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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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악스트" 2권에 실린 박민규와의 대담에 배수아인가 대담자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어차피 박민규의 소설을 읽을테니, 하고 구해서 읽은 소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보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음악을 만든 음악가가 있다고 하는데, 박민규는 그림과 음악을 보고 소설을 창작했다고 하면 되나?

 

꼭 그렇지는 않다. 작가의 말을 보면, 박민규는 어느 날 아내가 내가 못생긴 여자였어도 사랑했을 거나는 질문에 대한 오래 된 답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하니 말이다.

 

못생긴 여자, 그것도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는 여자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성립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세상 남자들은 여자를 단 두 부류로 분류를 한다고 하는데, 하나는 예쁜 여자, 또 하나는 못생긴 여자. 그리고 연령에 상관없이 남자들은 모두 예쁜 여자들을 원한다고 하는데... 오죽하면 서양말에(우리말에도 있을 법한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영어시간에 배운 구절만 머리에 떠오르니, 무의식적으로 내 머리에서 우리말의 편견을 씻어내려 하나 보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이 소설은 정말로 못생긴, 너무도 못생겨서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여자는 못생겼고, 남자는 잘생겼고, 그러나 남자가 먼저 사랑에 빠지고, 둘은 서로 만나기는 하지만 곧 헤어지고, 영원한 이별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만나고...

 

이렇게 행복한 결말일 줄 알았는데... 나중에 다시 뭐야 하게 하는 결말이 나타나고, 작가의 말에서는 어떤 결론도 나올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하고.

 

20대 청춘을 이렇게 사랑으로 시작한 사람, 자신의 마음에 빛을 간직한 사람, 그 빛은 꺼지지 않는 영원한 빛이 되어 살아가는 내내 자신을 지탱시켜줄 등불이 된다고...

 

그것에는 외모고 뭐고 필요없다고, 그런 나이 때, 한창 싱그러울 나이 때 지지리도 많은 고민을 하고, 고생을 하는 청춘들이 등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사랑으로 삶을 유지해 간다는 사실을 소설로 보여주고 있다.

 

박민규 특유의 문체, 툭 툭 끊어지는 그런 문체와 독백하듯이 서술해나가는 1인칭 화자의 등장으로 남의 속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런 점에서 읽는 사람이 소설 속의 주인공과 자신을 일치시킬 수 있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갓 20세가 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는 성숙함 같은 것이 소설 곳곳에서 나온다. 지나치게 일찍 성숙해버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이 소설 속에서 만날 수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 사랑이 사람의 삶에서 중심임을, 사랑이 없는 삶은 그냥 살아지는 것에 불과함을, 한 때 진정한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람은 평생 그 사랑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음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느니...

 

인스턴트 사랑이 아닌, 물질이나 조건, 외모를 보고 하는 사랑이 아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마음 떨리는 사랑을 해본 사람... 그런 청춘을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나보는 경험을 하는 것도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사랑의 빛을 다시금 불러내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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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별 - 나를 키운 것들 문지 푸른 문학
김종광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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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이 소설은 48편의 길고 짧은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삼았다.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1960-70년대 출생한 시골 출신 어버이 세대는 이렇게 자랐구나! 편한 마음으로 봐주시기를.'

 

소설이다. 이 말은 꾸며낸 이야기란 말이다. 꾸며낸 이야기는 완전한 공상이 아니다. 꾸며낸다는 말 자체에는 이미 사실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을 있음 직한 일을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글이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떤가?

 

바로 이 소설의 뒷부분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에 답이 있다. 시골출신 어버이 세대의 경험담이라고 한다. 여기에 작가의 고향인 보령이 구체적인 지명으로 등장한다.

 

하여 이 소설은 1970-80년대 어린시절과 청소년시절을 보낸 지금 아버지-어머니 세대의 이야기다. 어느 정도는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을 것이고, 작가가 들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지만, 지금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어른들이라면 그땐 그랬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내용이 많다.

 

그냥 과거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과거를 현재에 불러온다. 현재의 청소년들에게 과거 어른들의 청소년기를 보여준다.

 

어른들도 너희들과 다르지 않은 시절을 보냈다고... 어른들도 이렇게 세상물정 모르고 사고치고,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보냈다고.

 

그 때 어른들이 자기들을 지금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대하듯이 다루기도 했다고.

