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전집을 읽다가, 너무도 침침하고 우울해서 중간에 내려놓았다. 내려 놓았다, 다시 읽다가 다시 내려놓다가.

 

왜 이리도 그의 시는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지, 왜 이렇게 어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자꾸만 자신을 가두고 가두고, 아니 가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지만, 기형도가 살아온 시대가 암흑의 시대, 어둠의 시대, 안개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시대에도 어떤 희망을 보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는 그 이후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떠났지만, 어쩌면 그의 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미리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칙칙한, 도대체 밝은 빛이라고는 들어오지 않는, 그럼에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몰려 들어올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

 

하지만 그의 시를 읽다가 그 무겁고 습한 시들 속에서 이런 시를 발견하고, 이게 뭔가, 또 이렇게 우리는 그의 시 속에서 우리 현실을 발견하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섬뜩해졌다.

 

시인은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미래를 미리 건져낸다. 어떤 사람을 이를 미래를 표절하는 것이라 했다. 미래를 표절하는 시인, 그는 위대한 시인이다. 이 점에서 기형도의 시인으로서 뛰어난 점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노인들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기형도 전집 편집위원회 엮음, 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2년 1판 10쇄. 88쪽.

 

왜 이 시에 꽂혔을까. 이 시에서 현재를 읽어낸 구절이 무엇일까? 제목에서 아님 내용에서?

 

엄혹한 시절을 견뎌낸 사람들은 좋은 시절이 오면 물러나야 한다. 그들이 물러나기 싫어도 자연스레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혁명을 성공시키는 사람과 혁명을 계승, 발전시키는 사람은 달라져야 한다. 역사를 보면 그렇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것은 법가를 계승한 진시황이지만 중국 역사를 이끈 것은 그 다음 유가를 계승한 한나라다.

 

혁명가가 혁명 후에도 정치권력을 장악해 얼마나 많은 피들을 흘렸는지, 혁명의 이념이 모두를 춤추게 하는 것이었는데, 소수만 춤추고 다시 대다수는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만 일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혁명가가 훌륭하게 혁명 이후를 이끌어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소수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시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고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바뀌었으면 바뀌는 과정까지 힘써왔던 사람들,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

 

이형기의 '낙화'란 시에 나오는 것처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야' 한다. 그래야 아름답다.  

 

그러나 이렇게 사라지는 것, 잊혀지는 것은 엄청난 슬픔이고 상실이다. 이미 지나간 세대에게는. 하지만 아직 돌아올 젊음에게는 남의 슬픔이다. 남의 슬픔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그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몫이다. 사라지는, 잊혀지는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 그것들을 지나간 세대가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고 시인이 말했듯이 이렇게 된다. 추악한 늙음.

 

왜 이 시가 마음에 왔을까? 다시 질문을 한다. 답은 하나다. 요즘 정치권을 보는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추악한 가지들... 그들은 죽었음에도 부러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추악하다.

 

우리나라 법령을 찾아보았더니 이런 법령이 있단다.

 

1.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 19조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여야 한다.

② 사업주가 제1항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

[시행일:2016.1.1.] 제19조의 개정규정 중 상시 3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공기관, 「지방공기업법」 제49조에 따른 지방공사 및 같은 법 제76조에 따른 지방공단

[시행일:2017.1.1.] 제19조의 개정규정 중 상시 3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이 법에 의하면 60세 정년규정은 300인 이상 사용 사업장의 경우에는 2016.1.1부터 강제시행 되며,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2017.1.1부터 강제시행된다는 얘기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이 때까지는 각 회사의 취업규칙에 따라 정년이 달라진다는 얘기고, 대부분의 회사는 만 55세를 정년으로 하거나 만 58세를 정년으로 하고 있다. 이것도 많다고 임금피크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30세에 결혼해 아이를 곧장 낳는다고 해도 55세면 아이가 25세가 된다. 25세면 대학생이다. (아주 빠른 경우가 아니면 보통 남자는 군대 갔다오고 대학생이 되고, 여자는 졸업을 하거나,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나이다) 생활비가 가장 들어갈 때라는 얘기다. 여기에 요즘은 30에 결혼하기도 힘드니 더 늦게 결혼하면 회사를 나올 나이에 아이들은 대학생을 경우가 많다.

