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으로 생각하기 - 제2판
지그문트 바우만.팀 메이 지음, 박창호 옮김 / 서울경제경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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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있고, 또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지혜로운 존재라고 하니, 인간에게 있어 생각이란 바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바로 생각을 하는 존재임을 나타내주고 있는데,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을 빌리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럼에도 생각은 제각각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어떤 것이 바람직한 생각인지 고민하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각은 어떤 것일까? 우리네 삶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한 것이 철학적 사고라고 한다면, 인간 본질을 추구하는 학문이 철학임에는 틀림이 없겠다.

 

여기에 인간의 건강을 생각하는 학문이 의학이고, 과학적인 현상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 과학이라면... 사회학은 무엇인가? 도대체 '사회학적으로 생각하기'란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한 의문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냥 생각하는 동물이 인간이다 하면 될 것을, 철학적 사고, 과학적 사고, 인문학적 사고도 모자라 이제는 사회학적 사고를 하라고 한다.

 

사회학적 사고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일테고,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근대의 학문이라면... 왜 철학이나 과학에서 사회학이 분리되어 나왔을까 하는 의문도 갖게 된다.

 

어쩌면 과학의 발달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여기'에 대해서 파악할 필요가 생겼을테고, 이러한 필요에 부응해서 사회학이 발달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하여간 왜 사회학이 탄생이 되었고, 사회학적 사고란 무엇인지 세세하게 추구할 필요는 없다. 바우만과 팀 메이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러한 사회학의 역사, 또는 개념 추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사회이기 때문에, 이 사회 속에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학적인 사고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회학적으로 생각하기란 그냥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속에서 가장 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나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하라는 얘기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이 책은 영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사회학 입문서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왜냐하면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책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김찬호가 쓴 "사회를 보는 논리"(문학과지성사.  2004년 초판 11쇄). 내가 갖고 있는 책이 이미 10년 전 책이니, 아마도 이 책은 더 많이 찍어내었을테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회학적으로 생각하게 하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우만과 팀 메이의 이 책을 읽을 때 이들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생각하면서 읽어야 된다는 얘기가 성립이 된다.

 

이들 역시 사회학적인 생각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바람직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더불어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세까지 지니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라는 존재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나라로, 나라에서 세계로, 세계에서 우주로... 우리의 존재가 무한히 뻗어나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내가 지내고 있는 '지금-여기'라는 시공간이다.

 

이 시공간에서 나라는 존재가 남이라는 다른 존재와 함께 어울려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학적으로 생각하기'의 성공한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들에는 생각할 거리들과 더 읽으면 좋을 책들이 소개되어 있어서 사회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고 있는 책이다.

 

사회학에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자신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사회가 현대사회다. 전혀 나와는 상관없이 굴러가는 모습을 보이는 현대 사회인데...

 

그래도 나와 전혀 관계가 없지는 않으니...이것이 사회학적으로 생각할 필요이다. 더 위험한 사회일 수록 그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김찬호의 책과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덧글

 

도서관에서 책을 분류할 때 십진분류법을 사용한다. 그 중에 사회학과 관련된 부분은 300번이다. 이 300번에 어떤 것들이 속해 있는가 보면 이렇다. 이것이 우리가 소위 말하는 사회과학인데, 더 범위를 좁혀서 사회학이라고 하면 330번이다. 책의 뒷표지 바코드 위에 있는 숫자 중 마지막 세 숫자가 책이 십진분류법에서 어디에 속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300 사회과학

 

310 통계학   320 경제학    330 사회학, 사회문제     340 정치학                350 행정학  

360 법학      370 교육학    380 풍속,민속학            390 국방, 군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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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는데 충격적인 보도가 나왔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가운데 노인 빈곤율이 1위란다. 무려 50%정도의 노인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바우만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이렇게 소비자 사회로 전환이 되고,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가난조차도 이제는 나라가 책임을 져주지 못하는, 사회복지에서 노동복지로 전환이 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나라는 더 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선거에서 노인복지를 강조하고,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는 나라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이 아직도 많다고 하니...

