깨달음. 교사가 중심이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는 학교. 그러한 교육, 그러한 배움. 우리가 실천해야 할 교육이지 않은가.

 

이런 과정과 더불어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문제는, 교사 개개인이 변하고, 또 함께 변하기도 해야하지만, 제도적인 문화적인 변화도 역시 수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회인의 방법으로 교육을 하고자 하는 교사는 제도와 문화를 회인의 교육으로 바꾸는 일까지도 해야 하는, 아주 힘든 그런 과정을 밟아가야 한다.

 

이것이 교사의 숙명이다. 교사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보며 나아가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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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정치 혐오감이 있다. 도대체 그 정당이 그 정당이라는 생각.

정당이 과연 국민의 뜻을 반영해주고 있을까라는 생각.

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한다지만 이들은 정말로 집권만 목표로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소수자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되고, 또한 다수의 의견도 지금 현 정당에서는 배제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오직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을 위한 정치인의 정당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런 정당제도는 개선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개선을 할 것인가.

물론 정당제도의 개선이 민주주의를 이루는 최종적인 길은 아니지만, 지금 이대로의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 암울한 현실만을 낳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이번 호에서는 정당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권과 정치인데.. 인권을 살릴 수 있는 정당정치는 소수자의 의견이 반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정당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

국회의원 1인의 비율로 비례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것.

지역구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우리도 느끼지만 국회의원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보고 의견을 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역 현안을 챙기는 지역구 의원은 광역의원이면 충분하다. 지자체장이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속한 지역의 이익을 위해 일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이니.

 

이래서 국회의원은 거의 비례대표로 뽑아야 한다. 비례대표로 뽑되,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 그런 얘기를 이번 호에서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아니 깎을 생각이 전혀 없으니, 우리가 정당법을 바꾸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지금의 제도로는 민주주의의 길은 요원하니 말이다.

 

여기에 현 인권위원장 문제. 아마 곧 인권위원장 청문회가 개최될텐데.. 모르쇠로 버티는 사람이 어떻게 인권위원장 자리에 있는지.. 원.

 

여전히 이 책은 불편하다. 아직도 우리는 인권에서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불편함을 인식하는 일은 즐겁다. 불편함을 인식해야 고치려는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모르고 지난다면 얼마나 인권에 취약해지겠는가 말이다.

 

읽을거리, 생각할거리가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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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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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흔히 사실을 보여준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산다. 하지만 손택의 글을 읽어보면 사진이 진실만을 보여주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후 맥락을 제거한 다음에 제시되는 사진에서 우리는 어떠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

 

마치 맥락을 무시한 채 한 사람의 발언을 제시하고, 그 발언을 문제삼는 일부 언론들의 모습과 맥락을 제거한 뒤 사진을 제시하는 사람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도 거짓말을 한다는 브레히트의 말처럼, 사진도 진실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손택은 우리 눈에 보이는 사진에 대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단지 보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숨어있는 의미를 읽어낼 능력을 키우는 것이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요소 아니던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진의 선동에 넘어가는 무지한 군중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사진이 지니고 있는 의미에 대해 고찰한 글들이고, 이러한 글들을 통해 사진이 현대에서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파악하게 만드는 글들이다.

 

최근의 여러 일들과 겹쳐 이 글들이 머리 속에서 많은 사진 영상들을 불러내고 있었다. 읽는 내내.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는 87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열사를 부축하고 있는 사진.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일조를 한 그 사진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고, 그 다음에는 브레히트의 사진 시집, 또 이승하의 사진 시집이 떠올랐고, 여기에 리얼리즘 사진(이런 말이 있나? 사진은 본질적으로 리얼리즘인데...) 아니 다큐멘터리 사진(그냥 기록 사진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단 생각이 든다)이 떠올랐다. 매향리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피폐해져 가는 4대강의 모습을 찍은 사진, 그리고...

 

이런 사진들은 우리에게 이 현실을 기억하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바꾸게 우리를 이끄는 역할도 한다. 이 때 사진은 바로 현실적인 힘으로 전환된다.

 

누구나 찍기 쉬워진 요즘 시대. 어쩌면 우리는 사진보다는 영상으로 우리의 삶을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진은 움직임 중에서 어떤 한 부분을 정지시킨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더 큰 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직도 사진은 우리에게 유효하다. 이 점이 아직도 계간지나 격월간지에 사진이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손택의 글을 읽으며 우리 삶에 대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함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이를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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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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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에 찍히는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도덕적 한계와 사회적 금기를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여권이다. 그 사람의 삶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방문하는 것, 바로 그것이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핵심이다.-75쪽

사실 어떤 대상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 대상을 변하게 만든다는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사소한 변화일지라도 위험, 가령 사진의 피사체를 협소라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 같은 위엄을 가져오는 법이다.-105쪽

사진은 과거를 부드럽게 바라봐야 할 대상으로 뒤바꿔 버린다. 지난 과거를 바라보는 행위 자체의 파토스를 일반화해, 도덕적 분별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역사적 판단을 흐리게 만듦으로써.-113쪽

삶에서는 모든 순간이 중요하거나, 빛을 발하거나, 영원히 고정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진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한다.-126쪽

사진은 단 한 순간에 우리로 하여금 예술품을 감정하는 사람처럼 세계와 관계를 맺게 만들면서도 이 세계를 아무렇게나 받아들이게 만들기에 우리를 매혹하며 사로잡는다.-127쪽

사진의 역사는 두 가지 상이한 원칙 - 순수 예술에서 유래된 미화의 원칙과 진실을 말하라는 원칙이 벌인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133쪽

