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37
맹문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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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 사실 시 읽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 도대체 시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 땅에서 시인을 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에 시를 쓸테니...

 

서점에서 시집을 전시해놓은 장소가 점점 줄어들더니 요즘은 시집 찾기 힘들고, 따라서 새롭게 시를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조차 힘든 때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예전에는 시집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이 꽤 있었다. 지금까지도 시집을 편찬해내는 창비와 문지를 비롯해서 실천문학사, 민음사, 문학동네, 미래사 등등...

 

그럼에도 이런 출판사들의 시집들조차도 서점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힘드니, 다른 출판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또 이름없는 시인들의 시집이야 더할 나위 없이 전시되기 힘든 노릇이다.

 

예전에 사놓은 시집들을 가끔 들춰본다. 새롭게 읽을거리가 떨어졌거나, 아니면 머리가 무거워 무언가 안정을 취하고 싶을 때 이 시집, 저 시집을 뒤척거리는데...

 

그만큼 시집은 마음에 큰 위안을 준다. 그래서 늘 가까이에 두고 있으면 좋은, 또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시집이다.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를 보자.

 

물고기에게 배우다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맹문재, 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사, 2002년. 15쪽

 

아마도 시의 화자는 몸이 아프기보다는 마음이 아팠으리라. 그간 세파에 찌들리고,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아온 나날들 속에 마음은 지치고, 이런 상태에서 몸 역시 좋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그는 잠시 개울가로 쉬러 나온다. 의식적으로 쉬러 나왔든지, 아니면 우연히 개울에 머무리게 되었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의 화자가 잠시 쉴 틈을 얻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쉴 틈,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여유가 된다. 그 여유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쉼은 활동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개울 속... 물은 나를 비추는 거울 역할도 한다. 이 시에서는 단순한 물이 아니다. 물 속 세상이다. 물 속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물고기들이다. 그 물고기들이 나를 비춰주는 역할을 한다.

 

물고기들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다. 물 속엔 길도 없는데, 그들은 한 번의 부딪힘도 없이, 서로 갈등도 없이, 또 죽어라고 먹이만을 쫓지도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자기 길을 가되, 그 길을 남겨두고 그 길이 옳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름인지, 내 길만이 정당하다는 생각이 없다. 또한 그들 세상에선 정당한 길은 없다. 모든 길이 정당하다. 그리고 그 길은 간 다음에는 지워진다. 지워져야 한다. 지워지지 않고 남겨져 있으면 그 길은 자신의 길이 옳음을 주장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기에.

 

갑자기 내가 살아온 길이 생각난다.

 

'약한 자의 발자국'

 

약한 자들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또한 그 길만이 옳다고 주장한 적은 없었던가. 약한 자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 길 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았던가. 그래서 자꾸 슬픔만을 남겨 놓지 않았던가.

 

발자국은 길이고, 그 발자국을 따라가자고 했지만, 사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하나만의 길이 아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이 모두 길이다.

 

그래서 내가 갈 길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되고, 그 길은 나만의 길이고, 또 그 때의 길일 뿐이라는 사실.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길로 얽매여진 삶이 아닌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또한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광장이 나온다. 그것을 물고기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시다. 그래, 어쩌면 집착에 빠져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무엇만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도 들고.

 

요즘은 정답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정답이 정해져 있고, 그것이 어디 숨어있어서 그 숨어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예전에는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답이란 만들어가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 시는 마음에 쏙 들어온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비슷하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게 바로 시의 효용성이다. 시를 읽는 즐거움이기도 하고.

 

이런 마음을 가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하여

 

나의 시가

한 그루의 나무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네

 

플라스틱 스티로폼 시멘트말고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처럼 창창하게

살았으면 좋겠네

나의 시가 발표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은 살았을 한 그루의 나무가

베어질 것이네

 

그 나무만큼 나의 시가

사람들의 가슴에 들어찼으면 좋겠네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안경이 되고

신발이 되고

부엌칼이 되었으면 좋겠네

 

나의 시가

한 그루의 나무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네

 

맹문재, 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사, 2002년. 101-102쪽 

 

이런 시 말고도 마음에 와닿은 시가 참 많다. 특히 이 시집의 30쪽에 있는 '풀'이란 시는 김수영의 '풀'에서 나온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는 김수영의 풀이 자꾸 생각나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오기도 했으니...

 

더워진다. 시를 읽어보자. 아님 휴가지에서 시집 한 권. 얼마나 좋은가.

 

덧글

 

안타깝게도 이 시집은 품절이라고 나온다. 아마도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을 듯. 굳이 이 시집이 아니어도 좋다. 시들은 서로 서로 통하니, 적어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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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참 좋게 읽었던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시도 꽤 있었고... 무엇보다 시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서 더 좋았고.

