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 - 보티첼리에서 마티스까지 두 미술관의 소장 명화로 보는 서양미술 이야기
김영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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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여행을 떠난다.

 

직접 공간을 방문해 그림을 눈 앞에 두고 보는 여행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그림을 만나고, 그림에 대해 생각하고,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여행이다.

 

최근에 많은 미술 관련 책들을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내가 읽은 책들은 '새 발의 피'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프랑스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그림에 대한 이 책을 보면서 아직도 멀었구나, 정말 그림의 세계는 무궁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그림들도 두 박물관에 있는 모든 그림을 소개한 것도 아닌데도, 이렇게 처음 보는 그림들이 나오니... 계속 그림 여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치솟는다.

 

루브르 박물관.

 

사실 좀 씁쓸한 마음이 드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이 책에서도 말해지고 있는데, 그림 분야만 하더라도 다 보기에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드니...

 

쉴리관, 리슐리외관, 드농관 이렇게 셋이 있는데, 이 관들에 각 방들이 엄청 많다고 하니, 그림들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만 해도 기가 죽는다. 그렇다고 씁쓸한 마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 이유는 이 루브르에 있는 그림들 중에서 프랑스 작품도 있지만, 외국의 작품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고, 그림들 말고 다른 작품들은 프랑스가 제국주의였던 시절 약탈한 작품들이 많이 있으니, 과거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과거를 잊어서도 안되겠지만, 과거에 얽매여서도 안되니, 씁쓸한 마음은 이쯤에서 접고, 이 책은 유럽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근대 그림까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따라서 길을 잃기 쉬운 루브르에서 이 책의 흐름을 좇아 그림을 감상하면 유럽 근대 미술의 흐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 유파가 되었는지, 그 유파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인접해 있는 유파를 통해 비교하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안내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그림은 안다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들어오는 그림 앞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림과 마주보며 대화하는 시간, 그림을 자신의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겠는가.

 

엄청나게 커다란 (루브르를 다 돌려면 장장 60여 킬로미터나 된다고 하니...) 루브르에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작품을 발견하는 즐거움, 그것 또한 그림 여행의 즐거움일 수 있지 않겠는가.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은 건축에서도 유명하다.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는. 과거와 현재, 산업문명과 예술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여기에는 프랑스의 현대 작품들이(인상파 전후)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 인상파 전후기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려면 오르세 미술관을 가면 된다고 한다.

 

역시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들도 꽤 있는 이 미술관은 굳이 순서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 미술관의 안내 책자가 잘되어 있어 가서 직접 안내서를 참조해서 관람해도 된다고 하니 말이다.

 

책을 통해서 프랑스에 있는 두 미술관을 여행했는데, 그 여행은 지금까지 봐왔던 미술 관련 책들을 조금 더 구체화하는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고 직접 가서 보는 것만이야 하겠는가마는 그래도 책을 통해서라도 본 그림들... 눈이 즐겁다.

 

또 조리있게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이해하기도 편하고, 나중에 프랑스에 가서 이 두 박물관에 들른다면 이 책을 읽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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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처럼 서러워서 작은숲 에세이 4
김성동 지음 / 작은숲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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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다. 서럽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서러워서 마음 속에 새겨야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패자의 기록이기도 하다.

 

승자의 기록을 보면서 패자의 삶을 유추해내는 일, 그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현재를 알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역사는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기록이란 살아남은 자들이 기록한 것들이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기 마련이니,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는 역사를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성동은 소설가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작품은 "만다라"다. 그 작품 하나라도 그는 우리나라 소설사에 이름을 남기는데, 그가 역사 쪽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현대사 아리랑"

 

근대 우리나라에서 역사 속으로 스러져간 사람을 다룬 책. 그 책을 읽으면서 참 서러웠다. 이런 사람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번에 또 역사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가 역사에 대해 쓴 책이 나왔다. 이건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데, 혹 기존에 아는 얘기들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현대사 아리랑"에서 그가 보여준 관점에 믿음이 가기에 구입해 읽기 시작.

 

읽으면서 책을 손에서 뗄 수가 없다. 마음이 점점 서러워지는데, 정말 염불처럼 서러워지는데, 그런데도 책을 계속 읽게 된다.

 

여태까지 내가 알던 사실을 뒤집어주는 그의 역사에세이가 계속 글을 읽게 한다. 그렇다. 그는 지금까지 패자로 전락한 사람들을 다시 역사에 불러오고 있는 작업을 한 것이다.

 

역사에서 단 몇 줄, 또는 그나마도 없거나, 있어서 곡해되고 있는 사람들을 현대에 불러온다. 불러와서 봐라, 이것이 이 사람들의 진면목이다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

 

하여 그들이 당시 역사에서는 패자에 불과하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당당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그는 말한다.

