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제목이 참... 역시 헌책방에서 산 시집인데... 시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시집을 산 이유는 출판사에 대한 믿음 때문인데...

 

이렇듯 어느 한 분야에서 믿음을 주기란 쉽지 않은데... 아직도 자기들이 잘났다고 하는데도 남들은 믿어주지 않는 집단이 있으니. 그들은 그것을 알까?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면 너무도 뻔뻔한 사람들이고, 모르면서 그렇게 행동한다면 너무도 무식한 사람들일텐데...

 

자신들을 선량(選良)이라고 한다. 뽑힌 인재라는 뜻일텐데... 도대체 그들을 뽑아준 사람들도 문제지만, 매번 최선이 없으니 차악(次惡)을 선택한다고 뽑았으니... 이걸 알고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한다면 좀더 좋은 사람들이 될텐데.

 

출판사를 믿고 시집을 고르듯이 정당을 믿고 사람을 뽑는 경우도 꽤 있을텐데... 그 정당이 과연 믿음에 부합할까? 그렇게 믿고 뽑았는데, 영 아닌 사람들도 꽤 있지 않을까? 그러면 정당에 대한 믿음 역시 시나브로 사라져갈텐데...

 

창비란 출판사 마찬가지다. 적어도 문학 분야에서는 믿음이 가는 출판사 아니던가. 예전부터 우리나라 문학을 선도해오던 출판사이니 말이다.

 

시집의 경우도 다양한 시집을 내었고, 그래서 어느 시집을 골라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여러모로 궁리를 하면서 읽는데...

 

도대체 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뭔 뜻인지 알 수가 없다는 얘기는 마음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요즘 시집들이 마음으로 읽기보다는 이성으로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서정홍 시인이 쓰는 시와는 정반대에 서 있다고 보면 된다. 도대체, 이렇게 몽환적일 수가 있는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다.

 

대표 제목이 된 시인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대표시이니 자꾸 읽게 되는데... 읽으면서 '구두를 신고'라는 말은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준비를 했다는 뜻으로 생각을 하는데, '잠이 들었다'란 표현은 준비는 했으되, 나가지는 않는다는, 그래서 결국 자신은 자신의 내부로밖에 침잠할 수 없다는, 그런 히키코모리적인 내용으로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 속으로만 들어가고 마는, 그것이 '내 몸의 가지들은 몸 속으로만 뻗어갔다'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사람들과의 단절은 '도시의 지붕들이 날아가는 사이가 길들도 사라졌다'고 표현되고 있다. 결국 자신은 '구두 속에서 나오지도 않았다'고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상식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을 때, 그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 속으로만 들어간다. 그의 이야기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자신을 향해서만 행해진다. 이런 세계 속에서 논리를 발견하기란 힘들다. 세상은 그 자체로 혼돈인 것이다.

 

이런 혼돈을 이 시집에서 담고 싶었을까?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 시어들이, 상황들이 시 속에 나타나고 시집에 혼재되어 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이야 하는 듯이. 그렇담 시인이 그려낸 이런 혼란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출판사가 믿음을 주고 있듯이, 정당들이 믿음을 주어야 하듯이, 시인은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믿음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믿음을, 우리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에도 "이야기"로 살아남는 "세헤라자데"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시인은 그래서 "카산드라"가 아니라 "세헤라자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이야기는 끊어질듯 끊어질듯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런 이어짐이 우리를 계속 살아있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 시인은 자신을 "세헤라자데"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 험난한 세상,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 시집의 제일 앞에 이 제목의 시가 나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 비록 '구두를 신고 잠이 들'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지금은 자신에게로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가 횡설수설하고 있지만, 도무지 논리를 찾을 수가 없지만, 나중에는 밖으로 향할 수 있다는, 혼돈의 세상을 질서의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그런 자세. 왜냐, 시인은 언제든 뚜벅뚜벅 걸어나오면 되니까. 구두는 이미 신고 있으니까.

