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표지에 나온 사진들... 마치 입사 면접 전에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과 같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 직장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음에도, 이렇게 계속 면접을 보아야 하는 상태.

 

삼포세대, 오포세대를 지나 이제는 모든 것을 또는 아무것이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n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

 

이런 현실을 민들레가 놓쳐서는 안되지... 그래서 이번 호는 청년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청년들만 다루어서는 되나? 이 청년들의 과거인, 아니 이 청년들이 오래된 미래인 아이들도 다루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호는 청년들과 아이들에 대한 글들이 많다.

 

청년들이 n포세대라는 말을 들어서, 이들에게 왜 너희들은 희망도 없느냐, 왜 반항도 하지 못하느냐 하지만, 희망을 가질 수 없고, 반항도 할 수 없는 그들에게 그것은 가혹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 말을 하는 어른들, 기성세대들 역시 가혹한 삶을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

 

그러므로 지금 우리나라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나이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어린 사람이든 모두가 고통 속에서 허덕대고 있는 상태.

 

하지만 척박한 상황에서도 민들레가 꽃을 피우듯이 청년들 역시 이 현실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있다. 아니 꽃을 피워야 한다. 이들마저 꽃을 피우지 못하면 그런 세상은 가망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곧 겨울이 다가올텐데도, 화단의 한 쪽에 노란 민들레꽃이 피었다. 힘들어도 자신이 꽃을 피울 수 있을 때 피우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데... 그런 의지를 이번 민들레에서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런 청년들이 있어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님을... 이런 청년들이 후세대인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음을... 그리고 기성세대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음을 민들레를 읽으며 생각했다.

 

더불어 김경림의 '모성본능과 생존본능'(129-135쪽)의 글을 읽으며 아이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부모가 잘 살아야 함을, 다시 생각하고.

 

그래, 이 책 제목인 '민들레'가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힘들어도 작은 공간이라도 있으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멀리멀리 날려 전파하는 그런 모습... 그런 청년들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지녀야 함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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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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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소설은 소설같다.

 

소설같다는 이야기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이건 소설 속 이야기야 하고 읽게 된다는 얘기도 된다.

 

그렇게 환상과 허구가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그런 환상과 허구를 현실과 연결짓는 일, 그것이 바로 읽는 이가 할 일이다.

 

탁구... 핑퐁이다. 공이 여기에서 저기로 왔다 갔다 하는 운동. 특정한 공간을 넘어가거나, 넘어가지 못하면 점수를 잃는 운동.

 

그래서 탁구는 같은 공간을 왔다 갔다 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탁구다. 탁구를 잘하는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해야 하고, 상대방이 넘긴 공을 같은 공간으로 또 넘겨야만 한다.

 

탁구를 잘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다. 아니, 적응을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와 하나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왕따 및 괴롭힘을 당하는 중학생 둘이 인류의 운명을 걸고 탁구시합을 한다. 그것도 인류의 대표들과. 그런데 그 인류의 대표가 참 우습다. 새와 쥐다.

 

낮말을 듣는 쥐와 밤말을 듣는 쥐... 우리나라 속담에 나오는 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그런데, 이런 새와 쥐가 왜 인류를 대표할까? 소설 속에서는 '스키너의 상자'가 나온다. 훈련으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아니 반복을 통해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읽어가면서 이 '스키너의 상자'와 '탁구'는 기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을 했고, 두 중학생이 탁구를 배우는 것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생.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그런 질풍노도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질풍노도를 잠재울 반복적인 학습이다.

 

오로지 반복적인 학습밖에 없다. 그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반복을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이 소설에서는 이런 반복이 폭력임을 그들이 당하는 괴롭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생활은 도대체 왜 맞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맞는 일, 그러나 죽도록 맞지만 죽어서는 안되는, 그런 폭력.

 

이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른 세계를 만드는 일... 그것은 인류를 해체하는 일, 언인스돌!

 

그래 아무리 철인적인 체력을 지닌 등산가라도,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도 반복이 일상이 된, 그래서 습관으로 굳어진 세상을 이길 수 없음을, 두 중학생을 대신해서 탁구 시합에 나섰던 메스너(최초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가)와 말콤X(흑인 차별철폐 운동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이 세상은 견고하다. 그러나 그 견고함... 철조차도 피로를 느끼고 균열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렇게 단조로운 반복만이 되는 세상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경기에 이기고 있던 새와 쥐가 과로사했다고 하는 것으로 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처럼 인류가 계속 생활한다면 인류 스스로 멸망하고 말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하여간 탁구라는 매개를 통하여 중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들을 통하여 지금 우리 인류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으니, 박민규란 소설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소설을 소설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작가라고나 할까. 그런 소설을 통해서 현실을 점검해 볼 수 있도록 해주고도 있으니... 그래, 가끔은 소설을 읽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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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들어봤던 제목이다.

