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는 삶이다 - 복지국가 전문가 이상이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도전
이상이 지음 / 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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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복지를 말한다.

 

아니다. 선거철만 되면이 아니라, 선거철에만 복지를 말한다. 그들에게 복지란 투표용지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복지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미 당선이 확정되면 폐기처분되고 만다.

 

그렇게 몇 년을 폐기처분되었다가 다시 선거철이 되면 또 나타난다. 이번에는 진짜라고, 꼭 실현하겠다고... 마치 양치기 소년 같이 또다시 복지를 들먹인다.

 

"복지가 나타났다! 복지를 이루겠다! 내가 하겠다! 우리가 하겠다!"

 

양치기 소년은 쉬지 않고 소리 친다. 그런데 아직 이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세 번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딱히 다른 말을 믿을 것도 없다고 여기는지 사람들은 이런 말을 또 믿어준다. 이번에는 복지가 이루어지겠지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로 끝나고, 사람들은 이제 복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편적 복지는 불가능하니 선별적 복지나 제대로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을 지지한다.

 

얼마나 당했으면 하는 마음이 일기도 하지만, 양치기 소년은 거짓의 대가를 호되게 치렀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거짓의 대가를 아직도 치르지 않고 있다. 그러니 거짓이 반복될 수밖에.

 

이 책은 복지전문가, 아니 복지국가 전문가인 이상이의 주장이 나타난 글이다. 우리나라 복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겠거니 했다가 처음을 보고 놀랐다.

 

어린시절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사고로 후천적 지체장애인이 되어야 했던 자존감을 잃었던 학창시절, 공부로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의대에 들어가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던 젊은 시절.

 

자서전을 읽는 느낌을 주었다. 처음 부분은. 그의 자전적 내용으로 책이 끝까지 이어지는데, 이런 청년 시절을 거쳐 그는 보건의료정책의 전문가가 되어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공공화를 위해 노력을 한다.

 

그가 개입한 일만 해도 많은데, 그 중에 현대사의 격랑을 거쳐온 것들을 이야기하면 의료보험의 국민건강보험으로의 통합, 의약분업, 의료민영화 저지, 건강보험 하나로 등이 있다.

 

이렇게 의료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던 그가 의료분야 만으로는 우리나라 복지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이 때부터 그는 복지 전문가가 아닌 복지국가 전문가가 되기로 한다.

 

함께 모여 공부하고 홍보하고, 정책을 강제하고 하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런 노력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여러 시민단체와 연계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이 효과가 있으려면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세 축의 동시 전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 축(X)은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생산하는 일이다.  ... 두 번째 축(Y)은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풀뿌리 시민사회 속으로 확산하는 일이다.  ... 세 번째축(Z)은 복지국가 청치세력화이다.' (282쪽)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첫 번째, 두 번째 것은 그가 속해 있는 단체와 또 여러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어느 정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축은 아직도 요원하다.

 

진보정당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제1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도 큰 원인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국가 공약을 철회 또는 파기하는 데서 보듯, 야당의 적극적인 비판과 견인 없이는 이 정권이 스스로의 의지로 복지국가를 건설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어떻게 해서든 현 정부가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가도록 정치력을 행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을 할 의지와 능력이 없어 보인다.' (280쪽)

 

그러니 여당이나 청와대가 잦은 실정으로 민심을 잃어가도 야당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정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집권 여당이나 청와대에 대해서 제대로 견제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복지정책은 자꾸 후퇴만 하고, 대통령의 공약을 하나하나 철회하고 폐기해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정치권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나? 이는 선거제도의 개선을 통해선만이 가능하다. 지금의 선거제도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또 그놈이 그놈인, 양치기 소년들만 득시글거리는 정치권을 양산할 뿐이다.

 

하여 그는 말한다.

 

'복지국가 정치의 기치는 장차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선거제도가 지금의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서 비례대표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실질적인 다당제가 출현해야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합의제 민주주의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며, 이런 정치 환경 속에서 복지국가 건설 과제는 꾸준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283쪽)

 

이 말이 맞다. 그러나 시민들 다수가 선거제도의 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이미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선거제도를 개혁할 리가 없다.

