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석주의보는 황색언론사 간판

 

  산길 곳곳에 외로이 서 있다. '낙석 위험' '어쩌란 말야.' 무시하고 달린다. 사실 이 표지가 길을 달리는데 어떤 도움을 준 적이 없다. 아니, 위험하단 사실을 무시하기에, 인식하지, 체험하지 못했기에, 외로이, 외롭게 서 있을 뿐이다. 잘 달리던 길에 우르르 돌들이 쏟아져 갈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 하게 되면 아, 여기

 

"낙석 위험"

 

  낙석주의보가 있었지. 조심할 걸, 대처할 걸, 후회해도 늦은 길. '낙석주의보'가 있으면 위험을 제거해야 하는 걸, 무엇이 '낙석'을 만드는지 알고 없애야 하는 걸, 깨달음은 늘 늦게 오는 것, 표지판은 항상 그곳에 있었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김현승 하면 떠오르는 시는?

 

몇 개가 있다. 아주 유명한 시. 아마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서, 지금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 학창시절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시인이었다.

 

'푸라타나스'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이 시집에는. 아마도 플라타너스의 옛표기일테다.

 

'꿈을 아느냐 네가 물으면,' 이렇게 시작되는 이 시도 유명하고,

 

'더러는 /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로 시작하는 '눈물'이라는 시도 유명하고,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가을의 기도' 도 유명하다. 나는 이 시들을 교과서에서 배웠다. 시험을 위해서...

 

그래서 김현승은 내게는 '고독'의 시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시집 제목에도 '절대 고독'이 있고, 그의 시에 '고독'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또 '까마귀'도 많이 나오는데...

 

그럼에도 이런 교과서적인 시는 얘기하지 않으련다. 자꾸 시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 고독의 시인이라는 김현승에게 이렇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시가 있다니.. 지금 이 시를 읽으며 편안함을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다.

 

일요일의 미학

 

노동은 휴식을 위하여

싸움은 자유를 위하여 있었듯이,

그렇게 일요일은 우리에게 온다.

아침 빵은 따뜻한 국을 위하여

구워졌듯이.

 

어머니는 아들을 위하여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즐겁듯이,

일요일은 그렇게 우리들의 집에 온다.

오월은 푸른 수풀 속에

빨간 들장미를 떨어뜨리고 갔듯이. 

 

나는 넥타이를 조금 왼쪽으로 비스듬히 매면서,

나는 음부(音符)에다 불협화음을 간혹 섞으면서,

나는 오늘 아침 상사에게도 미안치 않은

늦잠을 조을면서,

나는 사는 것에 조금씩 너그러워진다.

나는 바쁜 일손을 멈추고

이레 만에 편히 쉬던 신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의 남이던 내가,

채찍을 들고 명령하고

날카로운 호르라기를 불고

까다로운 일직선을 긋는 남이던 내가,

오늘은 아침부터 내가 되어 나를 갖는다.

 

내가 남이 될 수도 있고

또 내가 될 수 있는

일요일을 가진 내 나라 - 이 나라에

태어났음을 나는 언제나 아름다와한다.

 

김현승, 김현승-한국현대시문학대계 17. 지식산업사. 1983년 3판. 125-126쪽. 

 

시인의 이 즐거움이 누구에게나 통하였으면. 이제는 세계적으로 하루 8시간 노동이 아니라, 6시간 노동으로 줄이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노동시간에 대하여는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주5일 노동, 주당 40시간 이하가 아니라, 주5일 노동 주당 30시간 노동이 정착되어야 할텐데...

 

그래야 시인이 '이 나라에 / 태어났음을 나는 언제나 아름다와한다'고 노래했듯이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이 나라를 기꺼이 노래부르며 지낼 수 있을텐데...