 

세헤라자데

 

  옛날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조용한 비명같은 이야기 천년 동안 짠 레이스처럼 거미줄처럼 툭 끊어져 바람에 날아가버릴 것 같은 이야기 지난밤에 본 영화 같고 어제 꿈에서 본 장면 같고 어제 낮에 걸었던 바람 부는 길 같은 흔해빠진 낯선 이야기 당신 피부처럼 맑고 당신 눈동자처럼 검고 당신 입술처럼 붉고 당신처럼 한번도 본 적 없는 이야기 포르말린처럼 매혹적이고 젖처럼 비릿하고 연탄가스처럼 죽여주는 이야기 마지막 키스처럼 짜릿하고 올이 풀린 스웨터처럼 줄줄 새는 이야기 집 나간 개처럼 비를 맞고 쫓겨난 개처럼 빗자루로 맞고 그래도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개 같은 이야기 당신이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 매일 당신이 하는 이야기 내가 죽을 때까지 죽은 당신이 매일 하는 그 이야기 끝이 없는 이야기 흔들리는 구름처럼 불안하고 물고기의 피처럼 뜨겁고 애인의 수염처럼 아름답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이야기 실험은 없고 실험정신도 없고 실험이란 실험은 모두 거부하는 실험적인 이야기 어느날 문득 무언가 떠올린 당신이 노트에 적어내려가는 이야기 어젯밤에 내가 들려준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내일 밤 내가 당신 귀에 속삭일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강성은,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창비. 2010년 초판 3쇄.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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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 혁명 - 안전한 식수를 향한 인간의 권리와 투쟁
제임스 샐즈먼 지음, 김정로 외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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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요소. 그러나 단지 수치만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우리 삶을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물이다.

 

또한 지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어쩌면 공기만큼아니 흔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흔한 존재가 우리에게 귀한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바로 물 중에서도 먹는 물에 해당이 된다.

 

물을 종류별로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만은, 지구상에서 가장 물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닷물일텐데, 이 바닷물은 우리가 먹을 수가 없다. 다른 지구상의 생물들의 삶을 유지시켜 주고 있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식용할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다.

 

지하수. 이것 역시 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보다 보지 못하는 물이 더 많다는 현실. 그럼에도 이 지하수 중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물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는 사실.

 

이것은 이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을 확보해주겠다는 의미로 방글라데시에 많은 우물을 팠는데... 처음에 있었던 환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니 과학의 발달이 일어남에 따라, 또는 물의 성분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그 우물물에서 천연 비소가 함유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해내었으니...

 

그래서 우물을 마실 수 있는 우물과 마실 수 없는 우물로 구분하고는 있지만, 다른 물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아직도 비소가 함유되어 있는 우물에서 물을 구해 마신다고 한다는 현실.

 

지하수 중에는 이처럼 우리가 먹을 수 없는 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물들. 강, 호수 등등. 이 중에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이 얼마나 될까? 얼마 되지 않는다. 이 물들은 많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개발 국가에서는 강과 호수의 물들은 마실 수가 없다.

 

마실 수 있기는커녕 이 물들은 오히려 질병을 유발하고 있다고 하니...

 

이렇게 우리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 중에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이 얼마나 될까 하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결론이 지구상에 물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물을 얻지 못해 멸망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물부족은 겪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겪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재냐 경제재냐

 

물로 인해서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물이 많이 오염되어 있지만, 오염시키지 않으려는 노력도 만만치 않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물에 관해서는 옛날부터 끊이지 않는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물이 공공재냐 경제재냐 하는.

 

물을 공공재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물에 대한 접근권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권리가 된다. 따라서 물에 대한 접근을 막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돈이 없다고 하여 물을 마시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또한 국가는 국민들이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은 돈을 주고 이용하더라도, 그것은 생존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만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 서면 물에 대한 민영화는 논의할 가치도 없다.

 

이와 반대로 경제재로 접근을 하면 물은 상품이 된다. 상품은 수요와 공급에 따르기 때문에 물의 가격은 그 때 그 때 달라질 수 있으며, 구입 능력이 없으면 물도 구입할 수 없게 된다.

 

경제 논리를 충실히 따른다면 물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보다는 민간 업체에서 운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이런 효율성을 따지던 예로 볼리비아를 들고 있다.

 

물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업체에 물관리를 넘겼지만 곧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정부가 물의 민영화를 포기한 사례를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 때 수도사업 민영화란 얘기가 나온 적이 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볼리비아의 예가 우리에게도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순환하는 물

 

물은 순환해야 한다. 아니 지구상의 모든 것은 순환해야 한다. 이 순환이 끊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생활하수이다. 이 생활하수는 이제는 순환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그냥 쓰레기일 뿐이다. 어디로 가나?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물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전락하면서.

 

지금 지구는 딱딱한 콘크리트로 덮여 있으며, 물은 관을 통해 흘러 바다로 나아갈 뿐, 땅 속으로 스며들 기회를 많이 잃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지하에 스며들어 있다가 다시 지상으로 나와 사용되다가 증발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순환과정을 많이도 잃었다. 어디선가 단절이 되었다.

