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 - 자서전
스티븐 윌리엄 호킹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호킹의 모습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 그리고 뒤틀어진 몸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루게릭병이라는 근육이 위축되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 21세에 발병했다고 하니, 참 오래도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루게릭병에 걸리면 얼마 살지 못하던데... 1942년생인 그가 2013년인 지금까지 살아 있다. 이것은 단순한 경탄을 넘어 그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살아남아 우주론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잘 모르겠는데, 이 책의 해설에 보면 호킹의 복사이론은 우주론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 그는, 그가 말하는 '무경계'에 살고 있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는 말한다.

 

'나의 장애는 나의 과학 연구에서 심각한 걸림돌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었던 것도 같다. 나는 학부생에 대한 강의나 교육의 의무를 지지 않았고 지루하고 따분한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오롯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 나는 일개 물리학자일 뿐이지만, 대중에게 나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일 것이다.'(152쪽)

 

그렇다. 그는 바로 자신의 삶에서 경계를 없애버린 사람이다. 그가 연구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그런 경계없음에서 그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으며, 그런 그를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쓴 자서전이다. 엄밀히 말해 그가 썼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는 팔을 움직일 수 없으므로. 그러나 현대과학의 도움을 받아 그는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그는 무경계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전문적인 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고자 했고, 또 그렇게 낸 책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역사"인데...이 책은 세계에서 많은 판매를 이룬 책이기도 하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는

 

'내가 장애를 딛고 이론물리학자가 되기까지의 흥미로운 사연이 책의 판매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의 역사"를 사서 책장 안이나 탁자 위에 진열만 해놓고 읽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확신한다. ... 반면에 적어도 일부 사람들이 내 책을 애써 읽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안다.'(125쪽)

 

이렇게 그는 자신의 처지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하는 이유를 찾지는 못한다. 오히려 어려운 책임에도 불구하고(아무리 대중적으로 책을 썼다고 하더라도 우주를 다루고 있는, 그것도 제목이 "시간의 역사"인 책이 쉬울 리가 없다) 읽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이것이 호킹이 지닌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고 있다.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

 

그는 가정으로 말했지만, 우리는 사실로 말할 수 있다. 그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고.

 

스티븐 호킹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신이 쓴 책이기 때문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책인데... 분량도 얼마되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다. 앞부분에서는 호킹의 성장과정에 대한 이야기라서 쉽게 읽을 수 있는데, 뒷부분으로 가면 그가 루게릭병에 걸린 이후에는 우주론, 또 물리학 분야로 들어간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여럿 나온다.

 

특히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냐는 타임머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를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하나로 만들어준 블랙홀 이야기는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다만 그가 그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했고, 이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문제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시간 여행은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는데...

 

'설령 미래에 어떤 다른 이론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시간여행은 영원히 불가능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언젠가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면, 지금 우리 곁에는 미래에서 온 관광객들이 넘쳐날 것이다.'(142쪽)

 

상식적으로도 시간 여행은 불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여기에 중첩되어 있는 과거-거기, 미래-거기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공간의 중첩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는데.. 무슨 홀로그램처럼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공간에 존재하는 인간도 홀로그램처럼 존재하게 되나? 아니면 시간-공간이 하나의 쌍으로써 무수히 존재한다고 해야 하나? 하는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

 

다행히도 호킹은 우리가 '타임머신 지평을 통과하여 타임머신에 진입하려는 사람이나 우주선은 복사(輻射) 번개에 맞아 흔적도 없이 파괴될 것이다.(140쪽)'라고 하니, 여기에 대한 생각은 더이상 하지 않기로 하자.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읽었던 "시간의 역사" 그러나 이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더불어 내가 우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은 사람은 어떤 상태에서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예로서 나에게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존재할 것이겠지만.

 

그의 자서전인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루게릭병은 근육은 망가뜨려도 뇌는 망가뜨리지 못한다고.. 그가 생각하는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고.. 그래서 그의 삶은 경계가 없는 삶이라고. '무경계'란 말은 경계가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경계가 너무도 뚜렷한데, 그 경계 위에서 이 쪽 저 쪽을 다 볼 수 있는 상태라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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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이제는 찬바람이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제 자리를 잃고 떨어져 버린다. 떨어져 바람이 흩날린다. 정처 없이. 길 가에 떨어진 잎들을 차들이 밟고 지나가고, 밟히지 않은 잎들은 바람에 다시 날리고...