 

이 법이 시행되더라도 상황은 그닥 나아지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이 정년을 60세에 할텐데... 지금처럼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나이 60에 자식들은 아직도 직장을 갖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돈은 많이 써야 하는데, 회사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 이들은 이렇게 힘들게 지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아직 '봄빛이 닿자'도 않았는데, 아직도 '긴 겨울'인데 '부러져야' 한다. 말라서는 안되고, 부러져서도 안되는데...

 

이들은 노인이 되기도 전에 노인이 되어 퇴출당한다. 이는 진정한 슬픔이다. 기형도가 말한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이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는 그런 슬픔이다. 젊은이들은 이런 상황을 알지만 자신들도 먹고 살아야 하므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인데...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님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지, 이미 부러져서 떨어져야 할 마른 가지들이 정치권에서 우뚝 버티고서 사람들을 날카롭게 찌른다. 그 마른 가지로.

 

정년이 없는 직장, 한 번 되면 4년이 보장되며, 온갖 지원이 끊이지 않는 직장. 사회에서 특권층으로 대접받고, 그만두어도 연금으로 생계 걱정이 없는 직장. 나이 먹었다고 나가란 소리 듣지 않고, 오히려 원로라고 큰소리까지 치는 직장.

 

그게 바로 정치권이다. 기형도의 시에 의하면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 그들이 바로 정치권이다. 반성 좀 했으면 한다.

 

노인에 대한 발언을 잘못해서 실패한 정치인들이 있는데... 이 때 노인들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나? 기형도가 말하는 이 시에서 노인들은 일반 국민들이 생물학적으로 먹은 나이의 노인이 아니라, 정치를 하면서 정신이 말라버린, 그래서 뾰족하게 날선 가시만 있는 가지가 된 정치인들이라는 생각.

 

이 생각에 이 시가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먼 미래의 정치인들의 모습을 미리 시를 통해 표현해 내고 있다. 엄청난 표절이다. 미래를 읽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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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동양문화산책 4
사라 알란 지음, 오만종 옮김 / 예문서원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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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유교이다. 유교를 종교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철학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유교는 우리의 생활 깊숙히 들어와 있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을 제약하고, 규정짓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제사일 것이다. 제사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짓는, 사람들의 삶이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고, 그 연결을 예라는 형식을 통해 발현시키는 것은 유교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유교의 대표자는 공자와 맹자이다. 이들이 자신의 사상을 펼치기 위해서 어떤 개념을 동원했을까? 이 책은 여기서 출발한다. 단지 유교만이 아니라 도교까지도 언급하면서, 유교와 도교에 나타는 물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왜 도교까지 포함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사상들이 만개한 때는 춘추전국시대이고, 그 시대에 제자백가라고 해서 많은 학파들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학파는 유가와 도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펼치는 개념으로 또는 대상으로 물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고대사상에서 '물'을 언급한 사상가로 유가와 도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가의 대표자는 공자와 맹자이고, 도가의 대표자는 노자와 장자이다. (장자는 노자와 다른 사상가로 분리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나, 통상적으로 노장사상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함께 묶고 있으니 여기서는 노자와 장자를 도가로 엮는다.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여기고 있다.)

 

왜 이들은 '물'을 중시했을까? 사상을 펼치는데 사상은 철학으로 개념이 매우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추상적인 개념을 그냥 펼쳤다가는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는데 실패하고 만다.

 

예수도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서 쉬운 비유들을 많이 들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공자와 노자도 자신들의 사상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추상적인 개념을 대체할 다른 개념을 찾아내었으리라.

