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상봉이 몇 년만에 이루어졌다.

남과 북.

물리적 거리로는 얼마되지 않는데... 만나는데 몇 십년이 걸린다. 마치 서정춘의 시 '죽편1'에서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고 노래하듯이 너무도 긴 세월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해마다 몇 천 명씩 만나도 시원찮을 판에, 한 번의 만남에 남과 북이 각 100명씩이니... 그것도 해마다 정기적으로 정해져 있으면 몰라도,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 이산가족 상봉은 물건너 가버리고 마니, 언제 자기 차례가 올지 알 수가 없다.


이산가족을 만나기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끝내 가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금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으로 서로의 생사를 알지 못하고 지내온 세월이 너무도 길어서, 이제는 만나야 하는데... 이러한 인륜 앞에, 천륜 앞에 이념은 무엇이던가.


무엇보다도 서로 만날 수 있게, 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치가들의 임무 아니던가. 그들의 의무인데, 이런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 책임은 정치가들이 져야 한다.


'통일대박'이라는 말보다는, 작은 것, 즉 헤어진 가족이 다시 만나는 일, 서로가 서로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하는 일. 기왕에 해오던 개성공단부터 시작하여 경제협력을 해나가는 일. 예전처럼 남북단일팀을 만들어 세계대회에 참여하는 일.


문인들은 작품으로 교류하고, 언어학자들은 남북공동사전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학자들은 학문적 교류를 하면서... 서로의 긴장을 풀고 협력하는 상태가 된다면 통일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산가족의 아픔도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대박'을 이야기해야 한다.


고은의 시집을 펼치게 되었다. "남과북" 우리의 국토를 남과 북 어느 한쪽에 국한시키지 않고 옛날처럼 남과북의 장소들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장소, 이 공간, 바로 한반도는 남과북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북한에 있는 그 땅들도 바로 우리임을 이 시집에 말해주고 있다.


시인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시편 [남과북]은 남과 북의 수준 낮은 정치 현실로부터 비정치적인 조율과 문화로서의 음향을 지향하는 분단 이전의 노래이기도 하고 분단현실의 몇 단면에 다가가는 노래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분단 이후의 어떤 시기에 들어맞는 노래이기도 하기를 하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255쪽)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녹아 있는 장소들, 그 장소에서 남과북,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통일의 시발점이 아닌가 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가족들이 헤어져 서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지내지 않도록, 또 살아있음을 알고도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더 이상 함께 있지 못하는 세상이 되지 않게... 그렇게...


이 시집에서 노래한 "남과북"이 모두 우리임을.


두 편의 시를 보자. 이것이 바로 남과북이 지녀야 할 자세가 아닐런지.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하루빨리 씻겨내려가기를 바라면서...  

 

이제 입춘도 우수도 지났다. 봄이다. 꽃소식. 계속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곧 단풍도 멋지게 들테니...

 

      꽃소식


봄입니다 만물이 자유자재합니다

꽃소식이

세상의 가난을 달랩니다

누구는 불쌍하다고

누구는 불쌍하지 않다고 말하는

미완성의 나라 온통

봄입니다

이 나라 남쪽

제주도에 피는 진달래

며칠 뒤에는

바다 건너

전라남도

경상남도에 피어납니다

며칠 뒤에는

중부 한강 기슭

춘천 소양강 기슭에 피어납니다

한달쯤 지나

북한 압록강 상류

혜산 일대에 피어납니다

5월 하순

표고 2천7백 미터쯤에

수목한계선 밑 추운 봄에

진달래는 울긋불긋 피어납니다

이것이면 됩니다

더이상 바랄 나위 없습니다

어디메 봄날 꽃만한 것 있겠습니까

남과 북 차츰 가지런히

고은, 남과북, 창작과비평사. 2000년. 82-83쪽


     단풍

구원이란

컴컴한 신념보다 종교보다

별이 

꽃이

기어이 가을 단풍이 아주 많이 맡아온 것을 알고 싶다


한반도 북쪽 끝 두만강 상류 무산

첩첩산중

거기 사람은 없고

홍단수

단풍 가득하였다


한달 뒤

강원도 금강산이 온통 단풍이었고

이내 내려와 설악산의 단풍이었다

한달 뒤

호남 내장산 단풍이었다

바다 건너

제주도 한라산 위층은

벌써 빈 나무들이고

아래층은 아직 하루이틀 더 단풍이었다

이렇게 봄 꽃소식 북으로 가고

이렇게 단풍 소식

남으로 남으로 오는데

그동안의 동포들 남과 북에서

수고 많은 날들

그 찬란한 단풍으로

가슴 훤히 구원받아왔으니

이제 더이상 구원받지 않아도 좋아라

그저 단풍이면

어머

어머 소스라쳐 기쁘고

단풍 가면

아이고 어쩌나 안타까워하다가


한밤중 북극성 하나 바라보면

거기 내일이 있어야 한다

 

