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일, 한 그릇의 밥을 먹는 일. 밥을 위해 내 몸을 굴리는 일. 내 정신과는 상관 없이 내 몸을 밥에게 넘기는 일.

 

하여 다른 삶을 꿈꾸는 일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일과 같이 괴로운 일.

 

그러니 결국 한 그릇의 밥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는 일은 치욕에 다름 아니고, 이런 치욕의 끝은 꿈꾸는 것을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는 일.

 

이 자리를 떠나 다른 자리로 가는 일. 그렇게 이동한 뒤에 남은 빛나는 철길을 남겨두는 일.

 

밥은 우리 삶을 지탱해준다. 지탱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밥에 매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해도 밥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하여 밥은 자신을 옭죄는 굴레가 되고, 꿈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고통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은 꿈을 꾸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꿈을 꾸어야 살아갈 수 있다. 밥만으로도 살 수 있으나 온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꿈을 꾸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꿈을 꾸고, 그 꿈이 자신의 생을 위협할지라도 꿈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게 한다. 그렇게 기차가 철길을 통해 다른 곳으로 가듯, 우리는 꿈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된 뒤에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그 길을 걸어왔는지 흔적을 남긴다. 그 때는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빛나게 되는 흔적을.

 

밥이 치욕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밥은 우리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밥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한 경상남도 지사처럼, 밥으로 사람들을 치욕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적어도 밥은 우리를 치욕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제공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밥이 꿈을 뒷받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몫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의도로 쓰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헌책방에서 구한 이성복의 "남해 금산" 시집에 실려 있던 '치욕의 끝'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치욕의 끝

 

치욕이여,

모락모락 김 나는

한 그릇 쌀밥이여,

꿈꾸는 일이 목 조르는 일 같아

우리 떠난 후에 더욱 빛날 철길이여!

 

이성복, 남해 금산, 문학과지성사. 1998년 재판 6쇄.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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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소통, 문학토론의 내용과 방법 진화하는 국어교육학 2
이인화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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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소통'이라고 했다. 해석이란 자신이 읽은 작품을 자신의 잣대로 분석해내는 작업이라면 소통이란 그런 작업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 다른 말로 문학을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해석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나은 해석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학교에서 문학을 배우면서, 특히 소설을 배우면서 이러한 해석 소통에 이르고 있는가?

 

오히려 우리는 해석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해 교사에 의존하거나 참고서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만의 생각으로 문학에 다가간다는 것은 웬지 정답에서 멀어지는 것 같고, 무언가 잘못된 읽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는 않은가.

 

그러므로 해석도 제대로 되지 않고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가 바로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아니던가.

 

슬프게도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 개개인의 생각보다는 주어진 정답을 찾는 행위가 더 중요하고, 이러한 일들은 수능이라는 전국 최대 행사에서 정점을 찍게 된다.

 

그러니 문학을 읽어도 정답 찾기에 집중하지 그 문학에 제 나름의 해석을 가하고, 그런 해석들이 서로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고, 소통을 통해 좀더 나은 해석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게 문제다. 문제가 나왔으므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은 이 점에서 해석 소통에 대한 해결책을 나름대로 궁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박사 학위 논문을 보완한 책이라고 하는데... 해석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교육에 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치하게 작업한 책이다.

 

이러한 작업이 학교 현장에 적용이 되면 좋으련만, 읽으면서 자꾸만 이 책은 책으로서만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안타까웠다.

 

연구자가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연구 작업을 할 때와 그 연구 작업의 결과를 교육현장에 적용할 때는 차이가 많은데...

 

교육현장은 이론과는 달리 온갖 변수들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수는 학생이고, 교실에 있는 학생수이며, 또 시험이라는 거름장치이다.

 

이런 변수들이 이론의 적용에 거리가 있게 하는데... 그럼에도 이론이 필요한 이유는, 그 이론이 세세한 실천과정까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즉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이런 책과 같은 이론서이고, 이런 방향성을 인식하고 실제로 학교에 적용하는 것은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데...

 

갈수록 문학과 멀어지고 있는 시대, 어쩌면 문학을 읽고 깊이 있게 해석하고, 소통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더 멀어지는지도 모른다.

 

문학과 멀어지면 문화를 형성하는데도 문제가 있으니, 학생들, 또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문학을 읽고 해석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갖도록 사회가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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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제는 완연한 봄. 먼저 나왔던 꽃들이 지고, 새로운 꽃들이 다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정당이 그 정당이고, 그 정치가 그 정치고,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데, 실감 경제는 더 안 좋아지고 있고.