 

이른바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자들이 꾸려 가는 역사가 바로 오늘 이 현실인 것이라면, 역사의 패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패자의 남겨진 자식들은 말이다. 잘못된 역사를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인가? 마침내는 그리하여 '비단할아버지에 거적자손'이 되고 말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적어도 역사에서 밀려난 우리 할아버지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던지는 알아야 한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자 어떻게 움직이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쓰러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진실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손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머리말'에서)

 

쓰라린 말이다. 역사에서 스러져간 사람들을 다시 살려내는 일. 그들이 비록 스러져갔을지언정,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음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고, 역사의 패자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는 승자들이 만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는 승자와 패자의 만남과 다툼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온전히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승자만이 아닌 패자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를 온전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발판이 되는 책이다. 적어도 승자의 기록에 의해서 왜곡된 사람들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의 패자들을 보자.

 

백제 사람들, 특히 우리는 잊고 있지만 중국 대륙에 백제가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 궁예, 묘청, 신돈, 이징옥, 김개남, 김백선, 서장옥, 최서해, 남로당

 

이밖에도 이름 없는 농투산이들, 풀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거나 또는 역사에서 왜곡되거나 사라진 사람들이다. 이들을 현재로 다시 불러내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에 대해 이 책은 다시 알려주고 있다.

 

작가의 생각이겠지만 이벤트로 구입한 이 책의 속지에는 작가의 친필 사인(친필이겠지...)이 있다.

 

맹자가 한 말이라고 하는데...

 

군자유삼락이왕천하불여존언(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군자에겐 세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왕이 다스리는 천하는 이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 왕이 다스리는 사회가 아니다. 이름없는 풀과 같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들이 함박 웃으며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그런 세상을 꿈꾼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비록 당시의 역사에서는 패자가 되었을지 몰라도 그들의 꿈꾸었던 세상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 이루어야 할 우리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패자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니, 그만큼 이 책은 우리에게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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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이다.

 

날이 추워지면 어려운 사람들에겐 더 힘든 나날이 된다.

 

따뜻한 일들이 일어나 사람들 마음과 몸이 훈훈해졌으면 좋겠다.

 

시집을 이리저리 넘기다 아, 이 시구나, 예전에 보았던 시인데...지금 이 시대 아버지들이, 청년들이, 아니 우리들 보통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 아니던가.

 

시에 너무도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는 이 현실을... 시를 읽으며 공감하고.

 

  아버지 경제

 

한 방안이

점점 좁아지는구나

내가 밀려서 잠을 깨다 보면

요놈들은

키도 크고

넓어졌구나.

 

쌀도 한 말이면

일주일을 먹는데

요사이는 며칠 못 먹으니

아버지 경제는

찬바람이 불구나.

 

엄마는

추운데 밖을 나가고

아버지는 눈을 감고

몸부림치는구나.

 

봄이 오기 전에

모든 물가는 뛰고

아버지 경제는

더 더욱 적자운영으로

가득 채운 먹구름

주름살이

늘어만 난다.

 

이 시대는

식구들의

한 달 먹을 것이

벌써 걱정이니,

 

아버지의 경제는

어쩌자는 건가.

 

박봉우, 황지의 풀잎, 창작과비평사, 1979 3판. 14-15쪽.

 

춥다.

 

그렇다고 늘 움츠리고만 있을 수도 없는데. 그래,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 우리들에게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 시. 다시 한 번 읽는다. 아버지의 경제를 어쩌자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리들이 모두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는 사회가 되게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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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운동의 세계적 현황과 전망 기본소득 총서 3
강남훈.권정임 외 지음 / 박종철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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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논의가 우리나라에서는 잠잠해졌다. 실제로 잠잠해진 것인지, 아니면 언론에서 무시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데, 복지정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언론을 통해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없으니...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지고,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느니 마느니 각 지방의회에서 말들이 많은데, 무상이 아니라 '의무'라는 말로 바꾸자고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무상 중의 무상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국민에게 어떤 조건도 걸지 않고 균등하게 일정 소득을 보장해 주는 제도가 기본소득이니,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문제에도 두 팔 걷고 덤비는 사람들에겐 기본소득이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때문인지 언론들은 기본소득은 다루지지도 않는다. 현실의 문제만을 조금씩 다루고 있을 뿐인데, 복지정책에 관해서 앞서 가는 의제를 만들어내는 언론을 보기 힘든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충분히 논의가 되어야 하지만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러한 기본소득에 대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논의되거나 실험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하여, 복지국가라고 하는 핀란드, 독일, 그리고 지금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스페인-카탈루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뉴질랜드, 아일랜드를 거쳐 아프리카에 있는 한 도시에서 기본소득을 직접 시행한 나미비아, 그리고 헌법에 기본소득 조항을 명시한 브라질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논의가 한창이고, 기본소득 이론을 구체화시켜가고 있다. 이것은 기본소득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얘기라고 받아들여도 된다.

