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상처 - 학습 부진의 심리학 : 배움의 본능 되살리기, 개정판
김현수 지음 / 에듀니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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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누구나를 막론하고 공부에 대한 상처가 있다.

 

잘하는 아이는 잘하는 아이 대로, 못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 대로 제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오죽하면 학업성취는 높으나 학업에 대한 만족도는 낮은 상태를 유지하겠는가. 그런데도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울타리에 가둬놓고 옴짝달짝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적어도 스스로 교육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최소한 12년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래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조금 낫다. 이들은 인정이라도 받고 지내니 말이다. 이와 반대로 공부 못하는 아이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이다.

 

여기저기서 야단이나 맞고 잔소리나 듣고, 어떤 말을 해도 핑계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고, 이들은 그래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닌, 안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

 

속으로는 자신이 없으면서도, 공부를 하고 싶으면서도 드러난 성적에 대해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일부러 "공부 안 해!", "공부 왜 해?"라고 하면서 멀리 달아나려 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 대해서 그렇게 파악하고 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공부 못하기를 바라는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되고, 공부를 해도 해도 이상하게 제자리 걸음을 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은 아이들이 많지 않은가.

 

또 출발선부터 다른 아이들이 많지 않은가. 이 책 207쪽을 보면 가정 환경에 의해서 공부에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가정에서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학습에서 어떻게 돌봄을 받겠는가. 이들은 지능을 떠나서 이미 환경에서 불평등을 경험하고 학교에 오게 된다.

 

학교는 이러한 불평등을 고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학교 교육과정에 있는 내용들 역시 어느 정도 경제적 우위에 있는 가정에 속해 있는 아이들에게 유리하지 않은가.

 

이런 점을 두루 살피면 공부 상처가 있는 아이들의 가정 환경은 우선 좋지 않다. 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학습에서 뒤떨어지게 된다. 한 번 뒤떨어진 학습 능력을 있는 집 아이들은 어떻게든 만회할 수가 있는데, 없는 집 아이들은 만회할 방법이 없다.

 

이들은 계속 학습 부진의 상태를 쌓아간다. 점점 더 쌓여가는 학습 부진. 그런 학습 부진이 이 아이들에게는 상처로 남아 더 이상 공부의 세계에 다가가지 않으려 한다. 도대체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여기에 학교에서는 이러한 아이들에게 제대로 학습 부진에서 탈출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정해진 교과 시간, 교과 시험, 많은 학생들, 부족한 시간 등등이 이 아이들이 제자리 걸음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이 점에서 아이들에게가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부 상처를 지닌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쓴 책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당연한 이야기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공부 상처를 준 것이니, 우리는 다시 당연한 방법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떨 때는 답이 가까운 데 있고, 너무도 상식적인 것에 있을 때도 많은데, 아마도 공부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공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없으니, 아이의 특성에 맞게 기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왜 공부를 하지 않으려 하는가 부터 파악을 하고, 아이의 성향이 어떤가 알아간 다음에, 아이에게 작은 성취를 느낄 수 있도록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선정하게 해서 그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고, 그 다음에 이어서 계속 공부를 해나갈 수 있도록 해나가는 것.

 

무엇보다 아이와 신뢰관계를 쌓아야 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 이것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런 기본을 지키는 것. 그것이 아이들이 공부로부터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일일텐데, 더 나아가서는 공부가 성적과 다르다는 점, 지금은 성적이 좋지 않을지 몰라도, 무언가를 끝까지 해냈다는 것 자체가 큰 공부라는 점을 아이들이 알게 해주는 일,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상처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그 상처를 치유할 사람들은 결국 상처를 준 어른들이지 않을까? 결자해지라고, 묶은 자들이 풀어야 한다.

 

해결책은 아이들이 지니고 있지 않다. 어른들이 쥐고 있다. 그 어른들이 외면하고 있을수록 아이들의 공부상처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이 책은 학교에서 학습과 관련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는 공부상처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방법과 더불어, 정말로 성적과 공부를 혼동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우리 어른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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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세상 - 스물두 명의 화가와 스물두 개의 추억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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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림에 대한 책을 펴낸다.

 

전문가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이 그 분야에 대한 책을 내면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미심쩍어 한다.

 

특히 그림 같은 분야에는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세계에 대해서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과 거리가 먼 사람들의 이야기는 뭘 모르고 하는 소리로 치부되기도 쉽다.

 

하지만 그림이 과연 전문가들만의 영역일까? 그림이 화가들이나 비평가들만의 영역이라면 도대체 왜 그림이 사고 팔리겠는가.

 

그림을 사는 사람은 일반인이고, 그들은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자기 소유로 할 뿐이다.

