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배움은 어떻게 깊어지는가 - 배움의 공동체 수업 실천서
이시이 쥰지 지음 / 살림터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움의 공동체' 참 좋은 말이다.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배움을 중심에 놓고 보면 배움은 공동체의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자고로 배움에는 공동체가 필요하고, 배움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 협동적일 수밖에 없는데... 배움에는 나를 중심에 놓되, 남도 나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교육에는 '배움'이 중심에 놓였다. 그리고 이런 배움은 홀로 하지 않고 함께 했왔다. 동양 고전이라는 논어의 시작이 '배움'에서 시작하는 사실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배움에 중심을 두어왔으며, 이를 교육의 중심에 놓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움'은 멀리 사라져 버리고 '교육'만이 남게 되었다. 이것도 '가르침'으로 남지 않고 단순한 전달로 남게 되었으니... 교육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교실 붕괴, 학교 붕괴. 이런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교권 붕괴라는 말이 많이 나돌고 있는데, 이 교권 붕괴를 마치 학생인권조례 탓인양 말하는 무리들이 있는데... 본말이 전도된 말일 뿐이다.

 

교권이 붕괴된 이유는 단순하다. 배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니, 배움만이 아니라 가르침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만이 학교에서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교권은 더이상 존중받아야 할 무엇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다시 배움을 살리자고,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배움의 공동체를 널리 퍼뜨리고 다니는 일본의 사토 마나부 교수의 책 제목)을 배움에 머무르게 하자고 하는 노력이 바로 배움의 공동체다.

 

배움의 공동체가 어디에서 뚝 떨어져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존재하던 배움의 모습을 현대에 맞게, 그것도 학교라는 공간에 맞게 구성한 것이 바로 배움의 공동체 모형이다.

 

이를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받아들여 광범위하게 시도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학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단지 표면상의 성공이 아니라 진정한 성공은 아이들이 배움을 즐기는 모습으로 나아가고, 단지 학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생을 통해서 배움을 추구하는 자세를 지니게 하는 것인데...

 

베움의 공동체를 표면상 모습만 받아들였다가는 예전에 했던 열린교육이나 협동학습처럼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일회성으로 끝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배움의 공동체가 도입된 지 10년이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이런 실천 속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배움의 공동체가 형식에만 치우치는 경우도 생기기도 했을텐데... 이런 경험을 미리 한 일본에서 배움의 공동체 모형이 실제 학교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 교사들은 어떻게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왜 가르침이 아니라 배움이어야 하는지, 어째서 협동해야 하는지, 일제식 수업보다는 모둠별 수업이 더 효과적인지, 그냥 아이들의 대화만으로 끝나는 수업이 아니라 교사가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여기에 학생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주는 점프는 어떻게 해야 일어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다만 수업의 과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지 평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한계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수업의 과정과 평가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이 경우에 대한 고민이 있지 않으면 배움의 공동체 모형도 정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배움을 통해 아이들의 사고는 깊어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만들어갈 수가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처럼 시험이라는 제도가 떡 가로막고 있다면 결국 배움의 공동체는 성적을 올리는 한 수단이 될 뿐이지 진정한 배움을 추구하는 모형이 되지는 못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는 신선하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참 기분좋게 한다.

 

이것이 단지 일본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잘 운영되고 있는 학교가 있다는 사실은 입시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서도 배움의 공동체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배움의 공동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사들이 노력을 안하는가? 아니다. 우리나라 교사들의 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우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우수한 능력을 지닌 교사들이 오로지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는 것이 더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운영이 된 것은 교사들이 연구할 시간을 다른 업무로 빼앗았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교육을 살리고 싶으면, 학생들이 서로서로 돕는 배움을 만들어가게 하려면 정말로 교사들이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학생들과 교사들이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다.

 

학생들 스스로 배움을 일으키고, 학생과 교사들 간에도 배움이 일어나고, 교사들 사이에서 배움이 일어나며, 학교와 지역사회,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배움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이렇게 학교 현장에서 교실에서 이런 식의 수업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도 우리만큼 입시의 중압감이 큰 나라인데도 이런 교육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멀리 볼 필요도 있지만 실천은 늘 가까이서부터이니...

 

교육의 중심은 가르침이 아니라 배움이다. 이걸 명심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nulp 2014-04-07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움의 공동체를 실천해보고 싶기는 한데...결국 엄두가 나질 않아 잠시 미뤄두고 있습니다. 아무튼 근래 들어 옳은 가르침이란 무엇인지 고민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
 
백범일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 돌베개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너무도 많이 알려져 있는 책이다. 마치 춘향전이나 심청전, 또는 홍길동전처럼 사람들이 내용을 알고 있지만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지는 않은 책. 어렸을 때부터 요약된 책으로 또는 어린이를 위하여 재편집된 책으로 읽어보았던,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는 이미 읽었는 걸, 다 아는 내용인 걸 하면서 손에 들지 않는 책.

