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괜찮아 - 꿈을 찾는 진로의 심리학 사계절 지식소설 8
이남석 지음 / 사계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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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괜찮아"

 

정말 어린이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청년들에게, 장년들에게, 노년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나쁜 짓은 빼고'라는 고양이의 말을 명심하고.

 

진로에 대해서 교육 당국이 관심을 가지고 전국적으로 '자유학기제'라는 것을 실시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적어도 한 학기는 시험이 없는 학기로 정하고, 그 기간에 자유로운 체험들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제도이다.

 

시험에서 아이들을 해방시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 기간에 다양한 경험을 해봄으로써 자신의 진로를 탐색해 나가는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하느라 고민이 많다고 들었는데, 내년에는 전국적으로 모든 중학교에서 실시된다고 하니, 과연 사회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 나와 있듯이 이렇게 우려를 하는 것은 해보지도 않고 머리 속으로 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자신을 가두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머리 속에서 문제점을 생각하는 것은 좋다. 문제점을 생각했으면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나아가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려고 해야 한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쩌면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진로교육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숱한 어려움에 처할텐데, 그 때마다 "나는 안 돼."라고 좌절하고,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게 학교 교육을 통해 그런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교육. 그것만한 진로 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이 책은 학생들의 진로 교육에 관한 책이다. 진로 교육에 관한 책인데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소설 형식으로 썼다. 그래서 한 편의 이야기를 읽듯이 잘 읽힌다.

 

주인공인 태섭이의 변화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서 자연스레 따라가게 된다. 따라가면서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더 좋구나, 이렇게 진로 교육을 하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로 교육이 단지 진학 교육이나 직업 교육이 아닌, 자신의 삶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교육이며, 그때 그때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교육이어야 함을 이 책을 통해서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았는데...

 

진로는 아스팔트가 딸린 평탄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고속도로와 같지 않다. 진로는 산 속으로 난 꼬불꼬불한 작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걸어가면서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가야 하는 오솔길이다.

 

그 오솔길은 목표보다는 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길을 가는 순간, 멈춰 선 순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치우는 순간, 개울을 건너는 순간, 또 모퉁이를 돌아서 새로운 풍경이 보이는 순간 순간들이 모두 즐거움이다.

 

그 길이 바로 진로이고, 진로는 결과가 아니라,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성공이라는 목표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의 즐거움을 알게 하는 교육, 그것이 진로 교육이다.

 

공부 스트레스를 받던, 친구들과의 경쟁을 생각하던 태섭이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성장소설의 형식을 빌린 진로 탐색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자체가 재미있다. 책의 형식이 곧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진로 교육과 일치한다.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계획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이 책에서 바람직한 진로 교육이 아니라고 이미 나와 있으니,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무작정 해보라는 것으로 정리하고 싶어지게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 라는 말... 자신이 원하지 않은, 또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성공은 실패를 부른다는, 반대로 자신이 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일들은 곧 성공의 어머니가 된다는... 자신의 인생을 능동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당연한 일인데,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 책.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또 그 뻔한 소리야?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은 고등학교 1학년 생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이 하고 있는 고민, 그들이 할 수 있는 고민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는데 있다.

 

그냥 주인공을 따라 읽어가면 아마도 청소년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진로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해 본 학생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발 더 나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로, 진로 하는 이 시대... 이런 진로에 관한 책, 읽고 이야기해보면 참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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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 땅은 누구의 것인가 e시대의 절대사상 24
헨리 조지 지음, 김윤상 외 옮김 / 살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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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야기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한강의 기적인데 빈부격차가 줄어들었는가?

 

실질적으로 빈부격차가 줄어들었는가, 아니면 늘어났는가. 혹 상대적 박탈감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통계 수치가 우리나라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지니계수가 결코 줄어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경제성장이 일어났는데, 소위 사회가 진보되었는데 빈곤이 줄어들지 않고 더 늘어났는가 질문을 해야 한다.

 

이런 질문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경제 진보가 빈부격차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보가 빈곤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거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책이 바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다.

 

그는 그 해결책을 토지에 부과하는 조세에서 찾는다. 토지는 우리 인류가 공통으로 지녀야 할 공유재라는 사실,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하면 안되는 공공재라는 사실.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인간들도 함께 공유해야할 존재가 바로 토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 토지로 인해서 얻는 이익을 세금으로 걷어 공공 사업에 쓰이도록 하자고 헨리 조지는 주장한다.