 

그러니 뭐니뭐니 해도 깨어 있는 시민들이 많아져야 하고, 그들이 각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이런 사정을 그는 진보정권 10동안 뼈저리게 깨달았다. 시민들의 힘이 있어야 정책을 강제할 수 있음을, 진보 정권이라고 해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고 민영화라는 이름의 사영화 정책을 펼쳐서 공공성을 해칠 수 있음을 자신의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사영화나 공공성 파괴를 막는것은 결국 정치권이 아니다. 정치가들이 어떻게 변질되는지는 이 책에 언급된 우리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정치가들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상이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를 창립하여 복지 담론을 만들어내고 또 홍보하고 퍼뜨리고,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다듬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우리가 살아야 할 국가의 모습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국가는 어떤 국가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천천히 읽으며 30여 년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공공성을 확보해 왔는지, 어떻게 복지가 확대되어 왔는지를 살펴 보자.

 

여기에 더하여 그럼에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직시하고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너무 좋게 읽었다. 한 사람의 일대기로 읽어도 좋고,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떻게 복지를 이룰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읽어도 좋은.

 

덧글

 

참... 이 책에서 보편적 복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세금을 올리지 않고 복지 정책을 펴는 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는 복지 정책은 양치기 소년의 말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모두 증세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이 증세를 반대하는 것은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세금이 정말 필요한 곳에, 보편적 복지 실현에 제대로 쓰인다면 우리 국민들도 증세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증세를 국민들이 반대한다는 것은 세금 내기 싫어하는 국민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지금까지 얼마나 세금 운용을 잘 못했으면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할까 정치권은 고민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로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믿음이 있다면 세금 증세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런 믿음, 지금까지는 정치권들에 양치기 소년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국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국민을 비난하기 전에 정작 비난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가 먼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또 하나, 그는 보건의료 활동과 국민건강보험 통합, 의약분업 등으로 의료 공공성을 확장하는데 앞장섰다. 그 결과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이었다. 1심 재판에서 유죄, 2심 재판에서 선고유예, 3심에서 무죄 파기 환송, 결국 최종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그 과정이 무려 8년이 걸렸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말기였고, 재판 진행은 노무현 정부 때 계속 이루어졌다. 의료 공공성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책이라고?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그랬단다. 물론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이런 국가보안법, 아직도 무섭게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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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이든 납북이든 또는 재북이든 북쪽에 있다는 이유로 우리 문학사에서 지워졌던 사람들.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아직도 문화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그래도 해금이 되어 이제는 우리가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해방 이후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또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고.

 

이들에 대해서 남북이 함께 연구해서 공동으로 책을 냈으면 좋겠다.

 

그래도 저명한 교수들이 이들에 대해서 그들의 문학과 생애에 대해서 조명한 책들이 있어 우리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한 권 한 권씩 읽으면 좋다.

 

김기림, 김남천, 박세영, 박태원, 백석,이기영, 이용악, 이태준, 임화, 정지용, 조명희, 최명익, 한설야, 홍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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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문학과 생애, 홍명희
강영주 지음 / 한길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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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문학과 생애, 정지용
최동호 지음 / 한길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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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문학과 생애, 이태준
장영우 지음 / 한길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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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문학과 생애, 백석
오양호 지음 / 한길사 / 2008년 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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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건축 - 지속가능한 저탄소 녹색도시를 위한 에너지 자립형 건축
니와 히데하루 지음, 박진아.백기석 옮김 / 인큐브(INKQV)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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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반드시 파괴가 동반한다.

 

그러나 지속적인 파괴는 결국 삶도 지속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괴를 최소화하는 것, 파괴로 인한 파멸이 아닌, 지속가능한 파괴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그동안 인류는 화석 연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지구를 파괴하고, 결국 환경을 파괴하여 우리의 삶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했다.

 

무분별한 발전이 초래한 결과는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서 여러가지 협정을 맺는다. 기후협약부터 시작하여 에너지 협약, 탄소 배출권 등등.

 

이러한 노력들은 지금까지의 소비 패턴을 유지하면 우리의 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주요 요소를 찾아보자. 가장 간단하게 우리는 흔히 '의식주'라고 한다.

 

사실 순서를 바꿔서 '식의주'라고 해야겠지만, 하여간 이 '의식주'에는 파괴가 따른다. 파괴하지 않고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가 없다.

 

입고 먹는 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요즘은 친환경적인 옷을 입자는 운동부터, 친환경적인 먹을거리 운동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니, '의식주' 중에 '의식'에 해당하는 것은 상당히 진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것들은 개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고. 자신의 생활습관만 바꾸면 되는데, 이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비록 힘들다고 하지만,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주'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 '주'를 단지 '집'에 국한시키지 않고 '건축'으로 확장한다면 참 문제다.

 

우리나라만 해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건물들이 엄청난데, 이런 건물들이 환경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간과하고 있을 때가 많다.

