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구하기 힘든 시집이다.
하긴 1983년에 초판이 나온 시집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1988년 3판이니 지금 구하려면 헌책방이나 가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시란 시대를 막론하고 살아남아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데, 요즘은 너무도 많은 시들과 너무도 많은 책들이 나오고 또 금방 사라져서, 그리고 시가 사람들에게서 멀어져서 좋은 시도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물의 노래"
이 시집을 펼쳐든 이유는 단순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때문이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회고록의 내용을 보면 가관인가 본데... 도대체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다 시대 잘못이거나 참모들 잘못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을 오해해서 그렇다고 한다. 자신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데... 글이란 참, 사람을 떠나면 제 나름대로 생명을 지니고 있어서, 세상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기도 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몇 백 년 뒤에 모든 기록이 사라지고 이런 회고록만 남았다고 하면 그 때 역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내가 이동순의 "물의 노래"를 다시 읽게 된 이유가 바로 이 회고록, 특히 4대강 때문이다. 그는 4대강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운하를 추진했으며, 수질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수질악화를 초래했고, 4대강 개발로 한반도를 잇는 작업을 한다고 하면서 한반도를 토막토막내었기 때문이다.
물은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물은 자신이 본래 있던 곳에서 이어져야 한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본래 있지도 않던 곳에 길을 내고 이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본래 있던 것들을 잇는 것이 아니라 자르고 막고 파괴하는 결과만 내게 된다.
이동순의 '물의 노래'는 댐으로 인해 수몰된 안동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어느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댐을 짓고, 그 댐으로 인해 마을이 통채로 잠기게 되는, 제 살아오던 터전을 잃고 쫓겨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게 몇십 년 전의 일만이 아니라, 4대강 개발로 인해 일어나는 지금의 일이기도 하고, 또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제 살턴 터전에서 쫓겨나는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해군기지를 만든다는 이유로 파괴되어 버리는 구럼비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직장에서 경영악화라는 이유로 쫓겨나는 비정규직들,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물의 노래'에서는 농민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농촌에서 쫓겨났으며, 댐건설이라는 이유로 마을이 수장되는 아픔을 겪었고, 공동체가 파괴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하여 70%정도가 농민이었던 우리나라가 이들을 실향민, 수몰민으로 만들면서 지금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농민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여기에 분단으로 인한 실향민들, 그리고 일제시대 해외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실향민이 된 사람들...
정말 우리는 모두 실향민들이다. 그런 실향민들의 아픔이 이 시집에 절절하게 녹아있다.
특히 댐으로 인한 고통, 이것이 지금에는 4대강 개발로 인한 고통(4대강에는 댐보다는 작지만 보가 설치되어 있어 물의 흐름을 막고 있는 현실이다)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은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고 있는데, 그 물을 소위 힘있다는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개발하여 우리의 생명을 끊고 있는 셈이다.
댐으로 인한 마을 상실, 그 슬픔을 이 시를 통해서 느껴보자.
그러면 우리는 개발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물의 노래'가 긴 장시다. 그래서 그 시의 일부분 1만 싣는다.
물의 노래
'새도 옮겨앉는 곳마다 깃털이 빠지는데'
1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가리
죽어 물이나 되어서 천천히 돌아가리
돌아가 고향하늘에 맺힌 물 되어 흐르며
예섰던 우물가 대추나무에도 휘감기리
살던 집 문고리도 온몸으로 흔들어 보리
살아생전 영영 돌아가지 못함이라
오늘도 물가에서 잠긴 언덕 바라보고
밤마다 꿈을 덮치는 물꿈에 가위 눌리니
세상사람 우릴 보고 수몰민이라 한다
옮겨간 낯선 곳에 눈물 뿌려 기심매고
거친 땅에 솟은 자갈돌 먼곳으로 던져가며
다시 살아보려 바둥거리는 깨진 무릎으로
구석에 서성이던 우리들 노래도 물속에 묻혔으니
두 눈 부릅뜨고 소리쳐 불러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그리움만 나루터에 쌓여갈 뿐
나는 수몰민, 뿌리채 뽑혀 던져진 사람
마을아 억센 풀아 무너진 흙담들아
언젠가 돌아가리라 너희들 물 틈으로
나 또한 한많은 물방울 되어 세상길 흘러 흘러
돌아가 고향하늘에 홀로 글썽이리
이동순, 물의 노래. 실천문학사, 1988 3판. 107-1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