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멘토링 -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스토리텔링 교수법 행복한 교과서 시리즈
조정래 지음 / 행복한미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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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어느 순간 우리에게 다가와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야기와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수학에서도 스톨리텔링 수학이라고 할 정도니, 이제 교육에서 스토리텔링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분야가 영상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영상 분야 말고도 교육에서 스토리텔링을 활용해야만 더욱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스토리텔링이 왜 중요한지를 1부에서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스토리텔링을 실시하는 4가지 방법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런 방법을 실행한다면 학생들이 스토리텔링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 키워드는 '왜?라고 묻게 하라' '목표를 갖게 하라''육하원칙으로 시작하라''설계도를 그리게 하라'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쉬운만큼 실천은 잘 안되는 요소들인데, 그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함으로써, 스토리텔링의 기본에 대해서 확고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다음에는 스토리텔링으로 나를 찾는다는 제목을 단 3부인데, 우리가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하는데,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야기없이 살아가기는 힘들고, 또 이야기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가지 계속 접하는 요소이니, 그런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민담이니, 소설이니 하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나를 비추어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니,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나를 비추어보고, 나를 찾는 연습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4부는 스토리텔링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에, 실천 가능한 방법을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는 늘 접하고, 활용하고 있는 요소인데, 이를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연습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

 

미래세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이 된다. 그렇다면 이 중요한 스토리텔링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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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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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에 대한 에세이다. 차분히 자신이 겪은 일들을, 자신의 감정을 써내려가고 있다. 격정의 시기, 또는 몰락의 시기, 침잠의 시기 등등... 우리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을 작자도 역시 겪었으리라.

 

우리는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7정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 이런 감정을 극복하고, 이겨낸다면 성인의 반열에 들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처럼 감정에 휘둘리며 지내게 된다.

 

감정. 한 번 내 맘으로 들어오면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도무지 이성의 힘으로 어떻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잘못하면 감정에 휩싸여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기도 한다.

 

이럴 땐 한 발 물러나는 것이 좋다. 한 발 물러나서 자기를 볼 수 있다면, 감정은 마음에서 조금씩 멀어져 간다. 이제 제 갈 길을 간다.

 

이렇게 감정을 마음에서 떨어뜨려 놓는 것. 그것을 작자는 그림을 통해서 하고 있다. 그림을 보며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그림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된다.

 

거울을 통해 나를 보면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듯이, 그림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들'을 통해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내가 나를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나의 감정에서 거리를 두고 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나의 마음은 고요해진다.

 

이러한 고요함. 그것은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한 편 한 편의 글에 최소한 두 개의 그림이 나온다. 그 글과 관련이 있는. 글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또는 글의 내용에서 나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그림들.

 

그래서 이 그림들에 나를 투영하고, 투영된 나를 거리를 두고 바라봄으로써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 그림을 해석하는 재미도 있고, 그림 속에서 인생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이런 재미에 더하여 자신을 발견해가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어서 더욱 좋다.

 

외로울 때, 또는 못 견디는 감정에 쌓여 있을 때 어떤 이는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이는 술을 마시고, 어떤 이는 잠을 자고, 어떤 이는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이 책은 그럴 때 그림을 보게 만든다.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림 중에서 자신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한 그림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림에서 연상되는 일들, 감정들을 되새기면서 자신의 감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된다.

 

직접 미술관에 가서 본 그림은 몇 편 되지 않고, 그림에 대한 지식도 일천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랴. 내가 어떤 그림을 통해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그림에 내 삶을 투영할 수 있다면 내가 떠올린 어떤 그림도 나에게는 좋은 그림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여 이 책은 나에게 또 하나의 자산을 추가해주었다. 이제는 그림을 보면서도 삶의 다양성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고, 감정이 날 주체할 수 없게 할 때 그림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마음이 외로울 때 한 번 이 책을 들여다보자. 꼭 글쓴이의 마음과 같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림을 보고, 글을 읽으면 어느새 외로움에서 멀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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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필화 - 권력의 횡포에 맞선 17건의 필화 사건
한승헌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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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군사독재 시절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때, 우리나라 인권 상황은 너무도 좋지 않았다.