고은, 남과북, 창작과비평사. 2000년. 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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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탈핵 -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 2014 올해의 환경책 / 『한겨레』가 뽑은 '2013 올해의 책' / 『시사IN』선정 '2013 올해의 책'
김익중 지음 / 한티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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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갑다. 이 책이 나온 것이. 탈핵에 관한 책이라면 일본 책이거나 서양 책이었는데... 우리나라도 원자력 발전소가 세계에서 많다면 많은 나라에 속하는데도 '탈핵'에 관한 대중적인 책이 나오지 않아 서운했었는데...

 

경주에 건설되고 있는 방사능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을 하다가 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후쿠시카 폭발사고로 인해서 탈핵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탈핵에 대해서 강연을 수없이 했던 저자가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책으로 엮어 출판을 했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소라는 이름으로, 또 청정에너지라는 이름으로, 무엇보다도 안전하다는 선전으로 원자력에 대해서 알고 있고, 건설단가가 다른 에너지보다 싸다고 하여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이득이라는 광고 속에서 원자력에 대해 알고 있는데...

 

그런 원자력의 이면에 대해서, 아니 이면이 아니라 원자력의 진실에 대해서 쉽게 전달해 주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왜 우리는 탈핵을 해야만 하는가를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중심으로 핵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으니, 내용이 추상적이지 않고, 또 의과대학의 교수에서 탈핵운동가로도 활동한 저자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전문가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쓰고 있어서 원자력(핵)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원자력. 우선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 늘 정명(正名), 정명하는데, 사물이나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이름부터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가 있다.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는 말이다.

 

원자력이라는 말이 어떤 긍정적인 이미지를 제공해주고 있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기를 쓰고 원자력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정확한 개념은 '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핵'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말하는 원자력 발전의 진실에 더 다가간 개념이라고 하고.

 

하여 원자력 발전이라는 말대신, 핵발전이라는 말을 써야 하고, 원자력발전소가 아닌 핵발전소, 원자력폐기물이 아닌 핵폐기물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이렇게 말을 바꾸어놓고 보면 우리의 시각이 어느 정도 교정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핵발전, 이것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도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지 않은가. 이 핵발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대도시로 옮기기 위한 송전탑 문제.

 

밀양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이, 사람들이 자신들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전력을 실어나르기 위한 송전탑 건설 문제로 삶터를 잃게 되어,  지금까지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핵발전이 일으키는 문제 중의 하나다. 방사능이라는 것을 빼고도 핵발전은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세계를 놀라게 한 폭발사고는 세 건이라고 한다. 물론 자잘한(?) 폭발 사고는 있어왔지만, 전세계인의 경각심을 일으킨 사고는 세 건인데... 미국의 스리마일섬 폭발 사고, 소련의 체르노빌,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 폭발 사고. 

 

그런데...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폭발 사고가 일어난 나라의 공통점은? 없다. 그것이 정답이다. 그런데도 굳이 찾는다면, 아니 가장 개연성이 높은 공통점은 이 나라들이 핵발전소가 많다는 점이다.

 

핵발전소가 많기로 세계 5위 안에 드는 나라라는 점. 핵발전소가 많으면 많을수록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식 아니던가. 확률이 높아지니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역시 핵발전소의 숫자로 보면 세계 5위 안에 드는 나라 아닌가. 게다가 30년이 넘은 노후한 핵발전소가 있는 나라고...

 

한 번 폭발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핵발전소 폭발 사고인데... 왜 우리는 확률을 낮추려는 운동을 하지 않고, 핵발전소를 더 많이 건설하려고 해서 확률을 높이는 것인지...

 

이건 그냥 위험하다는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 대안은 '탈핵'이다. 즉, '탈핵'만이 살길이다.

 

이렇게 탈핵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처럼 전기를 물쓰듯이 쓰는 그런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전기를 덜 쓰는 방식으로 우리의 생활을 바꾼다면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핵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는 소위 말하는 '원자력 마피아'들의 주장을 일소할 수가 있다.

 

다음으로는 대체에너지, 즉 자연에너지를 개발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자연에너지 사용율이 거의 세계 꼴찌라는데... 충분히 자연에너지를 쓸 수 있는 나라이니, 그 쪽으로 발전 방향을 돌려야 한다. 그러면 '탈핵'은 가능하다.

