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건축 도시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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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정기용 전집이다. 사실 순서가 바뀌었다. "서울이야기"가 2권이고, 이 책이 1권이라는데 서울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순서를 바꾸어 읽었다. 그런데 역시 전집은 순서를 정한 이유가 있다. 차라리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서울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훨씬 더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 책을 읽은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충격과 전율, 공포 그리고 희망"이라고 하겠다.

 

우선 충격이다. 이런 건축이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렇게 사람과 건축과 자연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건축이론을 지니고 또 실행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보아도 다 똑같은 건축물들 아니던가.

 

가령, 병원은 다 똑같은 모양이고, 조금만 큰 도시를 가면 거주지역은 모두 고층아파트이고, 교회들은 신도가 좀 생겼다 하면 거대화를 추구하고, 학교는 그야말로 말할 것도 없이 천편일률적이고, 관공서들의 모양새도 거의 같고...

 

그런데 이 같음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쳐도 여기서 같음이라는 말은 하나같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돌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독불장군. 그냥 자신만이 잘났다는 듯이 우뚝 서 있는 건물들, 그래서 건축이 사람과 자연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모습이 닮았다는 얘기다.

 

이런 파괴의 동일성에 대한 단조로움을 거부하고 사람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주장하고, 그런 건축을 무주에 실현시킨(이 책의 뒷부분에 약간 나온다. 그리고 더한 설명은 강내희 교수의 해설에서 잘 이야기되고 있다) 건축가, 강내희의 말에 의하면 '공간의 시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건축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 충격이 자연스레 전율로 나아간다. 우리도 이렇듯 자랑할 수 있는 건축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온몸이 짜릿해진다. 건축 후진국이 아니구나.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모두 토목만을 또는 정기용의 용어로 하면 건설만을 주장하지는 않았구나, 내가 너무 편협했구나! 하는 전율.

 

우리도 좋은 건축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기쁨. 정기용이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서양 건축을 모범으로 삼을 필요없이 우리나라 생활에서 함께 했던 건축들을 모범으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런 정기용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우리나라 건축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전율케 했다.

 

충분한 가능성. 지금의 난개발, 막개발에서 사람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는, 그런 건축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그것을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 전집 출간을 책임진 홍성태는 이 책의 뒷부분에서 정기용을 '감응의 건축가''사회적 건축가'라고 부른다. 건축이 건축으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와 어울릴 때 비로소 건축이 될 수 있음을 정기용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기에 이런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리라.

 

이럼에도 충격과 전율이 곧 공포로 바뀌고 말았는데... 읽다가 기분 좋게 그렇지, 건축은 이래야 하지, 우리도 충분히 이런 건축을 할 수 있어 하다가, 용산 참사, 4대강 사업, 밀양 송전탑 등등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비무장지대를 개발지대로 바꿀지도 모른다고 정기용은 걱정을 했는데, 제발 비무장지대는 그냥 놓아두라고, 그냥 놓아두는 것이 가장 좋은 기념비라고 역설하고 있는데, 현실은 그냥 놓아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가 이 책에서 대학들이 얼마나 건축적으로 못된 짓을 하는지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 실정이니, 건축과가 있는 대학조차도 그런데 다른 곳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니 공포심이 밀려올 수밖에.

 

그러나 이런 공포는 극복되어야 한다. 막개발에 대한 사회적 반대가 공감을 얻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우리 사회도 어느 정도 사람을 생각하는 건축, 자연과 함께 하는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공감대 형성에 정기용이 기여한 바가 많으리라. 그가 무주에서 한 프로젝트는 사람도 자연도 건축도 놓치지 않은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러한 전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본받게 할 테니 말이다.

 

하여 그는 말한다. 건축은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니, 건축은 예전의 것 위에서 그 시대에 맞게, 그 사회에 맞게, 그 사람들에 맞게 차이를 변주해내야 하는 것일테다.

 

그렇다. 건축은 문이다. 문은 안과 밖을 나눈다. 경계를 보여주지만 문은 닫혀 있지만은 않는다. 문은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문은 사적은 공간과 공적인 공간, 인간의 공간과 자연의 공간을 구획지어주지만 또한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막바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박자 쉬고 연결하게 하는 역할, 그것이 문이다. 그렇다면 건축은 바로 사람들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나누는 역할을 하지만, 또한 사람들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연결짓는 역할도 한다. 마치 문이 하는 역할처럼.

