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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을 포개다 - 배제된 자들의 민주주의를 향하여
김소연 외 3인 지음 / 꾸리에 / 2012년 12월
평점 :
정치는 누가 할까?
정치를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을까?
고대 사회나 중세 사회에서는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하다못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하는 아테네에서도 민주주의의 주체들은 시민계급이었으며, 나머지 계급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지 못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모두가, 사람이라면 직업, 신분, 종교, 나이, 인종, 장애, 성별 등에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정치에 참여해야 할 수 있다고 하는 세상이 근대에 들어와서 이루어졌다. 이제는 나이를 제외하고는 어떤 차이 때문에 정치에 차별을 받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얘기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하는 지금, 과연 우리 모두는 정치에 참여하고 있을까? 오히려 정치에는 정치인이라는 특정 집단만이 참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렌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다고 하는 말을 사실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한다. 그렇게 해석이 되고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고 한다.
정치적인 동물이 바로 사람인데, 근대의 제도는 대의민주주의라고 하여 직접민주주의에서 멀어졌고, 사람들을 정치에 이끄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고 오로지 생존을 위한 삶에 매몰되게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정치에의 무관심을 깨고 모든 사람이 정치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하고, 이런 도약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전 존재를 내걸 수 있는 용기.
사람들이 그런 용기를 지니지 않을 때 특정한 집단이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나서서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은 자신이 대변한다는 사람들로부터 이미 한 걸음 물러나 있게 된다. 그리고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 역시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어,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대변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정치의 관행을 깨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에 별 기대를 걸지 않고, 자신이 정말로 정치적 인간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이 독자적으로 대통령 후보를 내었고, 선거운동도 했다. 물론 결과야 그다지 좋았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해야만 했고, 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척박한 땅에 발자국을 남기려고 했고, 또 발자국을 남겼다. 그 발자국 위에 또다른 발자국들이 포개진다면 땅에 없던 길이 나게 된다. 마치 루쉰이 했던 말처럼.
길이란 무엇이던가?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가시덤불을 개척함이 아니던가. 길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 으 로 도 영 원 히 있 다.
(루쉰아포리즘, 희망은 길이다. 이욱연 편역, 예문출판사 20쪽)
세상에 분투 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 (앞의 책 22쪽)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앞의책 22쪽)
그래, 이제 길이 나기 시작했다. 이 길이 지금은 아주 작은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는 길일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 발자국을 포갠다면 더욱 큰 길이 될 것이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누구나 갈 수 있는, 또 가고 싶어하는.
이들이 왜 이런 길을 내려고 했을까?
그것은 총선이든, 대선이든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정치를 하는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정당은 말로는 민중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표 때문이었음이 얼마 뒤 밝혀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치는 특정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다른 정치인들이, 다른 정당들이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배제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 없게 또는 잠시 노동에서 떨어져 나왔더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더라면 이들이 우리도 우리의 권리를 위해, 아니 인간의 권리를 위해 정치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나 하는 의문에는 녹색평론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브라질의 룰라라는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그런 질문은 쏙 들어갈 것이다.
(녹색평론 125-126호 비서구 민주주의-브라질편(1)-(2) 참조)
정치는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진다.
이 책 약간 늦게 읽었다.
대선 전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선이 끝났다고 노동자(이 책에서는 노동자라는 말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 투쟁하는 노동자라고)들의 정치세력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이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이 책은 그걸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자, 내가 먼저 갈게.
내 발자국을 보고 따라와.
그러면 길이 보여.
아니, 길이 있어.
그 길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힘내자고!!!
함께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