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지 '삶이 보이는 창'을 읽으면서 내 눈에 띠지 않았던 삶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잡지가 있기에 우리네 삶이 좀더 풍요로워지고, 사람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데...

 

이 잡지에 안 좋은 일이 생겼다. 그동안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했던 제작지원금이 갑자기 끊겼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출판사들의 형편이 어려운데, 삶창은 출판사라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여러 일을 하는 단체고, 그 가운데 출판 업무를 해서 우리가 잊고 있던 또는 잃고 있던 노동자들의 삶, 또 그늘에 있던 삶을 우리 눈에 보이게 했던 단체였는데.... 갑자기 지원금을 중단하다니...

 

물론 편집인의 말대로 자립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이런 잡지가 우리나라 문화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이 이 잡지의 유지에 그래도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재정적으로 어려워졌고, 그렇다고 화려한 삶이 아닌,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런 책에 후원금이 많이 들어올 일도 없고, 없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보태는 돈으로 근근히 유지는 하겠지만...

 

유지하려는 방편으로 이제는 격월간이 아닌, 계간으로 바꾼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지 이번 105호에 실린 글들 중에 앞부분에 나오는 "오늘"이라는 꼭지가 마음에 와닿는다.

 

노동자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그동안 우리의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쩌면 이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노동을 보여주고 있다.

 

행사도우미 노동자... 전형적인 비정규직. 계약서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임금도 제때 받기 힘든... 그래도 약자라서 에이전트 눈치를 보아야 하는... 또 나이가 들면 할 수도 없는 그런 한시적인 노동,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 삶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

 

어린이집 보육교사... 아이들의 인성이나 발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람임에도 소외된 교육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유치원부터 초중등, 대학까지의 교사, 교수들과 판연히 다른 대우... 나이들면 임금이 올라간다고 오히려 기피당하는 그런 노동.

 

어머니같이 보살펴 달라고 하면서도 이들이 제대로 근무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이나 노동시간, 또 임금에 대해서 과연 사회적으로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직접 보육교사로 일한 사람의 경험담을 읽으니, 마음이 짠하다.

 

학교급식노동자... 나라를 이끌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이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데, 이들의 노동환경에 대해서, 이들의 노동강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이들의 대우는? 조금 나아졌다는 하지만 아직도 열악하다. 우리네 아이들 밥상을 올리는 사람들, 이들이 편하게 일해야 아이들 밥상이 건강해진다. 그걸 명심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장애인 노동... 아직도 장애인들은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도 힘들고,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기초수급자가 되면 직업을 갖는 순간 잃게 되는 것들이 많으니... 장애인은 단지 몸(또는 마음이)이 불편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그러나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동에 대해서 다뤄주고 있다. 이들처럼 '삶창'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제 역할을 해 왔는데... 더 힘들어진 삶창이 되어가고 있으니.

 

'삶창'이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계속 우리에게 삶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 역시 보이지 않는 삶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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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수선한 세상이다.

 

무언가 정리가 안되고 있는 느낌.

 

경제와 정치와 교육과 예술과 노동과 삶이 서로 따로 놀고 있는 듯한 느낌.

 

소통과는 거리가 먼 사회가 아닌가, 어쩌면 모두들 자기 말만 하고 사는 '입만 있는 것들'만 존재하는 사회는 아닌가.

 

입은 하나요, 귀는 둘인데, 귀를 무시하고, 입만 살리고 있는, 오로지 자신의 입만 살아있다는 듯이 떠들어대는... 그러한 사회.

 

빛과 그림자. 대칭. 양면성. 상호보완성.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정치가들에게는 자신들의 '당선'은 있되, 국민은 없고, 경제에서는 '재벌과 성장'은 있되 노동과 분배는 없고, 교육에서는 대학은 있되, 배움은 없는 기형적인 모습, 노동은 정규와 비정규로 나뉘어 여기서도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니, 예술은 소수만이 향유하고 나머지는 그게 뭐야 하는 식으로 지내고 있는 삶.

 

그러나 빛은 그림자를 동반하고, 그림자 없는 삶은 없다. 빛이 빛으로 빛나는 것은 그림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것은 국민이 있기 때문이고, 재벌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노동과 분배가 있기 때문이고,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배움이 있기 때문인데... 왜 자신의 존재 이유 중의 하나를 무시하고 있을까?

