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디자인
김상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좋은가? 착한 디자인. 디자인의 실용성을 넘어 착하기까지 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니...

 

한껏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다. 착한 디자인의 사례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떤 것이 있을까? 그런 디자인의 모습들이 사진으로 잘 제시되어 있겠지 그런 기대.

 

그 기대는 책을 펼치자마자 사라지고 말았는데... 착한 디자인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지만, 착한 디자인은 문제가 많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 디자인 사례가 하나도 없다. 무슨 사진 한 장도 없는 디자인 책이란 말인가. 이런 실망감. 게다가 다지인 책인데... 읽기가 편하지는 않다. 좀더 읽기 편하게 책을 디자인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읽다보니 왜 착한 디자인에 관해서 책을 쓰게 됐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착함'이란 말 속에 들어있는 구조의 공고화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의 겉모습을 보지 말고 디자인 속에 숨어 있는 작동 원리를 보라고 하는 이 책은, 정말로 착한 디자인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게 착한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를 디자이너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가 하는 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당신은 착한 디자인을 해야 해 하면 그것은 그를 디자이너로 대접해주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해줄 때 그 때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다. 디자이너의 존재를 인정받은 다음에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디자이너가 스스로 찾아야 할 일이지 외부에서 디자이너에게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디자이너 혼자의 힘으로, 또는 그의 디자인의 힘으로 세상이 한꺼번에 바뀌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다만 디자이너가 사회에 유용한 디자인을 할 수는 있다. 그런 디자인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

 

그런 중요한 일과 더불어 한 시민으로서 디자이너는 디자인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착하다는 틀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착함 너머에 있는, 착함을 강조함으로써 누가 이득을 보는지를 간파함으로써 디자이너는 디자인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런 디자인... 지금 우리도 착한 디자인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정말로 착한 디자인은 본질을 꿰뚫고 있는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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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사서 읽고 싶었던 시집.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때를 놓치고. 결국 나온 지 8년이 지나서야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시집.

 

이 시집이 나올 때 꼭 사서 봐야지 하게 하는 마음이 들게 했던 것은 시로 쓴 시론이라는 광고 문구였다.

 

시인이 시란 자고로 이래야 한다고 시로 썼다는데,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고, 많은 시인들이 시에 대하여 또 시인에 대하여 시로 썼지만, 시 가르치기에 대하여 시로 쓴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집을 구해 읽기는 쉽지 않은데...

 

헌책방에 갔는데... 이 시집에 눈에 딱 들어온 것.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있는가.

 

이것이 헌책방에 다니는 기쁨 중 하나 아니겠는가.

 

마음에 담아 놓았던 책들을 구할 수 있다는 기쁨. 그것도 싼 가격에. 한참을 잊고 지냈던 그 책들을 헌책방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고, 또 다른 사람의 손때가 묻은, 이미 다른 사람의 마음에 꽂혀 있던 책을 내가 만나게 된다는 것.

 

시집의 앞부분에 실린 시들보다 역시 내게 기대를 걸게 했던 시가 마음에 와닿았다. 목적을 달성한 셈.

 

한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만 발견해도 그 시집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집에서는 한 편을 넘어서 서너 편이 되니... 대만족이다.

 

그런 시 중에서 '기침이 난다' 이 시는 시를 가르치는 일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의 평가와 관련지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마음이 아픈, 그래서 기침을 할 수 있는, 무언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뱉어내야만 하는.

 

김수영은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고 했는데... 강희근은 기침이 난다고 했다. 기침이 난다. 내 몸 속에서 거부하는 몸짓이 자연스레 일어나고 있는 것.

 

우리는 이런 부조리한 평가를, 부조리한 교육을 온몸이 거부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깨달음이 교육의 변화로, 평가의 변화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시다. 그런 시집이다. 이 시집의 마지막 부분은 그래서 읽을 만하다. 국어교사들뿐만이 아니라, 교육에, 또 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기침이 난다

- 강희근

 

   내가 대학생일 때 비평가 J씨를 만났는데, 대뜸 “O대학 P교수가 시를 채점하는데, 아니 P시인이 시를 채점하는데 616263점 이렇게 하고 있어요. 시가 그렇게 채점이 되는 거예요? 그게 양심 있는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차라리 시인을 포기하든지……하고 말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때 사람을 감정으로 비판하는 것 빼고는 맞는 말씀이라고 맞장구 쳐 드리고 싶었지만 우리나라 중견 시인에 관한 일이라 머리만 긁어 어정쩡, 넘어갔다

