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늘이 보지 않게 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광활한 하늘을 보며 우주의 끝을 상상하던 시절이 끝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지구 밖에 생명체가 있을 거라는 가설을 가지고, 우리의 언어를 우주로 쏘아 보낸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이제는 화성에 생명체가 사느니 마느니 하지만, 우주에 생명체가 있다고 믿고 그 생명체가 지구에도 왔다 갔다는 믿음이 사라진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과학기술은 점점 발달하는데 비해 우주는 점점 더 넓어지지 않고 좁아지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게 좁아지는 우주 와 더불어 우리의 상상력도 비루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땅만 보고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먹기 위해서 사는 그런 인생들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 아닐까?
그런 점에서 삶을 위해, 상상력을 위해, 나를 좀더 넓히기 위해 시집을 읽기도 한다. 이해도 하기 힘든 시들이 많아지는 이 시대, 시들을 읽으며 무언지 모를 미지의 세계를 헤매곤 한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시집은 시들보다는 뒤의 해설이 더 멋질 수 있다는, 어쩌면 시집 뒤에 실린 해설로 인해 시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시집이지 않을까 한다.
적어도 내게는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광활한 우주에서 미아로 떠돌아다니듯이, 시의 사이사이로 내 머리와 내 마음이 그냥 흘러다니고 만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적 우주 속에서 길을 잃은 내 머리와 내 마음. 이런 표현이 딱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뒤의 해설을 읽어서 다시 머리와 마음이 명징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무리 아나키스트를 표방한다고 해도 (시인은 스스로 자신을 '아나키스트 김산'이라고 했다.) 아나키즘이 그냥 무질서가 아닐진대, 아나키즘은 독립된 개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내 머리는 이런 시적 우주를 연결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집이었다.
그냥 미아처럼 흘러가기만 할 뿐. 시집의 페이지를 헤매기만 할 뿐. 그래서 시집을 읽은 후 짙은 피로감을 느낄 뿐.
개운한 느낌... 시가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 머리가 상쾌해지는 느낌. 혼란스러워 보이는 우주에서 길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으니.
그럼에도 이 시집의 맨 처음에 실린 시만은 기억에 남는다. (맨 처음에 실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니까, 또 짧으니까, 그래서 내 생각을 시의 행간에 여기저기 채워넣을 수 있으니까)
지구
나이테 하나가 나이테 하나를 뒤에서 꼬옥 안는다.
감싸 안은 팔을 비집고 벌레 한 마리가 알을 낳는다.
김산, 키키. 민음사, 2011년. 1판. 13쪽.
이게 내 삶이다. 켜켜히 쌓인 관계들, 그 관계들 틈에 내 뿌리를 내린 것. 그리고 그렇게 관계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런 관계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구. 그런 사람들. 벗어날 수 없는 관계들 속의 나.
시가 나를 마냥 헤매게만 하지 말고, 나를 정착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아직도 시라는 우주는 너무도 넓고 너무도 복잡하다. 이제는 안주할 행성을 우주에서 찾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데...
하여 나를 시라는 우주 속에서 헤매게 만들어준 시집.