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뉴스에서 사랑의 온도탑이 100도를 넘었다고 했다.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기부금을 모았다는 얘기다. 참 훈훈한 얘기다. 이런 훈훈함이 사람들이 겨울을 견디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뉴스를 보면서 씁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 모두가, 아니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들을 자꾸만 개인에게 미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IMF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사고는 있는 자들이 다 쳐놓고, 그 뒷수습은 없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회복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분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자꾸만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사랑의 온도탑. 좋다. 이거 100도를 늘 넘겼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런 사랑의 온도탑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어려운 사람이 꼭 연말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사람들이 지내기 힘든 것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아니 계절을 가리지 않고 힘들텐데...

 

연말에 이런 행사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행사 자체가 필요없게 사회기반 시설을, 사회복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바우만의 말처럼 내 형제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왜 내 형제를 내게 묻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오는 순간, 그 사회는 윤리적인 사회에서 벗어나 버린다는 그런 말... 그런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삶이보이는 창'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사랑의 온도탑을 데우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온기를 내보내고 있다. 이게 삶창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친절'시리즈다.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치게 친절을 강요하는 사회는 친절하지 않음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사회, 그런 친절은 자신에게만 해당이 된다. 남에게는 오히려 막 대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회. 그것은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친절을 가장하고 사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대면하고 서로의 진심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이번 삶창에서 말하는 '친절 금지'일 것이다.

 

사람들의 따스한 이야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그럼에도 아직도 힘들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이번 호에도 실려 있다. 그래서 삶창은 나를 깨어있게 한다.

 

적어도 눈 뜨고 있으라고 한다. 그것도 강하게가 아니라 나직하게 나에게 속삭인다. 깨어 있는 삶이 아름답다고.

 

삶창은 이렇게 계속 따스하게 깨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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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 창비시선 168
정양 지음 / 창비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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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이라는 시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안도현이 엮은 시집에서 '물끓이기'란 시로 그를 알게 되었는데, 일상 생활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만든 시인의 표현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시인을 발견하게 되면 그의 시집을 사 보게 된다. 몇 권의 시집을 발간한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아직까지 몰랐다니... 제법 시집을 읽었다는 나도 시에 관해서는 아직도 문외한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어떤 시집을 고를까 하다가 그래도 최근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른 시집.

 

뒤를 먼저 살피는데, 이 시집이 언제 발간이 되었고 몇 쇄나 인쇄가 되었는지를 살핀다. 여러 쇄가 인쇄되었다는 얘기는 제법 읽혔다는 얘기다. 단 한 번의 출판으로 절판이 되거나 품절이 된 시집도 있는데, 이 시집은 1997년에 처음 발간이 되었는데, 내 손에 들어온 시집은 2013년 초판 5쇄다. 최소한 다섯 번은 찍어냈다는 얘기이니, 이 시집은 시집 중에서는 그래도 많이 읽힌 축에 드는 시집이리라.

 

시를 읽기 전에 먼저 시인의 말을 살핀다. 그의 말 '시 쓰는 일, 그것이 빛깔이 되든 수단이 되든 목적이 되든, 허무나 그리움 같은 폭폭한 것에 인박히어 그 면역과 건망증을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한 세상을 살고 있다. 진실로 맘에 드는 시집 한권 만들 때까지 이 건망증은 계속될 것만 같다.(129쪽)'는 그의 말이 맘에 쏙 들어온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이렇듯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인박히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잊는다. 잊고 살다가 어느 순간 내 맘 속에 떠오를 때 그 때 그것은 다시 나에게로 다가와 의미있는 무엇이 된다.

 

그의 시들은 그의 삶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다. 그것들이 자연스레 시로 표현되고 있다. 이 시집의 해설에서 이야기하듯이 그의 시를 갯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보면 별 것 아닌, 그저 그런 풍경으로서의 갯벌.