 

여기에 더 기막힌 것은 충청도 보령이라는 시골의 장소성이다. 산업화를 겪지 않은, 기껏해야 탄광이 있고, 농사를 짓고, 동네에서 몇몇이 소위 출세라는 것을 한 시골의 장소성.

 

이들은 삶이 힘들기 때문에 진보적일 것 같지만, 이들의 생활에서는 진보적인 이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직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이들은 정부에서 전하는 홍보에 순응한다. 아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빨갱이'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추방해야 할.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교사들이 얼마나 충실히 하는지, 얼마나 체벌이 일상화되어 있는지 소설의 곳곳에 나와 있다.

 

그나마도 이념의 균형을 잡아줄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소수이다. 시골에서는 이념의 중립, 또는 이념의 조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오로지 텔레비전에서 하는 말이 진리다. 그 이외의 것은 없애야 할 것, 지금도 '종북좌파'라면 옴짝할 수도 없게 되지만, 이 시대에는 '빨갱이'라는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이런 과거를 과거의 이야기로 하기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아낸 청소년의 처지에서 소설을 이끌어가기 때문에, 내용이 무겁지 않다.

 

소년의 눈으로 내용이 전개되기에 이념 갈등도 없다. 그냥 가볍게 읽으면 된다. 읽으면서 때로 킬킬거리면 된다. 그만큼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의 힘이 잘 드러나고 있는 소설이다.

 

다만, 4-50대의 어른을이 읽으면 향수에 젖으며 킬킬거릴 수도 있지만, 지금 청소년들이 읽으면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를 모를 수가 있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소설에 나타난 내용이 '반어'에 해당한다는 것, '풍자'에 해당한다는 것을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더라도,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는 사람에게 이 소설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말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 70=80년대 상황을 안다면 이 소설은 참 재미있다. 그 어지러운 시대, 어려운 시대를 이렇게 경쾌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탐을 하게 되기도 한다.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그런 지식만 바탕이 된다면.... 아니어도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웃어야 할 장면을 놓치기 쉽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가령, 이 책에 실린 소설 중에서 '시인'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그냥 읽어도 좋지만, 보령 출신 우리나라 소설가, 이문구를 떠올리며 읽으면 이 소설이 가슴에 다가온다. 이문구의 아픔 또한 느낄 수 있고... 물론 이 소설에서는 이문구라는 이름은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문구를 연상할 수 있으면 읽는 재미가 두 배가 되니 얼마나 좋은가.

 

이런 식이다. 조금만 우리나라 사회역사적 배경을 알면, 더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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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영혼


어느 날, 내게서

별이 빛의 속도로 멀어져 갔다.

그날 부터

하늘을 보지 않은, 나는

늙어버렸다.


아스라이 멀어져 간 별

별과의 거리는 영혼의 나이였다.


잃어버린 젊음을 찾고 싶어

어둑한 밤, 청정 공기

해발 700미터, 평창,

잔디밭에서 하늘을 보니

아득히 멀리 있는 별.

보고 또 보니 별이,

내게서 도망치지 않는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별을 잊고 있었음을,

별이 내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별에서 멀어진 것이었음을,

평창, 어두운 밤하늘

별을 본 그날,


별은 빛의 속도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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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국어사전 -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비판 뿌리와이파리 한글날
박일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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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학생이 있는 집에서는 모두들 영어사전 한 권씩은 가지고 있었다.

 

영어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중요한 과목이 된 지는 오래되었고, 영어 공부를 위해서는 단어를 찾고 익히는 것이 기본이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이 필수였다.

 

영어사전을 보면 초중고, 대학생들이 익혀야 할 어휘들에 표시가 되어 있었고, 용례도 풍부했는데,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 사전인 국어사전을 집에 가지고 있는 학생은 드물었다.

 

혹시 좀 산다는 집에서 장식용으로 한글대사전과 같은 두꺼운, 그러나 한 번도 펼쳐보지 않는 그런 사전을 비치해 둔 적은 있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국어사전을 넘기며 우리말을 찾는 학생은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 하면 웬지 다 알 것 같았고, 찾지 않아도 문맥 속에서 뜻을 유추해낼 수 있었으니, 아주 어려운 말들이 아니면 사전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기도 하지만, 국어사전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영어사전은 하나씩 두고 있으면서 국어사전은 두지 않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되었다. 말 그대로 온라인 시대가 되었다.

