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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그 먼 길 - 우리 사회 아시아인의 이주ㆍ노동ㆍ귀환을 적다 ㅣ 우리시대의 논리 15
이세기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4월
평점 :
세계화 시대라고도, 지구촌이라고도, 국경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 살고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더 큰 의구심이 든다. 세계화시대, 지구촌이 맞아?
(국경 없는 마을, 말해요 찬드라. 아빠 제발 잡히지마, 완득이 등등)
우리나라도 이제는 바야흐로 다문화국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농촌에 가면 다문화가정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고(이들은 결혼으로), 도시에 가면 공장에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살아서 다문화 주거지역이 있고(이들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들어서 집단 주거지를 이루고 있다), 서울에는 '지구촌 학교'라는 다문화 학교도 있다.
그런데, 다문화 다문화 하는데, 이 다문화는 사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문화에 빨리 동화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많이 해석이 된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에 빨리 적응하도록 교육하는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이 책은 이런 다문화 시대, 지구촌 시대에 과연 그러한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닌 불과 몇 년 전 이야기.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1994년이니,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이주 노동자들은 있었을테고, 본격적으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이 이 때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말대로 연수생, 즉 기술을 가르친다는 의미보다는 싼 값에 노동력을 착취하는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들 중 대다수는 차별과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거나 산업현장을 이탈해 불법 이주 노동자가 되기도 했다.
그 후 산업연수생 제도는 고쳐졌지만, 이주 노동자에 대한 법적인 처우는 아주 조금 좋아진 정도지, 국제협약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그들에게 아주 불리한 제도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합법으로 들어와도 곧 불법의 신세로 자의적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전락하고 마는데, 이들은 이런 상태로 10년 20년을 우리나라에서 일해도 한 순간에 추방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불법 이주 노동자들의 삶. 그것은 인간이 견디기 힘든 일이고, 이런 이들의 신분을 이용해서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하고,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는 다반사고, 아예 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또 퇴직금을 떼어먹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이들이 '코리안 드림'이라는 꿈을 안고 우리나라에 왔지만, 이들에게 닥친 현실은 차별과 학대, 그리고 돈을 주지 않고 추방하는 그런 고통이 될 경우가 많다.
과연 이런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이주민들은 말한다. 우리도 사람이라고. 당신들과 똑같이 빨간 피를 지닌 인간이라고. 우리를 피부색이나 언어로, 또 출신 국가로 차별하지 말라고.
그렇게 차이를 보기 전에 같은 사람임을 보라고. 그들은 절규한다. 그들이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도 사람으로, 같은 사람으로 대우해 달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바라는 꿈이다. 희망이다. 이건 희망이라고 하기에도 창피한 일이다. 그렇게 만든 우리 사회가.
적어도 이 나라에서 3년 이상 일했다면, 아니 이 나라에서 기간에 상관없이 일하고 있다면 이 나라 사람들이 받는 권리와 동등한 권리를 이들에게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에게도 최저임금을, 근로기준법 상의 노동시간과 초과수당 등의 임금을, 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교육받을 권리를, 쉴 수 있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 아니던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누구가 동등하다는 말이다. 동등한 사람으로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꾸 돈 위에 돈 있고, 돈 밑에 사람 있다는 말로 이 속담이 바뀌어 들리는 것은 웬일일까?
지구촌 시대라고 하지만 돈에는 국경이 없고 차별이 없는데, 사람에게는 국경이 있고 차별이 있으니, 지구촌, 세계화는 돈에만 해당이 되는지...
그래서 힘있는 나라에 온 사람들은 같은 이주민임에도 대우받고 존중받는데, 못 사는 나라, 힘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차별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도 절절한 차별의 현장, 그러나 사람이 살아 있는 현장의 모습이 이 책에 담겨 있어서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이기에, 나 역시 알게모르게 이들을 차별하는데 가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가만 있는 것이 차별에 가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적어도 주변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보면 시선을 피하는, 찡그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하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우리는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순혈주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성이 인간을 지금의 인간으로 만들었을텐데, 무슨 순혈?
이 책에 나오는 말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36쪽
말을 바꾼다. 대동소이(大同小異)
그들과 우리는 이것이다. 화이부동, 같지는 않지만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이, 우리는 아주 많은 부분에서 같고, 아주 적은 부분에서 다를 뿐이라고.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고. 적어도 국경은 돈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 사이에도 없어야 한다고.
이 책은 그러한 국경, 마음의 장벽을 없애야 함을 생생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