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으로부터 두 번째 돌아오는 갑오년.

 

국사 시간에 배운 동학혁명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부이다시피 한 나에게, 동학은 서학에 반대하여 일어난 사상 정도로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봉준이라는 인물과 함께 실패한 혁명으로 기억되고 있었는데...

 

이번에 녹색평론 135호를 읽으며 동학이 단순히 서학에 대한 반대만으로 만들어진 사상이 아니었으며, 전봉준이 지도자로 나선 이유도 조병갑의 횡포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농민을 위한 사상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사상,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사상, 그런 사상이 총합된 것이 동학인데...

 

그 때도 그랬지만 농민은 지금도 살기 힘들다. 그들을 위한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정책이라고는 농민을 홀대하는 정책일 뿐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 갑오년 동학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의 농업에 대해서 생각한다. 식량 자급률이 채 30%도 안되는 나라에서 온갖 개방으로 더욱 어려워지는 농촌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먹지 않고 살 수 있으랴. 앞으로는 식량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데... 생존에 관련된 농업을 홀대해서는 안되는데...

 

그렇다. 동학은 과거의 사상이 아니다. 우리의 현재를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이번 호였고.

 

계속되는 "기본소득"

 

이번 지방자치제 선거를 통해서 쟁점으로 떠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경기도의 '무상버스'이야기와 달리 더욱 파급력이 큰 것이 기본소득 아니겠는가.

 

유럽에서는 좌우 이념에 상관없이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고, 나름대로 공감을 얻어가고 있는데, 이 참에 우리도 기본소득을 쟁점화하여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본소득이 단지 녹색당의 주장만이 아니라 복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 아니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 

 

유토피아는 멀지 않다. 이번 호에도 나오듯이 가장 힘든 사람이 덜 힘들게 살게 만드는 사회, 그것이 바로 유토피아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사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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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물은 끊임없이 흐르면서 변화를 추구한다면, 산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품어준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성선 시인은 산을 좋아했던 시인이다. 그의 시는 산 속에서 삼림욕을 하는 것처럼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마음이 상쾌해지고 따뜻해지는 시. 요즘같이 어수선한 때, 마음이 어두운 때 한여름 더위에 내리는 소나기같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1999년에 산시 연작으로 54편을 모아놓은 시집인데... 2013년에 다시 펴냈다고 한다.

 

내가 구입한 시집은 1999년판. 헌책방에서 산 책이다. 이 시집을 보는 순간 무조건 손에 집어들었는데, 그만큼 이성선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전철 안에서 읽기에도 편하게 짧은 시들이 모여 있고, 다시 읽어도 언제나 마음에 와닿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또 느끼게 하고 있다.

 

지금 시대 산문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시를 읽으며, 복잡한 도회지의 삶을 떠나 산 속에서 신선한 공기 내음을 맡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니 좋다.

 

문답법을 버리다

- 산시 17

 

산에 와서 문답법을

버리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

 

그렇게 길을 가는 것

 

이제는 이것 뿐

 

여기 들면

말은 똥이다

 

이성선, 산시. 시와시학사. 1999년. 34쪽

 

물 위에 달빛 붓으로

- 산시 31

 

가랑잎 종이 위에다

평생 이름을 적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슬픔이더냐

차라리 실컷

물 위에 달빛 붓으로 글을 쓰겠다

 

이성선, 산시. 시와시학사. 1999년. 51쪽.

 

이렇게 자연과 일치된 삶을 노래한다. 인위적인 것이 판치는 세상에서 시인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자연과 하나될 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야 우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각박해지는 마음을 추스리고 싶어 펼친 시집. 그래,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된다. '구름이 산을 밟았구나 /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구나'(서 있으면서 가는 나무 - 산시 54. 2연에서)라고 노래하는 시인.

 

자연은 서로에게 아픔을 주지 않는데,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 산은 모든 것을 품어주고 그 넉넉한 품으로 산을 보는 사람들, 산에 든 사람들, 산에 오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넉넉하게 받아들여주는데...

 

나는 왜 이리도 각박할까? 모든 인위적인 것에 마음을 아직도 쓰고 있으니... 잠시 인위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산을 바라볼까?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가까이에 산이 보이니 말이다. 저 산은 내게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내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시인은 그렇게 산을 대신해서 내게 말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 시인이 들려주는 산의 노래... 그 노래를 들으며 산이 내뿜는 피톤치드 그것을 내 맘 속에 깊이 들이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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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나날들이다. 세상이 이토록 어두워졌는데, 빛은 보이지 않는다. 저마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 순간에 역사의 바퀴가 멈추더니 힘겹게 올라왔던 진보라는 언덕에서 뒤로 미끌어져 내려가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약속은 생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이 어기는 약속은 불가항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하면서 비정상이 무엇인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강한 자들이 행위는 정상이고, 약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행동하면 비정상이다. 여기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불과하다. 과연 이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될까?

