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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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의식이 존재를 배반한다.

 

참 많이도 써먹은 말이다. 이상하게도 없는 사람이 같이 없는 사람 편을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있는 사람 편을 드는 경우에 많이 쓰는 말이다.

 

루카치가 그래서 "역사와 계급의식"이라는 책도 썼고, 역사를 통해서도 많이 경험했던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세계개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 인구 중에서 최상위 1퍼센트의 부자들의 부의 총합은 하위 50퍼센트에 속한 사람들의 부의 총합보다 거의 2000배나 된다(이 책 18쪽)고 하는데... 그럼에도 세상은 불평등을 감수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그렇게 세뇌되어 있다.

 

왜 그럴까? 거기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아가고 있는데, 우선 우리의 선택, 우리의 생활방식, 우리의 삶의 궤적을 합작하는 자율적인 요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운명과 인격이라고 한다.(39쪽)

 

'운명'은 현실적 선택지들의 범위를 결정하지만, 그 범위 내에서 우리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인격(40쪽)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인격을 통해서 선택을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불평등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삶이나, 아니면 불평등을 없애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거짓신화를 깨야 하는데, 그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경제성장.

영구적으로 늘어나는 소비.

인간들 간의 불평등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

경쟁.

 

지금 우리도 역시 이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경제성장이 안되면 곧 망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고, 소비가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논리를 접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천재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살리기에 그 천재에게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고, 좀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 하고, 그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받고 있다.

 

자연스레 여기고 있는 이러한 것들이 사실은 잘못된 주장이며, 이 주장들이 우리네 삶에 깊숙히 침투해서 불평등을 감수하게끔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장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한다.

 

인간의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격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며, 이러한 인격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불평등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하니, 경쟁이 우리를 잘 살게 할 것 같지만, 경쟁보다는 협동이 더 잘 살게 해주며, 인간들 간의 불평등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소비는 오히려 우리 인간사회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으며, 경제성장이라는 말에 갇혀서는 제대로된 삶을 살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곧 우리에게 선택을 하게 한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책은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공을 넘긴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그 공을 어떻게 할지는 바로 우리의 인격,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작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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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

 

1989년에 결성되어 비합법 조직이라는 이유로 엄청나게 많은 탄압을 받았다. 무려 1500여명의 교사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으며, 쫓겨나지 않은 사람들은 탈퇴각서를 쓰라고 온갖 압력을 받았다.

 

그럼에도 비합법 조직으로 존재하다가 1999년 창립 10년만에 합법 조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고. 교원노조를 인정하는 것이. 또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다는 증거이기도 했고.

 

합법 조직이 된 다음에도 여러 번의 싸움이 있었고, 해직자들이 나오기도 했다. 해직자들은 전교조 일을 하다가 해직이 되었기에 그대로 조합원의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고용노동부에서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시정하라는 권고문을 보냈고, 만약 시정하지 않으면 노조 설립 인가를 취소한다고 했다.

 

전교조는 이에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 고용노동부의 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고용노동부는 전교조를 노조로 볼 수 없다는 공문을 발송했고... 합법화된 지 14년 만에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

 

법외노조는 합법으로 인정을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불법은 아닌 조직이니..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이되 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조합인 셈이다. 당연히 그동안 이루어졌던 정부와의 교섭이나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은 받지 못하게 되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조차도 고용노동부의 규약 시정 명령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했으며, 국제노동기구나 다른 나라들에서도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서를 보내왔으나, 정부는 모르쇠...

 

오로지 자기들의 길만 가고...

 

전교조라는 단체의 과도 있지만 공도 무척 많은데...

 

그런 점을 떠나서 민주주의 사회라면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해야 하고, 당연히 교원들의 단결권을 인정해줘야 하고, 자신들의 일을 하다가 해직된 사람이라면 조직이 책임져줘야 하는 것은 법을 떠나서 인지상정에 해당하는 일인데... 그를 막으려고 하고 있으니...

 

다시 해직교사들의 양산이 될지... 예전에 전교조가 결성되기 전에 전교협 시절에도 해직된 교사들이 많았는데...

 

2013년에 과거에 그들이 남겼던 책이 생각이 나니... 역사는 진정 되풀이 되는가?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그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판절이 되었는지 구하기 힘든 책이기는 하지만, 헌책방에서는 간혹 구할 수도 있는 책.

 

"내가 두고 떠나온 아이들에게"

그리고 "몸은 비록 떠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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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0-25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터리 정권에서 주는 보조금이야 없어도 그만이고,
엉터리 정권하고 교섭을 할 까닭도 없을 테고,
아이들 생각하며 참교사 자리 잘 지키면 되겠지요.

그나저나,
전교조는 '우리교육 잡지 기자 강제해직' 시킨 일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습니다.

전교조가 그동안 겪고 지나온 길이 있는데
전교조 조직인 우리교육 잡지 기자들을 모조리
정리해고(강제해직) 시켰지요...

 

 나올 때마다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교육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바로 나 자신에 대해서.

 

이번 호 특집은 "교장 그리고 리더십"이다.

