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미술관을 걷다 - 예술과 자연, 건축이 하나된 라인강 미술관 12곳
이은화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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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면 미술관이지, 굳이 자연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들 이름처럼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미술관들은 아니지만, 미술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유명한 미술관들이다.

 

그런데도 자연 미술관이라고 한 이유는, 이 미술관들이 단지 미술관련 작품들을 모아두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미술관들은 라인 강 주변에 있으며, 미술관 건물 자체가 예술이 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자연과 동떨어져 자기만의 세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미술과 건축이 하나가 되어 존재하기에 자연 미술관이라고 이름짓고, 그 미술관을 '보다'라고 하지 않고 '걷다'라고 한 것이다.

 

걸음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해 준다. 내가 직접 움직인다는 의미도 있고, 내 의지로 찾아간다는 의미도 있다. 즉, 이 책에 나오는 미술관들은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다른 말로 하면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는 거다.

 

또 이 책에 나오는 미술관들은 과거 유명한 미술품들을 전시하고만 있지는 않다. 이 미술관들은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으며, 과거의 작품들과 현대의 작품들이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오는 미술관은 과거의 미술관이 아니라 현재의 미술관인 것이다. 그러니 단지 '보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을 직접 체험하는 '걷다'가 되는 것이다.

 

이런 미술관에 직접 가서 보면 더 좋겠지만, 가끔은 직접 여행을 하는 것보다 책을 통해서 여행을 하는 것이 더 얻을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고 가는 경우, 그냥 겉모습만 보고 오는 경우도 많고, 또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은 경우에는 말도 통하지 않아 그냥 눈 대중만으로 말 그대로 '걷다만' 오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처럼 라인강 주변에 산재해 있는 자연 미술관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또 사진으로도 보여주는 책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자연 미술관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책을 읽는 것 자체로 미술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야말로 앉아서 하는 미술관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직접 세계 여행을 하면 좋겠지만, 가끔은 텔레비전의 '세계테마기행'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행을 즐기듯이 말이다.

 

라인강변에 위치한 자연 미술관들은 독일과 네덜란드에 걸쳐 있다. 이 책은 두 나라에 있는 미술관들 12곳을 소개하고 있다.

 

우선 독일에 있는 쿠어하우스 미술관, 모일란트 궁전 미술관, 빌헬름 렘부르크 미술관, 폴크방 미술관, 촐페어라인, K20 K21, 홈브로이히 박물관 섬, 압타이베르크 미술관

 

그리고 네덜란드에 있는  퓐다시 미술관-네이헌하위스 성, 크뢸러 뮐러 미술관, 아른험 현대미술관, 팔크호프 미술관

 

여기에 더하여 다른 미술관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자연 미술관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하여 앉아서 하는 자연 미술관 여행으로 즐거움이 더해진다. 책을 읽는 동안 휴양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자연 속에서 위안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이 만든 것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장소에 가면 얼마나 위안을 받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우리나라도 보는 것을 넘어 걸을 수 있는 이런 자연 미술관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면서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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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병란 시인 돌아가시다. 아침에 신문을 보니 부고가 떠 있다.

 

  그의 시 '직녀에게'는 노래로 불려 통일의 염원을 우리에게 알려주곤 했었는데...

 

  교육자이자 시인으로서 우리나라가 암울했던 시기에 좌절하지 않고 빛을 보여주고자 했던 분이었는데...

 

  이제 그분들이 시대가 지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나와서 그분들이 미처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루어가야 하는데...

 

  청년들이 너무 조용히 지낸다고, 순응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이런 그들에게는 앞이 보이게 이정표를 제공해주거나 빛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지식인이라는 이름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지식인은 사회의 앞날을 걱정하고, 사회의 앞날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에 급급한 실정.

 

이러니 아직 밥그릇을 받지도 못한 청년들이 어떻게 나설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아버지 밥그릇을 빼앗아 자기 밥그릇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노동개혁이라고 하는 이 시대에.