사진과 시는 둘 다 불연속성, 불분명한 형태, 상보적인 통일성을 띤다. 즉, 도도하고 자의적인 주관적 필요에 따라서 사물을 원래 맥락에서 떼어내기도, 전후 맥락에 상관없이 합쳐놓기도 하는 것이다.-146쪽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세상만물을 따로따로 떼어내 바라보는 행위, 즉 각기 다른 식으로 초점을 맞추고 시점을 정하는 카메라와 육안의 객관적 불일치로 강화된 주관적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148쪽

사진은 일종의 파편일 뿐이기에, 그 도덕적, 정서적 중요성은 자신이 어디에 삽입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즉, 사진은 어떤 맥락에서 보이는가에 따라 변한다.-158쪽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객관적 세계를 무한히 전유할 수 있게 해주는 기법이자 단 하나뿐인 자아의 유아론적일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사진이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묘사한다면, 카메라는 그 현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드러난 현실은 개인의 기질을 보여준다. 현실의 어느 면을 잘라냈는지에 따라 기질이 드러나는 것이다.-180쪽

교훈적인 사진은 우리가 관찰력을 갖도록 해주고, 우리의 관찰력을 높여주기도 하며, "우리의 시선을 심리적으로 변화"시켜 준다.
... 이상적인 관찰자로서의 사진작가라는 관점은 사진을 찍는 행위가 왠지 모르게 공격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매력적이다.-181쪽

사진은 개성있는 예술가의 의식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아니라 이 세상을 보여주는 이미지로서 힘을 갖는다.-194쪽

회화와 사진이 공유하는 평가 기준 중의 하나는 혁신성이다. 회화와 사진은 시각 언어에 새로운 형식이나 변화를 제시했을 때 높이 평가받는다. 회화와 사진이 공유하는 또 다른 평가 기준은 일종의 영기(靈氣)이다. -212쪽

이와 같은 이미지는 현실의 자리를 강탈할 수 있다. 사진은 (회화가 이미지이듯이) 이미지일 뿐 아니라 현실의 해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220쪽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루기 힘들고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 여겨지는 현실을 꽁꽁 가둬두는 방법이자, 꼼짝 않고 그대로 제자리에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233쪽

사진은 회상을 불러일으킨다기보다는 회상을 창조하거나 대체한다.
사진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이 아니라 이미지에 즉각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235쪽

사진은 거짓된 소유이다.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거짓으로 소유하게 만드는 것이 사진인 것이다.-238쪽

사진은 단순히 현실을 재생산해낼 뿐만 아니라 현실을 재활용하기도 한다. 재활용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절차이다. 사진 이미지의 형태에서는 사물이나 사건들이 아름다움과 추함, 진리와 오류, 유용한 것과 무용한 것, 훌륭한 취향과 그렇지 못한 취향 사이의 구분을 뛰어넘어 새로운 유용성과 새로운 의미를 제공한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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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팩토리
안지훈 지음 / 학고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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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헌 책방이 곳곳에 있었다.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던 헌 책들에선 읽은 사람의 모습이 느껴지곤 했다. 옆에다 글을 써 놓은 사람, 좋다고 생각하던 구절에 밑줄을 그어놓던 사람. 그 책을 구입한 날짜와 장소를 기록해 놓은 사람, 다 읽은 다음 느낌을 맨 뒤 백지에 써 놓은 사람, 자신의 이름을 도장으로 만들어 찍어 놓은 사람 등등.

 

좀 낡은 느낌도 나고 이미 남의 손이 갔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헌 책들에서는 나랑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있었구나, 이 사람은 이 책에서 이런 점을 느꼈구나, 이 사람은 책을 이런 식으로 읽는구나 하면서 다른 사람의 향취를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은 대다수의 작은 서점들이 문을 닫았고, 동네에서 흔히 찾을 수 있었던 헌 책방도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지금은 큰 맘 먹고 헌 책방 나들이를 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의 한 부분이던 물건들이 어느새, 시나브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을 신봉이나 하듯이 옛것들은 버려야 할 것, 필요없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많이 버려지고 말았다.

 

아니, 급변하는 이 정보화시대, 세계화시대에 무슨 옛것이냐고, 자고나면 새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판에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옛것들은 쓸모없음을 지나 현재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라는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눈만 뜨면 새로움이 펼쳐지는 이 빠름의 세상.

 

하지만 이럴 때 과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꼭 앞으로만 뛰어야 하냐고, 뒤로 뛸 수도 있다고, 오히려 뒤를 볼 때 더 다채로운 삶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빈티지에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서 미친은 돌았다는 뜻이 아니라, 매니아, 즉 열중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골동품들도 많은데, 이 책을 쓴 사람은 외국에서 생활한 경우가 많기에 우리나라에서 구한 것들보다는 외국에서 구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물건들을 구입할 때 얽힌 사연과 그 물건에 담긴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다. 그래서 '옛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옛것에서 사람의 냄새를 맡으며, 사람의 생활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러한 옛것들로 인해 지금의 삶이 얼마나 윤택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꼭 빈티지 수집가가 되어야지 하면서 읽을 필요도 없고, 그냥 오래된 물건에 담긴 이야기들을 글쓴이가 안내해준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좋다. 그러면 자연스레 오래된 것, 낡은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을 나를 만들어준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임을 깨닫게 된다.

 

유한한 지구, 우리는 유한한 지구를 무한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좀더 크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도 한다. 빈티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단지 고상한 취미, 돈이 많이 드는 취미생활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새것들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정말 내 곁에 있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준다.

 

꼭 골동품 가게를, 오래된 것들이 많이 나오는 벼룩시장을, 예전 우리나라로 치면 청계천 황학시장(요즘은 풍물시장이던가, 다른 곳으로 이전했는데...)을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 주변에도 오래된 것이 널려 있으므로.

 

물품에 대한 이야기지만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된다. 무겁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 가벼움 속에는 우리의 삶이 녹아 있어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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