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잡지.

 

노숙자들의 재활을 위해 만들어진 잡지. 그들이 스스로 판매를 하고, 그 판매 수익금을 나누어 재활의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잡지.

 

동정이 아닌, 스스로의 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도록 하는 잡지다.

 

전철역을 지나치다 우연히 '빅이슈 신간이 나왔습니다'라는  약한 소리를 들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작다던데.. 많이 해 본 분들은 이제는 자신이 하는 일에 당당함을 느끼고, 또 빅이슈의 판매대금을 저축해 임대주택에 입주하기도 했다던데...

 

이 분은 아직은 초보자인가 보다.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 그러나 비굴함보다는 내 일이라는 어떤 당당함이 느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빅이슈에 관해서는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어서,  책을 엉터리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아닐테고,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단지 궁금함을 넘어서 노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도록 하는 잡지라는 말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사서 봐야지 했는데, 그 기회가 닿은 것.

 

망설이지 않고 한 권을 샀다. 통권 122호. 잡지 표지가 외국 영화배우다. 레이첼 매커덤스라고 하는데, 다른 데서는 레이첼 맥아담스라고도 하니, 외국어를 읽는 차이일테지.

 

하지만 이 잡지는 이렇게 호기심만 유발하는 잡지가 아니다. 내용들도 알차다. 책값인 오천원의 값을 하고도 남는다.

 

여러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요리,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곳, 보고 싶어하는 곳에 대한 이야기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그렇다고 무겁지 않은 그런 글들이다. 그런 글들을 읽으며 글을 읽는 즐거움, 더불어 사진도 많으니 사진을 보는 즐거움도 느끼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간접경험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그래도 이 사회에 쓸만한 일 조금은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좋았다고나 할까.

앞으로도 빅이슈를 만날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거대한 일상 창비시선 294
백무산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특별나게 어떤 시가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백무산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는 박노해나 김남주의 시를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만국의 노동자여" 이게 내가 처음 읽은 백무산의 시집이었다. 마치 맑스의 공산당 선언을 연상시키는 제목.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전면에 나서게 되는 현실 속에서 이 시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박노해의 시가 노동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면, 좀더 각성된 노동자의 모습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때는 그랬다. 격동의 80년대였으니.. 그러더니, 이제는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귀족이라는 소리도 듣고, 한때 많은 가입율을 자랑했던 노동조합은 이제 가입율이 20%대 정도라고 하니...

 

노동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노동자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노동자는 이제 자기 자리도 지키기에 힘들어하고 있다.

 

노동유연성, 말이 좋아 유연성이지 이는 해고의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생 직장이 보장되던 사회에서 대다수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언제 짤릴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게 된 시대가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하는데, 사실 어려운 환경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에도 힘들어 하기 때문에 더 나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금이 아닌 내일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기가 힘들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고, 노동자들도 이 각자도생의 길 속에서 단결은 이제 한물간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한물간 유행어가 되면 절대로 안되는데 말이다. 약한 자에게는 쪽수가 바로 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꾸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백무산의 이 시집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 시집은 이미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나온 시집이고, 이제는 자본이 노동자들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에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예전의 시에서 느껴졌던 힘을 찾기는 힘든데... 그럼에도 노동의 현실과 우리가 그런 현실 속에서 그냥그냥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들이 많이 있다.

 

그 많은 시들 중에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시... 바로 이 '복(福)이라는 시.

 

    복(福)

 

기특한 여자아이 손이 늘 얼음처럼 차다

몸 불편한 부모 손발 대신하느라고

아직 응석 부릴 솜털 뽀얀 나이인데

어른 몫 하느라 아이 몸짓이 아니다

커서 잘살겠다고 이웃들 덕담들 하지만

그 아이 불길한 미래를 나는 여러번 본 일이 있다

아주 여러번

 

부모 동생 짐 덜자 지지리도 못난 남자 만나

습관이 운명을 부르고 사람을 부른다

그 사람 뒷바라지에 딸린 시부모 시동생 치다꺼리

자식이나 잘 커주면 좋으련만 사고는 쉴 새 없고

남의집살이에 공장일에 가는 곳마다

배부른 자들 봉양하느라 마흔 쉰 예순

늘그막에 발 뻗고 자식 며느리 밥상이라도 받을라치면

덜컥 큰 병원에서 오시란다

 

늘 꼼지락대던 어린 우리들에게 어른들은,

- 좀 처연히 있어 버릇해라, 복 달아난다!

