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한 번만 더 날자꾸나 우리학교 작가탐구클럽
김예리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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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제대로 읽지는 않지만 이름만은 기억하는 작가. 그가 아마 이상이 아닐까 싶다.

 

이상이라는 이름이 필명이고, 본명이 김해경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고, 그의 대표작이 소설로는 "날개"이고, 시로는 "오감도"라고 하는데, 정작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경우.

 

작가가 작품보다 훨씬 더 유명한 경우다. 이상은.

 

그의 삶 자체가 파란만장했고, 또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떴기에 신비주의까지 생기고, 그의 작품이 초현실주의적이라고 하니 더 신비감이 생기는 작가.

 

어릴 적 큰아버지 집으로 양자 들어가고, 본집은 가난 그 자체고, 그는 요즘 말로 하면 서울공대에 해당하는 경성고공을 나와 총독부 건축기사가 되었지만, 그림에 빠지기도 하고, 결핵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기도 하고, 금홍이를 비롯한 여러 여자들과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동경에 가서 죽은 삶.

 

자신의 삶을 소설로 옮겨 놓았다고 볼 수 있는 "봉별기", "종생기"가 있으니 정말 특이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일 것이다. 그는 일제시대가 시작하던 해에 태어나서, 해방을 보지 못하고 스물 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떴으니, 얼핏 보면 그의 삶은 비극이다. 그러나 과연 비극일까? 그가 하지 못한 일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여 그는 종생기에서 자신의 죽음은 '노사'라고 한다. 충분히 살았다는 뜻이다. 아니, 오히려 늦었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오죽했으면 김유정을 찾아가 함께 자살하자고까지 했을까.

 

이런 그의 삶은 우리에게 흥미를 준다. 그럼에도 이 흥미가 작가에서 끝난다. 작품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 이유는 그의 작품이 읽기에 힘들기 때문이다.

 

내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선 그는 띄어쓰기를 무시했다. 그러니 띄어쓰기에 익숙한 우리의 눈이 자꾸 글자들을 겹치게 읽어낸다. 읽기에서 턱 턱 장애물에 부딪치니 내용 파악은 뒷전이다. 이것이 이상의 작품을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참, 나.

 

이런 이상에 대해서 좀더 쉽게 설명해주려는 의도로 만든 책이 바로 "우리학교 작가클럽" 시리즈의 한 권인 이 책이다.

 

이상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날개에서 구절을 따서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했다. 이상이라는 작가를 작품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물론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같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으면 이상에 대해서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전해주겠다는 의도로 썼으면 좋았을텐데, 무언가 좀 전문적인 냄새가 난다.

 

대학교수가 써서 그런가? 대학생을 가르치던 사람이 중고교 학생들이 어느 수준이 되어야 잘 읽는지 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이건 중고교생들이 읽기에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중고등학교 교사와 공동작업을 해서 편제나 문체, 또는 내용을 조금 바꾸었으면 이상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학생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상의 작품이 충분히 실려 있고, 그의 출생에서 죽음까지를 연대기적으로 다루고 있기에 끝까지 읽기만 한다면 이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책이다.

 

더 많은 내용을 채워가는 것은 그 다음 일이고. 그러니 우선 읽어 보라. 자꾸 읽어야 한다. 읽어서 뇌를 자극해야 한다. 그래야 이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덧글

 

하나. 139쪽에 마지막 부분 글들이 잘려 나갔다. 사진 자료에 가려 몇몇 단어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은 편집 과정의 실수일 듯.

 

. 이상의 작품은 대부분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한다.

 

셋. 구인회 이야기가 없다. 이상에게 구인회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박태원이든, 김기림이든, 김유정이든, 이태준이든... 그가 소설 "김유정"에서 쓴 내용은 이런 구인회 활동이 바탕이 되었다. 책의 맨 뒤에 '작가 탐구 활동에 구인회 이야기가 나오지만, 본문에서 언급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넷. 이상을 저항시인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과연 그런가? 시란 하나로 해석되지 않고, 다양하게 해석되어서 그 묘미가 살아난다지만, 이상의 시들이 첨예한 민족의식을 담고 있다는 얘기는 조금 멀리 나아간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책에서 이런 얘기는 넘어가도 되지 않았을까. 이런 얘기는 전문적인, 적어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에서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

 

저항시의 반열에 드는 시로 "열하약도 No.2(미정고)"와 "출판법"이 있다. 한 번 찾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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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빙하기를 맞으며

                        - 비정규직 양산의 세상에서


엄동설한!

빛나는 가을이 지나고,

세상이 하얗게 덮여

뼛속까지 동장군 칼날이 들어올 때,

태초에

유목민들은

세상은 끝났다고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나갔으니

유목민들에게

세상은 

원형이 아니라

직선이었으므로

하얀 세상은

세상의 끝이었으므로,

또 다른 초록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으므로.

