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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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 왜냐하면 우리나라 역사책에 잘 나오지 않을 뿐더러, 가해 당사국인 일본에서는 철저하게 감추려고 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라는 말에도 논란거리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 중국이나 우리나라 또 서양의 여러 나라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로 보고, 그 규모에 관해서만 논쟁이 되고 있는데...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이를 조작된 것으로 보고, 사실이 아니라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꽤나 오래 전에 서점에서 우연히 "남경대학살"이라는 책을 본 기억이 있는데... 정확한 제목도 출판사도 생각이 나지 않고, 책에 나와 있는 사진이 너무도 충격적이라 책을 살 엄두도 내지 못해서 그냥 사진만 훑어보다 만 책이었는데... 그래서 남경대학살이라는 말은 내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한자어로 남경을 중국어로 난징이라고 하니, 그 때 내가 본 책이 도대체 어떤 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

 

독일이 자행한 유태인 학살에 비견될 수 있는 이 집단 학살극이 어떻게 묻힐 수 있었는지... 세계 정세와 각국의 힘이 역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의 영어판 제목은 "난징의 강간"이다. "강간"이라는 말이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 의사대로 강제로 상대방을 겁탈하는 것이니, 강간이나 대학살이나 비슷한 의미로 쓰면 될 듯한데.. 굳이 "강간"이란 용어를 쓴 이유는 "대학살"은 죽음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반면에 "강간"은 상대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더 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고, 상대방 본인에게만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행위, 그것이 "강간"이고, 난징에서는 아예 집단적으로 이러한 "강간"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피해규모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없던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니, 진정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아이리스 장..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는 자신의 가족에게 들은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난징 대학살에 대한 철저한 자료 조사를 한다. 그러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책을 써냈기 때문에 이 책은 난징 대학살에 관해서 상당히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난징 대학살은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실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엄청나게 끔찍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고, 난징 대학살을 경험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얼핏 보면 역사는 강자의 편에 선다. 아니, 역사 자체가 강자의 역사다. 패자의 역사는 왜곡되거나 사라져버리고 만다. 하여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현상이 역사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역사는 늘 강자의 편에 서는가? 아니다. 강자가 영원하다면 모를까, 인류의 역사상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은 순간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순간, 강자가 될지 모르지만 영원히 강자일 수는 없다.

 

20세기 초 일본은 동양에서 최강국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중국에 넘겨주고 있다. 이처럼 강자는 바뀐다. 그렇다면 역사는 도대체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역사는 바로 진실,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강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숨기려 하지만, 어떻게든 진리의 편에서는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역사의 진리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 속에서 순간 감추었던 진실은 결국 드러나고 마는데... 일본이 사과도 하지 않고 감추려고만 하는 난징 대학살은 이미 중국에서는 드러날 대로 드러나 기념관까지 생겼으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봤자 비웃음만 살 뿐이다.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드러낸 대가는 어떨 때는 혹독하기까지 하다.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은 사람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 난징 대학살에 대해서 언급한 사람들은 엄청나게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쓴 아이리스 장 역시 어려움에 처했다. 테러 위협 등을 겪으며 심각한 우울증세를 나타냈다고 하는데... 결국 2004년 아이리스 장은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자살이라고 판명이 났다고 하지만... 이것은 타살이라고 해도 된다.

 

진실을 드러내려 했다는 이유로 온갖 위협을 받았을 그가 견딜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슻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이것이 어떻게 자살일 수 있는가. 그것은 사회적 타살이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아이리스 장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이야기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리스 장도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목숨을 버리게 되었다. 이게 진실을 대가라니...

 

그래도 이런 진실의 대가로 우리는 이제 난징 대학살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난징 대학살은 20세기 중국의 난징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집단 학살극이라는 인식을 한다. 아이리스 장과 같은 사람 때문에 난징 대학살이 역사의 한 사실로서 자리를 잡았다.

 

일본...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인데, 아직도 이들은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요집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책에 나오는 난징 대학살이 어떻게 중국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우리나라도 위안부 문제, 징용, 징병 문제부터 우리나라 사회가 왜곡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일본에 있지 않은가.

 

우리는 무려 34년 11개월을 식민지 생활을 했으니 말이다. 이런 일본이 통렬히 반성을 하고, 참회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용서를 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 문제다.

 

다시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얼핏 강자의 편에 설 것 같지만, 아니다. 역사는 진실, 진리의 편에 선다. 지금은 감추고 왜곡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곧 드러나게 된다. 그 드러냄.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결국은 드러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해서 우리 인류의 역사는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들 가운에 한 사람... 아이리스 장.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글

 

책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책이 미국에서 1997년에 발간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14년에 번역 발간되었다. 그리고 아이리스 장은 2004년에 죽었다고 나와 있다.