 

무슨 일만 하면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온갖 법으로 구속이 되고, 탄압을 받았던 때인데, 이 때 문인들도 자신들이 쓴 작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또한 글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핍박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양심수라고도 하고, 확신범이라고도 하는데, 이들은 바로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광산의 카나리아, 또는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변호사인데 과연 변호사가 그 시절에 제 역할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의문에 그래도 명쾌한 빛줄기를 던져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한승헌 변호사이다. 그는 민권변호사로, 인권변호사로 우리나라 인권신장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했으며, 문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필화 사건을 겪는 문인들을 온몸으로 변호해주기도 한 사람이다.

 

그런 활동으로 인해 자신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변호사 자격까지 상실당하는 탄압을 받기도 하지만, 옳다고 생각한 일을 위해서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법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즉, 법은 시대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변해야 하는데, 오래 전에 제정된 법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법이 바뀌어야 함에도 사람을 옭죄는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사람을 변호한 변호사라 할 수 있다.

 

이는 법 구절에 얽매이기 보다는 진리를 찾는 것이 법조인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누가 보아도 잘못된 일이 아닌데, 오히려 칭찬을 받아도 될 일에 국가보안법이라는 엄청난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으리라.

 

제목이 "권력과 필화"이다. 필화란 자신의 글로 인해서 탄압을 받는 일을 말하는데, 이러한 필화사건의 고전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시대 때 '조의제문'이라는 글로 부관참시를 당한 김종직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글은 권력자들에게 위협이 되는 요소였기에 더 많은 탄압을 받았는데, 이렇게 필화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곧 권력의 몰락이 임박했다는 것을 예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은 다른 사람들의 입을 막는 편이니, 글을 막고 탄압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고, 이렇게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정현의 '분지', 김지하의 '오적' 그리고 '동백림 사건' 등등. 우리나라 문인들이 겪은 수난은 말로 다할 수 없는데, 그래도 이들에게 한승헌 변호사같은 분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많은 사건들이 나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많은 필화사건들 중에 무죄선고를 받은 사건이 별로 없다는 것은 그만큼 반민주세력에게 문인들은 두려운 존재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권력에 의한 필화사건이 과거의 일로만 기억되길... 그래서 우리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그 일을 환하게 꿰뚫고 있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우리가 '미네르바의 부엉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 책은 그 당시의 변론문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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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공동체 -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200
손미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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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시집이다. 손미라는 시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음에도 망설이지 않고 이 시집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김수영이라는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고, 그의 이름을 건 문학상을 탄 시집이라면 적어도 김수영의 시세계와 통하는 것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추측에 불과하다. 만약 이 시집이 김수영의 시세계와 통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김수영 초기시에나 해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의 첫시부터 걸리기 시작하여, 시집을 읽어가는 동안 내내 미로 속을 헤맨듯한 느낌이다. 아니, 미로 속을 헤맸다. 시의 의미를 해석하기는커녕, 시의 맛조차 느끼지 못하고, 뭐지 뭐지 하면서 그냥 미로 속을 따라 걸은 느낌.

 

다시 펼쳐든다. 그래 몇 번을 읽으면 뭔가 감이 오지 않을까? 그 중 몇 편의 시를 몇 번씩 읽는다. 그래도 감이 오지 않는다. 시집의 맨 뒤에 있는 해설을 읽는다.

 

야, 이거 참.

이 시집의 해설은 거의 우주론 설명이다. 왜 이리 거창해? 왜 이리 힘들어. 이렇게 우주론까지 동원해서 시를 이해해야 한다면, 그 시의 생명이 얼마나 갈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시란 마음을 울리는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비록 해석은 되지 않고, 이해는 되지 않아도 마음 속에 무언가 여운을 남겨주어 계속 생각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시집이 김수영 문학상을 탄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수영이 우리나라 시에서 참여시의 범위를 확장시켰다면, 이 시집도 시세계에서 무언가 한 자리는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다시, 모든 것을 떠나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왕 시집을 들었으니, 시에서 무언가를 찾는다면 더 좋지 않을까?

 

오독이 시작된다. 세상의 모든 말은 미끄러질 수밖에 없으니, 담화는 오독을 포함하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내 나름의 해석을 만들어 간다.

