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함은 삶이다

 

어느 날 옥상 텃밭에 올라가니

채소들 사이로 우거져 있던 작은 숲이 없어졌다,

채소들보다 우뚝 솟아 먼저 눈에 띠던 야관문, 코스모스, 개망초……

들의 숲이었는데, 채소가 아니라고, 잡풀일 뿐이라고

누군가 싹 베어버렸다.

가지런한 채소만 보이는 텃밭이

누군가의 눈에는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겠지만

숲과 채소들이 어우러졌던 삶터는

이제는 벌레들이 날아와, 기어와 쉴 수 없는

휑뎅그렁한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옥상 텃밭의 일이 여기에 그치지 않아

검인정이던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한단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은 갈등을 낳고

갈등은 분열을 낳고 사회 통합을 해친다고

생각이 다르면 쓰지 않으면 되지

죽일 것까지야 없지 않겠는가라는 윤휴의 말이

귓가에 쟁쟁한데

아예 생각이 다름을 없애겠다는 의지가

누군가의 힘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통일벼 심기 강요, 새마을 운동, 장발 단속, 짧은 치마 단속에

유기농을 멀리하고, 농약으로 작물 하나만 살리던 관행농

생각의 일원화로 시민이 아닌 국민을 만들던 국정교과서만 존재하던,

다시 오지 않을 누군가에게 보기에만 좋았더라는 시절이 오고 말았다.

다품종 소량생산, 개성, 다름, 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라면서

옥상 텃밭 사이 숲, 보기에 좋지 않다 없애듯

다양함을 분열로 아는 누군가가

국정 교과서를 부활한 시대

단일품종 대량생산을 강요하는 그들은

다양성이 삶이고 단일성은 죽음임을 알지 못한다.

채소와 풀과 꽃이 어우러져 생명들의 삶터를 만들고

다름이 모여 조화를 이룸이

바로 삶임을 모두들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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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깊다 1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1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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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역사를 뒤로 돌리는 행위는 하나의 희극(코미디)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코미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웃지도 못하고, 분노도 못하고, 황당함에 입을 다물고만 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 역사에 무지한 사람, 유교가 지배적이었던 조선시대에도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역사를 공부해야 했고, 임금들의 필수 학문에도 역사가 있었는데, 이 나라 정치인들은 역사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있으니...

 

역사의 바퀴를 뒤로 돌리면서도, 사회를 퇴행시키면서도 그것이 퇴행인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학자들... 사회에서 존재가 미미한 사람들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 이제는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때인데... 이런 인문학 중에서도 '역사학'은 더 위기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펼치면 이런 구절이 먼저 나온다.

 

"이런 학문이 어떻게 여태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역사학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말라죽어가는 학문인데, 이런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학문이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신기해 하는 다른 학자의 말에 이 책의 저자는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수치화되고 실용화된 학문이 아니면 취급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학문은 이런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이것이 현실임을 어찌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학문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우리 역사는 '깊어진다'

 

이런 '깊은 우리 역사' 알면 우리가 지금을 잘살 수 있다. 아니, 잘살기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의 우리가 그냥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시공간의 축적'을 통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역사를 모르는 사람, 역사에 무지한 사람,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지금을 제대로 살 수가 없다.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뀐 교과서를 다시 국정으로 되돌리려는 정치권이 그런 교과서 편찬의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듯이 역사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중요한 학문이다.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의 1권은 1월부터 7월까지 중에서 우리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일들을 다뤄주고 있다.

 

바로 첫 장이 '경복궁 잔디밭과 일제의 공간정치'(1월 7일)이고, 마지막 장이 ''위생'의 이름으로사생활에 개입하는 국가, 생체 정보 유출의 위험성'(7월 15일)이다.

 

각 날에 해당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많겠는데, 이를 60개로 추려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과거의 역사가 현재에도 지속됨을 각 장마다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이렇게 기술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고, 역사가 과거에 머문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작동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첫장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지금 우리들은 마당있는 집을 꿈꾸고, 그 마당에 파란 잔디를 심기를 꿈꾸지만, 우리나라 전통에서 잔디는 한자어로'사초(莎草)'라고 하고, 이 명칭에서 '사'자는 '죽을 사'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회피했다는 사실.