 

마침 '제로 에너지 빌딩' 활성하 방안을 우리나라도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건물에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 함으로써 파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의식'과 달리 이 '주'는 개인의 노력보다는 사회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를 법의 정비를 통해서 강제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한 '의식'과는 달리 '주'는 비용도 막대하게 들어 개인이 홀로 실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나라 차원에서 건물을 친환경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게 되는데, 그런 일들을 지금 세계 가국에서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노력의 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제로 에너지 빌딩을 짓고, 그것이 현재의 건물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나를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절반 이상은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으며, 앞으로 더 나은 기술 발전을 생각하면 지속가능한 건물로써 '제로 에너지 빌딩'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 가정집, 회사 건물, 학교를 도시 내와 도시 밖으로 나누어 비교하고 있고, 재생에너지 사용여부를 검토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수치를 보여주면서 내용을 이끌어가고 있어서, '제로 에너지 빌딩'이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복병으로 '경제성'이 등장하는데, 이 경제성 면에서도 효과가 있음을 수치를 통해서 보여준다는데 이 책의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경제성' 운운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살아야 함을 생각한다면, 건물들을 조금 더 비용이 들더라도 '제로 에너지 빌딩'으로 건축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

 

지금 당장의 경제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면, 현재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이를 계속 추진해 나가는 과단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지막에 해당하는 '주'는 개인의 노력과 함께 사회 전체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법적인 제도 정비일테고.

 

빙산을 향해 가는 타이타닉호를 멈출 수 있는 길,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의식주'에서부터 노력해야 하는데, 특히 '주'는 더 많은 파괴를 수반하니, 이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주'에 관해서, 충분히 가능함을, 또 우리가 실천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착한 건축'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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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한때 스님 노릇을 했다는 사람.

그러나 내게 고은은 70-80년대를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젊은 나에게 얼마나 힘을 주었던가.

 

90년대 시대가 많이 변했고, 2000년대 다시 또 변했다.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이 아스라히 멀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민중이 삶이, 민족의 현실이 좋아진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시대의 모습은 이리도 변했으니.

 

어쩌면 고은의 과거 시집을 읽는다는 것이 복고주의에 불과할지도, 자기만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고은 시집, "내일의 노래" 창작과비평사

 

헌책방에서 구입한 이 책은 1993년도 3쇄판이니 말이다. 거기다 이 시집은 창작과비평사 시집 101번으로 출간이 되었으니, 창비시집이 100호를 넘기고 새로이 시작하는 의미로 펴낸 시집이라는 생악도 든다.

 

제목만 보면 내일을 노래하는 희망을 노래하는, 게다가 시집 번호도 101번이 아니던가. 그런 80년대를 정리하고 이제는 90년대를 잘 맞이하자는 그런 시들이 많아야 할 것 같은데...

 

2015년에 읽어보는 시들에서는 그런 희망을 느끼기가 힘들다. 세상이 그만큼 밝아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우리는 내일로 나아온 것보다 자꾸만 과거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이 시집에서 두 시를 연결하고 싶어졌다. 자연스레 고사해가고 있는 진보진영과 그럼에도 그들이 살기 위해서 해야만 할 일.

 

       에스페란토어

 

요셉 스탈린은 에스페란토어를 배우는 사람까지

그의 적으로 삼았다 다 죽여버렸다

이런 참극도 모르고

나는 스무살 무렵

전쟁이 지나간 뒤

에스페란토어를 배우다 말고 떠돌았다

 

세계의 언어 가운데

에스페란토어만큼 외로운 것이 어디 있는가

이제 그것은 누가 죽이지 않아도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

 

unu, du, tri, Kvar, Kvir, Ses

하나 둘 셋 세어가며 죽어가고 있다

sep, ok, nau, dek

이렇게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

 

그것을 배우다 만 나도 죽어가고 있다

 

고은, 내일의 노래, 창작과비평사, 1993년 3쇄. 60쪽

(nau라는 글자 u위에 -표가 있는데, 여기서 그런 글자를 찾지 못해서 그냥 u로 표기했다)

 

지금 진보는 그냥 내버려두어도 죽어가고 있다. 한 때 세계공통어라고 했던 평화의 언어인 에스페란토어가 죽어가고 있듯이.

 

그런데 이렇게 진보를 그냥 죽어가게 만들 것인가? 살릴 방도는 있는가? 적어도 이 시집이 "내일의 노래"인데, 이렇게 죽음만을 노래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시인은 '머리 바꿔'란 시를 선보이고 있다.

 

진보가 살려면 이래야 한다. 이렇지 않으면 진보는 그냥 죽어가 사라지고 만다. 명심해야 한다.