 

여기에 어떤 보도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의 평균 월 수입이 26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이나마 고물상이라고 하는 곳, 재활용센터의 운영 세금이 올라, 노인들에게 폐지 대금으로 지급하는 돈이 줄어들거라고도 하던데...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풍요로움은 굶주리는 사람 모두를 먹이고도 남지 않는가. 그럼에도 골고루 분배가 되지 못하고, 음식 쓰레기로 버려지는, 또 사용 가능한 물품들이 그냥 폐기물이 되고 마는 현실 아니던가.

 

가난 구제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일텐데...

 

사회복지가 확립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는 형제라고 생각하면, 우리 모두의 생활은 우리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정현종의 시집을 읽다가 이거네.. 이 시가 지금 우리 현실이네... 그럼 이런 현실에서 이런 사람은 없나?

 

정말로 이런 사람, 이런 정치가가 필요하네 하는 생각을 했다.

 

가난이여

-인도시편 1

 

석가모니는 저 가난을 구할 길 없어

스스로 헐벗었다

정치로도 경제로도 무슨 운동으로도

국가 해 가지고는 더더구나 안될 게 뻔하니

지상에 가난은 영원할 터이니

저 버림받은 가난을 어쩌나 어쩌나 하다가

도무지 그걸 구할 길 없어

스스로 ...... 헐벗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알몸이 빛났다

 

그리고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정현종,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세계사. 1989년 5판. 95쪽

 

이 시에서 말하는 가난이 단지 물질적 가난만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선 물질적 가난에 국한시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난해진 사람이 있다. 세상에 어떤 정치,경제,국가로도 가난을 해결할 수 없어 스스로 헐벗었다는 석가모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말을 한 예수와 통하는 것이다. 즉,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사람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영혼이 가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나도 가난해야 한다. 마치 중생이 병들어서 자신도 아프다던 유마거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려가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들과 함께 하지 않고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시는 석가모니를 들어서 가난에 대해서는 함께 가난해지는, 그들과 함께 할 때만이 가난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것을 모두 놓아버리는 경지.

 

이 경지에 도달했을 때 빛나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바로 석가모니의 삶이었다. 예수의 삶이었다.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물질적 가난, 정신적 가난을 극복하지 않겠는가.

 

다 내려놓아 더욱 빛나는 사람.

 

지금 사람들은 다 내려놓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려놓은 모습을 보여주기만 해도 좋다. 적어도 함께 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이렇게 노인 빈곤율이 소위 잘사는 나라라는 OECD국가 중 최고를 기록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정현종의 이번 시집에서는 선(禪)의 냄새가 많이 난다. 불교적인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리고 뒤에 인도시편이 몇 편 있는데...

 

굳이 불교라고 하지 않아도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물질적, 정신적 허영을 버리라는 것 아니던가.

 

그래 모두가 조금은 가난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모두가 조금은 부유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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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로트레크 - 세기말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초상 시공아트 61
버나드 덴버 지음, 이윤희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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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간에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다. 불행하게도. 미술에 관해서는 학창시절에 배운 것 말고는 그 이상의 지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끔, 정말로 아주 가끔, 아마도 삶의 전반에 걸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미술관에 들르기는 하지만, 그 미술품들은 나와는 너무도 멀리 있다.

 

그냥 지나쳐가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집에 걸어두려고 구입하려고 하면 그 가격은 내 경제생활과는 터무니 없이 멀어 비싸기만 하다.

 

이번에 수덕사에 갔을 때도 수덕사 선박물관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서양화가의 작품... 채색이 참 화려하고 벗을 주제로 한 그림들은 따스함과 포근함이 저절로 느껴지는 그런 그림들이었는데... 그림 밑에 붙어 있는 가격표는 입을 다물게 하고 말았다.

 

집에 걸어두고 보아도 좋을 그림들이 집에 걸어둘 수 없는 가격을 하고 있었으니... 그럼에도 미술가의 그 지난한 여정의 결과물을 그 정도 가격에 판매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니...이래저래...

