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 지음 / 따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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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읽히는 책이다. 이렇게 절절하게, 또는 적절하게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교육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 더 좁혀서 이야기하면 학교에 근무하면서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교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제목이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이다. 제목에 쓰인 조사 "도"가 마음에 안 든다. 학교를 두려워 하는 존재가 또 있다는 얘긴데... 학교를 누가 두려워하지?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두려워 하나? 아니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때우는 공간에 불과하다. 학교라는 공간은 친구들을 만나 놀거나,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고, 때로는 학원공부로 인해서 부족한 잠을 때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사교육을 받을 수 없지만, 상급 학교로 진학을 하고자 학생에게는 학교가 배움의 공간이 되고, 교사들이 가르침을 주는 존재가 되겠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니... 학교가 학생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될 수는 없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학부모가 학교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자기 아이의 성적? 아니면 자기 아이의 인성? 또는 남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회성? 아니다. 학교는 그냥 보내는 곳이다. 자신이 일을 하는데 아이를 돌볼 수 없기에 돌봄이 필요한 공간으로 학교는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지식이나 인성, 사회성이 길러진다면 더욱 좋겠지만 학교에 우선으로 치는 가치는 돌봄이다. 아이가 무사하게, 건강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따라서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학교는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가고 함께 하면서 공통의 기억을 형성하는 "장소"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그냥 시간을 보내는 공간일 뿐이다. 이런 공간에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학교에 가장 두려움을 가지는 존재는 단연 "교사"다. 따라서 제목이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가 아니라, "교사는 학교가 두렵다"가 되어야 한다. 다른 존재는 몰라도 교사에게는 학교라는 공간이 두려움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학교는 교사들의 삶의 장소이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생활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렇듯 학교는 교사들에게 삶의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된다. 그런 장소에서 무언가 결핍을 느꼈을 때,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가 잘 안되고 있다고 느낄 때 불안감을 느낀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때 엄청난 불안감을 지니게 된다.

 

그만큼 지금 학교는 교사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 만족을 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고역일 정도로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교육관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둉료교사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기에 교사들은 불안감을 지닐 수밖에 없다.

 

"신인류" 또는 "별종"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학생들과는 관계가 단절되어 있으며, 자기 자식만의 이익을 위해서 학교에 간섭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과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며,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오히려 교육에 맞지 않는 지시를 한다고 여기는 교육관료들과는 예전부터 담을 쌓고 지냈으며, 한 때 동료성을 발휘하여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가던 동료들과의 관계도 언제부터인가 막히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때부터라고 하는데, 그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아이엠에프라는 커다란 격변을 겪은 후부터 교사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달라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예전에는 착하고 공부잘하는 가난한 모범생이 교사가 되고자 했지만, 아이엠에프 이후에는 공부잘하는 독한 모범생이 교사가 되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교사가 되어서 공부 못하고, 말썽 부리는 학생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런 태도는 교사들 간에 세대 갈등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예전에 교사가 된 중견 교사들은 말썽 많은 학생들을 통해서 자신이 깨어져나가면서 타자성을 획득했다면, 요즘의 교사는 아예 이들을 밀쳐내버리고 말아 타자성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으니, 교사들간에 학생을 사이에 둔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전산화를 통한 개별화 파편화된 교사문화로 인해서 서로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으며, 교무실에 있는 교사들은 개개인이 모두 하나의 섬으로만 존재하게 된다고 한다. 같은 직장에서 함께 생활하는데도 서로 섬으로 존재한다면 그런 직장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또한 교사들끼리 세대간에 소통이 되지 않고, 중견 교사들은 젊은 교사들을 교육에 대한 관점도 없이 주어진 일만 하려는 한심한 세대로 치부하고, 젊은 교사들은 중견교사들을 쓸데없이 간섭하는, 나이 많다고 편하게만 지내려 하며,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꽉 막힌 세대로 치부하니, 어찌 학교가 두렵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는 이렇게 교사가 학교를 두려워하게 된 이유와 모습을 자세히 펼쳐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정말 "교육 불가능"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된다. 이대로 가다간 학교에서 "교육"이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단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현실을 이렇게 보여주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현실을 똑바로 보라는 얘기다. 현실을 똑바로 보고 인정을 해야만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현재 교사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 보라는 얘기다. 현재 교사들의 처지를 정확히 파악한다면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면 된다. 그 출발점을 이 책이 제시해주고 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관계를 만들어가고 전승을 하는 "교육" 아니겠는가고...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을 남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나와 대등한 존재인 남으로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대화를 하자고. 대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함께 주고 받는 것이니, 칸막이로 막혀 있던 교무실에서 우선 교사들부터 동그랗게 앉아 이야기를 하자고. 교육에 대해서.