 

시집의 처음, 첫시가 나오기 전, 자서(自序)에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 언젠가 만나 적 있지?

이 무덤 속에서

 

뭔 얘기? 우리가 누군가? 시인과 독자, 아니면 시인과 시인이 알고 있는 누구? 이 의문은 곧 몇 편의 시를 읽으면 풀린다.

 

'후박나무 토끼'라는 시다. 그 시의 3연에 '우리, 언젠가 만난 적 있지? / 이 무덤 속에서?'라고 되어 있다. 자서와는 문장부호 - 쉼표(,)와 물음표(?) - 차이뿐이다.

 

그럼 우리는 후박나무 토끼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린 다른 존재, 즉 나와 관계있는 다른 존재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모든 존재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

 

세상에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듯이 우리는 서로서로 연관되어 있고, 지금 이 자리에서 만났다는 얘기는 전생에 인연이 있었다는 얘기로 이해가 된다. 그것을 우리가 알고 있든, 알고 있지 못하든.

 

그렇게 연결된 세계에서 우리는 개인으로 살아간다. 개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불쑥불쑥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것들을 찾는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려 한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현재에 그치지 않고, 과거로, 미래로 나아가면, 공간은 여기에서 저기로,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뻗어나간다.

 

그렇게 뻗어나가면서도 자신은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곳에 있으려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여기'인데, '지금-여기'는 또다른 시간들과 장소들이 중첩되어 있다.

 

그러한 중첩이 '양파공동체'로 나타난다. 벗겨도 벗겨도 양파는 자신의 형태를 유지한 존재한다. 다만 크기가 줄뿐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낸다. 마치 수많은 공동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공동체와 관계맺듯이.

 

이 양파공동체는 러시아 인형으로 대표되는 '마트로시카'와 관련된다. 독립된 개체들이 또다른 독립된 개체들 속에 들어있는. 양파가 꼭 이런 모습이다. 우리의 삶도 이런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개체이고 독립되어 있지만, 또다른 독립된 개체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관계는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미로와 같다.

 

다른 세계를 꿈꾸지만, '조금만 참으면 도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내 집'이라고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도달하는 순간, 그 곳은 없어진다. 즉, 우리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에 도달하는 순간 자신이 없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심을 두어야 할 곳은 바로 '지금-여기'이다. 이 '지금-여기'가 바로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하여 우리는 양파공동체처럼 서로가 서로를 감싸고 있으며, 서로에게 투명한 존재로 지내고 싶지만, 얇은 막을 형성하고 있으며, 서로가 얽혀 미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미로를 헤쳐나갈 방법은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하는 것. '지금-여기'의 존재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대등한 대상으로 여기고 함께 대화를 하는 것. '양파에 입을 그리'고 싶다고 한 것은 이러한 대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입을 다문 채 이 자리에서 투명하게 변해가는 것은 올바른가'라는 말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결국 소통의 문제다. 서로가 서로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단지 크기의 차이일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감추어 미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대화를 통해서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 시집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조금 비약을 한다면, 우리 언젠가 만난 적 있지라는 질문은, 우리가 우리를 대등한 존재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여기고 함께 산 적이 있다는 얘기로 해석을 한다.

 

'무덤 속에서'가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함께 살자는 얘기로 해석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김수영이 참여시의 지평을 더 넓혀놓았듯이,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이 시집도 김수영의 시세계를 더 넓혀놓았다고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양파공동체

 

  그러니 이제 열쇠를 다오. 조금만 견디면 그곳에 도착한다. 마중 나오는 싹을 얇게 저며 얼굴에 쌓고, 그 아래 열쇠를 숨겨 두길 바란다.

  부화하는 열쇠에게 비밀을 말하는 건 올바른가?

 

  이제 들여보내 다오. 나는 쪼개지고 부서지고 얇아지는 양파를 쥐고 기도햇다. 도착하면 뒷문을 열어야지.  뒷문을 열면 비탈진 숲, 숲을 지나면 시냇물, 굴어떨어진 영파는 첨벙첨벙 건너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라질 수 있겠다.

 

  나는 때때로 양파에 입을 그린 뒤 얼싸안고 울고 싶다. 흰 방들이 꽉꽉 차 있는 양파를.