 

제 자리를 잃은 잎들은 결국 빗자루에 쓸리고, 담겨, 자루에 갇힌다. 이들이 가는 곳. 불구덩이. 본래 이들이 가야 할 곳. 땅 속. 땅 속에서 거름이 되어 자신들의 후예들이 잘 자랄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데, 갈 곳을 잃었다. 그들이 갈 곳은 이미 콘크리트로, 보도블록으로, 아스팔트로 차단되어 있을 뿐이다.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시간제 근로를 실시한다고 한다. 명목상으로는 육아를 돕기 위해서, 나이 드신 어른들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 공부 시간 벌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차별법, 해고법이 된 지 오래. 어떤 곳에서는 2년 동안 고용을 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아예 계약기간을 2년이 채 못 되게 계약을 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일의 전문성은 확보되기 힘들고, 사람의 영속성도 역시 확보되지 않고...마치 잎들이 가을이 되면 떨어질 준비를 하고, 바람에 정처없이 날려가버리듯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을 해주어야 그것을 '나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힘써야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나리. 그런 '정치인'이 그리워지면.. 이건 참.

 

"삶창". 따스한 글들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데... 이번 호는 그렇게 따스하지 않게 다가온다. 이유는 특집 기획도 "나는 쓰고 싶다"인데, 무엇을에 해당하는 목적어가 없다. 그 무엇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사표'라는 사실이 씁씁하다. 

 

무언가 일을 하다가 할 수 없게 될 때, 다른 일을 찾았을 때 '사표'를 쓰게 되지만,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사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은 '해고'에 다름 아니다. '해고'가 싫어서 먼저 '사표'를 쓰고 싶지만.. 그렇지만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다.

 

'사표'를 쓰는 일이 머리 속에서만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럼에도 '사표'를 쓰고 싶다고 하는 기획이 이루어질 지경이라면 이 사회는 참...

 

여기에 '앵글로 본 세상'에는 밀양의 사진이 나와 있다. 평생을 땅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을 대도시의 전기를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는 전기를 보낸다는 명목으로,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음에도 굳이 고압 송전선을 지상에 세우고자 하는 행위에 맞서 온몸을 쇠사슬로 감고 있는 노인들. 어르신들. 어떻게 마음이 따스해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삶창"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현실은 암울할지라도 밝은 미래가 오리라고 기대하며, 그런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 그나마 위안을 준다. 

 

아직,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고... 잎들이 떨어져 이리저리 휘날릴지라도 잎들은 다시 거름이 되어 나무를 더욱 푸르게 할 수 있다고...  

 

이 현재를 과거로 밀어내고 우리가 미래를 현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래야 한다고.

 

"삶창" 이번호를 읽으며, 가을이라 그런지, 또 찬바람이 쌩하고 불어서 그런지, 거리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아서 그런지... 그 낙엽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으니.

 

지금이 지금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낙엽은 언젠가 거름이 된다. 더 좋은 푸르름을 위한.

 

"삶창"이나 낙엽이나 그런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낙엽에게

 - 비정규직 노동자


한 때 넌

네 푸르름으로 찬탄을 자아냈고,

네 짙은 녹음으로 부러움을 샀었지.

모두들 네가 있어 좋다고

넌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고 했었지.

따뜻한 봄날,

네 옅은 연둣빛 색깔에

우리의 눈은 얼마나 즐거웠고,

무더운 여름날,

네가 만든 녹음에

우리의 몸은 얼마나 시원했는지,

서늘한 가을날,

누렇게 변해가는 네 몸에서

벌써 세월이 이리 되었나,

원숙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네게서 또한

기쁨을 느꼈는데,

환경이 변하자,

우린, 널,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지.

찬 바람에

네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길거리를 배회해도

우린 우리 옷깃만 감싸쥘 뿐,

발끝에 닿는 너를 못 본체 했지.

아니, 귀찮아했지.

네가 우리에게 준 것은 까맣게 잊은 채.

낙엽이여, 낙엽이여,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여!

 

그러나 낙엽이여,

튼튼한 나무의 거름이 되어

또다른 푸르름을 위하여

온몸을 살라

다시 봄이 오게 하는 낙엽이여.

푸른 새잎도, 굳은 줄기도

그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우리 깨닫고 있으니.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여.