 

종이사전은 전자사전으로 대체되었으며, 한 때 유행했던 전자사전도 이제는 그냥 스마트폰에서 검색을 하면 각종 어학사전이 다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도 영어는 역시 중요시 여겨진다. 영어사전을 온라인으로 검색하는 사람은 많지만, 국어사전을 온라인으로 검색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여기서 사람이라고 했다. 학생이라고 하지 않고. 온라인 시대에는 학생과 어른의 구분이 필요없으니, 그냥 사람이라는 말로 통칭해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래서일까? 국어사전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교육부도 국어학자들도, 그리고 일반인들도. 그냥 그런 사전이 있나 할 뿐이다. 너무도 가끔, 아니 거의 찾지 않는 사전이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공신력있는, 가장 기본적으로 참조해야 할 사전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대답하지 못할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냈고, 온라인으로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어떤 글을 쓸 때, 또는 맞춤법이나 낱말을 찾을 때, 낱말의 정확한 사용을 알고 싶을 때 '표준국어대사전'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면 우리말이 잘 쓰이고 있다고 할 수 없을텐데...

 

국어사전에 대한 무관심. 일반인들만 무관심하면 그나마 괜찮다고 위안을 삼겠으나, 정작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낸 국립국어원조차도 국어자선에 대해 관심이 크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간혹 국어사전을 찾을 때 답답함을 느끼곤 했는데... 정말 짜증났을 때가 신동엽의 '산문시1'을 읽을 때, 그 시에 나온 말 '흡쓰며'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았는데... 나와 있지 않을 때... 사전이야 그렇다치고 국어원에 질문했을 때도

 

 "안녕하십니까? 문의하신 ‘흡쓰며’는 그 기본형이 ‘흡쓰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는 “표준국어대사전” 외 다른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아 그 의미와 기본형에 대해 명확히 답변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시어인 점을 감안하며 시인의 독창적인 변용의 결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라는 답변만을 들었는데...

 

국어에 관해서 연구하고, 정리한다는 국립국어원에서 우리나라 유명한 시인이 쓴 시구절에 나온 말을 더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렇게만 답변했다는 사실. 그냥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지 않다와 다른 사전에도 없다가 끝이다.

 

그 말이 어떻게 나온 말인지 연구해서, 찾아서 알려주겠다는 말은 없었으니... 답답했었는데...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답답한데 '우리말을 다룬 책을 몇 권 내는 바람에 남들보다 국어사전을 뒤적일 기회가 많았'(7쪽. 들어가며)다는 이 책의 저자는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하던 조선어학회 사람들을 잡아가두며 일제가 했다는 말.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 (10쪽. 들어가며)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도 있는데... 해방이 되고, 선진국 대열에 올라, 이제는 문화강국을 꿈꾼다는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사전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너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개인에 의해서 사전이 만들어지지도 않고, 국가에 의해서, 국가에 의해 설립된 기관에서 국어를 전공한다는 전문가들이 모여 사전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가장 믿을만한 좋은 사전이 '표준국어대사전'이 되어야 함에도,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

 

책을 읽을수록 화가 나기만 했다. 이렇게 엉터리일 수가? 그냥 조금 잘못이 있겠지 했었는데... 조금 잘못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만 할 사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총 13장에 걸쳐 '표준국어대사전'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 책의 초고를 마치는데 두 달 정도 걸렸다'(263쪽. 나오며)고 했는데, 이 정도 기간에 이렇게 많은 문제점을 찾아내고 지적할 수 있을 정도면... 이건 '미친 국어사전'이 아니고 '엉터리, 또는 나오지 말았어야 할 국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이 우리의 정신을 담고 있고,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면 사전은 그런 말의 집합, 정신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나라의 공인된 기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사전이 이렇게 엉터리라면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루바삐 고쳐야 하는데... 역사교과서를 바로잡는다는 망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 잘못된 우리 국어사전부터 바로잡을 노력을 해야 하는데, 방향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정치권이 하는 일은.

 

하나하나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를 이 책에서 예를 들지 않겠다. 예를 들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냥 책을 읽어보면 된다. 책을 읽어보며 온라인으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라. 그러면 이 책에 나와 있는 문제가 정확함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화가 난다. 설마, 국립국어원의 관계자들이 이 책을 읽지 않지는 않겠지. 적어도 자신들이 관계된 작업을 비판하는 책인데, 읽고 수정할 것은 수정하고, 반박할 것은 반박해야겠지.