 

로트레크라고도 하고 툴루즈-로트레크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긴 이름을 외우기 힘들어 하니 그냥 로트레크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19세기 후반에 주로 활약을 하고, 20세기가 되는 순간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 신체의 불구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확보한 사람. 그렇다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다른 선배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배울 것을 배운 사람.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상파와도 관련이 있고, 이 책에 고흐라는 이름도 제법 언급이 되고, 또 드가라는 이름도 언급이 되고 있으니,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지 그는 당대에 미술계에서는 꽤 알려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그의 그림은 대중들이 생활과 멀지 않다. 요즘 말로 하면 주로 연예인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카바레에서 춤추는 사람이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 또 일상생활을 하는 세탁부 등을 그렸고, 자신의 친구들도 역시 그림에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포스터를 예술작품으로 한 단계 격상시킨 공로가 있다고 한다. 그냥 막 그리고 한 번 쓰고 버리는 포스터가 아니라 예술품으로 거리를 장식하고, 그 다음에는 판매도 되어 소장되는 그런 그림으로 포스터를 인식시켰다고 한다.

 

단순한 색채와 선명한 인물 이미지, 그리고 일본판화풍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렇듯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화가라고 한다. 

 

단지 그는 불구였으며 나중에는 알콜중독까지 걸려 오랜 기간 제정신을 잃고 살게 되지만, 그래도 귀족 집안 출신답게 경제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화가 구본웅을 떠올리게 한다.

 

그에 대한 평은 긍정과 부정으로 갈린다고 하는데...요즘 그의 작품은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고 하니, 그리고 이 책의 끝부분에 피카소에 미친 그의 영향도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그는 나름대로 화단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화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미술은 나와는 거리가 먼데... 이렇게 로트레크처럼 우리와 가까이 하려는 화가도 있을텐데... 한때 돌아가신 김점선 화가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민중화가들이야 지금도 우리네 삶 속에서 함께 지내고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툴루즈-로트레크...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도판이 많이 수록된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도 전기식으로 태어남부터 자람, 그리고 죽음까지 시간의 순서대로 책을 전개하고 있고, 그 중간중간 그의 작품과 해당되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이 함께 실려 있어서 로트레크란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도 주고, 또 그림을 감상하는 기회도 제공해주고 있는 책이다. 

 

미술관에 가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렇게 하기가 힘든 지금... 이 책을 통하여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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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가는 시인이다. 그가 사회의 여러 면에 눈을 주고 있음을 시를 통하여 또는 다른 글들을 통하여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집 전에 그의 시집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여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본 순간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게 되었다. 헌책방에 있는 책 치고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2012년에 나온 시집인데... 이 정도 가격은 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고, 이 시집은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한 번은 꼭 읽어봐야지 했던 시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손에 들고 읽은 이 시집... 몇 편의 시를 넘기자 눈에 딱 들어온 시.

 

"얼음놀이"

 

이 시집은 이 시 하나로 되었다.

2014년 1월. 우리 사회에 닥친 얼음놀이.

아니, 우리 사회라기보다는 말 못하는 짐승들, 특히 철새들과 오리와 닭들에게 닥친 얼음놀이.

 

따뜻하게 살아 있어야 할 생명들을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그들이 병들었음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한 마리가 또는 여러 마리가 감염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반경 몇 킬로미터 이내의 새들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그런 현실.

 

사람들도 이동 중지가 내려진 상태. 그럼에도 철새들... 자신들의 본능에 따라 살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을 뿐인데, 전염병의 주범으로 낙인 찍히고, 또한 자신들도 감염되어 죽어가는데도 사람들의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올 겨울.

 

세상도 추운데, 새들은 더욱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그들을 얼음나라로 초대하고 있다. 아니 초대가 아니라 강제 연행이다. 그들은 그냥 얼음이 되고 있다.

 

이 시 하나... 2014년 1월을, 또 몇 년 전의 구제역 파동을... 그런 우리들의 얼음놀이를 이 시 하나로 표현하고 있다.

 

뭇 생명들은 모두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단지 자신들의 종족이 병에 걸렸다고 함께 순장당해야 하는 그런 비극. 이 엄청난 연좌제.

