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다.

 

정치의 계절이란 말보다는 사실 선거의 계절이라는 말이 더 맞는 듯하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이미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었으니, 선거의 계절이 시작되었음에는 틀림없다.

 

지방자치 선거에 교육감 선거까지... 우리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선거가 6월에 치러진다. 이 선거를 통해서 4년이 결정이 되는데...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 것이 정치는 우리의 삶 내내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서 절대로 자유로와 질 수 없기 때문에 정치는 따로 계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를 우리가 실감하게 되는 때가 바로 선거가 치러지는 때이니 만큼, 지금을 강조하기 위해서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을 써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언어가 삶을 좌우할 수 있으니,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보다는 선거의 계절이라는 말을 쓰는 편이 좋을 듯하고, 직접민주주의 대신 간접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유일하게 시민들이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리다는 이유로... 나이나 성별, 신체장애의 유무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헌법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년의 나이를 한 살 낮추는 것에 대해서는 심한 반발이 있는데...

 

아직도 한창 배우고 있는 고등학생에게 무슨 선거권이냐부터, 학생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겠느냐는 말까지...

 

그래서 18세로 투표권을 낮추자는 말은 어림없는 소리로 치부되고, 아직도 실행이 되고 있지 않다. 대학입시에 매진해도 시원찮을 고3이 무슨 투표냐고? 그런 시간이 있으면 공부나 하라고?

 

그런데... 그런데... 왜 공부를 하지? 대부분의 학교 교육목표가 민주시민 양성 아니던가. 민주시민은 어떤 사람들이지? 자신들에게 관계된 일에 자신들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노예에 불과하지 않는가. 아니면 판단불능의 사유가 있는 어떤 특정한 집단이거나.

 

교육감 선거를 예로 들어보면 문제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교육감은 4년동안 그 교육청의 교육행정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교육부 장관보다도 교육감에 의해서 일선 교육현장은 극심한 변화를 겪는다.

 

그 단적인 예가 서울시교육감 아니던가. 전임 교육감은 혁신학교에 중점을 두고 교육정책을 펼쳤다면, 후임 교육감은 혁신학교를 지우려는 교육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교육감에 따라 학교 현장은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학교 현장의 중심축 중의 하나가 바로 학생들이다. 학생으로만 국한시키지 않으면 바로 그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이다. 청소년들의 대다수를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제도권 밖에 있어도 교육정책의 영향은 제도권 안이나 제도권 밖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육감 선거에 학생들은 참여할 수가 없다. 교육감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학교교육의 범위는 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는 유,초,중,고등학교 교육에 해당이 된다.

 

하지만 그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지, 청소년들이 판단능력이 떨어진다고? 과연 그런가? 그럼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어른들은? 왜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을 문제삼지 않는가. 투표권을 주느냐 마느냐는 판단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로 투표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

 

문제는 단지 투표만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정치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주시민교육"이 목표인 사회과가 교과목으로 버젓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것은 말 뿐이다. 그리고 시험용일 뿐이다. 오로지 시험을 위한 교과로 존재하는 사회과. 이런 상태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의식은 발달할 수가 없다.

 

제대로 된 정치교육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른이 되었다고 정치의식이 성숙한 시민이 되는가? 그런 경우가 있는가?

 

정치의 후진성, 그것은 정치교육의 부재를 이르는 말이다. 젊은이들에게 왜 너희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느냐고 질책을 많이들 한다. 그것도 다른 때에는 잠잠하다가 선거때가 되면 각 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이런 말이 나온다.

 

왜 정치에 관심이 없냐고? 당연하지 않은가. 언제 제대로 정치에 대해서 민주시민의 역할에 대해서 가르친 적이 있는가?

 

학생들이 "안녕하십니까"란 대자보를 붙이자 그것은 학생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교육당국이 앞장서서 떼어버리는 현실에서, 무슨. 

 

그래서 이번 "민들레 91호"에서는 특집으로 '정치가 꽃피는 교육'을 들었다. 시의적절하게 잘 다룬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싶다면 학생들(청소년들) 너희들은 어리니까, 공부해야 할 나이니까 정치에 관심두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학생들(청소년들)이니까 제대로 정치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라고 해야 한다.

 

정치에 직접 참여하게도 해야 한다. 물론 집행권을 주지 않더라도, 그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결정을 하게도 해봐야 한다. 그리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옛날에는(지금보다도 더 후진적이라는) 15세가 넘으면 이미 어른 대접을 받았다. 춘향이의 나이를 생각해 보라. 그리도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던 춘향이의 나이는 그 때 16세였다. 또한 옛날에 소년 진사들... 뭐... 이런 과거에 나이 제한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라.

