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한국사회 -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박인석 지음 / 현암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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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거 형태는 아파트다. 전통 건축이라고 할 수 있는 한옥은 시골에서 허물어져 가고 있으며, 전주에 한옥마을에 한옥이 남아 있고, 서울 북촌에 역시 한옥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거 형태로 한옥을 뽑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 이렇게 아파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거 양식이 되었을까? 이런 질문을 이제는 별 의미가 없다. '왜?'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라는 질문이 지금에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문제라고, 성냥갑이라고 쉽게 비판을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진짜 문제는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라고 한다. 즉 아파트가 거대한 하나의 집단으로 공간을 차지하고, 외부와의 단절을 스스로 만들어간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는 "아파트 단지"를 선호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어느 정도 중산층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에게 거주할 장소를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중산층에게는 단지 살 집만이 아니라, 함께 생활할 다른 공간도 필요했기에, "단지" 중심으로 꾸며진 아파트에는 온갖 문화시설부터 생활의 편리성이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국가나 사회가 공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기반 시설을 마련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국민 개개인에게 미루었기에, 부족한 사회기반을 "단지"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는 그래서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자족적인 공간으로 존재하게 되고, 주변 환경과는 동떨어진, 고립된 지역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아파트 단지는 사회의 공간을 단절, 분절시키고 있어서 그것이 더 문제가 되지, 아파트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아파트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한옥의 구조를 택하고 있기에 한국 사람의 심성에 어느 정도 맞기에 사람들이 좋아하게 된 것이고, 아파트들이 대표적으로 택하고 있는 남향은 우리나라 기후 조건에 맞는 형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의 아파트에 부족한 것은 공공성의 확보다. 아니, 단절되고 분절된 삶을 연결하는 일이다.  아파트 단지에 갇혀서 사는데, 이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파트 자체에도 갇혀서 살고 있는 현실이기에...

 

이런 단절을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아파트 단지를 개방형으로 재구획할 수 있어야 하고, 아파트에서는 발코니를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한다. 개인적인 공간인 발코니를 준공적인 영역, 또는 준사적인 영역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발코니의 샤시를 제거하고 개방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발코니를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가꾸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면 집의 개성도 살리고, 또 옆집과 교류도 할 수 있는, 또는 지나가는 사람과도 소통을 할 수 있는 그런 장소로 발코니가 재탄생할 수 있고, 아파트의 단절성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새겨들을 말이다.

 

어차피 이제 아파트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아파트를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장소로 확보하는 일이다. 나무형 구조로(단선적이고 일방적인 움직임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루어진 아파트 단지를 그물형 구조(복잡하고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구조, 따라서 우연적인 만남이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주차장을 없애고 보행로를 만들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만든 단지도 있는데, 이것도 공공영역으로 만들어내는 한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 아파트 단지가 외부에 개방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꿀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고.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이 의식적이든, 우연이든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도처에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필연성과 우연성이 중첩될 수 있는 구조, 그러한 도시 계획. 그것이 필요하다.

 

거리가 직선으로만, 일방으로만 만들어져서도 안된다. 거리는 우연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 거리와 아파트 단지가 긴밀하게 연결이 된다면 우리가 굳이 아파트가 문제라고 할 이유는 없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의 접속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로 개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제안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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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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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축가를 얼마나 알고 있겠는가? 건축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 곁에 없기도 하다. 적어도 건축가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은 얼마 없기 때문이다.

 

정기용이라는 이름은 승효상의 책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건축의 공공성을 추구한 건축가라고. 그가 안타깝게도 2011년 세상을 떠났다고, 승효상이 너무도 안타까워 하는 구절을 읽고, 정기용이라는 사람의 책을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건축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무엇이 좋은 건축이고 무엇이 좋지 않은 건축인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눈을 편안하게, 또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건축물이 있고, 무언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편하게 하는 건축물이 있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정기용이 생각하는 건축은 단지 건축물로 끝나지 않는다. 그에게 건축은 관계의 문제이며, 장소의 문제이고, 기억의 문제이다. 즉 건축은 건축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땅과 하늘과 인간이 함께 어울려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건축의 공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통하여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서울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건축가의 눈으로 본 서울 이야기가 된다. 결코 토목이 아니다. 그가 진저리치듯이 이야기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 사업을 읽어 보라. 토목과 건축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많이 즐기는 청계천을 그는 인공 분수라고 한다.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강제로 물을 길어올리고 있으며, 하천의 자연적 지형을 무시하고 콘크리트로 직선화한 청계천. 진짜 청계천은 그 물 밑에 존재하고 있는,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개발을 한 대표적인 사례. 이것이 바로 토목이다.

