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시대가 온다고 한 지 몇 년이 지나, 우리는 정말로 유비쿼터스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직장에서도 집 안을 훤히 볼 수 있으며, 집 안에 있는 전자기기들을 직장에서도 조종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하고 통제가 가능한 시대. 이런 유비쿼터스 시대가 되었고, 광고들도 이러한 유비쿼터스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방송국과 은행의 컴퓨터가 마비되는 일이 있었다. 주요 방속국의 컴퓨터가 갑자기 정지하고, 부팅이 되지 않는 일과 은행 컴퓨터가 마비된 일.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몇 시간동안 대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해커에 의한, 해킹에 의한 마비라고 하는데, 해커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고, 그래서 북한의 소행이다, 아니 다른 해커의 소행이다 논의만 분분한 상황.

 

세계에서 가장(?) 전산망이 잘 만들어져 있는 나라. 국민들 대다수가 초고속인터넷망을 가지고 인터넷을 하는 나라. 하다못해 휴대전화(핸트폰)로도 인터넷을 하는 나라. 이 나라에서는 컴퓨터라는 편리한 기계가 우리들의 생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은행도, 기업체도, 관공서도, 방송국도, 학교도 모두 컴퓨터가 없으면 마비가 되고 만다. 이쯤되면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컴퓨터로 제어되는 온갖 장치들이 많은 나라에서 이번처럼 해킹으로 인한 컴퓨터 정지가 대규모로 일어난다면, 더욱 주요한 기관의 컴퓨터가 고장난다면? 혹 교육기관의 컴퓨터가 먹통이 되고, 서버의 자료가 날라간다면... 이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끔직한 재난이 될 것이다.

 

정말 북한의 소행이라면? 이제는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한 나라를 마비시키는데는 컴퓨터 해킹 프로그램이면 끝이라는 얘기가 되고.. 이것은 우리나라 안보에도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해킹을 방지할 방법만 찾지 궁극적인 해결책은 찾지 않는다. 물론 지금 모든 컴퓨터를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은 갑자기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컴퓨터에 의존하는 삶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해킹 방지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경찰 열 명이 도둑 한 명을 못 막는다"는 속담처럼, 해킹 방지 프로그램이 발전할수록 해킹 기술도 발전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사건이 터진 다음에 치료는 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방어는 할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컴퓨터로 인해 유비쿼터스 시대가 되어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나 접속하여 움직일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인 환상이, 반대로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나 파괴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 세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이 깨우쳐주고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계속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웬델 베리처럼 컴퓨터 없는 세상을 꿈꿀 것인가?

(웬델 베리,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

 

이 극과 극의 삶의 방식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삶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가? 어떤 삶이 우리의 삶을 더욱 안전하게 하는가?

 

어떤 삶이 우리의 삶을 사람다운 삶으로 만드는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이번 해킹 사건을 계기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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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생각 - 인권으로 희망 찾기
김녕 지음 / 선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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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공기다. 우리가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조금만 혼탁해져도 금방 우리 몸에 신호를 보내는 공기처럼, 인권은 평소에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어떤 반(反)인권적인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는.

 

인권은 공기다. 혼탁한 공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 공기가 더러운지, 얼마나 우리 몸에 해로운지 알지 못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전에는. 인권도 마찬가지다. 인권침해가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인권침해인 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냥 그러려니...

 

그러다가 그것이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어떤 계기를 통해서 알게 되면 그 상황을 고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한 번 맛본 자유는 다시 잃을 수 없듯이, 그래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았던 민족은 어떤 침략에도 끝까지 버틸 수 있듯이, 인권의 맛을 본 사람들은 조그마한 인권침해에도 참지 못한다. 그 상황을 고쳐내려고 한다. 그리고 고칠 때까지 행동한다.

 

이 책은 인권에 관해서 여러 공간에 발표했던 글들을 묶은 책이다. 제목도 소박하다.

 

"인권생각"

 

인권에 대해서 학술적인 책을 쓰지도 않고, 또 어렵게 인권의 역사니, 인권의 개념이니, 인권의 철학이니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몇 년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인권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 왜 인권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그 때 그 때 상황에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이미 끝난 문제도 있지만, 아직도 진행 중인 문제도 있다.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전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놓았기에 이미 시기를 벗어난 글들도 있다. 해결되었거나, 또는 묻혀버렸거나.

