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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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치(看書痴)라고 자신의 자서전을 썼던 사람. 이덕무. 아마도 책벌레라고 하면 좋을 듯한 이름이 바로 '간서치'인데, 그는 그만큼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이 막 자리를 잡아갈 무렵에 등장한 사람들, 이 책 "책만 보는 바보"를 읽으면서 프랑스 소설인 "삼총사"가 생각났다고 하면 사람들이 뭔 소리야 할까.

 

삼총사라 불리는 사람들 사이에 시골에서 올라온 달타냥이라는 주인공이 합류하여 모험을 하듯이, 우리나라 조선 후기 삼총사라고 하면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서자라는 점이 가장 큰 공통점이다. 자신의 재능을 신분 제약 때문에 펼치지 못하는 사람.

 

그러나 정조라는 왕 덕분에 검서관이라는 직책을 맡아 원없이 책을 볼 수 있었던 사람들. 중국에 다녀오는 사신을 수행해서 모두들 중국에 한 번씩은 다녀왔다는 공통점. 또 검서관을 거쳐서 지방의 현감 자리는 한 번씩 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책을 사랑하고, 또 예술을 사랑했다는 점, 자신들의 처지를 백성들의 처지에 이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지닌다.

 

이런 이들이 있었기에 정조시대를 우리나라의 르네상스 시기라고 할 수도 있지 않나 싶다.

 

삼총사에 삼총사와 달타냥이 나오고 또 주요 인물들이 나오듯이, 이들은 '백탑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중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은 박지원, 이서구, 홍대용이고, 이 중에 이서구를 제외한 박지원과 홍대용은 이들에게는 스승과 같은 존재가 된다.

 

즉, 이들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서구는 신분이 다르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점에서 이덕무와 어울리게 된다. 여기에 이덕무의 처남이 되는 백동수, 그 역시 서자 신분이고, 이들을 돌봐주고 함께 어울리고, 무예도보통지라는 무예서를 통해서 함께 작업도 하게 된다.

 

어쩌면 이야깃거리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들일 수도 있겠다. 각자가 다 자기 나름의 역할을 다했고, 또 함께 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고전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또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주로 박지원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 책은 팩션의 형식을 띠고 이덕무의 시선으로 당시를 그려가고 있다.

 

신분의 제약과 가난 때문에 고생고생하지만 책을 놓지 않는 모습, 그리고 비슷한 친구들과의 모임, 당시 사회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 그래서 재미있게 읽히기도 하지만,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의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정조 시대를 알면 더욱 좋을 것이다.

 

단순한 과거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의 한복판에 있던, 어쩌면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느냐 뒤로 가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노력하던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실학파라고 하는데, 그 실학파들의 속사정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 인물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 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용이라고 그냥 쉽게만 생각할 책이 아니다. 물론 역사, 인물에 대한 지식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의미있게 읽으려면 최소한 역사, 인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더 재미있게, 더 의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인문학적 성찰을 필요로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고, 읽은 다음에는 인문학적 성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과 점점 멀어지는 시대. 이렇게 책을 통해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들의 책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가 있음을, 이 "책만 보는 바보"를 통해서 깨달았으면 한다.

 

참고로 그들의 생존시기를 적어 놓는다. 나이 차이가 나지만, 나이 차이와는 상관없이 친구로, 스승으로 지냈던 그들의 모습.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덕무(1741-1793), 박제가(1750-1805), 유득공(1748-1807), 이서구(1754-1825)

백동수(1743-1816), 박지원(1737-1805), 홍대용(1731-1783)

그리고 정조(1752-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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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식목일

 

예전 같으면 공휴일이었을텐데...하긴 어제는 일요일이라서 어차피 쉬는 날이긴 하지만,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은 좀 아쉽다.

 

자연의 소중함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인데, 나무를 심는다고 공식적으로 나라에서 휴일로 정했던 날들을 휴일이 많다는 이유로 없앴으니, 두 가지 면에서 잘못하지 않았나 싶다.

 

하나는 세계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가는 추세인데, 그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 휴일이 많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일. 세계 최장 노동시간과 공부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이제는 반대로 놀 때 확실히 놀게해야 하고, 공부할 때는 열심히 하되, 쉴 때는 잘 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는데...

 

봄에, 봄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중간고사라는 괴물에 시달려 자신들의 청춘을 꽃피울 생각을 못하고 결실을 앞둔 가을에 해당하는 듯이 시들시들 살아가게 하고 있으니...