 

'저녁이 있는 삶'에 이어서 이제는 '주말이 있는 삶'이 확실히 보장되는 시대가 되어야 하는데... G20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절망의 시대일수록 시는 우리 곁에 와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절망의 시대에 무슨 서정시가 필요하냐가 아니라, 절망의 시대이기 때문에 서정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

 

 

'승산의 유무나 유효성, 효율성 같은 원리들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관한 이야기... 그것은 시인의 언어이며, 그것이 서정시다.' (110쪽)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사람이 사람에게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승산 유무로따지자면 소수자는언제나 패한다. 효율성이니 유효성이라는 것으로는 자본에 진다. 기술이 없는 인간은 기술이 있는 인간에게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원리로서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 (110-111쪽)

 

이 책에서 중국의 루쉰을 말하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이 곧 이 책의 성격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효율성, 승패를 떠나 해야만 할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이고, 서정시고, 그런 서정시는 두고두고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에 본래적으로 이런 힘이 있을까? 마치 원석을 땅에 그대로 놔두면 그냥 돌덩이에 불과하듯이, 시도 우리들이 작용해야 힘을 발휘한다.

 

'시에는 힘이 있을까? 나의 대답은 이렇다. 이 질문은 시인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던져져 있다 시에 힘을 부여할지 말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다.' (5쪽.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렇다. 시 자체의 힘을 생각하기보다는 시와 함께 하는 우리들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이라고 하기가 그렇다면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서경식은 그의 자전적인 글 '나는 왜 글쟁이가 되었는가?'에서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경계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삶의 길을 제시해준 대상으로 시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소위 저항시들이라고 하는 것. 형들이 조국에가서 구속되어 언제 석방될지도 모르는 상태, 자신 역시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상태로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어려운 독재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돌파하려는 몸짓을 보인 시들은 그에게 삶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가 좌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글과 더불어 살아오게 된 힘은 바로 그런 시에서 왔다고...

 

하여 시는 절망의 시대에 오히려 빛을 발할 수 있다. 시는 유용성을 먼저 따지지 않기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말하기에...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음을, 그것이 사람다운 삶임을 시가 보여주고 있기에 시는 절망의 시대에 길을 인도하는 빛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시의 힘 말고도 많은 글들이 이 책에 묶여 있는데... 무엇보다도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이, 그는 이를 디아스포라 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 그래도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시의 힘, 문학의 힘이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어린시절, 잠깐의 실수로 비행을 저지른 친구에게 이용당하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과정 - 이 소설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고 하지만 - 에서 그는 문학이 어떻게 치유로써 다가왔는지를 '어린 시절 - 첫 단편소설'이라는 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문학은 치유로써의 기능도 하지만, 길을 보여주는,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시절에서도 앞으로 가는 사람이 있음을, 앞으로 가야만 함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의 힘이다. 문학의 힘이다.

 

지금, 우리 시대... 이런 시의 힘, 문학의 힘이 아직도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압구정동'하면 우선 화려함이 떠오른다. 강남 개발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이 압구정동은 갈매기와 벗하는 동네가 아니라, 자본과 벗하는, 화려한 소비의 천국인 동네가 되었다.

 

하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하면 부자들의 상징이었고(한때는 그랬단 말이다. 요즘은 타워팰리스-이게 도곡동이던가-로 넘어간 경향이 있지만), 그곳에 있는 현대백화점은 강남개발의 상징이었다.

 

한 때 '야타족'이, '오렌지족'이 넘실대는 곳이었던 압구정동.

 

유하는 이러한 압구정동에 대한 감각을 시로 살려놓고 있다. 소비지상주의의 모습.

 

여기에는 생활의 지난함은 감춰지고 오로지 눈에 띄는 화사함만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옭아매는 올가미에 불과할테니...

 

우리가 소비자본주의에 빠지면 빠질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으로 점점 더 깊게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을 알까?

 

당장 눈 앞의 즐거움을 위해서 우리는 온몸을 내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 하나 보자.

 

이 시집에서 첫번째로 나오는 시다.

 

오징어

       - 여는 시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사. 2010년 재판 14쇄.11쪽.

 

빛은 소비다. 소비를 부추기는 현실 앞에서 소비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 그러나 그 결과는?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소비를 하지 못하면 뒤떨어진 사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함께 휩쓸려 가지만, 그 결과는 걷잡을 수 없다.

 

이처럼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이 시집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되는데...

 

시집에 공간이 두 곳이 나온다. 한 곳은 '하나대'이고 한 곳은 '압구정동'이다.

 

'하나대'는 시인의 고향, 아니 시적 화자의 고향이고, 압구정동은 지금 현재 그가 있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대조되는 곳. 한 곳은 퇴락해 가고, 한 곳은 흥성거리고 있는 상태.