 

학교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답은 교장이다.

 

학교에서 가장 큰 교실을 쓰는 사람은? 답은 교장이다.

 

교장실은 대부분 크고 넓다. 달랑 혼자 쓰면서.

 

학교에서 전권을 휘두르는 사람이 바로 교장이다. 그래서 교장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학교을 운영하느냐에 따라 학교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민주적인 교장이 있을 때 민주적으로 학교가 운영이 되다가도 비민주적인 교장이 오면 바로 바뀌는게 학교의 문화다. 이렇게 교장은 엄청난 권력으로 군림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교장은 어떤 리더십을 지녀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교장 개인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교장 개인에 따라서 학교의 문화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문화에 따라 교장이 학교을 운영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적인 학교의 모습이다.

 

이 책에서 교장에 대해서 여러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예전에 알고 있는 교장의 모습에서부터 바뀐 교장의 모습까지...

 

또 대안학교에서는 교장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대표교사라는 이름을 쓰고 돌아가면서 그 직책을 맡는 모습까지 다양한 교장들의 리더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현직 교장의 인터뷰까지 들어서 이 시대에 필요한 교장은 어떤 교장일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정말로 학교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장. 그들은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본다면 교육에서 멀어질수록 쉽게 빨리 되었고, 교육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교장이라는 자리에서는 멀어지는 그런 존재였다.

 

우습지 않은가? 서울형 혁신학교에서 교장들이 교장 못 해먹겠다고 한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오히려 교장들이 앞장서서 혁신학교를 성공시키려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고 혁신학교를 싫어한다고 하니.. 참...

 

민주적인 교육이 되려면 교장의 역할이 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만 해도 된다고 하는데... 법을 지켜야 한다면서 그런 법은 왜 지키지 않는지...

 

다시 한 번 교장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책이었다.

 

이것이 단지 교장의 리더십에 국한될까? 리더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관계되는 일이지 않을까? 교장의 이야기를 사회의 다른 분야에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여기에 의사들의 이야기도 있고,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조언도 있으니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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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치료와 문학, 그리고 언어 인문치료총서 8
김익진 외 지음 / 강원대학교출판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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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통해서 치유를 하고, 글을 통해서 치유를 한다. 사실 의식하지 않아도 이는 예전부터 행해오던 일이다. 그것을 글로 정리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요즘은 세상이 하 수상한지 치유, 치료,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치유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사회도 개인도 건강하지 않다는 얘기다.

 

인문학이 죽었다는 얘기가 나온 지는 한참 되었지만... 단지 인문학의 죽음과 이런 치유가 직접적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불안해지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들게 지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에 치유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치유에 하나 더 보태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인문학을 통한 치료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또 연구되고 있다. 이 책도 그러한 연구의 일환이기도 하다.

 

문학의 치유적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치유적 관점에서 본 문학과 개인에 대한 장이 있는데, 이 장에서는 아일랜드 시인인 예이츠와 우리나라 작가인 박완서의 작품을 대상으로 심도 있는 분석을 하고 있다.

 

즉 개인이 개인의 아픔을 글쓰기를 통해서 어떻게 치유해나가고 있는가를 작품을 통해서 보여줌으로써 누구나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장에서는 문학과 사회적 치유라고 신화를 통해 국가가 또는 민족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공지영의 "도가니"라는 소설과 영화 "도가니"를 통해 우리 사회가 그동안 감춰져 왔고, 쉬쉬되어 왔던 장애인 성폭력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회적 치유라고 할 수 있다.

 

즉 치유가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를 고쳐가는데도 문학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어쩌면 중국의 대문호인 루쉰이 직업으로서의 의사를 포기하고 문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이야기와 상통하는지도 모른다.

 

루쉰 역시 중국 사회의 병폐를 고치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는 의사로서 중국인 개개인을 고치기보다는 문학을 통해 중국 사회를 고치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중국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바르지 못한 사회를 고치는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3장의 마지막에 중국 소설을 예로 들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척도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다양성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외모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힘들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이 책에 나와 있는 작품들을 통해 고민하고, 치유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4장에서는 창작을 통한 자기 치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5장에서는 결혼이민여성의 글쓰기를 통한 치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글쓰기가 다양한 분야에서 치유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신의 모습에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태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리라. 자신을 객관화하면 조금 더 자신의 문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러한 접근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문학 작품이 치유의 효과를 발휘하는 지점도 바로 이 곳이다. 즉 문학 작품 속의 인물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객관화하여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다라서 문학과 언어는 결국 인문학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이므로, 이러한 문학과 언어를 통한 치유는 인문치료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 좀더 다양한 논의와 깊은 연구가 지속되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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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나라 무제 때... 남자 사마천 남자의 기능을 상실하다. "사기"를 완성하다

 