 

그러나 갯벌은 자세히 보면 엄청난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정지되어 있는 듯한, 이미 쇠락한 듯한 그 갯벌에서 온갖 생명들이 요동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생명력 또한 발견할 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갯벌의 포용성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시도 마찬가지다. 그냥 개인의 일상생활, 특히 시골생활이 많은데... 그리고 시의 대부분이 시인의 경험과 동떨어질 수 없는 내용들이라고 짐작이 되는데... 한 사람의 일상을 시로 풀어낸 듯한 시집이지만, 가만히 읽어보면 온갖 것들이 살아서 숨쉬고 있다. 그래서 갯벌이라는 비유를 비평가가 썼는지도 모른다.

 

이 중에서 어디선가 본 시인데... 왜 시인의 이름이 남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시가 '토막말'이란 시. 분명 어디에서 보고, 이렇게 시를 쓸 수도 있구나, 일상어가, 비속어가 이렇게 시 속에서 시퍼렇게 살아 숨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던 시인데.. 왜 시인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하는 시, 보자.

 

토막말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진 모래밭에 한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시퍼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이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정양.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 창비. 2013년 초판 5쇄. 38쪽

 

아름답다. 감정을 언어로 순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 그 말이. 그 말을 보면서 한 편의 시를 쓴 시가. 우리네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시에 녹아 있지 않은가.

 

이런 시... 읽으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시를 가까이 하게 된다. 시란 언어의 유희를 떠나 우리네 삶에 밀착하게 달라붙어 있을 때 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시는 우리에게 시를 친숙하게 여기는데 도움을 준다.

 

삶을 수수하게 노래하고 있는 시들. 그런 시들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정양의 시집. 이번에는 새벽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를 본다.

 

그 새벽.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그냥 해가 뜨는 장면이 아니다. 그 해 뜨는 장면을 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깊은 어둠을 경험해야 하는가.

 

어둠을 통해서 새벽은 더욱 아름답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새벽이 온다는 그런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알려주는 시다.

 

새벽은

 

한사코 끗발이 죽는 노름판에

끗발이 끝끝내 꽉 막혀야

새벽이 온다

 

화톳불 식어가는 초상집에도

술독이 바닥난 주막집에도

 

꽁초까지 떨어져야 새벽이 온다

가물가물거리는

저 촛불이 꺼져버려야 비로소

새벽은 온다

 

정양.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 창비. 2013년 초판 5쇄. 73쪽.

 

우리의 새벽은 이렇게 오겠지. 그게 바로 새벽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감흥이 없는 날짜의 변화, 시간의 변화, 자연의 변화에 불과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여 아무리 어둠이 짙어도 그 어둠의 끝에는 반드시 새벽이 온다는,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보아야 한다는... 그런, 갯벌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썩여야 뭇생명들을 머금을 수 있음을... 이런 시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활동을 해왔던 시인인데... 이제서야 그의 시집을 읽고 그렇구나, 이럴 수도 있구나, 이렇듯 생활이 바로 시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시가 한둘이 아니겠지마는, 이번에 읽은 정양의 시집은 한 마디로 좋다였다. 그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 사회를 볼 수도 있었고, 민초들의 삶을 통하여 인간 삶을 생각할 수도 있었고, 그의 내력을 드러낸 시들을 통하여 우리 현대사를 생각할 수도 있었기에...

 

내 마음에 들었던 시들은 더 있는데... 길어서 인용은 그만하고, 제목만 말하면 '사진찍기2', '평양소주','낯도 안 붉히고'가 있다. 이들만이 아니다.

 

이 시집은 정말로 갯벌이다. 많은 생명들이 이 시집에서 자신들의 생활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만으로 이 시집은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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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희망으로...

 

녹색평론 이번 호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절망은 우리의 현실에서, 희망은 우리와 비슷한 나라들, 라틴아메리카에서... 아니, 바로 우리의 이 현실에서...

 

'밀양 송전탑의 어떤 하루'와 '일상 속에 감춰진 방사능'에서 절망을 보았는데...

 

이 둘은 핵과 관련이 되고, 그것은 우리의 파멸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도 이상하게도 남의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도시의 전력을 위해서 위험천만한, 송전선이 지나는 근처의 삶을 파괴하는 그런 발전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밀양의 외침을 공영방송이라는 데서, 전국방송이라는 데서 제대로 다루어주지도 않고, 오로지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부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에서조차도 제대로 이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절망을 본다.