하여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세월이 흘러 흘러

정착민이 된 인간에게

하얀 세상은

곧 다가올 푸른 세상에 대한

예고였으니

그들에게 세상은 돌고 도는

원이었으니.

하얀 세상에서

즐기고 쉬면 되는 것이었으니

정착민에게 하얀 세상은

쉼터이었으니

인류의 의식이 개명한 이래

하얀 세상은

세상의 끝에서 쉼터로 변해왔는데……


다시 돌아온 하얀 세상은

원형도 직선도 아닌

나선형 직선이었는지

더 춥고 더 힘들게

칼날 끝에 서게 하였으니

가야 할 곳도, 머물 곳도 없는

현대판 유목민들은

갈 곳을 잃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있을 뿐인데……


역사는 순환한다지만

지금 겨울은 너무도 가혹해

수천 수만 년 일궈온

정착민의 생활이 깨져

어디론가 쫓겨 가고 있는

삶뿐이니.


지금은 빙하기.

다시 빙하기를 맞으며

빙하기에도 끝이 있음을

기억하는 

기억해 내어 견뎌야만 하는

추운 겨울

삶의 빙하기.


1)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 천규석의 책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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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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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학은 어렵다. 그런 선입견이 있다. 그리고 사실 과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학생이 아니고서는 학창시절에 제일 어려운 과목으로 과학을 꼽는 학생들이 많다.

 

과학은 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에 수학에서 고전을 하는 학생들이 과학을 좋아할 수가 없다. 게다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과학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시험을 위해서 과학에 접근하는 대다수의 학생에게 과학의 아름다움, 과학의 즐거움을 느끼리라 생각하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

 

이런 상태에서 뛰어난 과학자가 나올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드는데, 현대 과학은 특출난 한 개인에 의해 이루어진다기보다는 함께 하는 가운데서 성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전적인 말을 곱씹어보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더 좋다고 했으니, 과학을 즐기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서 과학적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과학고라는 과학 특수 학교가 많이 만들어졌고, 이런 과학고도 모자라 영재학교라고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하는 특수 과학고가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기초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업적을 낸(이것도 좀 우습기는 하지만... 업적을 내기 위해서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좋아서, 즐겨서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많아져야 하는데, 다만, 이렇게 즐기는 학생이 많으면 성과는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 말을 쓴다) 사람이 아직도 없는 상태니(이를 아주 간단하게 노벨상으로 국한하자면), 과학고의 운영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문과와 이과의 구분도 없어져 모든 학생이 과학을 공통으로 배워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성과가 나올까는 의문이다.

 

과학고와 같은 특수학교, 또 과학을 모든 학생들이 특정한 나이가 되도록 배워야 한다는 의무, 이런 것 말고 정말로 과학을 좋아하고, 즐기고, 또 그러한 과학으로 자신의 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은 이렇게 과학에 대해서 흥미를 잃은 사람들, 또 과학은 너무 어렵다고 아예 접근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과학도 재미있음을, 즐거움임을, 또 아름다움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딱딱한 과학이론에 대한 건조한 설명이 아니라, 과학자의 일화와 연결지음으로써 과학이론에 좀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케플러의 난제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과학의 발전을 이루어낸 인물들에 관해서 널리 이야기함으로써 관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 이 책에서는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의 관심을 불어일으킬 작정이다. 즉 특정한 물음이나 성찰에 대한 명제들을 그것을 최초로 던진 인물과 직접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방식을 사용하려고 한다.' (6-7쪽)

 

이런 목표를 지니고 슈뢰딩거의 고양이부터 시작하여 노벨상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 생리학 전반에 걸쳐 우리에게 친숙한 또는 생소한 용어들을 과학자의 삶과 연결지어 설명해주고 있기에, 과학이론에 대해서 골치 싸매며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과학이론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기보다는 과학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보물창고로 들어가 보물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 보물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지도를 손에 들고 우선 한 걸음 내디디면, 이제는 지도에서 찾을 수 있는 길을 더욱 구체적으로 갈 수 있는 과학에 대해 찾으려 하게 된다. 그리고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목표로 하는 것이니까.

 

과학이 자기와 동떨어진 또는 상관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자. 과학은 바로 우리 삶임을.

