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빅뱅 - 자연과학의 눈으로 교육을 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도서
이철국 지음 / 민들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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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연과학의 눈으로 교육을 보다'라고 하는 책인데, 빅뱅이라는 말이 우주의 탄생을 알리는 말이고, 천문학계에서 쓰는 용어이니 교육을 자연과학의 눈으로 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앞표지에는 또 이런 멋있는(?) 구절이 적혀 있다.

 

'이제, 어린왕자의 심미적인 별과 천문학자의 핵융합하는 별이 만나야 한다'

 

별은 곧 교육이다. 그러니 교육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함께 만나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교육이 (특히 대안교육은 더) 인문학 쪽에 치우쳐 있다는 반성과 함께 자연과학적 지식이 교육에 들어와야지만 온전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긴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문과에서는 과학 쪽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과학과는 영원한 이별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벌써 반쪽은 십대 후반에 과학 공부와 관련이 없어지고, 또 이과라고 해도 과학 공부가 진정한 과학 공부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대답을 하기 힘든 지경이니, 또 다른 반쪽인 이과에서도 과학은 멀어진, 안드로메다 성운에 해당하는 그런 공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새가 한 쪽 날개로는 날 수 없듯이 교육 역시 한 쪽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 교육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추구하는 과정이기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함께 가야만 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요즘은 "빅 히스토리"라고 하여 과학과 역사, 문학, 철학이 하나로 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융합, 융합 하는 요즘 자연과학을 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주장하고 있는 이 책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자연과학의 이론을 주저리주저리 나열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주 탄생, 생명 탄생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지만, 과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질문이 철학적 질문, 종교적 질문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질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원핵 세포들에게는 죽음이 없었는데, 진핵 세포들로 진화하면서 함께 모여 죽을 수 있게 된 상태가 바로 우리 생명체들이 탄생한 순간이고, 이런 탄생은 죽음과 함께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데...(239-245쪽 참조)

 

가장 종교적이고 철학적일 것 같은 죽음에 관한 질문 마저도 자연과학으로 이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교육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함께 가야 함은 당연한 일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하게 된다.

 

대안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지은이가 자신의 교육 경험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인지를 말해가는 가운데, 각 장마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끼워넣고 있다. 끼워넣고 있다기 보다는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작은 제목들이 있는데 그 중에 마음에 와 닿은 제목.

 

모든 아닌 세상에 딱 한 명이다  

빛과 같은 아이들-역자역학에 따른 교육관

우주와 생명에 대한 이해는 나를 이해하는 지름길

초신성같은 대안교육

 

이런 제목들만 보아도 교육이 과학과 떨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별들이 모두 자신들만의 별이듯이, 아이들 역시 자신들만일 수밖에 없음을... 과학을 통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고 있으며, 불확정성의 원리를 들어 아이들을 바라보게 하고, 결국 우주와 생명에 대한 이해가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길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지구를 만들어낸 것은 결국 초신성의 폭발로 인한 결과이니, 우리 교육이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역시 대안교육의 역할이라고, 이렇게 과학과 교육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 하면 어렵다고, 지겹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는데, 이 점에서는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데, 그게 아니다. 우리가 과학에 대해서 잘못된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그런 관점을 깨야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하는 듯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함께 교육에 들어올 때 바람직한 교육이 된다고 하는데... 문,이과를 통합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는 지금 정부의 정책이 방향은 옳을지 모르는데, 그 방향으로 올바르게 가기 위해서는 이런 책, 참고해야만 한다.

 

교사들이 읽으면 참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고,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 책이다.

 

과학 쪽의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기도 하고... 지식의 편향은 결국 사고의 편향을 낳으니, 나도 다양한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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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 반전과 평화의 미술
박홍규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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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술은 우리 인간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에서 미술은 특히 우리의 눈을 통해 마음을 울린다는 점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와 함꼐 한 예술인데...

 

오죽했으면 선사시대에도 동굴에다 그림을 그려 넣었거나, 자신들의 무덤 속에 그림을 그려 넣었겠는가. 그만큼 미술은 삶과 죽음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술이었다.