 

요즘은 지식인 대우도 받지 못하지만, 그의 시선집 "무등산"에는 교육에 관한, 교사에 관한 시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 교사에 대한 시이기는 하지만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적어도 우리 사회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남보다 더 배웠기에, 남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기에, 남보다 더 부유한 위치에 있기에 더욱 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 다음 세대에게  지녀야 할 태도라고 할 수 있는 시.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우리들은

두 눈이 초롱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이상의 고운 날개를 펴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우리들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빼곡하게 들어박힌 6호 활자,

작은 행간을 따라가며

4지선다식의 메마른 지식의 조각,

사합오락의 엄포를 놓으며

일류대 들어가는 기계,

참고서 외우는 기계를 만들 것인가?

고득점으로 일류대 합격하여

검사 판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남보다 출세하고 돈을 벌어

남 위에서 떵떵거리는 출세를 권할 것인가?

부동산 투기를 배워

재산을 몇천 배로 늘이는 방법

뛰어난 경영학과 재정학

남을 속이고 곡학아세하는 방법을 가르칠 것인가?

꽃은 가르치지 않아도 아름답게 피고

갈매기는 훈련시키지 않아도

푸른 파도 위에서 멋진 곡예를 부린다

차라리 침묵을 가르치자

이 낡은 교과서, 이 어지러운 활자 투성이의

빼곡한 행간마다 어지러진 낙서의 민주주의

이 낡은 페이지를 덮고

차라리 묵념을 가르치자

눈 감고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아란 하늘 아래

자유로이 날고 있는 갈매기

한 송이 들꽃이 노을에 젖어 있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고향을 생각하자

눈과 귀가 누가 되어

보고 듣는 것이 마비되어 버린

오 아는 것이 병이 된 무거운 어깨여

아직은 두 눈이 초롱한 우리들의 아이들이여.

 

문병란, 무등산, 청사. 1986년. 125-126쪽.

 

문병란 시인이 시 중에서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던 시는 두 편. '직녀에게'와 '식민지의 국어시간'

 

이제 그는 하늘나라에서 통일을 염원하면서 제대로 된 우리 국어시간을 가질 수 있으련지...

 

암울했던 시대 우리들에게 앞을 보여주었던 시인. 이제 그는 가고, 그가 염원했던 일들은 우리에게 맡겨졌다.

 

삼포세대를 넘어 오포세대라고 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아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문병란 시인의 부고를 접하고,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시인이 편히 잠들기를, 다른 세상에서는 분단되지 않고, 식민지도 아닌, 진정한 우리의 글을 배우고 가르치고 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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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나라 없는 나라]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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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참여하기

 

1. 기간 : 9월 24일 ~ 10월 5일 / 당첨자 발표 : 10월 6일

 

2. 모집인원:  10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스크랩하세요.(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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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당첨되신 분은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추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 이벤트 기간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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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전봉준을 현재성을 가진 매력적인 인물로 재창조해낸 역작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혁명의 발발부터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마주치는 시대적 상황과 각 인물이 겪는 사랑과 아픔 등을 묵직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되살렸다. 역사에 바탕을 둔 소설이나, 담긴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다시금 뛰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전봉준은 이야기를 이끈다. 그리고 흥선대원군과 김개남, 손화중 등의 장군들은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여기에 주요 농민군들의 서사가 더해져 감동을 주고 있다.


 

작가소개 

이광재 196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전북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녹두꽃에 단편 아버지와 딸로 등단. 소설집 아버지와 딸(1992)과 장편소설 내 가슴의 청보리밭(1993), 폭풍이 지나간 자리(1994) 등을 냈고,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2012)를 냈다. 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위험하게 사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이 안전하지 않은데 개인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나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일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안락을 꿈꾸지만 당장은 안전해 보여도 제도화된 위태로움으로부터 조만간에는 포위될 게 뻔하다. 단언컨대, 세상은 지금 안전하지 않다. 사람, 산과 강, 저녁거리, 지역, 국가 모두가 위태롭다.

그러니 어떻게 할까?

