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이 되어야 하는


   써도 써도 쓸 것이 있는 화수분. 주고 주고 또 주어도 더 주어야 하는 교사. 줄 게 없어서 못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을 사람이, 받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 그가 화수분이 아니라면, 바닥을 보인 것도 모자라 삼년 가뭄에 쩍- 쩍- 갈라진 논처럼 마른 정신을 지닐 뿐.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맑은 샘물, 교사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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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열린책들 세계문학 3
알베르 카뮈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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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든 까뮈든 그는 우리에게 '이방인과 페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라고 알려져 있는데(나는 그가 그래서 프랑스에서만 산 줄 알았다. 사실, 어렸을 때 읽은 이방인이나 페스트의 내용으로 그가 살아온 내력을 알지 못했다. 아주 유명한 소설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가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자랐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고생을 했으리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는 너무 먼 나라에 살았고, 선진국이라 불리는 프랑스 사람이었으면 과거의 사람이었다. 그냥 그렇게 지나치는 작가였다가 "단두대에 대한 성찰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카뮈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이 작가 상당히 생각이 있는 작가네... 그냥 작가라기보다는 사상가에 가깝네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반항적 인간'이라는 책도 있고, '시지프의 신화'도 있지만 소설가인 카위와 사상가인 카뮈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지식의 단편들. 연결짓지 못한 지식 나부랭이들의 파편들!)

 

그러다 오랜 전부터 집에 있었던 카뮈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하는(마지막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중에 교통사고로 죽었으니) "최초의 인간"을 읽게 되었다. 아니,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일은 없겠찌만 이 책이 자꾸 눈에 띠고, 읽어달라고, 나도 좀 읽어달라고 조르고 있단 생각이 들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카뮈가 하나의 고리로 연결이 되었다. 아니 연결되었다고 느꼈다. 그만큼 이 소설은 카뮈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비록 완성된 소설은 아니지만, 완성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 소설 자체로 가치가 있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들 중에 대부분 완결이 되지 않았지만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듯이)

 

어떤 가치? 바로 카뮈의 성장사를 알 수 있다는 것. 그의 성장사를 알게 됨으로써 그의 소설들이 지닌 내용이나 그가 쓴 글들의 의미를 그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소설을 읽는 기분. (비록 그 소설의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고국을 떠나 독일로 가기까지의 자신의 성장사를 소설로 풀어낸 그런 분위기는 지금도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어떤 아련한 그리움으로)

 

카뮈가 알제리에서 태어났고, 그가 한 살 때 아버지는 1차대전에 참전하여 죽었으며, 그의 아버지가 사형 장면을 구경하고 와서 그렇게 혐오하던 이야기가 이 책에 나오는데, 이것이 카뮈의 '단두대에 대한 성찰'과 연결이 되고, 어머니는 약간의 귀머거리 증세와 문맹이었으며, 역시 문맹인 억척 할머니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단 얘기.

 

초등학교 교사의 도움으로 중고교에 진학하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이 담담하게 이미 40이 된 서술자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소설이지만 카뮈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아랍인들과 프랑스인들이 섞여 있고, 주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 카뮈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그는 제목을 '최초의 인간'이라고 지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양육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알제리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고, 카뮈 자신도 그런 사람에 속한다는 것을 이 제목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좀 아쉬운 점은 조금 더 작품이 진척되었으면 카뮈의 전생애를 잘 알 수 있었을텐데... 중간에 그의 죽음과 함께 소설이 끝났다는 점이다. 그래도 미완성된 원고를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펴낸 유가족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 한 편의 소설로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카뮈가 꿰어졌으니 말이다. 이런 점 말고도 알제리라는 빈궁한 장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그렇다고 비극적이고 우울하지만 않은, 그 곳에서도 즐겁고 밝은 생활이 많았음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니, 소설 자체로 읽어도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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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었다. 새해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적어도 없는 사람들이 더 없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없는 사람들도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세상, 그것이 새로운 해였으면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난 일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하는데...

 

자영업자들, 특히 영세자영업자들, 장사가 잘될수록 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그들... 이유는 단순하다. 장사가 잘되면 임대료가 오르기 때문이고, 그 임대료를 대기 위해서는 가격을 올리거나 해야 하는데, 가격을 올리는 순간 장사가 안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망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문화의 거리 비슷한 곳에 임대료를 적정가격 이상 올리지 못하는 협정을 맺는다는 소리도 들리던데...

 

마찬가지로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을 쫓아내는 관행을 없애고, 먼저 살던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재개발을 하겠다고도 하던데...

