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온갖 일이 일어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이것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들이 일어난다.

 

가정에서도 공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온갖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아이들을 보살핀다는 곳에서도, 기강이 바로 잡히고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는 군대에서도 잡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순수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자연이라는 말처럼 그냥 그렇게 살 수가 없는 세상이라지만, 자꾸만 자기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때문이기도 하겠다.

 

종교의 힘으로, 또는 이성의 힘으로 사람들이 윤리적이 되었으면 하는데, 이 윤리 자체가 이미 인위적이고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를 강조하는 것은 반대로 윤리가 사라졌다는 말이 된다.

 

그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자연스레 피고, 자연스레 살아가는, 그래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들꽃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면 좋겠다.

 

인위적이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고, 무언가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냥 그렇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따지고 계산하고 오로지 제 이익만을 위해 무언가를 계획하는 시대에,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그대로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삶 자체가 시인 사람. 삶 자체가 종교인 사람. 삶 자체가 자연인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안수환의 시집을 읽다. 그가 신학과를 나왔다고 하니 종교적인 내용이 시집에 많이 실렸지만, 기독교든 불교든 또는 우리 토속 종교든 그는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다.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나에 정통하면 다른 것에도 정통할 수가 있다는 말. 내 종교를 진실하게 믿는다면 남의 종교도 진실하게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그런 점에서 모든 종교는 하나로 귀결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움이고, 그 자연스러움은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안수환의 이 시집에서 제목이 된 시 '저 들꽃들이 피어 있는'이 여러모로 읽기에도 좋고, 생각할 것도 많았다.

 

우리는 시가 순수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시도 자연의 자연스러움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다. 그냥 읽어서 마음에 담으면 좋겠다. 이 시는.

 

 저 들꽃들이 피어 있는

 

들쥐들이 다니는 길보다도 시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이 언어로 씻을 수 없음을 절망하는 동안

해가 산마루에 떠오릅니다

허물지 마셔요 당신과 내가 한몸으로

저 해와 산을 가슴에 담는 시간을

허물지 마셔요 어둠이 몰려오면

산딸기 덩굴처럼 엎드린 부끄러움을

우리 곁에 달리 놓을 곳 없습니다

오늘 큰 산과 해를 받들어 몸에 두르고

들꽃들은 저렇게 피었습니다

저것들이 우리 거동 아니면 몸이 아니면

높은 하늘도 땅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들쥐들이 다니는 길보다도 시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허물지 마셔요

시보다도 먼저 오는 깨끗한 시간을

아아 날마다 눈부신 이 부끄러움을

다 뽑아놓은 자리에 들꽃들이 피었습니다

허물지 마셔요 당신과 내가 한몸으로

저 해와 산을 가슴에 담는 시간을

허물지 마셔요 저 들꽃들이 피어 있는 시간을

 

안수환, 저 들꽃들이 피어 있는. 문학과지성사. 1994년 재판.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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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독해 매뉴얼 - 스스로 시를 읽어내는 독해력 강화 노하우
김배균 지음 / 작은사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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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는 예로부터 우리와 함께 했다.

 

예전 사람들도 시서화(詩書畵)라고 하여 시와 글(글씨)과 그림을 잘하는 사람을 선비라고 하기도 했다.

 

그만큼 시는 우리와 함께 있었고, 또 마음이 우울할 때나 기쁠 때나 시를 읊조리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시가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말았다.

 

시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학교 시험에 시가 들어오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마음으로 음미하고 입으로 음미해야 하는 시를 찢고 자르고 해부하여 정답을 찾아내는 훈련을 하면서부터 시는 우리들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마음으로 읽으면 되는 시를 답을 찾아내라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시란 어느 하나로 해석이 되지 않고 사람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또 읽는 시간에 따라서 다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고, 다르게 해석이 될 수밖에 없는데...

 

무엇이 정답이다 하고 찾으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도 헷갈리고 문학적 감수성이 둔한 사람은 더욱 헷갈리는 것이 바로 시에 대한 시험이었다.

 

오죽하면 그 시를 쓴 시인들도 자신의 시가 문제로 나오면 틀리기 일쑤라고 하겠는가.

 

그런데도 시는 배워야 한다. 언어의 사용법을 익히는데 시만큼 좋은 재료도 없고, 시만큼 마음을 울리는 문학 갈래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을 울린다는 점을 잠시 뒤로 미뤄두고 현실적인 시험을 생각하자. 시를 벗어날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하면 시험에서 시를 잘 이해해서 점수를 잘 맞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수험생들은.