- 복이 왔다가 어디 앉을 곳이 있어야 앉지!

그랫다. 나비도 조용한 꽃에 앉고

새들도 바람잔 가지에 앉는다

땀에 절어 일하는 사람들

복 앉을 처연한 어깨 없이 가난하다

 

저 아이 어깨에 나비가 앉게 해야 한다

저건 착한 일이 아니다

아이가 죄를 짓도록 버려둔 것이다

 

백무산, 거대한 일상, 창비. 2009년 초판 2쇄. 52-53쪽

 

남일 같은가? 아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 일 아니던가. 대학가기 위해 목숨걸고(이 말이 맞을 것이다. 시험을 잘 못 봐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은 나라이니) 공부하는 아이들.

 

기껏 대학에 갔음에도 이번엔 취업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는 아이들.(이 말도 슬프지만 맞다. 20대의 취업율이 형편없는 나라에서, 취업이 안돼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취업이 된다해도 잘리지 않기 위해 또 처절하게 일해야 하는 사람들. 어디 이 시에 나오는 그 어린여자아이만이 그렇겠는가.

 

잘리지 않더라도 노후가 불안정한 사람들. 정말 이 시의 어린 여자아이처럼 살만하다 싶으면 병원에서 오라고 하는... 이제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지만, 치료비에 허덕거리며 살아야 하는 그런 삶.

 

지금 우리 시대에는 모든 젊은이들이(아, 모든이라는 말은 잘못이다.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를 지니고 태어난 아이들은 이미 다른 삶을 산다) 복이 앉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복이 앉을 수 있을까? 이런 젊은이들이 천천히 쉬면서, 복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서, 저 청년은 참 부지런해, 저 청년은 정말 열심이야, 저 청년은 무얼 해도 될 거야 저렇게 열심히 준비를 하니...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이 시에 나오는 말처럼 '죄를 짓도록' 하는 일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말보다는 이들이 쉴 수 있도록, 천천히 갈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함께.. 그런 환경을 만들자고 해야 한다.

 

그건 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 모두가 함께 고쳐야 할 문제라고, 그러니 함께 하자고 해야 한다.

 

특히 요즘은 더... 백무산의 이 시... 너무도 아프게 마음 속에 박혔다. 이 시집은 이 시 하나로 내게는 전부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벨이 성전(聖殿)에게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볼 눈이 있는 자는 볼지어니,

내 실패를 문자로 남긴 까닭을.


하늘에 다가갈수록 하느님과 멀어지고

위로 솟아오를수록 지옥으로 내려가고

외양이 웅장할수록 영혼은 초라해지고

내가 살찔수록 백성은 수척해지니

하느님과 소통하고자 하던 나 자신이

백성들과의 소통을 막는 장벽이 되었으니.


낮은 데로 임하소서

하늘은 저 높은 곳에 있어

우리가 올라야 할 곳이 아니라

저 낮은 곳에 있어

우리가 내려가야 할 곳이라는 걸.


오를수록 나를 잃고

내릴수록 나를 찾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저 높은 곳에서

말을 잃고서야 깨닫게 되었으니.


귀 있는 자는 듣고.

눈 있는 자는 보아라.

내 실패가 문자로 남은 까닭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다. 이 판본이 아니라, 겉표지가 얇은 책이었다. 재미라기보다는 감동을 받으며 읽었다는 느낌이 남아 있다.

 

그런데 사서 읽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지 집에 책이 없다. 산 기억도 빌린 기억도 없는데, 읽은 기억만 남아 있으니 원.

 

우연히 헌책방에 갔는데... 책방 밖에 전시해 놓은 책들을 모두 천 원에 팔고 있었다. 어떤 책들이 있나 주욱 훑어가는데, 이 책 '내 생애 단 한 번'이 눈에 확 들어온다.

 

어, 이 책을 천 원에... 이렇게 새것인데... 판본이 2010년것이지만 겉표지부터 속표지까지 모두 새것과 다름이 없다. 참 아깝다. 이런 책을 천 원에 팔다니...