 

여기에 우리가 '탈핵'으로 가야 하는 이유 또 하나는 바로 '폐기물' 때문이다. 이 폐기물들은 그 자체로 방사능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데, 넘쳐나는 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금 경주에 건설되고 있는 방사성물질폐기물처리장도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암석은 너무도 약한 5등급이라고 하고, 그 주변에는 지하수가 흘러 지금도 물이 스며들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핵발전소가 계속 가동이 되고, 증가가 된다면 이러한 폐기물처리장도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런 장소도 장소지만, 기술도 문제고, 또 장기간 유지해야 하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그러니 방법은 '탈핵'밖에 없다. 그것이 살길이다. 그런데, 왜 그 방법을 택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이익? 그것 때문에 전국민의 삶이 위험에 처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후손들에게 위험을 안겨주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탈핵'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다.

 

'한국 탈핵'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핵에 대해서 관심을 지니고 행동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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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겠다” - 고병권이 만난 삶, 사건, 사람
고병권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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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거리의 인문학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었고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인문학 하면 뭔가 심오한 철학을 연상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무언가 특별한 지식을 얻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지레짐작하고는 인문학에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인 고병권은 인문학은 우리의 삶에서 멀어지는 학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라고 한다.

 

그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전혀 인문학과 관계가 없을듯한 사람들과 인문학을 통하여 만나면서 그는 인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우리 삶에서 인문학을 발견하는 점에 중점을 둔다.

 

즉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앎을 참조하는 질문'이 앎을 앎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면, 우리가 흔히 만나는 장삼이사들은 '삶을 참조하는 질문'을 하는데, 이런 질문은 곧 삶을 앎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 얫날 철학자들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앎이란 곧 삶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곧잘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된다.

 

삶이 되지 않는 앎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리 대학 강단에서 고담준론을 논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과 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게 되지 않겠는가.

 

정녕 인문학은 이러한 강단 철학, 강단 인문학이 아니라, 삶과 밀접히 관련이 되어 있는 거리의 인문학, 삶의 인문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경험한 일들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통하여 우리는 인문학이 우리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한 몇가지 개념이 머리 속에 계속 남아 있다. 바로 "빵과 장미"라는 말인데, 우리에게는 빵도 필요하지만 장미도 필요하다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생계를 보장하는 활동만이 아니라, 삶을 삶이게 하는 어떤 요소들을 필요로 한다는 말, 인간에게는 밥만이 아니라 바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오도엽이 엮은 "밥과 장미"라는 책도 있듯이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소수자들에게 그들에게 주어질 것은 시혜가 아니라 함께 함이라는 사실, 그들이 이 사회를 바르게 보고, 자신의 삶을 직시하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장미'라는 개념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논의에 비추어 "옹이"란 말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톱질이나 대패질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리라. 옹이가 얼마나 단단한지. 그 옹이를 벨 때 얼마나 힘이 드는지. 옹이가 나무가 겪은 상처라고 한다면, 나무의 상처는 너무도 단단하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지니게 되는데...

 

그러나 그 흔적이 단지 상처로만 남지 않고 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옹이라는 사실. 나무에 있는 옹이는 얼마나 멋진 무늬로 남을 수 있는지, 옹이를 옹이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알고 있다.

 

이렇게 옹이를 상처가 아닌 무늬로 바꿔주는 힘.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거리의 인문학. 그것은 상처를 상처로 인정하고, 상처가 덧나지 않게 해주는 일회성 처방이 아니라, 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이되, 상처가 무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하여 이 책을 읽어가면 온갖 상처가 나오지만, 그 상처가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상처를 직시하며, 상처를 아름다운 무늬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이 인문학을 통하여 상처를 무늬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그래서 '철학은 앎이지만 또한 행함'(15쪽)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때, 정말로 우리를 살리는 것은 인문학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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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공판이 있었다. 1심에서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이라는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내란음모에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까지 모두 인정했다고 하는데... 물론 이석기 의원 측에서는 항소를 할 예정이고, 이와 함께 헌법재판소에서는 이석기 의원이 속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청구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판결이 어떻게 작용을 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내란음모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한겨레신문에 한홍구 교수가 '내란의 나라?' 비슷한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던데... 내란의 나라임에도 성공한 내란(그걸 쿠테타라고 할 수도 있는데)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이상한 논리도 한 때 유행했던 나라이기도 하니...

 

통합진보당이 왜 해산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헌법을 찾아 보았더니...

 

제 8조 4항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그렇다면 통합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정부가 판단했다는 얘긴데... 정당은 정권을 획득할 목적으로 결성된 조직이고, 이들은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하는 활동이 민주적이 아닐 수가 있는가.

 

그 정당을 지지한 국민들도 많은데... 어쩌면 이것은 국민들에게도 너희들은 민주적 질서에 위배된 활동을 했어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헌법재판소가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 생각을 하고...

