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로 머리가 아픈 한 주다. 긴 책을 읽기에는 머리가 정리가 안된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짧은 시집이다.

 

시집이 짧다고 하는 말이 우습기도 하지만, 소품이라고 해야 하나, 시가 많이 수록되지 않은 시집이다. 그리고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주로 나무, 곤충, 삶과 죽음 등을 다루고 있다.

 

제목도 모자나무인데... 죽은 사람들의 모자를 달고 있다는 모자나무, 그런데 이 모자나무는 죽은 사람들만 보아야 하는데, 그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건, 죽음과 삶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삶이 곧 삶이 아니고, 죽음이 곧 죽음이 아닌 상태. 삶과 죽음이 우리곁에 늘 함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집에서는 이중성을 다루되, 이중성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이것이 그것이고, 그것이 이것인 상태가 된다. 결국 시집의 뒷부분에 가면 작은제목이 '노자의 가르침'인 연작시가 나오는데 노자란 있음보다는 없음을 추구한 사람 아니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뒤집어 생각하게 한 사람 아니던가.

 

이 시집에서 '노자의 가르침'은 순서를 거꾸로 편집되어 있다. 보통은 1,2,3...이런 순으로 나가는데... 이 시집에서는 8,7,6,...이런 순서로 편집되어 있는데... 이는 앞과 뒤를 구분하는 것이 덧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하여 산을 오르는 길은 곧 내려오는 길임을, 반복되지 않는 길은 곧 죽음의 길임을, 우리의 삶은 이러한 반복을 통해 이루어짐을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에 눈에 확 들어온 시 하나. 산문시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이 내 마음을 끌었다고 할 수 있다.

 

불안을 꿈꾸는 사과... 불안을 꿈꾸는 사람. 결국 불안을 꿈꾼다는 얘기는 자신의 처지를 바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즉 자신을 끝까지 끌고 가본 사람... 그 사람이 자신의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내 자신이 나를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나를 극한까지 끌고 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

 

'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거기부터 시작하는 자세. 그래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

 

지금, 시대... 우리는 '불안'에 떨고 있다. 세상이 다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안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 결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우리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우해 불안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불안 자체를 꿈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참, 여러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시다.

 

사과나무의 불안

 

  사나과무가 불안한 것은 사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꼭 떨어지기 때문이다. 불안에는 요행이 없다. 불안은 이루어진다. 불안이 이루어지지 안흔 경우는 불안을 꿈꿀 때이다. 불안을 꿈꾸면 불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과나무의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 남아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알들을 보라. 불안을 꿈꾸는 사과알들이다. 떨어지지 않는 사과알들이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불안을 꿈꾸는 사과들은 더 빨리 떨어진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이지 불안을 꿈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남아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알들은 오로지 불안을 꿈꾼 사과알들이다. 떨어져 주려고, 기꺼이 떨어져 주려고 마음먹은 사과알들이다. 불안에 쾌히 시달리자는 사과알들이다. 불안을 꿈꾸는 사과나무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박찬일, 모자나무. 민음사. 2006년.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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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 그리고 에밀 졸라.

 

두 이름이 생각이 나는 요즈음이다. 신문을 보니 통합진보당에 이어 특정 시민단체에도 종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하던데...

 

신반공시대... 신유신시대...신긴급조치시대...이렇게 말해야 하나...

 

매카시는 한 때 미국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 의원이었다. 그의 말로 인해, 그의 주장으로 인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세상에서 쫓겨나야 했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미국에서도 냉전시대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하기야 우리가 알고 있는 찰리 채플린조차도 이런 매카시 광풍을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참...

 

그러나 매카시는 곧 몰락하고 만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광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가 진실이라고 믿었건 믿지 않았건을 떠나 그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보다 잘나가는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험담하고, 비난하고, 욕설하고 또 그들을 추방하려고 했다.

 

역사에서 이런 그는 부끄러움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또 반복되어서는 안될 이름으로도 남아 있고.

바로 유명한 용어 "매카시즘"

 

반면에 에밀 졸라. 그는 간첩죄로 기소된 유대인 드레퓌스를 변호하는 글을 썼다. '나는 고발한다' 이 글 때문에 그는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는 진실이 무엇인지, 진실을 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글로 공표했다. 그것이 자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지킬 양심이고, 자존감이었다.