 

하여 이 책은 중견 교사들에게는 자신을 다시 보게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하고, 젊은 교사들에게는 중견 교사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아울러 자신들의 "교육 활동"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교사들이 읽기에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지만, 교사들 자체가 모범적으로 공부 잘하던 학생들의 균질적인 집단이므로 이 정도 책은 충분히 읽고, 생각하고, 옳은 방향으로 "교육 활동"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우리는 "교육 불가능"의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론 긍정하면서, 때론 너무도 슬픈 마음이 들면서, 그럼에도 "교육 가능성"에 대하여 희망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젊은 교사들,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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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시대의 불꽃 16
김문주 지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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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그를 처음 만난 건 풀빛 출판사에서 발간한 "풀꽃 판화 시선"에서였다.

시집의 첫 장에 판화 두 장이 실려 있었고, 그 판화는 힘있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당극에서 걸개 그림으로 그의 그림이 이용되기도 했었고.

 

잊고 있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났음을. 이제는 우리 곁에 없음을. 그의 작품이 미완임을.

 

정권에 아부하는 미술과 서양의 추상적인 미술을 추구하던 미술계에서 우리 전통의 맥을 잇는 미술을 하고자 했던 사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란 치열한 고민을 통해 현실을 드러내고 현실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을 미술로 보여주고자 했던 사람.

 

그의 판화는 독일의 케테 콜비츠를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케테 콜비츠도 독일의 현실을 판화로 표현해내어 독일 민중의 삶을 자신의 작품세계로 삼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윤이 살았던 시대와 콜비츠가 살았던 시대가 다르다는 점과 전통이 다르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타나겠지만, 오윤의 작품에서는 민중들의 힘있는 모습이 잘 표현되고 있다. 그는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아가는 민중이라도 그 힘듦 속에서도 변혁의 꿈을 잃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것을 그의 작품 속에서 나타내려고 했다.

 

그의 작품이 동학에서 전쟁으로, 그리고 통일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의 작품을 '한(恨)을 생명의 춤으로' 바꾸었다고 평가를 하는데... 그림들을 살펴보면 무언가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림에서도 이야기(스토리)가 있어서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그에 대한 평전이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스러져간 사람들의 평전 시리즈로 기획된 책 중에 16번째 책인데... 그에 대해서 잘 모르던 사람들을 위해서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잘 쓰여져 있다.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오윤이 '갯마을'로 유명한 소설가인 오영수의 아들이었다는 것. 참... 이렇게 세상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구나.

 

그는 더 좋은 세상을 보지 못했다. 그의 사후 87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대통령 직선제가 이루어졌으며, 형식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여 그의 작품이 과거에는 이랬지 하면서 과거를 회고하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었으면 했는데...

 

아니, 이런 오윤의 그 작품들이 지금에도 다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다니... 그의 '칼노래'이란 판화에서 잘라냈던 그 많은 것들이 아직도 우리가 잘라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가 '통일대원'이라고 빌었던 그런 그림들이 우리에게 아직도 진행형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까?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닐까? 그의 그림을 역사 속에 간직하지 않고 다시 현실로 불러내야 하는 이런 현실은 무언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된 것이 아닐까.

 

그의 '원귀도'가 아직도 우리에게 다가오다니.. 이런... 참...

 

민중들의 삶에서ㅡ우리의 역사에서-그는 자신의 미술을 살아냈다. 이제, 그의 뜻을 미술에서뿐이 아니라, 삶에서, 우리의 현실에서 이루어내야 하지 않을까...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반복이 된다면 이는 "지금-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잘못이다. 그의 평전을 읽고 그냥 참 잘 살았구나 감탄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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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감사회 - 9인의 공익제보자가 겪은 사회적 스트레스
신광식 지음 / 참여사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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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의를 고발했다 그러나 정작 싸움의 상대는 불감사회였다"

 

이게 제목이다. 물론 검색어에는 불감사회라고만 쳐도 책이 나오지만.

 

제목만 보고도 내부고발자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내부고발자란 조직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리나 부정을 조직 외부에 알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이는 조직의 비리나 부정은 그 조직에 속하지 않고서는 발견해내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끔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조직 내에서 생활하다보면 어느새 그 조직에 동화되는 경우가 많고, 조직에 동화되지 않더라도 좋은게 좋은 거라는 식의 사고를 하게 되거나, 아니면 자신이 겪게될 어려움 때문에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부고발자는 어느 사회든지 있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어떤 조직이든 부정이 있으면 반드시 폭로되게 되어 있다는 것과 옳지 못함에 대해서 민감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겪게 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부정과 비리, 부패 등을 그냥 보아 넘긴다는 것이 힘든 사람들, 그것을 보고도 눈 감아야 하는 현실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민감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이 민감성에 용감이 가세하면 자신의 미래보다는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이들은 내부고발자가 된다.

