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詩集
나태주 글.그림 / 푸른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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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구입한 책. 가끔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을 기웃거린다. 내가 원하는 책이 나와 있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책이 나와 있기도 한다.

 

이 책을 산 이유는 단순하다. 나태주의 시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짧지만 마음에 콕 와 박히는 시, '풀꽃'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146쪽)

 

3연 5행의 아주 짧막한 시지만,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와 더불어 많이 인용되는 시다. 무엇하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려주고 있는 시.

 

그런데 이 시집에는 '이야기가 있는'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야기가 있는, 즉 시에 이야기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과 시를 함께 읽을 수 있겠다 싶어 샀는데, 이야기는 나태주 시인이 그 시를 쓸 때 든 감정, 또는 상황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 글이다. 그래서 그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고, 시에 대해서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다.

 

시는 멀리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닌, 또 시인이라고 하는 전문가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구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시집이다.

 

게다가 이 시집은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시들을 골라 엮었다. 물론 어린들이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어른들이 읽으면 안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른과 어린이들이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들을 엮었다고 하면 된다.

 

어떻게 이야기가 있는 시집에 만들어졌는지... 한 편의 시를 살펴보면 된다.

 

 

사진이 좀 흐리게 나왔는데, 알아보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무엇을 찍은 사진인가? 이 사진에서 어떤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가?

 

시인은 이 사진을 보고 시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시의 내용에 맞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고 보면 되지만, 이 다리 사진에서 무엇을 찾아내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우선 시인은 아버지를 생각한다. 한 때 거인으로 다가왔던 아버지.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만 자그마해 지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사진의 밑에 있는 다리로 표현한다. 그리고 자꾸만 커져가는 아들을 사진의 위에 있는 다리로 표현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다리'로 떠올린 다음에는 그를 시로 표현한다. 이 과정을 그의 글을 그대로 따라가 보자.

 

'엄한 아버지에 인자한 어머니'란 말이 있었다. 그만큼 아버지는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힘 있고 집안 식구들에게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버지들의 어깨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아버지들이 점점 우울해져 간다. 더구나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아버지들은 더욱 마음이 좁아지고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다. 그런 오늘의 아버지를 사람이나 차들이 건너는 '다리'로 표현해 보았다.  101쪽

 

 

 

다리

 

 

살기가 좋아지면서

길이 새로 뚫리고

다리가 새로 놓여

헌칠하게 뻗은 새 길과

새 다리 옆에

쪼그맣게 쭈그리고 앉아

쓸모없게 되어 버린

옛날의 다리

 

 

아이가 어렸을 때는 곧잘

호령도 하고 큰소리도 쳤는데

아이가 커 가면서부터

말수를 줄여 간 아버지

훌쩍 자라 버린 아이들 옆에

쪼그맣게 마주 앉아

할 말을 잃어버린

오늘의 아버지.

 

나태주. 이야기가 있는 시집. 푸른길. 2013년 1판 6쇄. 100쪽. 

 

이렇게 시에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가 시로 표현된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이 하나하나 다 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세히 보아야' 하고 '오래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풀꽃'처럼 '너'가 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그렇게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 그 자체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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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음.

 

무엇인가를 떨쳐냄. 아니, 있어서는 안 될 것을 힘을 통해 없애려는 행위. 이 정도. 그렇다면 씻기 위해서는 보아야 한다. 알아야 한다.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지를. 무엇이 추한 것인지를.

 

제대로 보지 않고, 알지 못하면 결코 씻지 못한다. 또한 의지가 없어도. 보고 알아도 의지가 없이 그냥 받아들이면 씻지 않는다. 적당한 힘이 가해지지 않아도 씻져지지 않는다.

 

씻는 행위에는 본다는 것, 안다는 것, 그리고 적당한 힘의 의지가 행동을 수반해야 한다는 것이 모두 함께 한다. 참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실천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씻음'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연일 말들이 많다. 합의를 했다고 하는데, 일본과 우리가 그 합의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아니, 애초부터 다른 말들로 합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보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고, 적당한 힘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합의는 그냥 얼룩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결코 씻겨지지 않는다. 서로가 제대로 씻으려고 하지 않으므로.

 

헌책방에 들러 온갖 늙어가는 책냄새를 맡으며 이 책 저 책 구경을 하다, 김정환의 시집을 보게 되었다. 집에 김정환의 시집이 몇 권 있었던가? 그의 시가 참 직설적이라는 생각. 이 책이 85년에 나온 시집이니 민중성이 상당히 강한 시집이겠구나 싶기도 했는데...