 

오로지 자신만 보는 사회, 자신의 입만 있는 사회. 이 속에서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들은 뒤로 처지고, 무시되고 있어도 있지 않은 존재가 된다.

 

이들이 없으면 안 되는데도.

 

이원의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시집을 헌책방에서 구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헌책방이라고 하기보단 헌책방이라는 공간조차 지니지 못한 길거리 가판대에서 구했는데...

 

이 시집을 읽으며 '그림자들'이라는 시가 마음에 콕 와 박혔다. 나 역시 그림자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런 그림자들의 고충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지내지는 않았는지... 내 삶이 비루해도 날 지탱해주고 있었던, 늘 나와 함께 했던 그림자들이 있었음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한 시다.

 

그림자들

 

바닥은 벽은 죽음의 뒷모습일텐데 그림자들은 등이 얼마나 아플까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을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한 사내가 또는 한 아이가 난간에서 몸을 던질 때 미처 뛰어오르지 못한 그림자의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몸은 허공 너머로 사라졌는데 아직 지상에 남은 그림자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이원,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문학과지성사, 2012년. 49쪽.

 

앞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사람들, 그렇기를 원하는 사람들, 이 시에 나오는 그림자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림자 없이 자신들도 존재할 수 없음을... 빛은 그림자를 통해 더 빛날 수 있음을... 따라서 늘 자신의 뒤에는 그림자가 있음을, 나도 잊지 말아야겠다.

 

또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을 따르고 받치고 있는 그림자가 있음도 잊지 말아야겠다. 그런 그림자들을 더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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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서 있는 미술관 - 박정욱의 현대미술 산책
박정욱 지음 / 예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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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어렵다. 사실, 현대미술이라고 하는 그림이나 조각들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도대체 뭔지, 여기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비평가들은 현대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이래서 아름답고, 저 작품은 저래서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비평들은 보면 아름다움도 지식이 있어야만 느낄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아름다움이 지식에서 오는가? 아니, 감정에서 오지 않나? 내가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 속에서 또는 마음에 가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아, 하는 탄성이 튀어나오지 않나.

 

탄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이 자꾸 머무르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 아닌가. 따라서 아름다움이란 굳이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데... 현대미술은 설명 없이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으니...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미술이 현대미술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 현대미술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하고자 이 책을 골랐다.

 

'거꾸로 서 있는 미술관'

 

이 제목이 현대미술을 잘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 왔던 눈으로, 느꼈던 마음으로 현대미술을 보면 어떤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테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현대미술이 마음에, 눈에 곧장 들어오지 않는다. 한참을 보아야, 한참을 생각해야 느낌이 온다. 그런 느낌은 우리의 의식 너머에 있다.

 

의식이 아닌 무의식 차원, 현재가 아닌 과거의 우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현대미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다.

 

저자는 현대미술을 이렇게 말한다.

 

'현대 미술은 우리의 삶보다 훨씬 더 심플하다. 고전미술이 우리의 삶에 무언가를 가미해 포장하여 덧칠하려 했다면 현대미술은 그 반대다. 현대미술은 삶에서 무언가를 빼고, 벗기고, 삶의 색깔 뒤에 숨어 있는 시커먼 목탄 자국들,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행위의 스케치로 빠져든다. 너무나 솔직한 미술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위선과 겉치레를 80% 정도 걷어낸 결과이다.

  이처럼 현대미술은 빼기, 벗기기의 작업이며 창조라기보다는 오히려 파괴에 가깝다.' (196쪽)

 

빼기의 미술이라. 그동안 내 눈은 너무도 인위적인 것에, 우리가 덧칠한 것에 익숙해져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너무도 의식에 의존에 의식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무관심했다는 말인가.

 

현대미술은 이렇게 잊고 있었던 의식 너머의 무의식적 세계, 원초적인 우리 인간의 본원적인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주게 하고 있단 말인데...

 

저자는 세계전쟁이후의 미술을 네 단계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그림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여서.

 

그래서 현대미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는 있다. 단지, 감일 뿐이지만, 현대미술은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팽개치지는 않게 만드니.. 이 책은 현대미술을 가깝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의식 너머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현대미술에 대해서 간략하게 몇몇 작가들과 작품들을 들어 설명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의식 너머의 현대미술을 의식의 안쪽으로 끌어올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리라.

