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고, 스승의 날도 있는 그런 달.

많은 날 중에서 우리들이 기념해야 할 날들이 많은 달이 바로 오월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씩 채워지고 있는 오월. 아름다운 계절이다. 물론 그 계절의 충만함은 그 동안의 비어 있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한겨울이라는 비움을 겪었기에 이 오월이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비움이 없는 채움이란 있을 수 없음을 오월의 충만함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고 있다.

 

그런 오월에 시 한 편. 정끝별의 시집 "흰 책"을 읽다가 어쩌면 이 오월에 이런 시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채워짐이 넘치는 시절에 비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시

 

속 좋은 떡갈나무

 

속 빈 떡갈나무에는 벌레들이 산다

그 속에 벗은 몸을 숨기고 깃들인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버섯과 이끼들이 산다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딱따구리들이 산다

그 속에 부리를 갈고 곤충을 쪼아먹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박쥐들이 산다

그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잠을 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올빼미들이 산다

그 속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깐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오소리와 여우가 산다

그 속에 굴을 파고 집을 짓는다

 

속 빈 떡갈나무 한 그루의

속 빈 밥을 먹고

속 빈 노래를 듣고

속 빈 집에 들어 사는 모두 때문에

속 빈 채 큰 바람에도 떡 버티고

속 빈 채 큰 가뭄에도 썩 견디고

조금 처진 가지로 큰 눈들도 싹 털어내며

한세월 잘 썩어내는

세상 모든 어미들 속

 

정끝별, 흰 책. 민음사,  2000년 1판 1쇄. 20-21쪽.

 

이 시를 읽고 노자의 '도덕경'의 비움의 유용성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생각났다.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속을 비워가는, 그 비워진 속으로 자식들을 키워내는 그런 부모의 삶.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신을 비워 자식들을 길러낸다. 이 떡갈나무처럼.

 

그런데 이런 비움이 꼭 부모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적어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이들 역시 떡갈나무처럼 비워서, 자신을 비워서 다른 존재들을 살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만을 채워서 사회를 오히려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 시대에, 이 시는 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말해주고 있다.

 

비움은, 없음이 아니라, 채움이고, 충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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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눈 - 서경식 에세이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서경식의 미술 관련 책을 읽었다. 좋았다. 그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 어쩌면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서 세상을, 삶을 보는 그의 눈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한겨레 신문에 글을 연재한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읽었던 적도 있고, 그냥 넘어간 적도 있는데, 이 책은 그가 연재한 글들을 엮은 것이다.

 

신문이 그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시론(時論) 형식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면, 책은 그보다는 조금 늦게 더 넓고 깊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 똑같은 글일지라도 어느 매체를 통해서 언제 읽으냐에 따라 글의 효용성은 달라진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서경식의 글이 신문에 실렸을 때는 그때 당시의 상황과 맞는, 또는 맞서는 글이었을테고, 그 때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고무했다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나온 이 책은 시대의 한 상황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상황을 통해서 앞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흔히 이산이라고 번역되는 이 말은 내부보다는 외부, 다수보다는 소수라고 생각하면 되고, '디아스포라의 눈'이라고 했을 때는 그래서 외부에 있는 소수자의 처지, 또는 내부에 있더라도 주류에 편입되지 않은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이런 '디아스포라의 눈'이 왜 필요할까? 서경식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사를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한 개인이나 사회가 건전함을 유지해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6쪽)

 

모두가 똑같은 방향에서 똑같은 높이로, 똑같은 것만 보는 사회를 상상해보면 그런 사회는 전체주의에 다름 아니다. 사람들은 숨막힐 수밖에 없고, 이런 사회에서 다른 생각은 곧 이단이 되어 버리고 만다. 사회에서 배제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런 사회일수록 자신들이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고, 서경식은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자이니치라고 한다) 조선인이고, 그의 형인 서승과 서준식은 우리나라에 유학왔다가 간첩단 사건으로 감옥생활을 했고, 그는 형들로 인해 우리나라에 유학올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는 배제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내부에 속해 있지만, 외부에서 소수자의 시선으로 사회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시선으로 읽는 사회가 우리들의 사회에 대한 시선을 교정해주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 책에는 일본과 한국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일본과 한국에 걸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인데... 어쩌면 우리는 일본의 뒤를 쫓아가고 있다는 그의 우려 때문인지도 모른다.