 

그것이 우리말을 더 잘 살리는 길이고, 진정한 우리 국어사전을 만드는 길일테니 말이다. 최소한 이 책에 대한 논평이 국립국어원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만들어냈으면 한다. 이건 정말 시급한 일이다. 중요한 일이고. 다른 무엇보다도. 그 많은 국어학자들은 무엇하고 있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이렇게 엉터리라는데... '미친'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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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oo 2015-11-03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폰 어플이 있어 20달러인가 주고 샀는데(사실 내이버 백과사전이 표준국어대사전이죠) 지금은 다음사전(고려대 국어사전)을 더 많이 보는 거 같아요.

kinye91 2015-11-03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표준국어대사전을 가끔 참조하는 편인데요, 이 책에 의하면 그래도 다음국어사전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를 위한 교양 수업 - 내 힘으로 터득하는 진짜 인문학 (리버럴아츠)
세기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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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추어 엄청난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마도 최근에 쏟아져 나온 정보들이 인류 역사를 통하여 축적된 정보들의 양과 맞먹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정보들이 나올테고.

 

이런 상태에서 예전 정보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자신의 머리 속에 간직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 되기 십상이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정보는 이미 과거의 정보, 새로운 정보로 대체된 정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길이 무엇일까? 그냥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일까?

 

오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만의 관점을 확립해야 하지 않을까? 남의 말을 듣되, 내가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텐데... 그런 힘이 어디에서 올까?

 

이 책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 방법. 그것은 바로 '교양'에서 나온다고.

 

우리가 흔히 교양이라고 하면 그냥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현대는 전문적인 지식만이 필요하다고, 그런 지식은 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힘들게 얻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여기서 교양은 영어로 'liberal arts'다. 교양과목, 또는 옛날 서양에서 강조했던 자유7과목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교양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바탕이 되는 지식이고, 이것은 암기가 아니라 방향, 관점을 제시해주는 지식이 된다.

 

정보가 많을수록 그 정보를 가리고 판단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교양'이다. 따라서 '교양'은 정보화 사회에 더욱 필요한 요소가 된다.

 

어떻게 교양을 쌓을까? 아니, 교양을 통하여 내 관점을 확립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이 책의 저자는 여러 교양과목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학, 철학,인문사회.논픽션, 예술 분야로 나누어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논한 여러 교양과목들은 사실 하나로 통합해서 배우지 못하고, 각자 분절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각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해야 하고, 이들을 통하여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연과학은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데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바른 관점을 지닐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누구나 익혀야 하는 대상이라는데 동의한다.

 

마찬가지로 철학이나 인문사회, 예술분야도 마찬가지고. 이들을 더 깊게 공부하면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겠지만, 전문적인 분야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배우고 익혀서 자신의 관점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교양은 산을 오를 때 출발점이자 휴식처, 그리고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인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냥 잡다한 지식, 남들에게 자랑하는 다양한 상식이 아니라 우리 삶을 잘 살게 해주는 기본,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런 교양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들고, 설명을 해주고 있다. 물론 이 책에 나온 작품들만이 '교양'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가 생각하는 것이니...

 

이 책을 중심으로 자연과학, 철학, 인문사회, 예술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고 자신만의 관점을 확립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테니,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의미가 될 것이다.

 

각 분야의 책을 잘 소개하고 있어서, 도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점점 교양이 줄어들고, 교양에 대한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이 때,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 정보가 넘칠수록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관점이 중요하기에, 관점 확립을 위한 기본 교양, 즉 리버럴 아츠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

 

그 점을 이 책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덧글

 

고맙게도 이 책은 출판사가 보내준 책이다. 책에 관해서는 거절을 못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어서, 고맙게 받고, 잘 읽은 책이다.

 

다만 이 책의 214쪽에 슈베르트에 대한 이야기 중에 '노년의 작품, 늙은 슈베르트, 노년의 슈베르트'라는 말이 나오는데, 슈베르는 겨우 32세(1797-1828)에 죽었으니, 그의 말년 작품이나 또는 원숙기 작품이라는 말을 썼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아무리 죽음에 임박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해도 '노년이나 늙은'이라는 말은 좀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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