 

순장이 없어진 지는 논의거리가 안 되더라도 연좌제가 없어진 지가 언젠데... 그건 사람에게만 해당되는가? 아니, 우리에게도 연좌제가 없어졌는가? 과연 그러한가. 우리도 이렇듯 어느 한 순간에 얼음놀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닌가. 바우만의 논의처럼 "쓰레기가 되는 삶"이 되는 것은 아닌가.

 

화려한 군무. 철새들을 보러 오는 많은 사람들. 철새는 귀한 손님. 우리가 잘 맞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믿음. 철새들을 위해서 먹이를 놓아주던 마음씨.

없다.

조류독감. 일명 AI라는 그 무시무시한 질병 앞에서는 지금껏 쌓아왔던 철새들과 인간들의 관계도, 가금류라고 집에서 기르던 닭과 오리들과의 관계도 없다. 농민들의 생계도 없다. 그냥 땅 속으로 묻힐 뿐이다. 얼음이 될 뿐이다.

 

이것을 시인은 얼음놀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잘 놀던 일명 "얼음 땡".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얼음이 되어도 살아날 수가 있었다. 다시 움직일 수가 있었다.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펄펄 뛰어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얼음놀이는 단 한 번의 참여로 끝이다. 다시는 따스함을 지닐 수 없다.

 

영원히 잊혀질 뿐이다. 사라질 뿐이다. 꽁꽁 언 땅에 꽁꽁 언 몸을 꼭 뉘일 뿐이다. 숨 쉴 공간 하나조차 없이, 온기 하나조차 없이 그렇게 갇힐 뿐이다. 2014년 1월에. 

 

올해 쓴 시가 아님에도, 예전에 우리나라가 겪었던 조류독감, 그리고 구제역 파동을 이렇게 얼음놀이로 표현했다. 지금은 단지 짐승들에게만 해당하지만... 이것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던 순간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홀로코스트...

 

아, 사람은 이토록 무서운 존재구나! 남의 생명으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뭇생명의 운명이라지만, 이렇듯 절멸로 가는 길을 갈 수도 있는 종족이 바로 인간이구나!

 

슬프다. 시인은 이 시집의 말미에서 '나는 여전히 시가/아름다움에의 기록의지라고 믿는 종족이다'라고 했는데... 이 얼음놀이는 바로 우리의 비극적 현실을 표현함으로써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비참을 빗겨가지 않고 비참을 그대로 드러내어 비참을 극복하게 하려는 몸부림. 이것이 바로 이 시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2014년 1월.

철새들...

가금류들...

정말로 이 얼음놀이에서 벗어나 따뜻한 빛을, 볕을 쬘 수 있게 되기를...

우리네 삶에서 따뜻한 볕이 내리쬐어 우리 모두가 그 볕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기를...

 

얼음놀이

 

살처분,이라고 했다.

집단 살해,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TV를 끄고 나는 구역질을 시작했다.

 

얼음놀이를 시작해 얼음집에 들어오면 얼음닭 얼음돼지가 되어 살 수 있어 병들지 않았는데 왜 내가 죽어야 해요? 왜 함께 죽어야 해요? 질문은 용납되지 않아 얼음집에 들어와 얼음놀이 할 테야 닭이, 오리가, 돼지가, 소년이, 소녀가, 쿵쾅쿵쾅 얼음! 얼음! 외치는 소리

 

'몸서리치다'

 

얼음집 주련에 내려진 붉은 글씨

이 말은 얼음집의 절창

몸속에 서리가 들어차는 것

몸 밖에 서리가 들이치는 것

몸에 내린 서리를 치우고 싶은 것

치우기 위해 치떠는 것

치떨며 온몸에 서리가 꼭꼭 들어차는 것

 

서리: 살처분할 수 없는 물들의 깍지 끼기

 

몸서리치는 새들아 돼지들아 얼음집에 들어와라 쿵쾅쿵쾅 얼음! 얼음! 슬픈 마녀의 머리카락처럼 자라라, 얼음아, 얼음집을 머리카락 그물에 넣어 먼 하늘로 날아갈 테다 머언먼 하늘에 서리를 풀듯 너희를 풀어놓을 테다 따뜻한 햇살 닿아 얼음이 녹으면 너희는 새로운 날개를 얻어라 존중받는 발굽과 쫑긋한 청력을 얻어라

