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엄마 납치사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
비키 그랜트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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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을 고를지 고민이 많이 된다. 잘못 골랐다가 재미라도 없으면 참 난감하다. 그래서 제목을 보고, 뒷면에 실린 책에 대한 소개글을 보게 된다. 그것도 아니면 작가가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던가.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오로지 제목. 

 

"불량엄마 납치사건" 무언가 제목에서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가.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제목만으로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 청소년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을지 판단해보려는 욕구가 작동하게 만든 제목이다.

 

이 제목이 흥리로운 것도 한 가지 이유이겠지만, 사실은 남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가족간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 뭐 없을까 하다가 고른 작품이기도 하다.

 

여자 아이가 주인공인 소설은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가 있으니, 딸과 엄마의 갈등을 다룬 소설은 됐고, 이제는 아들과 엄마의 갈등을 다룬 소설을 읽으면 되겠다 싶어서, 남자 청소년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을만한 책인가 싶어서 고르게 되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건 내가 고른 이유하고는 좀 거리가 먼 소설이다. 아들과 엄마의 갈등을 중심에 놓고 다룬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추리력을 필요로 하는 소설이다. 일종의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들과 엄마의 갈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법에 관한 내용이 많다. 소설의 각 제목들이 모두 법률 용어다. 예를 들면, 자기부죄거부특권, 도청, 비공개 심리, 물적 증거, 변호인-의뢰인 특권, 피후견인, 자백, 고소 등등 법률 용어가 나오고, 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소설의 내용이 시작된다.

 

그래서 소설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레 법률 용어를 익히게 된다. 멀게만 느껴지는 법이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그리고 결코 어렵지 않음을 이 소설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법률 소설인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사라진 엄마를 찾는 주인공(시릴)의 모습을 통해서 읽는 내내 주인공과 함께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누가 납치했는지, 왜 납치했는지 등에 대해서 고민을 할 수 있다.

 

법과 추리를 함께 버무리고, 여기에 청소년들의 심리를 첨가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번역된 책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지만, 길지 않고 짧은 문체로 읽기에도 편하다.

 

각 장들도 길지 않아서, 읽으면서 지루해할 틈이 없다. 또한 주인공인 '시릴'을 살펴보면서 그의 모습에 웃음을 머금기도 하게 된다.

 

어느 날 사라진 엄마를 찾아가는 시릴. 그와 함께 도대체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찾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왜 불량엄마라고 했는지, 그 엄마가 겪은 일들이 나오지는 않지만,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엄마가 젊은시절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 일을 회피하지 않고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아들의 입장에서 엄마는 불량엄마지만, 그럼에도 자기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엄마, 그 엄마를 찾기 위한 아들 '시릴'의 추리... 그리고 법률적 의미로 인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 

 

다만, 법률이라고 했지만, 그 법률은 이 소설을 쓴 저자가 살고 있는 캐나다의 법률 얘기니, 우리나라와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주인공 시릴의 엄마인 애니의 삶은 우리네 정서와는 좀 맞지 않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 소설을 읽는데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캐나다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읽을테니 말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와 다른 상황을 통해서 우리의 현상황을, 또는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상황을 간접체험하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어떤 삶이 바람직한지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고민하게 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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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2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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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청소년소설이라고 하는데... 청소년이 어른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담고 있기에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모든 청소년 소설은 성장소설일 수 있겠다. 청소년이 주인공이 되는 소설은 청소년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가는가를 작품 전개를 통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장소설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저자의 자전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소설임에도 읽다보면 이것이 허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지, 사실을 바탕으로 한 회고록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책의 소개에도 저자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고 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이란 이름을 달고 나왔으면 허구로 보아야 한다. 역사소설을 역사로 인정하지 않듯이.

 

이 소설은 어른이 된 저자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읽어가면서 후일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먹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그렇게 지냈었지 하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고, 감동적이었는데... 그런데... 아이들이 이 소설을 좋아할까? 아니, 아이들에게 이 소설이 읽힐 수 있을까 하는데는 의문이 들었다.