 

하여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 인간의 공간과 자연의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게 할 수 있는 작업, 그것이 바로 건축이 된다. 바로 이런 건축이 존재하는 장소, 그곳이 바로 도시여야 한다고 정기용은 주장하고, 자신이 바로 이런 건축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는 '공간의 시인이자 감응의 건축가이고 사회적 건축가'이다.

 

이 책 어느 내용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마음에 와닿고, 우리 현실을 생각하게 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정기용도 지적하고 있듯이 건축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건축가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에서 건축을 통해서 바뀐 세상을 미리 보여줄 수는 있다.

 

우리도 건축가와 마찬가지다. 우리 개개인이 한 방에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자가가 서 있는 자리에서 미래에 이래야 하는 모습을 미리 구현하고 있다면 물방울 하나하나가 언젠가는 바위를 뚫듯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그런 희망을 품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마지막으로 지닌 감정은 희망이다. 충격과 전율, 공포를 지나 이제는 희망으로... 이런 것을 보여준 정기용, 정말 고마운 건축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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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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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다.

오랜만에 정말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읽은 책이다.

소설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소설보다도 더 긴박하고 박진감이 넘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소설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소설을 단지 그런 이유로만 읽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과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는 책이 있다고 한다면, 요즘 소설은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졌었다. 소설을 읽지 않으려 했던 이유 가운데 이것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소설은 읽어갈수록 마음이 따뜻해졌으니...

 

소설이 아직도 현실에 유용하고, 역시 소설은 읽어야지만 판단할 수가 있고, 또 그런 점에서 소설이 아직도 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지도 않고 미리 편견을 가지고 요즘 소설은 다 이래 하고 재단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하게 만든 소설이고, 세상이 험악할수록 그런 험악한 세상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소설도 필요하지만 험악한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도 필요함을 새삼 느끼게 만든 소설이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말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물과 같을진대, 도대체 요즘은 들리는 소리나 보이는 장면이 모두 마음의 파장을 깨뜨리는 것들이니, 소설이 문제적 세상에 문제적 인물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근대적 소설의 정의 말고도, 소설은 어지러운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소설을 통해서까지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면서 마음이 깨져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소설을 통해서라도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바로 지금 이 시대에 딱 알맞는 소설이다. 판타지와 현실이 적절하게 결합되었고, 각 단편을 읽는 느낌을 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어가면 '나미야 잡화점'을 중심으로 모두가 연결이 된다. 그리고 이 '나미야 잡화점'은 보호시설인 '환광원'과 연결이 되고. 일종의 연작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냥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좋다.

 

각 단편의 제목마다 다 다른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인물들은 모두 '나미야 잡화점'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이런 고민들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각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고민이 해결되는데에 따라 눈물샘이 자극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자극하는 눈물샘이 비통한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따스한 마음 때문에 눈물이 흐른다. 눈물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음이 정화된다. 비극적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기쁨의 카타르시스다.

 

물론 소설에서는 극단적인 문제 해결방법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선택이 소설에서나 이루어지는 비현실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지경에 이르자 야반도주를 하다 자식이 사라진 걸 보고 자살한 부모이야기라든지, 사랑하는 사람과 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라든지,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 하는 고민, 정말로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등등 참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제시되어 있다.

 

이 고민들에 대해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은 친절하게 성심을 다해 상담을 해준다.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 고심을 하기도 하고. 또한 이런 상담을 받은 사람들 역시 자신의 고민에 대해 진지하고도 철저하게 생각을 하고 결국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게 된다.

 

결론은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행복한 결말이 나게 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 어려움, 그것을 비껴 달아나려 하지 않고 그것에 맞설 때 비로소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는데...

 

이렇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성심껏 대답해주는 사람, 비록 그 답이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들어주고 이야기해주었다는 데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미 문제의 반을 해결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문제를 바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드는 힘은 바로 조용히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서 나온다. 그 역할을 '나미야 백화점' 주인이 해냈다.