 

그 때 졸라는 박해를 받고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후에 그의 이름은 정의의 대명사로, 참여하는 지식인의 대명사로 남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런 두 사람의 행태를 떠올리게 하는 시가 있다. 신현림의 '먼저 격려하고 축복하는 세상이 그리워'라는 시다.

 

먼저 격려하고 축복하는 세상이 그리워

- 진실을 죽이는 세상에 대한 통탄

 

먼저 격려하고 칭찬하는 세상이 그리워

험담 철조망이 아니라, 비난이 아니라, 욕설 작살이 아니라

격려하고, 칭찬하고, 축복해 주는 세상이 그리워

 

진실의 죽음은 어떤 씨앗도 되기 힘든 고통이었다

대체로 불혹이면 자기 이름이 상할 일들은 못 견딘다

달이 주르르 미끄러지고 해가 떨어져도 지킬 게 양심이고, 자존감이다

 

세상 밖에서 바라본 세상은

질투와 시샘, 선망, 뒤틀린 욕망을 전시한 싸구려 상점이다

까닭 없는 비난의 땅바닥엔 시샘과

질투의 뿌리가 징그럽게 엉켜 있음을 알기에 무시하며

화난 하이힐로 땅바닥은 안전한가 두드리며 지나친다

화려해 보였으나 초막처럼 쓸쓸한 진실을 애도한다

 

남의 노력에 박수 칠 여유가 없음 입 다물고 지나치시라

스스로 깊은 바다를 헤엄치지 못한 얄팍한 심장을 보이지 말고

고마워하시라 적어도 그대가 못 산 삶을 살지 않는다

 

나이 마흔이면 달이 주르르 미끄러지고

해가 떨어져도 지킬 게 양심이고, 자신의 이름이더라

진실을 죽인 일은 없는가, 고개를 숙이고

나도 나를 살펴볼 테니 님들도 자신을 돌아보시라

먼저 박수 치지 못할 바엔 그냥 지나쳐야 하고

먼저 격려하고, 칭찬하고 축복해야 참으로 사람 아니런가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102-121쪽

 

제목이 마음에 들어 헌책방에서 구입한 시집인데... 읽다보니 이런 시가 있었다.

 

'야, 이거 지금 우리 세태와 딱 맞는 시구나.'

 

낮은 곳으로, 자신들이 돌보지 못한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정당을 해산하라고 하는 정부와 집권여당, 그리고 방관하고 있는 또다른 거대 야당. 이들에게 진보정당은 시기, 질투의 대상인가? 오히려 진보정당은 자신들이 빠뜨리고 있던 일들을 상기시켜주는 고마운 정당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진보정당처럼 하지는 못할지라고 그들을 격려하고 칭찬해주어야 하지 않나... 그것이 거대 정당의 의무 아니던가.

 

시에서처럼 '먼저 박수 치지 못할 바엔 그냥 지나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렇게는 못한다. 그래도 너희는 그렇게 하니 잘 해봐라. 이정도는 되어야 거대 정당이라고 할 수 있고,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못 본체하는 것을 떠나 존재하지 못하게 막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이는 자존감이 없는 행동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하여 쓸쓸하고 우울하다. 씁쓸하다. 인생이. 이 사회가.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민주주의가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낙엽은 또다른 봄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추락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절망만을 남기고 있다.

 

치유가 필요하다. 위로를 받고 싶다. 그것을 사회에서 받아야 하는데... 함께 치유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선 자신만이라도 건강해야 할 터.

 

시인은 시를 써서 위로를 받는다지만, 나는 그런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시를 쓰는 밤

 

시를 쓰면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지 모른다 내 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소리에 밴 향기를 느낀다 시를 쓰면 시어들이 나를 밀어내며 끌어당긴다 왕릉의 빛을 받고 투명해지는 손, 손 닿는 물건마다 빛이 나듯이 물방울같이 투명해진 마음이 닿으면 책과 의자도 창밖 건물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참았던 비명도 쓸쓸함도 터져 바람 속에 기도 속에 녹아내린다

 

  시를 읽거나 쓴다는 건 살얼음판 세상에 사랑 하나 심고 침대 위에 사과꽃 무성히 피어내는 일이니 두 번 살 수 없는 생을 시로써 수없이 고쳐 가며 겸손히 다시 사는 고마움이니 인생을 비로소 누린다는 기분이니 깊은 어둠 와인처럼 마시는 시간 침대 타고 달리는 시간 빛의 왕릉이 내 집이 되는 순간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61쪽.

