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을 보다.

 

 올해 가장 인기 있는 영화가 될 듯하다. 한 시간이나 여유를 두고 영화관에 갔음에도 앞자리의 표를 구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이순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인물 아닌가? 어린 아이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이순신 장군, 또는 세종대왕 아니던가.

 

  그런 그가 백의종군 끝에 겨우 12척이 남은 상태에서 일본 수군과 결전을 벌인 곳, 그곳이 바로 명량(울돌목)이고, 그 유명한 명량해전이다.

 

그는 12척이라고 했는데, 어찌 어찌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배와 맞서 일본 배 31척을 격침했다고 나와 있다. 적어도 내가 읽은 책에서는.

 

배의 숫자가 무에 중요하겠는가. 압도적인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쟁이었음에는 틀림 없다.

 

이를 영화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좀 늦은 감이 있다. 물론 이순신에 관한 드라마나 영화는 많이 있지만, 이렇게 특정한 한 해전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든 적은 없으니... 지금이라도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명량해전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왜 불편했을까? 역사에서도 영화에서도 이순신은 이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는데, 그래서 발음이 비슷한 명랑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명량"에도 가보았고, 거기에 있던 우수영도 보았고, 직접 그 울돌목이 얼마나 거센지도 눈으로 확인했는데...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적을 섬멸한 이순신의 지략에 감탄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영화는 꼭 그렇지가 않았다. 영화의 두 대사가 맘 속에서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충성(忠)이라는 말. 무에 잘난 임금이라고, 그렇게 아버지를 핍박한 임금에게 왜 충성하느냐고 하는 아들의 질문에 이순신은 답한다. 자신의 본분은 충이라고. 그런데 그 충은 바로 백성을 향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흔히 충성이라고 하면 임금에 대한 충성을 떠올린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순신은 말한다. 충성의 방향은 바로 백성들을 향한 것이라고. 백성들을 향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이 대사가 마음을 울렸다. 충이라는 말이 마음에 중심을 잡는다는 말이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의리'란 얘기다. 그런데 그 '의리'가 누구를 위한 의리인가?

 

당연히 임금이라고 생각하고 보았던 기대를 백성이라는 말로 확 깨버린다. 그렇다. 양반들, 사대부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충성을 해야 할 대상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지배층이 아니라,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들어준 백성들이다.

 

영화의 대사는 이것을 환기시켜준다. 하여 명량(울돌목)이 있는 진도가 떠올랐고, 진도 부근에서 일어났던 대참사가 마음에서 다시 밖으로 나왔으며, 최근에 어떤 국회의원이 농성중인 희생자 가족들에게 했다는 말, '노숙자'같다는 말이 떠올랐고, 그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을 하는가? 그의 충성 대상은 누구인가? 하는 생각. 적어도 국민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 이런 젠장...

 

두 번째 대사는 승리한 뒤 아들이 다시 그렇게 될 줄 알았느냐는 질문에 "천행이지"라고 이순신이 말한 대답. 아들은 회오리가 천행이냐고 묻는데, 이순신은 "백성들이 자신을 구해준 것이 천행"이라고 답한다.

 

천행... 하늘이 내린 행운. 그게 천행이었을까? 그렇게 진심을 다해 백성에게 충성하는 한 장군의 모습을 백성들이 외면하기만 할까? 아들은 백성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다고 영화 초반에 말했지만...그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던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서 장군을 구한다.

 

백성들이 이순신이 탄 대장선을 바다의 회오리 속에서 구해내는 장면은 영화적 상상력이겠지만, 실제로도 이런 백성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순신의 "명량"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적인 사실에 의하면 명량해전에서 12척(혹은 13척)의 배 뒤에 민간인 배들이 도열해서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즉, 이순신이 지닌 배는 달랑 12(또는 13척)척이 아니라 백성들이 지니고 있던 그 배들을 모두 포함한 감히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배들이었던 것이다.

 

백성을 뒤에 엎고 있는 장군을 누가 이길 것인가?

 

마찬가지로 이렇게 국민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고, 그 진심을 국민들이 알아주어 지지해주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가 어떻게 정치에 실패하겠는가? 이런 생각이 영화가 끝나고도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1597년의 이순신은 역사 속의 이순신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 왜 그가 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 단지 지형지물을 이용한 지략의 승리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가서는 "명량"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다.

 

진정한 "명량"의 모습은 백성을 위해서 진심을 다하고, 그 진심이 백성과 통하는 그런 장군의 모습인 것이다. 백성과 하나된 장군... 이것은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인 것이다.