 

그래도 이런 글들은 의미가 있다. 그 때 그런 상황에서 그 일을 이렇게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타산지석이라고 과거의 일에서 현재를 볼 수 있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인권감수성을 연마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라는 노래의 가사를 언급하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중략)

아아 영원히 변치않을 / 우리들의 사랑으로 /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그냥 감상적으로 들었던 이 노래에서도 인권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 이 가사가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이런 가사가 인권이었구나 하게 해주고 있으니...

 

아직은 무딘 인권감수성을 더욱 계발하고 다듬어야 함을 알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하여 이 책을 쓴 이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아도 주인공보다도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가령 전쟁터에서 말타고 달리면서 병사들을 재촉하는 장군을 보지 않고, 무기를 들고 발로 뛰어 말을 쫓아가야 하는 병사들의 처지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볼 수도 있게 되었다는... 그것이 바로 인권감수성이라는.

 

인권은 공기다. 어떤 사람은 공기의 상태를 먼저 알아챈다. 민감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경고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인권도 마찬가지다. 인권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인권이 살고,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희망을 찾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에 나온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라는 노래 가사도 좋았지만, 정호승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가 떠올랐다.

 

바로 우리가 이 슬픔에게 가는 길, 그래서 슬픔과 함께 할 때 인권이 희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열림원,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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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그랬어요 - 열일곱을 위한 청춘 상담, 2011년 문광부 우수문학도서
문경보 지음 / 샨티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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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을 위한 청춘상담'이란다. 열일곱이란 나이는 고등학생 나이다. 그리고 글쓴이는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이자 상담교사로 근무했었다. 그 때 그가 만난 아이들과의 이야기이다.

 

읽으면서 때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 아이들, 왜 이리도 외롭고, 힘들고, 괴롭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이런 아이들에게 우리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는 않았을까? 객관적이라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또는 그 아이들 자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었을텐데...

 

왜 그게 그렇게도 힘들었을까? 왜 그렇게도 힘들까?

 

알고 보면 하나하나 다 소중한 사람들, 다 자기 나름대로 제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다 삶의 의미가 있는데, 가끔은 그런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 점을 이 책은 일깨워주고 있다. 그냥 무심히 넘어갔던 일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주고 있으니.

 

아이들의 반항이, 거짓말이, 무기력이 정말로 그들이 외로워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그들의 외로움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교육이 망가졌다고 해도 이런 선생님들이 있는 한 교육은 절대로 망가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이렇게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이해해주는, 공감해주는 선생님이 있는 한.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정말로 그 아이가 되어서 그 아이의 마음을 다독거려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사도 많이 상처받았으리라. 그러나 그 상처를 피하지 않고 상처를 통해 오히려 아이의 상처를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갔으리라. 이것은 직전에 읽은 "상처입은 치유자"와도 통한다.

 

자신의 상처를 볼 수 있는 교사가 바로 학생들의 상처를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참 훈훈하다. 상처들을 감추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를 드러내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기에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리라.

 

하여 이 책을 읽으며 머리 속에서는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가, 아니 그 시의 한 구절이 맴돌았다.

 

'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래, 아이들은, 아니 우리들 모두는 이렇듯 흔들리면서 살아왔고,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들만의 꽃을 피우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미 열매를 맺은 어른들은 왜 이 흔들림을 못 견뎌할까? 자신도 거쳐왔으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

 

이 책의 교사는 이를 안다. 이런 흔들림을 알기에, 그 흔들림이 오히려 꽃으로 피어남을 알기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닌 어깨를 걸고 함께 가고 있다. 당장의 답은 제시할 필요가 없다.

 

답은 바로 아이들이 흔들리며 찾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런 모습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다. 아이들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 교사가 된 글쓴이도 흔들리고 있으며, 그 흔들림들이 서로 공명하여 하나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이.

 

이 책에서 이루어진 만남이 다른 곳에서도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표현하지않아도, 또 겉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 속에서는 하나의꽃이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그런 만남이.

 

이 책을 통해서 어느새 잊고 있었던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아직도 따뜻하다. 이 책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나 역시 그런 따뜻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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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치유자
헨리 나우웬 지음, 최원준 옮김 / 두란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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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많은 시대다. 그런 상처를 그냥 놔두면 곪아서 터지게 된다.