 

우리나라 역시 토지 공개념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지금 현재의 실상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토지가 속해 있다. 그러므로 명목상 토지 공개념인데, 실질적인 토지 공개념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토지로 인해 얻는 이익을 조세로 걷어 공공사업에 투자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는 토지를 국유화하지도 않고, 몰수하지도 않고, 토지에 대한 소유를 인정하되, 사회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토지에서 얻는 이익을 보편적인 세금으로 걷음으로써 다른 항목의 세금을 걷지 않을 수 있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세금 부담을 줄여줄 수 있으며, 토지를 많이 소유한 사람에게도 그다지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사회 전반적으로 진보를 이루고, 그 진보가 빈곤을 타파하는 쪽으로 가게 하자는 주장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 지금, 헨리 조지의 토지 조세에 관한 논의는 참조할 점이 많다. 기본소득 재원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우리가 그의 주장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바로 그의 철학이다.

 

진보가 빈부격차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가 빈부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 모두의 소유가 되어야 할 토지를 소수가 독점하는 사회를 만들면 안된다는 사실, 이미 소유권이 확고하게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소유권을 인정하게 공유재에서 얻는 이익을 사적인 이익이 아닌, 공적인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일, 그런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후대 사람들인 우리들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작은 제목으로 쓰인 '땅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답은 이렇다.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땅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서 나온 이익은 우리 모두에게 고루 분배되어야 한다. 이럴 때만이 진보는 빈곤을 타파할 수 있다.

 

덧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보와 빈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어서 헨리 조지의 그 글을 실었다고 생각했는데, 헨리 조지의 여러 글에서 내용을 뽑아 책을 만들었다.

 

앞부분의 해설은 좋았지만, 이렇게 여러 글에서 발췌하기보다는 그냥 '진보와 빈곤' 전문을 실었으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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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은 손오공 머리의 금테

 

자유로운 돌원숭이

, 하늘, 바다

어느 곳, 거칠 것도 없이

자유자재

모두 내 세상,

자유인 돌원숭이

 

고놈

괘씸한지고

왜 이리 자유로운고,

피조물 주제에

어디 한 번 혼 좀 나봐라.

머리에 둘러 씌워진 금테!

 

꼭 둘러붙어 뗄 수 없는

금테, 떼려 하면 더욱 고통스러운,

잃어버린 자유, 해탈에의 열망.

금테는 질서를 넘어선 자유,

금테를 받아들여 이루는 해탈,

 

천축에 도착한 돌원숭이

드디어 손오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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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늙은 절집 - 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
심인보 글 사진 / 지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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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다양하긴 하지만, 크게 세 가지 또는 네 가지로 나눈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신도들을 거느리고 있는 종교가 불교와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근대화가 시작될 무렵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그들의 모임 장소인 교회나 성당이 도심 한 복판에 있다. 이 장소는 우리가 찾아가기에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장소 고유의 특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물론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건물을 독특하게 짓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반면에 불교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었고, 또 수행을 중시하다 보니 도심에서 멀어져 산 속에 있는 경우가 많다.

 

큰 절은 도심에 있기도 했겠지만, 대부분의 절은 산 속에 있다. 산 속에서 산과 물과 어울리면서 그 자체가 자연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절에 가보면 그 위치 선정에 놀라게 되고, 감탄을 하게 되는데... 가만히 있으면 무언가 마음이 편안해 지는 느낌을 받는다.

 

앞으로 탁 트인 곳을 바라보면서 자신 마음을 열기도 하고, 뒤로 절을 포근히 감싸안고 있는 산을 보면서 더 많은 것을 포용하려는 마음을 지니기도 하고, 세월의 흐름 앞에 여기 저기 퇴색해진 단청들과 건물들을 보며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렇듯 절은 최신의 건물보다는 오래된 건물이 더 정감이 있다. 최근에 지은 건물들에는 이상하게 돈 냄새가 난다.

 

몇 달 전에 지라산 쌍계사에 들렀을 때, 마음이 편안하게 놓인다기보다는 무언가 돈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느낌으로 편치 않았었는데... 마냥 옛것을 지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옛것이 지닌 정신만은 계승했으면 좋겠다.

 

제목이 "곱게 늙은 절집"이다.

 

'늙은'이라는 말에 우리는 자칫 '추함'을 연상하기도 하는데, '늙음'은 추함이 아니라 세상을 받아들임이니, 곧 포용이다.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상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지니게 되는 때, 그 때가 바로 '늙음'의 때인데... 절이 곱게 늙으면 참 보기 좋다.

 

그 자체로 마음이 편하다. 그 절의 문화적 가치나 사상적 위치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절에 가서 가만히 머무르면 된다. 몇 시간이라도 좋고 며칠이라도 좋다. 그냥 있으면서 절과 함께 호흡하면 된다.