   놀라운 것은 내가 지금 O대학 P교수, 그 시인처럼 시를 채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개발한 맛보기 이론이나 아침마다 졸작 생산에 목숨을 끌어 넣고 있는 일이나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내 시의 식구들을 생각해 보면 거기 616263점이 놓여질 수 있는 일인가 아, 이 시 채점의 모순, 줄 세우는 껄끄러움, 기침이 난다

   스스로의 잠자리 등 같은 무능, 기침이 난다 창작론’ ‘문학의 이해시간에 참새 입으로 줄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함께 시를 읊었던 저 사랑하는 무공해의 새순들, 그 머리 위에다 점수를 갖다 얹고, 교수라고 함부로 12점 차등을 주어 놓고, 제도 때문에, 제도가 이유야……하고 그냥 저냥 넘어온 그 확실한 직무유기, 기침이 난다

   태형 1천대 이상 기소 가능한 죄인 너 시인이냐, 대학생일 때 친구 조정래가 화가 나 내게 말했던 강희근이 너 시인이냐?”하고 다그쳤던 그 냄비 뚜껑 같던 말, …… …… 시인이냐 기침이 난다

(강희근, 기침이 난다. 한국문연. 2005.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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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의 힘 - 아이의 학력, 인성, 재능을 키워주는
박찬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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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핏 제목을 보면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떠오른다.

큰 것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외친 슈마허는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으로 작은 것을 추구했다.

 

이 책의 제목은 "작은 학교의 힘"이다.

무엇을 위한 힘인가? 아이들 성적을 올리기 위한 힘? 아니다.

바로 작은 학교의 힘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힘이다.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게 해주는 학교, 그것이 모든 학교의 목표이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불행해하고 있다.

 

학교에 다녀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인데, 정작 학교 생활을 불행하다고 여기는 상태. 학교가 자신의 존재이유를 배반하고 있는 현실이다.

 

글쓴이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다. 그는 작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작은 학교의 힘을 몸소 느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왜 작은 학교가 힘을 발휘하는지를 작은 학교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담고 글로 썼다.

 

큰 학교, 대도시의 학교를 추구하는 학부모들을 답답해 하면서, 정말로 아이들의 행복을 원한다면 아이들을 작은 학교에 보내라고 하고 있다.

 

작은 학교가 왜 좋은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또 자신이 찾고 연구한 바에 의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책의 1부는 행복하지 않은 학교 현실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이 갈등을 풀어가지 못하는 모습, 또 자그마한 일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피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미래 또한 밝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런 부정적인 학교의 모습, 아이들의 모습, 학부모의 모습, 그리고 이 속에서 나날이 무능해져가는 교사들의 모습은 정말로 우리 교육이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되나 하는 우려를 하게 만든다.

 

이런 우려 속에서 지은이는 작은 학교를 이야기한다. 작은 학교들의 기적을. 아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작은 학교라는 말은 학생수가 적다는 말도 있지만, 다른 말로 하면 적은 숫자로 인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한 학년, 한 학급에서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내는 대도시, 거대 학교의 학생들과는 달리, 이들은 서로를 모두 잘 알고, 교사들 또한 그 학교의 모든 학생들을 알고 지낸다는 얘기는,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에 대해 교사와 학부모가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관계에서 신뢰관계가 싹트고,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기존의 성적 위주의 교육을 뛰어넘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을 해나가기에 작은 학교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막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2부다. 작은 학교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그 속에서 교사들도 얼마나 행복해 하고 있는지, 또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 역시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를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가 있다면 작은 학교에 보내고 싶을 정도로.

 

3부는 2부를 토대로 작은 학교의 모습이 몇몇 학교에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학교로 전파될 수 있음을, 전파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경기도에서 먼저 시도되었던 혁신학교다. 그리고 혁신학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혁신지구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성공 사례가 있다는 것은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고, 이는 우리가 이러한 교육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글쓴이는 이렇게 작은 학교처럼 운영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갖춰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는 몰라도 중학교는 30명 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20명 선으로 줄인다면, 그리고 교사들의 자율권을 대폭 보장해준다면... 교육은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지니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작은 학교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를 이 책의 지은이는 '기다림'이라고 했다. 작은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을 기다리는데 큰 학교의 교사들보다 더 유리하다는 것. 그래서 작은 학교는 이런 기다림을 바탕으로 해서 행복 학교가 될 수 있었다는 것.