 

그것이 바로 '물'이다.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 물. 우리는 물이 없으면 죽고, 또 고대사회는 물을 중심으로 사회를 구성했기에, 물은 가장 쉽게 접하는 대상이고, 쉽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물'의 속성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사상을 펼친다. '물'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든지, '물'처럼 맑고 깨끗해야 한다든지, '물'처럼 포용적이어야 한다든지 하는 비유를 들어 자신들의 사상을 펼친다.

 

이것을 이 책의 저자는 '뿌리 은유'라고 한다. 은유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개념으로 대체하는 비유라고 하고, 뿌리라는 말은 근본이라는 말이니 '뿌리 은유'는 공자와 노자의 사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라는 뜻이 될 터이다.

 

그리고 이런 '뿌리 은유'로 '물'을 들고 있다. 결국 우리는 '물'의 속성을 알면 그들이 어떤 사상을 펼쳤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와 개념체계가 다른 서양 사람들에게 공자와 노자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작업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로 이들 사상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유교와 도교의 '물'이 차이를 이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유교의 '물'은 넓고 깊고 크다. 이들은 왕도정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된다. 그래서 공자나 맹자에게서 '물'은 '우'와 함께 등장한다. '우'가 누구인가? 그는 바로 '물길'을 바로 잡은 사람 아니던가. 물길을 바로잡아 물이 제 길을 가게 하고, 사람들이 제 삶을 살게 해준 사람 아닌가.

 

이렇게 유교에서 '물'은 행동과 함께 나온다. 마치 작은 물길들을 모아 큰 물길을 만들고, 서로 떨어져 있던 물길을 터서 연결시키는 그런 행동이 군자의 길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유교에서는 행함이 있기에, 그 행함을 유지시켜주는 틀과 형식으로서의 '예'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반대로 도교에서 '물'은 그냥 놓아둠이다. 물길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서로 트고 합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놓아두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물은 흘러간다. 제 갈 길로. 거기에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행동을 할 필요가 없으니 틀과 형식인 '예'가 필요없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이런 차이가 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우리는 4대강 사업이다, 경인 아라뱃길이다, 뭐다 하면서 물길을 트고, 합치고, 연결하는 일을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물의 본성을 살리는 행동을 한 것이 '우'가 한 일이라면, 우리가 한 일은 물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 아니었던가.

 

물의 본성을 거스르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유교와 도교의 공통된 사상이니...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유교나 도교를 스스로 배반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유교와 도교를 '물'로 엮어 주장을 펼쳐나가는 것에서도 감탄하였고... 지금 우리의 삶을 '물이 본성'에 비춰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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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 - 주나라부터 중화인민공화국까지 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
홍문숙.홍정숙 엮음 / 청아출판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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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장강의 물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중국 역사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그들의 국토도 크지만 역사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크다는 말, 깊고 넓다는 말과 통하리라. 그러니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건을 100대만 고르라고 하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도대체 그 넓은 땅덩어리에, 또 기록으로만 남은 역사를 따져도 3000년이 넘는데, 100대 사건을 고른다니... 그럼에도 사람에 따라서 충분히 고를 수도 있다.

 

누구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건들이 누구에게는 별다른 중요성을 지니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편자들이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중요하다고, 중국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여기는 사건을 골라 100개로 추린 것이니, 중국 역사를 압축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건을 시대 순으로 엮어 놓았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어가면 중국 역사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관심이 있는 시대나 사건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주나라 주공에서부터 시작한다. 공자도 주나라, 특히 주공을 모범으로 삼았듯이, 이 책은 중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으로 주공과 관련된 사건으로 시작한다.