죽음보다도 더한 치욕으로 여겨지던 궁형을 선택하다. 그의 정치적 입장과 판단 때문에... 그런 현실에서 그를 지탱한 것은 바로 글쓰기...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 "사기"를 집필하면서, 그를 완성해가면서 그는 자신이 삶도 완성해 가고, 상처도 치유해 가다. 그의 책은 세계에서 기념할 만한 책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막대한 영향을 행사했으며, 그를 태사공이라고 부르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역사서의 전범이 되기도 했던 책. 특히 "사기 열전"은 전기문으로써도 또는 문학작품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 되다. 어쩌면 그가 궁형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치열한 글쓰기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궁형으로 인해 그의 역사서 서술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그는 글쓰기로써 자신을 치유했으며 세상에도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  

 

이탈리아 파시즘 시절...안토니오 그람시 감옥에 갇히다. "옥중수고"가 나오다

 

안토니오 그람시... 어렸을 때 다쳐서 등이 굽었다는 사내. 덕분에 작은 체구를 지닐 수밖에 없었으며, 활동적이기보다는 사색적이었던 사내. 이탈리아의 발전을 위해서 고민했던 사내. 공산당에 가입했으나 레닌과는 다른 생각을 지녔던 사내. 이탈리아의 현실을 분석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를 떠나지 않았으나 세계적인 사람이 되었던 사내. 그리고 무솔리니에 의해 감옥에 갇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던 사내. 그러나 그가 남긴 책. "옥중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80년대에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야 했던 책. 그리고 그의 책에 나오는 숱한 말들. 그 개념들. 사회운동에 지표를 제시해주었던 개념들. 헤게모니, 진지전, 기동전, 수동혁명...

그가 감옥에 갇힌 세월은 지옥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생각을 했으며, 그 생각을 글로 써보냈다. 이것이 아마도 그가 버틸 수 있는 힘이었으리라. 그는 글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으며, 이탈리아를 살필 수 있었고, 또 세계를 살필 수 있었으리라.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것도 바로 그의 글 때문이었으니... "옥중수고"가 탄생하게 해준 무솔리니에게 감사해야 하나? 참...그의 유명한 말.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낙관적으로 행동하라"

 

유신 독재 시절... 신영복 감옥에 가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이루다

 

대학강사로 재직하면서 "청구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던 신영복. 어느날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사형 판결을 받다. 사형 판결에서 무기징역으로 다시 20년만에 감형이 되어 석방이 되다. 석방이 되고 난 뒤 성공회대에서 강의하다. 인식론도 존재론도 아닌 이제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관계론을 이야기하다.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지고 짧은 엽서에 보낸 글들은 교과서에도 실리다. 그 중의 대표적인 글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다룬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이고, 또다른 하나는 한명회와 황희를 비교, 대조한 '반구정과 압구정'이다. 그러나 이 글들은 그가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쓴 글들이고, 그를 우리에게 알린 글은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밖으로 써 보낸 글들. 그리 길지 않은 글들 속에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아 보낸 글.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 그는 온 정신을 집중했으리라. 세상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하여 그의 글들은 우리에게 엄청난 울림을 선사하는데... 단지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치유의 힘을 제공해주었으리라. 그것이 바로 글이고, 사람은 가둘 수 있어도 말은, 글은 가둘 수 없다는 이치를 알려주는 그런 사례이기도 하다.

 

미국 초창기 멕시코와의 전쟁...소로우 감옥으로 가다. "시민불복종" 탄생하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소로우는 그 전쟁은 정당하지 않다고 반대한다. 그리고 그런 부당한 전쟁에 쓰일 세금을 낼 수 없다고 거부한다. 법을 위반한다. 당당하게... 그 대가로 그는 감옥에 갇힌다. 물론 친척이 세금을 대신 내주어 금방 풀려나오게 되지만... 그는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법 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악법도 법이다"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부당한 법은 거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참 이질적이다. 그러나 법을 지키면서 법을 고칠 수 있을까? 영국에 항거했던 간디도 법을 지키면서 법을 바꾸는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벌인 "소금 행진"을 보라. 악법은 어기면서 고쳐야 한다는 사례가 되지 않겠는가... 여기서 법은 법이니까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은 가진 자들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게 된다. 학교도 보라. 교칙이 점점 완화되는 것은 바로 소위 말하는 날라리들의 행동때문 아니던가. 그런 선구적인 위반들이 있기에 고쳐지지 않는가. 법이니까 지켜라가 아니라, 그 법이 정당한지 아닌지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민주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 아닌가. 소로우는 그를 몸으로 보여주었고, 그런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써냈다. 바로 유명한 "시민불복종". 세상이 하도 수상하니 그도 강호에 가 생활하게 되는데... "월든" 이것이 그를 치유한 힘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들은 바로 그 "다름" 때문에 옥에 갇히고 탄압을 받았지만, 바로 그 "다름" 때문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건강하게(이는 정신적으로) 지낼 수 있었다. "다름"은 결코 물리적으로 가둘 수 없다. 그것을 가두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자신이 갇히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이렇게 역사적인 사례들이 많은데... 

 

이런 다름을 실천한 사람...더 많이 있지만, 네 나라의 이 사람들로 마치기로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대, 참으로 답답한 시대...

누군가도 기록으로 남기면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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