 

2014년으로 바꾸자. 아니, 그 뒤라도 좋다. 어떤 정치인이 성공하는가? 답은 이 "명량"에 있다.

 

영화 "명량"에서의 진도는 지금 "진도"와 겹쳐 있다.  

 

덧글

 

이순신에 관한 많은 책이 있는데... 사실 가지고 있는 책은 거의 없다. 그냥 어떻게 알게 된 내용들 뿐인데...

 

오면서... 자꾸만 이순신의 반대편에 있던(물론 영화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아들의 대사로 등장할 뿐이다) 선조가 생각났다. 그 선조를 통쾌하게 욕하고 있는 책.

 

예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평가하는 왕에 대한 모습과 비슷해서였을까?

 

아니면 적어도 왕에 대해서 이렇게 신랄하게 욕을 할 수 있는 역사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을까.

 

아무튼 논쟁이 되는 책이지만, 백성들이라면 정말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은 내용들이 많다.

 

백성을 중심에 두고 판단을 한다면, 이순신과 선조는 대척점에 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인은 어떤 정치인인가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을 보고, 지금 우리의 정치를 생각하다니...

 

백지원, 왕을 참하라(상.하)-백성 편에서 본 조선왕조실록. 진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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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교육 - 미래의 학교를 디자인하다
키런 이건 지음, 김회용.곽덕주 옮김 / 학지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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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에 대한 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제목의 가운데에 '미래의 학교를 디자인하다'란 말이 들어 있어서 상상력 교육에 관한 책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상상력을 다룬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교육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고,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개혁이 성공했다는 나라는 별로 없고.

 

그나마 북유럽쪽이나 유럽쪽의 교육이 좀 나은 편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들 나라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국도 마찬가지일테고, 일본도, 그리고 중국도...

 

하지만 교육개혁을 하는데 어떤 방향으로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다르고, 같은 나라에서도 학자들마다 다르다. 또 정치적 지향성에 따라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백년을 내다보고 개혁해야 하는 교육이 조변석개식으로 그때 그때 땜질 처방에 그친 경우가 많다.

 

몇 십년을 뚝심을 가지고 일관성을 지닌 교육개혁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만 보아도 교육부 장관이 임명되지 못한 지가 꽤 되고 있으니... 어떻게 교육을 개혁하자는 건지...

 

늘 그 나물에 그 밥이듯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교육부 장관이 아닐런지... 차라리 자신이 없으면 단위 학교내에서, 아니면 지역 교육청에서 알아서 교육개혁을 할 수 있도록 가만히나 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나서서 교육개혁을 후퇴시키는 경우도 많았으니...

 

이 책은 교육 개혁에 대한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아니 상상으로 만들어낸 교육개혁의 모습이다. 미래에 이런 식으로 교육이 된다는 그런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유토피아적 공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교육제도에서 대실패를 경험하게 될테니... 비록 상상 속의 교육개혁이지만, 이것을 현실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금 우리들의 몫이 아니던가.

 

이 책의 저자는 기존의 교육을 세 가지가 어정쩡하게 결합되어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회화 기능과 학문적 기능, 그리고 발달적 기능인데...

 

사회화에 치중하다 보면 학문적 기능이나 개인 발달을 도외시하게 되고, 개인 발달에 중점을 두게 되면 사회화 쪽이 소홀해지고, 학문적 기능에 중점을 두면 떨어져 나가는 다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이 없고 등등.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교육을 개혁해야 할까? 어정쩡한 세 목표를 다 이루려는 생각을 포기하라고 한다.

 

그냥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전통주의 교육관이나 진보주의 교육관을 모두 비판하고 있으면서 제3의길(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러나 얼마나 실현하기 힘든 말인가)을 택해야 한다고 한다.

 

제3의길을 가기 위해서 교육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신체적-신화적-낭만적-철학적-반어적 교육으로 말이다.

 

이것들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즉 한 단계 한 단계 순서를 밟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를 건너뛰었을 때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신체적이라는 말은 몸을 움직이는 단계다. 아마도 유아기 때 필요한 교육인데... 우리나라에서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산수를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이 단계를 건너뛴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7세까지는 아이들은 글에서 멀어져 신체활동을 중심으로 놀게 해야 한다. 다양한 몸의 움직임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다음 단계가 바로 신화적 단계다. 이 단계에서도 글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이 단계는 구술의 단계다.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단계다. 역시 7-9세 정도까지 이런 단계에서 교육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과 비교해 보라.