 

그렇게 삶과 동떨어질 수 없는 미술이 현대에 인간들이 겪은아니 인류가 겪은 전쟁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으리라 추측을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최초의 전쟁 기록으로 남아 있는 기원전 1496년 이래 35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전쟁이 없었던 해는 불과 244년에 불과하고, 나머지 3250여 년은 인간이 흘린 피로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7쪽) 

 

고 하고 있으니, 전쟁은 우리와 늘 함께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잠시 잊을 수는 있었겠지만 결코 헤어지지는 못하는 존재처럼 말이다.

 

꼭 죽음과 삶처럼 전쟁과 평화도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역사가 이렇게 이루어졌다고 해서 전쟁이 인간의 삶에서 필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전쟁이 없는 역사를 꿈꾸어야 하고, 또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전쟁은 나쁘다. 어떤 전쟁도 찬양되거나 기념되거나 추억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전쟁에 대해서도 합리화나 정당화나 역사화는 있을 수 없다. 모든 전쟁은 악이다. 죄악이다. 전쟁은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전쟁의 본질은 잔인함이다. 전쟁은 오직 파괴이다. 아니 인간을 개처럼 죽게 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파멸의 심연이다. (277쪽)

 

전쟁이 시작되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아무리 전쟁이 정당하더라도 그것은 부당한 평화보다 못하다. 어떤 전쟁도 정당할 수 없고, 어떤 평화도 부당할 수 없다. (278쪽)

 

이렇게 이 책의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인간의 문명이 점점 발달해 오면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기는 커녕 대량 살상의 위험, 멸망의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는 이 때 전쟁에 대해서, 어떤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지은이의 말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직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전쟁으로 우리네 삶은 얼마나 피폐해지고 있는가.

 

이런 전쟁에 그림으로 맞선 화가들이 있으니, 그것은 아마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전쟁에 맞선 평화의 움직임이 만들어졌듯이, 전쟁을 찬양하는 화가들에 맞서 평화를 주장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있었으리라. 

 

근대 초 자크 칼로의 전쟁 판화를 비롯하여 스페인시민전쟁의 [게르니카]에 이르기까지, 반전과 평화의 미술은 한 장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전통을 형성했다. (8쪽)

 

이렇게 반전, 평화 미술은 인간의 역사에서 당당하게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미술들이 많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소개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 책은 그 동안 우리에게 그다지 자주 소개되지 못한 반전과 평화의 미술을 소개하기 위해 씌오졌다. 그런 작품들은 전쟁의 역사만큼 길고 전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만큼 그 폭도 넓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미술을 통해 전쟁의 비극에 대해,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8쪽)

 

그래서 지은이는 세계 미술사를 통해 반전과 평화를 담은 그림을 그린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의 절절한 바람을 담아 소개하는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이 울림을 준다. 우리네 세상이 평화로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함께 바라게 된다.

 

반전 평화 미술은 진정한 사실주의, 진실한 민중예술, 참된 민주예술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것만이 진실이다. 그 진실에 어긋나는 모든 가식이나 허위를 고발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자 반전 평화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279쪽) 

 

그러한 반전 평화 미술은 우리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평화롭지 않은 세상이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기에 이런 그림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결국 화가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만의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예술가란 사회를 벗어날 수 없음을, 그래서 우리의 삶을 더욱 평화롭고 풍요롭게 하는 화가들이 진정한 화가임을 이 책은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순수-참여 논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순수란 말인가?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는 것이 순수라면 그것은 가장 정치적인, 불의에 종사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진정한 순수란 불의한 현실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순수고, 그러한 순수는 참여일 수밖에 없는데, 순수-참여 논쟁이 왜 일어난단 말인가.

 

하여 이 책은 이러한 순수-참여 논쟁을 배제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를 추구하는 그림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자크 칼로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베트남 전쟁을 다룬 화가들까지 다양한 화가들과 그림을 다루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그림은 한 권의 책이 될 필요가 있다고 하여 빼고 있는데, 우리나라만을 다룬 그림도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반전 평화 미술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현대가 아직도 전쟁의 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되어 슬프기도 하지만... 언젠가 이런 반전 평화 미술이 역사의 한 장으로 물러나길 기대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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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가리고, 세상을 가리고, 진실을 가리고 있는 장막. 요즘은 자꾸 이 장막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장막...

