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1
김윤식 지음 / 그린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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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의 라이벌 의식"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나름대로의 위치를 차지한 사람들이 자기만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자기를 북돋우어 주는 남이 있음을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다.

 

가끔 우리는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을 한다. 선의의 경쟁이 더 나은 나로 발전시킨다고... 어떤 사람은 좋은 경쟁은 없다고, 경쟁은 나에게 독이 된다고 이야기하고도 있지만... 경쟁이 남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거울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경쟁은 필요한 것이 된다.

 

이 경쟁은 순위를 매기는 경쟁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경쟁이다. 즉, 거울을 보고,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선 위치, 그것을 파악하기 위한 거울, 그것이 바로 경쟁이다. 이러한 경쟁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쟁상대. 그것을 영어로 라이벌이라고 한다. 라이벌이라는 말에는 나와 대등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나하고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바로 나와 비슷한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더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자연스레 느낀다.

 

그런 라이벌, 우리 문학사에 많다고 한다. 이 책의 맨 뒷부분에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다. 아니, 열거가 아니라 "문학의 문학"이라는 잡지에 연재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연재된 글들 중에서 책으로 엮을 만한, 즉 남이 이해할 만한 작품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에는 "조윤제와 양주동", "김수영과 이어령",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지성", "박상륭과 이문구",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김윤식과 김현"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이 중에 김윤식과 김현에 대한 글은 소략하게 실려 있어서 논외로 하는 것이 좋겠고... (김현은 "창작과비평 대 문학과지성"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니 말이다)... 조윤제와 양주동은 이 들의 중심에 경성제국대학이 있다고 한다. 학문의 영역으로써의 경성제대에 관해서 우리 문학을 확립해 가는 양주동과  조윤제는 상대적인 입장에 섰다기보다는 같은 길을 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우리문학 초창기의 학문적 성과를 집성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가 있는데... 이 뒤에 "김수영과 이어령"의 논쟁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커다란 성과를 거두지도 못했다고 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창작과비평 대 문학과지성", 그리고 "박상륭과 이문구"에 대한 장이다.

 

이들에게만큼은 이 책의 저자가 자신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리라.

 

창비와 문지는 70년대 우리나라 문학을 이끌어간 양대 산맥이었으니, 자료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차이까지 논할 것이 많고, 창비쪽보다는 문지쪽에서, 특히 문지를 주도한 김현의 입장에서는 꾸준히 창비를 의식하고 잡지를 꾸려나갔다고 하니, 김현과 공동 저작을 낸 적이 있는 저자로서는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박상륭과 이문구"는 바로 동시대인 아닌가? 특히 비평을 업으로 삼아온 저자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물만난 고기같지 않겠는가.

 

스승 김동리를 축으로 그를 극복해가는 방향이 달랐던 박상륭과 이문구. 가장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스승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이 책에서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오랫만에 문학비평서를 읽었다고 해야 하나? 특히 대학을 졸업한 이후 손에서 많이 떨어져 있었던 분야인데... 친숙한 이름들이 많아서 읽어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 책이다. 읽으면서도 오랫만에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기도 했고.

 

구체적인 내용은 잊어도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필요한 것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을 찾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이런 "라이벌"에 관한 책을 읽는 의미 아니겠는가.

 

자, 나를 비춰줄 거울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떤 라이벌을 만나고 있는가?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나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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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

 

이 이름만으로도 시집을 구입하게 만든다. 김광섭. 얼마나 많이 들었던 이름인가. 그것도 학교 다닐 때 국어 시간에 또는 문학 시간에 배웠던 이름. 친숙하다.

 

그가 우리나라 초창기 시인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시 중에서 '성북동 비둘기'만큼 알려진 시도 없는데, 이 시집은 75년에 나왔지만, 그간 발표된 그의 시집들에서 시를 발췌한 것이다.

 

시를 읽은 이유가 뭘까? 마음이 우울할 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그런데.. 어떤 시가? 그런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시를 읽는다.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시가 있다. 그 시가 나를 치유해 준다.

 

그런데 이번 시집을 읽다 보니, 시인에게도 시가 치유가 되나 보다. 하긴 글읽기나 글쓰기나 다 치유의 과정일테니.

 

시인의 아내가 세상을 뜨게 되었을 때의 과정이 '깨끗이와 아내의 죽음'이란 시로 표현되어 있는데, 시뿐만이 아니라 그 시의 끝에 시인은 '노우트'라고 하여 자신의 글을 적어놓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의료사고의 현실. 그런 현실에서 시인은 시를 통해서 자신을 치유해 나가고 있다. 아직도 이런 일이 많은데... 이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아직도 유효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니, 시는 보편적으로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북동 비둘기'와 노래로도 불린 '저녁에'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시는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세상을, 자신을 노래하고 있다.

