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말을 줄이는 것이다. 할 말을 줄이고 줄여 최소한의 말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함축적이다. 함축적이란 말은 읽는 사람이 풀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풀어내지 못하면 시는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제 감정에 취해 제 말만 하는 사람의 혼잣말에 불과해진다.
김윤이의 시집을 산 이유는 별 거 없다. 처음 듣는 시인이고, 시인 이름을 처음 알게 되면, 그 다음에 보는 것이 출판사다. 창비라는 출판사. 요즘은 표절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기는 했지만, 문학판에서 창비라는 말은 어떤 권위를 지니고 있다.
시집을 전문적으로 내는 출판사 중에서 믿을 만한 출판사이기 때문에 고른 시집이다. 새로운 것을 고른다고 하지만, 새로움에도 무언가 기준이 있다. 예전부터 존재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내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시가 짧냐면 그것도 아니다. 긴 시들이 많은데, 시인이 도대체 무슨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마음 속에 와닿지 않았다.
기를 쓰고 머리를 굴려 시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해야 하는데, 자기 감정에 취해 한 말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
그럼에도 시인은 어떤 힌트를 주고 있어야 하는데, 그 힌트를 찾아내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해석해 내고,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 독자의 몫이다.
시집을 주욱 읽어가면서, 참...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 시인지... 무슨... 감동을... 받으라는 건지... 그냥... 자기 ... 하고 ... 싶은 말만... 한... 시들이 ... 아닐까... 이런 생각만을 갖고 있었는데...
시집의 끄트머리에 가서, '조개'란 시를 읽고, 아, 이거구나, 이게 이 시집에서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조개
놈은 분명 슬픔을 아는 거다
시린 물박에 한줌 뿌려준 천일염
으깨진 발포정처럼 풀어진다
물비린내에 제놈이 빼어문 살덩이는
눈물을 쏟는 흐벅진 시울을 닮아 있다
흐렁흐렁 채워진 물결에
누군들 상처를 뱉어내고 싶지 않으랴
짭조름한 간물에 쉭쉭 토해내는 해캄질
입아귀에서 봉분을 뱉는가, 그러나
다닥다닥 붙은 무늬를 점자책처럼 더듬자
불끈 돋우는 힘살로 앙다문 놈은
이내 제가 간직한 바다를 봉해버린다
등고선 지문을 밀치고 닫아버리는
놈의 껍데기가 거칠다
함부로 읽힐 수 없는 생이라고
그처럼 따닥!
완강하다, 그러므로 나는
돌올한 무늬를 애써 더듬어도
고서(古書)같은 놈의 내력을 알지 못한다
삶아질 때까지도 내내 입 다물어버리는
뿌리는 온몸으로 잇대어
왜 두둑한 껍데기에 묻히는지를, 마침내
멀리 파고에 밀려온 나도
슬픔이란 함부로 보일 수 없는 것이라고
삶은 끝끝내 버티는 것이라고
철썩철썩 때리는 세상에서
좀체 입 열지 않는 것이다
김윤이,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창비. 2011. 초판 2쇄. 146-147쪽.
이 시에서 내가 조개의 삶을 읽어내려고 하는데, 조개는 입을 앙다물고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내가 이 시집을 읽으며 시의 내용을 이해하고 싶은데,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마음을 시 속에 굳게 감춰두고 있는 것처럼.
이 시집의 시들에서 어떤 슬픔이 느껴지는데, 그런 슬픔의 정체를 알 수 없는데... 이 시에서 '슬픔이란 함부로 보일 수 없는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그 슬픔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읽는 이가 할 일이고...
그렇다. 조개껍데기의 '돌올한 무늬를 애써 더듬어도/고서같은 놈의 내력을 알지 못'하듯이 읽는 사람 역시 시를 읽고 읽어도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조개의 속살은 바다를 품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먹어야 한다. 시도 마찬가지다. 읽어내야 한다. 마음 속에 받아들여 우리의 영양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삶아야 한다. 입을 벌리도록.
결국 조개는 삶아져 자신의 입을 벌리고 제 속살을 우리에게 돌려주나, 온전히 제 삶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미 죽은 살들... 시 역시 시인의 마음에 있을 때와 시인의 손으로 쓰여졌을 때, 그리고 시를 읽은 독자의 마음과 머리 속에 같은 존재로 존재할 수는 없다.
다르게 존재하지만, 그 다름으로 시는 더욱 풍성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조개'란 시,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게 시인이 시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시라는 생각을 했다.
어찌 시만 그렇겠는가. 우리들 삶도 이 조개와 같지 않겠는가. 누구나 다 오롯한 자신만의 삶이 있음을, 그런 무늬가 있음을, 앙다물고 남에게 보여주지 않은 아름다운 삶이 있음을... 이 시를 통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