 

많은 면에서 우리는 일본을 뒤따라가고 있는데, 싸우면서 닮아간다고 해야 하나, 일본이라는 아주 좋은 거울이 있는데, 그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고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거울 속의 모습에 자신을 맞추려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책의 끝부분 발문에서 한홍구가 서경식을 가리켜 비관주의자라고 한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면 안된다고, 일본의 우경화를 따라가면 안된다고 많이 걱정했는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그의 걱정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3년이라는 시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유효하다. 우리에게 생각할거리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과거의 사건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 현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런 활동을 통하여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신문에 실렸을 때 느꼈던 점과는 다른 점들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눈... 내부에서, 주류의 시선으로 볼 수도 있지만, 외부에서 소수자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 점이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쪽으로 바꾸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를 보는 또 하나의 눈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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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흐르는 데.

혼자서는 견딜 수 없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데

물은 흐른다.

조금이라도 낮은 곳이라면

어떤 곳이건

찾아간다.

위압적이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듯이.

 

그러나 물이 흐르는 데.

늘 낮은 곳으로 흐르나

더 낮은 곳이 없을 때에는

머물러 썩고 만다.

할 일을 망각하고

모이고 모여 생태계를 바꿔놓고 마는

거대한 댐처럼

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우리에게 피해를 준다.

 

물이 흘러야 할 곳

그곳은 낮은 곳.

모여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이라면

땅 속 구석구석으로 스며들거나

하늘을 향해 승화되는 곳

그런 곳,

법이 집행되어야 할 곳.

법은 바로 물()이 흐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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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생각하다 -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이 고작 교사인 이들을 향한 열정적인 옹호
테일러 말리 지음, 정여진 옮김 / 니들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처음에 이런 말로 시작한다.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직업이 교사인 사람들에게서 아이들이 대체 뭘 배울 수 있겠습니까?"

 

변호사가 저자에게 물은 말이라고 한다. 교사라는 직업은 사회에서 우대받지도 못하고, 그리 재능이 필요하지도 않은 직업이라는 뜻이고, 겨우 자신의 선택이 교사인 사람에게 학생들이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교사가 된 사람들에게 이 말보다 더 모욕적인 말도 없으리라.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받아치고 싶다고 한다.

 

"이도 저도 되는 일이 없을 때는 법대에 가면 된다."

 

그러나 저자는 입 밖으로 이 말을 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다른 일에 착수한다.바로 신입교사 1000명 만들기다.

 

자신의 시 "교사가 만드는 것"을 읽고 교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 천명이 생기게 하는 것. 아마 이 책은 그의 그런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 비록 교사라는 직업이 안정적이지도 사회적 존경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르친다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은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교사가 있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아마 교사는 최선의 선택이 고작 교사인 사람들이 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자신의 사명감을 지니고 교사가 된 사람들일 것이다.

 

가르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이 책에 잘 나와 있는데, 그럼에도 노력하는 교사의 모습, 교사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서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경험으로 만들어낸 책이기도 하고, 교사에 대한 열정적인 옹호를 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아마 교직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교사들이 읽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교사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고.

 

교사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자세로 교육에 임하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이 읽어도 좋을 것이다.

 

교직이란 천직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남을 가르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전존재를 거는 일이기에 함부로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꽤 높지 않은가? 왜 안정적이니까. 그럼에도 교사의 사회적 지위는 그리 높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데...