 

청소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읽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데... 아이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지금 아이들의 삶과 이 소설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농장에서 어렸을 때부터 한 명의 노동력으로 인정받았으며, 자신의 일을 해야만 하는 주인공과 어린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 온전한 노동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로지 해야할 일이란 공부밖에 없다는 식의 생활을 해온 요즘 아이들의 삶은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나와는 다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현실 속에서 주인공이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읽는다면 나름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을테니...

 

요즘 청소년들이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우선 소설 속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면 좋을 듯하다.

 

제목이 읽지 않으면 이해가 가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이 제목과 연결지으면 죽음과 삶이 드러나게 된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바로 아버지가 죽은 날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죽을 때, 다른 존재는 산다는 삶의 경험.

 

주인공이 키운 핑키라는 돼지를 통해서 죽음은 곧 삶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주인공은 핑키의 죽음을 통해서 어른에 한 발짝 다가섰고, 곧이어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어른이 된다.

 

겨우 열세 살에.

 

열세 살. 한 창 어리광부릴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두 죽음을 통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삶과 죽음이 그렇게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주인공.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잃어간다는 것, 잃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 잃음 위에서 얻음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이 있다. 죽음을 예감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

 

"봄이 오면 너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어른이라구. 열세 살짜리 어른. 어른이 되기에 충분한 나이지. 이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네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해. 로버트, 너말고는 책임질 사람이 없어. 바로 너 말고는." (149쪽)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 이웃인 태너 아저씨 부부와 나눈 말.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태너 아저씨."

"로버트, 내 이름은 벤저민 프랭클린 태너야. 이웃들은 모두 나를 벤이라 부르지. 친한 친구끼리는 서로 이름을 부르며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이제부턴 나를 베스라고 불러. 로버트." (177쪽)

 

열두 살에 겪은 일들을 통하여 열세 살에 어른이 된 아이의 이야기. 그런 성장을 담은 소설. 도대체 아이란 무엇일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하는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상은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여기고 있는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을 소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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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이다.

 

정치의 계절이란 말보다는 사실 선거의 계절이라는 말이 더 맞는 듯하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이미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었으니, 선거의 계절이 시작되었음에는 틀림없다.

 

지방자치 선거에 교육감 선거까지... 우리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선거가 6월에 치러진다. 이 선거를 통해서 4년이 결정이 되는데...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 것이 정치는 우리의 삶 내내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서 절대로 자유로와 질 수 없기 때문에 정치는 따로 계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를 우리가 실감하게 되는 때가 바로 선거가 치러지는 때이니 만큼, 지금을 강조하기 위해서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을 써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언어가 삶을 좌우할 수 있으니,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보다는 선거의 계절이라는 말을 쓰는 편이 좋을 듯하고, 직접민주주의 대신 간접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유일하게 시민들이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리다는 이유로... 나이나 성별, 신체장애의 유무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헌법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년의 나이를 한 살 낮추는 것에 대해서는 심한 반발이 있는데...

 

아직도 한창 배우고 있는 고등학생에게 무슨 선거권이냐부터, 학생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겠느냐는 말까지...

 

그래서 18세로 투표권을 낮추자는 말은 어림없는 소리로 치부되고, 아직도 실행이 되고 있지 않다. 대학입시에 매진해도 시원찮을 고3이 무슨 투표냐고? 그런 시간이 있으면 공부나 하라고?

 

그런데... 그런데... 왜 공부를 하지? 대부분의 학교 교육목표가 민주시민 양성 아니던가. 민주시민은 어떤 사람들이지? 자신들에게 관계된 일에 자신들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노예에 불과하지 않는가. 아니면 판단불능의 사유가 있는 어떤 특정한 집단이거나.

 

교육감 선거를 예로 들어보면 문제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교육감은 4년동안 그 교육청의 교육행정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교육부 장관보다도 교육감에 의해서 일선 교육현장은 극심한 변화를 겪는다.