 

중간에 책이 다른 판본으로 나왔다는 설명이 없는데...이 책 300쪽 '여전히 계속되는 역사 왜곡 망언' 부분에서는 2004년 이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은 누가 쓴 것인가? 재판을 발행하면서 편집자들이 보충을 한 것인가, 아니면 번역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보충을 한 것인가. 거기에 대한 설명이 없다.

 

차라리 주나 보충설명을 통해서 이 부분을 이야기하고, 아이리스 장이 쓴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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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신화 - 흐린 영혼을 씻어주는 오래된 이야기
신동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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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재미있게 읽기만 하여도 뭔가 남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신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우리 신화보다는 외국의 신화를 먼저 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는 것이 천대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신화만큼 홀대받은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우리 신화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껏해야 단군신화나 고주몽 신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하여 이 책은 그러한 신화를 모아 놓았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신화를 모아 놓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이본이 존재하는 신화 중에서 가장 서사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거나, 우리 민족의 심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본을 선택해서 실어놓고 있다. 

 

가히 완성된 신화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히 신화만 정리해 놓았어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텐데, 여기에 나름대로 해석을 싣고 있다.

 

그 신화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네 삶의 어떤 부분들을 보여주고 있는 건지, 우리는 그 신화를 통해서  무엇을 생각하고 얻을 수 있는지를 풀이해 놓고 있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신화 풀이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읽어서 알고 있는 신화도 있고, 처음 읽는 신화도 있었지만, 재미를 주지 않은 신화는 어느 하나도 없었다.

 

새록새록 우리 신화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었고,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이 신화는 우리 민족의 이런 생활을 나타내고 있구나 하게 만든 책이었다.

신화가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으렸만, 우리는 우리의 신화에 대해서 너무도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 신화가 가진 특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은이는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잘 가꾸어진 정원과 같은 이야기라면 우리 민간 신화는 거친 들판의 야생화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권력자나 문인 지식인의 보살핌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멸시화 배제와 억압에 노출된 상태에서 자생적으로 생명력을 이어온 야생의 신화가 바로 우리 민간 신화다. 596쪽

 

바로 이것이 우리 신화다. 집집마다 적어도 한 권쯤은 우리 신화에 대한 책을 가지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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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 - 사라진 민족 사라진 나라의 살아 숨 쉬는 역사 지도에서 사라진 시리즈
도현신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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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흐른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세워졌다 사라졌다 했을까?

사라진 나라들 중에서 기록을 남긴 나라는 얼마나 될까?

한때 위용을 자랑했던 나라들이라고 해도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나라도 많고, 또 역사 속에서도 찾기 힘든 나라들도 있는데...

 

사람들은 혼자서 살기 힘들다고 나라를 구성하고 그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말은 차라리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통하여 보면 우리 사람들은 늘 사라질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지도에서 사라졌다는 말은 역사에서 잊혀졌다는 말과 통할 수 있고, 아니면 자신들이 세웠던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 이어져 오지 않고 있기에 사라졌다는 말과 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가 탄생한 이래, 아니 지구가 탄생한 이래 인류가 이 지구상에 산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이제는 지구 자체를 명망시킬 정도로 강성해진 인간들이 살아온 역사를 살피는 일은 중요한 일이 되는데...

 

여러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살피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 때 강한 나라여서 상당한 힘을 발휘하던 나라였음에도 이제는 지도상에서 찾기 힘들고, 또 역사 책에서도 찾기 힘들어진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이 해주고 있다.

 

서양에서부터 동양에 이르기까지 사라진 나라들에 대해서 살피고 있어 흥미를 주고 있다. 여기에 처음 듣는 나라들도 있으니... 그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흡수되어 사라져버린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 수록된 사람들(민족? 나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메르인, 히타이트인, 에트루리아인, 켈트족, 파르티아인, 훈족, 에프탈족, 아바르족, 흉노족, 오환족, 유연족, 탕구트족, 거란족, 옥저인, 동예인, 부여인, 우산국인, 가야인

 

이 중에서 훈족과 흉노족은 같은 종족이라고 보아도, 참으로 많은 종족들이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거나, 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복, 약탈, 전쟁으로 인해서 흥망성쇠가 결정이 되는데... 조금 강하다 싶으면 다른 나라를 침범해 영토를 확장하려고 하고, 약해지면 침략을 받아 멸망을 하는 그런 반복.

 

인류의 역사가 이토록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얘기는 앞으로도 전쟁이 우리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반증이 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쟁을 막기 위해서 국제연합이라는 세계적인 단체를 만들기도 했고, 유럽연합이라든지 하여 나라들끼리 통합하여 평화롭게 지내려는 노력도 하고 있지만, 조금 강한 나라는 여전히 약한 나라를 힘들게 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사라졌던 나라들이 세월이 흐른 다음에 다시 자기들만의 나라를 만들고, 사라진 사람들이 아니라 다시 나타난 사람들이 되려고 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고, 파괴가 일어나고, 살육이 일어나고 하는 반복.