 

이렇게라도 위로를 받아야 하겠지. 더 많은 시들도 위로가 되는데...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 그래. 사회문제에서 이제는 개인으로 내려와 이런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이렇게 슬프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시를 읽으며 그나마 위안을 느낀다. 시인의 첫번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도 읽어볼 것. 

 

침대를 타고 달렸어

 

누구나 꿈 속에서 살다 가는 게 아닐까

누구나 자기 꿈속에서 앓다 가는 거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누에가 고치를 잣듯

포기 못할 꿈으로 아름다움을 얻는 거

 

슬프고, 아프지 않고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찌 회오리 같은 인생을 알며

어찌 사랑의 비단을 얻고 사라질까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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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의 역사 - 역사 속 억압된 책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
베르너 풀트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금서. 강제로 읽히기를 금지당한 책.

분서. 금지에서 더 나아가 제거당한 책. 그것도 불태워져 버린.

 

 

예전에 '호기심 천국'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실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마, 하지마 하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더 호기심을 가지고 해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도 금지한 것을 해보려고 한다.

 

금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역사에서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해롭다고 생각한 책들을 금서로 지정했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했을 뿐이고, 그냥 놓아두었더라면 금세 잊혀졌을 책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중국 진나라 때 분서갱유라고 우리들이 사상을 탄압할 때 늘 쓰는 말이고, 이렇게 분서갱유를 했음에도 유교가 중국의 지도이념으로 자리잡게 하는데는 실패했음을 역사를 통하여 배우기도 했는데... 하다못해 중국의 이지란 사람은 자신의 책이름을 "분서"라고 짓기도 했으니...

 

이게 동양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일어난, 그것도 한 때 일어난 일이 아닌,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금서의 역사...

 

그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아무리 금서로 지정했어도 그 책을 뿌리뽑지는 못했고, 오히려 더 그 책이 많이 읽히게 만들었음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유는, 금서로 지정하는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로마시대부터 중세시대, 이 중세시대는 책만 태운 것이 아니라 사람도 함께 태웠으니 무시무시한 시대였음에도 금서로 지정된 책들을 보관하려는 사람, 어떻게든 빼돌리려는 사람이 있었고, 또 이들이 성공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근대에 들어와서도 이러한 금서에 얽힌 일들이 무척 많았음을 이 책에서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가 오래 전부터 성숙해왔다고 생각해온 유럽과 미국에서도 아직까지도 금서가 존재하며, 그 이유가 반사회적이고 음란함, 지나친 폭력에서 이제는 개인의 인격 침해로 나아갔다고 하니, 어쩌면 금서는 표현의 자유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표현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국민들의 교양 수준을 알려주는, 또 지배권력의 포용정도를 알려주는 잣대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자신 있는 사람은 주변의 시선에 무관심하듯이, 지배권력이 자신이 있다면 굳이 금서로 지정할 책은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개인적인 인격 침해가 상당히 인정되는 책에 대해서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는 사실이라면 제외하고, 내밀한 사적인 일에 해당될 때는 판매 금지할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는 그냥 놓아두면 자연스레 문화적인 수준에 의해 정화가 된다.

 

그러한 믿음이 없는 사회는 문화적인 수준이 낮은 사회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몇몇 작품들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세계명작이라고 배우는 작품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율리시즈", "1984", "로리타", "호밀밭의 파수꾼" 등등

 

이것들을 누가 지금 금서라고 하는가? 오히려 세계명작이라고 해서 추천도서 목록에 늘 오르는 작품들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은 법적인 금지나 또는 권력으로 인한 금지로 인해서 책이 읽히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러한 책이 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ㅡ문화적인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바른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서 우리나라 상황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가가 독일 사람이라 우리나라 소식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런지 중국까지는 다루었는데, 우리나라는 다루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시 다채로운 금서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사문난적'이라고 하여 글을 잘못 써서 추방당하거나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쟁 전후에는 책이나 글을 잘못 쓰면 감옥에 갇히거나 역시 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나서 사회가 좀 안정이 되고 나서도 퇴폐 음란물이다, 반사회적이다 하여 금서가 된 책들이 꽤 있었는데... 지금 얼핏 떠올려도 몇 가지 책이 생각이 난다.