 

다른 물들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는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로 라는 말을 하는데... 우리가 쓰는 생활하수를 다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예로 최근에 우주비행사들이 그들의 오줌을 정화하여 물로 만들어 사용한 예를 들어주고 있으며, 또한 생활하수를 정화하여 다른 방향에서 사용하는 예도 들어주고 있다.

 

그렇다. 물은 순환하여야 한다. 순환하지 않는 물은 죽음의 물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재앙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물이 순환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생수냐 수도냐

 

예전에 우리나라는 물을 판매한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지하수가 많던 시절, 그 시절에 수도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너무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으므로.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수돗물은 마시지 않는 물, 어쩔 수 없을 때만 마시는 물. 주로 화장실에서 사용하거나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공공기관에서조차도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정수기를 설치하고 있는 실정이니...

 

이런 틈을 비집고 생수 판매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생수가 일반 음료의 판매를 앞질렀다고 하니.. 엄청난 판매량이다. 이렇게 생수가 판매되는 데는 여러 문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생수를 담는 플라스틱통이다.

 

이것은 또다른 오염원이 되니, 우리는 안전하기 위해서 물을 마시는데... 그런 물을 마시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를 또다른 위험에 밀어넣고 있는 형국이다.

 

이 책을 보면 생수에 대한 역사는 순환하고 있다. 물을 함께 마시던 시대에서 자신만의 생수를 유리병에 담아 마시던 시대로, 다시 정수시설을 갖추게 됨으로써 수도를 이용하던 시대로, 그러다가최근에 다시 생수를 마시는 시대로 돌아섰다고 하는데...

 

이제는 생수가 대세가 된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수 시장은 전세계에서 가장 이윤을 많이 남기는 시장이 되었고... 한참 전에 나온 책이 물에 관한 이야기 "블루 골드"였는데... 정말, 물은 이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생수 판매가 앞으로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순환하지 않는 물소비는 결국 물의 고갈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바닷물을 담수로 처리하는 기술이 발전하여, 바닷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예가 늘어날 것인데... 바닷물을 담수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지구 파괴 행위가 일어난다고 하니...

 

물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지속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우리가 마시는 물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또 쟁점이 되는 사항을 중심으로 살펴본 책이다. 물에 관한 여러가지 일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있다. 물, 정말 있을 때 잘해야 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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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1
김윤식 지음 / 그린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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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의 라이벌 의식"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나름대로의 위치를 차지한 사람들이 자기만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자기를 북돋우어 주는 남이 있음을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다.

 

가끔 우리는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을 한다. 선의의 경쟁이 더 나은 나로 발전시킨다고... 어떤 사람은 좋은 경쟁은 없다고, 경쟁은 나에게 독이 된다고 이야기하고도 있지만... 경쟁이 남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거울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경쟁은 필요한 것이 된다.

 

이 경쟁은 순위를 매기는 경쟁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경쟁이다. 즉, 거울을 보고,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선 위치, 그것을 파악하기 위한 거울, 그것이 바로 경쟁이다. 이러한 경쟁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쟁상대. 그것을 영어로 라이벌이라고 한다. 라이벌이라는 말에는 나와 대등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나하고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바로 나와 비슷한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더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자연스레 느낀다.

 

그런 라이벌, 우리 문학사에 많다고 한다. 이 책의 맨 뒷부분에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다. 아니, 열거가 아니라 "문학의 문학"이라는 잡지에 연재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연재된 글들 중에서 책으로 엮을 만한, 즉 남이 이해할 만한 작품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에는 "조윤제와 양주동", "김수영과 이어령",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지성", "박상륭과 이문구",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김윤식과 김현"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이 중에 김윤식과 김현에 대한 글은 소략하게 실려 있어서 논외로 하는 것이 좋겠고... (김현은 "창작과비평 대 문학과지성"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니 말이다)... 조윤제와 양주동은 이 들의 중심에 경성제국대학이 있다고 한다. 학문의 영역으로써의 경성제대에 관해서 우리 문학을 확립해 가는 양주동과  조윤제는 상대적인 입장에 섰다기보다는 같은 길을 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우리문학 초창기의 학문적 성과를 집성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가 있는데... 이 뒤에 "김수영과 이어령"의 논쟁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커다란 성과를 거두지도 못했다고 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창작과비평 대 문학과지성", 그리고 "박상륭과 이문구"에 대한 장이다.

 

이들에게만큼은 이 책의 저자가 자신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리라.