 

제왕적 권력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발휘가 된다. 단지 정치 분야만이 아니란 얘기다. 대기업에서 제왕적 권력은 대기업 총수에게 있다. 달랑 몇 %의 지분만을 가지고도 온갖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마찬가지로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교장이라는 제왕적 권력이 있다. 모든 것이 교장의 마음에 달려 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이런 것은 없다.

 

군대에서는 지휘관의 명령이 절대적이다. 불복종이란 없다. 그것은 범죄다. 그러니 지휘관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영혼이란 저 멀리 보내버려야 하는 존재다.

 

이런 사회는 밤이다. 어둡다. 이런 어두움 오래 되면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면 더 이상 빛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냥 어둠 속에서 보이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해야 한다. 그 빛이 있는 한 어둠은 어둠으로만 존재하기에 빛을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빛의 역할... '삶창'이 하고 있다. 어둠에 익숙해지지 말라고. 빛을 향해 나아가라고...

 

삶이 보이는 창 97호를 읽다.

 

특집 기사가 "불 좀 꺼주세요!"다.

 

이 특집을 보고 지난 대선 예비경선에서 나온 한 후보의 구호가 생각났다. 그 구호는 서정적인 구호이지만 상당한 힘을 발휘한 구호였다. 우리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릴 구호이기도 했고.

 

바로 '저녁이 있는 삶'.

 

참 당연한 말인데, 왜 이 구호가 그리도 가슴에 와닿았을까?

 

저녁이 있는 삶.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또는 혼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삶. 그런 삶이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밤중에서 불야성을 이루는 대도시는, 그들이 저녁을 누리기 때문에 불야성이 아니라 퇴근을 하지 못하기에,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해야 하기에 불을 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근대화, 산업화, 그리고 세계화가 된 지금,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섰다고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삶은 저녁이 없는 삶이었다는 것. 우리가 진정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저녁이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 점 때문에 그 구호는 마음에 맴돌았고,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다. 불을 꺼야 한다. 저녁을 확보해야 한다. 일중독이라는 병에 걸린 우리는 치유하고 싶어도 살기 위해서 이 병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일중독이라는 병은 쉽게 벗어던질 수가 없고, 이 일중독이라는 병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인식을 바꾸는 일이 바로 '불을 끄는' 일이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서로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 정부에서 '돌봄 교실'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초등 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앞으로는 초등학생 모두에게 이 '돌봄 교실'을 적용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참 좋은 발상같다.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맞벌이로 일을 하기 때문에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돌보아 준다... 참 좋은 발상...

 

그러나... 아니다. 이는 앞뒤가 바뀐, 본말이 바뀐 정책일 수밖에 없다. 아이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또 늦은 시간에도 학교에서 보내야 한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너희를 돌보아 줄 시간이 없으니 학교에서 돌보아 주마. 이게 뭔가? 그럼 부모는 아이를 돌볼 책임이 조금 가벼워지니 더 열심히 일해라라는 말인가.

 

이렇게 초등학교 돌봄 교실이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면 맞벌이를 하는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은 없다.

 

일에 지쳐 늦게 들어온 부모는 피곤에 절어 있고, 학교에서 너무도 많은 시간을 보낸 아이 역시 지쳐 있을테니, 부모나 아이들이나 서로 지쳐 밤에 얼굴 한 번 보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일이 반복이 될텐데...

 

어떻게 저녁이 있는 삶. 함께 어울리며 정을 쌓아가는 삶을 살 수 있단 말인가?

 

제대로 된 정책이라면 돌봄 교실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부모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정책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선진국 수준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그것을 법으로 명문화해야 할 것 아닌가.

 

부모들의 노동시간이 준다면 자연스레 돌봄 교실은 필요가 없고, 각 가정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될텐데 말이다.

 

"불 좀 꺼주세요!"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노동 식간을 줄여주세요." 근로기준법에 있는 그대로 하루 8시간 노동만 하게 해주세요. 아니, 발전하는 세계적 추세에 맞게 하루 노동시간을 6시간 정도로 줄여주세요. 그러면 우리는 그런 돌봄 교실은 필요 없어요. 우리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어요. 바로 이 말 아니겠는가.

 

삶창 97호.