 

계절은 겨울이 되고 있는데, 계절만이 아니라 다시 사회도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지, 이 추운 시대에 김광섭의 "겨울날"을 읽으며 겨울을 버티고 싶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시집을 선뜻 집어든 이유가.

 

어떤 이는 누구의 발언을 문제 삼아 당신의 나라는 어디인가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지... 어떤 나라라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 그 나라... 참...

 

김광섭의 '나의 사랑하는 나라'라는 시... 그래, 이게 그래도 내 나라다. 나는 나라를 이렇게 생각해야겠지.

 

나의 사랑하는 나라

 - 김광섭 

 

지상에 내가 사는 한 마을이 있으니 / 이는 내가 사랑하는 한 나라이리라

 

세계에 무수한 나라가 큰 별처럼 빛날지라도 / 내가 살고 내가 사랑하는 나라는 오직 하나뿐

 

반만년의 역사가 혹은 바다가 되고 혹은 시내가 되어 / 모진 바위에 부딪쳐 지하로 숨어들지라도

 

이는 나의 가슴에서 피가 되고 맥이 되는 생명일지니 / 나는 어데로 가나 이 끊임없는 생명에서 영광을 찾아

 

남북으로 양단되고 사상으로 분열된 나라일망정 / 나는 종처럼 이 무거운 나라를 끌고 신성한 곳으로 가리니

 

오래 닫혀진 침묵의 문이 열리는 날 / 고민을 상징하는 한떨기 꽃은 찬연히 피리라 / 이는 또한 내가 사랑하는 나라 내가 사랑하는 나라의 꿈이어니

 

김광섭, 겨울날, 창작과비평사, 1990년 7판.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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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 한 때 누군가가 애지중지 여기며, 그의 지식 열망을 채우던 책들이 이제는 남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곳.

 

책이 나무의 목숨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 곳은 나무의 목숨을 조금 더 연장시켜 주는 고마운 곳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품절이나 판절이 된 책을 구할 수도 있는 곳이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헌책방에 들르면 주로 시집이 꽂혀 있는 곳에 간다. 조금 오래된 시집은 요즘 서점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시인과 제목을 알지 않고서는 더욱 더 시집을 찾기 힘들고.

 

시집이란 본래 그 자리에서 펼쳐 읽으면서 가슴에 와닿는 시가 있으면 그 때서야 내 품에 안기는 것 아니겠는가.

 

하여 헌책방에 갈 기회가 있으면 제일 먼저 시집이 있는 곳을 찾는데... 가끔은 눈에 번쩍 띠는 시집들이 있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구할 수가 없는. 아주 오래 된 시집. 1988년에 나오고, 그 뒤에 더 나왔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제목도 자극적인. 이런 제목이니, 이런 내용이니, 1988년 이전에는 국내에서 출판이 될 수 없었던 시집.

 

국내에서 김남주의 시들이 이러했으리라. 그래서 김남주는 감옥에서 시를 써서 밖으로 내보냈고, 그것이 음성적으로 읽혔는데, 이철범의 이 시들은 외국에서 먼저 발표가 되었다고 하니, 엄혹한 시대였음에는 확실하다.

 

이철범. 외제 도끼에 찍힌 땅. 종로서적. 1988년. 초판.

 

900여 회가 넘는 외국의 침략이 있었다고 국사 시간에 배웠었지. 그리고 그런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외제 도끼에 찍힌 땅"

 

그냥 생각해 보아도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도끼에 찍혔지. 왕의 이름에 충성 충(忠)자가 들어가고 말았으니. 고려의 개혁군주라고 하는 공민왕조차도 자기의 부인은 몽고 사람이었지. 이 때 찍힌 외제의 도끼가 일제에게 이어지고, 일제에 이어 소련, 미국으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이 시집에서는 일제, 미국, 소련을 신랄하게 비꼬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우방이 아니라 외제 도끼일 뿐이라고...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런데 요즘은 외제 도끼가 바뀌었나 보다. 소련이야 해체되어 러시아란 이름뿐인 강대국으로 전락했고, 이제는 다시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역사 문제에서도 영토 문제에서도, 특히 최근에는 '방공구역 설정' 문제에서도.