푸름을 만들어가는 낙엽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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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힘, 감성교육 - 학교폭력,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홍영미 외 지음 / 테크빌교육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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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교육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전문가라고 하는 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에 관심이 많다. 마찬가지로 직접 학교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도 다양한 교육방법을 통해 교육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여기에 교수들은 이런 저런 이론을 정립하여 이런 교육이 더 좋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런 이론을 바탕으로 교육감들은 자기들의 시도에서 그에 걸맞은 교육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길은 다양하지만 목표는 하나.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남과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좀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얼핏 요즘 들리는 교육이론만 하여도 혁신교육, 행복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몇몇 시도의 혁신학교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자 이를 벤치마킹 하는 시도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항할세라 이념적 성향이 다른 교육감은 혁신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행복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아이가 행복한 학교 만들기일텐데... 아이가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고, 그를 바탕으로 남과 함께 잘 지내며, 또한 발전하는 가치가 무언지 알아서 그러한 쪽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가게 하는 것일텐데...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절실한 때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지금 아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기기의 발달로 인해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아이들이 많고 이들의 소통과정을 살펴보더라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휴대전화(요즘은 스마트폰이라고 한다)를 통하여 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아이들은 서로의 감정을 읽는데 익숙하지 않다. 감정을 읽는데 서투르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오해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심각한 상황으로 사태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가족구성원도 다양해서 가정에서 갈등을 겪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읽어내는 방법을 터득하여,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발견해가고, 또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소공주, 소공자로 자란 아이들이 많아서 가정에서 갈등을 겪으며 해결해가는 과정을 거친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갈등해결 방법을 익히는 일이 학교로 전이가 되었는데... 학교에서는 몇몇이 아니라 아주 많은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기에 더 많은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갈등을 풀어가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많으니, 사소한 갈등이 심각한 폭력으로, 또는 따돌림으로, 고립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 따돌림, 무력감 등이 문제가 된 지는 오래되었는데, 그에 대한 해결책도 많이 나왔음에도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학교에 국한된 것만도 아니다. 요즘은 직장에서도 따돌림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하니, 학교에서 제대로 된 갈등해결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갈등이라는 것이 나와 남이 다르다는 데서 출발을 한다. 다름은 당연히 거리를 두게 되고, 이 거리를 인정하고 함께 하려는 모습을 보이느냐, 아니면 거리를 억지로 좁히려고 하여 상대방을 내 쪽으로 완전히 끌어들이든지, 아니면 아예 내치든지 하느냐에 따라 갈등의 해결방법이 달라진다.

 

사실, 다름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 다름으로 인해 우리 세상이 얼마나 풍요로와졌는가. 이런 다름이 풍요로움으로 바뀌려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또 그런 마음가짐을 지니려면 상대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해서, 상대의 감정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감정만을 읽어낸다면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감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지적인 면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감성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오히려 감성교육이 잘 이루어진다면 학습 측면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하에.

 

앞부분은 좀 이론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어떻게 감성교육을 실시하게 되었고, 그러한 감성교육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감성교육의 효과에 대해서도. 따라서 앞부분은 이론과 실천이 만나 어떤 효과를 이루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운데 부분은 학교 현장에서 실제로 감성교육을 한 사례이다. 초중고 사례를 들어 감성교육이 아이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꾸준히 감성교육을 함으로써 감성교육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또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끝부분은 학생들의 문제사례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글쓴이의 경험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직접 학교 현장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이런저런 문제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어떤 식으로 했는지, 그래서 어떤 효과가 나타났는지를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주고 있어서, 감성교육이 단지 이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도 꽤나 유용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남의 감정을 읽는다는 것, 여기에 자신의 감정을 읽는다는 것. 이것은 공동체 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감정 읽기에 실패한다면 공동체 생활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교를 통해서 감성교육을 할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다. 여러가지 일들이 많아 따로 감성교육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한 대로 일주일에 한두 번, 그것도 한 번에 한 10-20분씩으로 할 수 있는 감성교육 과정은 시도해볼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원하는 사람은 영혼(감성)이 없는 천재이기보다는 영혼(감성)을 갖춘 보통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보통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조금더 밝고 따뜻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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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만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 - 조선어학회, 47년간의 말모이 투쟁기
이상각 지음 / 유리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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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을 잃어버린 민족. 그런 민족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자신의 말과 글을 잃어버리면 민족 자체도 시나브로 사라져 버린다. 그런 예가 역사에는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자신들의 말과 글을 지키려 너도나도 노력한다.

 

우리나라도 말과 글을 잃을 뻔한 때가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일제시대 36년. 그 때가 우리 민족에게는 가장 위기에 처한 시대였다.

 

단순히 국권만 상실한 것이 아니라 말을 금지당하고, 글을 금지당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성조차도 일본 식으로 바꾸어야 하는 그러한 암흑기가 바로 일제시대였다.