 

또한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는 방사능, 그러나 전문가들에게도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는 방사능에 대해서, 이렇게 알려주는 글을 읽으며, 이것 참... 알려주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왜 이렇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지...

 

국민의 건강이 국민의 행복을 이루는 기본 조건이고, 방사능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제일 요소라는 사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겠는가... 송전탑이든 방사능이든 모두 핵과 관련이 있는 문제인데...

 

이렇게 녹색평론에서는 끊임없이 방사능에 대해서, 핵에 대해서 우리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조화로운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세상은 그저 조용하기만 할 뿐인 모습에서 절망을 본다.

 

그러나 이 책의 중후반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이야기에서 희망을 본다. 아니 희망은 이런 절망 속에 있음을 본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인간이 가장 나중까지 지닌 것이 바로 희망이듯이...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상황을 겪었던, 어쩌면 우리보다 더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라틴아메리카가 지금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지, 가끔 들려오는 소식은 참 고무적이다. 이런 고무적인 현상에 더해서 이번 호에서는 '시와 라틴아메리카 혁명'이란 글과 '부엔 비비르-좋은 삶과 자연의 권리'라는 글을 실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오늘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글인데... 두 번째 연재되고 있는 '농사꾼이 본 쿠바(2)'와 더불어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글이다.

 

시가 꼭 혁명을 주장할 필요는 없다. 꼭 선동시일 필요는 없다. 인간의 내밀한 감정을 잘 드러낸 시라면 그 시는 혁명성을 지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길게 본다. 그들은 인간의 삶에서 겪는 고통을, 그 기다림을 혁명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치환할 줄 알았다.

 

그래서 서정을 노래한 시와 노래들이 그들의 혁명을 유지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마치 일제시대 임화의 단편서사시가 서정성을 획득했을 때 더한 울림을 주었듯이... 이용악의 시들이 우리 민족의 암담한 현실을 노래했지만, 그 시들이 우리 민족의 독립의식을 오히려 더 일깨웠듯이...이육사의 시들이 상당한 울림을 가지고 지금도 읽히고 있듯이... 개인적인 서정이 담뿍 담긴 윤동주의 시들을 우리가 저항시라고 부르듯이...

 

혁명을 노래하는 시들은 꼭 피의 냄새를 풍길 필요는 없다.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표현하는 그런 시들이면 된다.

 

그래서 파블로 네루다의 혁명시만큼 그의 연애시가 혁명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삶을 헌법에 채택하는 운동을 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는 진정한 혁명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혁명을 계속 진행중인 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역사에서, 그들의 활동에서 우리가 나아갈 희망을 발견해야 한다.

 

'시와 라틴아메리카 혁명'이라는 글을 읽으며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 파블로 네루다. 그들 나라에서는 돈 파블로라고 알려졌다는 그 사람. 그 사람의 시집이 떠올랐고...

 

단순한 혁명시인이 아닌, 삶을 노래한, 그래서 혁명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시집이 예전에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왔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다.

 

제목을 보라.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다. 이 절망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사랑은 희망으로, 절망은 희망을 예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절망 속에 좌절해 가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희망을 꽃피운, 사랑을 노래한 그들은 지금... 희망을 시대를 만들었고, 이끌어가고 있다.

 

밀양에서, 강정에서, 또 어디어디에서 우리는 숱한 절망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 절망들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찾고 있다. 희망을 보고 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여 희망이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희망이 없다는 얘기가 아님을... 희망은 언제가 되던 오게 되어 있음을 역사 속에서 우리는 확인하지 않았던가.

 

그런 희망을, 지금 절망의 시대... 다시 한 번 찾고 있다. 녹색평론 134호를 읽으며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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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택광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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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일기를 출간해 놓고 일기가 아니라고 제목을 붙였다. 일기가 내면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낸 글이라면, 일기임에도 일기가 아니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테다.