 

        머리 바꿔

 

옛날 당나라에 온 역승 구나바드라가

중국어에 능통하기 위하여

꿈속에 나타난 신인에게 청하여

서로 머리를 바꿔

다음날부터 구나바드라는

황하유역 중국어가 잘도 흘러나왔다

무엇을 하고자 하건대

이런 꿈이 있어야 한다

아니 무엇을 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서로 머리를 바꿀 필요가 있다

네 문수보살의 머리와

내 만황씨 머리와

서로 바꿔

 

고은, 내일의 노래, 창작과비평사, 1993년 3쇄. 106쪽.

 

단지 머리를 바꾸자는 얘길까? 상대방의 처지에 서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나만의 고집해서는 전망이 없다는 말이다. 결국 '꿈'이란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머리'를 바꾸어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벌써 20년도 전에 나온 시집이지만, 이 두 시, 요즘 현실에 딱 들어맞는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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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쟁탈전 -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한 첫 번째 관문 - 우리가 알아야 할 그들의 역사
조후 지음 / 민들레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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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쟁탈전"

 

제목이 재미 있다. 역사를 지구를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싸움으로 정리하고 있는 책이다.

 

한정된 자원에서 그 자원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지구 역시 한정될 수밖에 없고, 인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그 인간들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구획한 나라들 역시 늘어나고 있었으니 쟁탈전이 벌어짐은 당연한 일.

 

이 책은 서양의 역사만을 정리하고 있다. 물론 간간히 동양의 역사, 인도나 중국, 일본, 우리나라가 나오기는 하지만, 동양의 역사는 다른 책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우선은 서양의 역사를 다룬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를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당시의 시각으로 확인한 후 해석하기, 상징단어 지우기, 거짓말 탐지하기, 언어의 함정 피하기' (253쪽)라고 한다.

 

자칫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과거를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하고, 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그들이 정리한 상징단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그들이 왜곡한 역사를 따라가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명심하고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진실에 다가서게 되고, 그 진실은 오늘의 나를 파악하고 내일로 제대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서양의 역사에 대해서 쓴 내용을 보면 서양의 역사를 주도했던 요소는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지리적 위치. 왜 문명이 그곳에서 발생했는가? 어째서 그들은 제국이나 강대국으로 성장했는가? 하는 점은 우선 우연적이게도 지리적 위치에서 생긴다고 한다. 문명의 발상지들이 지리적으로 강을 끼고 있다는 점이나, 그리스 문명이나 로마 문명이 어떻게 세계적인 문명이 되었는가 하는 점 등을 우선 지리적 위치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유럽은 처음에는 참 찌질한 지리적 위치로 주목받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들은 게르만(원래는 이 말은 야만족이라는 뜻이란다)이라고 불리는 야만족에 불과했다고.

 

그런데 지리적 위치에 역사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하는 점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두번째 경제 문제다. 경제가 결국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는데, 경제라는 말이 어려우면 쉽게 먹고 살기 문제라고 하겠다.

 

무역을 한다든지 정복을 한다든지, 노예를 부린다든지 하는 일들은 기본적으로 경제와 관련이 있다. 즉, 지리적 위치에서 어떤 경제 문제가 생기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식민지 개척이라든지 소위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것들, 그리고 커다란 전쟁 등은 기본적으로 경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세번째는 어쩔 수 없이 정치다. 정치가 빠질 수는 없다. 몇몇 사람이 함께 모여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에서 말하듯이 지리적 위치 때문에 동양은 경제보다는 정치가 더 힘을 발휘했다면, 같은 이유 때문에 서양은 정치보다는 경제가 더 우위를 점했다고 한다.

 

중국을 예로 들면 이들은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고, 따라서 이들은 운동장을 차지해야 한다, 그래서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적인 정치체제를 확립하여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반대로 서양은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란다. 골목길은 누가 완전히 차지할 수가 없다. 여러 골목들에서 각자 왕초 노릇을 하거나, 다른 골목으로 원정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여기서는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가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다.

 

이것이 바로 서양 역사의 원점이라는 것이다.

 

참 명확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또 서양의 중심의 역사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자괴감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것을 말끔하게 씻어내줄 수 있는 책이다.

 

역사란 한 가지 해석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또 자신의 눈으로 제대로 해석해야만 자신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음을 이 책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오직 한 가지 교과서로 같은 내용의 역사만을 배우게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떠올리고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씁쓸한 정도가 아니라 우려가 된다. 그것은 가장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답지 않은 역사공부가 될테니 말이다.

 

여하튼 이 책 지구라는 곳을 서로 빼앗는 과정으로 서양의 역사를 서술한 책. 서양 역사를 보는 다른 눈을 키울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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