 

하여 서울은 토목이 기승을 부린 도시가 되었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안중에도 없으며, 서울을 툴러싸고 있는 산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으며,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강의 본성을 죽여놓고 있고, 자동차에게 서울의 길을 내주어, 사람들의 생활은 묻혀버리고 있으며, 서울이라는 장소에서 살아왔던 역사성, 기억은 막개발과 볼품없이 올라가는 아파트나 대형건물들에의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더하여 그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은 서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에 미군기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현실. 그 공간을 서울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서 우리가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그 곳에는 대형 건물이 아니라 바로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는 그런 공원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주장. 정말 귀기울여 들을 만한  주장이다.

 

여기에 중앙박물관과 예술의 전당 등 문화를 담당하는 건물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이야기가 되고 있어서 문화도시로서의 서울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로 건축가들이 건축을 통해 문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정기용의 책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건축에 대해서, 왜 토목이 좋지 않은지에 대해서, 그리고 서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예전 서울의 모습을 다룬 사진과 지금의 서울을 다룬 사진들. 이런 것들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우리가 서울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해주고도 있다.

 

비단 서울만이 아니다. 모든 도시를 계획할 때, 또는 도시에 무언가 건축을 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참조하게 해주는 책이다.

 

서울, 상당히 유서 깊은 도시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들이 중첩되어 있는 도시다. 그런 도시에서 건축을 통해서 또다른 기억들을 중첩시켜 나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건축가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이 책은 깨우쳐 주고 있다. 그래야 우리 문화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음을... 

 

정기용.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게 하는 건축가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건축가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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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나날들이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사진.

 

밀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저작권이 하도 심하다 하니, 사진을 올리지는 않겠지만,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누워 있는 사람들. 포크레인 삽날 속에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 주로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렇게 누워 있는데, 멀치에는 새파랗게 젊은 경찰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고, 한전 직원이란 사람들이 역시 무표정하게 서 있다.

 

같은 나라 사람인데,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인데, 그들 사이의 거리가 왜 그렇게도 멀게 느껴지는 걸까? 지구와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가 될까?

 

독재시대와 민주화시대의 거리가 될까? 이미 우리는 민주화가 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양 송전탑 문제에서 왜 자꾸 과거의 망상이 떠오르고, 어떤 기시감마저 느껴질까...

 

가까이는 제주 강정마을이 떠오르고, 조금 더 멀게 가면 용산참사, 쌍용차 문제, 한진중공업 문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 평택 대추리, 그리고 매향리...

 

어떻게 지금 시대를 "폭력과 광기의 나날"들이 연속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있나?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했다고 해서 노조 인정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이것이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한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 아니냐고 국가인권위에 제소를 했는데, 인권위에서는 심각한 인권침해로 볼 수 없다고 하고, 세계노동기구에서는 이것은 명백한 탄압이라고 그런 조치를 철회하라는 권고문을 보내오기도 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승하의 "폭력과 광기의 나날"이라는 시집을 다시 펼쳤다. 지금이 그러한 시대라고 생각했으므로. 사진과 시가 어우러진 시집이다. 그 사진들이 과거의 사진이라고, 이 시집은 이미 지나간 시절을 노래했다고만 할 수 없으니... 시집 속의 사진들이 마치 지금의 일이라도 되는 양 살아서 움직인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더불어 브레히트의 "전쟁교본-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도 함께 펼쳐보게 되었다.

 

자꾸 이런 시집으로 손이 가게 한다. 머리 속이 복잡하다.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떠나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이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사진은 기억하게도 한다. 그 기억은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움직이게도 한다. 그러니 이승하의 시집 속에서 사진은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브레히트의 시집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시 살아나 움직이기도 한다.

