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날이 너무도 따뜻했다.

 

땅 속에서, 또는 나무들 속에서 나올 때만 기다리고 있던 새 생명들이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놀라 후다닥 나오고 있는 중.

 

세상이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이 봄.

 

우리 마음은 아직도 흑백이다. 빛이 바래 있다. 이런 마음에 빛을 찾아주어야 하는데, 서로가 제 잘났다고 주장만 하고 싸움만 하고, 빛을 찾아 보여주는 사람들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쓰러진 자의 꿈"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어떤 꿈을 주어야 하는지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 모든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 봄, "쓰러진 자의 꿈"은 이렇게 우리들 세상도 봄을 맞이하는 것 아닐까?

 

기분이 더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이 봄이 그냥 즐거운 봄으로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쓰러진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쓰러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 사람들 역시 곧 쓰러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신경림이 시집을 읽다. 제목이 "쓰러진 자의 꿈"이다. 낮은 곳에서 살거나 쓰러진 존재들에 대한 시들이 많다.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시인은 똑바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시집의 끝 '시집 뒤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시는 궁극적으로 자기탐구요 시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많이 하지만, 쓰러지는 자들, 짓밟히는 것들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고 흩어지는 것들, 깨어지는 것들을 다독거리는 일, 이 또한 내 시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시를 가지고 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생각이다. (105쪽)

 

그래, 이렇게 쓰러진 존재들을 어루만져 주는 시인이 있어, 쓰러진 존재들로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서려고 하는 존재를 굳이 쓰러지게 하는 자들이 있다. 시인은 그를 이 시집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전 정

 

내밀기만 하라 나오는 대로 자르리라고

 

고개를 내밀면 목을 치고

팔을 내밀면 손목을 자르고

발이 나오는 다리를 쳐내리라고

 

커다란 가위를 제꺽거리며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게 이 세상에

정원사 어디 너뿐이겠느냐

 

신경림, 쓰러진 자의 꿈, 창작과비평사, 1996년 7쇄. 49쪽.

 

이런 존재는 되지 말아야지. 적어도 쓰러진 존재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 봄에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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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장애 세대 - 기회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올리버 예게스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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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기회는 눈 앞에 있다. 그런데 눈 앞에 있을 뿐이다.

 

무언가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데, 머뭇거리기만 한다. 아니 자신이 결정하지 않는다. 누군가 해주길 바랄 뿐이다.

 

자신이 결정하지 않고 따르기만 했기에 책임이 없다. 다 남 책임일 뿐이다. 내가 책임지지 않으니 내가 결정할 일이 없다.

 

결정은 없다. 주어질 뿐이다. 주어진 길을 갈 뿐이다. 그게 인생이다.

이게 지금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이상하게 독일 청년들의 이야기를 보편화한 글을 읽고 있는데, 자꾸 우리나라 청년들의 모습이 겹쳐왔다.

 

아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지금 시대는 같은 나라,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는 비슷한 나이 대의 사람들이 더 친숙해질 수 있는 시대다.

 

우리나라 사람 20대와 50대보다는 우리나라 20대와 독일 20대가 더 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통할 수 있다가 아니라 통한다. 세대간의 유사점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 청년들의 자화상이 우리나라 청년들의 자화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무언가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주어진 길만 가는 세대. 너무도 많은 것이 주어졌고, 너무도 자주 바꾸기에 길게 보고 결정을 할 수 없는 세대. 이미 고갈될 대로 고갈된 희망으로 지금을 즐겨야 한다는, 지금의 행복만을 추구하게 된 세대.

 

그래서 이들은 기존의 문화와는 다른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하게 되고, 더욱더 어른들에게 의존하게 되며, 미래를 계획하기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장기적이거나 거시적인 일보다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은 세대가 된다.

 

정치적 무관심으로 투표는 하되, 정치에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지만 환경이나 다른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하는, 자기 몸에 대해서는 끔찍하게도 아끼는 그런 세대가 된다.

 

또한 너무도 많은 자유와 너무도 많은 기회 속에서, 그럼에도 불확실한 미래에의 전망 때문에 20대가 되어서도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대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자유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안정이라는 것,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아주 자유롭게 보이지만, 그것은 보일 뿐이고 실제로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이며, 미래를 계획할 수 없기에 현재의 행복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 그런 모습이 기성세대에게는 자유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자유는 안정을 희구하는 모습이 반대로 드러난 것일 뿐.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안정적이기를 바라기에 쉽게 결정을 못하고, 결정을 미루고, 또 남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독일 청년들의 모습, 우리나라 청년들의 지금 모습. 너무도 비슷하다. 이건 아마도 다른 나라 청년들도 마찬가지리라.

 

그만큼 21세기를 살아가며 22세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지금의 현실은 너무도 가혹하게 다가온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지금 청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는데, 문제는 나와 있다. 이 책은 문제만을 보여주고 있다. 답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가 함께.

 

이것이 이 책에서 지금 젊은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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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재난을 막아라 - 원자력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찰스 D. 퍼거슨 지음, 주홍렬 옮김 / 생각의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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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기후변화...

 

우리 삶을 위협하는 요소. 이런 문제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인 문제다. 이런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기후협약을 했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제대로 협약이 실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데...