 

어느 사회에서든 없지는 않았을테지만, 요즘은 이런 장막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예전에 역사를 배울 때 철의 장막, 죽(竹)의 장막은 배웠는데... 인(人)의 장막은 배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혹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중에 어떤 장막이 가장 강하고 질길까?

 

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녹이 슬고,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다지만 그래도 식물성이니 한계가 있는데, 사람은 정말로 시류를 따르기도 하고, 거스리기도 하는 그야말로 능동적인 존재이니, 가릴 사람의 의중에 따라서 잘도 변하니, 이 중에 가장 강한 장막은 인의 장막이지 싶다.

 

오죽하면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그런데 요즘 중국에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는 '십상시'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런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는 말은, 무언가 비슷한 일이 있다는 얘기다. 일명 유추다.

 

사실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유추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비슷하니까말해진다.

 

굳이 옛말을 들먹이면 경어인(鏡於人)이라고 사람에 자신을 비추어 보라고 했으니,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좋지 않은 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분명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런 판단을 잘하는 사람이 인사(人事)를 잘하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에게는 만사(萬事)가 편안해질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 안 좋은 일에 거론이 되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그 때 인사는 만사가 아니라 망사(亡事)가 된다.

 

답답한 나날들인데... 시집이 몰려 있는 도서관 서가에서 시집들 제목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이 시집을 골랐다.

 

시인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나름 시들을 읽었다고 자부하는데도, 처음 듣는 시인도 많은데, 이 도서관이 시집의 겉표지를 다 떼어버려서 시인에 대한 설명을 볼 수가 없다. 그래 시를 읽는데 시인을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시를 느낄 수 있으니 뭐...

 

이 시집을 고른 이유가 바로 인의 장막과 관련이 있다.

 

박용재 시집,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민음사

 

이 말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대상만큼, 또는 대상처럼 산다는 얘기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 만큼, 내가 사랑하는 사람 처럼, 산다는 얘기다. 사람으로 치면...

 

자, 나는 어떤 사람들을 사랑하는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내가 사는 모습인데... 인의 장막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순간에 이미 자기 주변의 사람을 바로 바라보게 되는데... 인의 장막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인의 장막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람은... 딱... 그 만큼만... 살고 있는 것이다.

 

딱...그 만큼...만... 사는 사람을 믿고 사는 사람은...

또 딱 그...만큼...만...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 주변 사람들을 다시 보자. 그들을 감시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말들을 듣고 사는지 안다면, 바로 나를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내 삶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은데...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민음사. 2003년 1판 1쇄. 13쪽    

 

시인에게는 죄송하지만 1연으로 되어 있는 시를 4연으로 나누어 적었다.

 

내가 발 딛고 사는 세계의 존재들, 즉 자연의 식물들을, 그 다음에는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보는, 내가 추구하는 이상인 우주의 천체들을,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그래서 마음을 서로 나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사랑한 만큼 우리의 삶의 부피와 넓이와 깊이가 정해질테니...

 

그렇게 이해하기 쉽게 그냥 편의상 나누어보았지만, 원래 시는 연 구분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바로 이 만큼이 산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한 만큼.

 

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사랑을 넓혀야 겠다. 아래로도 위로도, 그리고 옆으로도. 그것이 바로 내가 잘 사는 일이 될테니.

 

적어도 남을 위한다는 사람은 인의 장막에 갇혀 있지 말고, 수평으로, 수직으로 그리고 사람의 마음까지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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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과학자들 - 생명 윤리가 사라진 인체 실험의 역사
비키 오랜스키 위튼스타인 지음, 안희정 옮김 / 다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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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

 

읽기에 너무도 마음이 불편하지만 꼭 읽어야만 하는 책.

 

어쩌면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 장래 과학자나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에게 반드시 읽혀야 할 책.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류를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또 인류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책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해서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막 튀어나오고, 내 마음의 파장이 깨지는 그런 경험을 하기는 하지만, 마음의 파장이 깨지면서 평정이 깨지는 것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에, 그러한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읽어야만 한다.