 

민들레 이번 호를 중심으로 학생(청소년)의 정치교육에 대해서, 정치 참여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한다. 마냥 어리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또 하나의 주체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시민이 양성될 수 있다.

 

학생(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정치 교육을 할 때에만, 선거 때만 반짝하는 정치계절이 아니라, 늘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정치라는 사실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다. 그 사실을 민들레 이번 호가 상기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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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 - 당신의 감정과 판단을 지배하는 뜻밖의 힘
애덤 알터 지음, 최호영 옮김 / 알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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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끝이 없어진다. 도대체 '나'란 무엇인가? 이런 '나'에 대한 추구가 결국 철학을 낳게 하고 종교를 낳게 하고 과학을 낳게 했겠지만, 여전히 답은 없다. 정말로 '나'라는 존재는 신비에 쌓여 있는 존재이다.

 

그런 '나'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달라는 말을 많이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

 

도대체 "있는 그대로의 나"란 어떤 존재일까?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일까? 아니면 종교에서 말하듯이 신이 창조한 대로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할까? 또는 뇌의 조종을 당하는 생물에 불과할까?

 

참 많은 질문이 일어나는 말이고, 역시 답을 찾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자유의지는 없다"란 책을 읽었었는데, 여기서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 수많은 요인들이 얽혀서 그들에 의해 행동을 조정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자신이 자유의지라고 믿는 것도 그런 요인들 중 어느 하나가 촉발시킨 것일 뿐이라고 했었는데...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무엇이 조정하는지 모른 상태로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런 말인데, "자유의지는 없다"는 말은, 이 말이 옳다면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환경과 나를 존재하게 했던 과거의 수많은 요소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들과 나를 부르는 이름들까지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파악해야 하며, 내가 살아온 역사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에 가까이 다가서는 길이다.

 

이 책은 그 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심리학 책이라고 해도 좋고, 과학책이라고 해도 좋으나, 전달하려는 주제에 비해서 참으로 쉽게 전달해주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읽어가다보면 우리나라 교육방송에서 했던 다큐멘터리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내용도 이 책에 많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심리학이나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많이 언급했던 사항들을 다시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정리, 전달해주고 있어서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을 이 책은 지니고 있다. 

 

차근차근 읽다보면 우리의 생활에 많은 것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사실들도 있기에 거부담은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은 너무도 다양하다. 그 다양한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것들을 3부 9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부는 당신을 뒤바꾸는 주변 조건들이라는 제목으로 색채, 공간, 온도를 들고 있다. 색깔에 따라서, 이는 우리가 어떤 경우에는 주로 특정한 색깔을 쓴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과 접하는 생활을 하느냐, 자연과 단절된 생활을 하느냐, 소음에 시달리느냐 아니냐는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세번째가 좀 특이한데, 온도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하긴 날이 습하고 더울 대 짜증이 더 나고, 하다못해 일기예보에 '불쾌지수'가 있을 정도이니, 온도 역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임이 확실하다.

 

2부는 차이를 낳는 우리 사이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시선, 편견, 문화를 들고 있다. 이것도 이미 우리의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다. 눈이 그려진 공간에 있을 때 좀더 진실해진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거짓을 말할 때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편견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인데... 동양과 서양 사람이 사물을 바라보는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역시 많은 다큐멘터리나 책에서 다뤄진 내용이기 때문에 이 내용에 동의할 수가 있다.

 

3부는 우리 안의 사소하고도 거대한 힘이라는 제목으로 상징, 이름, 명칭을 들고 있다. 상징, 왜 우리가 국기를 신성시여기는가? 또 어떤 상징을 보았을 때 우리의 감정이 넘쳐나는가? 이는 상징이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고, 이름이나 명칭은 말할 것도 없다.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우리 동양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이 중요하다고 작명소에 찾아가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고, 이름을 지을 때 따져야 할 요소가 엄청남을 생각한다면 이름이나 명칭은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이 책은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여기저기서 주어들었음직한, 또는 텔레비전에서 보았음직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소개에 그치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나'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모아놓고, 체계적으로 분류를 하고, 그것들을 구체적인 과학적인 실험결과들을 증거로 들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나"에 대해서, 아니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면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데, 단지 알게 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환경을 바꾸는 것으로 나아간다면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덧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런 내용을 우리나라 심리학자부터 교육학자, 또는 의학자들이 알고 있을텐데... 어째서 우리나라 교육환경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지. 적어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나"를 변화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수많은 "나들"이 모여 있는 학교라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텐데...