 

 성산포에 가서 이 시를 읽으라는 시인의 말처럼, 정말 바다를 앞에 놓고 이 시를 읽는다면 더 감흥이 깊어지겠단 생각이 든다.

 

  성산포, 일출봉. 무엇보다 사방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바다를 보며 온갖 상념에 젖어들어도 좋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어도 좋다. 읽지 않아도 그냥 바다만 바라보아도 좋겠다.

 

  굳이 하늘을 보지 않아도, 바다 속에 들어온 하늘을 볼 수 있으니 좋다.

 

아니면 이렇게 이런 시를 읽어도 좋겠다. 요즘처럼 사람을 절망시키는 시대에, 또 정말 바다보다도 더 깊은 속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다른 말들을 모두 삼켜버리는 누구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11. 절망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동천사. 1996년 초판 18쇄. 21쪽.

 

나는 이 시집을 '알라딘 중고'에서 샀는데, 검색해보니 출판사를 달리해서 시집이 재발간 되었다.

 

나온 지 오래 된 시집인데,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얘기다. 그냥 아무 곳이나 펼쳐 놓고 읽어도 좋은 시집이다. 그런 시들이다.

 

이 시처럼 절망을 바다가 듣게, 바다가 삼키게 하고, 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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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 최두석 서사시
최두석 지음 / 비(도서출판b)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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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이 끝났다.

 

한 해에 한 번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앞으로 언제 열릴지 모르고, 또 한 번 만났던 가족들은 만나자 이별이라고, 한 번의 짧은 만남이(몇십 년을 헤어져 있었는데, 겨우 2박3일 만나고 또 헤어진다) 영원한 이별로 끝나는 이산가족 상봉이다.

 

눈물바다. 오직 그것뿐이다. 이 눈물들이 정지상의 '송인(送人)'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강물에 보태어 헤어짐을 더 영원하게 만든다.

 

임진강.

 

분단의 상징인 강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그냥 헤엄쳐서 건너갈 수도 있는 강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대로 건너서는 안 되는 강. 북쪽에서도 절대로 건너서는 안 되는 강.

 

분단. 이것은 영원한 헤어짐이다. 이런 헤어짐을 없애는 길은 통일에 있다. 통일, 그것도 무력에 의한 통일이 아닌 평화통일.

 

함께 웃으며 손잡는, 그런 임진강에서 함께 헤엄치는, 함께 물고기를 잡는, 함께 잡은 참게들을 함께 웃으며 먹을 수 있는 그런 통일.

 

하지만 아직도 통일의 길은 멀다. 말로는 '통일, 통일' 하고 있는데, 어째 말로만 한다는 느낌이 든다.

 

실질적으로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런데 사람들은 알까? 이 임진강을 헤엄쳐서 건넌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자신이 만든 통일방안을 들고 북한으로 넘어갔던 사람이 있었단 사실을.

 

그가 북한에서 다시 남한으로 넘어와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가끔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정권이 위태로와지면 그를 간첩으로 몰아넣곤 했다는 사실을.

 

그런 그의 이야기가 시로 써졌다는 사실을 알까? 최두석의 이 시집 "임진강"을 예전부터 읽고는 싶었다.

 

읽고 싶었음에도 어찌어찌 때를 놓치고, 200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시집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었는데, 다시 발간이 됐단다.

 

여기에 '종북 콘서트'라고 재미교포 신은미씨의 이야기 현장을 과도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직도 우리나라는 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 시집을 구해 읽었다.

 

시집은 김낙중이라는 사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냥 읽으면 그가 젊은 시절에 어떤 경험을 했고,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쓴 "굽이치는 임진강"을 읽으면 좋겠지만, 그 책은 406쪽에 달하고 또 지금은 구하기도 힘들테니, 이 시집을 읽으며 통일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려고 했던 사람이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김낙중, 김남기 지음, 굽이치는 임진강, 삼민사.1985년 초판.>

 

아직도 임진강은 남북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벽을 더 쌓고 있다.

 

이 벽을 없애는 길... 그것이 평화통일의 길인데, 그 길을 앞서 간 사람의 이야기를 시로 읽는 재미를 이 시집을 통해 느껴보길 바란다.

 

그래서 임진강에 분단의 눈물, 이산의 눈물이 더이상 보태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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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사랑은

잡는 것이 아니라 놓는 것이다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멈춰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터질 것 같은 슬픔을

안으로, 안으로 녹여

활짝 웃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날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떠나지 않고도

사랑이 

떠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런 아픔이 녹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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