 

그냥 자기 소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늘 볼 수 있는 곳에 두고 눈길 갈 때마다 보고, 생각하고, 느끼곤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림이다.

 

그러니 내가 내 마음에 울림을 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미술 교육을 받았느냐 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는 그림을 즐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즐기는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에 대한 용기를 낸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소위 전문가들이 말하는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울림을 준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림에 대해서 나만의 감상법을 갖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자연스레 나만의 감상법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나란 사람 밖에 있지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내 안에 있게 된다. 그림과 나의 경계가 없어지는 순간, 내 마음은 어떤 울림에 감동을 받는다.

 

이럴 때 그림은 나에게 세상이 된다. 나는 나대로 그림 비평가가 된다. 물아일체란 말이 이럴 때 쓸 수 있는 말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제목은 '그림 같은 세상'이고 스물 두 명의 화가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밖에 있던 화가들은 작가의 마음에 들어와 작가의 안에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화가들이 산 세상과 그들이 그 세상을 그림 안으로 불러들인 세상이 다시 글을 쓰는 사람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런 세상이 이 책을 읽는 나에게 들어와 내 세상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장을 나누어 화가와 그림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순환하고 있는 세상이고, 이런 세상에서 내 마음에 들어온 이야기들이 많은데, 이번에는 그림으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그림에 얽힌 삶의 이야기로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래, 그림에 대해 누가 뭐라하건 내 눈으로 보는 그림은 내 맘이 받아들이고, 내 맘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내 맘의 이야기와 그림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게 된다.

그게 바로 그림이다. 이 책은 그 점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아마도 이 책에 나오는 그림들은 화가들에 비해 덜 알려진 그림일테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화가의 대표작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 마음을 흔든 그림들 이야기니 말이다. 이게 이 책의 좋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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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없는 사회 - 카페에서 만난 어느 아나키스트와의 대화
에리코 말라테스타 지음, 하승우 옮김 / 포도밭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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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말라테스타는 파리코뮌과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시대를 살았던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168쪽)라는 말로 말라테스타를 설명하고 있다.

 

낯선 인물, 아나키스트 하면 크로포트킨이나 바쿠닌을 떠올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스페인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두루티, 그리고 미국의 촘스키, 또 여성으로는 엠마 골드만 정도를 떠올리던지, 아니면 톨스토이까지를 생각해 내는 사람, 우리나라에서 박열이나 신채호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말라테스타라는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말라테스타라는 인물은 생소했다. 게다가 그가 이탈리아 사람이고 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을 했으니 낯설 수밖에... 나에게 이탈리아의 사상가는 '그람시'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가 아나키스트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사상과 행동의 일치, 감정과 이성의 균형, 설교와 실천의 일치, 완고한 투쟁 에너지와 인간의 선함을 결합시키고 우아한 상냥함과 매우 엄격한 완고함을 함께 가진 사람이었다'(162쪽)는 평가를 받는다는 옮긴이 후기를 읽고 말라테스타라는 인물에 의해 아나키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 아나키즘 쪽에 많은 관심이 갔지만, 아나키즘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는 사실 의문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의문이 가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에는 몇 가지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물론 그 답은 말라테스타가 살았던 당시의 해결책이겠지만, 지금에도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제법 있고, 또 그의 생각을 현재에 맞게 변용해서 적용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라는 생각도 든다.

 

카페에서 하는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질문과 대답, 반박, 재반박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내용을 파악하는데 어렵지가 않다. 적어도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알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이루어진 17번의 대화. 이것은 주제가 17개라는 얘기고, 17개의 문제를 가지고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대책을 제시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17개의 주제를 보자. 지금도 유효한 주제들이 꽤 있는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 지금 현실과 비교해 보면 좋을 듯하다.

 

사회의 악은 왜 생기나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우리는 왜 가난한가                        가진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소유란 무엇인가                            누가 소유를 독점하나 

자유로운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정부가 인민을 대변할 수 있나  

자유로운 결사란 무엇인가                가족은 자유로운가    

범죄자의 자유도 존중되나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인민의 의지가 대변될 수 있나            정부 없이 혁명이 가능한가       

경찰은 왜 폭력적인가                      애국심은 왜 보수적인가        

누가 평화로운 변화를 가로막는가

 

지금 토론해도 좋을 주제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찬찬히 이 책을 읽어보자. 도대체 이 책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적어도 아나키즘이라는 것이 어떤 사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나키즘의 입문서로써 이 책이 참으로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읽기에 편하고, 분량도 적당하고, 또 주제별로 나뉘어 있어서 그러한 주제에 아나키즘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아나키즘. 무모한 공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무정부주의가 아닌, 반강권주의로 번역하자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의 자율, 자치, 협동을 세 덕목으로 삼고, 그러한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자치를 이룬 집단들이 연대해서 사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니, 꼭 공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가 먼저 읽은 박홍규의 인디언의 민주적 아니키즘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었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아나키즘은 단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사상가들의 말들도 다 아나키즘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가 말했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도 세상에 나만큼 귀한 존재가 없다는 말은 나만큼 너도 유일한 존재라는 뜻이니 서로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말이고, 공자가 말한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라고 하지 마라는 말 또한 내 자유와 남의 자유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고, 노자의 소국과민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아나키 사회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예수가 말하고 있는 사랑의 나라 역시 아니키 사회 아니겠는가.