 

우리들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하나가 성하면 하나는 쇠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아무 생각없이 체제 속에서 그냥 그렇게...

 

또 하나의 시. 앞에서 인용한 시와 연결된다. 우리를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소비만 하게 몰아가는 이 체제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인식하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시.

 

체제에 관하여

 

횟집 수족관 속 우글거리는 산낙지

푸른 바다 누비던 완강한 접착력의 빨판도

유리벽의 두리뭉실함에 부딪혀

전투력을 잊은 채 퍼질러앉은 지 오래

가쁜 호흡의 나날을 흐물흐물 살아가는 산낙지

주인은 부지런히 고무 호스로 뽀글뽀글

하루분의 산소를 불어넣어준다

산낙지를 찾는 손님들이 들이닥칠 때

여기 쌩쌩한 놈들이 있는뎁쇼

히히 제발 그때까지만 살아 있어달라고

살아 있어달라고

그러나, 헉헉대는 그대들의 숨통 속으로

단비처럼 달콤히 스며드는 저 산소 방울들은

진정 생명을 구원하는 손길인가

투명한 수족관을 바라보며 나는

투명하게 깨닫는다

산소라고 다 산소는 아니구나

저 수족관이라는 틀의 공간 속에서는

생명의 산소도

아우슈비츠의 독가스보다

더 잔인하고 음흉한 의미로

뽀글거리고 있는 것 아니냐

 

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사. 2010년 재판 14쇄. 51-52쪽.

 

우리가 소비를 통하여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를 유혹하는 저 화려한 불빛들은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소비사회라는 우리 사회의 체제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맹목적으로 빛을 향해 달려드는 오징어처럼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이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그래서 우리는 이제 '압구정동'을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 체제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이제 이 시집의 제목을 바꾸자. 시집에서 '압구정동'과 짝을 이루고 있는 장소로.

 

"바람부는 날이면 하나대에 가야 한다"

 

하나대란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본질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본질, 우리의 고향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은 조심스럽게, 문학은 거침없이 - 한명희 시인이 엿본 문학의 사생활
한명희 지음, 오종은 사진 / 천년의시작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금 오래 된 책이기는 하지만, 문학이 그 시대에만 통용되지 않듯이 문학인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시간의 제약을 덜 받는다.

 

시간의 제약을 많이 받는다면 좋은 문학이 될 수 없듯이, 문학인들의 삶 자체도 문학을 이루는 한 요소이기에 언제 읽어도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문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글을 읽다보면 문학인들의 속살을 엿보는 듯한 감정도 느끼게 되고, 왠지 그 문학인과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가 쓴 작품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되기도 하고.

 

이 책은 2004년에 여러 문학인들을 만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문학인의 개인적인 생활을 담기보다는 그 사람과 만나서 대화하는 분위기, 그리고 느낌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책이다.

 

하여 문학인의 사생활이 궁금해서 이 책을 펼쳐보았다면 그런 내용을 찾기가 힘들어 실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이 지닌 섬세한 면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인터뷰어가 시인이라서 주로 시인들이 많기도 하지만, 또 자신이 시인이라서 시인다운(?) 감성으로 인터뷰이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문학과 관련된, 또는 그 만남의 분위기, 그 사람에 대해서 느낀 점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이수익, 나희덕, 유  하, 고  은, 김남조, 김상미, 장석남, 나태주, 박상륭, 김승희, 문정희, 김지하, 천양희, 박범신, 채성병, 신달자, 강은교, 김종철

 

이 책에 나온 문학인들이다. 그들을 분류해보면 박상륭과 박범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인이다. 아, 물론 유  하는 시인이자 영화감독인데...시인에 넣을 수 있겠고.

 

그들을 가장 잘 말해줄 수 있는 언어로 각 문학인과의 만남에 제목을 달았다. 제목만 보고 문학인의 특성을 추측하는 재미도 있을 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문학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고 그 사람들의 작품을 찾아 읽어도 좋고, 자신도 직접 창작을 해봐도 좋고.

 

여행을 떠날 때 버스 안이나 기차 안에서 읽어도 좋을 책이기도 하다. 길지 않은 분량이 읽기에 딱 좋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