 

대입개혁, 자유학기제 등등 수많은 교육정책들에 앞서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학교에서 조성하도록 정책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답답하기만 했다.

 

아무리 좋은 제안이라도 실행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데...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 백날 이야기하면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책은 교육정책 담당자들, 또는 정부관료들이 먼저 읽고 정책 입안에 기초자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지나친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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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이 몇 년만에 이루어졌다.

남과 북.

물리적 거리로는 얼마되지 않는데... 만나는데 몇 십년이 걸린다. 마치 서정춘의 시 '죽편1'에서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고 노래하듯이 너무도 긴 세월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해마다 몇 천 명씩 만나도 시원찮을 판에, 한 번의 만남에 남과 북이 각 100명씩이니... 그것도 해마다 정기적으로 정해져 있으면 몰라도,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 이산가족 상봉은 물건너 가버리고 마니, 언제 자기 차례가 올지 알 수가 없다.


이산가족을 만나기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끝내 가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금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으로 서로의 생사를 알지 못하고 지내온 세월이 너무도 길어서, 이제는 만나야 하는데... 이러한 인륜 앞에, 천륜 앞에 이념은 무엇이던가.


무엇보다도 서로 만날 수 있게, 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치가들의 임무 아니던가. 그들의 의무인데, 이런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 책임은 정치가들이 져야 한다.


'통일대박'이라는 말보다는, 작은 것, 즉 헤어진 가족이 다시 만나는 일, 서로가 서로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하는 일. 기왕에 해오던 개성공단부터 시작하여 경제협력을 해나가는 일. 예전처럼 남북단일팀을 만들어 세계대회에 참여하는 일.


문인들은 작품으로 교류하고, 언어학자들은 남북공동사전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학자들은 학문적 교류를 하면서... 서로의 긴장을 풀고 협력하는 상태가 된다면 통일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산가족의 아픔도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대박'을 이야기해야 한다.


고은의 시집을 펼치게 되었다. "남과북" 우리의 국토를 남과 북 어느 한쪽에 국한시키지 않고 옛날처럼 남과북의 장소들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장소, 이 공간, 바로 한반도는 남과북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북한에 있는 그 땅들도 바로 우리임을 이 시집에 말해주고 있다.


시인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시편 [남과북]은 남과 북의 수준 낮은 정치 현실로부터 비정치적인 조율과 문화로서의 음향을 지향하는 분단 이전의 노래이기도 하고 분단현실의 몇 단면에 다가가는 노래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분단 이후의 어떤 시기에 들어맞는 노래이기도 하기를 하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255쪽)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녹아 있는 장소들, 그 장소에서 남과북,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통일의 시발점이 아닌가 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가족들이 헤어져 서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지내지 않도록, 또 살아있음을 알고도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더 이상 함께 있지 못하는 세상이 되지 않게... 그렇게...


이 시집에서 노래한 "남과북"이 모두 우리임을.


두 편의 시를 보자. 이것이 바로 남과북이 지녀야 할 자세가 아닐런지.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하루빨리 씻겨내려가기를 바라면서...  

 

이제 입춘도 우수도 지났다. 봄이다. 꽃소식. 계속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곧 단풍도 멋지게 들테니...

 

