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 누구나 경험하지만 누구도 잘 모르는 - 이혁규의 교실수업 이야기
이혁규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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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 있다. 아마 교육에 관한 책을 다 읽겠다고 나선다면 평생에 걸쳐서도 다 읽지 못할 만한 양이다.

 

철학적인 내용부터 구체적인 실천지침까지 온갖 교육책들이 있는데, 정작 수업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책은 많지 않다.

 

대학 교재로 교수법에 관한 책은 있지만, 이 책들은 학교 현장에서 벗어난 이론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수업과 관계가 없는 책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수업에 대해서 고찰을 한다. 정작 교육의 기본은 수업이기 때문이다. 수업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학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라는 문제제기에서 시작하고 있다.

 

학교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부터 시작하여 수업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생각들을 살피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수업을,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교대에서 예비교사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또 현장에서 중고등학생들을 직접 가르쳤던 사람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고민을 중심으로 바람직한 수업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하여 글들의 대부분이 현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교사들이 수업을 해온 모습을 돌아보고, 더 나은 수업을 찾아나갈 수 있게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전문가라고 하는, 또는 연구자,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다.

 

그런 역할에 충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예비교사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되겠지만, 예비교사들보다는 현장에서 수업에 임하고 있는 현직교사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교사들이 가끔은 자신의 수업을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데, 그런 필요를 느낄 수 있는 자극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고 했듯이 교사들의 교육도 역시 수업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 물론 교사는 수업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통해서도 교육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학생에게 영향을 주는 분야는 수업이다.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교사가 어떻게 다른 분야에서 영향을 줄 수 있겠는가. 하여 수업은 교육의 시작이자 전부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수업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이 책.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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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대여점에 가다. 주말 나들이 계획은 없고, 집에서 영화나 볼까 해서.

 

무슨 영화를 골라야 하는지 늘 고민이 되지만, 무겁지 않은 영화를 고르려고 했는데, 요즘 세상도 어수선하고 무거운데, 영화까지 무거우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질 것 같아서 가볍고 코믹한 영화를 보려 했다.

 

그런데 참 영화 고르기 힘드네... 가볍고 코믹한 영화라고 하지만 잘못 골랐을 경우엔 이도 저도 아닌 영화로 오히려 짜증만 돋구고 마는 경우도 있으니, 이것 골랐다 저것 골랐다 하다, 에이, 기준을 바꾸자... 그래도 천만 명이 넘게 본 영화인데, 극장에서 보지 않아도, 집에서라도 보아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광해"를 골랐다.

 

"광해"에 대해서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영화는 픽션이라 사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픽션에 사실이 더해져야 영화의 흥미와 완성도가 높아지니, 어느 정도 다루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또 많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였다면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라는 생각에, 골라서 집으로 오다.

 

진지함과 코믹이 합쳐진 영화, 사실과 허구가 합쳐진 영화. 그렇지만 생각거리가 많은 영화.

 

광해군.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 "조"나 "종"을 달지 못하고 "군"자를 결국 떼지 못한 두 명의 왕 가운데 하나.

 

이 중에 연산군이야 평가가 엇갈릴 일이 별로 없는데,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으니.

 

아마도 그 당시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으리라.

 

언제부터인가 광해군을 폭군이 아닌 뛰어난 외교실력을 지닌 왕으로 이야기하는 글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의 외교를 등거리 외교라고 이름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전쟁의 비참함을 알고 있었고,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다는 얘기가 성립한다.

 

그럼에도 "구국지은(求國之恩)"이라는 이름으로 명나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집권세력들은 그의 외교정책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대의 예... 큰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 어쩌면 떠오르는 나라였던 청나라가 만주족이었기 때문에 더 반발이 심했을지도 모른다. 자기들은 작은 중국이라고 '소중화(小中華)'라고 일컫던 사대부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여 그들은 광해를 죽도록 미워하게 된다. 그의 개혁 정책도 정책이지만, 개혁 정책에는 무어라 반기를 들 명분이 없으니, 친명반청으로 무장된 그들에게 친청 정책을 펴는 광해는 제거할 수 있는 명분을 준 왕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야 가짜 왕을 등장시켜 할 말을 다하게 하지만, 실질적으로 광해는 자신의 할 말을 다하지 못했으리라.

