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384
권혁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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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들이라니... 지금 얼마나 많은 소문들이 횡행하고 있는지...

 

대통령이 바뀔 즈음에 온갖 소문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소문들은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때로는 희망으로, 때로는 절망으로, 때로는 분노로.

 

이런 소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집을 꺼내들었다.

 

제목도 "소문들"이다.

 

이 소문들 연작은 언어의 유희라고 할 수 있는데, 언어들이 유희로 우리들을 다른 세상으로 인도한다.

 

아니 풍자라고 해야 옳겠다.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 말들이 지닌 발음의 유사성을 가지고 전혀 다른 뜻을 만들어내는.

 

그 중 한 가지를 보면 시에 나온 세계가 시집에 갇힌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겪는 바로 그런 세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자의 진면목이 나타나는 순간.

 

소문들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 그 순간,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소문들 연작시 지금 읽어도 우리 사회를 느낄 수 있다.

 

이 시집은 운율을 생각한다기보다는 머리 속으로 사회의 모습을 그리면서 읽어야 한다.

 

언어로 풍자하는 세상, 그리고 언어로 만들어가는 세상에 대해서.

 

덧글

 

시를 인용하고 싶었으나 한자어를 찾아내기 힘들어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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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 카프카의 편지 1900~1924 카프카 전집 7
프란츠 카프카 지음, 서용좌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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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개인의 드러나지 않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1900년에서부터 1924년 그가 죽기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보냈던 편지의 모음이다. 중간에 사라져버린 것도 있고, 또 다른 책으로 펴내기 위해 뺀 편지도 있지만, 알려진 주요 인물들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이다.

 

읽으면서 우선 부러웠던 점 하나는 친구들이 이렇게 평생토록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우리나라 옛어른들도 친구들, 또는 다른 사람들과 왕래한 서신을 모아 서간집을 펴내기도 했지만, 요즘은 편지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으니 말이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우체통이 거의 사라졌으며, 종이에 정성들여 글을 써서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 모습도 사라졌다.

 

여기에 받은 편지를 모아두는 면장철이라는 것도 요즘으 거의 쓰지 않는다.

 

이렇듯 우리는 바른 속도로 살아가는데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는데...

 

너무도 빨라서 이메일도 느리다고 카.톡이라든지, 또는 핸드폰 문자메시지의 짧은 문장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긴 글을 쓰는 일이 과거로 사라져버린 지금, 그 과거가 내 눈 앞에서 펼쳐졌으니 부러울밖에.

 

또 하나 생각나는 점은 그가 자신의 권리주장에는 철저했다는 사실. 월급이나 승진에 관해서 자신이 속한 공사에 보낸 편지를 보아서는 그렇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모습, 이게 당연한데, 왜 낯설게 느껴지는지.

 

노동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아직까지도 노동조합을 무슨 이상한 단체 취급하는 자본가들이 만연하는 사회에서 살아서 그런가...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 하긴 사람이 24년간 쓴 편지를 모았으니 방대하기는 하겠지만, 참...

 

약혼녀였던 펠리체에게 쓴 것과 그의 작품을 번역했던 밀레나에게 쓴 것은 빠졌는데도 편지 분량으로면 900쪽이 넘는다.

 

그래도 카프카란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어서 좋았다고나 할까.

 

카프카에 빠져 지내는 요즈음이다. 앞으로 몇 권 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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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 카프카의 편지 1900~1924 카프카 전집 7
프란츠 카프카 지음, 서용좌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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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책들은 자신의 성 안에 있는 어떤 낯선 방들에 들어가는 열쇠 같은 역할을 하네.-60쪽

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할 게야.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러하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게야.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위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70쪽

서신이란 바다를 두고 떨어져 있는 사람의해변에 철렁거리는 바닷물과 같은 것.-104쪽

희망하는 것보다 희망하지 않는 것에 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108쪽

용기를 가지려면 단지 절반만 전환시키면 되는 거요.-115쪽

내가 죄책감을 갖는 유일한 이유는 다만 그것이 나로서는 후회의 가장 정교한 형식이기 때문이네. ... 죄책감이란 단지 회귀욕이니까.-319쪽

내안의 목소리는 늘 선택이 이루어진 뒤에야 시작하니 불행이야.-334쪽

모든 참된 것은 반박될 수 없으니까. 반박은 안 되지. 진압이라면 몰라도.-386쪽

참된 남편이란 아내 안에서 세계와 결호해야 하네. 그러나 아내 저편에서 결혼해야 할 세계를 보는 그런 식으로가 아니라, 세계를 통ㅎ서 아내를 보는 것이어야지.-474쪽

"어리석음"에는 어쨌든 우린 수업료를 내야 하는 것이오. 알지 못한다 해도 우린 왼손으로 "어리석음"을 저지르면서 오른손으로는 끊임없이 수업료를 내는 것이지요. 어쨌든 "어리석음"은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것이지요.-543쪽

청춘은 물론 항상 아름답지요. 사람들은 미래를 꿈꾸며,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고무시키고, 또는 차라리 스스로 꿈이 되지요. 그러니 그것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모든 젊은이에게 공통되는 아름다움이며, 그리고 누구도 사적으로 그것을 전용할 권리는 없어요.-547쪽

"안정과 가정"이란 간단히 권태에서 선물로 찾아오는 것일 수는 없으며, 얻어져야 하는 것, 당신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곧 이것은 내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하오.-556쪽

