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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하나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려다 무산되고,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려다 무산된 일. 그 때 막은 사람들이 쌍용차와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을 놓아두고 어떻게 전태일을 방문할 수 있느냐는 논리.
1970년대에는 전태일이 있다면, 그 전태일이 전태일로 끝나지 않고, 수많은 전태일들이 나왔는데... 2000년대 말에 들어와서 쌍용차가 바로 그 전태일이 되었다.
40년이 넘었는데도 전태일이 원하는 세상은 아직도 멀었으니... 전태일 재단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겠는지.
국민통합의 우선은 소외된 사람들, 이미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 안을 때에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명망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국민통합과는 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2000년대의 전태일, 이미 22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먹튀자본들의 잘못으로 그 피해를 온전히 노동자들이 감내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해결하지 않고는 국민통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쌍용차 문제에 대해서 힘있는 사람의 답을 듣고 싶어한다. 그 답이 어떠냐에 따라 국민통합인지 아니면 소외된 사람들은 계속 소외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기에...
또다른 하나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고양원더스 야구단을 찾아간 소식. 여기에서 패자부활전이 필요하다고, 패자들도 다른 삶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한 소식.
패자부활전! 그렇다면 쌍용차 노동자들은 패자들이 아닌가. 이들에게 한 약속, 기업이 정상화되면 우선 채용한다는 그 약속만 지켜도 이들이 이렇게 좌절하고, 목숨까지 버리지는 않았을텐데...
단지 말뿐이 아니라 현실에서 가능한 패자부활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지금,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는 진짜 패자들, 이 땅에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경영자들의 잘못으로, 죽도록 일만하고도 일자리를 잃고 다른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배제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상에서 쉬운 것이 말하는 것이지만, 이 말을 실천으로 바꾸는 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려면 패자부활전이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진정 패자들이 누구인가? 지금 부활전이 필요한 패자들이 누구인가 찾아야 한다. 알아야 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패자들도 아니다. 그들은 패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패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다. 약속을 파기하고 처벌받지 않으니 패자가 아닌 사람들이 패자가 되어 버린다. 그 패자들은 어떠한 부활전도 가지지 못한다.
그냥 사회에서 누락된 사람으로, 잊혀진 사람으로, 아니 사회 위험인물로 낙인 찍힌다.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명확하고 그 경계를 넘지 않으려는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그들에게는 바로 한 걸음이 곧 죽음이 된다. 아니 죽음을 늘 안고 산다.
읽기 싫은 책이다. 너무도 슬퍼서, 너무도 화가 나서, 너무도 나 자신이 무력하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무력하다고 손을 놓고 있기에는 쌍용차 일은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지금은 이렇게 겨우 책 한 권 사서 읽어주고 있지만,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아마도 작가인 공지영 씨는 바로 여기서 가슴 아파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기에 이를 르포라는 형식으로 글을 써서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으리라. 출판 수익금 전액을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기부하겠다고 하면서...
전태일이 역사 책에서만 나왔으면 좋겠다. "그 땐 그랬지." 했으면 좋겠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으면서 이게 뭔 내용이야. 이게 현실적인 소설이야 하는 소리를 했으면 좋겠다.
그 많은 민주투사들이, 전태일의 친구들이, 전태일 정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이제 사회 지도층으로 올라서고 있는데, 왜 아직도 전태일은 현재형인가? 어째서 우리에게 과거는 과거로 머물지 않고 현재로 계속 남아 있는가?
읽으면서도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처럼 마음이 아프고, 더 읽고 싶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읽는다.
이게 현실이야.
이게 바로 지금 현실이고, 우리 아이들이 자랐을 때도 겪을 현실이야.
우리가 바꾸지 않는다면...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책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덧말
어처구니 없게도 이 책에서 부분적으로 교육의 중요성이 나온다. 노동자 교육이 아니라, 제도권 교육... 생존을 위해서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빨갱이로 모는 말을 하는 교사가 존재하는 제도권 학교 말이다. 이게 말이 되나?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을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이야기는 못해줄망정, 빨갱이라고 하는 교사 앞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노동 교육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학교에서만이라도 교사가 그런 소리, 파업하는 노동자 = 빨갱이라는 말을 할 수 없게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란 말인가?
그 교사는 자신의 말로 인해 아이들이, 노동자의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생각해 보았을까?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 부분, 참 마음이 아팠다. 아직도 그런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에.
교육이 변하지 않으면, 교사가 바뀌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계속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때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든다.
아무리 교사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해도 학교에서는 아직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교사니까 말이다.
의자놀이에 대해서는 설명을 안해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도 나와 있으니.. 그 잔인한 게임이 우리가 즐겨 하던 게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