 

그나마 식목일은 휴일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이 봄에 숨통 트이는 날이었는데... 새싹들도 보고, 나무들도 심고 그리고 자신의 인생도 계획하는 그런 날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기회를 앗아가다니... 이것이 첫째 잘못이고.

 

또 하나는 지구가 점점 사막으로 변해가는데, 나무 심는 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은 나무의 소중함에 대해서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형식적으로 몇몇 정치인들이 나무 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라 차원에서 나무 심기를 장려한다면 중국이 사막화되어 간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이미 사막으로 변해버린 거대 도시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나무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날이 될 수 있었을텐데...

 

그런 기회를 또다시 앗아간 잘못.

 

식목일... 한식과 청명과 거의 겹치는 그런 날. 나무 심기 좋은 날. 식물들이 옮겨 심어도 제 생명을 이어가기 좋은 날. 그런 날.

 

정현종의 시가 불현듯 생각났다. 이렇게 우리는 나무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식목일을 맞이하여 다시 나무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시 한 편.

 

나무에 깃들여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든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정현종, 한 꽃송이, 문학과지성사, 1995년 초판 5쇄. 52쪽

 

짧지만, 이만큼 나무에 대해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나무에 깃들여 우리도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나무에 대해서 잊고 지내고 있다.

 

비록 공휴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식목일을 즈음하여 나무의 고마움에 대해서, 나무들이 우리가 우려하는 황사나 미세먼지를 막아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이런 시 한 편 읽자.

 

마음에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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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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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가 참 힘든 책이었다. 읽어야 한다고, 그래서 알아야 한다고, 머리에 마음에 각인시켜야 한다고 그렇게 의무감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몇 쪽 나가지 않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인 이 이야기를 어떻게 쉽게 읽을 수가 있나? 자꾸만 과거로 묻으려는 세력과 현재에서 해결되지 않은 미래에도 지속되지 않는 이야기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구 편에 서야 하는지 명확한데, 그런데... 또 과거로 돌아가려 하는 세력이 우세한 현실에서... 도대체,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일이라면, 그것도 반드시 해야 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너무도 무겁다. 무거워서 더 이상 읽고 싶지 않다.

 

어쩌란 말이야, 도대체, 이 나라가 이 모양인데, 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 이런 말 하고 싶지 않다. 누가 누구를 다스리단 말인가, 민주주의 시대에. 공화국이라고 하는 이 나라에서 말이다) 사람이 아무런 생각도 없고, 책임의식도 없이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는데...

 

금요일에 돌아와야 할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진실을 밝혀야 할 언론이 등을 돌리고 있고, 이를 책임져야 할 정부가 손 놓고 있고, 정치권은 오로지 자신들의 잇속만을 위애 이전투구를 반복하고 있고, 황당한 말을 믿는 사람들은 진짜 황당한 짓을 하고...

 

진실은 '세월호'와 더불어 아직도 깊고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데, 우리는 절규한다. 제발 '금요일엔 돌아오렴'하고.

 

금요일엔 돌아와서 생명들이 돌아와서 진실이 함께 돌아와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고...

 

진실 규명이 무엇보다도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일이라고, 유족들이 상처를 바로보고 치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누구 말대로 '세월호'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기에,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1부, 2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참 읽기가 힘들다. 너무도 감성적이므로, 마음에 콕콕 들어와 박혀 우리들에게 이게 '세월호 사건'이라고 알려주고 있기에.

 

세상에 자신의 자식이 주검으로 발견되어 왔을 때 그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하는 현실이... 그 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유족들의 말이 어떻게 편하게 읽힐 수 있단 말인가.

 

읽으면 읽을수록 '세월호'을 암흑의 바닷속에 그대로 놔두려는 세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아직도 '세월호 특별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고, 그리고 곧 세월호 1주기가 되는데...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그냥 진실을 가리려고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잊지 않아야 한다고, 아직도 우리에겐 '금요일'이 오지 않았다고, 그 금요일에 생명들과 함께 '진실'도 함께 오게 해야 한다고.. 그것은 실종자 가족들과 유족들뿐만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의 몫이기도 하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갖게 해준 책.

 

읽어서 불편하고, 마음이 너무도 짠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읽어야만 하는 것은 '진실'을 가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왜 우리가 세월호에 대한 진실을 찾아야 하는지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인식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육성기록이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그런, 제발 '금요일엔 진실과 함께 돌아오렴' 이렇게 외치고 싶은, 그런 읽기였다.