 

이렇게만 되면 이 소설은 판에 박힌 소설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너를 지지해주는 상담자가 있어, 너는 문제를 회피해서는 안돼. 그 문제를 똑바로 보고 해결하려고 노력해 봐. 그러면 문제가 해결돼 있는 걸 보게 될 거야. 는 식의 도덕적 설교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이런 도덕적 설교와 다르다. 지당한 말씀은 어떨 때는 잔소리에 불과해진다. 잔소리가 아닌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깨달음을 갖게 만드는 힘, 그것은 바로 소설의 구성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 장치로 판타지의 요소를 적용했다. 다른 집의 물건을 훔치고 달아나는 젊은이 셋. 이들에 대해서는 어떤지 나오지 않는다. 다만 한 친구는 리더고, 다른 한 친구는 좀 모자라는 친구. 그리고 가운데 한 명. 이렇게 모두 좀도둑에 불과한 세 명의 젊은이가 피난처로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셋이 이상한 편지를 받고... 여기에 대해 자신들이 상담을 해주는 과정에서 이들 역시 자신들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문제자가 해결자가 되는 순간. 그래서 이 작품은 처음에 왜 이들이 이토록 도망치고 있는지, 이들이 왜 도둑질을 했는지를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다. 이 마지막에 모든 것이 하나로 꿰어지고... 재미와 감동은 더욱 늘어난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설교와는 다른 소설 구성의 힘이다. 소설을 읽는, 또는 소설을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 이 작품은 읽는 자체로 치유가 되는 독서치료의 좋은 자료가 된다. 재미도 추구하면서 무언가를 깨달아 자신의 삶의 한 방편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읽기은 후 벅찬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다. 잠시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며 자연을 보고 오는 것도 좋다. 마음이 더욱 충만해지게. 이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그것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도 사회 곳곳에서 이런 일들을 만나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그런 마음들. 이 소설을 통해서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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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벽 -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이청준 지음, 이관수 그림, 방민호 논술, 조남현 감수 / 휴이넘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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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을 가장해 우리에게 다가올 뿐이다.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 때부터는 소문이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그래서 소문은 무섭다. 진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여기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문이 벽을 쌓으면 진실은 소문에 가려져 나올 수가 없게 된다. 올바른 진술들은 소문 속에 묻혀 버리고, 진술은 소문의 벽을 넘을 수 없게 된다.

 

소문의 벽을 넘지 못한 진술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응어리가 된다. 한이 된다. 그래서 진술을 하지 못한 사람... 그는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소문에 휩싸여 자신도 또 하나의 소문이 되어 소문의 벽을 더욱 단단하게 쌓아주는 역할을 하던지.

 

이런 소문을 제목으로 삼은 이 이청준의 소설은 읽을 만하다. 재미있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도 한다. 내가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서 좋아하는 작가인 최인훈과 더불어 한 때 이청준의 소설을 무작정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의 전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꽤 읽었는데...

 

이 작품 "소문의 벽"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요즘에 신문에서도 가끔 인용이 되곤 해서 다시 읽어보게 된 작품이다. 읽으면서 아무리 기억이 나빠졌다고 해도 몇 장을 읽으면 이 작품은 읽은 작품이다 아니다를 판명할 수 있으니, 이 작품은 읽지 않은 작품이 확실하다. 그냥 어디선가 줄거리를 보았든지, 아니면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논술과 연결지어 이 작품을 출판한 이 책은 작품을 읽는 재미와 그 작품에 대한 간략한 해설로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있으며 논술 활동도 곁들여서 나름대로 학생들에게는 유익한 편제를 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문의 벽" 이 작품을 지금 읽은 이유는 단 하나. 소문 때문이다. 소문을 조금 안 좋은 감정이 담겨 있는 용어로 바꾸면 유언비어인데... 지금 이 참혹한 시기에 정부에서는 연일 유언비어를 배포한 자는 엄벌에 처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유언비어란 것이, 소문이라는 것이 진술로 대표되는 진실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할 때 지금 이 시기에 여러 유언비어들이 퍼지고 있다는 얘기는 무언가가 있는데, 분명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유언비어 유포를 엄벌에 처한다고 하면 그것은 네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라는 얘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소문을 조장하여 올바르지 않은 소문의 벽을 쌓아 진실이 이야기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소문은 나돌대로 나돌아 검증이 되면 어떤 소문은 사실로, 어떤 소문은 허황된 말로 판명이 된다. 그렇게 놓아두어야 소문의 벽을 쌓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것을 중심으로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등장인물인 박준이 주인공이 다니는 잡지사에 투고한 소설 작품. 또 하나는 박준이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의 글. 마지막으로는 박준이 마지막으로 쓴 장편소설.

