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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ㅣ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상처는 상처로 남는다. 그냥 놓아두면. 그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상처는 자신의 내부에서 딱딱하게 굳어진다. 이제는 상처가 자기 자신이 된다. 상처가 옹이가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옹이가 되는 순간을 겪지 않으면 상처는 영원히 상처로만 남을 뿐이다. 그것을 감춘다고 해서 감춰지지 않는다. 상처는 언젠가는 덧나고 마니까.
옹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옹이는 이제 자신의 삶에서 하나의 무늬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이 옹이들이 나를 이루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옹이는 아프다. 딱딱하게 굳어있기에 그 굳음을 견디기까지 너무도 많은 아픔을 겪어야 한다. 우리는 상처가 꽃이 되게 하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이것 정말 어려운 일이다. 상처를 옹이로 받아들이기도 힘든데, 그래서 그 옹이가 자신의 삶을 이루는 하나의 무늬라고 받아들이기도 힘든데, 상처를 꽃으로 만들라는 말은 어쩌면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들의 오만함일 수도 있다.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아마도 이 책에 나오는 건우 엄마 같은 사람이리라. 자신은 그런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인정받고 있지만, 실제로 자신은 또 자신의 가족은 그런 상처있는 사람들과 어울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상처에서 무늬를 보았을지는 모르지만, 그 무늬는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미 존재하기에 인정하기는 하지만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그 무늬와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 책에 나오는 건우 엄마와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한 생각은 바로 그것이다.
건우 엄마처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처를 정말로 무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그것대로 그대로 인정해주는 마음.
그 마음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큰 유진이의 부모는 이러한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상처를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신의 딸이 그 상처를 상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의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이가 받을 상처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사회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쪽에 더한 고통을 주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렇다고 감춘다고 일이 해결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터지기 때문이다. 상처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감춰져 있기 때문에, 계속 곪고 있기 때문에 그 상처는 언제간 터진다. 그 때는 더 큰 상처가 되고, 그것은 옹이가 아니라 흉터로만 남게 된다. 삶의 무늬가 아닌 삶의 짐이 된다.
그 과정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가족이 바로 작은 유진이의 가족이다. 할아버지부터 부모까지.. 그들은 감추려고만 했지 그 상처를 바로 바라보거나 치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치유는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이들처럼 감추려고만 하면 치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은 유진이 지니고 있었던 감추어졌던 상처가 큰 유진을 만나면서 드러나게 되고, 결국 그것이 터지게 되는 과정, 터져서 그것이 흉터가 되느냐 무늬가 되느냐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
결국 큰 유진이나 작은 유진이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상처와 맞닥뜨리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듬어주려는 쪽과 애써 감추려고 하는 쪽. 결국 상처는 드러내고 치유해서 옹이로 만들어야 삶의 무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폭력.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에게서 더 잘 일어나고 있는 이 폭력은 당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는데, 가해자가 주는 상처도 상처지만 주변 사람이 주는 상처도 더욱 크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사태에 대처하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일인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고.
소설을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하고, 그 간접 경험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나는 작은 유진이의 가족처럼 상처를 묻어두려고만 하는가, 아니면 큰 유진이의 가족처럼 상처를 드러내되 치유할 수 있게 하려고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겉으로는 다 이해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척일 뿐인 건우의 엄마처럼 하고 있는가.
소설, 단순히 허구에 불과하지 않다. 공지영의 "도가니"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 영화가 장애인 성폭력 문제를 드러내게 했다면, 이 소설은 어린이의 성폭력 문제를 드러내고, 그것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이들이 이 상처를 삶의 무늬로 만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의 시점에서 교대로 소설이 전개되고 있어서 읽는 재미도 있고 생각할거리도 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