 

아마도 일기는 자신만이 보도록 쓰여진 글이라면 바우만의 이 일기는 자기만이 보는 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는 글이라는 뜻이리라.

 

처음 시작에 왜 일기를 쓰는지 그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마도 글쓰기는 그에게는 삶 자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삶 자체. 따라서 일기는 그가 세상을 살아간 모습을 기록한 것이고, 이것은 개인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근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기록이기도 하기에 우리는 그의 일기를 읽으며 사회를 읽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참 많은 문제들이 이 책에 나와 있지만, 이 책에서 그가 다룬 내용들이 다른 책으로 쓰여져 번역되어 나온 것들이 많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바우만의 다른 책 내용들과 함께 읽게 된다. 말 그대로 그의 저작들을 함께 엮으며 읽을 수 있고,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책들을 썼는지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바우만의 이 일기가 아니라고 하는 일기를 읽고 난 뒤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모든 독후 활동이 읽은 책에 의탁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내는 일이라면 바우만의 책을 읽고서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바우만에 의탁해서 내 얘기를 하는 것에 불과하리라.

 

하여 바우만 읽기는 곧 바우만을 통해서 나를 읽은 행위이며, 나를 읽는 행위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읽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회 속의 나... 이 책의 맨 마지막에 바우만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가 나온다. "탈구"라는 개념으로...

 

탈구... 쉽게 말하면 장소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말이 되겠다. 그것이 공간이든, 사회적 위치든... 바우만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서 그의 조국에서 떨어져 나와 영국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며, 주류 사회학에서는 좀 떨어진 학자로서의 삶을 살았으니, 그의 인생은 '탈구'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탈구된 삶이 바로 근대사회를 바우만 식으로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액체 근대,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에서 그는 소비자사회로 넘어간 우리 시대를 읽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소비자시대의 대표격으로 '페이스북'을 언급하고 있으며, 여러 책에도 나온 것이지만, 프랑스 학자가 근대의 기점을 찾는 연구를 했는데... 근대의 기점을 개인적인 사생활을 공적인 자리로 끌고 나온 텔레비전의 한 방송으로 잡는다는... 그래서 우리는 사적인 것의 공적인 행위로 만들기, 또는 공적인 삶을 사적인 것으로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들이 이 책의 곳곳에 나와 있다.

 

이것을 우리 사회에 적용해야 한다. 우리 사회도 역시 페이스북, 요즘은 '카카오톡'이든지, 아니면 '카카오스토리'라는 것이 더 유행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더 외로움에 빠져들고 있지는 않은지.

 

또 외국인 노동자들이라든지, 사회에서 배제된 집단들을 배제시킴으로써 우리들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방송을 통해서, 또는 다른 활동을 통해서 우리들 역시 유동하는 근대에서 '쓰레기가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우리도 바우만처럼 '일기가 아닌 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써야만 하지 않을까. 그런 일기를 쓴다면 자신이 처한 위치나,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적어도 고민은 할테니까. 이런 고민들이 쌓이면 자연스레 실천으로도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바우만처럼 '일기가 아닌 일기'를 쓰자. 사색하는 시간, 고독할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이런 일기를 쓰는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는 고독한 시간, 사색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사회에서 연결망이 아닌 공동체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가장 내밀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기록하는 일기가 자신을 공동체로 이끌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책은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일기이면서도 일기가 아니다.

 

덧글

 

오타임에 분명한 부분

89쪽에 '보이치에 사디가 2011년에 ~'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일기는 2010년 10얼 7일자 일기이기 때문에 오타임이 분명하다. 몇 년인지 찾지는 않았지만.

 

또 하나 사람 이름. 그래도 많이 알려진 이름으로 해야 하지 않나. 303쪽에 한스 조나스라고 나오는데, 이 사람은 한스 요나스라고 주로 읽는다.  한스 요나스로 통일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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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한다. 사실 아직도 리얼리즘시가 좋으니... 무의미시라든지, 날이미지시보다는 그래도 무언가 의미를 전달해주는 시가 좋다.  나를 바라보고, 나를 다시 세울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시가 아직도 내게는 좋은시로 다가온다.