 

그리고 사회는 조금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해 간다.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분명 과거형이다. 아니 과거형이어야 한다. 21세기 민주화된 이 나라에서 과거형이 아니라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너무 화가 나지 않는가.) 부정 부패가 어느 정도 사라진 것도 이런 내부고발자들 덕분이다. 그들이 비록 힘든 삶을 지탱했고, 어떤 분들은 삶을 마감했을지라도, 그들이 없었다면 그냥 묻혀있었을 엄청난 비리들이 그들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따라서 그것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는 그러한 내부고발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9인의 공익제보자가 겪은 사회적 스트레스"라고 겉표지에 나온다. 내부고발자를 여기선 공익제보자라고 했다. 같은 개념으로 쓰자. 왜냐하면 내부고발자들은 공익을 위해서 제보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공익제보에 대해서 더 긍정적이고 이런 사람들이 대우를 받는 그런 사회의 모습이 그려져야 하는데, 이건 정반대다. 물론 제목과 표지의 글을 읽어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은 내부고발을 한 다음에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먼저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는 것. 왜냐하면 조직의 비밀을 밖으로 유출시켰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조직은 더 웃기게도 이들에 대한 정보를 다른 조직에 모두 넘긴다. 소위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그럼 내부고발자의 신상을 넘긴 조직 구성원들은 배신자 아닌가. 참 우습다. 자신들의 잘못을 그 잘못을 폭로한 사람을 배신자로 몰아 덮으려는 그 심사들이. 그럼에도 이런 파렴치한 일들이 자못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불감사회였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되지 않겠는가.

 

두번째는 조직의 비리를 내부고발한 사람들의 개인비리로 몰아가는 것. 조직 내에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또는 망설이는 사이에, 또는 어쩔 수 없어서 함께 한 일을, 그것도 개인이 주도하지 않은 일을, 조직이 시켜서 한 일을 '네가 한 거잖아. 넌 나쁜 놈이야' 하는 이런 덮어 씌우기.

 

다음엔 왕따 시키기. 괴롭히기. 폭력을 가하기. 이거야 원. 법치 사회라고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무서운 건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지 말라는 소리와 같은데, 이런 짓을 대놓고 하고 있으니... 이것과 더불어 엄청나게 오래 걸리는 재판과정. 역시 절차를 중시하는 법치사회답다. 당장 먹을 게 없어서 힘들어 하는 사람과 시간과 돈이 넉넉한 사람이 몇 년씩 걸리는 재판을 한다면 승자는 누가 될까? 아니 여기서 도대체 이긴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러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여 이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 스트레스에도 반응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하고, 이 책은 이런 이들의 반응을 연구하여 앞으로 내부고발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보면 되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으려나? 갑자기 요즘 떠오르는 일이 있는 건?

 

중요한 것은 내부고발자가 나오지 않게 조직들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것이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인이 알기 힘든 부정인데, 사회에 결코 좋지 않게 작동하는 것이라면 내부고발자가 나와야 하는데, 이런 내부고발자를 철저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하고, 이러한 내부고발로 어떠한 피해도 당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공익제보에 관해서는 상당히 높은 민감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공익제보를 한 사람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이 큰소리를 치면 안되지 않겠는가.

 

이런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한 방법으로, 또는 힘없는 약자들을 보호하는 한 방법으로 요즘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가 가장 좋지만, 만약 있다면 이런 부정부패를 감지하고 알릴 수 있는 파수꾼 같은 존재인 내부고발자가 피해를 입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아니 이런 내부고발자가 공익제보를 했다는 이유로 더 칭송받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우리들이 공익에 대해서는 민감한 감수성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왜 이런 종류의 책들이 자꾸 눈에 띠는지... 참.

 

덧글

 

나는 내부고발자와 공익제보자를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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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골라 든 책이다.

 

제목도 자극적이다.

 

"사형수 작곡 양심수 작사"

 

시국이 어수선하면 또 무슨 간첩단 사건이 생기겠구나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남과 북이 갈라져서 일어나는 비극적 현실.

 

그런 비극적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는지...

 

이 책은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의 주인공인 김성만 씨의 글을 모아 놓았다.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네 명.

 

김성만, 양동화(이들은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나중에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되고, 이후에 사면되었다), 황대권, 강용주.

 

이 중에 황대권은 "야생초 편지"로 유명해지고, 지금은 생태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어서

 

그의 글을 여러 번 읽어보았으니 친숙하고, 강용주는 전향서를 거부한 일로 인권단체에서 다루고 있었고, 지금은 광주에서 치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양동화와 김성만의 현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김성만의 글, 사형수로서의 느낌, 감옥생활, 그리고 자신의 민주화를 위한 열정 등을 모아놓은 책인데...