 

하, 이런 "폭력과 광기의 나날"들을 보내고 희망을 노래하는, 기쁨을 노래하는 나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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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 왜 보수가 남는 장사인가?
토마스 프랭크 지음, 구세희 외 옮김 / 어마마마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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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1980년대 레이건이 집권하여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건 보수정권이 생긴 이래 일어났던 일이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비즈니스 우파라고 이름 짓고 있다. 우파라고 할 수 있는 보수주의자들이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법칙으로 삼고 있는 것이 5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정부에 들어가 정부를 파괴할 것.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그들은 거대한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규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것이 다 잘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정부가 공연히 개입하여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강탈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정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정부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그 정책에 반대하던 사람을 그 부서를 책임지는 자리에 앉혀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정부의 권한은 줄고, 규제는 사라지며, 그들이 원하는 자유방임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밖에서 정부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로비를 통하든, 어떤 홍보방식을 택하든 정권을 잡고 정부의 조직에 그들의 사람을 심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80년대 레이건이 집권한 이래 우파들은 이를 실행했고, 이는 민주당도 여기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경제적 파탄이다. 지금도 민주당 오바마가 집권하고 있지만, 하원에 발목이 잡혀 정부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셧다운 상태에 처해 있다.

 

둘째는 빚을 늘려서 재정을 파탄시킬 것. 정부 재정적자를 늘려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보수정권 하에서 재정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이런 재정적자로 인해 사회안전망 구축은 물 건너가고 있으며, 자연스레 정부에서 운영하던 알토란 같은 기업들을 민간인 기업에 넘겨야만 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재정적자는 자연스레 정부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낳아 우파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게 된다. 간혹 진보진영에 정권을 넘겨주더라도 진보 진영이 이 재정적자로 인해 무슨 일을 할 수 없게 만들고 만다. 그러면 다음 정권은 자신들에게 넘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클린턴 정권이 이런 재정 적자에 발목잡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고, 그 다음 정권은 부시에게로 넘어왔다는 사실에서 이것은 우파의 중심 전략이기도 하다.

 

셋째는 국민의 것을 자본에게 넘겨줄 것.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공기업이 민영화되었다. 민영화라는 말보다는 사영화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공적으로 운영되던 기업들이 모두 개인의 이익을 위한 기업으로 변모하였으며, 사회기반 시설들도 공적 운용에서 사적 운용으로 넘어갔다. 더 심하게는 사람의 건강을 다루고 있는 의료행위조차도 민간으로 넘겨 막대한 이익을 남기도록 하였으며, 연금조차도 민간에 넘겨 민간 기업들 배만 채워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나친 이익을 규제해온 부서들을 무력하게 하고 있다. 또 기업 프렌들리라는 명목으로 기업에 유리한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공적으로 쓰여야 할 것들이 사적으로 쓰이게 만들고 있다.

 

넷째는 전투적인 우파청년조직을 키울 것. 정치도 대대로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학생들 중에서 우파를 키워야 한다. 그냥 우파가 아니라 전추적인 우파. 공화당 학생위원회처럼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설 청년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정치계로 들어서게 해야 한다. 그들을 얼마나 잘 재생산하느냐에 따라 우파의 재집권이 결정된다. 또한 그런 활동을 통해서 좌파가 집권하는 일을 막을 수 있고, 젊은층에서 광범위한 지지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다. 

 

마직막으로는 국가 예산을 내 재산으로 만들 것. 공공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치에 뛰어드는 이유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온갖 규제를 푸는 정책을 펴는 이유는 민간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곧 자신이 그 기업에 들어가거나, 그 기업을 위해서 일하는 로비스트가 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한다. 그러면 그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연봉을 받을 수가 있으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던 국가 예산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할 수가 있게 된다. 제 돈 안 들이고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 그렇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우파의 법칙이다. 그게 바로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 결과는 파산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들은 이렇게 하기 위해서 진보적인 정당에 후원하지 못하도록, 즉 진보적이 정당의 후원금이 제로가 되도록 하고 있으며, 노조활동은 아예 처음부터 와해시키고 있고, 환경단체들의 활동은 규제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이 상황에서도 대다수의 민중에 대한 몇몇 기업의 착취라는 현실로 바꿔내고 있다.

 

작은 질병에도 엄청난 액수의 치료비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노조 활동은 위축 되어, 대다수의 노동자가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부는 몇몇 소수에 독점이 되었고, 사회적 안전 장치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환경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으며,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그들의 원하는 대로 땅에 떨어져 버렸다.