 

그의 주변에 그를 믿고 따르는 현명한 신하가 없었으며, 또한 있었다고 해도 광해 자신이 그에게 많은 권한을 주어 개혁 정책을 펴게 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허균이 그의 측근으로 나오지만, 허균 역시 당시에는 힘을 쓰지 못한 존재에 불과했으니, 주나라 초기 주공과 같은 현명한 신하가 없다는 불행이 광해에게 닥친 불행이고, 조선에게 닥친 불행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집권세력은 대외 관계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다. 또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명나라는 은혜로운 나라일 뿐이다. 그 나라가 망해가든 말든 그건 상관할 일이 아니다.

 

무언가 짚히는 것이 있지 않은가.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일일 뿐인가. 아니다. 역사는 지금을 읽을 수 있는 거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가.

 

영화 "광해"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살필 수 있지 않나...아니 살펴야 하지 않나. 광해가 집권했던 그 시대의 모습과 지금, 비슷하지 않나. 우리는 이미 하나의 참고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말을, 더 나은 모습을 우리가 지닐 수 있다는 말로 바꿀 수 있는 시기이지 않나 싶다.

 

영화만으로 부족하다면 책을 읽어도 좋을 일.

 

한명기의 "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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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 깊이 읽기 - 동양의 정치적 상상력
위중 지음, 이은호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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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풀'

 

이것이 이 책의 원래 제목이라고 한다. 바람은 군주이고, 풀은 백성이다.

 

또다른 제목은 '동양의 정치적 상상력'이다. 그만큼 이 책은 '상서'를 읽으면서 정치를 생각한 책이다.

 

상서는 서경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니까, 결국 서경을 통해서 동양의 정치적 사고의 원형을 탐구하는 책이다.

 

상서 50편을 읽으면서 각 편의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고, 그것을 정치와 연결시킨 독후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치의 관점으로 읽은 상서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에 상서의 원문이 없다는 사실이다. 글쓴이가 독후감의 형식으로 쓴 글이기에 상서를 읽지 않았으면 그냥 글쓴이의 주장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글쓴이가 주장하고 있는 글읽기와 모순된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서경을 함께 펼쳐놓고 읽는 것이 좋다.

 

서경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 읽기가 곤란하다면(대부분의 사람은 읽을 수가 없다. 과거 경전의 한문은 참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한문 교육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왔다. 옛날 우리나라 책들을 한문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역시 한문으로 된 책은 읽지 못한다. 해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의 해석도 힘든데, 그 글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현실이 슬프다) 한글로 풀이해 놓은 책을 펼쳐 놓고 읽으면 된다.

 

적어도 원문을 알아야 그 원문에 대한 해설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 책은 그냥 죽 읽어도 된다. 상서의 순서대로 자신의 감상을 펼치고 있기에 상서가 역사 순으로 편집되어 있어 이 책만을 읽고 이렇게 상서의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구나 해도 된다.

 

옛날 동양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구나 하면 된다.

 

하늘을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에서, 군주의 힘을 어느 정도 빌린 방백으로, 그러한 방백의 힘을 다시 빌린 제후로 가는 과정이 상서의 정치 권력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제후의 힘이 강성해진 시대가 바로 춘추전국시대이고, 이 상서는 춘추전국시대가 막 시작될 무렵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상서의 정치적 상상력은 하늘로 대표되는 진리를 체현하고 있는 인물이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하늘의 명을 받은 사람은 성공해서, 그를 도울 현명한 사람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지만, 현명한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오직 저만을 믿어 제 멋대로 행하는사람은 하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되므로, 하늘이 다른 사람에게 천명을 주어 그를 멸망시킨다는 내용.