 

  문 열면 무수한 미로들.

  오랫동안 문 앞에 앉아 양파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때때로 쪼개고 열어 흰 방에 내리는 조용한 비를 지켜보았다. 내 비밀을 이 속에 감추는 건 올바른가. 꽉꽉 찬 보따리를 양손에 쥐고

 

  조금만 참으면 도착할 수 있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내 집.

 

  작아지는 양파를 발로 차며 속으로, 속으로만 가는 것은 올바른가. 입을 다문 채 이 자리에서 투명하게 변해 가는 것은 올바른가.

 

손미. 양파공동체. 민음사. 2013년.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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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겠다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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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소설집이다.

 

6편의 단편 소설이 묶여 있는데, 그 중 '라면은 멋있다'와 '힘센 봉숭아' 두 편은 연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과 사건의 전개가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네 편은 각자 독립된 단편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소설집이라고 하면, 그 소설들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데... 이 소설집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모두 청소년들이라는 점이다.

 

작가는 말한다.

 

청소년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나가는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쓰는 것이 청소년소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소설을 썼다. 단지 그 소설의 화자들 내지는 주인공들이 청소년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뿐, 여기 묶인 이 단편들이 청소년소설인지 안니지 나는 잘 모르겠다.(179쪽. 작가의 말에서)

 

청소년들. 한참 꿈이 많은 시절을 보내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런 청소년들이 행복한 삶을 살까? 어떤 이는 청소년들이 공부에 치여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을 소설로 쓰고, 어떤 이는 청소년들의 일탈을 소설로 그려내고 있지만, 공선옥은 이들 청소년 중에서도 가난을 짐으로 지고 있는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몇몇을 제외하고 우리는 가난을 자신의 업처럼 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가 가난하지만 가난에 굴복하지는 않는다. 가난에 허우적대기보다는 가난을 바로보면서 가난과 맞서려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절망의 나락에서도 '나는 죽지 않겠다'라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기도 하며, '일가'에서는 남의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라면은 멋있다'와 '힘센 봉숭아'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인물이 등장하고, 이러한 가난 속에서도 꽃을 피우면서 가난 속에서 자신은 황폐해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울 엄마 딸'에서는 엄마와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딸의 모습을 통해서 그 과정에서 모녀의 사랑을 확인하고, 청소년 임신이라는 어두운 현실을 어둡게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삶에의 의지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보리밭의 여우'를 통해서는 시대의 어둠을 은연중에 드러내나 결코 그 어둠 속에 잠기지 않는다.

 

하여 이 소설집에 나오는 배경이나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인물이나 환경이 되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위안을 받게 되는 점은 이들이 어둠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게도 말하고 있다.

 

모든 어른들은 청소년 시기의 감성들을 야금야금 빼먹으며 늙어가는 것만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그 감성들의 최대치를 기억해내는특별한 즐거움을 누렸다. 그러하니, 이 글을 읽을 청소년들도 바로 지금 나중에 빼먹고 살 감성들을 최대한 비축하기를 바란다. (180쪽. 작가의 말에서)

 

청소년들이 살아갈 현실은 생각만큼 밝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칙칙함 속에 자신을 빠뜨리고 허우적대는 모습은 청소년들이 지녀서는 안된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듯이, 어두운 현실에서도 청소년들은 밝음을 추구한다.

 

아니, 청소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밝음일 수 있다. 그 밝음으로 청소년들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버리려는 어른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또한 그 밝음으로 청소년들은 어둠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이 소설집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말대로 청소년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다. 청소년들이 읽으면서 나와 비슷하네 해도 좋은 소설이고, 이미 청소년 시기를 거쳐온 어른들이 읽으며 그 때 그랬었지 해도 좋으니까. 

 

현실의 밝은 면만이 아니라 현실의 어두운 면을 고루 보여주고 있으며, 청소년들이라고 해서 늘 밝음 쪽에만 서야 한다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그냥 청소년들이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담담히 형상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형상화 속에서 보여주는 낙천성.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지치게 해도 사람이 지니고 있는 희망, 즐거움. 그것이 바로 절망에 빠져들지 않고, 절망을 듣고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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