 

그런 것들이 실현되는 2016년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저녁을 훔친 자' 들이 큰소리 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저녁을 함께 하는 그런 삶을 사는 출발점이 되는 해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습관적으로 시집을 읽는지 모른다. 그냥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그 시가 왜 내 마음에 들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렇게 읽은 시 중에 안현미의 '이별의 재구성'이란 시집을 읽다가 발견한 시. '뉴타운 천국'

 

제목만 보면 반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국이라는 말을 많다는 말로도 우리가 흔히 쓰는 이상향이라는 말로도 쓰겠지만, 여기서는 뉴타운 지옥이다. 이런 지옥이 이제는 반복이 되지 않는 우리 사회였으면 좋겠다.

 

                            뉴타운 천국

 

  저녁을 훔친 자는 망루에서 펄럭거리는 깃발에 피를 퍼부었고, 권력과 자본의 화친은 미친 화마를 불러왔다

 

  북적이는 시장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지혜롭게 늙어가던 포도나무는 철거용역들이 함부로 휘갈긴 빨강 래커 스프레이 해골들만 득시글득시글거리는 철거촌에서 포클레인에 찍혀 죽었다

 

  한 번 태어났지만 돈이 없으면 두 번도 세 번도 죽어야 하는 세상

  저녁을 훔친 자들만의 장밋빛 청사진

  뉴타운 천국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내 집 주니 셋집 주네?

 

  풀 풀 풀 정처도 없이

  뿔 뿔 뿔 정체도 없이

 

  어떤 사람들은 어느날 느닷없이 왼손을 잘리고 남은 생을 오른손잡이로 살아가야 하는 왼손잡이처럼, 자신의 뿌리를 잘리고 남은 생을 자신의 뿌리 바깥에서만 살아가야 한다

 

안현미, 이별의 재구성, 창비. 2009년 초판 2쇄. 46-47쪽

 

용산참사가 연상되는 이 시는, 단지 용산참사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재개발로 인해 쫓겨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역사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났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삶터에서 쫓겨나 '남은 생을 자신의 뿌리 바깥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새해에는 '저녁을 훔친 자들만의 장밋빛 청사진'은 없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오게 해야 한다. 그런 새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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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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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 책을 읽어야 하나?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은 대통령, 그리고 군 장성들.

이들은 전쟁이 나면 최선전에 뛰어들지 않는다. 이들은 전쟁이 나면 지하벙커로 들어간다. 안전한 곳. 포탄과 거리가 먼 그 곳으로 들어가 지도를 펼치고, 명령을 내린다.

 

전쟁터에서 터지는 포탄소리, 신음소리, 사방으로 튀는 피들은 이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그저 병력의 이동과 점령된 지역이 지도 위에 있을 뿐이다.

 

'원피스'란 만화에서 니코 로빈이 하는 말이 있다. '지도 위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정확한 표현은 이미 머리에서 잊혀졌지만, 이런 내용이었다는 기억은 있다)

 

사람이 보이지 않기에 명령을 내리기가 쉽다. 그냥 이들에게는 지도상의 영토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전쟁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현실을 알려주는 책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필요를 100% 채우고도 남는다.

 

전쟁을 다룬 책이나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진실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왜 제목이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일까?

 

여성성. 이것은 바로 생명과 직결된다. 포용성, 사랑은 바로 여성성이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요소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이 정치를 하면 갈등보다는 융합을 추구한다고 한다. (물론 이 때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라 사회학적 여성을 가리킨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해서 다 포용, 융합, 사랑을 기본 원리로 삼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성성, 남성성은 사회학적인 개념이다) 

 

이런 여성성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에서 포용과 융합, 사랑은 증오 뒤로 사라져 버린다. 죽지 않기 위해서 죽여야 하는 상황. 분노, 슬픔, 증오와 같은 요소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 때가 바로 전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어갔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던가. 이게 바로 전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 즉 여성성을 지닐 수 없다.

 

그럼에도 전쟁에서도 여성성이 발현될 때가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점이 곳곳에 나온다. 이 책이 전쟁에 참여한 소련군 중에 여성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기에, 전쟁에서 여자지만, 여자일 수 없었던 그런 장면들이 주로 나오는데, 그럼에도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부상병을 치료해주는 간호사들, 그 전쟁의 와중에서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몸부림 등이 잘 나와 있다.

 

전쟁터에서도 악세서리를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 감탄하는 그런 여성들의 모습에서 전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없는 여성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여성의 모습, 전쟁이 지속되면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점이 이 책의 많은 부분에 나와 있다. 전쟁은 결코 여자의 얼굴을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전쟁을 반대하게 만든다.

 

다른 어떤 점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어떤 형태로든 전쟁은 안된다라는 생각을하게 한다는 것이다.