 

제목이 "시간의 그물"이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에서는 이미 변해버린 고향, 즉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변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 따라서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들이 제법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릴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는데, 그 땐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나이가 되어가고, 세상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나 자신은 점점 더 작아지고... 꿈은 사라지고, 현실은 어두워지고, 갈 길은 먼데, 앞은 보이지 않는 듯하고...

 

시집을 넘기면 처음에 이런 시가 나온다.

 

신발

 

신발의 문수 바꾸지 앟아도 되던 날부터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친구여

하나 둘씩 내 곂을 떠나간 꿈이여

 

이재무, 시간의 그물, 문학동네. 1997년 초판. 11쪽

 

나이를 먹어감은 상실과 통하는 나이, 현실적이 되어갈수록 점점 자신의 꿈과는 멀어지는 나이. 어릴 적 자신을 잃어가는 나이. 그런 나이듦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신발의 문수.

 

신발의 문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던 날, 이는 어른이 된 날이고, 어른이 되었음은 현실적이 되었음이고, 현실적이 되었음은 삶에 자신이 얽매이게 되었음이고, 삶에 얽매이게 되었음은 친구들과 만나는 횟수를 줄이는 나이가 되었음을, 많은 꿈들을 접고, 오로지 생활을 위해서 전념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씁쓸하지만.. 그런 나이듦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육체적인 나이는 먹을수록 꿈을 잃어가겠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먹어도 먹어도 꿈을 잃은 나이는 아닐터...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 시대의 변함이 결코 좋은 쪽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 터이다.

 

하여 이런 나이듦에 대한 시가 한 편 더 있다.

 

마흔

 

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겪는 아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유혹은 많고 녹스는 몸 무겁구나

 

이재무, 시간의 그물, 문학동네, 1997년 초판. 99쪽

 

불혹의 나이. 그러나 몸이 무거워지고, 미혹되지 않음은 어쩌면 도전하지 않음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시가 하게 한다. 그래, 나이듦은 어쩌면 안주일지도, 그 안주를 통해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정신은 도전을 포기하는, 하여 실패로 인한 마음의 아픔은 회복 불가능할 수준까지 이르는 그런 나이.

 

그렇다고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일. 녹스는 몸, 무겁더라도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이듦에 대한 시 속에서 요즘 정치 상황과 맞물려 내 눈에 쏙 들어온 시가 있었으니..

 

                        도배공

 

이미 벽과 한몸이 되어버린 낡은 벽지

벗겨내는 일 여간 고되지 않다

보라, 안간힘으로 버티는 저 완강한

기성의 아집과 집착을

그는 그만 이쯤에서 오래된 고집과 타협하고 싶어진다

갑자기 그는 일을 서두른다

낡은 벽지는 더 많이 아주 오래 살아남는다

 

이재무, 시간의 그물, 문학동네, 1997년 초판. 78쪽

 

우리들이 바로 이 도배공과 같지 않았을까... 낡은 벽지를 싹 걷어내고, 아주 말끔하게, 완전히 걷어내고, 그 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그 다음에야 새 벽지를 발라야 하는데, 우리는 힘들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또다른 이유로 낡은 벽지를 완전히 걷어내지 않고, 그 위에 그냥 새 벽지를 덧붙이지 않았던가...

 

곰팡이가 슬어있는 벽지 위에 바른 새 벽지. 과연 새 벽지 역할을 할까. 지금까지 우리가 발랐던 벽지들은 이런 낡은 벽지 위에 발랐기에 이상하게도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고, 낡은 느낌을, 곧 곰팡이가 스는, 쾨쾨한 냄새를 풍기는 벽지로 변하게 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지 않았을까. 정치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우리들이 아닐까. 우리는 정말로 새 벽지를 바를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가. 그냥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대충 더러운 것들이 보이지 않게만 가리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새 벽지 안 쪽에 얼마나 많은 낡은 벽지들이 존재하고 있는가, 그 썩어버린 벽지들이 새 벽지까지 썩게 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뉴스를 보기가 싫어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꼴은 알아야지 하고 보다보면 낡은 벽지에서 스며나오는 그 더러움이 새 벽지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만들어버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눅눅해진다. 마음이... 그러면 안되는데... 이제는 정말로 깨끗이 긁어내고, 그 위에 새로운 벽지를 발라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이재무의 시집... 어쩌면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 쓴 시들이기도 하겠지만, 낡음을 제거하지 않고, 낡음 위에 덧붙여진 새로움이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보여주는 시들도 상당수 있으니... 세월은 우리 육체를 늙어가게 하겠지만, 반대로 우리의 정신은 더욱 젊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시집을 읽으며 그래야 한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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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만드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상상력
조윤경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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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도로 변해가는 시대.