      꽃소식


봄입니다 만물이 자유자재합니다

꽃소식이

세상의 가난을 달랩니다

누구는 불쌍하다고

누구는 불쌍하지 않다고 말하는

미완성의 나라 온통

봄입니다

이 나라 남쪽

제주도에 피는 진달래

며칠 뒤에는

바다 건너

전라남도

경상남도에 피어납니다

며칠 뒤에는

중부 한강 기슭

춘천 소양강 기슭에 피어납니다

한달쯤 지나

북한 압록강 상류

혜산 일대에 피어납니다

5월 하순

표고 2천7백 미터쯤에

수목한계선 밑 추운 봄에

진달래는 울긋불긋 피어납니다

이것이면 됩니다

더이상 바랄 나위 없습니다

어디메 봄날 꽃만한 것 있겠습니까

남과 북 차츰 가지런히

고은, 남과북, 창작과비평사. 2000년. 82-83쪽


     단풍

구원이란

컴컴한 신념보다 종교보다

별이 

꽃이

기어이 가을 단풍이 아주 많이 맡아온 것을 알고 싶다


한반도 북쪽 끝 두만강 상류 무산

첩첩산중

거기 사람은 없고

홍단수

단풍 가득하였다


한달 뒤

강원도 금강산이 온통 단풍이었고

이내 내려와 설악산의 단풍이었다

한달 뒤

호남 내장산 단풍이었다

바다 건너

제주도 한라산 위층은

벌써 빈 나무들이고

아래층은 아직 하루이틀 더 단풍이었다

이렇게 봄 꽃소식 북으로 가고

이렇게 단풍 소식

남으로 남으로 오는데

그동안의 동포들 남과 북에서

수고 많은 날들

그 찬란한 단풍으로

가슴 훤히 구원받아왔으니

이제 더이상 구원받지 않아도 좋아라

그저 단풍이면

어머

어머 소스라쳐 기쁘고

단풍 가면

아이고 어쩌나 안타까워하다가


한밤중 북극성 하나 바라보면

거기 내일이 있어야 한다

 

고은, 남과북, 창작과비평사. 2000년. 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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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탈핵 -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 2014 올해의 환경책 / 『한겨레』가 뽑은 '2013 올해의 책' / 『시사IN』선정 '2013 올해의 책'
김익중 지음 / 한티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반갑다. 이 책이 나온 것이. 탈핵에 관한 책이라면 일본 책이거나 서양 책이었는데... 우리나라도 원자력 발전소가 세계에서 많다면 많은 나라에 속하는데도 '탈핵'에 관한 대중적인 책이 나오지 않아 서운했었는데...

 

경주에 건설되고 있는 방사능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을 하다가 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후쿠시카 폭발사고로 인해서 탈핵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탈핵에 대해서 강연을 수없이 했던 저자가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책으로 엮어 출판을 했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소라는 이름으로, 또 청정에너지라는 이름으로, 무엇보다도 안전하다는 선전으로 원자력에 대해서 알고 있고, 건설단가가 다른 에너지보다 싸다고 하여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이득이라는 광고 속에서 원자력에 대해 알고 있는데...

 

그런 원자력의 이면에 대해서, 아니 이면이 아니라 원자력의 진실에 대해서 쉽게 전달해 주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왜 우리는 탈핵을 해야만 하는가를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중심으로 핵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으니, 내용이 추상적이지 않고, 또 의과대학의 교수에서 탈핵운동가로도 활동한 저자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전문가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쓰고 있어서 원자력(핵)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원자력. 우선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 늘 정명(正名), 정명하는데, 사물이나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이름부터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가 있다.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는 말이다.

 

원자력이라는 말이 어떤 긍정적인 이미지를 제공해주고 있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기를 쓰고 원자력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정확한 개념은 '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핵'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말하는 원자력 발전의 진실에 더 다가간 개념이라고 하고.

 

하여 원자력 발전이라는 말대신, 핵발전이라는 말을 써야 하고, 원자력발전소가 아닌 핵발전소, 원자력폐기물이 아닌 핵폐기물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이렇게 말을 바꾸어놓고 보면 우리의 시각이 어느 정도 교정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핵발전, 이것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도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지 않은가. 이 핵발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대도시로 옮기기 위한 송전탑 문제.

 

밀양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이, 사람들이 자신들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전력을 실어나르기 위한 송전탑 건설 문제로 삶터를 잃게 되어,  지금까지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핵발전이 일으키는 문제 중의 하나다. 방사능이라는 것을 빼고도 핵발전은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세계를 놀라게 한 폭발사고는 세 건이라고 한다. 물론 자잘한(?) 폭발 사고는 있어왔지만, 전세계인의 경각심을 일으킨 사고는 세 건인데... 미국의 스리마일섬 폭발 사고, 소련의 체르노빌,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 폭발 사고. 

 

그런데...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폭발 사고가 일어난 나라의 공통점은? 없다. 그것이 정답이다. 그런데도 굳이 찾는다면, 아니 가장 개연성이 높은 공통점은 이 나라들이 핵발전소가 많다는 점이다.

 

핵발전소가 많기로 세계 5위 안에 드는 나라라는 점. 핵발전소가 많으면 많을수록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식 아니던가. 확률이 높아지니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역시 핵발전소의 숫자로 보면 세계 5위 안에 드는 나라 아닌가. 게다가 30년이 넘은 노후한 핵발전소가 있는 나라고...

 

한 번 폭발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핵발전소 폭발 사고인데... 왜 우리는 확률을 낮추려는 운동을 하지 않고, 핵발전소를 더 많이 건설하려고 해서 확률을 높이는 것인지...