 

비록 여성들이, 그것도 나이 어린 여자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갔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영웅 칭호가 아니라 사회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찾아간 남자의 집에서 온갖 구박을 받는 모습, 마치 난잡한 생활을 하고 온 사람처럼 인식하는 사회의 눈들이 이들을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힘들게 한다.

 

이런 사회의 시선보다 더 힘든 것은 이들이 전쟁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데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옷 입는 것부터 신발 신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까지 군대와는 다른 생활을 해야 했기에 겪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전쟁이란 어떤 형태로든 일어나서는 안된다. 가장 훌륭한 정치가와 장군은 전쟁을 막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도 이 책은 정치가들과 장군들이 읽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여전히 전쟁은 너무 멀리 있고, 지도상에만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지도상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을, 전쟁터에 있는 사람을 보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피와 살이 있는, 따스함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어떤 고통을 받는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이들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음을 너무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 읽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정치가들이 읽지 않는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읽어야 한다. 전쟁이 바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데 이 책만큼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전쟁에 대하여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결코 낭만이 아니다. 그것은 참혹한 현실이다. 가급적이면 피해야 하는.

 

이 작업을 이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정말로 해야만 하는 훌륭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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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너의 존재감 르네상스 청소년 소설
박수현 지음 / 르네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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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을 읽으면 마음이 우울할 때가 많아 잘 읽지 않는데, 도대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완득이' 같은 경우는 짧은 문체로 빠르게 읽어가고, 무거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어둡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내용은 어두울 수 있는데, 읽다 보면 치유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을 읽으며 치유를 받는 것, 굳이 소설치료라는 분야를 언급하지 않아도 주인공들의 삶에 공감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소설의 힘인데... 그래서 청소년 소설은 주제가 무겁더라도 내용 전개까지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소설을 읽으며 더 칙칙한 세계로 들어가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소설은 고2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그리고 세 명의 관점에서 소설이 각자 진행된다. 물론 세 명은 다 연결이 되고, 마지막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고2면 우선 입시전쟁에 찌들어 있는 나이다. 학교라는 공간, 솔직히 벗어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그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사고를 치거나 둘 중 하나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 또 가정환경이 화목하지도 않다.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까?

 

첫번째 주인공인 이순정은 아빠는 도망가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엄마와 지내게 된 아이다. 엄마와 아빠의 외모를 닮아 예쁘기는 하지만 지지리도 궁상인 엄마 곁에서 도무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냥 조용히 남의 간섭 받지 않고 지내길 바란다.

 

다만 할머니에 대한 무한한 애정만은 간직하고 있는 아이. 이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들여다보는데는 담임인 쿨샘의 역할이 크다. 다른 주인공도 마찬가지지만.

 

마음일기라는 것을 통해 쿨샘은 이들에게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마음챙김 활동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두번째 주인공은 김예리다. 그림자라고 나온다. 그냥 아무에게도 존재감이 없이 지내는 아이. 집에서는 공부를 잘하지 못해 무시당하고, 학교에서는 쥐죽은 듯이 지내, 누구도 그 아이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자기 생각에 빠져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 소위 멍 때리는 아이다. 멍 때린다는 것,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너무 많아 자신의 생각을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적어도 이 소설의 쿨샘에 의하면.

 

이 아이 역시 마음 일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림자에서 실체가 있는 인간으로 돌아고기 시작하는 것.

 

세번째 주인공은 강이지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활달한 척 하는 아이. 그러나 가정에서 매번 벌어지는 부모의 싸움에 자신을 잃어가는 아이다. 남 앞에서 큰소리치지 못하고 하얗게 질리는 아이.

 

그럼에도 쿨샘을 만나고 나서 꿈을 이루려는 마음을 먹는다. 이 아이가 이순정과 친해지고 이들은 보충수업에 관한 학생들의 의견을 조직하는 활동을 한다.

 

학교에서 학생이 어떤 활동을 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냥 죽어지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이제 이들은 그림자가 아니라 당당한 자기 삶의 주체가 된다.

 

무엇으로? 바로 마음 일기를 통해서. 즉, 마음 챙김을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아이들. 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거리를 두고 들여다보며 생활할 수 있께 된 것이다.

 

두려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

 

그것이 바로 마음 일기의 효과다. 마음 챙김의 효과다. 그런 과정을 세 아이를 통해서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또 지지리도 안 좋은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쿨샘... 그런 교사...

 

그것은 빛이다. 그림자가 아닌 자신의 실체를 인식하게 해주는 교사니. 하여 네 명이 어우러지면서 한 편의 소설을 전개해나가는데...

 

무거운 주제고 참으로 어둡고 막막한 환경이지만 읽어가면서 서서히 비추어드는 빛을 느끼고, 볕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이 그냥 읽었으면 좋을 소설이다.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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