 

보편성이라는 말보다는 개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대.

 

그래서 함께 한다기보다는 자신만의 무엇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지금. 과거와는 분명 다른 모습을 필요로 한다.

 

그것을 우리는 새로운 문화라고 하고, 또 그러한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새로운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과거와 단절을 해야 하지만, 또 그 단절이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단절이어서 그렇다.

 

그냥 허공에 붕 떠있는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에 받을 딛고 있는 그러나 눈을 하늘을 바라보는, 과거를 딛고 현재에서 미래를 실현하는 그러한 상상력.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상상력. 하여 그것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상상력이 되는 것이다. 물론 상상력은 늘 새롭다. 굳이 새롭다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지만, 새로운 문화를 강조하는 의미에서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이런 새로운 문화는 우선 혼종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문화를 창출해내고 있으며, 한 곳에 정착하는 정착민의 문화가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목민의 문화를 생성해내고, 다양한 매체들을 십분 활용하여 그 매체에 맞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그런 문화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나아가면 더 의미가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지구촌, 세계화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는 한 나라 안에서만 문화가 향유될 수 없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일이니, 이제 문화는 어느 한 곳에 머무는 문화가 아니라, 세계인들이 각자 따로따로 문화를 만들어내고 향유하고 있지만, 그것이 또한 다른 나라 사람들과도 함께 하는 문화가 되는 시대.

 

그래서 문화는 유목민의 문화가 되는 시대다. 싸이의 노래를 보라.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그 노래는 우리말로 불려졌지만, 세계인들이 함께 즐기는 노래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따로 또 같이'의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순수한 예술 장르에만 국한된 예술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술과 음악의 접합, 미술과 문학의 접합, 만화와 영화의 접합 등등 많은 장르들이 서로 넘나듦으로서 자신들의 예술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이러한 풍요로움에는 매체의 발달, 과학기술의 발달이 한 몫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려는 노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4부에서는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해온 사람들과 한 인터뷰가 실려 있다.

 

고 장영희 교수에서부터 컬러리스트 한승희, 게임 아트디렉터 장홍주, 그래피티 아티스트 JNJCREW, 생태주의 뮤직 퍼포먼스 노리단, 아티스트 김치샐러드까지... 특이한 활동, 또는 정통적인 활동을 한 사람들과 한 이야기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이제는 기술의 시대를 넘어 문화의 시대가 되었다. 그것도 전세계가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의 시대. 그렇다고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버려서는 안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지역적으로 생각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라.

 

어쩌면 이 말이 지금 새로운 문화에 맞는 말이기도 하리라. 따로따로 가지만, 결국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문화. 그러한 문화가 우리 시대에 필요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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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영화 찍자 - 청소년 감독이 씹어 먹어야 할 레알 real 130가지 청소년 문화예술교육 2
안슬기 지음 / 다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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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관심있는 학생이 늘고 있다

 

영화를 전문적인 감독만이 만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자신들은 단지 영화관에서 이미 만들어진 영화만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청소년들이 줄고, 청소년들 자신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직접 만들어보려고 시도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세상의 어떤 일이 누구는 해도 되고, 누구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겠는가. 게다가 요즘처럼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서는 비싼 장비만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지 않고, 핸드폰으로도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 청소년들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나 시간이 적다보니, 이들은 주로 핸드폰이나 컴퓨터와 가까이 지내게 되는데,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도를 깨우치는 일이다

 

도를 찾아 떠나는 여행, 그 여행에는 필요한 것들이 많다. 그냥 무작정 떠났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되겠지 하고 영화에 달려들었다가는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칫하면 사람도 잃고 또 자기가 그렇게 좋아했던 영화까지 잃게되는 경우가 있다.

 

영화를 만드는 일에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여기에 영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130개의 지침이 있다.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기도 했고, 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지니고 있으며(특이하게도 수학교사란다), 동아리 활동으로 영화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저자가 청소년들이 영화를 만들 때 명심해야 할 사항들을 교사답게 잘 정리해서 알려주고 있다.

 

도를 깨우치는데 스승이 필요하듯이 영화를 만드는데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역할을 이 책이 하기로 하고 있다.

 

그런데 첫 장이 참 도발적이다. 영화 만드는 일, 힘들다. 그러니 포기하라고 한다. 자꾸 포기하라고 강조한다. 그만큼 영화를 만드는 일은 도를 깨우치는 일만큼 힘든 일이라는 거다.

 

도를 깨우치겠다고 출가하여 용맹정진하지만, 결국 깨우침까지 이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도 마찬가지리라.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청소년들에게 경고한다. 정말로 자신을 버리고 영화에 미치지 않겠다면 영화 만들 생각 아예 하지 마라고.