 

"임꺽정(林巨正)", 한 때 식자판까지 압수당했다는 그 책. 우리 말을 이렇게도 잘 살릴 수 있을까 한다는 책. 조선시대 풍습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고, 또 우리말의 보고라는 소리까지 듣는 이 책은 한 때 작가인 홍명희가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었다. 지금은 많이 읽히고 있지만.

 

또 남정현의 '분지' 미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던 책. 필화사건이라고 하지. 작가가 구속까지 되었다니까.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이 책을 가지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회적-정치적인 이유말고도 마광수의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금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문화 수준이 소설을 읽고 사람들이 그것을 다 따라할 만큼 낮았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몇 년 전인가, 얼마 전에는 국방부에서 군인들이 읽으면 안 되는 책이라고 해서 국방부 금서 목록이 유츌이 된 적이 있었다. 시중에 이미 출판이 되어 유통되고 있는 책을 국방부에서는 군인들만 읽으면 안 된다고 했었는데...그 금서 목록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여럿 있었다는 사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어쩌면 그리도 통하는지...

 

하여간 참으로 많은 금서에 얽힌 이야기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아직 이 책처럼 우리나라 금서의 역사를 쓴 책을 만나보지 못했다. (이미 나왔는데, 내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무슨 필화 사건이라고 하는 책은 어디선가 제목을 본 듯도 한데...)

 

그런 책도 나와서 우리나라 금서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줘도 좋을 듯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명심해야 한다고 한 생각.

 

사람은 가둘 수 있을지 모르나 사상은 가둘 수 없다. 마찬가지로 책은 태울 수 있으나 그 책 내용까지 없앨 수는 없다. 결국 이기는 것은 수 권력이 아니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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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금서의 역사> 금지조치 당한 책들의 모든 것
    from 책으로 책하다 2013-11-24 16:22 
    [서평] ⓒ시공사 시간을 거슬러 중국 진나라 시황제 때로 가보자. 당시 진나라는 상앙과 한비자 등의 법가를 국가 통치 체제의 주된 전략으로 받아들여 우민 정책과 함께 법에 의한 획일적인 사회 통제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중국 대륙에 뿌리내려져 온 유가 학문과 사상은 이 체제를 비판하였다. 중앙집권적 군현제를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진나라의 승상 이사는 정부가 시행하려는 정치를 비판하는..
 
 
 
한글 이야기 1 - 한글의 역사 한글 이야기 1
홍윤표 지음 / 태학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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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에 대한 책이다.

 

한글의 이름이 왜 훈민정음인지, 도대체 한글은 어떤 서체로 쓰였는지, 한글은 어떻게 읽혔는지, 한글로 된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한글의 모든 것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한글을 연구하면서 주로 어휘 변천사나 문법 등을 중심에 놓는데, 그런 전문적인 분야 말고도 한글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음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그러한 한글에 대한 책 중에  1권으로 '한글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래서 편제가 1부 한글이 걸어온 길, 2부 한글과 문헌, 3부 한글과 교육으로 되어 있다.

 

'한글이 걸어온 길'에서는 왜 이름이 훈민정음인지, 또 훈민정음의 서문에서 문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문자라는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부터 가로쓰기를 했는지, 띄어쓰기는 또 언제부터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료들의 사진들을 풍부하게 제시해주고 있어서 눈으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글과 문헌'에서는 더 많은 자료들이 제시되는데, 한글로된 편지글도 제시되고 있고, 또 종교 문헌들도 제시되고, 그리고 한글전용으로 간행된 최초의 책이 무엇인지 등을 알려주고 있다.

 