 

내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고, 또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길테니.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의도한 바일테고... 한 가지 이 책에서 누차 강조하고 있는 점은 과학은 과학으로써만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위대한 과학자들도 꿈에서 또는 신비로운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발견을 정식화하기도 했다는 점. 하여 과학자들이 연구실에 들어앉아 연구를 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공부와 경험을 통해 자신의 과학을 공고하게 만든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과학고라는 특수한 학교를 운영하는 우리나라, 과학고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이 책에 단서를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진정한 과학자를 어떻게 양성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과학고 운영자들이 해야 하고, 그런 질문에 과학의 아포리즘들과 관계된 과학자들의 삶이 실려 있는 이 책은 훌륭한 참고자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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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
한국시인협회 엮음 / 문학세계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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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먹는 음식이 바로 너'라는 말이 있다. 음식은 단지 우리에게 영양소를 제공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역할에서 그치지 않고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이런 말과 통할지 모르겠지만 육식을 주로 하는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고 거칠다고 하고(물론 다는 아니고, 대체적으로라는 말이다), 채식을 주로 하는 사람은 성격이 느긋하고 부드럽다고 하는데, 음식이 사람의 성격에도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발표한 과학자들도 있다.

 

결국 그 나라의 음식 문화는 그 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알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각 나라는 나라마다 고유한 음식 문화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음식을 한식이라고 한다. 유명한 한정식 식당도 있고, 또 한식하면 전주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아예 영어 단어로 기재된 '불고기' 같은 경우는 외국에서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요즘은 한식이 점점 밀려가고 있는 추세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화라고 하여 세계 음식이 많이 들어왔고,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 서비스 사회로 변모되면서 함께 여유있게 밥을 먹던 문화에서 시간에 쫓기는 음식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으니 요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이 역시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한식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한식은 고리타분한 음식으로 취급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들에게는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보다는 서양의 음식 문화가 더 친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우리 음식 문화가 변해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느 시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은데 '식구가 반찬'인지 '사람이 반찬'인지, 하여튼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반찬이 얼마 있지 않아도 맛이 있다는 그런 내용의 시였는데...

 

음식은 혼자 먹을 때보다는 함께 먹을 때 맛이 있고 또 의미가 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마음을 울리던 때가 있었는데, 저녁이 있는 삶의 시작이 바로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것 아니겠는가.

 

최근에 몇몇 교육청에서 주도하고 있는 '학생들 9시 등교' 역시 함께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오라는 이야기 아니던가.

 

그래서 '저녁이 있는 삶'이든 '9시 등교'든 '밥'은 늘 그 중심에 있고, 이렇게 '밥'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공부시간에 대한 사회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사회적 변화도 역시 음식과 관련이 있음을, 그래서 우리 한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한식에 대해서 알리고자 펴 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농협의 협찬을 받아 시인들이 쓴 시들 중에 한식에 관한 시 76편을 모아 놓았다.

 

시 76편에 우리 한식 76가지가 나오는데, 단지 다양한 음식의 종류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우리들의 정서, 문화, 생활습관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음식이 바로 우리들을 결정한다면 눈이 맑고 밝은 시인들이 그를 놓칠 리가 없다. 하여 시인들은 '음식'에 관해서 시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시들 중에 한식에 관계되는, 우리 한식에 담겨 있는 문화를, 정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는 시 76편이다.

 

한 편 한 편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시들인데, 그 시들 중에 이 시가 우리가 꿈꾸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한다.

 

우리 한식의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한데, 그런 음식을 우리는 사회에서, 정치에서, 문화에서 잘 살리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안타깝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이 음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아직 살아있음을 알고 이를 계승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빔밥

          - 오세영

 

음식 나라에선

비빔밥이 민주국가다.

콩나물과 시금치와 당근과 버섯과 고사리와 도라지와

소고기와 달걀-이 똑같이 평등하다.

육류 위에 채소 없고

채소 위에 육류 없는 그 식자재

이 나라에선 모두가 밥권을 존중한다.

 

음식 나라에선

비빔밥이 공화국이다.

콩나물은 시금치와, 당근은 고사리와

소고기는 통나물과 더불어 함께 살 줄을 안다.

육류 없이 채소 없고

채소 없이 육류 없는 그 공동체 조리법

이 나라에선 아무도 홀로 살지 않는다.

 

음식 나라에선

비빔밥이 복지국가다.

각자 식자재가 조금씩 양보하고,

각자 조미료가 조금씩 희생하여

다섯 가지 색과 향과 맛으로 우려내는

그 속 깊은 영양가,

이 나라에선 어느 누구도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다.

 

아아, 음식나라에선

한국이 민주주의다.

한국의 비빔밥이 민주주의다.

 

한국시인협회 엮음,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 문학세계사. 2014년 초판 3쇄. 30-32쪽

 

더 말해 무엇하리.

 

이 시말고도 한식에는 이렇게 서로 어울려 맛을 내는 음식들이 많다. 어느 하나도 배척하지 않게 함께 어울리는 한식의 민주주의.