 

다만, 지금 내 마음이 어두운 것은 통합진보당의 해산 심판 청구나,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재판이나 결과가 나와봐야 하는 일이니 더 논의할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에, 2010년이 지난 시대에 구시대적인 내란음모, 민주적 질서에 위배라는 말들이 난무하는 현실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으로는 민주적 질서에 어긋한 정당이나 사람이라면 결코 지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내게는 있는데...

 

김삼웅이 엮은 "해방후 정치사 100장면"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지금까지 약 70년 동안 정치사에서 주요한 장면을 100장면을 뽑아놓은 책인데...

 

이 책에서 이번 일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는가를 찾아보니, 데자뷰라고 할 수 있는 일이 두 개가 있다.

 

22. 비운의 정치가 조봉암의 죽음 - 진보당 사건

77. 체포, 사형선고,  해외망명 -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망명

 

앞으로 판결이 어떻게 될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이런 일로 정치사에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는 민주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정치사에 추가되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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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근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 강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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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만이 책이 많이 번역되었는데... 이 책은 바우만의 책 중에서도 일찍 번역이 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초판이 2009년에 나왔으니. 우리나라에는 2009년에 번역이 되어 나왔지만 이 책이 출간년도를 보면 1999년이니, 책이 서양에 소개된 지 10년만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우리에게 왜 유용할까? 바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사회학적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액체근대'라는 말, 영어로 liquid라고 하는데 어떤 이는 액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유동하는 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말에는 움직이는, 고정되지 않은,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변화무쌍한, 정지되어 있지 않은 등등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관통하는 기본 주제는 자유와 안전이라고 보면 된다.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무한대로 자신의 자유만을 추구할 수는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 자유만을 추구하다보면 자연스레 안전은 담보될 수가 없는데... 이 책이 "해방"으로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자유로부터 근대가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얽매여 있던 것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얘기는 자유를 획득한다는 얘기가 되니 그런 자유를 추구하는 근대에서는 "개인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개인성"의 강조는 "공동체"를 등한시 하는 경우로 나아갈 위험이 있는데, 이는 공동체의 책임을 외면하고 모든 것을 개인에게 책임지운다는 것이다.

 

이런 "개인성"의 극단화가 바로 소비사회로의 전이이고, 소비사회는 쇼핑으로 대표가 된다. 이런 쇼핑은 사람들을 철저하게 개인으로 만들게 되는데... 이런 개인성의 사회는 "시/공간"의 변화로 나타나게 된다.

 

함께 있어도 그들은 함께 있지 않은 상태가 되고, 이런 액체 근대에서는 공간은 사라지게 된다. 즉 시간만이 존재하게 되는데...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근대 사회에서 지배적인 계급이 되게 된다고 그는 주장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를 보아도 공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은 그런 모습을 우리 사회도 보이고 있으니, 그가 1999년부터 우려했던 사회의 모습이 지금 극명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에는 사람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일"의 문제로 넘어간다. 사회학에서 "일"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는 없을테니...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액체 근대에서는 일이란 유동적인, 즉, 노동의 유연성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한다.

 

하여 마지막에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람의 삶이 자유와 안전이 문제가 된다면, 결국 자유와 안전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상태가 바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방부터 공동체까지 바우만은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근대, 우리는 이를 현대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 사회의 문제를 자유와 안전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의 보유에서 그는 '거리를 두고 시간을 내는 것-숙명과 타고난 처지를 구분하기 위해, 숙명을 타고난 처지로부터 해방하여 숙명이 자유롭게 우리의 타고난 처지와 대면하고 이에 도전할 자유를 주기 위하여-이야말로 사회학의 맡은 바 임무이다(336쪽)'라고 하고 있다.

 

그가 사회학을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사회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회학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고.

 

그는 또 말한다.

 

'사회학을 하고 사회학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함께 살되, 덜 불행하게 혹은 전혀 불행하지 않게 살 가능성, 나날이 억제되고 간과되고 믿지 않게 된 이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343-344쪽)'

 

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액체라는 말을 우리말로 쉽게 옮기면 물이다. 물의 속성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고여 있으면 썩는다. 또 너무 많아지면 곁에 있는 존재들을 휩쓸어버린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물이 어떤 상태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 뭇생명들이 다들 만족하고 살 정도로 적당한 양으로 넓고 느리게 흐르고 있을까? 아니면 뭇생명들을 휩쓸어버릴 정도로 많은 양이 빠르고 높게 흐르고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학자의 임무이기도 하겠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임무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권투선수 얘기가 생각이 났다. 권투를 배울 때 눈 뜨고 맞는 법을 배운다고. 맞을 때 맞더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맞아야 한다고. 그래야 상대의 주먹이 어디에서 어떻게 날아오는지 알 수 있게 된다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맞는 것은 아프겠지만, 액체 근대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를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그 앎 속에서 행동이 나와야 한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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