 

우리 인류가 인류애란 이름으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그것도 사람을 살린다는 의사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죽였는지, 그러면서도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요즘은 의사보다는 제약회사라는 다국적 기업이, 돈을 앞세워 사람을 실험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형편이니, 더더욱 이런 책은 읽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 기니 피그(실험용 인간)"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두 명의 과학자와 한 명의 시인이 생각이 났는데, 다 이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노구치 히데요, 황우석, 윤동주

 

노구치 히데요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닥터 노구치"라는 제목의 만화로 9권이 나와 있다. 그 만화 참 감동적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결국 인류를 위하는 세균학자가 되는 노구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잘 표현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책에도 그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물론 그 시대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황우석도 마찬가지다. 한 때 우리나라에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사람 아니던가. 배아복제, 줄기세포 등등에서 앞서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연구원들에게 난자를 제공하게 했던 사람.

 

난자를 제공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과연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것이 최선일까? 아니, 요즘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떨어뜨리는 일에 불과하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있다. 그 누구라도. 그러기에 인간은 태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으니, 더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고.

 

여기에 윤동주. 일본의 생체 실험 대상으로 죽어갔다고 알려져 있는 순수한 시인. 그의 자기성찰이 나타난 시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럼에도 그는 실험용 인간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그런 일본인들의 만행에 대해, 특히 731부대에 관한(마루타라는 말로 유명해진)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하여간 읽어가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무엇보다도 실험용 인간이 된 사람들은 전시에는 군인들을 비롯한 사람들... 평상시에는 사회에서 정말로 힘 없는 약자들이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도 힘든 사람들, 사회로부터 낙오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약간의 이익을 주고 실험용 인간으로 사용했다. 그 실험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이것이 과연 인류를 위한다는 것인가.

 

정작 인류를 위하는 일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즉 인류를 위하는 일은, 수단이 목적과 일치되어야만 한다.

 

과학자들이, 의사들이 구하고 싶어하는 인류는 바로 그들이 실험대상으로 삼았던 그렇게 힘없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힘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막 다루면서 인류를 위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에 불과하다.

 

정작 인류를 위한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가장 낮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할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책의 끝부분에는 토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으니, 우리나라 똑똑한 학생들, 특히 과학자나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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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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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를 찾는다. 단지 도시를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 간다. 그 미술관엣 그 나라 출신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본다. 그런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이 이 책이 쓰여진 방식이다. 웬디 수녀는 그림을 이야기해주는 수녀다. 그의 그림에 대한 해석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그림은 자신에게 다가온 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웬디 수녀가 방송국의 협찬을 받아 유럽 여러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 가서 그 미술관에 있는 그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그림을 그 이유와 더불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제목에 '산책'이라는 말이 들어가듯이 전문적인 미술 해설서라고 하기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쓴 책이다.

 

그림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고,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고, 각 장을 시작할 때는 그 도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산책'이 된다.

 

유럽의 도시들을 다니고 미술관에 가고 그림을 보니, 자연스레 유럽 여행이 된다. 그림을 통한 여행, 여행은 낯선 곳에 나를 데려가 나를 만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웬디 수녀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들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웬디 수녀가 간 도시들을 살펴보면,

 

마드리드,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빈,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베를린, 파리, 안트베르펜, 암스테르담, 헤이그

 

이렇게 11개의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 도시들에 있는 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한다.

 

이 중에는 처음 듣는 작가와 그림들이 있었지만,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그림들도 있다. 미술 관련 책을 조금 읽은 덕분에 이제는 아는 작가들이 많아져서 이 책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은 그림이 직접 말하게 하거나, 그림 바깥에서 말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이해하게 하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웬디 수녀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오로지 자기만의 이해 방식으로.

 

그래서 더 읽기가 쉽다. 그냥 산책하듯이 그림들을 만나면 된다. 산책을 하다가 멋진 풍광을 만나면 잠시 쉬어가고, 또 더 천천히 걷는 장소가 나오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면 오랫동안 보고, 음미하면 된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많은 그림들 사이를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면 된다. 웬디 수녀와 함께 유럽의 도시들에 가서 그림들을 보는 산책, 여행을 하게 된다. 

 

그래서 좋다. 산책은 늘 사람의 마음을 좋게 만들어주니, 이 책 역시 그림 산책을 통해서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이런 것을 주제가 있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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