 

그 단적인 예가 서울시교육감 아니던가. 전임 교육감은 혁신학교에 중점을 두고 교육정책을 펼쳤다면, 후임 교육감은 혁신학교를 지우려는 교육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교육감에 따라 학교 현장은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학교 현장의 중심축 중의 하나가 바로 학생들이다. 학생으로만 국한시키지 않으면 바로 그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이다. 청소년들의 대다수를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제도권 밖에 있어도 교육정책의 영향은 제도권 안이나 제도권 밖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육감 선거에 학생들은 참여할 수가 없다. 교육감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학교교육의 범위는 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는 유,초,중,고등학교 교육에 해당이 된다.

 

하지만 그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지, 청소년들이 판단능력이 떨어진다고? 과연 그런가? 그럼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어른들은? 왜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을 문제삼지 않는가. 투표권을 주느냐 마느냐는 판단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로 투표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

 

문제는 단지 투표만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정치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주시민교육"이 목표인 사회과가 교과목으로 버젓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것은 말 뿐이다. 그리고 시험용일 뿐이다. 오로지 시험을 위한 교과로 존재하는 사회과. 이런 상태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의식은 발달할 수가 없다.

 

제대로 된 정치교육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른이 되었다고 정치의식이 성숙한 시민이 되는가? 그런 경우가 있는가?

 

정치의 후진성, 그것은 정치교육의 부재를 이르는 말이다. 젊은이들에게 왜 너희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느냐고 질책을 많이들 한다. 그것도 다른 때에는 잠잠하다가 선거때가 되면 각 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이런 말이 나온다.

 

왜 정치에 관심이 없냐고? 당연하지 않은가. 언제 제대로 정치에 대해서 민주시민의 역할에 대해서 가르친 적이 있는가?

 

학생들이 "안녕하십니까"란 대자보를 붙이자 그것은 학생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교육당국이 앞장서서 떼어버리는 현실에서, 무슨. 

 

그래서 이번 "민들레 91호"에서는 특집으로 '정치가 꽃피는 교육'을 들었다. 시의적절하게 잘 다룬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싶다면 학생들(청소년들) 너희들은 어리니까, 공부해야 할 나이니까 정치에 관심두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학생들(청소년들)이니까 제대로 정치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라고 해야 한다.

 

정치에 직접 참여하게도 해야 한다. 물론 집행권을 주지 않더라도, 그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결정을 하게도 해봐야 한다. 그리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옛날에는(지금보다도 더 후진적이라는) 15세가 넘으면 이미 어른 대접을 받았다. 춘향이의 나이를 생각해 보라. 그리도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던 춘향이의 나이는 그 때 16세였다. 또한 옛날에 소년 진사들... 뭐... 이런 과거에 나이 제한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라.

 

민들레 이번 호를 중심으로 학생(청소년)의 정치교육에 대해서, 정치 참여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한다. 마냥 어리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또 하나의 주체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시민이 양성될 수 있다.

 

학생(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정치 교육을 할 때에만, 선거 때만 반짝하는 정치계절이 아니라, 늘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정치라는 사실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다. 그 사실을 민들레 이번 호가 상기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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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 - 당신의 감정과 판단을 지배하는 뜻밖의 힘
애덤 알터 지음, 최호영 옮김 / 알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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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끝이 없어진다. 도대체 '나'란 무엇인가? 이런 '나'에 대한 추구가 결국 철학을 낳게 하고 종교를 낳게 하고 과학을 낳게 했겠지만, 여전히 답은 없다. 정말로 '나'라는 존재는 신비에 쌓여 있는 존재이다.

 

그런 '나'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달라는 말을 많이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

 

도대체 "있는 그대로의 나"란 어떤 존재일까?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일까? 아니면 종교에서 말하듯이 신이 창조한 대로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할까? 또는 뇌의 조종을 당하는 생물에 불과할까?

 

참 많은 질문이 일어나는 말이고, 역시 답을 찾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자유의지는 없다"란 책을 읽었었는데, 여기서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 수많은 요인들이 얽혀서 그들에 의해 행동을 조정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자신이 자유의지라고 믿는 것도 그런 요인들 중 어느 하나가 촉발시킨 것일 뿐이라고 했었는데...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무엇이 조정하는지 모른 상태로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런 말인데, "자유의지는 없다"는 말은, 이 말이 옳다면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환경과 나를 존재하게 했던 과거의 수많은 요소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들과 나를 부르는 이름들까지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파악해야 하며, 내가 살아온 역사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에 가까이 다가서는 길이다.