 

주공은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동생이고, 무왕이 죽자 어린 아들이 왕이 되었을 때 그를 도와 - 이를 섭정이라고 한다 - 주나라의 기틀을 다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 시련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근처에는 늘 피비린내가 나니, 이는 부자, 형제를 비롯한 친척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주공이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을 한 주공의 형제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것이 '삼감의 난'이고, 이는 형제들끼리의 피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주공은 이를 진압한 다음에야 비로소 제 뜻을 펼칠 수 있고, 역사에서 훌륭한 성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중국 역사의 100대 사건을 기록하는 책에서 피바람으로 시작한다. 그만큼 중국에는 피바람이 많이 불었다는 얘기다. 왕조가, 그 넓고 깊은 역사에서 어찌 한 왕조로 지속되겠는가. 우리나라는 대략 고조선 - 삼국 - 통일신라, 발해 - 고려 - 조선의 순서로 몇 왕조가 되지 않지만, 중국에는 엄청나게 많은 왕조가 세워졌다 무너졌다 하는 왕조의 교체반복이 빈번하게 이루어졌으니, 그만큼 많은 피들이 난무했으리라.

 

특히 부자간에, 형제간에 엄청난 피바람이 불었으니, 권력을 잡고 싶은 사람은 이런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김수영은 '푸른 하늘을'이라는 시에서 노래하고 있지만, 권력에는 이보다 더 심한, 부패한 피의 냄새가 섞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맨 마지막 부분에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으로 끝맺고 있다. 정치사의 피바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세계는 정치보다는 경제가 중심이다. 경제가 세계를 피바람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 놈의 경제가 지금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는지... 이 책의 마지막이 경제라면, 우리 역사는 이제 경제로 시작한다고 할 수도 있다.

 

왜 역사책을 읽는가? 현재를 알기 위해서다. 아니 현재를 살아가면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중국사를 읽는 이유는, 중국이 우리나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전쟁으로 엮인다고 하지 않더라도 경제, 문화, 사상 등에서 중국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니 중국 역사를 읽는 일은 우리 역사를 읽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 책에도 우리와 관계된 사건이 몇 나온다. 그만큼 긴밀하다는 얘기다.

 

이런 100대 사건류의 책들이 그렇듯이 주로 정치사를 중심으로 쓰여졌지만, 그 중에서도 문화적으로 생각할 만한 사건들이 많이 있으니, 중국사의 큰줄기를 알고 싶다면 이 책도 나름 유용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중국사만큼이나 긴 책이긴 하지만, 100대 사건을 정리하다보니, 한 사건에 6쪽을 할애해도 600쪽이 된다. 그러니, 사건 하나하나를 읽으면 책의 분량에 질리지 않고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덧글

 

가끔, 소소한 오타가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이 책 512쪽의 '1896년, 결국 조선은 일본과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을 맺고~'라고 되어 있는데, 1896년이 아니라, 1876년이다.

 

549쪽.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중국 북경대학의 총장이었던 채원배(차이위안페이)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당시 베이징 대학의 총장은 차이위안페이로, 신해혁명 이후 1912년에 중화민국의 초대 교육총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가 대총통이 되자 1907년에 독일로 유학을 갔으며, 위안스카이가 물러난 후 귀국하여 1916년에 베이징 대학의 총장이 되었다.'고 되어 있는데...

 

위안스카이가 대총통이 된 것은 1913년이라던데.. 여기에 채원배가 독일로 유학을 간 것은 1907년이 맞다고 하니, 이런 서술에는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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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아내에게


머나먼 천축국으로

함께 가고 있는 그대.

그대가 삼장이라면

나는 손오공.

제 흥을 이기지 못해

때로는 어긋나고

때로는 날뛰기도 하나

그대의 주문 한 마디에

그대 곁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

함께 가는 길

요정도 만나고

요괴도 만나고

다른 길벗들도 만나며

웃고 울며

가는 길

해탈에 이르기까지

함께 가는,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길벗.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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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힘 문학동네 시집 92
김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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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많이 읽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시에는 삶을 생각하게 하는 어떤 요소들이 있다. 오죽하면 시인을 '잠수함의 토끼'라거나 '탄광의 카나리아'라고 하겠는가.