 

그러니 일반적으로 문과 성향이라고 하는 아이들은 시를 쉽게 이해하고 시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반면에 보통 이과 성향이라고 하는 아이들은 시만 나오면 고개를 젓고는 한다. 도대체 뭔 말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과 성향의 아이들(이건 보통의 경우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요즘은 문과 이과 성향이라는 말도 잘 쓰지 않으려 않다)에게 시에 대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문과 성향의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시를 정서와 행위와 시공간으로 나누어 그것을 파악함으로써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좋은 점은 시에 나온 언어로 시를 파악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시에 나온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게 하지 않고, 시에 나온 언어만으로도 충분히 시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그 예를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의 구호는 이렇다.

 

뜯어 모아 엮어라! 시어로 시어를 독해하라!

 

시를 읽다보면 시에서 말하는 사람과 말해지는 대상, 그리고 기본적인 감정과 행동이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감정과 행동은 시간과 공간을 바탕으로 하니, 이것들이 바로 시를 이루는 구성요소다.

 

여기에 세세한 표현법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직 정서, 행위, 시공간을 가지고 시를 뜯어 모아 엮어서 시어로 시어를 독해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언뜻 보면 시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우선은 시의 내용을 이해해야 즐기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시 감상으로 가는 첫걸음이자, 시에서 점수를 잘 받는 첫걸음을 떼게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시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던 학생들,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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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새들보다도 오래 난다

                                                       - 비행기 안에서

 

  언제부턴가 우린 새들보다 오래 날게 되었다.

 

  한번도땅에발을디디지않고하늘을나는새가있을까열시간내내하늘에 떠 있으면서앞으로만앞으로만나아가는새가있을까날기위해버리는새가있을까

 

  하늘에 떠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이 버려야 하는지, 지구 역사의 증인 석유부터 먹고 남긴 그릇들, 음식물들, 배설물까지 날기 위해 지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새들보다 오~, ~, 빨리 가는 사람들이 지구를 멸망으로 더 빨리, 더 가까이 이끌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을까.

 

  날지

  않아야

  할

  우리가

  새들보다

  오래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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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면 따져봐 - 논리로 배우는 인권 이야기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최훈 지음 / 창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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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불편하다. 자기 멋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은 '나'가 아니라 '남'에서 출반한다. 즉 나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인권은 참으로 불편하다. 인권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도 불편하다.

 

반대도 있다. 인권은 '나'를 중심에 놓기도 한다. 즉, '나'와 남이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남과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면 인권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도 불편하다. 남의 권리와 나의 권리를 비교해야 하고,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권의식이 부쩍 높아진 요즘이다. 그래서 인권에 대한 책도 여러 권 나왔고, 인권 교육 수준도 높아지고, 인권 교육도 필수가 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여기에 인권센터도 생기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해결되지 않은 인권 문제가 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나라는 성소수자에 관한 인권에 대해서는 참으로 완고하다.

 

서울시에서 추진했던 인권 관련 사업에서도 성소수자 문제로 인해 취소되는 사태까지 벌어지지 않았는가. 성소수자와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사형제도, 그리고 피의자의 신상공개 등등은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다.

 

여기서 논쟁이 되고 있다고 했는데, 이 책을 보면 이는 논쟁이 아니라 그냥 감정에 치우친 주장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논리를 앞세우는 논쟁에서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즉, 제대로 된 전제, 근거를 들지 않고 곧장 주장으로 갔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오류라는 것이다.

 

논리적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여러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여전히 불편할 뿐이다.

 

이 책은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의 후속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해서 의뢰한 책이기 때문이다.

 

김두식의 책이 영화를 중심으로 인권을 풀어갔다면, 이 책은 논리를 중심으로 인권을 풀어갔다고 하면 된다.

 

따라서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지만 자연스레 논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즉 인권을 감정 싸움이 아닌 논리 싸움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문명화된 사회라면 감정에 치우친 논쟁이 아닌 논리를 내세운 논쟁을 해야하고, 논리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비폭력적인 방법이기에 우리는 논리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그런 논리를 인권과 연관시켜 책을 풀어가고 있기에 이 책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더불어 논리력도 향상시키고.

 

많은 논리들이 나오는데, 우리가 자칫 빠지기 쉬운 논리의 함정에 대해서 잘 알려주고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이 책에 나오는 논증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감정에의 호소 논증, 놀리 일탈의 오류, 논점 회피의 오류, 대중에의 호소 논증, 무지에의 호소 오류, 미끄러운 비탈길 논증(오류), 불충분한 통계의 오류(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자연주의의 오류, 정통에의 호소 논증,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한통속으로 몰아가기의 오류 등등

 

이런 논증 방식들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인권 문제들을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룬 인권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사생활 침해, 사상, 표현의 자유, 학생 인권, 양심적 병역 거부, 여성차별, 동성애, 지역,인종 차별, 학력 차별, 장애인 차별, 피의자 인권, 사형제, 동물권

 

아직도 논쟁 중이기도 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 이 중에서도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갈등 중인 문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사상의 자유(국가보안법이 떡 버티고 있다), 동성애(성소수자) 문제, 사형제, 양심적 병역 거부 등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논쟁 중이라기 보다는 갈등 중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힘있는 편이 이 문제에 대해서 인권 침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

 

결국 인권은 불편하지 않으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무언가가 불편해야 하는데, 이는 남을 중심에 놓고 보아야 한다. 나와 남을 동등한 시선으로 볼 때 인권 의식이 싹튼다. 특히 강자에 속하는 사람들, 집단들은 자신들이 아니, 약자에 속한 사람들, 집단의 시선으로 사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불편함을 인식해야만 인권이 실현될 수 있다. 지금 내가 불편하지 않다고, 내게는 지금이 더 편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단 한 사람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 그 사회가 인권이 실현되는 사회일 것이다.