 

이 책은 그 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심리학 책이라고 해도 좋고, 과학책이라고 해도 좋으나, 전달하려는 주제에 비해서 참으로 쉽게 전달해주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읽어가다보면 우리나라 교육방송에서 했던 다큐멘터리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내용도 이 책에 많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심리학이나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많이 언급했던 사항들을 다시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정리, 전달해주고 있어서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을 이 책은 지니고 있다. 

 

차근차근 읽다보면 우리의 생활에 많은 것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사실들도 있기에 거부담은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은 너무도 다양하다. 그 다양한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것들을 3부 9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부는 당신을 뒤바꾸는 주변 조건들이라는 제목으로 색채, 공간, 온도를 들고 있다. 색깔에 따라서, 이는 우리가 어떤 경우에는 주로 특정한 색깔을 쓴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과 접하는 생활을 하느냐, 자연과 단절된 생활을 하느냐, 소음에 시달리느냐 아니냐는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세번째가 좀 특이한데, 온도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하긴 날이 습하고 더울 대 짜증이 더 나고, 하다못해 일기예보에 '불쾌지수'가 있을 정도이니, 온도 역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임이 확실하다.

 

2부는 차이를 낳는 우리 사이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시선, 편견, 문화를 들고 있다. 이것도 이미 우리의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다. 눈이 그려진 공간에 있을 때 좀더 진실해진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거짓을 말할 때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편견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인데... 동양과 서양 사람이 사물을 바라보는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역시 많은 다큐멘터리나 책에서 다뤄진 내용이기 때문에 이 내용에 동의할 수가 있다.

 

3부는 우리 안의 사소하고도 거대한 힘이라는 제목으로 상징, 이름, 명칭을 들고 있다. 상징, 왜 우리가 국기를 신성시여기는가? 또 어떤 상징을 보았을 때 우리의 감정이 넘쳐나는가? 이는 상징이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고, 이름이나 명칭은 말할 것도 없다.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우리 동양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이 중요하다고 작명소에 찾아가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고, 이름을 지을 때 따져야 할 요소가 엄청남을 생각한다면 이름이나 명칭은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이 책은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여기저기서 주어들었음직한, 또는 텔레비전에서 보았음직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소개에 그치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나'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모아놓고, 체계적으로 분류를 하고, 그것들을 구체적인 과학적인 실험결과들을 증거로 들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나"에 대해서, 아니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면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데, 단지 알게 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환경을 바꾸는 것으로 나아간다면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덧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런 내용을 우리나라 심리학자부터 교육학자, 또는 의학자들이 알고 있을텐데... 어째서 우리나라 교육환경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지. 적어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나"를 변화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수많은 "나들"이 모여 있는 학교라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텐데...

 

대입개혁, 자유학기제 등등 수많은 교육정책들에 앞서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학교에서 조성하도록 정책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답답하기만 했다.

 

아무리 좋은 제안이라도 실행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데...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 백날 이야기하면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책은 교육정책 담당자들, 또는 정부관료들이 먼저 읽고 정책 입안에 기초자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지나친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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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이 몇 년만에 이루어졌다.

남과 북.

물리적 거리로는 얼마되지 않는데... 만나는데 몇 십년이 걸린다. 마치 서정춘의 시 '죽편1'에서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고 노래하듯이 너무도 긴 세월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해마다 몇 천 명씩 만나도 시원찮을 판에, 한 번의 만남에 남과 북이 각 100명씩이니... 그것도 해마다 정기적으로 정해져 있으면 몰라도,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 이산가족 상봉은 물건너 가버리고 마니, 언제 자기 차례가 올지 알 수가 없다.


이산가족을 만나기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끝내 가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금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으로 서로의 생사를 알지 못하고 지내온 세월이 너무도 길어서, 이제는 만나야 하는데... 이러한 인륜 앞에, 천륜 앞에 이념은 무엇이던가.