 

창비와 문지는 70년대 우리나라 문학을 이끌어간 양대 산맥이었으니, 자료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차이까지 논할 것이 많고, 창비쪽보다는 문지쪽에서, 특히 문지를 주도한 김현의 입장에서는 꾸준히 창비를 의식하고 잡지를 꾸려나갔다고 하니, 김현과 공동 저작을 낸 적이 있는 저자로서는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박상륭과 이문구"는 바로 동시대인 아닌가? 특히 비평을 업으로 삼아온 저자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물만난 고기같지 않겠는가.

 

스승 김동리를 축으로 그를 극복해가는 방향이 달랐던 박상륭과 이문구. 가장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스승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이 책에서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오랫만에 문학비평서를 읽었다고 해야 하나? 특히 대학을 졸업한 이후 손에서 많이 떨어져 있었던 분야인데... 친숙한 이름들이 많아서 읽어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 책이다. 읽으면서도 오랫만에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기도 했고.

 

구체적인 내용은 잊어도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필요한 것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을 찾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이런 "라이벌"에 관한 책을 읽는 의미 아니겠는가.

 

자, 나를 비춰줄 거울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떤 라이벌을 만나고 있는가?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나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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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

 

이 이름만으로도 시집을 구입하게 만든다. 김광섭. 얼마나 많이 들었던 이름인가. 그것도 학교 다닐 때 국어 시간에 또는 문학 시간에 배웠던 이름. 친숙하다.

 

그가 우리나라 초창기 시인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시 중에서 '성북동 비둘기'만큼 알려진 시도 없는데, 이 시집은 75년에 나왔지만, 그간 발표된 그의 시집들에서 시를 발췌한 것이다.

 

시를 읽은 이유가 뭘까? 마음이 우울할 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그런데.. 어떤 시가? 그런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시를 읽는다.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시가 있다. 그 시가 나를 치유해 준다.

 

그런데 이번 시집을 읽다 보니, 시인에게도 시가 치유가 되나 보다. 하긴 글읽기나 글쓰기나 다 치유의 과정일테니.

 

시인의 아내가 세상을 뜨게 되었을 때의 과정이 '깨끗이와 아내의 죽음'이란 시로 표현되어 있는데, 시뿐만이 아니라 그 시의 끝에 시인은 '노우트'라고 하여 자신의 글을 적어놓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의료사고의 현실. 그런 현실에서 시인은 시를 통해서 자신을 치유해 나가고 있다. 아직도 이런 일이 많은데... 이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아직도 유효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니, 시는 보편적으로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북동 비둘기'와 노래로도 불린 '저녁에'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시는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세상을, 자신을 노래하고 있다.

 

계절은 겨울이 되고 있는데, 계절만이 아니라 다시 사회도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지, 이 추운 시대에 김광섭의 "겨울날"을 읽으며 겨울을 버티고 싶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시집을 선뜻 집어든 이유가.

 

어떤 이는 누구의 발언을 문제 삼아 당신의 나라는 어디인가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지... 어떤 나라라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 그 나라... 참...

 

김광섭의 '나의 사랑하는 나라'라는 시... 그래, 이게 그래도 내 나라다. 나는 나라를 이렇게 생각해야겠지.

 

나의 사랑하는 나라

 - 김광섭 

 

지상에 내가 사는 한 마을이 있으니 / 이는 내가 사랑하는 한 나라이리라

 

세계에 무수한 나라가 큰 별처럼 빛날지라도 / 내가 살고 내가 사랑하는 나라는 오직 하나뿐

 

반만년의 역사가 혹은 바다가 되고 혹은 시내가 되어 / 모진 바위에 부딪쳐 지하로 숨어들지라도

 

이는 나의 가슴에서 피가 되고 맥이 되는 생명일지니 / 나는 어데로 가나 이 끊임없는 생명에서 영광을 찾아

 

남북으로 양단되고 사상으로 분열된 나라일망정 / 나는 종처럼 이 무거운 나라를 끌고 신성한 곳으로 가리니

 

오래 닫혀진 침묵의 문이 열리는 날 / 고민을 상징하는 한떨기 꽃은 찬연히 피리라 / 이는 또한 내가 사랑하는 나라 내가 사랑하는 나라의 꿈이어니

 

김광섭, 겨울날, 창작과비평사, 1990년 7판.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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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 한 때 누군가가 애지중지 여기며, 그의 지식 열망을 채우던 책들이 이제는 남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곳.