 

굳이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다만, 현대미술에 대해서 너무도 어렵다는 편견을 버리고 보면 된다는... 현대미술은 복잡함이 아니라 단숨함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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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식탁 -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권지현 옮김 / 판미동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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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은 우리가 살기 위해 차리는 밥상이다. 이런 식탁에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붙어 제목이 되었다.

 

"죽음의 식탁"

 

그 식탁에 앉으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그 식탁은 무엇일까? 바로 농약으로 오염된 작물이 올라오는 식탁...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하겠지만...

 

사실, 우리가 농약으로 오염된 식탁에 앉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정말로 몰라서 앉게 되거나, 아니면 굶주려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농약에 오염되어 있음을 알고도 먹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이 죽음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믿을 수 있다고 여기는 정부기관에서 최대허용치를 정해놓고, 그 허용치 범위내에 들어있는 화학요소들은 안전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식품의약안전청'쯤 되는 정부 기관이 이 음식은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먹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또 그 기준에 따르면 과연 안전한가?

 

이 점을 세밀하게 따져서 추적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결론을 말하면 기준은 기업에서 온다와 그 기준을 따라도 절대로(!) 안전하지 않다이다.

 

그러면 우선 기업은 왜 안전하지 않은 기준을 제시하는가? 그것은 이윤 때문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에게서 인간의 삶이나 인간의 건강을 목표로 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습다.

 

이런 기업에 근거를 제공해주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기업에서 막대한 연구자금을 받으며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는 연구결과를 만들어낸다.

 

이것보다 더 안 좋은 점은 이 과학자들은 다른 과학자들이 그 기업 제품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 반대 결과를 도출하는 연구 결과를 어떻게든 만들어내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업의 임원들이 정계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정부의 규제기관의 책임자나 수장으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작은 제목인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에 대한 답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그 기업에 봉사하는 과학자들, 그리고 이들과 결탁되어 있는 관료들에 의해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결탁이 우리의 식탁을 '죽음의 식탁'으로 만들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일일최대허용량이라는 허구다.

 

일일최대허용량은 하루에 그 이하로 섭취했을 경우에는 인체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를 비판하는 증거들이 이 책에 많이 나와 있다.

 

사람마다 다른데... 그의 기질이나 건강상태, 신체조건, 또 유지해온 식생활 등등이 모두 다른데, 이들을 일괄로 처리해서 일일최대허용량을 정한다는 것도 우습고, 독성이 과연 어느 정도 양이 차야지만 독으로 작용하느냐 하는 문제도 있고.

 

이 책에서 이를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0+0+0=기형 60%다. 전혀 무해하다고 알려진 화학요소들이 여럿이 결합하면 인체에 해로운 결과가 나올 확률이 60%나 된다는 사실... 이를 확장하면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아주 조금씩, 공식기관의 발표대로 일일최대허용치보다 적은 양을 섭취하더라도 인체에는 해로운 확률이 60%이상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야말로 죽음의 식탁이 된다. 이런 죽음의 식탁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임을 잘 보여주고 있고.

 

이런 죽음의 식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 농약 사용 금지를 전면화하는 것... 그리고 유기농 제품을 먹어야 하는 것. 각종 화학제품들의 생산을 줄이고, 사용을 하지 않는 것.

 

이렇듯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무서워지는 책이다. 도대체 무얼 먹어야 할지, 아니 먹지 않아도 내 주변에서 내가 만지고 호흡하는 것들 중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 몸에 들어와 나를 서서히 죽여가고 있는 것들이 있음을, 그것도 모자라 다음 세대에까지 죽음을 물려주고 있음을 알게 하니 말이다.

 

이렇게 '죽음의 식탁'에 대해 알게 되면 생활습관을 고쳐야 한다. 자신의 생활습관을 돌아보고 고치고, 또 사회 환경을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내 건강이므로, 과학자들이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자신의 연구결과에 책임을 지는 윤리적 자세를 지니도록 압력을 넣을 수도 있어야 한다.

 

당연히 공적 기관이 규제기관에서는 제대로 규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기업이 단지 이윤만이 아닌, 사람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도록 감시의 눈을 감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을 쓴 목적이리라. 너무도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대로 가다간 나뿐만이 아니라 내 후손들까지도 고통에 시달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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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도서관 - 선생님들의 이유 있는 북유럽 도서관 여행 선생님들의 이유 있는 도서관 여행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서울모임 엮음 / 우리교육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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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작은 도서관 짓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기적의 도서관이라고 해서,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판매된 책의 수익금과 기부금, 그리고 지자체의 예산 도움으로 작은 도서관, 특히 어린이 도서관을 짓는 운동을 했었다.

