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리딩 - 생각을 키우는 힘
하시모토 다케시 지음, 장민주 옮김 / 조선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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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 나다학교에서 3년 동안 "은수저"라는 소설을 가지고 국어 수업을 한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이 직접 쓴 책이다.

 

먼저 읽은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이 이 수업에 관한 다큐멘터리 식 책이었다면 (그래서 그 책에는 제자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독서 전문가의 이야기도 나오고, 작가의 생각도 나온다) 이 책은 그 수업을 직접한 다케시 선생이 자신의 수업에 대해서 한 이야기가 묶여 있다.

 

수업에 관해서 딱딱하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아주 쉽게 마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소곤거리듯이 책이 나아가고 있어서 읽기에 참 좋다.

 

자신이 한 수업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때문에 이 책의 독자들이 꼭 학생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천천히 깊게 읽어라 하는 내용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런 삶 속에서 수업이 어떠했는지, 학교를 그만두고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미 한 세기를 살아온 (이 책이 나온 2012년에 다케시 선생은 100살이었다) 사람이 인생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책을 읽으면 무엇보다 읽기는 쓰기와 떨어질 수가 없고, 또한 읽기는 바로 삶 읽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읽는다는 것, 그것은 어떻게 살 것인지를 먼저 체험하는 일, 따라서 자신의 삶을 좀더 바람직하게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 읽기 자체가 바로 삶임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그렇다고 다케시 선생은 읽기에만 집중하라고 하지 않는다. 읽기에서도 샛길이 있듯이 인생에서도 샛길이 많기 때문에, 가끔 그런 샛길로 접어드는 경험을 하는 것도 참 좋다고 말한다.

 

한 길로만 죽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여유를 가지고 다른 길을 기웃거릴 수도 있는 인생, 그런 삶을 살라고... 읽기에서 책 내용을 파악하려면 책에 나와 있는 온갖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듯이 우리 인생도 여러 가지들이 다 어울려 이루어지니까...

 

결국 샛길이 읽기를 풍부하게 하듯이 삶도 풍부하게 한다고... 인생 선배의 인생이야기를 듣는 듯이 그냥 그렇게 읽어도 좋은 책이다. 굳이 이 책을 독서에 관한 책이라고 할 필요가 없이.

 

그럼에도 독서, 특히 읽기 교육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교사라면, 부모라면 이 책의 이 부분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교사의 일이란 자신의 인간성을 학생들과 직접 부딪치고 공유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교사가 교사로서 자기 자신을 열심히 연마해 나가면 그 진심은 반드시 아이들의 가슴 속에 전달됩니다.  88쪽

 

여기서 교사를 부모로 바꾸어도 되고, 무언가 남에게 보여주거나 가르치려는 사람으로 바꾸어도 좋다.

 

가르친다는 것, 그것은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이 한 인격과의 치열한 만남을 이루어가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자신의 인격을 닦는 일부터, 자신이 인생을 즐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 명심해야 한다.

 

가르친다는 말을 읽는다는 말로 바꾸어도 무방하겠다. 읽는다는 것 역시 자신의 인격을 닦는 일이고 자신의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일테니 말이다.

 

구체적인 수업사례는 나와 있지 않다. 그리고 나열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세세한 항목이 아니니 말이다.

 

바로 교육의 철학, 읽기의 철학이다. 그것은 잘 살기 위한, 곧 읽기는 삶이라는, 우리는 읽으면서 온갖 샛길을 노니다 오듯이 인생에서도 많은 샛길들로 접어들어 경험을 할 필요도 있다는, 인생 선배의 말을 이 책에서 들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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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 속도에서 깊이로 이끄는 슬로 리딩의 힘
이토 우지다카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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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교육방송에서 하는 '슬로 리딩'에 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교육활동이었는데... 용인이었던가, 정확히 생각은 나지 않지만 모 초등학교에서 책 한 권을 가지고 수업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 때 선정한 책이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소설을 천천히 읽어가면서 소설과 관련된 사항들을 찾아 정리하고 토론하는 교육이었다.

 

한 권의 책으로 모든 교과를 통합할 수 있는 수업모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런 실험을 한 교사들과 그것을 허용한 교장, 그리고 따라준 학부모 (우리나라 학부모는 어느 광고에서처럼 '부모'와 다르다는 인식이 있으니 ---참조, http://photo.naver.com/view/2010061317235361849 --- 입시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수업에는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그러니 학교에서 교육활동을 하는데 학부모의 입김을 무시할 수가 없다) 와 학생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학교에 다닐 때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하라고 하면 딱히 기억이 나는 것이 없다. 단지 기억나는 것은 어떤 선생님의 어떤 면 정도만 기억날 뿐이다.

 

이 책은 바로 여기에서 수업을 바꾼 교사의 이야기다. 이 교사의 수업이 우리나라에 적용이 된 것일테고.