 

책이 나무의 목숨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 곳은 나무의 목숨을 조금 더 연장시켜 주는 고마운 곳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품절이나 판절이 된 책을 구할 수도 있는 곳이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헌책방에 들르면 주로 시집이 꽂혀 있는 곳에 간다. 조금 오래된 시집은 요즘 서점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시인과 제목을 알지 않고서는 더욱 더 시집을 찾기 힘들고.

 

시집이란 본래 그 자리에서 펼쳐 읽으면서 가슴에 와닿는 시가 있으면 그 때서야 내 품에 안기는 것 아니겠는가.

 

하여 헌책방에 갈 기회가 있으면 제일 먼저 시집이 있는 곳을 찾는데... 가끔은 눈에 번쩍 띠는 시집들이 있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구할 수가 없는. 아주 오래 된 시집. 1988년에 나오고, 그 뒤에 더 나왔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제목도 자극적인. 이런 제목이니, 이런 내용이니, 1988년 이전에는 국내에서 출판이 될 수 없었던 시집.

 

국내에서 김남주의 시들이 이러했으리라. 그래서 김남주는 감옥에서 시를 써서 밖으로 내보냈고, 그것이 음성적으로 읽혔는데, 이철범의 이 시들은 외국에서 먼저 발표가 되었다고 하니, 엄혹한 시대였음에는 확실하다.

 

이철범. 외제 도끼에 찍힌 땅. 종로서적. 1988년. 초판.

 

900여 회가 넘는 외국의 침략이 있었다고 국사 시간에 배웠었지. 그리고 그런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외제 도끼에 찍힌 땅"

 

그냥 생각해 보아도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도끼에 찍혔지. 왕의 이름에 충성 충(忠)자가 들어가고 말았으니. 고려의 개혁군주라고 하는 공민왕조차도 자기의 부인은 몽고 사람이었지. 이 때 찍힌 외제의 도끼가 일제에게 이어지고, 일제에 이어 소련, 미국으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이 시집에서는 일제, 미국, 소련을 신랄하게 비꼬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우방이 아니라 외제 도끼일 뿐이라고...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런데 요즘은 외제 도끼가 바뀌었나 보다. 소련이야 해체되어 러시아란 이름뿐인 강대국으로 전락했고, 이제는 다시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역사 문제에서도 영토 문제에서도, 특히 최근에는 '방공구역 설정' 문제에서도.

 

하지만 이를 극복해야 하지 않나. 이런 외제 도끼들을 국내 문제들을 감추는데 사용하지 않고, 정말로 국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서 외제 도끼를 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여 그는 말한다.

 

이 시대...시인은...절대 권력과 경제적 빈곤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이 강요되고 있는 세계의 민중 속에, 그 역사적 현실 속에 현존해서 그들의 삶에 동참하고, 매일매일 그들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화장기 없이 생생한 그들의 언어를 시인의 언어로 해서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온몸을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책 89쪽)고.

 

시들의 내용이 참 과격하다. 그만큼 시인은 절박했으리라. 하지만, 이 시에 나온 내용이 진행형이라면?

 

이 시집이 나온 지 2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외제 도끼에 찍힌 땅으로 남아 있다면?

 

이것만큼 비참한 일이 어디 있으랴. 이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으랴.

 

이 시집의 유용성은 이 시집의 시들이 과거를 형상화한, 그 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제목이 된 그의 시 '외제 도끼에 찍힌 땅'을 여기에 인용한다. 이제는 여기서 벗어나야만 하기에.

 

                 외제 도끼에 찍힌 땅

 

외제 도끼에 찍힌 땅이여 / 이름을 잊어버린 땅이여 / 주인을 잊어버린 땅이여

끊어진 길은 어디서나 / 집을 찾지 못하고 / 밭은 곡식을 / 과수원은 열매를 거부하네

 

총을 든 손으로 / 서로 안을 수가 없고 / 피투성이얼굴로는 / 알아볼 수가 없다

어느 비극의 땅에서 / 젖줄은 끊기고 / 지뢰 묻혀 있는 / 평야는 잠들지 못한다

겨울에 눈이 오고 / 봄에 단비가 내려도 / 국토는 잉태하지 못한다

사내들은 / 모두 싸움터에서 늙었고 / 헐벗은 아이들만 남아

어머니의 땅에서 우는 울음 / 가득히 쌓여 / 사나운 바다를

이 어두운 비극의 땅을 / 차마 용서할 수 없다

 

이철범, 외제 도끼에 찍힌 땅, 종로서적. 1988년. 초판.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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