 

즉, 잔디는 죽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풀이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일제가 경복궁을 헐고, 그 자리에 잔디를 심은 것은 조선이 죽었음을 우리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함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유래는 이런데, 우리는 지금 잔디를 못 심어 안달이니... 역사를 몰각한 모습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1권에 30개의 역사적 장면이 있는데... 하나하나 다 읽을 만하고, 현재하고도 잘 연결이 되어서 역사학은 결코 죽어서는 안될 학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덧글

 

이 책의 1권은 알라딘 이벤트 이 달의 출판사 응원 댓글에 당첨되어 받았다. 이렇게 좋은 책을 보내준 출판사 '푸른 역사'에 고마움을 표한다. 푸른 역사,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하는 '청사(靑史)'다. 앞으로도 좋은 책을 많이 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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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고 우는 까닭 - 옛 노래에 어린 사랑 풍경
류수열 지음 / 우리교육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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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시대를 넘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를 더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이 사랑에는 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도 있고, 나라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대를 넘어서 존재하는 사랑은 사람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옛문학에 나타난 사랑 풍경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옛문학이라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이제는 우리와 상관없는 문학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문학은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고 있음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남녀간의 사랑에서 한참 사랑에 빠졌음에도 그 사랑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별의 불안함으로, 그 불안함을 불가능한 사실을 들어 사랑의 영원함으로 바꾸려 했던 이야기부터(정석가라는 고려시대 노래를. 노 여러 민요를 현대시인 진달래꽃과 함께 이야기하기도 한다), 왜 내 마음이 더 쓸쓸해졌나를 보여주는, 알려주는 문학들까지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옛문학이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표현했는지 알 수 있고, 그런 마음이 과거의 것이 아닌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연결고리를 '사랑'을 주제로 잘 이어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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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엔 ‘조조’가 너무 많다


어지러운 세상은 간웅이 영웅이 된다.

합리를 가장한 폭력을 자행하나

누구도 막지 않고 오히려 지지한다.


낙엽 때문에 살기 힘들다고,

쓰레기 만드는 원인을 제거하라는 민원에

출동한 차, 기계톱들에 의해

사정없이 잘려나간 머리, 팔, 다리,

싱그러움을, 그늘을, 거름을,

자신의 몸을 불살라 따뜻함을 주던

생명을, 쓰레기로 취급해 처분하는 세상.


가차 없이 잘려나간 나무들에

도끼로 나무를 찍던 합리주의자,

간웅 조조가 떠올랐다.

이제 조조는 수많은 분신들을 세상에 내었구나.

수많은 조조들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무의 머리, 팔, 다리들을

베어버리는, 21세기.

나무가 주던 싱그러움도, 그늘도, 거름도, 따뜻함도

쓰레기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합리주의자임을 자처하던 조조는

나무를 베어 제 목숨을 잃었는데,

조조의 최후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지러운 시대,

지금 우리에겐

‘조조’들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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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0-07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가뭄이...말해주고 있는걸 모르나 봐요
 
문학으로 모든 질병을 치료한다
이철호 지음 / 정은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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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치료, 소설치료, 이야기치료, 독서치료라는 말들이 있었고, 몇 년 전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문학치료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치료라는 말이 어떤 특정한 질병을 없애는 방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치료는 그래서 눈에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문학은 그런 것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은 우리가 문학치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때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왔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 마음의 상태에 따라 몸의 상태도 좋아졌을 것이기 때문에 문학이 치료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그렇게 그랬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던 문학치료를 다방면으로 정리해 놓았다. 단지 문학치료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음악치료, 미술치료 및 식물을 통한 치료까지도 함께 하고 있는데, 여기에 우리나라 사상의학을 도입해서 체질에 따른 문학치료도 이야기하고 있다.

 

똑같은 작품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니, 체질에 따라서 문학작품도 다르게 추천해야 한다는 것, 일리가 있다.

 

여기에 이 책은 문학치료를 전문적인 작가가 쓴 작품을 읽는 행위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문학치료에는 읽는다는 행위에 직접 문학을 창조한다는 의미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치유하듯이 창조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여러 상황을 소개하고, 그 상황에 맞는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한 부분을 들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우유부단하고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에게 효과적인 문학 치료법'이라는 제목 하에 향가인 '처용가'를 소개하고,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책임이 형상화된 소설 '가시고기' 그리고 사기열전에 나오는 '구천의 와신상담'을 예로 들고 있다.

 

각 장에 맞는 작품을 소개해주고 있어서 다양한 상황에 맞는 작품들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상황에 맞는 문학 작품을 부록으로 정리해 주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그것까지는 나아가지 않아서 조금 아쉽기는 하고.

 

이제 문학은 문학을 통해 치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추측에서 벗어나 문학으로 치유가 가능하다는 의학적 증명에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문학이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시대는, 어쩌면 우리의 마음과 몸이 더욱 힘들어지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마음과 몸이 편안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문학을 읽어야 하고, 문학을 창작해야(거창하게 작가가 되라는 얘기가 아니라, 자연스레 글쓰기를 하라는 의미다) 한다.

 

그것이 우리도 사회도 좋아지는 비결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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