 

그렇게 유명한 책인데도 정작 제대로 읽히지는 않는 책.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데도 정작 그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런 점이 백범 김구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도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나와 있음에도, 임시정부의 주석을 역임했던, 실질적으로 임시정부를 끝까지 이끌었던 백범의 사상을 계승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나왔고 그들은 우리나라를 위한다고 큰소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위한 정치를 하려고 했던가 생각을 해보면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왜 그들은 그들이 존경한다는 백범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는가? 읽어도 왜 자기들에게 유리한 점만 찾아 읽었는가. 그것은 그들의 눈에 사심이 끼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심으로 인해 정작 백범이 주장한 정치는 뒤로 가고, 오로지 정권을,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심만 남아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거의 계절이다. 각 예비후보들이 난립하여 자신을 알리기에 분주하다. 봄을 맞아 많은 꽃축제장에 가보면 온갖 예비후보들이 명함을 돌리고 있다.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자신이 우리나라를 위한, 자신이 속한 지역을 살릴 진정한 일꾼이라고.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백범을 꼽기도 한다. 백범처럼 정치를 하겠다고도 한다. 그런데 정작 백범이 어떤 정치를 원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 정치가들 중에 백범일지를 정독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백범일지를 읽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백범의 정치사상을 찾기 위하여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논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백범은 보수다. 아니 백범 정도는 되어야 보수라고 할 수 있다. 보수는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민족의 발전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전제로 한다. 그들, 자신의 이익보다는 민족의 이익을 앞세울 때 보수가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보수의 탈을 쓴 수구일 뿐이다.

 

이렇게 수구와 보수를 갈라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만 진정한 정치의 민주화가 이루어진다. 그것이 백범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으리라.

 

그는 개인의 안녕보다는 민족의 발전에 자신의 전생애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시련도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그런 백범의 모습이 이 책에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다. 왜 그가 그렇게 고생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일했는지...

 

그것은 그가 진정한 보수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였기에 동학에도 가담을 하고, 나중에는 예수교에도 가담을 하며, 임시정부 활동을 하면서 조국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보수주의자. 이 시대에 정말로 그리운 존재다. 보수의 탈을 쓴 수구들이 아니라 말이다.

 

선거철. 이 때 난무하는 말들은 모두 화려하다. 이 화려함에 진정성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그런 개살구들에 속아서 늘 한 입 꽉 깨문다. 그리고 퉤퉤 뱉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선거를 통해서 겪어왔던 일들 아니던가.

 

백범일지는 이런 때 빛 좋은 개살구들이 아니라 진정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고 알려준다. 누가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할 사람인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준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앞서게 되는 그런 사람. 그런 정치인이 누구인지 판단하게 해준다.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정치적 안목, 그것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이것이 요즘 나에게 다시 백범일지를 손에 들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백범일지가 아닌, 제대로 주해가 된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백범에 대해서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알게 되었고... 너무도 유명한 글인 "나의 소원"을 다시 읽으며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백범일지를 다 읽지는 않더라도 '나의 소원'만은 읽어라. 그리고 백범이 꿈꾸는 나라가 백범만이 꿈꾸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꿈꾸는 나라임을, '나의 소원'은 백범만의 소원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소원임을 명심하라.

 

적어도 보수든 진보든 백범같은 정치인을 우리가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보수의 탈을 쓰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그런 수구들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나의 소원'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소원이므로. 우리는 백범의 '나의 소원'에 나와 있는 나라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을 위하므로. 우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깨닫기 위해서.

 

그렇게 깨달았다면 빛 좋은 개살구인지 정말로 달콤한 살구인지 알려고 노력을 할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들의 풍경
김윤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는 어렵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시인은 남다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어쩌면 학교에서 배운 시들이 마음을 울리기보다는 점수에 연연하게 만들어 시란 나하고는 상관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시를 배워야 하는지, 뭔 말인지도 모르는 그런 시를 왜 외워야 하는지, 여기에 더한 부작용은 그것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 문제풀이를 해야했다는 사실. 문제풀이를 하는 순간 시는 저 멀리 달아나버리고, 시인이란 다시는 상종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문학소녀, 문학소년이라는 감상적인 말은 옛말이 되어 버리고, 청소년들은 문학, 특히 시를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바쁘기도 하려니와 시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게 하는 주범으로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 시들은 난해하다. 도대체 이런 시들이 어떻게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마음을 울리기는커녕 머리조차도 울리지 못한다. 이 책에 나오는 최두석 시인은 노래와 이야기에서 노래는 심장을 이야기는 뇌를 자극한다고 했는데... 요즘 시들에서 심장과 뇌가 자극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뇌가 피곤해하고, 감성은 더욱 메말라가고 있다. 봄이 되었는데... 그 봄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지니기 힘든 시대. 이런 힘든 시대를 시인들이 똑바로 보고 표현해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들은 시대라 어지러울수록 더욱 명료한 언어로 시대를 표현해냈으면 좋겠다. 시대와 함께 어지러워진 언어들을 쓰지 말고.