 

그래서 좋아하는 많은 시인들은 명징한 시를 쓴 시인들이다. 윤동주. 얼마나 명징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얼마나 삶을 경건하게 만드는가. 이육사, 얼마나 치열한가. 사회에 자신을 내던져 그 가열참으로 버텨내는 모습을 시 속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으니...

 

이런 시인들말고도 예전에는 박노해, 김남주의 시를 좋아했다. 치열한 삶에 대한 노래들. 리얼리즘이었다. 아직도 내게는 리얼리즘시들이 맘에 와닿는다.

 

어쩌면 맘을 울리는 시들도 좋아하지만 이성이 작동하는 시를 더 좋아할지도, 그것은 복잡한 것보다는 설명이 가능한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태도를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시는 사실 단순할 수도 있지만 세상일을 하나로만 볼 수 없음을 깨우쳐주고 있기도 한데, 구태여 단순한 시만을 왜 좋아하는지... 세상이 분석되고 설명되면 변화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그럼에도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고 느낄 나이가 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 다양하고 더 복잡하고 더 여유로와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습이니...

 

제목을 보고 샀으리라. "결혼식과 장례식"

 

인생에서 중요한 두 번의 행사. 하나는 자신이 기억하고 그 행사를 모두 지켜볼 수 있지만, 하나는 자신이 전혀 기억할 수 없고, 지켜볼 수도 없는, 주체가 되는 행사와 객체가 되는 행사. 그럼에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번의 행사.

 

새로운 삶의 시작과 또다른 새로운 삶을 위한 죽음. 그것을 생각하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나 하고 샀으리라. 그러나 시집에는 그러한 내용을 찾기보다는 시인이 바라본 세상, 사물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

 

결혼식과 장례식도 같은 제목을 한 극을 보고 나서 느낌을 시로 쓴 것이니... 이렇듯 세상은 복잡하고, 시도 복잡하고...

 

예상과는 달랐지만, 시는 읽을 만했다. 그렇게 느꼈으리라. 처음에 샀을 때도. 리얼리즘시를 좋아해 기를 쓰고 사회현실을 담은 시를 찾으려고 노력했겠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찾을 수 없었던 시집.

 

김종삼이라는 시인, 황지우라는 시인(그는 이 시집에 제목으로 두 번 나온다), 이성복이라는 시인이 나와 반갑기도 하지만...

 

"나의 시는 여행 가방 안의 온갖 잡동사니이고 다음 기착지의 필수품들이다. 그것을 가방에서 꺼내고, 다시 담고 하는 사이 늙고 턱수염이 껄끄러워지겠지만."(김영태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 문학과지성사. 1988 2쇄. 뒷표지에서)

 

그래, 공연히 리얼리즘을 찾지 말자고. 그가 말하듯이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인 이 시집은 시인이 보고 느낀 것을 언어로 조합해낸 결과물 아니던가.

 

시인은 이 시들디 다음 기착지의 필수품들이라고 했는데.. 나에게는 다음 시들을 위한 경유지 아니겠는가.

 

시의 다양성이 바로 현실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한다. 시를 통해서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을 변혁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실천을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성을, 복잡성을, 개인성을 느끼는 것도 바로 현실 아니겠는가.

 

현실이라는 복잡계를 애써 단순화하려고 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봐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 느껴라. 그것도 가끔은 필요하다. 이 시집은 이 점을 내게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읽으면서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시, 그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 않은가.

 

두 시를 인용한다. 그냥 읽고 즐기면 된다.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한 편의 그림이기도 하고, 한 편의 음악이기도 하다. 이거면 됐다.

 

가구음악

 

꾸며지기 전

저렇게 헐렁하다

꾸며진 뒤에

분홍 쉼표

그저 거기에 놓여 있는 음악

 

김영태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 문학과지성사. 1988 2쇄. 56쪽

 

능금

 

제 몸에 묻어둔 팔

다리인 제 몸에서 나는 향기

비집고 나오는 가슴이

저절로 솟는 제 몸의 부끄러움

 

김영태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 문학과지성사. 1988 2쇄.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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