 

아이들이 행복하면 그 다음은... 정말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된다. 그것이 성적 향상 쪽이건 아니면 다른 족이건 말이다.

 

자, 이런 기다림을 이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어주면 90퍼센트는 도로 밑으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콩나물은 점점 자라난다. 교육도 그렇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별다른 변화 없이 지내는 것 같아도 교사나 학부모가 보내는 작은 신호들은 아이들에게 조금씩 영향을 끼친다. (205쪽)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부모들의 관심 속에서 무언가 계속 발전해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콩나물도 그런데,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 기다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야 할테고, 작은 학교들이 효율성은 떨어지고 돈만 많이 쓰게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작은 학교야 말로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꼭 필요한 학교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곧 다가오는 지방자치 선거. 각 시도교육감도 선출한다. 어떤 교육감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펼치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핀다면, 이 책에서 말한 '작은 학교의 힘'이 전체 우리나라 교육의 힘으로 전환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최소한 학급당 학생수를 20명으로, 아니 25명으로 하겠다는 교육감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 정도 학급 인원은 되어야 큰 학교에서도 작은 학교의 모습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미 교육 선진국에서는 다 하고 있는 일인데...

 

덧글

 

서울에서 교육혁신지구라고 해서 학급당 학생수를 25명으로 유지했던 몇몇 학교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특혜를 일부 학교에만 줄 수 없다고 하여 폐지했지만... 그것은 폐지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지역의 학교들도 25명 선으로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려고 해야 할 정책이었는데... 왜 교육정책이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두들 교육전문가라고 하는 이 나라에서, 아이들의 행복을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교육학자들이 득시글한 나라에서, 저마나 자신만이 우리나라 교육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육정책가들이 널려 있는 이 나라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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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교육 -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만남
이상오 지음 / 강현출판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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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제는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인데... 테크놀로지라고 하는 말을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과학기술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고 있다.

 

과학기술은 고도로 이성적인 능력일 것 같지만 사실 상상력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이 먼저냐 상상력이 먼저냐를 따지기 보다는 둘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면 더 좋을 듯하다.

 

하여 이 책의 1부에서는 테크놀로지의 발달사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역사와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 그러한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핀다.

 

그래서 얼핏 지루한 느낌을 준다. 마치 과학사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러한 과학기술들이 단지 이성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기에 과학과 상상력이 연결이 되는 지점을 찾을 수가 있다.

 

우리가 과학기술을 부정하려 해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상상력도 우리가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이러한 상상력의 도움으로 인간은 동물의 수준에서 지혜로운 동물로 상승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살핌으로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2부에서는 이제 상상력과 교육이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를 살피고, 3부에서 구체적인 상상력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상상력. 그것은 우리 인간을 한 단계 더 상승시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한때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 이성의 힘 밑에 놓여 경시된 적도 있었으나, 과학기술이 최고도로 발전하는 지금은 오히려 이러한 상상력이 이성의 힘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애플사를 이끈 스티브 잡스를 들고 있는데, 그는 과학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한 사람이고, 그러한 융합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하여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현실은?

 

지은이는 부정적이라고 한다. 대학 강단에 있는 사람으로서 대학교육에서조차도 융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의 부족함은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더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오로지 주입식 교육이 판치는 세상에서 말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주입식 교육은 전체주의 교육, 독재 교육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독일이 나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해서 나치식 교육을 철저히 분석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듯이, 우리도 일제의 교육유산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주입식 교육제도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있어야 했는데, 산업화에 밀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교육은 상상력이 확대되거나 발휘되는데 걸림돌로 작용을 하고, 지금 창조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이 시대에는 더욱 맞지 않는 교육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은 반성적 사고 능력을 키우는 방식이어야 하기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교육방식을 택해야 하고, 이것이 바로 상상력 교육이라고 한다.

 

상상력 교육은 우리 교육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보고, 즉 블루오션인 것이다. 블루오션은 존재하지 않았던 곳이 아니라, 아직 발견하지 않았던 곳이라고 한다면, 이제 우리 교육이 나아갈 길은 제시된 셈이다.