 

진실이 돌아오게, 진실을 밝히게,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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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일, 한 그릇의 밥을 먹는 일. 밥을 위해 내 몸을 굴리는 일. 내 정신과는 상관 없이 내 몸을 밥에게 넘기는 일.

 

하여 다른 삶을 꿈꾸는 일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일과 같이 괴로운 일.

 

그러니 결국 한 그릇의 밥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는 일은 치욕에 다름 아니고, 이런 치욕의 끝은 꿈꾸는 것을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는 일.

 

이 자리를 떠나 다른 자리로 가는 일. 그렇게 이동한 뒤에 남은 빛나는 철길을 남겨두는 일.

 

밥은 우리 삶을 지탱해준다. 지탱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밥에 매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해도 밥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하여 밥은 자신을 옭죄는 굴레가 되고, 꿈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고통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은 꿈을 꾸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꿈을 꾸어야 살아갈 수 있다. 밥만으로도 살 수 있으나 온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꿈을 꾸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꿈을 꾸고, 그 꿈이 자신의 생을 위협할지라도 꿈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게 한다. 그렇게 기차가 철길을 통해 다른 곳으로 가듯, 우리는 꿈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된 뒤에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그 길을 걸어왔는지 흔적을 남긴다. 그 때는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빛나게 되는 흔적을.

 

밥이 치욕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밥은 우리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밥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한 경상남도 지사처럼, 밥으로 사람들을 치욕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적어도 밥은 우리를 치욕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제공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밥이 꿈을 뒷받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몫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의도로 쓰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헌책방에서 구한 이성복의 "남해 금산" 시집에 실려 있던 '치욕의 끝'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치욕의 끝

 

치욕이여,

모락모락 김 나는

한 그릇 쌀밥이여,

꿈꾸는 일이 목 조르는 일 같아

우리 떠난 후에 더욱 빛날 철길이여!

 

이성복, 남해 금산, 문학과지성사. 1998년 재판 6쇄.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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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소통, 문학토론의 내용과 방법 진화하는 국어교육학 2
이인화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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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소통'이라고 했다. 해석이란 자신이 읽은 작품을 자신의 잣대로 분석해내는 작업이라면 소통이란 그런 작업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 다른 말로 문학을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해석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나은 해석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학교에서 문학을 배우면서, 특히 소설을 배우면서 이러한 해석 소통에 이르고 있는가?

 

오히려 우리는 해석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해 교사에 의존하거나 참고서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만의 생각으로 문학에 다가간다는 것은 웬지 정답에서 멀어지는 것 같고, 무언가 잘못된 읽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는 않은가.

 

그러므로 해석도 제대로 되지 않고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가 바로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아니던가.

 

슬프게도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 개개인의 생각보다는 주어진 정답을 찾는 행위가 더 중요하고, 이러한 일들은 수능이라는 전국 최대 행사에서 정점을 찍게 된다.

 

그러니 문학을 읽어도 정답 찾기에 집중하지 그 문학에 제 나름의 해석을 가하고, 그런 해석들이 서로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고, 소통을 통해 좀더 나은 해석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게 문제다. 문제가 나왔으므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은 이 점에서 해석 소통에 대한 해결책을 나름대로 궁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박사 학위 논문을 보완한 책이라고 하는데... 해석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교육에 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치하게 작업한 책이다.

 

이러한 작업이 학교 현장에 적용이 되면 좋으련만, 읽으면서 자꾸만 이 책은 책으로서만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안타까웠다.

 

연구자가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연구 작업을 할 때와 그 연구 작업의 결과를 교육현장에 적용할 때는 차이가 많은데...

 

교육현장은 이론과는 달리 온갖 변수들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수는 학생이고, 교실에 있는 학생수이며, 또 시험이라는 거름장치이다.

 

이런 변수들이 이론의 적용에 거리가 있게 하는데... 그럼에도 이론이 필요한 이유는, 그 이론이 세세한 실천과정까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즉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이런 책과 같은 이론서이고, 이런 방향성을 인식하고 실제로 학교에 적용하는 것은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데...

 

갈수록 문학과 멀어지고 있는 시대, 어쩌면 문학을 읽고 깊이 있게 해석하고, 소통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더 멀어지는지도 모른다.

 

문학과 멀어지면 문화를 형성하는데도 문제가 있으니, 학생들, 또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문학을 읽고 해석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갖도록 사회가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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