이 소설은 이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위험을 감수한 자들이 이룩한 공적 가치가 안전을 추구한 사람들의 그것보다 큰 게 아닐까,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서양의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지금보다 위험하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2012년에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에 관한 평전을 낸 일이 있는데 다시 그 무렵의 일을 소설로 쓴 것은 갑오년에 쏜 총알이 지금도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그 시절 자주적 근대의 가능성은 부정되고,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여 타의에 의해 세계의 화염 속에 던져졌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국가는 멀쩡한데 엉뚱하게도 이 나라가 반 토막 나는 것으로 사태는 끝나버렸다. 그러니 그 시절은 오늘의 첫 번째 단추가 분명하다.

근대적 문물을 재빠르게 수용했어야 한다는 잣대로 과거를 평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몇 가지 가능성을 놓고 뽑기를 제대로 했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서구적 근대가 반드시 우월하다고 볼 수도 없지만 그나마 조선이 접한 건 일본에 의해 굴절된 근대의 변종이 아닌가. 따라서 그를 추종하던 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친일파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바로 그들과 그 후손들이 지금 우리의 이다. 들이 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 만들겠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역시 그곳이 첫 단추다.

 

중국은 세계를 향해 전승절이라는 이름으로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말이야 어떻게 붙이든 일본에서는 침략도 하고 전쟁도 하도록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게 우리가 당면한 동아시아의 모습이다. 120여 년 전에 해양과 대륙이 힘을 겨뤄 폭압적으로 세력교체를 하는 바람에 조선이 크게 뒤틀렸는데 그 양대 세력이 지금 심상치가 않다는 뜻이다. 그나마 전에는 하나의 조선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반도가 두 쪽이다. 어째 우리만 난처한 지경에 빠진 것 같다. 어쨌든 이것도 왠지 첫 단추를 연상케 한다.

 

이런 이유로 실타래처럼 꼬인 난국을 그 시절에는 어떻게 이해했으며, 어떤 경로로 헤쳐가려고 했는지 살핌으로써 이 고장 난 근대에 관한 지혜를 얻고 싶었다. 최근에는 드라마와 영화를 역사교과서로 삼는 경향까지 있어 이 소설도 그렇게 여길까 몰라 혹세무민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공을 들였다. 역사가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지만 작가는 훌륭한 역사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곱씹었다.

 

그런 마음을 격려하여 상을 주신 것 같아 책임감이 느껴진다. 혼불문학상을 제정한 전주문화방송과 현기영 선생님을 비롯한 심사위원께 어찌 감사를 드리지 않으랴.

현대사를 몸으로 쓰신 어머니의 주름살이 조금 펴지면 좋겠다.

소설을 쓰겠다고 가출하듯 뛰쳐나온 자를 묵묵히 견뎌준 가족이 든든하다.

술 사 먹이며 등 두드려주고 첫 독자 노릇까지 해준 벗들과 웃으며 술잔을 나누게 돼 기쁘다.

청년시절에 잠깐 써본 이래로 늘 소설을 쓰고 싶었다. 발라드와 래퍼의 중얼거림 사이로 들려오는 록의 쿵쾅거림 같은 소설.

 

이 소설은 내 문학의 프롤로그다.


 

본문

그렇다면 그대는 정치를 할 생각인가?

바르게 세상 이치를 펴는 일이라면 여항의 백성보다 적합한 이들이 없나이다. 때가 오면 흙을 갈고 비가 오면 물을 대니 그들이 어찌 순리를 모른다 하며, 함께 누리는 즐거움을 낙으로 아는 자들인데 그것을 다만 무지라 하겠습니까. 사대부들이 있다 하나 그들의 일이 노()니 소()니 벽()이니 시()니 풀뿌리 하나 나고 자라는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노상 의리(義理)를 이야기한들 어찌 그것을 정치라 하오리까? _본문 중, 흥성대원군과 전봉준의 대화

내일은 큰 싸움이 날텐데…… 선생님은 안 무서우세요?

전봉준의 희미하게 웃었다.

너는 무서우냐?