 

그 많은 간첩 사건 중의 하나... 그의 심경을 잘 알 수 있는 책이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시적인 글들을 모아놓았다면, 이 책은 산문적인 느낌을 주는 글. 그러나 당시 사회를 잘 알 수 있는, 왠지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책이다.

 

이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지. 없겠지 하지만... 분단이란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고, 한 때 풀려가던 남북관계도 많이 꼬여가고 있으니... 약 30년 전의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우리 역사의 어두운 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는 이런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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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전쟁 - 이야기 종결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조나 삭스 지음, 김효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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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이야기(스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야기는 우리가 창조했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이기도 하다. 이야기 없는 인간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하여 이야기는 인간의 탄생과 더불어 죽음까지 함께 한다.

 

이런 것을 일찍 간파한 사람들은 이야기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광고, 또는 마케팅이라고 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자신을, 또는 자신의 제품을, 자신의 집단을 좀더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얼마나 잘 전파되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갈리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에는 진실도 있지만, 허위와 과장도 많았고, 한 때는 불안감을 조성하여 마법같은 해결책을 제시한 이야기들이 승리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진실을 실천하는 이야기가 승리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단지 진실이라고 해서 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거짓도 진실이라는 가면을 쓰고 세상에 나타나기 때문이고, 그런 허위, 과장, 허영 등을 가리기 위해서 오히려 더 진실인 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진실인 척 하는 가면을 쓰는 이야기는 더욱 정교해지고 우리는 그것을 표면적으로는 잘 구분해내지 못한다.

 

여기서 스토리 전쟁이 일어난다. 방송 시대를 지나 이제는 모두가 이야기를 만들고 전파할 수 있는 시대에는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이야기와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끄는 이야기가 승리한다고 하는데...

 

그런 승리할 수 있는 이야기의 조건으로 이 책에서는 존 파워스란 사람이 제시한 세 가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존 파워스의 말

 

흥미를 유발하라.

진실을 말하라.

만약 진실을 말할 수 없다면, 하고 있는 일을 바꾸어 진실할 수 있도록 하라. 즉 진실을 실천하라.

 이 책 149쪽에서.

 

그렇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만, 또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만 그쳐서는 스토리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다. 자신이 이야기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을 통해서 자신에게 관심도 없던 사람에게 퍼져나가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스토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첫번째 조건이다. 그렇다고 흥미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흥미는 잠시 머물다 사라질 뿐이다. 또한 사람들의 관심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현대처럼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는 단지 흥미만으로는 스토리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다.

 

흥미를 유발한 다음 승리를 위해 나아가는 길은 바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 이것은 처음에는 고전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승리를 가져오는 요소이다. 진실과 반대되는 허위나 허영은 처음에는 승리를 보장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파멸로 이끄는 요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일까? 이것은 바로 역사의 발전 방향에 서는 것. 나만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 인간만이 아니라 전 지구, 전 우주에 도움이 되는 것이 진실이다.

 

아무리 상업 마케팅이라고 하더라도 스토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익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스토리라도 이윤과 더불어 공익을 함께 추구하려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실을 말하라는 것이다.

 

지금 자신들의 제품이 끼치는 문제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를 함께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을 하자고 하는 스토리, 그런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진실을 말하기는 쉽다. 그것은 별로 힘들지 않은 일이고, 또 자신의 회사, 집단에 별로 어려움을 끼치지도 않는다. 말로만 그치면. 어떤 집단은 진실을 말하기는 하지만, 진실을 실천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 진실을 말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진실을 실천하려고 해야 한다. 이런 식이다. 우리가 다른 생명체들의 목숨을 먹어야지만 우리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생명의 목숨이 귀중하다고 먹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먹어야 할까? 먹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생명을 해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해침의 안 좋은 면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기업체들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최종적으로 스토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책이다. 재미 뿐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어차피 우리네 삶이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우리도 우리 나름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 그런 이야기들이 서로 갈등을 하고 통합을 하기도 하는데...

 

정치에서도 마찬가지고, 사실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승리하게 되고, 기업들도 이야기를 잘 만들어낸 기업이 성공하기도 한다. 이걸 응용해야 한다. 진실이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실이니까 하고 그냥 내버려두면 안된다는 얘기다.

 

진실이기에 그 진실을 이야기로 전파해야 한다. 흥미로운, 진실을 담은 이야기로 만들어 전파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수동적인 소비자의 자리에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바로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우리는 모두 이야기이 주인공, 즉 영웅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그것이 스토리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시민단체 사람들 뿐만 아니라,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람, 정치권에 있는 사람, 정부관료들, 또는 학교의 교사들. 모두 이 책을 읽으면 많을 것을 깨달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우리가 부딪쳐야 할 스토리 전쟁이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그 스토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존 파워스의 말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세번째.

 

바로 진실을 실천하라. 이것이 바로 스토리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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