 

87년을 전후로 민주화 이전과 이후로 나누거나, 또는 국민의정부를 기준으로 민주화 이전과 이후로 나누거나 하기도 하는데... 이 시집은 어느 기준으로 나누어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시집이니... 당시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고발과 같은 시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읽어보니, 그렇기도 하고. 그렇다면 이미 때가 지난 시들? 아니, 시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보편적 감성을 대변하기도 하니, 지금 읽어도 좋은 시들이 꽤 있다.

 

그 중에 하나, '씻음에 대하여'

 

도대체 제대로 씻어내지 못하면 어떻게 사회가 아름다워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과연 제대로 씻어낸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다.

 

꼭 사회라고 할 필요도 없다. 나 자신도 씻어낼 것들을 제대로 씻어냈는지... 씻어내기 위해서 정말 바로 보고, 알고, 실천했는지 반성하게 하는 시다.

 

이런 개인의 씻음을 사회로, 역사로, 국제 관계로 확장시키면 정말 우리는 제대로 씻어 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이 시를 읽고 정말 제대로 한 번 씻어 보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정초다.

 

씻음에 대하여

 

아침 숲 속 안개

샘물에 얼굴을 씻으며, 씻겨져내리는 귓가에

보이는 것에 대한 그대의 자그마한 비명소리 듣는다

땀 흘리고 분노하고 사랑하는 것

그게 후줄그레한 씻음의 행위라고, 나는 말했지만

그대는 믿지 않았다. 세상은 참 더러워요.

추해요. 치사해요.

아침 한기 온몸에 소름

바닥에 바위와 풀잎이 투명한 샘물에 얼굴을 씻으며

입김이 호호 냇물 위로 서리는 그 속에서

그러나 나는 오늘 다시 깨닫는다

보이지 않느 것에 대한 따스한 믿음을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을

얼굴을 씻고 가슴을 씻고

가슴에 묻은 사랑의 소금끼를 씻고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빼앗겼던 것을 씻듯이

내 가슴에 묻었던 그대의 얇은 가슴마저 씻으면서

근육에 배인 아픔만큼은

씻어내릴 수 없음을 다시 깨닫는다

그것은 정말 얼마나 벅차고 소중한가

추운 날 가난한 사람들의 입김이 그렇듯이

씻음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생각케 한다

어떤 갈 길 같은 것.

 

김정환, 좋은 꽃. 민음사. 1987년 중판. 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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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생활 좌파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낯선 질문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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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좌파가 존재해서는 안되는 나라다. 좌파라는 말 앞에는 늘 '종북'이라는 말이 붙고, 좌파라는 말보다는 '좌빨'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

 

게다가 국가보안법이 있어서 속칭 좌파라고 하는 정당을 해산까지 시킨 나라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좌파는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좌파라는 말보다는 '진보'라는 말을 더 좋아하고 많이 쓴다. 진보라는 말에는 좌파라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은듯이 우리는 '진보다'라고 외치는 정당들이 많다.

 

그런데 좌파의 상대가 우파라면 진보의 상대는 무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진보의 상대는 보수 또는 퇴보?

 

진보라는 말은 왠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지금까지 지켜왔던 좋은 것들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보다는, 더 좋은 것을 향해 계속 전진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반대로 보수는 있는 것을 지켜내야 한다는, 진보가 무턱대고 앞으로만 나아가려 한다고, 지금은 변화가 아니라 안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언어들에서는 이상하게도 (적어도 나에게는) 수직의 느낌이 난다.

 

반대로 좌와 우라는 말에서는 수직보다는 수평의 느낌을 받는다. 어떤 일을 바라보는데 관점이 다를 뿐이지 같은 위치에 서 있다는 느낌.

 

'진보-보수'라는 말보다 그래서 나는 '좌파-우파'라는 말이 더 좋은데...

 

우리 언어에서 좌파 앞에 '종북'을 붙이거나 또는 '좌빨'이라고 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순수하게 좌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사회당이든 공산당이든 또 녹색당이든, 반자본주의신당이든, 어느 정당에 속해 있지 않든 자신의 신념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들은 스스로 '좌파'라고 이야기하고, '좌파'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우리가 좌파라면 몸을 사리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들에게 좌파는 좀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추구하는 사람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공부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자연스레 좌파는 예전에 있던 좋은 것이 사라졌다면 그것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지금의 것이 좋다면 그 좋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행동하고, 잘못된 제도나 관행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투쟁한다.