 

이제는 다르게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지은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우파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밝혀놓았으니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이들은 번지르한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은 앞에서 이야기한 다섯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그러나

 

이것은 미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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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는 살아있다 - 자유.민주의 탈을 쓴 대한민국 보수의 친일 역정
정운현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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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민주의 탈을 쓴 대한민국 보수의 친일 역정"

 

이렇게 자유라는 말이 잘못 쓰이고 있으며, 민주라는 말이 잘못 쓰일 수가 있을까. 지금도 그들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민주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강하게 하고 있다.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기도 하다. 회전문 인사라는 말보다도 더 심하게, 이건 좀비 인사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상태. 예전에 유죄 선고를 받았던 사람들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는 그들의 유죄는 민족을 위해서 한 일인 것처럼 포장되어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복귀하고 있는 현실이라니...

 

'심산 김창숙 문존'을 읽었을 때의 답답함이 다시 되살아 났다. 친일파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 때로는 친일파가 애국자로 둔갑하여 추앙을 받는 나라. 그들의 친일 행위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한 행동으로 왜곡되고 있거나, 또는 친일을 한 행위는 싹 감추고, 그 후의 행적만을 과장하여 말하거나 하는 모습들.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친일을 하면 삼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그 말이 왜이리 실감이 나는지...

 

흔히들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욕을 많이 하는데, 농담 식으로 "싸가지"를 "4가지"로 바꾸어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예의, 염치"든 "인의예지"든 하여튼 이것이 없으면 사람으로서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냥 어원을 따져서 (이런 어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싹+아지"로 해석하여 무언가 성장할, 또는 바르게 클 "싹"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되는데... 정말이지 이들 친일파는 싸가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부끄러움을 모르니,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리요.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의 안녕과 출세밖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남들이야 어떻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예의 ,염치를 버리고 말 그대로 후안무치하게 살았는데... 막상 독립이 되면 조금의 부끄러움이 속에서부터라도 올라올 줄 알았는데... 그래도 친일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배운 사람들이니... 배운 자들의 무서움. 그것만이 이 책에 나와 있다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 권력을 쥐었던 사람들 가운데 친일파 출신이 꽤나 많다는 사실. 또 그 후손들이 대대로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 어떤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존경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만큼 우리는 친일파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렇게도 후진적인지... 그들의 뿌리를 쫓아가보면 친일과 연결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우리는 친일파를 청산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우리는 왕의 목을 쳐보지 못한 민족이라는 말과 함께 반민족 행위자 역시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민족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대가는 후손들이 고스란히 치르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아직까지도 정신대로 끌려 갔던 사람들의 한을 풀지 못하고, 이들에게 속죄를 하게 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일본에 제대로 대응도 못하는 그런 60년대의 한일협정 역시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원죄일테고...

 

자유와 민주라는 이름으로 보수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사실은 수구에 지나지 않은 그런 집단들이 큰소리를 치는 현실도 멀리 보면 친일파 청산의 실패에 있다고 볼 수도 있으니...

 

역사의 죄인에 대한 단죄는 공소시효가 없다. 언제든, 어디서든 그들에 대한 단죄는 어떤 방법으로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물리적인 처벌이 아니더라도...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서라도 처벌을 해야 한다. 그런 기록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는 노력이 계속 있어왔기에 이 책과 같은 작업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또다른 기억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친일파라고 부르는 민족 반역자들은 우리의 역사에서 잊혀져서는 안된다. 그들의 행적은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조금 힘센 나라에 빌붙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마치 일제시대가 우리나라를 발전시켜 주었다는 일본인보다도 더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판단할 거울을 역사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도 우리는 철저하게 기록으로 남겨 기억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친일이라는 그런 행위 말고도, 정말로 부끄러운 행동을 한 사람,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나오더라도, 즉 자신은 묻어두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기억해야만 할 일들을 기억하게 해주는 책.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이 책에 대해서. 참 많은 친일파들이 나온다. 가지가지다. 기분이 나쁘다. 그러나 읽어야 한다. 알아야 하기 때문에...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덧글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친일은 단지 일본과 친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본을 좋아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요즘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또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을 친일이라도 비난하는 말이 아니다. 친일은 역사적인 개념으로 일본을 위해 민족을 배반한 행위를 의미한다. 즉 우리 민족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출세나 재산을 위해서 일본에 아첨하거나, 일본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따라서 친일파는 민족배반자로 바꿀 수 있는 개념이다. 오히려 언어의 명징성을 위해서는 민족배반자라는 말을 쓰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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