 

역사는 반복되는가? 기원전까지 따진다면 수 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인류가 배운 것이 없다는 얘기가 되나? 서로가 공존하면서 사는 방법, 그것을 찾아야 하지 않나?

 

결국 과거의 전쟁이 먹을거리로 인해, 생존으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 인류의 생존문제를 해결한 지금은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평화롭게 공존하는 인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사람들, 나라들처럼 또다시 사라지는 길을 밟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에 나와 있는 민족들이 나라를 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가 사라져버리지 않고 다른 민족들에 동화되어 살아남았겠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인류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종족멸살이라는 홀로코스트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이다.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는 이유는, 또다시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애서이다.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만드러내지 않는 방법, 그것은 평화적 공존밖에 없다. 이 책을 보라. 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대부분 전쟁이다. 전쟁으로 인한 절멸과 합병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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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 손 안의 미술관 1
김영숙 지음 / 휴먼아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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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이름만 들어본 박물관이다. 아니 "다빈치 코드"란 소설을 통하여 접하기도 한 박물관이기도 하다. 엄청나게 많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박물관. 한 때 프랑스가 제국주의이던 시절,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문화재들이 이곳에 많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내게 루브르 박물관은 너무나 멀다. 그곳까지 가기엔 너무 힘들다. 시간도 돈도...그리고 그렇게 할 마음의 여유도.

 

이렇게 먼 루브르 박물관. 그렇다고 없는 셈 칠 수도 없는 것이고, 혹시 아나, 언제 가게 될지.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고 주어진 시간도 많다고 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갈 수 있는 곳 중에 하나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요즘처럼 지구화, 세계화 시대에 굳이 맘만 먹는다면 못 갈 것도 없는데...

 

선뜻 가기에는 너무 멀고, 시간도 그리 많지 않고(이건 분명 핑계임에 불과하지만), 돈도 넘치지 않으니 지금은 그냥 언젠가 한 번은 가 볼 곳으로 생각하고 있을밖에.

 

이곳에 문화재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38만점(3만8천이 아니다!)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고(이책 100쪽), 또 그냥 걸어도 동선이 무려 60킬로미터가 넘는다고 (100쪽) 하니, 작품 앞에서 감상을 하지 않고 쓱 보고 지나치기만 하여도 반나절은 훌쩍 지나갈 정도(100쪽)라고 한다.

 

이런 엄청난 규모를 지니고 있는 루브르에 미술작품들만 해도 약 6000여 점의 회화작품이 있다고 한다. (101쪽) 그림만 해도 6000점이란다. 세상에...

 

얼마 전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갔다 왔는데... 간송문화전을 관람하러, 그 곳에서 그림과 도자기 등을 보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는데... 그것도 평일에 갔음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한 그림을 보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만 쓸 수밖에 없었는데...국보급 도자기를 요리조리 요모조모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사람들에 밀려 이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혜원화첩의 작은 그림들을 정말로 자세히 보아야 했음에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나라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도 그냥 슥 지나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족히 한 시간은 돈 것 같은데... 6000점이란다. 그 그림을 보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아니 그 그림들을 자세히 볼 시간이나 있을까? 루브르 박물관에 회화가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세 공간이라고 하는데... 하나는 드농관, 또 하나는 리슐리외관, 그 두 관을 이어주는 쉴리관. 이렇게 셋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루브르에 갔다왔다는 사람들은 이 세 관을 제대로 돌아보고 왔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으니...

 

그냥 모나리자만 보고 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왔다고 하는지... 모나리자도 사람들의 흐름에 쓸려 그냥 쓰윽 지나치고 말았으면서 다 보았다고, 잘 보았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냥 학창시절, 또는 다른 매체를 통하여 들은 모나리자에 대한 이야기를 머리 속에서 들춰내면서 그 그림을 자신의 지식에 맞추어놓고는 제대로 보았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내 미술관 감상 경험에 의하면 사람이 많으면 제대로 미술품을 관람할 수 없다. 미술품을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상하좌우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보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공간 역시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미술품을 잘 관람할 수 있을까? 결국 아는 수밖에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미술품에 대해서 알면 더 자세히, 더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직접 미술품을 보고 자신이 아는 것 위에 새로운 지식을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루브르의 6000여 점의 회화를 어떻게 하루만에 다 본단 말인가? 또 30만점이 넘는 문화재들을 어떻게 다 본단 말인가?