 

이게 바로 좌파다.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신념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떠밀려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희생'이라는 관념이 없다.

 

그냥 하는 것이다. '희생'이 보답을 요구하고, 어떤 특권의식을 조장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들에게는 이런 개념이 없기 때문에 남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자신의 생활에서 자신이 옳다고 여긴 신념들을 실천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특정한 정당이나 이념에 묶여 있는 활동가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서 좌파적인 삶을 실천하는 '생활좌파들'인 것이다.

 

반갑게도 우리나라 출신(한 명은 망명자의 신분이고, 한 명은 국적은 우리나라이지만 1950년대 이후부터 계속 프랑스에서 살고 있었으니)도 나와서 우리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생활 속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실천하고 사는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었던 글을 책으로 엮어 냈다고 하는데...

 

이들이 어떻게 좌파적 삶을 살아가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일이니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들의 생활은 우리의 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적용될 소지가 많다는 점을 알아두어야겠다.

 

이 책에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이 위대하다거나 훌륭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삶에 주체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이 책이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함께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 낮은 곳에 있르려는 사람, 그들이 바로 '좌파'다.

 

참 멋진 말이지 않은가. 이 '좌파'란 말이. 이 사회를 바라보는데, 낮은 곳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 서로 도우며 소외되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좌파'라고 한다.

 

우리도 이런 '좌파'라는 말이 제 자리로 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아마 이 책은 그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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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학의 도시를 걷다
허병식.김성연 지음, 홍상현 사진 / 터치아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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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본 것이 얼마 되지 않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책에서 보면 외국은 도시에 문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명한 작가들의 생가는 물론이고, 그가 묵었던 곳까지도 잘 보존하고 안내하고 있기도 한데, 우리나라는 그에 비하면 작가들에 대한 보존 작업에 소홀한 편이었다.

 

물론 먹고 살기 힘들어서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라온 다음에야 문화에 관심을 돌린다는 말이 타당하기도 하지만, 작가를 배를 곯는 사람, 특이한 사람 정도로만 치부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서 간신히 흔적만 남은 작가들의 삶터가 수두룩한데... 지금에서라도 작가들의 흔적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이 책은 서울의 도심을 걸으면서 문학의 자취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따라서 과거의 어떤 특정 작가들만을 다루지 않고 근현대 모든 작가들을 아우르고 있다. 간혹 박지원과 같은 조선시대 작가도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예외이고...

 

주로 4대문 안을 중심으로 하고, 4대문 안이 아닌 경우에는 성곽 주변까지를 다루고 있다. 여러 코스를 안내하고 있는데, 한 코스가 그리 길지 않아 천천히 문학을 음미하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가 된다.

 

그 거리에 얽힌 문학을 찾고 생각하면서 걸으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더 의미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은 서울에 이렇게 많은 문학들이 관계맺고 있음을 시나 소설, 수필을 찾아 우리에게 알려준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

 

근현대 문학의 자취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상이나 박태원의 소설에 나오는 흔적들을 찾는 일은 많아졌지만, 현대소설에 나타난 서울까지 다루는 이 책은 더욱 깊은 문학의 맛을 서울에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시작을 신세계백화점에서 한다. 지금은 신세계백화점이지만, 일제시대에는 미쓰코시 백화점이었다는, 아직도 그 흔적을 살려 신축, 증축을 했다는 그 백화점에서 이상과 박수근의 흔적, 그리고 박완서의 소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의 끝은 연세대에서 끝난다. 윤동주를 만나는 시간. 영원한 청년, 끊임없는 자기성찰의 시인으로 그의 자취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러나 연세대에서는 윤동주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너무도 많은 현대 시인들을 만날 수 있다. 기형도, 정현종, 나희덕 등등.