 

그러다 거꾸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천 원으로 이런 책을 살 수 있게 하다니... 참 고맙다고. 피천득이 쓴 그 유명한 수필 '수필'을 읽으면 수필이란 도대체 어떠해야 하는지,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 수 있는데...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하나하나가 마음 속으로 콕콕 들어온다. 장영희 씨가 이제는 고인이 되어서 그의 글을 더이상 읽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도 더 마음에 다가온다.

 

다시 읽기 시작하여... 마음에 단비가 내리듯이 촉촉하게 마음이 젖어오게 한다. 그냥 그렇게 읽으면서 이런 청량한 글, 이런 따뜻한 글을 쓴 사람이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다.

 

그가 쓴 글 중에... 다들 마음에 들지만... 요즘에도 더 생각해 볼 글로...

 

 '화려한 색깔로 멋있게 피는 작약꽃도 아름답지만, 바위 틈새에 숨어 피는 작은 들꽃도 아름답다.

  번쩍이는 왕관을 쓴 미스 코리아, 주렁주렁 훈장을 단 장군, 수십 명의 수행원을 거느린 고위직 관리,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장 바닥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가슴을 드러내 놓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과일 장수 아주머니, 공사장에서 허리가 휘어지도록 벽돌을 나르는 노동자, 쓰레기 더미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일하여 눈 코 입조차 분간할 수 없는 미화원들, 이들 역시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209쪽)

 

이런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았던 사람,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극복해 낸 사람. 그런 사람의 눈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고 장영희 교수의 삶 역시 아름다운 삶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아름다움이 이렇게 글로 남아 우리들에게 전해지니...

 

15년 전에 처음 나온 수필집임에도 지금 읽어도 감동적이다. 두 번 읽었음에도 역시 감동적이다. 수필이 주는 감동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도 한 책이다. 마음이 퍽퍽해질 때 한 번씩 꺼내 놓고, 아무 부분이나 펼쳐 읽고 싶은 책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단 한 번이다. 그러므로 그 삶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삶에는 차별이 없다. 그 점을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헌책방에서 구한 책.

 

헌책이라기보다는 새 책이다. 책 속지에 글이 쓰어 있지만, 그 글은 이미 이 책을 읽은 사람의 흔적이니 반가우면 반가웠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때 엄청나게 팔린 시집이다. 시집이 안 팔리던 시절에 잘 팔리던 시집. 어쩌면 세기말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시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너무 잘 팔려서 그땐 거부감이 있었는데... 그래서 혹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지 했었는데...

 

이 시집이 나온 지 20년이 지나서야 읽게 되었다. 이제는 세기말 감성이 아니라, 어쩌면 더한 위기일지도 모르는데...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거의 30년이 되어 간다. 그때 그 잔치... 우리는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었고, 민주화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많은 부분에서 민주화가 된 것도 있지만, 민주화와 더불어 신자유주의가 우리 곁에 왔고, 신자유주의로 인해 이제는 생계를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나이 많은 사람의 월급을 나이 적은 사람에게 주겠다고 하는데, 이들의 연관성이 거의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던데...

 

민주화 이후 우리는 잔치 분위기 속에서 몇 년을 지냈고, 그 잔치가 파할 무렵, 잔치 속에서 잊고 있었던,잃고 있었던 것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 잔치는 끝났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잔치는 지속될 수 없다. 잔치는 단속적이다. 순간적이다. 다만, 단 한 번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잔치는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잔치는 끝났지만, 잔치는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순간에 있는 것 아닌가.

 

최영미의 시집 제목이 된 시를 읽는다. 민주화의 열기로 가득차 있던 시절, 그 시절은 바로 잔치의 시절이다. 그러나 이제는 잔치는 끝났다. 어쩌면 우리의 잔치는 일찍 끝났을 수도 있다. 이제는 일상에서 잔치의 결과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면서도... 이 시의 이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상관이 있다'고 '상관이 있다'고 외친다는 느낌.

 

잔치는 계속된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바로 이제는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답을 챙기고 마참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더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리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년 초판 10쇄. 10-11쪽.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이미 잔치가 끝난 한 물 간 사상으로 취급되지만, 그러나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생길 수 없었던 사상.

 

그 사상에 대해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 사람을 불러 모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자본론

 

맑시즘이 있기 전에 맑스가 있었고

맑스가 있기 전에 한 인간이 있었다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에서 토요일 저녁 쏟아져나오는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들을 집요하게, 연민하던,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년 초판 10쇄. 1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