 

그런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장투쟁도 하고,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도 하고, 3.1운동과 같이 비폭력 투쟁도 했지만... 다른 각도에서 우리 말글을 살리려는 운동도 있었다.

 

그러한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말에 대한 사랑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개화기에 주시경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는데... 주시경에서 비롯된 한글 사랑이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러 조선어학회로 발전했으며, 그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 통일안과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신문사를 통한 문맹퇴치 운동이 소설 작품으로도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이광수의 "흙"과 심훈의 "상록수"로 나타났고, 이들 신문에 나타난 한글보급운동이 조선어학회 사람들을 중심으로도 많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이 책에 나와 있다.

 

그동안 조선어학회와 대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책에서는 조선어학회와 대종교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대종교는 우리나라의 전통성과 자주성을 강조하는 그런 종교였다는 사실, 그리고 조선어학회의 많은 사람들이 대종교에 입문했는데, 그것은 조선의 독립을 기원하는 행위였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고...

 

또 일제시대의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가 날조한 사건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단순히 일제가 날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을 한 것은 투철한 민족정신을 지닌 행위였기에... 조선의 혼을 잃지 않기 위한 행위였기에 일종의 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우리말 사전이 발간이 되었으며, 그로인해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우리말의 말모이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 엄청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우리말 사전이 계속 증보-편찬되고 있으니 말이다.

 

주시경으로 비롯한 그의 제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켜낸 우리말, 우리글... 그것의 종합판인 우리말 사전... 우리에게는 그들의 노력 덕분에 지금 우리말, 우리글에 대해서 쉽게 접근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을 생각한다면 외국어에 침윤당하는 현실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외국문물이 들어오면 적어도 그것을 외국어로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래야 그 문물을 우리의 사고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 요즘 세태에 대한 아쉬움.

 

당연하게 쓰고 있는 한글, 이 당연함이 여러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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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감사원이 감사를 해서 문제가 많다고 발표를 했더니, 감사원 발표를 어떻게 다 믿냐는 반박이 있기도 했다.

 

감사원의 기능이 감사를 주로 하는 곳이고, 감사란 잘한 것보다는 잘못된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고쳐가게 하는데 의미가 있는데, 그런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놓고도 정치적이니 아니니 하는 소리나 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답답하다.

 

녹색평론 이번호는 특집이 4대강이다. 4대강에 대해서 많은 글을 실은 것은 아닌데, 4대강에 대해서 좌담을 한 내용을 실어서 4대강 사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있다.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4대강은 잘못된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감사원 결과도 그렇게 나왔으며, 4대강 사업의 결과로 수질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져서 '녹조라떼'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으니, 이 4대강 사업은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홍수조절도, 수질개선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강의 생태계를 파괴해버린 그 사업으로 인해 엄청난 돈만 낭비하고 말았는데.. 단지 돈만 낭비했다면 그거야 복구하면 그만이지만,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망가진 강, 그리고 강 주변의 논들, 들판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등은 어떻게 보상을 할 것인가.

 

그것이 보상이 가능하기라도 한가? 삶의 뿌리를 송두리채 흔들어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은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잘된 사업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경인운하를 가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경치가 좋은 것도 아니고, 수질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로 물품을 많이 실어나르지도 않고, 관광객도 없는, 직선으로 쭉 정비된 그 경인운하.

 

이는 환경재앙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은 이보다 더 하다. 이 강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강들이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그 강에 얽힌 삶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삶을 망가뜨려 놓고도 반성하기는 커녕, 그것이 잘된 일인양 떠들어대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번 호에서 한 4대강에 대한 좌담 내용을 읽으면 4대강 사업이 우리에게 어떤 재앙으로 다가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도.

 

해답은 참으로 명쾌하고 단순하다. 그냥 보를 무너뜨리면 된다. 그리고 강 가에 쌓은 콘크리트 제방을 해체하면 된다. 그 다음에는 그냥 강에 맡겨놓으면 된다.

 

강은 힘들게 힘들게 자신의 모습을 복원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다.

 

길재가 읊었다는 시조...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라는 말처럼, 자연은 우리 인간보다도 훨씬 길게 그 자리를 지킨다. 우리는 자연이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인위가 사라진 곳에 자연이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이번 호다. 여기에 후쿠시마.. 참 질기게도 인정하지 않는 그 재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고, 요즘은 계속 '기본 소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기본 소득'이 사회적인 논점으로 떠오르지 않는 건, 우리의 복지는 아직도 먼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나하나, 흐트러지려는 나를 잡아주고 있다. 글들을 읽으며 요즘을 다시 생각한다.

 

절망의 시대...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고... 그런 말이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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