 

이렇게 서울 곳곳에서 문학을 만날 수 있다. 깊고 넓게... 그것도 그냥 차를 타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이 책은 천천히 걸으면서 서울에서 문학의 맛을 음미하려는 사람들, 서울에서 문학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은 2009년에 나왔으므로, 지금은 조금 또는 많이 달라진 부분이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걸어야 할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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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필요할 때 -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소설치료사들의 북테라피
엘라 베르투.수잔 엘더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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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우리나라에 꽤 알려진 작가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것도 있고. 그가 설립한(?) 인생학교에서는 인생에 관한 여러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이 인생학교에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소설을 가지고 그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일명 소설치료사 정도라고 하면 좋을 그런 사람들은 상황에 맞는 소설을 추천해주고, 그 소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시치료, 소설치료, 수필치료, 이야기치료, 문학치료, 독서치료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도 이미 친숙한 이런 작업은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문학은 그 자체로 완성품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에 들어오면 독자의 마음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독자의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마음과 몸이 떨어져 있다는 이원론이 요즘은 극복되는 추세이니, 마음을 통해서 몸을 바꿀 수도 있고, 또 몸을 통해서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소설을 읽는 습관을 통해 몸을 바꾸고, 그 바뀐 몸으로 마음이 바뀌는 치료를 행할 수도 있고,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바뀌어 몸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어 결국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소설이 지닌 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이 모든 상황에 딱 맞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몸을 비비꼬거나, 또는 얼마 읽지 않아 책장을 덮거나 또는 주인공에 완전히 동화돼 그 행동을 따라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니 (일명 베르테르 효과를 생각해 보라. 이건 치유가아니라 오히려 질병을 유발한다.) 제대로 읽지 않으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런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책 속에만 빠졌을 때 할 수 있는 방법, 책을 지나치게 많이 수집했을 때 할 수 있는 방법 등 다양한 책에 관한 여러 행동들을 수정할 수 있는 방법들도 제시해주고 있으니, 여러모로 이 책은 쓸모가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쓸모는 각종 질환, 또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작품을 읽으면 좋을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 책에 대한 내용 설명도 조금씩 곁들이고 있어서 자신에게 필요한 책인지 아닌지 읽어보기 전에 판단할 수도 있다.

 

외국에서 나온 책이라 알파벳 A부터 Z까지에 해당하는 각종 문제에 대해서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방대함에 놀랄 뿐이다.

 

방대함뿐만이 아니라 설명을 잘해서 그런지 이 책에 나온 소설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도 한다. 어떤 형태로든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언가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니... 꼭 증상이 심각해서, 또는 증상을 치료할 목적으로가 아니더라도 이 책에 나온 여러 소설을 골라 읽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중 이 책의 169쪽에 나온 '독재자처럼 굴 때'를 보면... 하.. 기가 막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독재자는 저녁이면 세상을 지배하는 지침서를 들고 앉아있지, 결코 그것 대신 훌륭한 소설을 집어 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개탄할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소설을 제대로 처방받아 치료하면 누구든 인권 문제를 상당히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169쪽)

... 크든 작든 폭군들이여. 이 책들을 읽어라.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그 결과 가까운 이들에게 편집증과 불신을 주입해 그들의 심장을 공포로 물들이기로 작정한 것을 참회하라. 당신이 전쟁으로 유린된 나라를 다스리든^(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진짜 독재자들이 이 글을 읽기를 바란다), 국제적인 대기업을 경영하든, 평범한 5인 가족의 가장이든 사람의 도리를 알고 서둘러 자리에서 물러나라. 그리고 그 자리에 민주주의를 세우라. (170-171쪽)

 

상활파악의 명확성, 그럼에도 그런 사람에게 맞는 책을 추천하는 자세. 이것을 읽고 독재자가 정말 이 책들을 읽을까? (이 책에서는 이스마일 카다레의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와 패트릭 맥기니스의 "마지막 100일"을 추천하고 있다)

 

이들은 독재자가 정말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아마 독재자는 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이 책을 소개할까? 잠재적인 독재자, 자신이 독재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독재자, 또는 독재자에게 눌려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람들, 독재자를 물리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이 필요할 때'이고, 소설의 유용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나하나의 사례에 맞는 책들이 잘 소개되어 있어, 가까운 곳에 두고 자신의 상태에 맞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니 곁에 두고 있기를 바란다.

 

다만, 이 책에 소개된 책이 우리나라 말로 모두 나와 있지는 않다는 점, 이와 비슷한 내용의 우리나라 소설을 읽었다면 그 소설도 대체해도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좋겠다.

 

덧글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 한 가지. 그 많은 소설이 고전소설부터 현대소설까지 나오는데... 일본 작가의 작품도 중국 작가의 작품도 나오는데...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우리나라 문학은 아직도 세계문학의 변방에 있나 보다. 우리나라 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됐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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