 

이건 그냥 위험하다는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 대안은 '탈핵'이다. 즉, '탈핵'만이 살길이다.

 

이렇게 탈핵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처럼 전기를 물쓰듯이 쓰는 그런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전기를 덜 쓰는 방식으로 우리의 생활을 바꾼다면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핵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는 소위 말하는 '원자력 마피아'들의 주장을 일소할 수가 있다.

 

다음으로는 대체에너지, 즉 자연에너지를 개발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자연에너지 사용율이 거의 세계 꼴찌라는데... 충분히 자연에너지를 쓸 수 있는 나라이니, 그 쪽으로 발전 방향을 돌려야 한다. 그러면 '탈핵'은 가능하다.

 

여기에 우리가 '탈핵'으로 가야 하는 이유 또 하나는 바로 '폐기물' 때문이다. 이 폐기물들은 그 자체로 방사능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데, 넘쳐나는 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금 경주에 건설되고 있는 방사성물질폐기물처리장도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암석은 너무도 약한 5등급이라고 하고, 그 주변에는 지하수가 흘러 지금도 물이 스며들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핵발전소가 계속 가동이 되고, 증가가 된다면 이러한 폐기물처리장도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런 장소도 장소지만, 기술도 문제고, 또 장기간 유지해야 하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그러니 방법은 '탈핵'밖에 없다. 그것이 살길이다. 그런데, 왜 그 방법을 택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이익? 그것 때문에 전국민의 삶이 위험에 처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후손들에게 위험을 안겨주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탈핵'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다.

 

'한국 탈핵'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핵에 대해서 관심을 지니고 행동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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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겠다” - 고병권이 만난 삶, 사건, 사람
고병권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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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거리의 인문학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었고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인문학 하면 뭔가 심오한 철학을 연상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무언가 특별한 지식을 얻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지레짐작하고는 인문학에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인 고병권은 인문학은 우리의 삶에서 멀어지는 학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라고 한다.

 

그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전혀 인문학과 관계가 없을듯한 사람들과 인문학을 통하여 만나면서 그는 인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우리 삶에서 인문학을 발견하는 점에 중점을 둔다.

 

즉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앎을 참조하는 질문'이 앎을 앎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면, 우리가 흔히 만나는 장삼이사들은 '삶을 참조하는 질문'을 하는데, 이런 질문은 곧 삶을 앎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 얫날 철학자들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앎이란 곧 삶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곧잘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된다.

 

삶이 되지 않는 앎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리 대학 강단에서 고담준론을 논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과 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게 되지 않겠는가.

 

정녕 인문학은 이러한 강단 철학, 강단 인문학이 아니라, 삶과 밀접히 관련이 되어 있는 거리의 인문학, 삶의 인문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경험한 일들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통하여 우리는 인문학이 우리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한 몇가지 개념이 머리 속에 계속 남아 있다. 바로 "빵과 장미"라는 말인데, 우리에게는 빵도 필요하지만 장미도 필요하다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생계를 보장하는 활동만이 아니라, 삶을 삶이게 하는 어떤 요소들을 필요로 한다는 말, 인간에게는 밥만이 아니라 바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오도엽이 엮은 "밥과 장미"라는 책도 있듯이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소수자들에게 그들에게 주어질 것은 시혜가 아니라 함께 함이라는 사실, 그들이 이 사회를 바르게 보고, 자신의 삶을 직시하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장미'라는 개념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논의에 비추어 "옹이"란 말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톱질이나 대패질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리라. 옹이가 얼마나 단단한지. 그 옹이를 벨 때 얼마나 힘이 드는지. 옹이가 나무가 겪은 상처라고 한다면, 나무의 상처는 너무도 단단하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지니게 되는데...

 

그러나 그 흔적이 단지 상처로만 남지 않고 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옹이라는 사실. 나무에 있는 옹이는 얼마나 멋진 무늬로 남을 수 있는지, 옹이를 옹이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알고 있다.

 

이렇게 옹이를 상처가 아닌 무늬로 바꿔주는 힘.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거리의 인문학. 그것은 상처를 상처로 인정하고, 상처가 덧나지 않게 해주는 일회성 처방이 아니라, 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이되, 상처가 무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하여 이 책을 읽어가면 온갖 상처가 나오지만, 그 상처가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상처를 직시하며, 상처를 아름다운 무늬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이 인문학을 통하여 상처를 무늬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그래서 '철학은 앎이지만 또한 행함'(15쪽)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때, 정말로 우리를 살리는 것은 인문학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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