 

이런 상처 많은 시대,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상처를 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의 상처를 바로보지 않고서는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를 바로보고, 그 상처를 인정하고, 껴안고, 상처로 인해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인식한다면 좀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상처입은 치유자"

 

이 책은 사역자라는 말을 많이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인들이 읽을 책이라는 얘기다.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겠다.

 

단지 사역자만 그럴까?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상처 많이 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했는데...

 

사역자라고 말하는 목회자들도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지만,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교사들 아니던가.

 

종교를 떠나서 인간을 만나고,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교사는 목회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사가 자주 접하는 아이들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기 일쑤고..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들은 자신들의 상처로 다른 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사는 상처로부터 도피하면 안된다. 상처를 회피해서도 안된다. 오직 자신의 상처를 바로보고, 그 상처를 통해서 더 나은 자기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면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볼 수 있다. 그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 

 

난 이 책을 그렇게 읽었다.

 

짧은 책이지만, 또 교회의 목소리가 너무도 많이 들리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면,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상처를 치유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함은 명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이 상처 많은 시대. 상처 입지 않은 사람에게서 힐링을 구할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에게서 치유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바이고, 또 이 책은 적어도 남을 치유하겠다는 사람은 상처를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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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이 4대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근절하겠다고 한다. 앞의 세 가지는 폭력이 들어가니 당연히 근절되어야 하고, 불량식품은 우리들의 건강을 해치니 역시 근절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량식품하니, 웬지 어릴 적 생각이 난다.

 

학교에서 늘 학교앞 가게에서 과자류들을 사먹지 말라고 했었다. 불량식품이라고. 그럼에도 우리들은 싼 값에, 또 먹을 것이 귀했던 탓에 그것들을 사먹곤 했었는데, 가끔 단속에도 걸리고 했었다.

 

불량식품이라고 하는 것이 그 때 그 수준의 과자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에 다른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에 늘 관리를 해야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런 폭력, 폭력, 폭력과 함께 놓이려면 다른 폭력을 앞에 놓고 척결하겠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있는 자들의 없는 사람에 대한 폭력...(자본의 폭력, 공권력의 폭력 등등). 이걸 4대악에 포함시켜 척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앞의 세 폭력은 전부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 아니던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힘있는 자본들이 힘없는 중소자본을 잠식해서 그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현실을 고쳐야 하지 않나?

 

힘있는 자본가들이 돈 몇 푼에, 사실 그들이 이윤으로 가져가는 그 돈에 비하면 노동자들의 복지에, 또 정규직 전환에 드는 돈은 푼돈에 불과할 수도 있는데,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를 쉽게 결정하는 그러한 일을 방지하도록 해야 하지 않나.

 

비정규직 보호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상황.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밀리거나 해고당하고 있는 현실,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에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현실... 삶터를 잃고 쫓겨나갔는데, 그곳이 겨우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현실, 그러한 현실을 고치려고 해야 하지 않나.

 

지금 우리 사회는 정말 흉흉하다. 우선 북한의 위협이 뉴스에서 연일 나오고 있으며, 마치 70년대 텔레비전을 보는 듯하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또한 곳곳에서 폭발사고가, 가스 누출사고가 일어나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으며, 산불로 졸지에 집을 잃은 사람들... 몇 년 전 해고되어 아직도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그러한 문제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

 

이 문제들에 그냥 눈감을 것인가?

 

"삶창"에서는 눈을 감아선 안된다고, 늘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고, 이번 호 특집처럼, 이런 일들이 우리들의 눈에 밟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하나 고쳐가야 한다고, 그런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한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강유위'의 개혁이 왜 실패했는지를 보여주는 김경윤의 '동양철학의 이 한마디'라는 꼭지를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지난 번 정권을 심판하는데 이 강유위처럼 행동하지 않았는가. 강유위와 같은 사람에게 우리의 기대를 전부 넘기고, 우리의 행동을 전부 넘기고 우리는 뒤로 빠지지 않았는가 반성해야 한다.

 

반성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반성은 결코 뒤로 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앞으로 가기 위한 잠시 멈춤, 숨고르기, 그리고 나아갈 준비하기. 이것이 바로 반성이다.

 

삶창에서 그런 빛을 본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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