 

테크놀로지, 전혀 상상력과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테크놀로지는 결국 인간의 상상이 실현된 결과물이고, 이러한 결과물로 인간의 상상력은 더욱 풍부해진다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대상이 아니고, 상상력과 테크놀로지는 함께 가야 하는 융합의 대상인 것이다.

 

이렇게 융합된 교육을 하기 위해 정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입식 교육에서 하루바삐 벗어나는 일이다.

 

아이들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심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심심해서 무언가를 스스로 생각해 내게 해야 한다.

 

학교, 학원, 정말 바쁘게 돌아가는 이 시스템에서는 상상력이 작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상상력이 작동하는 아이는 이 제도에서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뒤떨어지는 사회는 더이상 발전할 수 없다.

 

상상력.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제도 안에서 온갖 실험을 해보고 실패도 해보게 해야 한다. 그래야 상상력이 살아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시험제도부터 고쳐야 한다.

 

아이들이 충분히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조건을 마련해주는 일. 그것이 바로 교육자들이 해야 할 일,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과학사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고, 또 뒷부분은 바슐라르의 이론을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미래 사회에 필요한 교육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상상력은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우리 교육에 펼쳐져 있는 블루오션이다. 우리는 그 길로 가야 한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은 참 많은 얘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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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곳. 다른 말로 하면 땅의 끝. 그리고 새로운 공간의 시작.

 

지평선에 서 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다른 곳을 바라본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곳으로 비약을 하기 위한 장소. 그곳이 바로 지평선이다.

 

'지평선에 서서'는 굳이 이렇게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서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지평선을 땅으로 해석해도 된다.

 

땅에 서 있다는 것은 곧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얘기다. 현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고, 이러한 공간 중에서 근원적인 공간으로 시인은 '밭'을 들고 있다.

 

'밭'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이자, 우리의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공간이고, 우리의 노동력으로 달라지는 공간이다.

 

이 시집은 "지평선에 서서"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밭시 연작이라고 봐도 된다. 1부가 밭시의 연작으로 되어 있고, 밭에서 시인은 온갖 생명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밭'

 

어느 사이 우리는 이 밭에서 얼마나 멀어졌던가. 텃밭이라고 하여 도시에서도 요즘은 밭을 일구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네 삶의 일부분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바로 '밭'이다.

 

'밭'과 멀어질수록 우리는 땅과 멀어지고 땅과 멀어질수록 척박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결국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땅이다.

 

그런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는 전망이 밝지 않다. 땅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살림'의 대상이다.

 

그래서 시인은 '밭'에서 시작한다. 밭은 이곳과 저곳을 가르는 공간이자 이어주는 공간이고, 삶의 종착점이자 출발점이다.

 

지금 온갖 추상적인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 말들 중에서 밭만큼 진실한 말이 어느 말인지 찾아야 한다.

 

살림의 말, 그 말은 바로 '밭의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밭'을 아는 사람, 그를 시인은 농부라고 한다. 그런 농부는 우리 시대의 성자다. 시를 보자.

 

무신론자

- 2000년 밭詩 20

 

그는 종교가 없다

그는 기독교도 불교도 모른다

마호메트를 아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먹는 무슨 과자냐?고

머리를 긁적, 오히려 묻는다

 

하지만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향하여서는 경배한다

 

물사마귀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그는 농부다.

 

김준태. 지평선에 서서. 문학과지성사. 1999년. 31쪽

 

이렇게 밭과 어울리는 사람. 그는 농부다. 성자다. 우리는 모두 농부다. 그런 농부들, 그런 사람들. 그 사람들을 시인은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누구든 세상의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귀하디 귀한 존재...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모두 하늘이다. 그 하늘과 같은 존재, 바로 밭이다. 그리고 밭에는 모든 것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밭이고 하늘이고 도서관이다.

 

사람의 몸을 노래함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무진장한 도서관이다

장서량이 수천만 권을 넘는

사람의 육신은 그리고 저마다

별빛을 머금어 반짝이는 영혼은

아무도 허물어뜨릴 수 없는

지상과 하늘 사이 불켜진 도서관이다

오오 읽어도 읽어도 바닥이 나지

않는 사람의 따스한 몸과 그의 눈물

너무나도 벅찬 기쁨과 숨결의 드높음!

혹은 깊음이여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어린아이에서부터 죽음을 앞둔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누구나

모두 수천만 권의

장서량을 내장한

도서관이다.

 

김준태, 지평선에 서서. 문학과지성사. 1999년.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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