 

자신이 학교 다닐 때 읽었던 소설이나 어떤 것을 떠올려보니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더라는 것, 기껏 생각난 것이 초등학교 때 수업과는 달리 소설의 어느 부분, 또는 사건과 등장인물에 대해 이야기해주던 부분이라는 것.

 

그래서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의 기억에 온전히 남지 않는다는 것, 교육이란 학생들의 마음에, 기억에 남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의 교과서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이런 고민의 결과가 바로 소설 한 권으로 국어 수업을 하는 것. 대상 작품은 "은수저"

 

단지 일 년이 아니라 삼 년을 "은수저" 한 편으로 수업을 했단다. 물론 "은수저 연구 노트"라고 교사 본인이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나눠주고 활동하게 하였지만... 그래서 샛길로 빠지는 유명한 수업이 되었다고 하지만.

 

가령 소설 속에 연날리기가 나오면 수업 시간에 직접 연을 만들고 날리는 활동을 하고, 막과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직접 막과자를 먹으면서 수업을 하고, 절기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12간지 및 24절기에 대한 공부를 하고, 모르는 한자어가 나오면 그 한자에 관련된 한자어들을 찾는 활동을 하는 등, 소설 속에서 무궁무진하게 다른 교과로 뻗어나가는 수업을 했다.

 

소설을 읽고 정리하는 활동과 더불어 관련된 내용을 글쓰게 하는 활동도 하는 등 읽기, 쓰기, 말하기 등을 소설 한 편으로 할 수 있음을, 거기다 다른 교과목들까지 섭렵할 수 있음을, 지금 우리가 강조하고 있는 통합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몇십 년 전 일본의 나다중고등학교에서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은 이미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학교의 특성이 자유를 강조한다는 것, 교사의 교육에 어떤 강제도 없었다는 것, 특히 한 교사가 중1의 한 과목을 맡으면 중고교 통합과정인 이 학교에서 6년간을 그 학생들과 수업을 한다는 점... 따라서 학생들은 특정한 과목의 교사를 계속 6년 동안 만나야 한다는 점.

 

그 6년이란 긴 시간 동안 교사는 학생들의 특성을 하나하나 파악할 수 있고, 자신만의 수업을 할 수 있기에 오로지 교육에만 전념하고 다른 교사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 이런 수업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대학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덤이라고 할 수 있고, 이 교육의 가장 좋은 점은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고 노년이 되어서도 이 수업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

 

이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은 세상을 잘 살아가는 법을 몸으로 익히게 되었다는 점. 그래서 이 수업은 학교에서 끝나는 수업이 아닌 삶 전체를 따라가는 수업이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나라 상황과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이런 수업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3년간 한 교사가 가르치는 경우는 참 드물기에.. 한 해 동안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요즘 시도하고 있는 '주제통합수업'이라는지 '창의융합수업'에 이런 다케시 선생의 방법을 원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한 권의 책으로 3년을 수업한다. 참 무모한 활동인 것 같지만, 이렇게 천천히 깊게 읽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배움이 바로 놀이일 수 있음을 깨달았으며, 국어 수업은 곧 삶 수업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평생 간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원제목이 "기적의 교실"이라고 한다. 학생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는 수업. 그것은 교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수업 아니겠는가.

 

천천히 읽으며 단지 부러워만 말고 우리도 할 수 있음을, 해야 함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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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사랑이란

늘 한 사람 곁을 에두르는 것

직접 다가가지 못 하고

주변에서 빙 빙

머뭇머뭇하며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지내는 것

세상의 중심에 한 사람이 놓여

말소리, 향기, 몸짓

그 모든 것들이

오직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

그리하여 사랑이란

가슴 시린 그리움을

가슴 한 켠에 고이 쌓아두고

사랑이었네라

사랑이었네라만을

반복하는 것

언제든지 그리울 때면

가슴 속에서 꺼내

사랑에 감싸일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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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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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광고의 문구를 생산해 내는 사람. 이들에게는 탁월한기억력과 어휘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책의 저자 역시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물론 반대의 의미로.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말한다. 우선 자신의 이름. 김민철. 누가 봐도 남자 이름이다. 그런데 여자란다. 이름부터 남들에게 확실히 각인이 될 수가 있다. 여기에 자신이 말하는 탁월한 기억력이라니.. 기대를 했는데...

 

그 남들보다 탁월한 기억력이라는 것이 글쎄, 남들보다 훨씬 기억을 못하는 능력이라니... 기억력이 형편없는 카피라이터라.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이름이 성별과 어울리지 않듯이, 그의 기억력 역시 광고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자. 이름이 성과 잘 안 맞는다는 것은 그 이름을 들은 사람에게 자신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예측이나 상식에서 벗어난 것에 흥미를 느끼고 또 더 잘 기억하니 말이다.

 

마찬가지다. 형편없는 기억력. 이것은 기존의 것을 잘 잊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늘 새로울 수 있다는 얘기. 당연히 본인에게는 새로운 것이 남들에게는 이미 식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본인이 늘 새로움을 느끼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자신의 기억력이 탁월하게 좋지 않다는 인식을 하게 되니, 그를 보완할 수 있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을 잘 못하지만 읽기는 좋아한다. 책을 무지 읽는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을 깡그리 잊어버린다.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읽는다. 읽고 읽고 잊고 잊고 잃고...