 

하지만 이를 극복해야 하지 않나. 이런 외제 도끼들을 국내 문제들을 감추는데 사용하지 않고, 정말로 국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서 외제 도끼를 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여 그는 말한다.

 

이 시대...시인은...절대 권력과 경제적 빈곤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이 강요되고 있는 세계의 민중 속에, 그 역사적 현실 속에 현존해서 그들의 삶에 동참하고, 매일매일 그들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화장기 없이 생생한 그들의 언어를 시인의 언어로 해서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온몸을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책 89쪽)고.

 

시들의 내용이 참 과격하다. 그만큼 시인은 절박했으리라. 하지만, 이 시에 나온 내용이 진행형이라면?

 

이 시집이 나온 지 2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외제 도끼에 찍힌 땅으로 남아 있다면?

 

이것만큼 비참한 일이 어디 있으랴. 이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으랴.

 

이 시집의 유용성은 이 시집의 시들이 과거를 형상화한, 그 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제목이 된 그의 시 '외제 도끼에 찍힌 땅'을 여기에 인용한다. 이제는 여기서 벗어나야만 하기에.

 

                 외제 도끼에 찍힌 땅

 

외제 도끼에 찍힌 땅이여 / 이름을 잊어버린 땅이여 / 주인을 잊어버린 땅이여

끊어진 길은 어디서나 / 집을 찾지 못하고 / 밭은 곡식을 / 과수원은 열매를 거부하네

 

총을 든 손으로 / 서로 안을 수가 없고 / 피투성이얼굴로는 / 알아볼 수가 없다

어느 비극의 땅에서 / 젖줄은 끊기고 / 지뢰 묻혀 있는 / 평야는 잠들지 못한다

겨울에 눈이 오고 / 봄에 단비가 내려도 / 국토는 잉태하지 못한다

사내들은 / 모두 싸움터에서 늙었고 / 헐벗은 아이들만 남아

어머니의 땅에서 우는 울음 / 가득히 쌓여 / 사나운 바다를

이 어두운 비극의 땅을 / 차마 용서할 수 없다

 

이철범, 외제 도끼에 찍힌 땅, 종로서적. 1988년. 초판.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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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이광호 지음 / 홍익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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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35년의 차이를 두고 두 학자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만난다. 조선 중기 유학사에서 활짝 꽃이피는 순간이다.

 

우리나라 지폐에도 나와 있는 두 인물은 유학사에서도 큰 자리를 차지하는데, 율곡이 퇴계를 찾아가면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나눈 시와 편지가 남아 있어 우리들에게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 알려주게 된다.

 

35세 연상인 퇴계는 율곡에게는 스승과 같은 존재인데, 율곡은 편지를 통해 퇴계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퇴계가 하는데, 이들의 논의가 지금 내 수준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번역의 문제도 아니고, 이는 유학 개념에 대한 지식의 부족 때문일 수가 있다. 이들은 중용의 몇 구절, 또는 중국 학자의 학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에 이들의 논의를 따라가기엔 너무도 벅차다.

 

다만, 이들이 이런 편지들을 통하여 어떻게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가고 있는지, 과연 접점은 없었는지를 살펴볼 뿐이다.

 

뒤로 갈수록 이 책의 해설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퇴계와 율곡은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율곡이 묻은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가만 보면 자신의 의견을 고쳤다고 보기는 힘들고, 퇴계 또한 몇몇 부분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틀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

 

범속하게 분류를 하면 퇴계는 주리론(主理論)에, 율곡은 주기론(主氣論)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퇴계는 영남학파, 율곡은 기호학파라고 할 수 있을텐데...

 

주리론이 서양의 관념론에 가깝다고 한다면, 주기론은 서양의 경험론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이들은 서양의 역사에서도 늘 평행선을 그리며, 때로는 만났다가도 또 평행선을 그었던 철학 사조 아니었던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주기론에서 이야기하는 기(氣)역시 서양에서는 관념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다만 실천적인 활동을 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기가 허약해졌다고 말할 때 기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활동을 하고 있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비해 리(理)는 이런 기보다도 더 추상적인 무엇이니, 그것은 유학에서 말하는 태극과도 통하는 것인지...우리 삶의 원리라고 해야 하는지.

 

해설을 보면 퇴계는 유학의 진리에서 철학을 하고 있고, 율곡은 실천의 차원에서 철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현실정치에서는 율곡이 더 힘을 발휘했으리라는 것은 이들이 이와 기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퇴계가 죽을 때까지 편지를 주고 받는다. 비록 그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율곡은 퇴계를 학문에서는 자신보다 앞선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리라.