 

그러니 사실 아나키즘은 근대에 나온 사상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상인데, 이를 현대에 실현하기 위해서 현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사상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이러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어떤 권위에 자신의 권리를 내주지 않고 스스로 자치를 행한다는 주장에서 아나키즘이 꼭 필요한 사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 옮긴이가 끝부분에서 제기한 질문... 정말 아나키즘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문은 이 책에 나와 있는 여러 주제들과도 통한다. 지금 우리는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심각하게 던져야 할 때에 처해 있으니 이 책을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아나키즘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것이 실현되는가 마는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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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명화 역사가 기억하는 시리즈
우지에 엮음, 남은성 옮김 / 꾸벅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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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억하는 100대 명화란다. 당대에도 인기가 있고, 역사가 흘러도 기억이 되는 그림이 있고, 당대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기를 얻는 그림이 있다.

 

그런 그림들을 통틀어 역사를 통하여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또는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어야 할 그림들 100개를 선정해 화가데 대한 설명과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하고 있다. 더불어 그 화가의 다른 그림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100대 명화라고 하지만 더 많은 명화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어쩌면 그림을 통해 또는 화가를 통해 서양미술사를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꼭 시대별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시대별로 구성되어 있고, 시대에 따라서 변하는 미술사조들에 대해서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서양미술사를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서양미술의 흐름은 대략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신화나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던 것부터 빛을 그림에 들여오는 시대, 그리고 이제는 형태를 떠나 추상의 세계에, 대중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는 그런 흐름을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많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니 명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읽으면 서양에서 명화라고 하는 작품들이 이런 것이구나 알 수 있게 된다.

 

미술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다보니 자주 보게 되는 그림들이 있다. 그런 그림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물론 그림을 직접 원본으로 보아야 더 맛을 느끼고 그림에 빠지게 되겠지만, 이런 책들을 통하여 자꾸 눈에 익다보면 그림과 더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조금은 그림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런 자만심이 들 때 뉴턴의 '나는 진리라는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이나 줍는 어린아이'라고 했다던 유명한 말이 떠오르니...

 

뉴턴같은 과학자도 자신을 진리의 바다에는 발도 담가보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겨우 조개껍데기나 줍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림책 몇 권 읽었다고 미술을 알겠다느니 하는 어리석은 소리는 하지 않겠다.

 

그래도 미술이라는 세계에 발을 적셨다는 것이 미술을 친숙하게 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이 다르지만, 자꾸 보아야 알게 되지 않겠는가. 반대로 알고 싶은 욕구가 보게 만들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그동안 읽었던, 또 보았던 그림책들을 엉성하게나마 한 줄로 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도판이 크지 않아서 그림을 자세히 보면서 마음을 울리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몇 번 보았던 그림들을 보며, 맞아 이 그림이 이랬었지 하거나, 처음 보는 그림들을 보면서 이 그림은 이런 의미가 있구나, 이렇게 감상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명화인데... 서양화만 있고, 서양화가만 있지 동양화는 전혀 없다는 것이 아쉽다.

 

예전에 세계사를 서양사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서양미술사를 세계미술사로 착각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그게 걱정이다.

 

책의 뒤를 보면 이 책을 편저한 사람도 중국인이라고 추측이 되던데... 동양의 그림을 적절히 배치했으면 명실공히 세계 100대 명화라는 제목이 아쉽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덧글

 

편저자에 대한 설명이나 이 책을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머리말, 옮기며 등이 없어서 그것도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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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 인디언에게 배우는 자유, 자치, 자연의 정치
박홍규 지음 / 홍성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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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놀랍고, 이럴 수가! 하는 생각이 들고, 설마? 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지... 수긍도 하다가,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야, 하다가, 아냐, 내가 모르는 사실이 있어, 하면서도, 그래도? 뭔가 미심쩍어 하면서 읽었는데...

 

민주주의의 원형을 우리는 흔히 고대 그리스에서 찾았는데, 이 책에서 박홍규는 민주주의의 원형은 인디언 사회에 있다고 한다.