'한글과 교육'에서는 우리가 읽었던 상록수의 한 장면으로 예로 들어 도대체 예전에는 한글을 어떻게 교육했는지를 살펴보고 있으며, 신문사를 중심으로 한글보급운동이 일어난 것을 살피고, 독립운동가들은 어떻게 한글교육을 했는지를 박용만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한글이야기라고 해서 딱딱한 학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궁금해했던 내용이나 또는 한글에 대해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하는 것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라고 자랑하는 한글이지만 도대체 왜 과학적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러한 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학교 다닐 때 한 번쯤은 누구나 배웠던 훈민정음 서문에 대한 뜻풀이, 즉 늘 헷갈려 하는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라는 구절에서 '중국 문자와 달라서 뜻이 통하지 않는다'로 많이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중국은 문자와 말이 일치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문자와 말이 일치되지 않아 혼란스럽다고 할 수 있다는 말,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이 구절을 "국지어음(國之語音)이 이호중국(異乎中國)하여 여문자(與文字)로 불상유통(不相流通)"이라고 하는 경우와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로 하는 경우로 서로 다르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글을 창제한 목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생활에 맞는 문자로 모든 국민이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한글의 위대성이 나타나고... 이런 일은 나중에 국제언어를 만든 자멘호프의 사상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한글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언어를 넘어서서 화합의 언어, 평화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한글,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고, 요즘은 외국어, 외래어에 많이도 침윤당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쓸 말이고, 또 우리의 사상을 기록할 말이다.

 

이런 한글에 대해서 이모저모 알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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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 제출

 

이게 뭐야...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포털에 뜨는 기사다. 통합진보당이 스스로 해산한 것도 아닌데, 정당정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정당을 해산하라고 정부가 청구안을 제출하다니...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법무부 장관이 청구안을 헌재에 제출했다고 하는데... 삼권분립이 지켜지고 있는 나라에서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정당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집단으로 합법적인 조직이고,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펼칠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한 정당을 해산시키려 하다니.

 

이렇게 정당이 해산 된 것은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났던 일 아닌가. 게다가 행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고 있는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이게 뭔가?

 

통합진보당이  자신들의 선거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나서 정당이 깨지고, 또 알오니 뭐니 해서 의원이 구속이 되고 하지만, 그래도 한 정당을 이렇게 무참히 대우해도 되는 걸까?

 

어쩌면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당정치의 죽음을 알리는 날이 되지 않을까?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만, 적어도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에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것이 확립(?)이 되었고, 또 사회 전반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교조의 법외노조화에 이어 통합진보당의 해산 청구라...

 

왜 이렇게 자꾸 기시감이 느껴질까?

 

1958년이 다시 돌아온 걸까?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벌써 잊었는가?

 

한 나라 정당의 당수이자 한 때 장관도 했었고, 또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왔던 죽산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나라. 그 때 진보당이 해체되었는데...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진보당"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한참 젊었던 그 시절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나이가 먹은 지금, 그런 일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그만큼 우리나라도 민주주의 역량이 축적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법원에서 판결도 나지 않았는데.. 그것도 당이 아니라 당원인 사람들이 구속되었을 뿐인데... 다시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한 정당에 대한 이런 태도는 그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을 배제하는 행위밖에는 되지 않을텐데... 어떤 사상을 지니고 있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 정부는 모든 국민이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은 어째서 행정부가 입법부도 관리하려고 드는가? 삼권분립은 어디 갔는지...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 아니었나? 그래서 국정감사도 하고 그러는 것 아닌가?

 

왜 반대로 가는가? 행정부가 또다른 헌법 기관인 국회에 간섭해서 정당을 해산해야 된다고 헌재에 청구하고 있는 현실이 제대로 된 현실인가.

 

1985년에 나온 책 목차만 다시 보았다.

 

1. 진보당 문헌

2. 진보당의 정책과 특수조직활동

3. 진보당 사건 관계자료

4. 진보당 사건과 판결을 보는 시각

5. 조봉암 관련자료

부록1. 진보당 간부명단 및 간부 약력

부록2. 진보당 일지

부록3. 진보당 관계자료 총목록

 

이거 어째 몇 년 뒤에 진보당에다 두 글자만 더 붙여 또 하나의 책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역사는 앞으로 가도 시원찮은데.. 왜 자꾸 뒤로만 가려고 하는지...

 

헌재의 판결이 어찌될지 두고볼 일이다.

 

다만 정당은 그 정당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당을 지지했던 국민들도 있다는 사실을 헌재에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정부는 일부 국민을 위한 행정부가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행정부라는 사실도.

 

같음만을 추구하는 사회.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권대복, 진보당, 지양사. 1985년.

 

아마, 이 책은 구하기 힘들 거다. 나온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인터넷에서 책표지의 사진도 구하기 힘드니. 그래도 먼 옛날... 지금과 비슷한 이름을 지닌 정당이 지금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던 역사적 사실로 읽어둘 만한 책이다.

 

아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해서 남겨두기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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