 

그래서 불편하면 따져봐가 아니라 내 불편함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불편함도 찾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 그것이 바로 인권의 출발점일테니...

 

덧글

 

이 책의 106쪽 '애매어의 오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타고 다니는 '말'과 입으로 하는 '말'은 내용상 서로 관련이 없고 우연히 소리가 같을 뿐이므로 동음이의어이지만, '다리'의 경우는 사람의 다리에서 강에 있는 다리로 확장되었으므로 다의어입니다.'

 

아니다. '말'이 동음이의어인 것은 맞는 말이고, 이 책에 나온 '다리'는 다의어가 아니라 동음이의어이다. '다리'가 다의어가 되려면 사람의 다리와 책상이나 의자의 다리를 예로 들어야 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사람의 다리와 강의 다리는 동음이의어이고, 사람의 다리와 책상, 의자 다리는 다의어이다. 이건 바로 잡아야 한다. 적어도 이 책이 논리를 가르치는 책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용어는 정확하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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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미 있지 않은가.

 

'일광욕하는 가구'라니. 가구가 어떻게 일광욕을 하지? 가구는 햇빛을 쬐는 순간 수명이 단축되지 않나? 꼭 그렇지는 않나?

 

하지만 햇빛을 직접 받는 가구가 좋을 리는 없다. 그러니 가구가 일광욕을 한다는 얘기는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얘기다.

 

이 시집은 자연과 인간 생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와 인간 생활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대별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는데...

 

시인은 자연에게서는 한 없는 경외심과 편안함을 지니고 자연을 바라본다. (대숲에서, 순장자처럼, 흐르는 물 : 이 시들에서 자연은 긍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 생활에 대해서는 고쳐야 할 것으로,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다.(이 독성 이 아귀다툼, 바보 고기, 노부부: 이 시들에서는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지금, 우리는 어떤가? 우리 인간의 삶이 어차피 자연과 공존해야 하지만 인간의 삶 자체는 자연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무한한 것으로 여겨졌던 자연이 결코 무한하지 않음을,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자연을 파괴하지만 그 자연이 회복가능할 정도로만 파괴해야 함을 깨달아가고 있는데...

 

시인의 이 시집에서 제목이 된 시는 두 가지를 모두 바라보고 있다. '일광욕하는 가구'

 

왜 가구들이 일광욕을 하겠는가? 홍수라든지, 폭우라든지 하여 집 안에 물이 들어와 가구가 젖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렇게 젖은 가구들을 버리지 않고 다시 쓰려고 하는 모습. 여기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모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태풍이든, 홍수든, 폭우든 자연이 우리에게 가하는 횡포(이를 횡포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하면 자연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를 받아들이며, 그를 다시 자연을 통해 회복하는 모습이 '일광욕하는 가구'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광욕하는 가구

 

지난 홍수에 젖은 세간들이

골목 양지에 앉아 햇살을 쬐고 있다

그러지 않았으면 햇볕 볼 일 한 번도 없었을

늙은 몸뚱이들이 쭈글쭈글해진 배를 말리고 있다

긁히고 눅눅해진 피부

등이 굽은 문짝 사이로 구멍 뚫린 퇴행성 관절이

삐걱거리며 엎드린다

그 사이 당신도 많이 상했군

진한 햇살 쪽으로 서로 몸을 디밀다가

몰라보게 야윈 어깨를 알아보고 알은체한다

살 델라 조심해, 몸을 뒤집어주며

작년만 해도 팽팽하던 의자의 발목이 절룩거린다

풀죽고 곰팡이 슨 허섭쓰레기,

버리기도 힘들었던 가난들이

아랫도리 털 때마다 먼지로 풀풀 달아난다

여기까지 오게 한 음지의 근육들

탈탈 털어 말린 얼굴들이 햇살에 쨍쨍해진다

 

최영철, 일광욕하는 가구, 문학과지성사. 2000년. 41쪽.

 

이 가구들을 자연으로 보지 않고, 우리네 삶으로 보아도 좋다. 우리들 알게 모르게 늙어간 우리들도 한 번 햇볕 쬘 날이 있을테고, 이렇게 버티던 삶들도 쨍쨍해질 때가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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