 

한 마디로 무언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괴리가 심하게 생기고 있는 세월이지 않나 싶다.

 

이런 때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지식인들 아니겠는가.

 

이런 지식인들 이제 역할을 해야 할 때인데, 지식인들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 불온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고, 그러한 불온한 사람들이 세상을 건강하게 한다.

 

그 역할, '삶이 보이는 창'이 해주고 있다고 보는데...

 

이번 호에서 '저항하며 창조하는 우리 시대의 문학'에서 문인들이 이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고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우리가 다르게 보는 시각을 제공해주고,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준다.

 

그래서, 가끔 '삶창'을 읽자.

 

우리 시대의 감추어진 면, 우리가 놓치고 있던 면을 '삶창'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삶창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깨어 있어야 함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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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내 마음 속에 피워야 하는 꽃들

                      - ‘세월로 닫힌 생명들, 세월을 넘어 꽃 피게

 

아직은 차가운 땅,

새초롬히 고개 내민 제비꽃

하나 하나는 차가움에 몸을 떠나

함께 하며 따스한 바람을 맞아 몸을 흔든다.

머리 위엔 산수유꽃이

추위를 잊히려는 듯 노란 빛을 발하고

산수유꽃 위론 목련이

환하게 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다.

세상이 환하고, 따뜻해지니

새생명들은 연둣빛 몸을 가지런히 내어놓고

길 가 개나리꽃들이 노란 자태를 뽐내고

매화꽃들은 설화(雪花)와는 다른 따스함을 보내고 있다.

부끄럽다고 살포시 얼굴을 드러내는 진달래꽃

꽃천지를 만들 벚꽃들이 몽우리를 맺고

바람은 동장군을 잊고 봄처녀를 맞이해

뜨거운 사랑의 숨결을 내뿜는다.

세상이 조금씩 생명의 온기로 더워지고

땅은 그 온기로 더욱 부드러워지는

이 봄에,

 

차마

따스한 바람도 사랑의 숨결도 느끼지 못하고

꽃도 피우지 못하고

새생명이 재잘거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엄혹한 동장군의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 생명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세월이 약이라고 곧 잊게 된다는 말을 버리고

세상 봄에 피어야 하는 꽃들을

내 맘 속에 피게 해

봄이 오면

언제나 봄이 오면

세상의 꽃들과 함께

내 마음 속에 피워야 하는 꽃들이 있음을

잊지 말자고, 꼭 기억하자고……

이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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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람이다.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하게 된 이후로 요즘만큼 문제가 된 적이 있을까? 자신들의 삶터를 유일하게 없앨 수 있는 존재, 천재지변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구를 멸망으로 이끌 존재가 바로 사람이 아니던가.

 

이를 반대로 말하면 지구를 살릴 존재도 바로 사람이라는 말이다. 사람,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꽃'이다.

 

지구를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꽃.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정말 꽃보다 아름답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꽃밭이다. 아름다운 꽃밭.

 

언제까지나 사람들이 문제로 남을 수가 없기에, 그런 꽃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이 꽃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고형렬의 시집을 헌책방에서 구했다. 주욱 읽어가는 데, 따스함을 드러내는 시들이 많다. 그 중에 이 '사람꽃'이라는 시. 정말, 이렇게 사람들이 꽃이 되어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사람꽃'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

 

사람들이 사람꽃이 되기 위해서는 나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된다. 물론 꽃은 홀로 있을 때도 아름답지만, 함께 있을 때, 또 다른 것들이 서로 어울려 있을 때 더 아름답다. 그러니 우리 사람뀿들도 다양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살아야 아름다울 것이다.

 

그때 이 시 '사람꽃'이 마음 속으로 쏙 들어올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만큼 나 자신이 먼저 '사람꽃'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사람꽃

   

복숭아 꽃빛이 너무 아름답기로서니

사람꽃 아이만큼은 아름답지 않다네

모란꽃이 그토록 아름답다고는 해도

사람꽃 처녀만큼은 아름답지가 못하네

모두 할아버지들이 되어서 바라보게,

저 사람꽃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

뭇 나비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여도

잉어가 아름답다고 암만 쳐다보아도

아무런들 사람만큼은 되지 않는다네

사람만큼은 갖고 싶어지진 않는다네

 

 

고형렬, 성에꽃 눈부처, 창작과비평사, 1998년 초판,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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