 

 

저녁이 있는 삶. 그것이 어떤 삶인지 깨우쳐준 특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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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 - 미술품 도둑과 경찰, 아트 딜러들의 리얼 스토리
조슈아 넬먼 지음, 이정연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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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 어떻게 사라진 그림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는가? 원제목이 'HOT ART'인데, '뜨거운 미술'이라고 직역할 수 있는 제목을 붙이지 않고, 의역해서 제목을 붙인 이유는, 그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그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언론에 이중섭의 그림들이 대부분 위작이라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이중섭의 아들과 전문감정사들 사이에 대립도 있었고.. 또 시중에 나온 박수근의 그림들이 가짜라는 말도 있었고...

 

이렇게 가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림들이 많은 값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가짜 작품을 통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

 

이런 가짜 그림을 통해 돈을 버는 방법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그것은 그림을 사는 것이다. 정당하게. 그리고 보관해놓고 있는다든지, 아니면 경매에 내놓아 더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이 그림을 가지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고, 어느 집을 압수수색했는데, 고가의 그림들이 무더기로 나왔고, 그것을 경매에 내놓아 모두 처분했다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니던가.

 

가짜 그림을 파는 것은 불법인데, 자신의 돈을 주고 구매하여 되파는 일은 합법이다. 서로 다른 방법이긴 하지만 돈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그림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그림을 훔치는 범죄를 양산한다. 그리고 그림은 제때 제대로 추적되지 않아 범인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이 책의 저자는 여기에 착목해서 글을 썼다. 도대체 왜 비싼 그림들을 훔치는가? 훔친 그림들은 어떻게 유통이 되는가? 왜 이런 범죄들은 근절이 되지 않는가?

 

많은 그림 관련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 결과를 기록한 책이 이 책이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 무려 460쪽에 달하는 분량인데, 미술 작품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나타나기까지 수십년이 걸리니 그를 추적한 책으로는 적당한 분량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 도둑에 관한 변호사, 형사, FBI요원, 인터폴, 그리고 그림 도둑까지 광범위하게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에 그림 도둑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런 그림 도둑들 중에서 대다수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림이 엄청난 돈을 벌게 해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요즘에는 그림 도둑에 갱단까지 개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경찰인력들이나 전문가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영국이나 유럽에서 도둑들이 기승을 부리고 이를 미국으로 유통시켰다면 이제는 미국에서 도둑들이 기승을 부리고 다른 나라로 유통시킬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세계적인 명화의 도난뿐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그림들의 도난은 수도 없이 일어난다는 사실, 이것은 돈세탁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는 것.

 

그런 사실들을 흥미진진하게 알아갈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나라도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몇몇 화가들의 그림은 몇억을 호가하고 있으니,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외국의 사례처럼 쉬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경찰에는 미술전담팀이 있을까? 세계에도 이런 미술 전담팀은 몇 안된다고 하는데... 잘 모른다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래야 한다고,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우리나라 경찰에도 예술적 소양이 있고, 이를 전담할 수 있는 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끔찍했다. 세계적인 명화들, 또는 좋은 미술품들이 이렇게 무방비로 도난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런 예술품들이 고작 돈때문에 이렇게 수난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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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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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것도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너무도 오래 전 이야기이고, 또 제대로 다뤄주지도 않는다. 사람들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제가 본 부분만으로만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김재규다.

 

별로 흥미도 없다. 대통령을 죽인 사람. 이정도다. 알고 있는 사실은. 젊은시절에는 김재규가 사형당한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도 감옥에서 살아있겠지 하고 말았는데...

 

대통령을 죽였다고 그가 혼자 일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미국과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이나 다른 외국으로 도피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 그래서 그렇게 사형을 시켰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사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뿐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대통령을 죽였다고 해도 그 역시 그 대통령 밑에서 그 체제를 유지하게 하는데 큰 힘을 발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권력다툼.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또는 질책을 두려워해서 저지른 일. 이정도. 참 정보가 없기도 했다. 도대체 재판기록을 본 적도 없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잊혀진 사람. 아니 잊혀져야 할 사람. 그것이 바로 김재규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우연히 장군이라고 부르는 글을 보게 되었다. 글이라기보다는 그런 구절을 보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장군이라고? 그는 중앙정보부장 아니었어? 중앙정보부장은 민간인이 하고, 보안사령관은 군인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만큼 정보가 부족했다. 그가 군단장 출신의 3성장군이었다는 사실. 그를 보좌한 비서관인 박흥주가 현역 대령이었다는 사실.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렇게 빈약한 정보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려고 했었나? 한홍구의 "유신"을 읽다가, 그 책의 저자가 김재규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언가 모르는 부분이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하들에게 겨우 30분 전에 거사를 알려주었다는 얘기를 "유신"에서 읽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됐다. 거사 직전 30분이라? 이게 말이 되나? 한 나라의 대통령을 제거하는 일인데...