무섭습니다. 무섭고말고요.

바람에 바닥의 눈이 송진 가루처럼 쓸려 다녔다. 어디선가 눈의 무게를 견지지 못한 소나무가 와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추위를 참지 못해 지르는 군사들의 신음이 꼭뒤에 닿았다.

받아먹지 못한 환곡을 갚고, 노상 부역에다 군포는 군포대로 내는 세상으로 다시 가겠느나? 양반의 족보를 만드는 데 베를 바치는 수령들 처첩까지 수발을 들면서 철마다 끌려가 곤장을 맞을 테냐?

을개의 목소리가 퉁명해졌다.

이제는 그렇게 못 살지요.

나도 그렇게는 못 한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았는데 어찌 돌아간단 말이냐? 목숨은 소중하지만 한 번은 죽는 법이다. 조금 당길 때가 오거든 그리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다.

_본문 중, 우금치 전투를 앞둔 전봉준과 을개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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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지승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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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짧았던 한희의 순간을 되돌아 보게 하다

 

이 책은 주로 2003년에 이루어진 인터뷰들에 대한 기록이다. 2003년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희망과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전조를 느끼게 해준 해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시기는 2003년 초반이니... 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부터 취임을 한 직후까지의 일이다.

 

희망은 '사람다운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노무현이 당선된 일이다. 그때 우리들은 국민의 정부를 이어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정치, 경제, 언론, 사법 부분의 개혁이 이루어질 거라고, 그렇게 순탄하게 우리나라는 순항할 거라는 희망이 있던 시대였다.

 

여기에 살짝 불안감을 던져준 것은 효순, 미선의 참사로 인한 촛불시위에 대한 당선자의 말이었다. 자제를 부탁하는 그 말... 그 말에 대한 각계의 반응, 또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희망 속에서 일말의 불안감이 포착되고 있다.

 

사회가 일 개인에 의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에 의해서, 그것도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이 바뀔 수 있음을, 어쩌면 우리는 대통령을 바꾼 그 때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대담들이 꼭 긍정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2.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시민은 모두 정치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의 기본 관점이 바로 이것이다. 연예인이 정치에 참여하면 뉴스가 되는 나라. 이런 나라는 후진적인 나라다. 우리나라 헌법에 의하면 누구나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참여해야가 아니라 참여해야만 한다.

 

단지 투표하는 것만으로 정치에 참여한다고 해서는 안된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이런 견해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연예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있다. 지금부터 12년 전, 그때는 더했다. 딴따라들이 무얼 아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이 출세하기 위해서 줄서고 있닥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등한 시민으로 대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치 의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이것은 용기일까?

 

민주공화국이라면 당연했을 일이 당연하지 않고 용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던 시대, 그것이 겨우 12년 전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라나?

 

하지만 시민은 누구나 자신이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대변하는 것이 정당이다. 정당이 먼저고, 시민이 나중이 아니다.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조직화 한 것이 정당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지금 정당들은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자신들의 정당이념으로 삼고 있는가? 무려 12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제자리 걸음을, 어쩌면 뒷걸음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3. 인터뷰는 '사람책'을 읽는 일이다

 

'사람책 읽기'라는 말을 듣고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몇몇 도서관에서 하는 행사였는데.. 책이 꼭 문자로 된, 종이에 기록되어 묶인 것만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한 사람이 살아온 내력, 그 사람의 생각들을 함께 이야기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책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사람책 읽기'라는 것이 생겨났으리라.

 

그렇다면 이런 인터뷰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책으로서의 역할과 또 하나는 사람을 비록 직접 대면하지는 않지만 그 사람을 읽어내는 '사람책'의 역할을 말이다.

 

특히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읽어내게 하고 있으니...

 

시간이 좀 지났어도 괜찮다. 책이란 본래 당대에 유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무려 12년전이다. 띠들이 한바퀴 돌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2003년에서 얼마나 벗어났을까?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단초가 바로 이 때 시작되지 않았을까?