무엇보다도 서로 만날 수 있게, 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치가들의 임무 아니던가. 그들의 의무인데, 이런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 책임은 정치가들이 져야 한다.


'통일대박'이라는 말보다는, 작은 것, 즉 헤어진 가족이 다시 만나는 일, 서로가 서로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하는 일. 기왕에 해오던 개성공단부터 시작하여 경제협력을 해나가는 일. 예전처럼 남북단일팀을 만들어 세계대회에 참여하는 일.


문인들은 작품으로 교류하고, 언어학자들은 남북공동사전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학자들은 학문적 교류를 하면서... 서로의 긴장을 풀고 협력하는 상태가 된다면 통일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산가족의 아픔도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대박'을 이야기해야 한다.


고은의 시집을 펼치게 되었다. "남과북" 우리의 국토를 남과 북 어느 한쪽에 국한시키지 않고 옛날처럼 남과북의 장소들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장소, 이 공간, 바로 한반도는 남과북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북한에 있는 그 땅들도 바로 우리임을 이 시집에 말해주고 있다.


시인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시편 [남과북]은 남과 북의 수준 낮은 정치 현실로부터 비정치적인 조율과 문화로서의 음향을 지향하는 분단 이전의 노래이기도 하고 분단현실의 몇 단면에 다가가는 노래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분단 이후의 어떤 시기에 들어맞는 노래이기도 하기를 하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255쪽)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녹아 있는 장소들, 그 장소에서 남과북,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통일의 시발점이 아닌가 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가족들이 헤어져 서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지내지 않도록, 또 살아있음을 알고도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더 이상 함께 있지 못하는 세상이 되지 않게... 그렇게...


이 시집에서 노래한 "남과북"이 모두 우리임을.


두 편의 시를 보자. 이것이 바로 남과북이 지녀야 할 자세가 아닐런지.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하루빨리 씻겨내려가기를 바라면서...  

 

이제 입춘도 우수도 지났다. 봄이다. 꽃소식. 계속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곧 단풍도 멋지게 들테니...

 

      꽃소식


봄입니다 만물이 자유자재합니다

꽃소식이

세상의 가난을 달랩니다

누구는 불쌍하다고

누구는 불쌍하지 않다고 말하는

미완성의 나라 온통

봄입니다

이 나라 남쪽

제주도에 피는 진달래

며칠 뒤에는

바다 건너

전라남도

경상남도에 피어납니다

며칠 뒤에는

중부 한강 기슭

춘천 소양강 기슭에 피어납니다

한달쯤 지나

북한 압록강 상류

혜산 일대에 피어납니다

5월 하순

표고 2천7백 미터쯤에

수목한계선 밑 추운 봄에

진달래는 울긋불긋 피어납니다

이것이면 됩니다

더이상 바랄 나위 없습니다

어디메 봄날 꽃만한 것 있겠습니까

남과 북 차츰 가지런히

고은, 남과북, 창작과비평사. 2000년. 82-83쪽


     단풍

구원이란

컴컴한 신념보다 종교보다

별이 

꽃이

기어이 가을 단풍이 아주 많이 맡아온 것을 알고 싶다


한반도 북쪽 끝 두만강 상류 무산

첩첩산중

거기 사람은 없고

홍단수

단풍 가득하였다


한달 뒤

강원도 금강산이 온통 단풍이었고

이내 내려와 설악산의 단풍이었다

한달 뒤

호남 내장산 단풍이었다

바다 건너

제주도 한라산 위층은

벌써 빈 나무들이고

아래층은 아직 하루이틀 더 단풍이었다

이렇게 봄 꽃소식 북으로 가고

이렇게 단풍 소식

남으로 남으로 오는데

그동안의 동포들 남과 북에서

수고 많은 날들

그 찬란한 단풍으로

가슴 훤히 구원받아왔으니

이제 더이상 구원받지 않아도 좋아라

그저 단풍이면

어머

어머 소스라쳐 기쁘고

단풍 가면

아이고 어쩌나 안타까워하다가


한밤중 북극성 하나 바라보면

거기 내일이 있어야 한다

 

고은, 남과북, 창작과비평사. 2000년. 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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