 

늙은 절은 언제 가도 받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뭐, 너무 유명한 절은 굳이 갈 필요가 없다. 그런 절에 갔다가는 늙음이 주는 여유로움과 편안함 대신에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유명세를 치르는 절을 보러 온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더 피곤할테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법주사'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처음 들어본 절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절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동안 마음은 지은이와 함께 한다. 내 마음도 그 절에 가 있다. 그 절에서 함께 하고 있다. 늙음이 주는 여유와 편안함을 내 마음이 받아들인다.

 

그런 절, 언제든 가서 '곱게 늙은 절'과 함께 그 일부가 되어보는 경험을 해 보고 싶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절 이름들, 지은이가 안도현의 시를 인용해서 말하듯이 굳이 그 이름들을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우리가 모르는 절이라면, 그 절은 이미 '곱게 늙은 절집'이 되어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 절집을 자신이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덧글

 

읽으면서 두 군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먼저 16쪽. 화암사에 대한 설명 중에 '신라 진성여왕 3년(694)일교 국사가 창건하였으며...이곳에서 원효, 의상대사가 수도하였고'라 했는데...

 

진성여왕은 신라 말기의 여왕이고 재위 기간이 887년에서 897년이니 진성여왕이 아니라 효소왕(재위 기간 692-702) 3년이라고 해야 맞다.  그리고 의상대사는 702년에 입적했으니 이 절에서 수도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원효대사는 686년에 입적했다고 되어 있으니, 이 절에서 수도했을 리는 없다.

 

다음, 435쪽. 선운사 도솔암에 대한 이야기에서 '어린 잎으로 떡쌈을 해 먹는 굴참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뒤에 굴참나무가 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굴참나무가 아니라 떡갈나무일 것이다.  

 

마음이 편해지는 책인데... 품절이 되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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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는데, 그 발전과 더불어 진화한 바이러스들이 인간을 괴롭힌다.

 

진화한 바이러스가 인간을 괴롭히면 인간은 또 치유책을 만들어내고, 바이러스는 또 진화를 하고...

 

'메르스'라는 질병이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치사율이 무척 높은 질병이라고 하고, 아직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질병에 걸릴 확률이 예전에는 거의 없었다면, 이제는 지구가 한 마을이 된 상태니, 어떤 질병에 걸릴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총과 같은 무기만이 아니라, 우리들과 함께 해온 세균들, 또 새롭게 등장한 세균들 아닌가.

 

최근에 상당히 많이 읽혔던 책인 "총,균,쇠"도 있듯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무기에 의한 학살보다는 서양사람들과 함께 온 세균들로 인해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세계화된 시대에는 특히 바이러스에 대해서 더 조심해야 하는데... 몇 년 전에는 사스 기승을 부렸고, 신종플루라고 엄청난 공포감을 조장했던 질병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독감에 불과해졌고, 이 다음에 '에볼라 바이러스'라고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질병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데... 메르스도 나온 지가 몇 년 안되는데...

 

2012년에 처음 발견이 되었다는데, 그럼 충분히 조심해야 할 시기를 거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런 질병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그들은 힘있는 사람들보다 치료를 받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 정부가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만의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현대의 질병에 대처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데...

 

딱히 지금 이런 현상과 연결 되지는 않지만, 장석남의 시집 "새떼들에게도의 망명"을 읽으면서 황량한 풍경이 그려지는 시를 발견했다.

 

그냥 움직이는 생명체가 하나도 없는, 찬 눈이 내려 세상은 얼어붙어 있고, 앙상한 가지들이 추위에 떨고 있으며, 가느다란 길들이 집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저녁이 되어도 따스한 불빛 하나 비추지 않는 집들. 그런 마을.

 

한 눈에 이런 모습이 들어온다. 마음이 서늘해진다. 지금 우리들의 마음이 바로 이런 집과 같은 상태 아닐까.

 

우리는 이런 겨울 입구에 서 있지 않을까.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데... 질병까지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데... 이런 마을에 들어와 따스한 불빛을 켤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리워지는데...

 

3년 전 발생한 '메르스' 치료법도 있을테고, 대책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제대로 대처한다면 이 시에 나오는 황량한 겨울이 따스한 봄으로 바뀌게 되겠지.

 

시를 보자. 제목이 '겨울 동구(洞口)'다.

 

겨울 동구

잎 가지지 못한 삶이 서 있고
사람 없는 집들이 즐비한 길 위로
밭이 있고 포도나무가 있다
포도나무는 밭을 포도밭으로 만들고 있지만
길들이 모두 집에 와 닿는 저녁이 와도
빈 집들은 이 마을을
빈 마을 이외로는 만들지 못한다
잎 가진 삶이 다 유배당한
겨울 동구

장석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사, 1992년 2쇄.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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