 

한 사람의 성인이 세상을 다스릴 때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면 갈수록 세상은 혼탁해지는 모습이 상서에 나타나 있다. 이는 이미 세상은 성인 한 명으로는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나라가 교체되지만 갈수록 성인의 힘은 미약해지고, 그래서 현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갈수록 이러한 현인도 줄어든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현인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다고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세상은 혼란으로 치닫고, 이것이 춘추시대를 거쳐 전국시대에 이르게 된다.

 

상고시대에는 법이라는 제도보다는 사람의 덕이 더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면 천명이 작아지는 후세 시대에서는 덕보다는 법과 같은 제도가 더 중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자나 맹자와 같은 성인들도, 또 노자, 장자, 묵자와 같은 사람들도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게 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추상적인 도(道)나 덕보다는 눈에 보이는 제도가 더 중시되는 사회가 되었으니, 이러한 고전을 읽으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제도에 도나 덕을 담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사람을 중시하는 사회가 동양 사회이니, 이것은 이러한 고전의 정치적 상상력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직도 사람, 사람 하는 그 모습이 우리 동양의 오래 된 전통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고전을 읽는 방법을 알려준 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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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강설 사서삼경강설 시리즈 6
이기동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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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별 거 아니고, 오히려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젊은시절, 앞만 보고 내달리던 그 시절엔 고전이란 과거의 유물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고전하면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고리타분하고, 웬지 상투를 튼 아저씨들이 공자왈 맹자왈 한다든지, 아니면 현실과는 상관없는 구름 따먹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쉽다.

 

또 이제는 스마트한 시대가 되어서 고전은 정말로 고리타분한 옛것,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기념품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하지만 고전이란, 고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대의 검증을 거쳐 이겨냈다는 이야기다.

 

여러 시대에 걸쳐 수많은 검증을 거쳐 사람들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인정을 받은 것들이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전은 박물관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 곁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고전이란 예나 지금이나 도덕적인 소리, 옳은 소리라는 인식만을 지니고 그래서 고전을 배운다는 것은 삶의 즐거움을 어느 정도는 포기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고전을 공부함으로써 삶이 더욱 즐겁고 풍요로와질 수 있는데... 마치 요즘 어려운 시대에 인문학 공부의 붐이 일어나듯이 말이다.

 

우연히 서경을 펼쳐들게 되었다. 서경, 4서 5경 중의 하나. 그냥 지식으로만 외우고 있었던 이 책은 그래도 논어나 맹자는 한 번쯤 호기심에서라도 읽어보기라도 하지만 서경은 그냥 책 제목만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서경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 "상서 깊이 읽기"란 책에서 비롯됐다. '상서'가 서경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기도 했고, 여기에 나오는 '바람과 풀'의 이야기를 김수영의 '풀'이란 시에 대입한 글을 읽은 적도 있기에 그렇다면 마음 먹고 서경을 한 번 읽어보자 한 것.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의 이야기다. 이 중에 주나라의 이야기가 가장 길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요, 순, 우, 탕이라는 임금과 주문왕, 주무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냥 왕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천명을 이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주나라까지의 역사를 통해 후세인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책이다.

 

군주와 신하, 백성의 관계를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데...

 

어쩌면 이 책을 지금의 정치가들이 읽는다면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정치란 이래야 한다는 주장이 잘 나타나 있다.

 

공자가 본받고 싶어했던 주공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결국 주공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한 정당성을,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또 전 나라인 은나라 신하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이 말들을 통해 정권교체기의 정치가들이 자신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는 지침으로 삼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경에 나오는 바람과 풀의 비유보다는 당태종이 말했다는 물과 배의 관계가 더 백성과 군주의 역할과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바람이 제대로 불지 않을 때 풀들이 얼마나 힘들지는 바람과 풀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 바람에 기뻐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꺾이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는 풀들의 모습, 그러나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다시 자신들이 몸을 꼿꼿이 펴는 풀들.