 

기후변화를 막는 청정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원자력이 각광을 받고 있다. 어떤 과학자는 원자력 발전이야말로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부응하여 우리나라도 원전 르네상스를 부르짖으며 원전 수출 및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너무도 어려운 과학지식이 필요한 것이 핵분열이나 핵융합이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은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데...

 

그렇다고 과학자들만이 전유하기엔 원자력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과학자들이나 기술자들이 원자력 발전의 핵심 인력이기는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원자력 발전소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들에게, 또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짤막한 글들로 원자력 발전에 관해서 처음에 어떤 과학적 원리로 시작되었고, 그것의 종류는 어떠하며 이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운영되는지, 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 포괄적으로 살피고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핵폭탄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 있는데, 원자력 발전은 핵폭탄과 샴 쌍동이와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지 기술적 결함이나 사람의 실수로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는 것만이 아니라, 테러에 의해서도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음을 전제하고, 그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살펴본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가 어떤 안전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이 책에 의하면 원자력 발전소의 노심이 녹는 사고가 날 확률은 원자력 발전 10,000년 당 한 건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주 적은 수치이기는 하나 한 번 사고가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게 되니, 세계적으로 원자력의 안전성을 높여 100,000년 당 한 건 정도로 줄이는 노력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만 년이든, 십만 년이든 한 번 사고가 나면 그 파장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기에... 사실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우리가 원자력 발전까지도 해야 하는 생활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그런 생활을 바꾸지 않고 오로지 과학기술로 이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 질문을 해야 한다.

 

이게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원자력 발전과 핵폭탄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피고 설명하고는 있지만, 지금처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우리의 생활에 대해서는, 전기를 계속 많이 사용하는 이 생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으니...

 

문제에 해답이 있다고 원자력 발전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과학기술에 해답이 있을 수도 있지만, 문제가 잘못되었을 때는 문제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

 

우리는 올바른 문제를 던져야 하는데... 과연 올바른 문제가 무엇인지.

 

이 책, 원자력을 총망라하고 있으니 한 번 읽어보고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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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

 

누군가의 손에서

그와 함께 하던 행복한 시절을 뒤로

이제는 다른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거나

버려져야 할 책들을, 퇴색해 가는

골목에 허름한 집이지만

품고 있는

 

한 시절 잘 견뎠다고

아직은 쓸모 있다고

세월의 흐름에 맞서

함께 버텨보자고 그렇게

켜켜히 쌓이는 먼지를

함께 맞아주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점 뜸해지며

책은 안에서 낡아가고

자신은 밖에서 늙어가는,

그러나 늘 그 자리에 있어

주머니 가벼운 나를 반겨줄

오래된 미래,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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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가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인생이 꼭 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 그런 여행의 결과를 시로 나타낸 것이 이 시집이다.

 

기행시집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이 시집은 우리나라 각처에서 느낀 점을 시로 표현해 내고 있다. 어렵지 않게 누구나 읽을 수 있게.

 

그래서 시적 형상화가 좀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이렇게 직설적으로 내용을 표현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시가 왜 어려워야 하는가.

 

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오도록 쉬워야 한다. 마음에 꽂히지도 않는 시가 어떻게 읽히겠는가. 읽히지 않는 시가 어떻게 감동을 주겠는가.

 

하여 신경림의 이 기행시집에는 여행을 통해서 느낀 점이 쉬운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이 점을 시인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나의 시도 앞으로 읽는 사람이 편하게 대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 오늘의 우리 시가 너무 크고 높은 것만 좇고 있는 것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자잘한 삶의 결, 삶의 얼룩은 다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 시의 값은 오히려 본질적으로 작고 하찮은 것, 못나고 힘없는 것,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돌보고 감싸안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낮고 외로운 자리에 함께 서고, 나아가서 그것들 속의 하나가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또 그것이 시의 참길이 아닐까. 그렇다면 시는 잘나고 우쭐대고 설치는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못나고 겸허하고 착한 사람들의 몫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후기에서 116-117쪽)

 

시가 시에 대해서 공부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읽고 즐기는 문학이라는 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렇다.

 

시인은 늘 여행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항상 길 위에 있다. 길 위에서 시인은 우리에게 말한다. 세상을 잘 살자고, 아름답게 살자고... 함께 살자고.

 

각박한 시대. 시 읽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미 유명해진 시도 있지만-교과서에 실린 시, 나무1, 동해바다- 지금, 내 마음에 다가온 시는 '산수도 사람 때 묻어'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 자체로만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과 함께 존재하기에 아름답다는 점. 우리 역시 자연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시

 

  산수도 사람 때 묻어

 

산은 켜로 쌓여

하늘과 닿은 곳 안 보이고

물은 맑은데도 깊이 알 길 없어

이곳이 사람 안 사는 곳인 줄 알았더니

무논에서는 개구리 울고

등 너머에서는 멀리 낮닭

홰치는 소리 들린다

알겠구나, 산수도

사람의 때 묻어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이치를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얘기 있어

깊고 그윽해지는 까닭을

 

신경림, 길, 창작과비평사, 1996년 9쇄.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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