 

낭만적 단계는 영웅을 추구하는 단계다. 자신의 현재를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단계, 그래서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단계가 바로 낭만적 단계다. 이 때 학생들은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그를 모방하고자 한다. 그 영웅이 책에나 나올법한 그런 영웅일 필요는 없다. 자신의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 자연스럽게 일반화할 수 있는 단계인 철학적 교육으로 나아가고, 마지막 최종단계인 반어적 교육에까지 이르를 수 있다고 한다. 반어는, 다르게 보는, 그런 교육을 말한다고 보면 된다.

 

이 반어에는 반드시 유머가 포함되고, 그래서 이 책에서는 교육에서 유머는 꼭 필요하다고, 아니 아주 중요하다고 하고 있다. 유머가 있다는 얘기는 여유가 있다는 얘기가 여유가 있다는 얘기는 남의 얘기를 받아들일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여 상상 속의 학교에서는 '대화, 웃음, 정서적 참여는 2050년대의 학교교육을 지배했던 상상력 교육의 핵심적 도구였다'(336쪽)고 말하고 있듯이 최첨단 과학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요소들이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2050년의 교육에 대해서 상상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이미지로 딱 그려지지는 않지만 지금의 교육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임은 짐작할 수 있다.

 

오전에는 학문적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직업교육(사회화 교육)을 하기도 하고, 아예 학교가 두 공간으로 분리되어 공부와 사회화가 함께 존재하기도 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학생들은 상상력 교육으로 모든 교육을 받고 있는 그런 시대... 그것이 저자가 꿈꾸는 미래 교육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교육에도 많은 개혁 방법들이 나오고 있기도 하고. 그런 교육개혁에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된다면 교육개혁의 방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교육개혁의 방향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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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군대에서 일어난 많은 사고들이 뉴스에 나왔다.

 

동료 군인에게 총을 쏘고 탈영한 군인이야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 그리고 군대 내에서 구타로 사망한 군인 이야기.

 

군대가 무장한 인간들의 집합처이기 때문에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하지만, 같은 나라 군대에서 진한 전우애로 묶여 있어야 할 군대에서 서로를 죽이고, 자살하고, 맞아 죽는 그런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군대라는 집단의 속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군대는 본래 폭력적이고, 이 폭력이 외부로 향하지 않고, 내부로 향했을 때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데...

 

이래서 내,외부를 막론하고 군대를 거부한 사람들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때에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군대의 맨얼굴을 만나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평화주의자로 산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이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총을.들지 않는 사람들"

 

"칼을 쳐서 보습을" 이 책의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의 얼굴".

 

군대. 우리나라 남자라면 한 번쯤은 갔다와야 하는 곳. 우리나라는 징병의 의무가 있으니 거부할 수는 없는데...

 

최소한 거부할 수 없는 의무라면, 그 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제대로 생활할 수 있게, 오히려 사회에 있을 때보다 더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군대를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가지 않을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하고, 이런 양심적 병역거부와는 별도로 국민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군대를 가는 사람에겐 그가 행하는 의무만큼이나 중요하게 국가에서는 그의 생활을 보장할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군대에 관한 안 좋은 기사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이 책들이 군대를 거부한 사람들 이야기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알게 됨으로써 오히려 군대가 더 좋아질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군대를 폐기하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젊은 군인들이 죽어나가지는 않는 군대가 되도록 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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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유럽건축에 도전하다 - 33인 거장들과의 좌충우돌 분투기
고시마 유스케 지음, 정영희 옮김 / 효형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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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관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전문건축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해서만은 관심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축은 사람과 사람을 단절시키고, 공간과 공간을 단절시키고, 자연과 사람을 단절시키고, 또 시간으로부터 사람을 단절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고, 공간과 공간을 연결시키며, 자연과 사람을 연결지으며, 시간과 사람을 엮어주는 역할도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아파트 건축이 활발한 나라인데, 이 아파트는 연결보다는 단절을 중심에 놓고 건축되지 않았나 싶은 마음이 들고, "아파트 사회"라는 책을 보아도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게 된 이유는 아파트 자체에서 모든 생활이 편리하게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니, 아파트 건축의 목표 역시 자족을 중심에 둔 단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여 아파트로 들어오는 길에는 거의 모두가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감시카메라가 있고, 높거나 낮은 담으로 구획이 되어 있으니, 이것이 우리나라 건축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건축이란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공간을 장소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단절을 연결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젊은 건축가가 젊은시절 유럽의 건축에 반해 꼭 건축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유럽에서 일하겠다는 일념으로 유럽에 건너가 독일 건축사무소에 취업하여 4년간 근무를 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유럽의 건축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그 건축을 한 건축가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왜 그 건축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자신의 관점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꼭 이 작가의 말을 다 수긍할 필요는 없지만, 건축을 바라보는 한 관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는 있는 책이다.