 

이 세 진술은 서로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들이 박준이라는 사람, 거짓으로 미친 척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인물인 그를 이야기해주는 열쇠가 된다. 그리고 이 열쇠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나는 자신의 진실을 발견한다.

 

그는 작가란 정체가 보이지 않는 불빛의 공포를 견디면서도 끝끝내 자기의 진술을 계속해 나가여 하는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이라고 했다. (147쪽)

 

이 구절은 박준이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작가란 결국 진실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이 말. 이것은 이 소설이 1971년에 발표가 되었으니 바로 그 시대의 현실에서 작가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간접적으로 나타낸 말이라고 하겠다.

 

즉, 이 구절은 박준의 말을 빌리고 있지만 실제로 작가인 이청준이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점점 독재가 심해지고 있던 시절, 유신을 앞두고 있던 시절, 그리고 언론이, 말들이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던 시절, 그 시절에 작가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침묵했던 작가들, 그들은 이 소설의 박준처럼 미치거나 아니면 아예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남의 말만을 따라해야 하는 앵무새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작품을 투고해도 발표가 되지 않는 현실에서 박준은 미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정신병원에 스스로 갔다고 표현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정말로 미치지 않았다면 미친 척이라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준은 자신의 장편에서 이런 표현을 한다. 한 밤중에 사람들이 쳐들어온다. 그들은 불빛을 비추면서 어느 쪽인지를 선택하게 한다. 자신들은 불빛의 뒤에 있어 보이지 않으면서 보이는 그들에게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선택하게 한다. 한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가른다. 그런데 선택할 수 있는 판단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대답을 강요당하는 현실.

 

6·25때 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6·25에 국한되지 않는다. 박준이 병원을 탈출하는 것처럼 그에게는 병원의 의사도 바로 이런 전등의 뒤에 숨어서 자신에게 진술을 강요하는 사람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사회에도 적용이 된다. 자신들은 보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선택하게 하는 것. 그 선택에 운명을 걸게 하는 것. 그런 사회.. 진실이 가려진 사회다. 이런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전등의 뒤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소문이다. 이 소문이 벽을 쌓고 사람들에게 다른 쪽을 알지 못하게 한다. 다른 쪽을 보는 사람을, 다른 쪽에 관심을 두는 사람을 배제하려고 한다.

 

이 소문의 벽을 깨는 것은 자신의 전존재를 걸고 진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몫은 바로 작가의 몫이다. 그런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 소문의 벽이 높지 않은가. 우리 역시 아직도 이런 소문의 벽 뒤에서 우리에게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강요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참혹한 시기... 소문이 소문을 낳고 있는데... 이런 소문의 벽을 없애는 방법은 또 다른 소문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진술(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진실은 가둘 수 없기에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소문의 벽을 허물어뜨려야 한다. 그래야 박준처럼 미치지 않고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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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또 다른 영토가 있다 - 대안의 영토를 찾아가는 한국의 사회 혁신가들
송화준.한솔 엮음, 김종휘 외 인터뷰 / 알렙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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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남들과 같은 생활을 하려고 하면 치열한 경쟁을 통해야 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더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그것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생활은 고사하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 자본주의 사회니 자본의 논리를 추구하더라도 청년들의 일자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고령화 사회 또는 고령 사회로 진입이 되면 일자리는 없지만 연금은 수령하는 고령층의 비율이 엄청 높아진다.

 

이런 고령층을 부양하기 위해서도 청년들이 일자리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이에 따라 고령층들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그러므로 청년들의 일자리는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데 그 일자리가 무엇인가? 남들이 모두 원하는 직업인가?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직업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직업을 택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아 고생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으니,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과 사회적으로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일이 나를 살아 있게 하기도 하고 나를 표현하기도 하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일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나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일치하는 일을 하는 것이리라.

 

이 책에서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일치시키려는 모습을 일에서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을 다루고 있다.