 

영화 감독은 가끔 프랑켄슈타인이 된다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라고.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안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사실 괴물이라는 건 인간이 지닌 편견이다. 그는 창조물이다)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해낸 박사의 이름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해낸 인물에겐 이름이 없다. 그냥 그는 괴물로 우리에게 인식될 뿐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인간의 온갖 신체부위들을 모아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자, 보라. 영화 감독도 인간 세상의 온갖 일들을 모아 새로운 세상을 스크린 위에 만들어낸다. 그는 필름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인간을 창조해낸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창조한 생명체가 마음에 들었다면 이름을 붙였을 거고, 또다른 제2의 생명체를 자발적으로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생명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생명체를 버려두고 도망친다.

 

즉 그는 창조는 했으나 그 창조물에 실망을 하고 도피를 하고 만다.

 

이런 경우를 편집 부분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편집을 할 때 그간의 활동으로 절망하여 편집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래도 편집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얘기. 그것은 그동안 함께 해온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며, 자신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면서 영화에 대한 예의라고.

 

하여 감독은 프랑켄슈타인이 되면 안된다.

 

감독은 조물주가 되어야 한다

 

조물주를 신이라고 해도 좋겠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면 신은 인간에게 많은 실망들을 했음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인간들에게 벌도 내렸지만 결국에는 인간을 사랑으로 감싸안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감독도 영화를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는 영화에서는 조물주가 되는 것이다.

 

신도 인간에게 실망을 했듯이 감독도 자신의 작품에 실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도망을 칠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은 아무리 실망을 했어도 다음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하여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인간에게 최후로 남은 것이 희망이라는 것은 고무적이다. 인간도 희망을 최후까지 지니고 있는데 하물려 신임에랴.) 갖고 창조물을 대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감독의 태도라는 것이다.

 

영화에 대해서 전지적인 관점을 지니고, 그러한 관점을 행동으로 옮기며, 끝까지 자신의 창조물을 책임지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얘기가 이 책의 전반을 꿰뚫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부터, 스탭 구성, 배우 선발, 촬영 준비, 촬영, 그리고 편집, 편집 이후에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알린 다음에 함께 나누기 등등 영화의 모든 것에 대해서 알기 쉽게 조목조목 알려주고 있다.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은 조물주의 위치에 올라야 하듯이, 이 책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것들에 대해서 조물주처럼 알려주려고 하고 있다.

 

애정을 가지고, 앞에서는 영화 만들지 마라고 하지만, 사실 영화 만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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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문학 동문선 현대신서 37
로버트 리처드슨 지음, 이형식 옮김 / 동문선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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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문학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단순하게 영화와 가장 가까운 문학이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소설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책들을 주로 읽었는데, 이처럼 영화와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이 있어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나 하는 호기심이 발동해 읽게 되었다.

 

문학이라고 하지만,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오기는 하지만, 주로 시와 영화에 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을 쓴 사람이 영화비평가도 아니고 영문학자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전공은 아무래도 영시인 것 같은데.. 영시 중에서도 모더니즘 영시 쪽이라고 한다.(옮긴이의 말 참조)

 

시와 영화라?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시를 영화의 중심 내용으로 삼아 영화를 만든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창동 감독의 "시"라는 영화가 있지만, 이것은 한 나이많은 여자가 시를 배워가고 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나타내는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시의 특성과 영화의 특성이 교차되고 융합되는 영화로 받아들이기는 좀 힘들었는데...(아직도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는 능력이 부족하고, 그러한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다른 장르의 예술들과 비교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을 보면 시의 구성이나 표현 방법과 영화의 구성이나 표현 방법에서 많은 유사점을 찾아내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 하여 새로운 경향을 실험하고, 새로운 유파를 형성해내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읽으면서 왜 영화나 시들이 다 오래된 것들이지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왜 그런지 옮긴이의 말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60년대라는 것을. 그러니 작품들이 다들 20세기 초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감독도 영화도 마찬가지고.

 

영화가 막 중심 문화로 자리잡을 때 영화와 다른 예술을 비교 통합하는 책을 썼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지금은 잘 다루고 있지 않은 형태의 유사성, 표현의 유사성 등을 논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에 들어온 소설 기법이라든지, 시의 기법이라든지, 또는 영화로 인해 변한 소설, 시의 기법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세상은 어떤 것이든 홀로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섭' 또는 '융합'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요즘,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일들은 이루어져 왔고, 또 연구되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영화를 영화만으로서 끝내지 말고 다른 것들과 연결해서 파악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그러한 생각을 해야겠다는... 그것을 초기의 영화와 소설, 시에서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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