그 어중간한 전문직들, 바꾸어 말해 진지함이 결여된 전문직들은 혐오스럽지.-713쪽

작가는 본래 정신 착란에서 벗어나려면 절대로 책상을 멀리해서는 아니 되고, 이로 꽉 물로 달라붙어 있어야 하네.
... 작가의 정의는 이런 것이네. 그는 인류의 속죄양이다. 그는 인간에게 죄를 죄 없이 거의 죄 없이 향유하도록 허락한다.-748쪽

나는 집을 떠나 항상 집을 향해서 글을 쓰네. 비록 집의 모든 것이 이미 오래전에 영원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버렸을지라도 그래. 이 완전한 글쓰기는 섬의 맨 꼭대기에 세워둔 로빈스 크루소의 깃발 바로 그것이지.-7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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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아침부터.

 

송이가 굵다.

 

함박눈이다.

 

함박눈이 내리면 날이 포근하다는데...

 

이 한겨울,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차가움을 보태지 말고

 

따뜻함을 보태는 눈.

 

지저분한 세상을 하얗게 하얗게 만들어주는 눈.

 

안도현의 시 중에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라는 시가 있다.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함박눈이 되자'는 내용의.

 

며칠 동안 마음이 우울했는데, 그래도 눈을 보니 - 그 뒷일은 우선 제쳐두고 -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조금 따뜻해진다.

 

윤동주 시집을 펼쳐본다.

 

부끄러움, 자기성찰의 시인이라는. 저항시인이기 전에.

 

그의 시는 맑다. 아름답다. 순수하다.

 

그러한 순수함,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눈을 잠시 맞고, 윤동주의 시 중에 "눈"이란 시를 읽는다.

 

아, 따뜻하다.

 

이런 '눈'이 되어야 하는데...

 

시인들의 감성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히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책만드는집, 2012 초판 6쇄 41쪽 '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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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을 포개다 - 배제된 자들의 민주주의를 향하여
김소연 외 3인 지음 / 꾸리에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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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누가 할까?

정치를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을까?

고대 사회나 중세 사회에서는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하다못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하는 아테네에서도 민주주의의 주체들은 시민계급이었으며, 나머지 계급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지 못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모두가, 사람이라면 직업, 신분, 종교, 나이, 인종, 장애, 성별 등에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정치에 참여해야 할 수 있다고 하는 세상이 근대에 들어와서 이루어졌다. 이제는 나이를 제외하고는 어떤 차이 때문에 정치에 차별을 받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얘기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하는 지금, 과연 우리 모두는 정치에 참여하고 있을까? 오히려 정치에는 정치인이라는 특정 집단만이 참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렌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다고 하는 말을 사실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한다. 그렇게 해석이 되고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고 한다.

 

정치적인 동물이 바로 사람인데, 근대의 제도는 대의민주주의라고 하여 직접민주주의에서 멀어졌고, 사람들을 정치에 이끄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고 오로지 생존을 위한 삶에 매몰되게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정치에의 무관심을 깨고 모든 사람이 정치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하고, 이런 도약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전 존재를 내걸 수 있는 용기.

 

사람들이 그런 용기를 지니지 않을 때 특정한 집단이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나서서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은 자신이 대변한다는 사람들로부터 이미 한 걸음 물러나 있게 된다. 그리고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 역시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어,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대변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정치의 관행을 깨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에 별 기대를 걸지 않고, 자신이 정말로 정치적 인간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이 독자적으로 대통령 후보를 내었고, 선거운동도 했다. 물론 결과야 그다지 좋았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해야만 했고, 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척박한 땅에 발자국을 남기려고 했고, 또 발자국을 남겼다. 그 발자국 위에 또다른 발자국들이 포개진다면 땅에 없던 길이 나게 된다. 마치 루쉰이 했던 말처럼.

 

길이란 무엇이던가?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가시덤불을 개척함이 아니던가. 길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 으 로 도 영 원 히 있 다.

(루쉰아포리즘, 희망은 길이다. 이욱연 편역, 예문출판사 20쪽)

 

 

세상에 분투 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     (앞의 책 22쪽)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앞의책 22쪽)

 

그래, 이제 길이 나기 시작했다. 이 길이 지금은 아주 작은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는 길일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 발자국을 포갠다면 더욱 큰 길이 될 것이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누구나 갈 수 있는, 또 가고 싶어하는.

 

이들이 왜 이런 길을 내려고 했을까?

 

그것은 총선이든, 대선이든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정치를 하는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정당은 말로는 민중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표 때문이었음이 얼마 뒤 밝혀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치는 특정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다른 정치인들이, 다른 정당들이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배제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 없게 또는 잠시 노동에서 떨어져 나왔더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더라면 이들이 우리도 우리의 권리를 위해, 아니 인간의 권리를 위해 정치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나 하는 의문에는 녹색평론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브라질의 룰라라는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그런 질문은 쏙 들어갈 것이다.

(녹색평론 125-126호 비서구 민주주의-브라질편(1)-(2) 참조)

 

정치는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진다.

 

이 책 약간 늦게 읽었다.

 

대선 전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선이 끝났다고 노동자(이 책에서는 노동자라는 말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 투쟁하는 노동자라고)들의 정치세력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이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이 책은 그걸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자, 내가 먼저 갈게.

내 발자국을 보고 따라와.

그러면 길이 보여.

아니, 길이 있어.

그 길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힘내자고!!!

함께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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