 

사육신이 세조를 제거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공모를 했는데... 그래도 실패했는데... 이상하다? 뭔가가 있나? 겨우 30분 전에 얘기했는데 그 말을 따라? 제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거.. 참...

 

김재규에 관한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막 솟아올랐다. 김재규에 대한 글을 읽는다고 그에 대해서 다 알지는 못하겠고, 모든 글은 자신의 관점에서 쓰여지니 읽으면서 정리할 부분도 많겠지만, 지금은 너무도 정보가 없기에 찾아 읽어야 했다.

 

검색어로 김재규를 쳤다. 제법 책이 나온다. 이걸 다 읽긴 좀 그렇고? 최근에 나온 책을 읽기로 한다. 그래도 최근 것이 더 많은 정보를 정리해서 알려줄 거라는 생각에...

 

추천사에 함세웅 신부가 있고, 강신옥 변호사가 있다. 이거 만만치 않은데... 이 분들은 유신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인데... 유신의 중심에 있던 김재규 평전에 추천사를 쓰다니...

 

점점 흥미가 인다. 읽어보기 시작한다. '평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작가가 드라마 작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흥미롭다. 장면 장면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그래서 그런지 전기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때의 사건을 재구성한 '그때 그 사건"을 읽는 느낌이 든다.  김재규 평전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김재규의 시간은 1979년에서 1980년이다. 채 일년이 되지 않는다.

 

그가 대통령을 죽이기 바로 직전부터 사형당하기까지가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다. 여기에 김재규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그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박흥주, 박선호에 대한 이야기도 곳곳에서 나온다.

 

이렇게 셋이 이 책을 이끌어가는 인물이 된다. 10.26 이후에는 변호사들도 중심 인물로 나온다. 이 때는 한 편의 법정드라마가 된다.

 

앞부분은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본격 무협담같은 느낌을 준다면 뒷부분은 요즘 나온 영화 "변호인"을 보는 듯한 법정 장면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재판정에서 오고간 말들이 나오기에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장면에서 김재규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된다. 그가 한 일과 왜 했는지...

 

그럼에도 그는 잊혀져갔다. 아니 잊혀져야 했다. 그는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했지만, 또다른 유신의 자식들이 등장함을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었고, 그의 명령을 따랐던 사람들의 비극이었다.

 

유신의 심장은 멈추었지만, 또다른 유신의 자식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그들 앞에 그는 세워졌던 것이다. 이런 역사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의 말대로 4심이 있어야 한다.

 

유신시대에 있었던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다시 심판을 받아 명예가 회복되었다. 이것이 바로 4심이다. 역사의 흐름에 의해서 올바름이 증명이 되는 것.  그는 그렇게 4심을 기대했다. 그 4심... 이제 30년도 넘게 흐른 지금... 서서히 준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 이상 자료가 사라지기 전에...

 

조금은 알겠다. 그에 대해서. 그는 10.26을 혁명이라 했지만, 그 자신도 바로 유신에 속한 사람이었음을 나중에는 알았겠지... 그것은 그가 벗어날 수 없는 멍에다. 그 멍에를 지고 그는 결행을 했다. 그 정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났는데...

 

하나는 삼국지가 생각났다. 삼국지.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남자라면 꼭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명쾌하다. 여기에는 의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관계. 주군이 시키는 일이면 목숨을 걸고도 해야 하는 사람들.

 

겨우 30분 전에 부하들에게 통보했다고 하는데도 부하들은 그를 따랐다. 삼국지에 나오는 그런 유형의 행동들이다.

 

또 하나 채만식의 "태평천하"의 마지막 장 이름... '망진자 호야(亡秦者 胡也)'란 말. 진나라를 망하게 할 존재는 오랑캐라고 그래서 만리장성을 그렇게 쌓았다고 하는데, 그 놈의 호(胡)가 바로 진시황의 아들 이름이었다니...

 

절대권력은 역시 내부로부터 붕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김재규가 진정한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의 내부에 들어가 대통령을 설득해서 개혁을 하려고 해서는 안되었다는 생각도 했다. 왜냐면 안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도 이미 권력의 일부가 되어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내부에 들어가 권력을 개혁하겠다는 사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을 읽은 지금... 내게는 10.26은 두 개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하나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 날짜를 이 책에서 자주 언급을 한다. 그러니 우리 역사에서 10.26은 두 개의 사건을 담고 있는 날짜다.

 

마치 9.11이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쿠테타로 붕괴시킨 날과 미국 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난 날이라는 두 개의 사건을 담고 있듯이.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가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것, 그리고 그것이 결코 사욕이 아니었음은 인정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지만...

 

역시, 역사라는 심판대에 4심을 맡겨야 할 듯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자료가 공개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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