 

그들은 예민한 감수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에 대해서 짧은 언어로 표현을 한다. 마치 고대 시대 신탁을 알려주는 사람들처럼.

 

그 짧은 말, 그것이 바로 시이고, 우리는 시를 통해서 세상을 읽고, 나를 읽게 된다. 짧은 글 속에 들어있는 넓고 깊고 풍부한 울림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단지 한 해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시를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그런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인들도 자신 속으로만 침잠해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위행위를 하는 것처럼 자신 속에만 갇혀 자신만 즐거운 그런 시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 즐거운, 우리 모두 이해하고 자연스레 외우고 받아들이는 그런 시들을 썼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김진경이 이 시집은 읽을 만하다. 읽으면서 생각을 할 수 있다. 몇몇 시들을 외울 수도 있다. 산문처럼 풀어쓴 시도 있고, 아주 짧게 쓴 시도 있고(대표적인 시가 '뒷길'이란 시다. 뒷길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도 상당한데, 함축적 의미를 따지기 전에 그냥 읽어도 좋다. 선운사가 좋다기에 찾아갔더니 / 절보다는 잔잔한 뒷길이 좋아 / 늦도록 숲속을 거닐다가 / 자갈 같은 별들을 밟으며 오다 '뒷길' 전문 48쪽), 적당한 길이의 시도 있으니 취향껏 골라 읽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제목도 슬픔의 힘이지 않은가. 슬픔은 공감이다. 공감이 없으면 슬픔도 없다. 이 공감은 함께 함이다. 그러므로 슬픔은 함께 함이고, 함께 함은 고통의 분담, 고통이 줄어듦이다. 고통이 줄어듦은 무언가를 이룰 힘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시인은 슬픔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슬픔이 세상을 태우는 불을 끄지는 못하지만 / 세상을 태우는 불길로부터 / 작은 사랑의 불을 지킬 수는 있을 거라고 / 그래서 때로 우리가 은은히 빛날 수도 있을 거라고.   - '슬픔의 힘' 부분. 19쪽.

 

이와 비슷한 시들이 이 시집에 많다. 많아서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기 전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 따스해진 마음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슬픔의 힘은 우리를 바로 보게 만들어 준다. 어쩌면 이것이 시의 힘인지도 모른다. 슬픔이라는 함께 함에서 세상을 바로 보고, 고치려는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단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슬픔이기에, 이런 슬픔은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가령 '치사량'이란 시를 보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면을 보여주고 있다. 시를 읽어보면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극물만이 독은 아니야 / 독국물은 치사량이 작은 독일 뿐이지 / 예컨대 밥도 많이 먹으면 죽지 / 치사량이 큰 독인 셈이야 / 그가 설명하는 동안 / 나는 소유의 차사량에 대해 생각한다 /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 그것은 빈곤 때문이 아니라 / 너무 많이 가졌기 때문일 거라고       - '치사량' 전문. 82쪽.

 

이렇게 다른 면을 볼 수 있게 만드니 이 시를 읽는 순간 이미 세상은 눈에 보이는 대로의, 또는 남들이 선전하는 대로의 세상일 수가 없다. 내가 새롭게 읽어낸 세상이 된다.

 

이런 세상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그것이 비록 거창한 행동이 아니어도 좋다. 아니 거창한 행동일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아주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비상이고, 도약인지... 그 길이 사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이끌어내는지를 시인은 '비상(飛翔)'이라는 시에서 보여주고 있다.

 

지구상의 생물들이 가장 크게 날아오른 것은

새들의 비상이나, 인간이 실현한 무엇 따위가 아니라는 거야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네 발처럼 어기적거리며

최초로 물 밖으로 기어나왔을 때

느꼈을 어마어마한 중력을 생각해보라는 거야

그 몇 센티미터의 간절한 비상!

 

- '비상(飛翔)' 전문. 55쪽.

 

시를 읽자. 이렇게 시를 읽은 행위 자체가 바로 '그 몇 센티미터의 간절한 비상'이 될 수도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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