 

함께 삶에 대해서 고민한다면 '기본소득'에 대해서 간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마음 속에 개운치 않은 점이 남아 있다. 왜 이렇게 오래 전부터 기본소득에 대해서 논의를 했고, 어떤 도시에서는 시행도 했고, 헌법에 기본소득을 명시하기도 했는데 왜 아직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는가?

 

기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그렇게 좋다고 하는, 또 단순하고 명쾌한 이 기본소득 정책이 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경제가 호황을 이루었을 때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쏙 들어갔다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본소득 논의가 재점화되는 모습이 이 책에 나타난 세계 여러나라의 모습이었는데, 그럼에도 논의는 활발했으나 실행을 되지 못하는 현실을 이 책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대해서 알리고, 실현가능성을 주장하는 책이지만 이상하게 읽으면서 기본소득이 실현되기가 참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유토피아'라고 모두가 힘들어질 때 그 때 함께 살아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

 

그렇다면 지나친 경제적 풍요는 기본소득 논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함께 어려워지자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출발점이 바로 여기다. 기본소득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노동을 신성시하는, 노동을 꼭 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사람 존재 자체가 바로 '일'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함께 삶 자체가 바로 일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존재 자체에 대해서 인정을 받고 존중을 받을 필요가 있으니, 그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이 되면 기본소득은 충분히 시행이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전제된다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들에서도 자주 나오는데 재원을 마련하는 문제는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의 세금에서 많이 올리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는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세금이 투명하지 않은, 고액 탈루자가 너무도 많은, 종교인들에게 과세를 하지 않는, 상위 소득자의 세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소득의 재원은 사실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그리 걱정할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본소득을 추진할 정당이 있어야 하고, 그 정당이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또 정당으로 하여금 기본소득을 추진하게 강제할 시민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무언가 찜찜한 마음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좋은 기본소득이 논의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기본소득은 분명 가능하다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책이다.

 

이제는 무상급식이나 뭐니 이런 논의를 떠나 좀더 발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우리나라도 이 책의 사례들처럼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으니, 서로 함께 살 수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의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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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어버리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마음은 답답하고, 무언가가 가슴에 콱 들어박힌 것 같은데...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거야?

 

이제는 좋아져야 하는 것 아냐?

 

그게 발전이고 진보 아냐?

 

민주화 되었다고, 절차적 민주주의는 나름대로 정착되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민주주의지.

 

힘없는 사람이 힘든 세상이 민주주의 사회인가? 그것은 아닌데... 많은 일들이 터지고 있는데,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 그런 것들, 정말 쓸어버리고 싶다.

 

모두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오래 된 시집을 뒤적이다가 "쓰르라미"라는 시를 발견했다. 이 쓰르라미에 발음이 비슷한 말들을 엮어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시.

 

강창민의 "물음표를 위하여"라는 시집에 실려 있는 시다.

 

 

쓰르라미

 

 

비가 내려도 울어쌌고

작년 늦봄부터

뭐가 그리도 싫은지, 싫어라미

왼종일 싫다고 울어댔제.

매운 6월

성난 광장마다 사람들이 모여

외침 낭자히 피 흘릴 제

무얼 쓸어라는지, 쓸어라미

아침부터 쓸라고만 소리쳤제.

올 여름 쓰르라미는

나무 꼭대기에 올라 앉아

무얼 새로 하라는지

칠 년 동안의 쌓인 울음을

뉘 들어라 울어쌌는지, 새로라미

누가 그 소리 귀에 담고 있노?

 

 

 

강창민, 물음표를 위하여, 문학과지성사, 1991년 2쇄. 53쪽.

 

 

절말 이렇게 외쳐댔던 그 많은 외침들이, 그 많은 소리들이 마음 속에 하나도 담기지 않고 다 날려가 버렸는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와닿아 사라지지 않는다.

 

민주화 시대라는데, 왜 살기는 더 팍팍해지고 있는지...  이런 때 시인은 이렇게 자괴감을 표출한다. 물론 이 시는 80년대의 시라는 점을 명심할 것. 다만 시는 한 시대에서 머물지 않고, 시대를 넘어 계속 살아남는다는 것.

 

이 땅의 수많은 박사들, 이 시 한 번 읽어보면 어떨지... 하나라도 제대로 잘 박았으면, 그랬으면, 이렇게 많은 말들이 쌓이지 않고 사라지지는 않을텐데... 

 

 

                       박사 이후

 

                                  1

                        학위 축하해요, 강선생.

건배합시다, 쭈욱.

                        어이, 아가씨 박사가 뭔지 아나?

                        박는 데 도사라는 게야.

 

                                  2

                       그게 아니다.

                       한 가지만 빼고는 잘 박지도 못한다.

                       그 한 가지도 결국 빼고

                       언제나 뺀다.

                       자유를 위해, 민주화를 위해

                       몸 박지 못하고

                       늘 뺀 채로

                       얼도 뺀 채로

                       이 가을을 맞는다.

 

 강창민, 물음표를 위하여, 문학과지성사, 1991년 2쇄.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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