 

퇴계 역시 능력있는 젊은이인 율곡에게 학문의 진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으리라. 이런 만남. 이런 관계. 그것이 우리나라 유학을 꽃피우게 만든 동력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퇴계는 기고봉과도 편지를 통해서 논쟁을 하게 되니... 다양한 논쟁을 통해서 문화는 더욱 융성해지고, 생각은 더욱 정교해진다고 할 수 있다.

 

즉, 말을 막아서는 안되고, 생각을 막아서는 안된다. 말과 생각은 터뜨릴 수 있게 해줘야 하고, 이런 말들과 말들이, 생각과 생각이 서로 부딪치면서 좀더 좋은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에 시사하는 바가 아닐까.

 

조선시대에도 그랬는데, 지금 민주화된 시대에는 이런 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단지 퇴계와 율곡의 사상이 어떻다,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나고, 나는 어느 편에 더 마음이 간다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런 토론이 우리 사회에서도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게 해야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것이 책을 읽는 의미를 살리는 길이 된다.

 

우리의 전통 철학에서 많이 멀어져 왔다. 가끔 옛 성현들의 글을 읽기도 하지만,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어렵다. 좀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도록 이렇게 번역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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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 4 - 나의 무직 시절 나남신서 173
김준엽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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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 오래 전에 장정1,2-나의 광복군 시절을 읽었고, 오랜만에 그의 "장정"을 다 읽었다. 그리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다.

 

도대체 언제 돌아가셨더라. 내가 장정을 읽은 지가 꽤 됐는데... 물론 그 때는 1,2권 나의 광복군 시절만 읽었지만, 돌아가셨다는 기억이 없어서, 분명 돌아가셨을텐데... 하는 마음에.

 

얼마 전이다. 2011년이니. 그리고 이 때 대통령은 이명박이다.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김준엽이라고 한다. 그럴까? 그렇게 존경한다면 존경하는 사람처럼 살아야 하지 않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고대 출신이니 고대 총장이었던 김준엽을 존경할 수야 있겠지만, 가장 존경한다고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오지랖이 넓다. 누가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 것이 무슨 대수랴.

 

하지만, 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존경하는 인물이 제대로 된 삶을 산 사람이라야 한다. 그렇게 존경해도 제대로 살까 말까 한데, 말로만 존경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내용으로는 김준엽은 정말로 제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올리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올리기 전에 이미 남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김준엽을 존경한다고 했을 때, 역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이 책의 공식 제목은 장정3-나의 무직시절이다. 이렇게 하여 김준엽의 이 마지막 장정은 1990년에 끝난다. 그가 총장에서 쫓겨나고 우리나라가 격변에 휩쓸릴 때, 즉 87민주화 운동과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야권의 분열이 일어난 때.

 

이 때 그에게는 국무총리를 맡아달라는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야권과 여권에서 모두 다.

 

그가 지닌 이력이 화려하기도 하고, 삶이 책잡을 수가 없고, 또한 능력도 있고, 신망도 있으니, 어떤 쪽에서 보더라도 그가 섭외 일순위인 것은 확실하다.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이 때 그가 선택한 길은 자신이 20대에 결심한 것. 즉 학문으로 민족에 이바지한다.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

 

그래서 그는 국무총리를 고사한 일로 인하여 더욱 존경을 받게 된다. 국무총리 제의가 들어오면 자신의 능력이나 살아온 길을 생각하지 않고 덥석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곤욕을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심을 끝까지 지켜나간 그 뚝심에는 존경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학문으로(그는 역사학자다. 중국사 전공이고, 또한 공산주의 운동사에 관한 책도 썼다), 교육으로 우리나라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이바지한 것은 바로 그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고 했다. 역사에 산다는 것은 어떤 신을 믿든 역사에는 진리가 있고, 그 진리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지니고 산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역사에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앞으로 전개될 시대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는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공부를 한다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산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실천하려고 평생 노력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원로라고 부른다. 이런 원로들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사회는 함부로 망가지지 않는다. 여기에 김준엽 같은 사람이 바로 진짜 보수다. 요즘 자칭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 말고. 이런 보수들이 있을 때 사회는 건강해진다.

 

진짜 보수는 진보를 배격하지 않으니까. 함께 가야 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을 아니까.

 

지금 우리 사회, 그가 떠난 지 2년이 지났는데, 과연 원로가 있는가? 보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자신을 걸고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쓴소리를 힘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가. 자칭 보수라고 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그래서 그가 더욱 그리워진다. 지금 이 시대에. 역사에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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