 

음식에서는 이미 민주주의를 이루었는데, 공화국이 되었는데, 복지국가가 되었는데... 아직 우리는... 이렇게 한식은 이미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그 '오래된 미래'를 현재로 불러내는 일,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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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그 먼 길 - 우리 사회 아시아인의 이주ㆍ노동ㆍ귀환을 적다 우리시대의 논리 15
이세기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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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라고도, 지구촌이라고도, 국경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 살고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더 큰 의구심이 든다. 세계화시대, 지구촌이 맞아?

(국경 없는 마을, 말해요 찬드라. 아빠 제발 잡히지마, 완득이 등등)

 

우리나라도 이제는 바야흐로 다문화국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농촌에 가면 다문화가정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고(이들은 결혼으로), 도시에 가면 공장에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살아서 다문화 주거지역이 있고(이들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들어서 집단 주거지를 이루고 있다), 서울에는 '지구촌 학교'라는 다문화 학교도 있다.

 

그런데, 다문화 다문화 하는데, 이 다문화는 사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문화에 빨리 동화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많이 해석이 된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에 빨리 적응하도록 교육하는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이 책은 이런 다문화 시대, 지구촌 시대에 과연 그러한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닌 불과 몇 년 전 이야기.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1994년이니,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이주 노동자들은 있었을테고, 본격적으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이 이 때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말대로 연수생, 즉 기술을 가르친다는 의미보다는 싼 값에 노동력을 착취하는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들 중 대다수는 차별과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거나 산업현장을 이탈해 불법 이주 노동자가 되기도 했다.

 

그 후 산업연수생 제도는 고쳐졌지만, 이주 노동자에 대한 법적인 처우는 아주 조금 좋아진 정도지, 국제협약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그들에게 아주 불리한 제도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합법으로 들어와도 곧 불법의 신세로 자의적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전락하고 마는데, 이들은 이런 상태로 10년 20년을 우리나라에서 일해도 한 순간에 추방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불법 이주 노동자들의 삶. 그것은 인간이 견디기 힘든  일이고, 이런 이들의 신분을 이용해서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하고,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는 다반사고, 아예 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또 퇴직금을 떼어먹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이들이 '코리안 드림'이라는 꿈을 안고 우리나라에 왔지만, 이들에게 닥친 현실은 차별과 학대, 그리고 돈을 주지 않고 추방하는 그런 고통이 될 경우가 많다.

 

과연 이런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이주민들은 말한다. 우리도 사람이라고. 당신들과 똑같이 빨간 피를 지닌 인간이라고. 우리를 피부색이나 언어로, 또 출신 국가로 차별하지 말라고.

 

그렇게 차이를 보기 전에 같은 사람임을 보라고. 그들은 절규한다. 그들이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도 사람으로, 같은 사람으로 대우해 달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바라는 꿈이다. 희망이다. 이건 희망이라고 하기에도 창피한 일이다. 그렇게 만든 우리 사회가.

 

적어도 이 나라에서 3년 이상 일했다면, 아니 이 나라에서 기간에 상관없이 일하고 있다면 이 나라 사람들이 받는 권리와 동등한 권리를 이들에게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에게도 최저임금을, 근로기준법 상의 노동시간과 초과수당 등의 임금을, 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교육받을 권리를, 쉴 수 있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 아니던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누구가 동등하다는 말이다. 동등한 사람으로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꾸 돈 위에 돈 있고, 돈 밑에 사람 있다는 말로 이 속담이 바뀌어 들리는 것은 웬일일까?

 

지구촌 시대라고 하지만 돈에는 국경이 없고 차별이 없는데, 사람에게는 국경이 있고 차별이 있으니, 지구촌, 세계화는 돈에만 해당이 되는지...

 

그래서 힘있는 나라에 온 사람들은 같은 이주민임에도 대우받고 존중받는데, 못 사는 나라, 힘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차별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도 절절한 차별의 현장, 그러나 사람이 살아 있는 현장의 모습이 이 책에 담겨 있어서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이기에, 나 역시 알게모르게 이들을 차별하는데 가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가만 있는 것이 차별에 가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적어도 주변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보면 시선을 피하는, 찡그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하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우리는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순혈주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성이 인간을 지금의 인간으로 만들었을텐데, 무슨 순혈?

 

이 책에 나오는 말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36쪽

 

말을 바꾼다. 대동소이(大同小異)

 

그들과 우리는 이것이다. 화이부동, 같지는 않지만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이, 우리는 아주 많은 부분에서 같고, 아주 적은 부분에서 다를 뿐이라고.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고. 적어도 국경은 돈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 사이에도 없어야 한다고.

 

이 책은 그러한 국경, 마음의 장벽을 없애야 함을 생생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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