 

인디언들이 아시아 대륙에서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많고, 그들의 피부색과 우리들의 피부색이 비슷해서 우리는 어쩌면 같은 종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도 수긍을 하지만, 서양의 민주주의, 특히 미국의 민주주의가 영국이나 유럽의 민주주의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인디언에게서 배운 것이라니...

 

이렇게 파격적인 주장을 할 수가 있나,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생각으로 읽어 갔다. 인디언들에 대해서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그들에 대한 생각이 완성되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렇게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그들에게서 연원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아서 흥미도 있었지만 반신반의 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읽어가면서 책 내용에 점점 더 빠져들어가게 된다.

 

법학자답게 근거를 들어서, 특히 사회계약이라든지 법률 쪽에서 논리적으로 잘 설명을 하고 있어서 읽다 보면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어가면서 기존 지식이 무장해제된다. 기존에 내가 지니고 있던 생각이 서양의 교육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이래서 교육은 중요하다.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하여 지도자라고 하여도 개인의 자유를 침범할 수 없으며, 지도자이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이나 권력을 축적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사회였고, 그래서 그들은 작은 집단끼리 자치적인 삶을 살았으며, 이러한 자치를 바탕으로 하여 서로 연합하는 연맹체의 제도를 마련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지리상의 발견이라고 하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은 사실은 침략에 다름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으며, 이들의 침략으로 몇 천 년 동안 이어져 오던 자유롭게 자치했던 인디언 사회가 멸망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한 번은 들어보았던 이름, 라스카사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줘 같은 서양인이지만 인디언을 대하는 태도가 콜럼버스와 라스카사스가 어떻게 다른지, 우리는 이방인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이 라스카사스는 영화 '미션'의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주인공과 신부 둘 다 합친)

 

이들이 이렇게 자유와 자치를 중심으로 자연과 함께 하는, 그렇다고 자연에 매몰된 삶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 그리고 남녀 평등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유럽의 법률에도 인디언 사회의 제도가 많이 반영이 되었다고 법률적 조항들을 예로 들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인디언 사회에서 이루어졌던 자유ㅡ자치의 모습인 '호데소노니 연방회의'는 가장 적절한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미국의 연방 헌법이 이 '호데소노니 연방회의' 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저자는 미국의 헌법 학자들은 이를 믿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는 페인, 제퍼슨, 프랭클린의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가고 있다.

 

미국의 연방 헌법이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보다는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방향이 중요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오는 인디언들의 '호데소노니 연방 회의'는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미국의 초기 학자들, 정치가들이 인디언들과도 잦은 접촉을 했을테니, 이를 몰랐을 리 없고, 영국으로부터 독림하여 자신들의 헌법을 만들 때 참조했을 가능성은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과거의 영향력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 하는 것보다 지금, 우리는 여기에서 이들이 이미 오래 전에 실시했던 그러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의 연설문이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특히 이 구절, 정말 지겹도록 외웠던, 그러나 잘못 생각하면 국가주의로 머물 수만 있는 그런 구절인데.. 이 구절을 아니키 민주주의에 맞게 해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네디가 워낙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있는 대통령이고, 그의 연설문은 영어로 또 번역본으로 많이 읽히고 있으니...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my fellow citizens of the world; ask not what America will do for you, but what together we can do for the freedom of man.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물어 주십시오.

친애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지 말고, 우리가 다 같이 인류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 주십시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물으라는 얘기는 국가만 바라보면서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복지정책을 펼치를 바라만 보지 말고,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 각자가 자유롭게 노력해서 국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말로 바꿀 수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오로지 중앙정부만 바라보면서 중앙정부의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우리 자신들의 삶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 자율적으로, 자치적으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가자고 하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게 바로 우리가 요즘 말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다.

 

그러니 이것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제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율, 자치, 협동의 삶을 만들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말, 이것이 아직은 국가를 없애기는 힘들지만 국가와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디언에게 배우는 민주적 아나키즘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국가를 위해라는 말에서 국가란 존재하는 실체라고 보기보다는 자치적인 삶들의 총합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케네디가 이런 뜻으로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가는 개인들 위에 군림하는 리바이어던이 되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라는 말은 개인적이고 자치적인, 자율적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라는 말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뒷구절은 그대로다, 강대국을 바라보지 말자. 세계의 시민들은 각자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그것은 자신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먼저 자신의 자유를 위해 실천을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이럴 때 세계 연합이 성립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국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G2니 뭐니 하면서 강대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데, 그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아나키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또 자치적인 집단들의 연합, 이것이 오래 전부터 인디언들이 실천해왔던 일이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아나키 민주주의라는 점.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아나키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미 실현되었던 오래된 미래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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