 

김선우,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2012년 초판 1쇄. 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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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되는 삶들 - 모더니티와 그 추방자들 What's Up 4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 새물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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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나왔다. 바우만의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은 바우만의 다른 책들보다도 먼저 읽어야 할 책이다.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제일 먼저 읽고, 다음 정도에 읽었으면 좋았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바우만의 여러 저작들을 발표된 년도와 상관없이 주욱 읽어가고 있는데, 읽으면서 바우만이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충은 짐작이 된다. 그런 선상에서 이 책은 이전에 읽은 바우만의 책보다는 훨씬 쉽게 이해가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쓰레기:사용할 수 없어서 버려진 물건. 또는 사람. 사람다운 행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 등등

 

참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말인데,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오히려 "버려지는 사람들" 또는 "버려지는 삶"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하다.

 

현대가 발전하면서 세계 경제는 발전하는데, 근대 초기에는 영토가 넓어서,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는 미개척지가 많아서 잉여 인력을 그곳으로 보내면 되었는데, 현대에는 더이상 개척할 땅이 없기에 자신들의 땅에서 구획을 지어서 버려지는 사람들을 몰아넣어야 한다는 얘기가 이 책의 핵심이고...

 

시대가 소비시대로 바뀌면서 계속해서 새것을 추구하게 만들고, 빠르게 만들고, 쓸모있음이 지속되지 않게 만들어 인간의 삶이든, 물건이든 쓰레기를 양산하게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 역시 사회 전반의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해결책만 추구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불안과 공포가 조장이 되고, 버려지는 사람들은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이 찍히며 사회에서 필요하지 사람들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필요하지 않은.

 

예전에는 그래도 쓰레기를 치울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들 중에서는 존재의 상승을 이룬 사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들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생활하게끔 구획되고 분리된다고 하고... 이들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생활을 보호하게 하는, '우리'와 '그들'로 분리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문제의 분석이 정확하다. 정확한 분석이 되고 있는데, 그래서 답답하다. 어째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도 적용을 시키면 우리 사회에서도 이렇듯 쓰레기가 된 삶들이 꽤 있지 않은가. 대도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숙자들... 이들을 사회경관을 해칠 뿐만이 아니라 사회불안의 요인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또한 언제 해직이 될지 모르는 노동자들, 비정규직들, 그나마 그런 일자리도 얻지 못하는 사람들. 여기에 외국에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 이들은 사는 공간도 정해져 있다시피 해서 정말로 사람들을 구획했다는 말이 들어맞는 경우가 된다.

 

또 자신의 삶터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기는 사람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안전하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 얼마 전까지 농사짓던 땅이 수몰이 되거나, 개발로 수용이 되거나, 거대한 송전탑이 지나가거나, 갯벌이었던 곳이 육지가 되어버리거나, 강 옆의 한적한 곳이 강이 되어버리거나...

 

이런 불안들이 우리를 더 깊은 불안으로 내몰고, 깊은 불안들이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기 보다는 내 살 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 식으로 내몰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도대체 해결책은 무엇인가? 바우만도 이 책의 말미에서 이런 질문을 한다. 우리는 어떡해야 하는가?

 

이걸 우리 사회에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어떡해야 하는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나만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일.

 

신뢰가 중요하다고 바우만이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도 서로간의 신뢰를 확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좀더 나은 미래를 꿈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우만의 현실 분석을 우리의 미래에 적용하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역시 추상적인 말일 뿐이다. 어떤 구체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하는데...

 

조급해 한다고 해서 나올 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 사회를 비롯한 현대에는 "쓰레기가 되는 삶"을 양산하고 있는 기제들이 있는데, 그 기제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분석을 했다면 대책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맑스의 말대로, 인간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제시한다고... 자, 문제점이 나왔다. 그게 왜 문제인지도 나왔다. 그것을 알았다면, 우리 모두가 안다면 이제 시작이다. 해결책을 찾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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