 

이 때 도서관은 단지 책을 보관하고 대출하고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으로 추진하였다고 본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굳이 책이라는 한정된 문화로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도서관에서는 미술도, 음악도, 기술도, 가정도, 체육도 모두 가능해야 한다. 그것이 도서관이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길이다.

 

이런 도서관 살리기 운동에 앞장 서는 사람들은 사서들이고,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겠다.

 

이 책은 이런 도서관 관련 교사들(사서 표함)이 모여 북유럽의 도서관을 둘러보고 와서 쓴 글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쓴 책 중에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는 이제는 미국 중심이 아니라, 유럽 중심의 문화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우리나라 교육이나 문화가 유럽보다는 미국에 편중되어 있는데, 지금은 유럽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졌고, 특히 북유럽의 교육이나 문화에 대해서는 활발히 소개되고 있는데, 이 책을 쓴 사람들은 교사로서 또 사서로서 북유럽의 도서관과 학교를 둘러보고, 그것을 우리나라에 어떻게 적용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단지 북유럽 도서관이 훌륭하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점을 받아들이고,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변용을 해서 우리나라 역시 도서관을 중심으로 문화가 살아나게 하고, 그 결과 도서관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 중심에 있게 하고자 하는 의도로 북유럽 도서관 기행을 한 것이리라.

 

이 책을 읽으며 북유럽 도서관(대체로 네 나라를 둘러 보고 있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을 둘러보고 쓴 이 책에서(물론 이들은 그냥 가서 둘러본 것이 아니라, 그 전에 공부를 충분히 하고 갔으며, 가서도 상호 토의를 통해 북유럽 도서관의 의미를 내면화하고 있다)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세 가지다.

 

하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판매한다는 것. 다 읽은 책이나, 오래 된 책, 너무 인기가 없는 책 등을 싼 가격에 내놓아,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사갈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북유럽 도서관 모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그냥 폐기하는 것보다는 벼룩시장을 열어 도서관에서 보관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둘째는 책은 10회 정도 순환이 되면 폐기 처분한다는 것. 사실 우리나라 도서관에는, 아주 오래 된 책들도 있다. 먼지가 풀풀나는 책들도 있고, 또 어떤 학교 도서관에는 세로로 편집된 책들도 있다.

 

그만큼 책들을 폐기하기도 어려운데, 이는 새로운 책들이 들어와 순환이 빨리빨리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니 북유럽 도서관에서 10회 정도 순환이 되면 폐기해서 종이는 재활용하고, 그 빈 자리에 새로운 책을 구입한다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더 많이 읽히는 책들은 몇십 회 더 순환해도 되지만, 이를 꼭 10회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폐기가 자유로와지고, 그 예산을 도서관 도서 구입에 반영할 수 있다면 새롭고 흥미로운 책들이 도서관에 더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셋째는 대학도서관들도 일반인들에게 개방한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우리나라에서 대학도서관에 일반인들이 들어가려면 얼마나 절차가 복잡한가? 등록해서 출입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그 대학 졸업생이라고 그런데(막대한 돈을 그 대학에 쏟아부었음에도 졸업생들에 대한 대접이 이런데... 참) 일반인들은 대학도서관에 갈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러니 도서관은 특정한 시간 대에만 다닐 수 있는 곳이던지, 특정한 계층만 다닐 수 있는 곳이 되고 만다.

 

도서관이 삶과 괴리되어 있는 것이고, 일반인들은 학술지들을 찾아보려면 또 하나의 노력을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니, 늘상 대학도서관이고 공공도서관이고를 불문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북유럽 사람들과는 이런 점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하는데, 대학도서관은 상아탑 중에서도 중심에 있다고 한다면, 도대체 대학의 기능은 무엇인가? 일반인들과 괴리된 대학, 그리고 그 도서관? 오로지 자기 학생들만을 위한 대학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겠는지...

 

북유럽 도서관의 디자인이라든지, 이용실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 실린 풍부한 사진들을 통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앞의 세 가지처럼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다.

 

도서관은 책만 있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있는 장소다. 그러므로 도서관은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 도서관이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도서관 담당교사'들이고, 이들의 노력이 우리나라 도서관이 삶에 더 가차이 다가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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