 

학교에서 또는 다른 곳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을 읽으면 교사에 대해서 좋은 면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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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넘치는 세상에서 말들을 줄이려는 사람들은 반갑다. 그 말을 줄이려는 사람들 중에 시인이 아마 가장 앞에 서리라 생각하지만, 요즘의 시는 수다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넘치는 말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냥 휩쓸려 가기만 한다. 길거리에 나서도 예전에는 듣기 힘들었던 말들을 이제는 무슨 혼잣소리들을 그렇게도 많이 하는지, 기계 저편의 사람들과 속닥이는 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들린다.

 

세상에 날아다니는 말들을 채집하면 아마도 그것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리라.

 

이 많은 말들 중에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아 싹을 틔우는 말이 얼마나 될까? 씨앗이 되는 말들이 아니라, 공해를 일으키는 말들이 너무 많지는 않은가.

 

특히 정치권에서 내뱉아진 무책임한 말들, 너나 할 것 없이 남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그런 말들, 그냥 무책임하게 내던져진 말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요즘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또 김춘수의 시 "꽃"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언어는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언어로 시작해서 언어로 끝나는지도 모른다. 그런 언어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고, 밖으로 내던져진 말들의 홍수.

 

나를 휩쓸어가는 그 말들의 홍수를 이제는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홍수 속에서 길을 찾는 노력, 진정한 말을 찾는 노력, 시인은 그런 노력을 하고자 했다고 한다.

 

하여 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존재가 된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진정한 말을 찾는 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귀는 쓸모없는 말들, 공해에 해당하는 말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 귀가 필요한 요즘이다. 신달자의 시집을 읽기 전에 '시인의 말'을 읽고, 이게 바로 요즘 내 마음 상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종일 말하고 말의 홍수 속에 젖어 살지만, 말이 증발된 갈증의 허허한 가슴으로 고요히 침묵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 진정한 말을 발견하고 싶었다. 내 귀는 소리를 듣는 귀가 아니라 진정한 말을 찾는 귀가 되기를 나는 바랐다. 영혼의 눈을 뜨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을 찾는 종교적 침묵 여행을 맨발의 정신으로 떠나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것은 가볍게 혹은 무겁게 시와 한 몸이 되려는 나의 소망이었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 역시 말의 홍수 속에서 헤매고 있었구나. 그래서 진정한 말을 찾아 헤메었구나. 그런 결실이 시로 나타나는구나 하는 생각.

 

말에 관한, 진정한 말을 모르는 세상은 이 시집에 나온 '어느 폭풍의 말'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폭풍의 말

 

어디서 왔는지

다급하게 밀어닥친 바람이

숲에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나무들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병약한 나뭇가지 몇 개 꺾이고

바람과 나무 울음이 엉겨 숲을 흔들었지만

폭풍의 이름으로 휩쓸고 간 것은

일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모르기는 부드러운

바람이 나무들 머리 쓰다듬고 지나갈 때도

몰랐다

무슨 말을 하긴 했다

바람도 가슴과 다리를 다쳤다는 것을

아무도 듣지 못했다

 

바람이 아직도 바람인 것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폭풍이

난폭한 짐승인 것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

 

신달자, 오래 말하는 사이, 민음사, 2004년 1판 1쇄. 24쪽.

 

우리 세상이 아직도 어지러운 것은 우리들이 제대로 된 말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울 말이 아니라 그냥 허공 중에 부유하는 말들만을 지니고 있기 때문.

 

이렇게 느껴지는 시다.

 

제대로 된 말, 진정한 말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쓸모없는 말들이 이렇게 판치지는 않겠지.

 

따라서 말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귀다. 그런 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고, 진정한 말들을 찾는 귀가 많아질수록 어지러운 말들은 사라지게 된다.

 

그런 세상은 고요한 세상, 평화로운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된다. 지금처럼 말 많은, 말들만 넘치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말들이 너무 시끄럽다고, 말들의 홍수에만 휩쓸리지 말고, 시인의 말처럼 진정한 말을 찾는 귀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찾는 귀, 듣는 귀가 진정한 말을 만든다. 그러면 폭풍은 부드러운 바람이 된다. 우리의 마음을 깨우는,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그런 말들이 된다.

 

신달자의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를 읽으며 "말"에 대해서 "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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