 

기억하지 못하는 책을 왜 읽냐고? 두뇌는 기억하지 못할지 몰라도 몸은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책들이 몸에 남아 삶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삶 자체가 책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읽는다. 또 읽는다.

 

읽는 행위에 이어 듣는다는 행위, 어머니가 피아노를 가르치는 분이었다는 것 외에는 음악에도 본인은 재주가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연주에 재능이 없는 것이지 듣기에 재주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음악은 지은이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온다. 집중할 때 듣는 음악,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하루를 시작하며 듣는 음악, 시끄러운 상황에서 듣는 음악 등

 

상황에 맞는 음악을 듣고 또 음악 연주회에 가서 감동을 받고 외국 여행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연주들에 마음을 주기도 하고.

 

이렇게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이 물론 곡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몸에 저장해 놓은 그 음악들은 언제가 필요할 때 튀어나오기 마련.

 

여기에 더해서 보기까지, 특히 카메라라는 또 하나의 눈을 통해 보는 법을 즐기는 사람. 남들이 좋아하는 장면이 아니라 벽들, 그리고 늙어가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사람.

 

자신의 삶을 카메라를 통해 보는 활동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무엇을 꼭 머리에 담아둘 필요는 없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의 활동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 위에 쓰기가 더해진다. 이렇게 쓰기가 이루어진 결과 이런 책도 나온다.

 

책 내용이 광고인을 위한 것도 아니고, 청년들에게 위로를 건네주는 책도 아니고, 그냥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기록한 책이다.

 

그냥 쓴 책.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쓴 책.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다른 사람, 그냥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런 삶이 상당히 매력적임도 느끼게 됐고.

 

기억에 의존하지 않아도 자신이 한 행동 하나하나, 읽은 책 하나하나, 들은 음악 하나하나, 본 장면들 하나하나, 꾸준히 썼던 글들이 모두 자신의 삶을 이루어가는 요소다.

 

그런 요소들이 현재의 즐거움에 함께 할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런 풍요로움을 간접적으로 끽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냥 다른 사람의 즐거운 삶을 엿보길 바란다면 이 책을 들고 읽어보길 바란다. 그냥 읽으면 된다.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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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얼마간 더 춥겠지만, 그래도 계절은 어김없이 제 갈 길을 하고, 제 올 길을 온다.

 

겨울이면 늘 생각나는 시가 있다. 안도현의 시들... 특히 연탄에 관한 시들.

 

그의 시 중에 너무도 유명한, 그래서 사람들이 제목을 잘못 알고 있기도 한 (주로 시의 첫구절을 따서 '연탄재'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

 

이 시의 출처를 잘 모르고 있었다.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겠지만, 너무도 잘 알려져서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던 시였는데...

 

헌책방에서 안도현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백석의 시 구절을 따온 시집을 보고, 책장을 넘겼을 때, 이 시가 처음에 실려 있는 것을 보고, 어라? 이 시가 이 시집에 있는 거였서 하게 되었고, 이 시집이 시집인지, 시선집인지 다시 한 번 살피고...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00년 1판 25쇄. 13쪽

 

시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와, 여기에 있었구나, 이 시가... 곧 '연탄 한 장'이란 시가 다음에 있는 것을 보고, 연탄에 관한 안도현의 시가 이 시집에 많이 실렸구나... 기쁜 마음.

 

망설임 없이 시집이 내 품으로 오게 하고... 주욱 읽어가는데... 읽어가면서 안도현의 어려웠던 시절이 이 시집에 고스란히 실려 있음을...

 

그래서 그가 이렇게 연탄에 대해 시를 쓸 수 있었음을...

 

안도현이 전교조에 가입했다가 해직된 해직교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지고,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실리고, 이젠 교사가 아닌 교수로 지내고 있게 된 그의 과거에는 거리로 쫓겨난 교사 생활.

 

그로 인한 어려움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어려움들이 이 시집 곳곳에서 시로 나오고, 안도현의 자전적인 요소들이 이 시집에 시로 실려 있기도 하니... 그의 과거를 알고 싶으면 이 시집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물론 자서전처럼 자세히 쓰여 있지 않고, 시로 표현되어 있기에... 많은 것을 유추와 상상으로 채워넣어야 하지만... 특히 이 시집에서 '집'(43-49쪽)과 '학교로 가는 길'(82-85쪽)은 그의 유년시절과 청년, 어른이 된 시절을 모두 상상하게 해주는 시이다.)

 

그럼에도 이 시집의 백미는 역시 '연탄 한 장'이다. 읽을수록 따스해지는 시. 그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시. 그리고 그렇게 온기를 남에게도 전달하고 싶어지는 시.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물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00년 1판 25쇄. 1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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