 

세상을, 자연을, 사물을, 다른 사람을 자신의 감성으로 바라보고, 그것의 끝을 바라보고, 다시 언어로 표현해내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시인인데... 이런 시인을 우리가 전체로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인의 한 면만을 볼 수 있을 뿐. 시인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은 모두 다면적인 존재이고,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모두를 알 수는 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시인은 더욱 다층적이고 다면적이고 다양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이렇게 그렇게 보고 표현해내는 사람들이 단순할 리는 없을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들은 언어로 인해 몸살을 앓아본 사람들이니.

 

이 책의 저자 김윤배는 시인이다. 시인이 시인을 만나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책에 담아내었다.

 

황동규, 신경림, 최하림, 김명인, 정진규, 황지우, 최두석, 이시영, 조창환, 이윤택, 송기원, 임영조, 고형렬, 홍신선, 채호기, 도종환, 이재무, 김명수, 송찬호, 장석남, 고    은, 최승호

 

꽤 알려진 시인들이다. 이런 시인들과의 교분도 교분이지만 이들과의 만남에서 시인들이 지닌 진솔한 한 면을 이 책을 통해 드러내주고 있다. 그래서 시인에 대해 전체적으로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그 시인의 특정한 한 모습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 그 시인의 시에 대해서도.

 

그 사람을 아는 것이 그 사람의 글을 모두 알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왜냐하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에 대해서 알게 되면 시인과 나 사이에 어떤 공통집합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 공통집합, 수학시간에는 이를 교집합이라고 하나, 그것은 그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 단서를 통해 시인의 시라는 성에 들어가는 열쇠를 마련할 수 있고, 이 열쇠로 성의 문을 여는 순간 시의 세계를 맛볼 수 있게 된다. 그때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시인을, 시를 이해하는 작은 단서를 제공한다. 이 단서들을 모아 잘 꿰어놓는다면 시의 세계, 시인의 세계에 들어가는 열쇠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시란, 시인이란 카프카의 "성"처럼 눈에는 보이나 이상하게도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어 결국 도달할 수 없는 대상은 아니다. 우리가 길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 길을 찾는 작은 단서. 그것이 이 책이다.  

 

더 많은 단서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성은 안개에 쌓여 있지만, 결코 도달하지 못할 곳은 아니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리학 일주일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때 월화수목금금금 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때 토일이라는 휴일이 없는 상태라면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람은 쉴 때 쉬어야 원기를 회복하고,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다. 왜 우리들에게 월요병이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쉴 때 쉬었는데, 무언가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을 때 월요병은 더 심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월요병에 이어 화요일에는 피곤이 가중되고 수요일이 되면 정점에 올랐다가 목요일이 되면 이제 휴일이 다가온다는 기대에 차고, 금요일이 되면 하루만 견디면 휴일이다 이랬다가 막상 휴일이 되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미진함에, 일요일이 가는 아쉬움에 이대로 시간이 멈추거나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게 되는 것.

 

이런 일주일이 매번 반복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여기서 어떤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런 점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월화수목금토일을 나누어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꼭 요일과 그 다스림이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주일을 우리 인생의 주기로 생각한다면 우리 인생의 주기에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일주일에 빗대어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요일에 맞는, 상황에 맞는 처방을 해주고 있기에 읽으면서 과연 그렇구나, 이렇게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법들이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러한 방법들이기에 시도를 해본다면 조금은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리 멘탈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쉽게 붕괴되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이다. 특정 선수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들도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우리 마음이 순식간에 붕괴되는 경험을 많이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나서 곧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자신을 조금만 추스릴 걸, 그 때는 왜 그랬을까 하는 마음을 지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조금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막 흔들리는 내 마음을 보고, 왜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까, 왜 이리 불안하고, 신경질적이 되었을까 나를 바라보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이 책은 그런 내 마음을 알고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월요일이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피곤하다는 사실. 그렇다. 월요일은 다시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어쩌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은 중요하다. 물론 우리나라 말에 '아침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이라는 말이 있지만, 시작해야 할 때 에너지 보충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최소한 출발하기 위해서는 연료가 채워져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지나친 연료는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런 출발에서부터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잘 제시되어 있느니,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제 휴일. 잘 지내온 자신의 행복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과연 돈인지.. 아닌지... 돈은 어느 정도는 행복과 관련이 있지만,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말. 