 

이것이 어찌 옛날의 모습만이겠는가.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서경은 정치가들의 필독서이기도 하겠지만, 나와 같은 일반 국민들이 필독서이기도 하겠단 생각이 든다.

 

바람과 함께 하는 방법을, 또는 바람을 이기는 방법을, 그 바람이 좋은 바람이 되게 하기를 우리 역시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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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리다. 오전에 비가 오더니, 한 때 해가 제 얼굴을 내밀어 존재를 보여주더니, 다시 구름에 가려 우중충하다.

 

춘래불사춘이라고, 봄은 봄이되 봄 같지 않다는 말을 달고 사는 요즘, 이 놈의 날씨가 왜 이래 하는 마음에 들고 있으니...

 

비가 내리면 땅이 촉촉해지고, 더불어 마음도 촉촉해지는데, 이번 봄비는 그런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자연과 사회와 사람이 어울리는 그런 삶이 된다면 좋겠는데, 자연은 자연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도 봄은 온다. 봄비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세상이 어둡고 힘들다 해도, 봄비는 다른 생명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런 봄비같은 사람, 봄비같은 사회, 그립다.

 

공기가 무거워지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무언가 책을 읽고 싶어진다. 시집을 꺼내든다.

 

우연히 고른 시집이 날씨와 맞아떨어지는 때가 있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평소에 시인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망설이지 않고 뽑았던 시집인데, 내용이 봄과 많이 연결이 된다.

 

요즘 시류와도 연결이 된다.

 

세상이 달라졌다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

 

 

정희성, 시를 찾아서, 창작과비평사, 2001년 초판. 41쪽

 

그래 세상은 달라졌다.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했던 때를 지나 이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데, 힘있는 자들이 그런 법은 안된다고 저항을 한다.

 

과연 세상이 고요해졌을까. 정말 저항해야 할 사람들이 침묵하고, 정작 침묵해야 할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까?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똑같은 사람이 된다.

 

굳이 니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괴물과 싸우는 우리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 때 이 시집의 시 시가 떠올랐다.

 

첫 고백

 

'오십 평생 살아오는 동안

삼십년이 넘게 군사독재 속에 지내오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다 보니

사람 꼴도 말이 아니고

이제는 내 자신도 미워져서

무엇보다 그것이 괴로워 견딜 수 없다고

신부님 앞에 가서 고백했더니

신부님이 집에 가서 주기도문 열번을 외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애 같은 마음이 되어

그냥 그대로 했다

 

정희성, 시를 찾아서, 창작과비평사, 2001년 초판. 32쪽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린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죽했으면 니체조차도 낙타의 단계와 사자의 단계를 지나 어린이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했겠는가. 어린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봄이다. 봄은 어린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약동하는 힘을, 미워하지 않는 사랑을, 물들지 않은 순수함을, 망설이지 않는 추진력을 준다.

 

지금 이 봄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와야 하는데...이런 봄, 마음을 울리는,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 시 한 편.

 

사랑

 

사랑아 나는 눈이 멀었다

멀어서

비로소 그대가 보인다

그러나 사랑아

나도 죄를 짓고 싶다

바람 몰래 꽃잎 만나고 오듯

참 맑은 시냇물에 봄비 설레듯

 

정희성, 시를 찾아서, 창작과비평사, 2001년 초판. 33쪽

 

이런 사랑. 봄에 하는 사랑. 그것이 자연에 대한 사랑이든, 사회에 대한 사랑이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든, 눈 먼 사랑, 눈이 멀어서 비로소 보이는 사랑.

 

봄... 비 내리는 밖을 보며 든 생각들... 시들...

 

시인은 "시를 찾아서"라고 했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봄을 찾아서"이다.

 

내 봄을 찾아서 시집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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