 

희망으로 출발했지만, 그 출발에서부터 삐끄덕거리는 모습을 감지한 '사람책'들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그 희망의 봉우리에서 급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만 우리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다.

 

그 다음, 다시 희망의 봉우리를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 '사람책'들을 통하여 찾아낼 수도 있고.

 

4. 그렇다면 어떤 '사람책'들이 있을까?

 

이 책에는 얘술가 중에서도(이 중에 연예인이라고 할 수 없는 문화비평가, 또는 음악평론가로 불리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강헌이다. 그러나 그도 한때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만들었고, 평론은 예술이니...)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던 예술가들을 만난 기록이다.

 

정치적인 성향에 진보와 보수 또 중도가 있다면 모든 사람들을 아울러 다뤘으면 좋았겠으나, 이 당시에는 진보가 소수였고, 보수는 이렇게 다루지 않아도 큰소리를 낼 수 있었으니...

 

또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도 있고 하니...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모든 책을 다 읽지는 않듯이, 인터뷰 역시 자신의 이야기 듣고 싶은 사람을 골라 하는 것이니...

 

장봉군, 강헌, 박재동, 권해효, 김미화, 안치환, 정태춘, 박찬욱, 신해철

 

이들이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도 있고, 잠시 대중의 눈에서 멀어진 사람도 있고, 고인이 된 사람도 있지만... 이들이 2003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 생각들이 어떻게 지금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읽으면 좋다.

 

5.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공식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삶을 드러내고 표명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공개한다는 것은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이들의 행동이 이런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는 제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용기는 바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라면 갖추어야 할 덕목이고, 이런 덕목들이 우리나라 정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이런 용기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이런 용기있는 사람들...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2003년 희망으로 시작한 해... 지금은 2015년... 지금에서 그때를 바라보는 읽기를 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동안 지나온 세월이 머리 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는 일, 그래서 이 때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로 바라보는 눈을 갖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 그런 노력은 꼭 필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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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세상을 바꾸는 통찰의 순간들
윌리엄 B. 어빈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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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순간, 불현듯 머리 속에 떠오르는 깨달음, 그것을 통찰이라고 하자.

 

개인적인 통찰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개인을 넘어 사회를 바꾸는 통찰이 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종교, 도덕, 과학, 수학, 예술에서의 통찰의 순간들을 다루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통찰의 순간들을 다루고 있다기 보다는 어떻게 통찰이 이루어졌고, 그 통찰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 그리고 통찰은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통찰이 일어난 순간들의 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쉽다. 그냥 종교면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신의 목소리나 신의 모습이 보였다든지, 도덕, 예술, 과학, 수학에서도 자신의 일에 집중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에 무의식이 작동해서 통찰을 이루었다는 얘기만 나올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통찰은 결국 갑자기 오지 않는다. 부단히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잠시 그것에서 의식을 놓은 순간, 무의식이 개입해서 통찰을 이룬다는 것이니... 노력없이는 통찰도 없다.

 

마찬가지로 노력만 해서도 안된다. 사람은 가끔 쉬어야 한다. 이 쉼은 그냥 놓아둠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의식에 개입할 수 있도록 빈 틈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무의식이 의식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개입을 하는 순간, 통찰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그 통찰이 이루어진 다음이다. 통찰이 사회에 쉽게 받아들여지면 문제가 없겠지만, 모든 분야에서 통찰은 처음에는 집단적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이 반발을 이겨내고 자신의 통찰을 지켜나갔을 때만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 경우를 이 책에서는 보여주고 있는데...

 

결국 통찰에는 '끈기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아무리 좋은 통찰도 그것을 지켜나갈 끈기와 용기가 없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세상을 바꾼 통찰의 순간들을 지닌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갔기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음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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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esar 2015-09-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치에서 나온 책은 항상 실망시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까치는 좋은 책을 물어다 준다는 믿음이 깨진 적이 없어요^^

kinye91 2015-09-25 08:18   좋아요 0 | URL
`까치는 좋은 책을 물어다 준다`는 표현이 너무 좋네요. 출판사 이름과 펴낸 책들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