 

내 귀에 익숙한 건축가도 나오고(가령 르 코르뷔지에나 훈데르트 바서 같은) 처음 듣는(처음 들어야 정상일지도...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 우리나라 건축가라고 해봤자 정기용과 승효상밖에 모르고 있으니...) 건축가도 많지만, 작가가 직접 그린 스케치와 사진을 통해 유럽의 건축을 친근하게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책이다.

 

배낭여행을 통해서 만난 건축들과 독일에 체류하면서 틈나는 대로 방문한 여러 건축물들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과 건축적 지식, 그리고 주변환경까지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건축이 아니더라도 유럽에 여행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은 참고가 될만한 책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선 부딪쳐 보고야 마는 작가의 실천력에 대해서 해보지도 않고 머리 속으로 계산만 하다 끝내곤 하는 나 자신의 실천력을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건축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연, 주변환경과 어울리는 건축과 자연, 주변환경와 어울리지 않는 건축.

 

이 책에서는 두 종류의 건축이 모두 나오고, 그 나름대로 멋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건축은 주변환경과의 완벽한 조화를 통해 멋을 뽐내고 있으며, 어떤 건축은 주변환경과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오히려 그 지방의 명소가 되기도 했다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공통적인 점은 있다. 외관이 주변환경과 어울리느냐 어울리지 않느냐를 떠나 좋은 건축은 안에 들어갔을 때 온몸으로 느껴진다는 것.

 

안에 들어섰을 때 그 건축의 훌륭함이 스스로 드러나는데, 안에 들어왔음에도 그런 멋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건축으로서는 조금 떨어진다는 것.

 

하여 건축은 밖에서 보기도 하지만, 안에서 보기도 해야 한다는 것. 밖과 안에서 볼 때 훌륭한 건축은 정말로 좋은 건축이고, 이런 건축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 시간과 사람을 하나로 이어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유럽의 다양한 건축물이 나오고, 그 건축물에 대한 스케치, 그리고 사진까지 정말로 다양한 유럽건축물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건축에 대한 유럽인들의 정신도 알 수 있는 책이었고...

 

이제 우리 사회도 서서히 건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실용과 아름다움의 조화, 단절과 연결의 가능성 등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건축이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때로는 독립되고 때로는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지닌,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장소로서의 건축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많은 건축가들의 분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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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대전, 아마도 2부 제목이 보화각인가 하던데... 거기에 가다. 수요일 오후에...

 

봄에 열렸던 간송미술대전에도 갔었는데, 또다시 간 이유는 이번에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전시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다.

 

간송미술관에 한 번 갔을 때 2-3시간에 걸친 줄을 기다려 들어갔다가 문화재보다는 사람 뒤통수를 더 많이 보고 온 적이 있었고, 올해 초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했던 것에는 '미인도'가 나오지 않았다.

 

하여 그래도 간송미술관에 갔으면 '미인도'는 봐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게 된 것.

 

평일이라 사람이 적겠지 하고 갔는데 웬걸 여전히 줄을 서야 한다. 날도 더운데 아무리 실내라 하여도 냉방시설이 복도는 그다지 좋지 않아 더운데 또 기다려야 하다니...

 

다행히도 이번에는 조금만 기다리면 되었다. 한 10분 남짓 기다렸으려나.

 

참으로 미인을 만나기 힘들구나.

 

사람들을 따라 작품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니, 1부에서 본 작품들도 있지만, 새로운 작품들도 꽤 있다.

 

이런 작품을 이 때 아니면 언제 보랴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돌다 보니 '미인도' 앞에 서게 되었다. 찬찬히 보고 또 보고, 화면으로 나오는 확대된 사진도 보고 또 보고, 머리 속에 마음 속에 담아 두고, 다른 작품들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1부에 있었던 도자기류와 훈민정음이 여전히 전시되어 있었다는 사실.

 

간송으로 인해 우리 문화재가 이리 보존될 수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감사하면서...

 

잘 보고 온 길.

 

신윤복의 '미인도'말고도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신윤복의 또다른 작품들과 김홍도의 작품, 장승업의 작품, 심사정의 작품, 김명국의 작품, 최북의 작품, 여기에 추사의 그림과 글씨까지...

 

아직도 우리나라 옛그림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감상도 잘 하지 못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자꾸 눈에 담고 마음에 담으면 그만인 것을...

 

유홍준의 "화인열전1,2"이 생각났다. 그림을 보는 눈이 높아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화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곳에 가면 간송미술관의 작품들을 해설해 놓은 도록집인 "간송문화"도 있다. 한 번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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