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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활 - 창간호 - 2013 7-8월호
말과활 편집부 지음 / 일곱번째숲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말과 활'이다. 말을 활에 비유를 한 것인지, 말과 활이 다른 존재지만, 함께 존재해야 한다고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목을 보고 우선 든 생각은 말이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겠군이었다.
고은의 시 '화살'이 떠오르기도 했고... 무수히 많은 말들 중에 활의 역할을 하는 말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런데 말과 활이 아니라 왜 말과 화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활은 화살을 실어 나르는 도구다. 활이 없으면 화살은 무용지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고도, 실천도 말이 없으면 힘들어진다. 우리의 실천이 말을 통해 매개되기 때문이다.
맑스가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철학자는 세상을 해석만 해왔다고, 이제는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 때 철학자들은 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말은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한 방법이지,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수단에 불과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말은 '화살'이 아니라 '활'에 비유된다.
화살을 담아서 세상을 향해, 목표를 향해 쏘는 활.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 염원과 실천을 담아서 세상을 향해,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말.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말'이다. 일회용으로 처분되는 말이 아니라, 언제든지 사용이 가능한 '말'이다. 그런 '말'이 바로 '활'이 된다.
그러니 제목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죽 읽어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방식으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가면서(이런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시사성이 있는 책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는데) 머리 속에서 온갖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는데...
온갖 생각이라기보다는 '말과 활'인데... 그 활에서 나간 말이 상대를 향해 꽂히지 않고, 왜 내 가슴으로 날아와 박히는지... 그것도 정확하게 쏙쏙.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한 우울과 좌절과 절망과 분노를 느꼈다고 할까. 무언가 희망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희망은 저 멀리 멀어지고, 암담함이 자꾸 앞으로 다가와 나를 끌어가고 있었다.
조금 나아지려나 하고 계속 읽어가는데... 그래,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뒤로 가면서 느끼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더 많은 과제들이, 더 많은 불안들이, 더 많은 좌절들이 앞으로 죽 늘어서 있다.
그래서 '말과 활'을 읽으면서 봄날 이 땅 여기저기 수없이 날아다니는 민들레씨앗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이 많은 말들은 그 민들레씨앗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는데, 이런 말들이 '활'에서 떠난 '화살'처럼 무언가를 향해 똑바로 날아가지 않고,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게 이렇게 날아다녀도 되나 하는 생각.
참, 많은 사람들의 말이 실려 있다. 주제를 몇 가지로 압축해 말들을 실어놓았지만, 그 주제 속에서도 온갖 말들은 서로 관계를 맺기도 하고, 홀로 날아가기도 한다. 이 책이 '활' 역할을 해서 '말'을 세상 속으로 쏘아 놓았는데... 이 '말'들은 민들레씨앗처럼 공중에서 흩날리고 있다.
이게 내 느낌이다. 그러다 다시 생각해본다. 민들레씨앗. 이것은 결국 어디엔가 떨어진다. 어디엔가 정착한다. 그리고 자신의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그곳에 어디라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민들레씨앗이다. 아무런 목적없이 날아다니는 것 같지만, 민들레씨앗은 자신이 있을 곳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 책도 그랬으면 좋겠다. '활'이 한 방향을 향해 '화살'을 날리지만... 이 책은 그런 한 방향 '활'이 아니라, 사방으로, 어디든지, 언제든지 날아가는, 날아가서 설혹 빗맞더라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는 그런 '민들레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척박한 시대... 그런 척박한 땅에서도 민들레는 자라니까...
읽다가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것은 이 많은 '말'들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닌 말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비정규직 노조원은 진보당(특정 정당의 이름이 아니라, 진보를 추구하는 정당 모두를 통칭하는 말이다) 의원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함께 하지도 않았음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또 읽다보면 이번에는 진보당 관계자의 글이 있다. 서로의 입장에 따라서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이런 글들이 함께 실려 있는데, 서로 의견교환이 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꼼꼼하게 읽지 않아서 그런가?) 다음 호에서는 약간은 다른 의견이 실리면 거기에 대한 편집자나 또는 상대방의 의견이 실렸으면 좋겠다.
또 독일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김상봉의 글에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 부분과 뒷부분에 나오는 글인 박노자의 글에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 부분은 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의견교환을 다뤄주었으면 좋겠다.
대체로 진보의 위기라고 한다. 작금의 세태는 진보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럴 때,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을 일리치에 빗대면 래디컬하다고,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진보가 근본으로 돌아가(결코 부정적인 의미의 근본주의가 아닌, 자신들의 정체성,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등을 근본적으로 성찰한다는 뜻으로) 다시 시작하는 화살을 쏘는 '활'이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의 '말'들이 그런 '활'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