 

하여 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는 회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 지식을 이 책이 채워줄 수 있다. 루브르 회화의 도록이 아니므로 모든 작품에 대한 해설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지은이가 명화라고 생각하는 작품 100편을 선정해서 그 작품의 화가에 대한 설명부터 그림이 지니고 있는 의미, 의의까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것도 또 관대로 분류를 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으므로, 루브르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이 책을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이 책에 나와 있는 지식을 검증할 수 있을테고, 또 자기 나름대로의 감상을 덧불일 수도 있으니 루브르 회화를 좀더 잘 감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 책의 도움으로 다른 작품을 더 자세히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작품들은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니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 시간을 많이 투여해 더 자세히 감상을 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지 루브르 박물관에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서양미술에서 중세시대의 미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흐름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서양 중세 미술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된다는 장점을 자연스레 얻을 수가 있다.

 

게다가 적어도 명화 100편은 감상을 하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지금까지 보았던 작품도 있지만 처음보는 작품도 있으니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어서 좋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문화생활을 누리려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이제는 문화강국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문화란 단지 지식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니, 우리가 직접 감상하고 만들어내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는 생각이 든다.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하는 문화생활이 아닌(비록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는 회화들 중에 많은 것들이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만들어지거나 구입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특정 소수 계층에 해당하는 문화였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그런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된다면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들을 이렇게 책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볼 수도 있겠고, 또 우리나라 곳곳의 미술관, 박물관들에서도 더 훌륭한, 더 마음이 끌리는 문화재들을 수시로 감상할 수 있게 되겠지.

 

이 책이 단지 그냥 루브르 회화 안내서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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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삶과 인권 이야기
박래군 지음 / 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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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 박래군의 글을 모은 책이다. 자전적인 내용에서부터 우리나라 인권운동에 관련되었던 일, 그리고 앞으로의 희망을 담아내고 있는 책.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박래군이라는 이름을 모르지는 않겠지만 그는 인권센터인 '인권중심 사람'을 세우는데 기여를 했고, 지금은 소장으로 있다고 한다.

 

인권중심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다니면서 인권과 만나는 장으로 존재하고, 시민들의 성금으로 지어졌으며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불편함 없이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어 건물 자체에서도 이미 인권의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제는 자신의 인생 3막을 준비하고 싶다고 한다. 이제 자신은 인권운동에서도 구세대라고. 새로운 세대에게 길을 비켜주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장강의 앞물은 도도히 흘러오는 뒷물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은 변화하고, 갈 길을 가기 때문이다. 중요한 자리를 빨리 후배들에게 넘겨주어야 새로운 기운이 생겨날 것이다. 292쪽

 

나는 인권운동 2세대 활동가다. ... 20년 전에는 인권운동 2세대가 선두주자였지만, 지금은 3세대 인권운동가들이 필요한 때다. 더욱 철저하게 인권감수성과 이론으로 무장된, 인권의 가치를 신념으로 갖고 오로지 인권운동으로 밥 먹고 사는 그런 운동가들이 새롭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잘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역할을 다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294쪽

 

그런데...과연 우리의 인권상황이 나아졌는가? 박래군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우리의 인권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구실을 못한 지 오래 되었으며, 자유권도 많이 침해당하고 있고, 사회권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게 후퇴하고 말았다.

 

생활이 아니라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 독재 시절에도 서울 한 복판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일이 드물었는데, 민주화가 되었다는 2000년대에 들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목숨을 잃었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하루 42.6명이 자살하고(282쪽) 있다는 통계에서 보듯이 우리는 국민들의 생명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때문에 박래군이 인권활동가로서의 활동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벌써 30년 넘게 인권운동을 하는 2세대 활동가들이 여전히 활동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미 극복이 되어 3세대 활동가들이 다른 쟁점을 가지고 인권운동을 해야만 하는 이 때 아직도 우리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지 과거의 망령이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박래군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인권운동은 소수의 활동가만이 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가 인권감수성을 지니고 인권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인권활동가들은 우리들이 인권감수성을 지닐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인권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우리는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인권감수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그렇게 듣고 인권이 침해될 때 함께 나서야 한다. 다시는 에바다 같은 사태가, 양지마을 같은 사태가, 대추리, 쌍용자동차 같은 일이, 그리고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

 

인권활동 2세대들이 어려운 시대에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인권운동을 하나의 운동으로 정립해 내었듯이, 3세대 활동가들은 그 토대 위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운동은 인권활동가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바로 인권운동의 3기라고 할 수 있다.

 

앞부분 박래군이 살아온 길(인생 1막)을 읽으며 엄혹했던 7-80년대가 생각나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고, 인권운동에 투신한  시기(인생 2막)에 겪었던 일을 읽으며 그래 그렇게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권을 침해했었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책의 표지에 있는 박래군의 사진처럼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을 그가 계속 지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다.

 

인권은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늘 사람 곁에 있다. 사람 곁에 있는 사람, 그 곁에 또 사람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중심 사람'이다. 그리고 '인권중심 사람'에는 바로 우리들이 있다. 책의 제목처럼 사람곁에 사람곁에 사람... 바로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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