 

17명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자신의 일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임을 확신하고 있으며, 그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17그루의 나무라고 하는데, 이 나무들이 튼실하게 자라 숲을 이루면 그만큼 우리 사회는 풍요로운 사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모두 돈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돈을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본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최소한의 자본에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보다 더해서 이들은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는 사람들, 이 행복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임에 더욱 행복해 하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쉬운 말로 사회적 기업가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일을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로 하는데...

 

이런 사회적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이 하는 일만 해도 17개의 일인데, 이 일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일이기 때문에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다른 많은 일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도 이런 사회적 기업, 즉 나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일치하고 더하여 자신이 행복해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청년들이라는 것. 청년기에 다른 길을 돌아서 결국 이 자리로 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청년 실업의 시대에 청년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가 있다.

 

또 이들은 이야기한다. 자신들을 무작정 따라하지 말라고. 이들은 이들의 길이 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길이 있음을. 그 길은 자신 스스로 걸어갈 수밖에 없음을. 이들은 단지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청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꼭 돈만을 추구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돈은 정말로 필요한 순간 나에게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하나뿐인 내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내가 행복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 일이 사회적 가치와 맞는지 살펴본 후 거기에 몰두해보는 일이다.

 

이것저것 재는 생각만 하는 바보로 남지 말고 청년기에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그런 실천가가 되어야 한다.

 

이런 태도로 지냈으면 좋겠다.

 

이 책에 나온 사례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다. 소위 말하는 88만원 세대들... 길이 여기 있다. 보지만 말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 보라.

 

덧글

 

단, 청년들이 이렇게 시도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적어도 청년들이 실천하다가 안되었을 경우에도 이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 우리는 다시 기본소득을 고민해야 한다.

 

기본소득... 예산 타령을 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 생각으로 기본소득에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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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 - ‘여성스러운 소녀’ 문화의 최전선에서 날아온 긴급보고서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김현정 옮김 / 에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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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미있다.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니...

 

얼핏 신데렐라로 대변되는 여성 이야기가 여성을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성에 머무르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 책은 이런 이야기보다는 문화에 중심을 두고 전개되고 있다. 신데렐라도 이야기가 아니라 이를 캐릭터로 만들어 아이들이 그를 따라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고, 방송에서는 어린이를 내세워 그들의 모습을 따라하게 하고 있으며, 각종 어린이 미인대회를 개최하여 여성으로서 꾸미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게 한다.

 

아주 많은 예들이 나오고 있으며, 그런 예를 읽는 재미도 쏠쏠한데... 저자는 자신의 아이는 그런 공주풍의 여성으로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핑크'에 대한 반대를 하고, 공주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여주길 꺼려하며 자신의 아이가 그러한 장난감이나 인형을 갖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

 

평소에 공주풍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온 작가가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의 주장을 그대로 실현시키려고 하는 모습은 당연한데, 그게 녹록치 않음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집에서 철저하게 교육을 하고 금지를 하더라도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문화가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남녀의 차이를 교육받고 체화된 아이들이 그것을 모르는 아이와 거부하려는 아이를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여성성, 남성성은 없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여성성, 남성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것이 그냥 차이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그러한 차이가 있음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이 책에서는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 쪽 성에 국한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성에 앞서서 온전한 인간으로 먼저 살아가는 법을 아이들이 익히게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생물학적인 성보다는 사회학적인 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또 사회학적인 성은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 그런 방법을 어린 시절부터 익히게 하는 것. 그것을 중심으로 나는 읽었는데...

 

그리고 우리나라 상황과 연결지어 성형열풍, 이것은 결국 잘못된 성역할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남자들에게도 성형열풍이 불어닥치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단지 성역할의 고정이 아니라 사회에서 자신이 살아남는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형에 관한 이야기는 성차를 확대하는 방향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돌로 대표되는 연예인 문화는 이 책에 나오는 나이와 우리나라 아이돌과는 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면 우리나라도 점점 나이가 어려지고 있으니... 여자들에 대한 성적 환상을 아이돌이라는 문화로 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는 남성 아이돌 문화도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아이돌 문화가 남녀의 성역할을 고정시키고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스런 소녀', '남성스런 소년'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차이를 지니고 태어난 '인간'임을 먼저 명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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