 

이 행복감을 주는 최소한의 돈을 사람들이 걱정없이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그리고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로 문화를 바꾸어가는 일. 그것이 이 책의 뒷부분에서 이야기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너무도 낮은 것을 바꾸어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불안사회에 살고 있다. 남북대치 국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생존에 위협을 많이 느끼고 있다. 어느 한 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그렇게 되면 누구도 자신의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그런 불안감이 우리를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이런 불안감은 또한 나를 나 자신인 나로 보게 하지 않고, 남의 눈에 비친 나로 보게 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길이다. 이런 길에서 탈피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지녀야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되 부정적인 면을 아예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고...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한다. 또 여유 있는 삶. 그리고 돈을 쓰되 물건에 쓰지 않고 경험에 쓰는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 등등.

 

세상이 어지럽다고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서 나온 결과 중에 충격적인 것은 행복감을 느끼는데 50%가 유전이라는 사실. 이거야 원. 그랬지만 거꾸로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개인적인, 또 사회적인 노력이 50%나 된다는 사실.

 

우리도(어, 이 말이 너무 집단적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는 말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더 잘쓰고, 이게 몸에 배어 있다.), 우리 사회도 행복한 사회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 출발점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내일은 금요일. 자존감을 지니고 생활해야 하는 날이다. 그렇게 하자.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나는 나다. 그러므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는 바로 '나'다.

 

힘내서 생활하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수원 2016-09-1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화수목금토일 중에 해당돼는요일
 
제안들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배수아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프카는 난해한 작가다. 그만큼 그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 그의 작품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변신"만 해도 매우 많은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도 이 "변신"이 카프카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읽을 만하고 할텐데.

 

우리나라에서 이상이 작품이 해석이 곤란하거나 너무도 다양한 것과 비교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상의 작품 중에서 사람들이 "날개"를 가장 많이 읽고 또 해석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카프카의 글 가운데 "꿈"에 관한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꿈"에 관한 카프카의 모든 글을 모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글을 모아놓아, 또 다른 한 편의 글을 우리로 하여금 만나게 하고 있다.

 

그의 편지, 일기 등에서 언급된 꿈에 관련된 말들이 작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주해나 또 해설에서 잘 설명을 하고 있어서 꿈과 그의 문학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은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그의 꿈에 관한 글들은 계속 읽힌다. 무언가 무언가 안개 속에서 어렴풋한 그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실체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흐릿한 안개 속에서 그의 작품을 명료하게 해줄 수 있는 방편으로 꿈에 관한 글들을 읽어간다.

 

그는 "꿈같은 삶의 기록"이라고 했는데(이말은 우리나라 번역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카프카에게 있어서 꿈과 현실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붙고 얽혀 있는 하나의 동일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그는 꿈을 통해 작품을 쓰기도 했고, 또 많은 날들을 불면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꿈과 현실의 중간에 머무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하니...

 

인간은 이거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듯이,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꿈과 현실을 함께 경험하면서 살아갔다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꿈이 그의 작품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고...이런 특징으로 인해 카프카의 작품은 우리에게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된다. 무언가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의 작품은.

 

장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 단편 소설이 삶의 어느 한 단면을 그려서 결말이 확정적이지 않고 다른 사건을 유발하는 듯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많다고 한다면...장편들은 끝이 명확하게 이루어져 작품이 완결지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편들은 무언가 계속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마치 단편처럼 여운이 계속 남는다.

 

그나마 그래도 "소송"이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기에 더이상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그래도 이상하게 주인공의 죽음이 꿈에서 겪은 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하는데...

 

나머지 장편들은 미완성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계속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나중에 우리가 꿈을 꾸지 못하면 그것은 죽음에 불과할테니...

 

카프카의 꿈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그런 꿈은 그의 문학이 지속됨을 보장하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는데...

 

기가막히게도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은 또 하나의 작품이다. 카프카의 작품에 조응하는 또 하나의 작품으로 옮긴이의 말을 하고 있다. 도무지 실체를 찾을 수 없는, 꿈 속을 헤매는 듯한, 아니 실제에서도 어디론가 가고 있지만 도달은 하지 못하는... 주변에 사람이 있지만 그들의 실체 또한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그런 옮긴이의 작품.

 

하여 카프카의 "꿈"에 대한 글들과 카프카의 "꿈과 작품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해설과 카프카에 조응하여 작품으로 옮긴이의 말을 대신한 글이 이 책을 이루고 있다.

 

책의 편제 자체도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그런 편제다.

 

우리도 꿈을 꾼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꿈을 꿈이라고 실제가 아니라고 허황된 것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꿈은 그냥 꿈에 불과해진다. 여기서 꿈이 그냥 꿈이 아니라 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 꿈이 현실을 이루어내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보다 다른 자리를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꿈을 통해 현실을 보고, 현실을 통해 꿈을 보는 그런 자세... 어쩌면 그것이 카프카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